중보기도란 무엇인가? (출 17:8-13)
중보 기도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중보 기도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중보 기도는 이기심이 없는 기도이며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챤이 남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과 행복과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를 위한 기도이다. 성 어거스틴은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중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지속적인 사역 가운데 중보 기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아 제사장으로 임명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영예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신성한 의무이며 귀중한 특권이다.
성경적으로 볼 때 세상은 크리스챤의 중보기도 없이는 한시도 살아남지 못한다. 기도 이상 생산적이고 역동적이며 현실적인 작업이 어디 있겠는가. 소돔성의 구원과 멸망이 아브라함의 기도에 달려 있었고 모세와 엘리야의 기도 속에 민족의 생사가 좌우되었던 것을 기억하자. 먼 훗날 하늘나라에서 숨겨진 역사의 모든 장막이 벗겨지고 모든 과장과 왜곡과 허위의 베일이 벗겨졌을 때 기도한 것들만이 가을 나무에 매달린 풍성한 열매처럼 알찰 것이다.
아말렉 전쟁에서의 모세의 중보기도를 종일토록 협력했던 아론과 훌의 동시적인 중보기도는 그 대표적인 것이다(출 17:8-13). 그런 의미에 있어서 평신도는 목회자의 기도의 동역자임에 틀림없다.
중보기도란 기도자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마치 아브라함이 롯을 위하여 기도하였듯이(창 22:22-23), 모세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였듯이(출 32:11-13), 이사야가 히스기야의 치유를 위하여 기도하였듯이(대하 32:20-23), 느헤미야가 자기 백성의 안위를 위하여 기도하였듯이(느 1:8-10) 나아가 목자 바울이 골로새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며 에베소 교우들에게는 서로 위하여 중보기도하는 자가 될 것을 적극적으로 권고하였거나 자기의 문제를 중보하며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한 바와 같은 그러한 기도를 말한다.
그러므로 중보기도(대도, 혹은 도고 / intercession)는 '기도자가 하나님께 나아가 중재적 위치에 서서 개인이나 교회나 민족이 처한 기도제목을 붙들고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보기도는 그 무엇보다 항상 믿는 자의 본이 되시어서 친히 그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시는(히 12:2, 벧전 2:21) 예수님의 목회기도사역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전부이시다. 그는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셨다. 그리고 친히 우리 속에 사신다. 그리고 항상 그가 중보의 기도를 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중보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부분은 요 17장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의 기도'이다. 또한, 그는 베드로를 위하여서 중보기도하셨고 나아가 지금도 그 분은 살아서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하고 계신다(눅 22:31-32, 롬 8:26, 34, 히 7:25).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는 아론으로서 피를 흘리셨다. 이제 멜기세덱으로서 휘장 안에 살며 영생의 능력을 좇아 그의 사역을 계속하신다.
따라서 그의 중보기도는 목회의 진정한 실체(Entity)이며 절대적으로 필요불가결한 목회사역이며 그것 없이는 구속의 계속적인 적용이 발생할 수 없는 주사역이다. 그렇다면 중보기도는 목회에 있어서 그 근간이 되며 목회현장의 중심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이러한 사역에 의한 유익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사역 그 자체에도 동참해야 한다. 우리는 그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의 그의 생활은 항상 기도하는 생활이다. 나아가 모든 보화가 그 안에 있고 우리도 그 안에 있듯이 오로지 진정한 중보기도에의 권세는 그 안에서 발원된다. 그리고 예수님의 중보기도로서의 목회는 우리가 목회기도를 하지 않거나 할 수 없을 때에 기도해 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를 그 자신과 연합하여서 목회기도를 하도록 까지 이끄시는 것이다(요 15:7).
그렇다면 목회에 있어서 기도가 차지하는 몫은 '믿음의 제1의 실천'(fidei praecipuum exercitium)이며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채널이다. 그리고 목회에 있어서 중보기도는 곧 목회의 중심이다. 목회현장에 있어서 중보기도는 현장목회의 제1의 견인차가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도고(중보기도)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성령님이 성도를 위하여 하시는 도고가 있다.
