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조선말기 암흑하기만 했던 이땅에 복음의 빛을 들고 제물포 항에 첫 발을 내 딛었던
'언더우드' 와 '아펜젤러' 선교사님
<언더우드의 '조선의 부름' 중에서>
지금 내 눈 앞에는 새로운 조선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장차 이 나라 방방곡곡에서 사랑과 화목과 협동의 기독교 정신으로 가르치는 학교들이 보이고,
도시와 마을마다 자비량으로 운영되는 기독교 병원들이 보입니다. 이 나라의 모든 곳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여 긍휼을 베푸는 기관들이 세워져서, 고통당하는 자들을 섬기고 여기저기 죽어가는
자들에게 빛과 기쁨을 주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나라가 힘 있고 복된 강화의 두 팔을 내밀어서
한 팔로는 중국을, 다른 한 팔로는 일본을 껴안아, 세 나라가 다 기독교 국가가 되어 모두 손에 손을
잡고 한 큰 원을 그리어, 어린 양을 영원토록 찬송하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예수를 소리 높여
찬양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펜젤러가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주일날 인천 제물포 항에 도착하여 드린 고백>
우리는 부활절 날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사망 권세의 빗장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자유와 빛으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비젼 (예수님을 따르는 아가페목장) |작성자 믿음너구리
아펜젤러 선교사의 기도
지금으로부터 125년 전인 1885년의 4월 5일은 주일이었고, 그해의 부활절이었습니다.
그 날 오후, 제물포에는 증기선 한척이 들어왔습니다.
이 배에는 미북장로회에서 파송한 언더우드 선교사와 미감리회에서 파송한 아펜젤러 선교사가 타고 있었습니다. 이 두 분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첫 선교사입니다.
첫 선교사가 부활절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것은 매우 복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제물포에 도착 즉시, 자신의 도착 사실을 본국에 보고하면서 이와 같이 적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주일에 여기 왔습니다.
이 날 죽음의 철장을 부수신 주님께서 이 백성을 얽매고 있는 줄을 끊으시고
그들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얻는 빛과 자유를 얻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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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 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출처] 언더우드 목사의 기도|작성자 배수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