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58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유투브 주소 https://youtu.be/aOcbHbBNMaM
날짜 2015-03-11
본문말씀 사도행전9:32-~43(신약 203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베드로의 서부지역 순회전도, 중풍병자의 치유, 죽은 자의 소생기적, 복음전파의 방법, 질병치유의 2가지 방법, 믿음의 사용, 은혜베푼 자의 결과

  복음전파는 어떻게 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복음전파시 효과적인 전도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또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힘입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 특히 병든 자를 치유할 때에는 어떻게 행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오늘 사도행전 9장 후반부에 있는 베드로행전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복음전파는 어떻게 하게 되는 것일까?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어디든 가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복음을 전파하겠다고 작정하고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면 되는 것일까? 우리는 베드로 사도의 복음전파 과정을 통해 복음전파가 어떻게 이루어지며, 우리가 어떻게 할 때에 복음전파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행9:32~33).

  이때 베드로는 나가서 흩어진 성도들이 있는 곳으로 두루 다니며 살펴보았다. 그렇다. 어찌되었든 집안에 가만히 있어서는 복음전파하기가 어렵다. 사실 사탄에 붙들려 있는 자들이 스스로 복음을 듣기 위해 교회에 찾아나오리가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가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셨고,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지 않았던가?(마28:19, 막16:15, 행1:8). 그래서 베드로는 두루 다녔다. 그러다보니 팔레스틴 서부 해안가 어느 지역인 '룻다'라 하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베드로는 거기에서 한 명의 중풍병자를 본다. 그는 그냥 어떤 중풍병자가 있는가보다 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 앞에 있는 중풍병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도 구원받아야할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그로부터 중풍병을 치유하고 나니, 베드로는 자신이 왜 중풍병자를 치료하게 되었는지, 그 중풍병자가 왜 중한 병에서 8년만에 낫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먼저 그의 이름이 '애니아'였다. 범상치 않은 이름이다. 그 이름의 뜻이 '찬양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중풍병에 걸려 침상에 누워 지낸지도 벌써 8년째였다. 그리고 그를 치유할 때에, 성령으로 베드로의 입에서 예언적인 선포가 나왔다는 것을 아는가?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지금) 치료하신다. 그러니 너는 일어나라. 그리고 너는 네 자신을 펼쳐라(행9:34)"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네 자신을 펼쳐라"라는 말씀이다. 그는 해야 할 사명이 일찍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왜 그날 베드로를 만나 중풍병에서 치유받았는지는 그 다음 구절에 나온다. "(그가)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행9:35)" 그는 누군가에서 복음을 전파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는 부자였던 자였다. 중풍병으로 쓰러지려면 의학적으로 볼 때에 쇠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던 집안이지 아니면 아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많은 물질을 가지고서 그는 오직 자기의 배만 채우는데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널리 자랑하고 다녔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싫어했고 그가 중풍병에 쓰러저 침상에 누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래, 혼자만 잘 먹고 지내더니 잘 됐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는 사실 평판이 좋지 않았던 사람인듯 싶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드높이며 찬양하며 살아야 할 사명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선행과 구제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오직 자기의 배만을 위해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내셔서 그로 하여금 이제는 다른 인생을 살라 하신 것이다. 그가 예수의 이름으로 고침받기 전까지는 자기자신만을 위해 살았으나 이제는 주 예수님을 찬양하며 살라는 것이다. 그가 몸져 누워 있었을 때를 한 번 상상해보라. 날마다 빨리 죽고 싶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부활의 숫자인 8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시켜 그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셨다.

  그러자 그는 즉시 일어났고 자기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펼치게 되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재산을 선행과 구제에 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오직 주 예수님을 자랑하며 다녔다. 그는 자기가 살던 룻다지역을 떠나 심지어 북쪽지역에 위치한 사론평야지역까지 다니며 그 소식을 전했다. 그때 과거에 그 사람에 대해 알던 자들이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는 주께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왜 베드로가 애니아를 중풍병에서 낫게 하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다.

  우리는 베드로의 해안가 전도행전을 통해서 병든 사람을 어떻게 치유하는지를 알 수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질병을 치유하는 데에는 단 2가지 방법만을 사용하셨음을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접촉의 방법인데, 대부분 손으로 접촉하셨다. 병자의 머리나 환부에 안수하시고(막6:5, 눅13:12), 또한 침을 뱉어 흙에 이겨 손으로 바르기도 하셨다(요9:6~7, 막7:34, 막8:23). 또 하나는 명령하는 방법인데, 딱 3가지 방법이 사용되었다. 하나는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명령이셨고(막3:5), 또 하나는 간절히 바라는 자의 소원을 축복하시는 명령이었으며, 끝으로는 질병자체를 꾸짖으시는 명령의 방법을 사용하셨셨다(눅4:39). 이러한 방법은 사도들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런데 간절히 바라는 자의 소원을 축복하심으로 명령하실 때에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명령하셨는데(마9:29, 8:3), 이때에는 본인이 아니더라도 주변인의 소원이 강할 때에는 주님께서는 그 주변인의 믿음으로써 병든 자를 치유해 주셨다(마8:13, 마9:6, 막5:41).