성령은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 안에 사는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하심과 같다.
둘째로 예수님이 성도를 위하여 하시는 도고가 있다.
예수님도 자기를 믿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라는 말씀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라는 말씀이 주된 참조 구절이다.
이상의 두 본문은 예수님이 그의 지상사역 시에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셨던 것의 근거가 될 것이다. 그래서 빗대어 보면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복수형)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단수형)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들을 굳게 하라(눅 22:31-32)"고 되어 있다.
이러한 예수님의 중보기도로 베드로는 엄청난 사탄의 시험 가운데서도 믿음이 떨어지지 않았고 결국 순교하는 믿음으로 충성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홀(笏, scepter)로 우리를 통치하시기 보다 중보기도로 우리를 통치하시는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종들이 성도를 위해 하는 도고가 있다.
모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도고의 기도를 하였다(출 17:11-14, 민 21:7). 사무엘도 목회의 첫째가는 사역이 중보기도임을 스스로 자인하면서 기도목회를 결연히 다짐한 바 있다(삼상 12:19, 23). 목회자 바울도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또한 후배 동역자 디모데를 위하여서 중보의 기도를 한 바 있다. 그 외에도 그의 중보기도자로서의 기도목회는 그의 서신 곳곳에 나와 있다(롬 1:8-10, 10:1, 15:30, 고전 1:4-7, 고후 1:2, 13:9, 갈 1:2-5, 엡 1:16-19, 6:19-20, 빌 1:3-4, 9-11, 골 1:3-6, 4:2-3, 살전 1:2-3, 살후 1:11-12, 딤후 1:3-5, 몬 1:4-5).
실로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 높이 들린 손이다(애 3:41). 왜냐하면 천지를 넘나드는 가장 큰 손이요, 가장 긴 손이 되며, 하나님의 보좌를 칠 수 있는 손이기 때문이다(출 17:16).
넷째로 교회와 성도들이 주의 종을 위하여 드리는 도고가 있다.
아말렉 전쟁에서의 모세의 중보기도를 종일토록 협력했던 아론과 훌의 동시적인 중보기도는 그 대표적인 것이다(출 17:8-13). 그런 의미에 있어서 평신도는 목회자의 기도의 동역자임에 틀림없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다(행 12:5). 그리고 바울은 수차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고후 1:11, 골 4:3, 살후 3:1-2, 엡 6:19-20). 따라서 성도들은 중보기도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동반자(partnership)요, 동시에 주님의 종들의 동역자(co-worker)이다(고전 3:9, 6:1).
따라서 성도들은 그 어떤 기도보다 목회자들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하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들도 살고 목회자도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최대봉사요 첫째가는 사역은 그들이 제사장적인 중보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중보기도는 다음과 같은 영적 유익을 얻게 된다.
첫째로 다른 사람을 영적으로 기름지게 해주게 된다.
둘째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해 준다.
셋째로 광야의 벌레나 짐승과 같이 사람을 더럽게 하고 악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 준다(막 9:29).
넷째로 다른 사람을 치료시키는 은혜를 받게 한다(약 5:14-16).
다음으로 성공적인 중보기도를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조건을 정할 수 있다.
1. 하나님께 기도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보기도의 첫 번째 조건이다.
모든 인간들과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그 크신 사랑을 인하여 먼저 감사해야 한다(딤전 2:5, 히 2:3, 엡 2:4, 요 3:16). 그리고 그 계획이 중보기도자와 피중보기도자에게 크게 역사되고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사 65:1-2). 예수께서 바로 그 사람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시고 계심을 그려보며(마 23:37), 기도의 천사가 벌써 대기하고 있음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히 1:14).
2. 피중보기도자를 위하여 계속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고, 그를 위한 기도에 성령이 함께 계시길 간청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해하려는 사탄의 계획을 가로막고서 그러한 사탄의 계획이 좌절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늘 함께 하고 그가 하나님의 새롭게 하심과 죄를 해결하심과 하나님의 사랑 앞에 그가 주저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중보기도로서의 목회를 할 때에 주의할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개할 수 있는 중보기도가 있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개해서는 안 되는 중보기도가 있다. 곧 다른 사람이 나에게 기도를 부탁하였다고 해서 내가 아무에게나 그 내용을 또 다시 기도 부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자기 아내나 또는 자기 남편에게도 공개해서는 안 되는 중보기도가 있다. 우리가 그같은 사실에 유념하지 않으면 기도의 효과는 도리어 반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비밀을 지켜야 하는 문제라면 반드시 그 사실을 상대방에게 확인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가 때때로 한 사람이나 어떤 사건을 위하여 수년간을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뜻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가 있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우리의 중보기도가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속단을 내리기가 쉽다. 그러나 기도하다가 낙심해서는 안된다(갈 6:7-9, 눅 18:1-8).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크게 일을 성취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렘 32:27, 33:2, 사 55:8-9).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일 기도를 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나게 하실 때가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기를 간구하면서 매일 중보기도를 드릴 수가 있다. 그래서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중보기도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끼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복된 사람이다. 중보기도는 이웃 사랑의 대표적인 사역이기 때문이다. 중보기도는 이기심이 없는 기도이며, 심지어 자신을 내어주는 기도사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땅에서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은 바로 중보기도자인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한 생명을 '죄에서 구원으로',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순종의 삶으로', '육신의 사람에서 영에 속한 자'로 바꾸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그를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하도록 만드시는 것이다. 중보기도자로서의 대상은 각계의 수많은 사람이요, 그 영역은 무한하다.
그렇다면 목회자는 가장 복된 사람이요, 중보기도자로서의 목회자는 이 땅에서 최대의 행복자인 것이다. 그의 목회현장은 바로 하나님나라의 한복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나라에 있어서 계속적인 사역 가운데 중보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님
중보기도 사역은 우리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미약한 중보기도는 영원한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에 의해 뒷받침되고 힘을 공급받는다.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사랑으로 기도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한 중보기도를 바로잡아 주시고 정결케 하셔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드려질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때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시는 성령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영이 그의 뜻대로 구할 수 있도록 우리의 중보기도를 인도하실 것이다.
중보기도를 시작하기 어려울 때
중보기도를 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때로는 그러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 때가 있다. 중보기도를 하고 싶은 열정이나 소원이 없는 경우에는 우선 다른 사람들을 더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하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의 용량을 넓혀 주심에 따라 당신은 자연스럽게 이웃과 친구 심지어 원수들의 이익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게 된다.
끈질긴 기도가 승리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 응답이 더딘 것 같아 쉽게 낙담할 때가 많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의지가 어긋나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품, 즉 존중함과 정중함, 인내심 등은 우리 인간들의 속성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실망시킬 때에 우리는 그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어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은 사뿐히 땅 위에 내려서 땅을 적신 후, 땅 속으로 사라지는 눈이나 비와 같다. 그리하여 적절한 때가 되면 새로운 생명을 싹트게 한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한 힘없는 과부의 비유를 통하여 기도의 힘을 깨우쳐 주셨다. 그 과부는 자신의 무력함에 낙심하지 않고 불의한 재판관에게 결국은 끈질긴 인내로 승리하였다. 낙심하지 않고 계속 기도할 때 기도응답을 받게되는 것이다. (눅18:1-8)
존 칼빈은 "우리는 동일한 간구를 두 세 번 반복하고 말아서는 안 된다. 필요할 때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계속 해야 한다. ...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일에 결코 지쳐서는 안된다." 고 하였다. 우리가 진정 사랑으로 기도한다면 우리는 오래 참으며 기도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