  이것을 베드로의 '애니아'의 치유사건에 연결시켜 보자. 이때 베드로가 사용한 치유방법은 명령의 방법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명령으로 치유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경우에 주의 종들의 일방적인 선포로 병을 치유하는 것일까? 이런 경우는 대부분 그 자리에 모인 무리들로도 하여금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구원자가 되심과 또한 천국복음을 전파하실 때에, 보이지 않는 천국이 있다는 것을 듣는 자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할 때가 대부분이다. 즉 복음전파의 초기에는 주의 종으로 하여금 일방적으로 선포케함으로 병든 자를 치유케 하셨던 것이다. 예르를 들어, 회당에 한 쪽 손마른 자를 주님께서는 일방적으로 "네 손을 내밀라(막3:5)"하심으로 치료하셨다.

  또한 베드로는 욥바의 형제들의 요청을 받고 룻다에서 16~18Km 떨어진 욥바라는 항구도시를 방문했다. 그런데 거기에는 이미 죽어서 씻겨져 다락에 눕혀놓은 어느 여제자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때 베드로를 부르러 갔던 자들의 믿음이 놀라웠다. 당연히 죽던 날 시체를 매장해야 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다락에 누여놓고는 주의 종 베드로를 불러왔던 것이다. 그들은 베드로를 통해 그 여인이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그것은 죽은 다비다가 여러 과부들을 얼마나 잘 섬기고 보살폈는지 주변 과부들의 간증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주변인의 간절한 소원이 베드로에게 전달되어 베드로로 하여금 기적을 일으키게 한 것이다.

  그렇다. 성도들이여, 믿음이 있으면 중풍병자도 일어날 수 있고, 죽은 자도 살아날 수 있다. 굳이 자기자신의 믿음이 아니어도 좋다. 그 주변인들의 믿음이 절대적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동일하게 역사하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그녀는 분명히 죽어 있는 상태였지만 주변 과부들의 간절한 소원에 따라 그녀는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리고 믿음은 사용할수록 커지는 것 같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라. 먼저는 중풍병를 고쳤지만 이어 죽은 자도 살려내었다. 작은 것에라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라. 그리고 믿음으로 반응해보라. 그리고 복음전파의 목적을 가지고 명령해보라. 그러면 당신도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800_2015-03-11 사도행전강해(21).ts_001011348.jpg

 

 

 

 

 

 


  1. 2015-06-10 사도행전강해(34) 바울의 2차전도여행 중 고린도에서의 전도(행18:1~17)

    바울은 주저했다. 왜냐하면 이전에 복음을 전했던 아덴(아테네)에서 쓴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기 딴에는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다고 했지만 아덴에서 얻은 열매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전도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그 다음 도시인 ...
    Date2015.06.10 By갈렙 Views1436
    Read More
  2. 2015-06-03 사도행전강해(33)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의 바울의 변론적인 전도(행17:16~34)

    바울의 전도여행 가운데 가장 실망하고 그 도시를 떠나야 했던 도시가 있었다면 그 도시는 어디였을까? 그 도시는 다름 아닌 아덴(오늘날의 아테네)였다. 그 도시에서는 전도가 잘 안 되었기 때문이다. 왜 다른 도시에 비해 이 도시는 그렇게 전도가 안 되었던...
    Date2015.06.03 By갈렙 Views1413
    Read More
  3. 2015-05-27 사도행전강해(32) 바울일행의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전도(행17:1~15)

    복음을 전파할 때 과연 어떤 것이 최종적으로 열매를 맺게 하는 요인일까?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과연 어떤 자가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까? 하나님을 알되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가 열심을 품게 된다면 과연 어떤 열매를 맺는 것일까? 사도행전의 ...
    Date2015.05.27 By갈렙 Views1358
    Read More
  4. 2015-05-20 사도행전강해(31) 바울의 2차전도여행 중 빌립보성에서 일어난 일(행16;11~40)

    하려던 일이 꽉 막힐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뭔가를 해야 하는데 딱히 뭔가 손이 잡히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내가 원치도 않은 일인데 어려움이 계속해서 닥쳐올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일이 바울과 실라의 2차전도여행에서 일...
    Date2015.05.20 By갈렙 Views1454
    Read More
  5. 2015-05-13 사도행전강해(30) 바울의 2차전도여행시작과 마케도냐인의 환상(행15:36~16:10)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역시 하나님이신 것 같다(잠16:9). 사도바울의 전도여행을 보면 그렇다. 사울은 1차전도여행을 마친 후에 주의 말씀을 전했던 각 도시들을 다시 돌아보기를 원했다. 그래서 2차전도여행을...
    Date2015.05.13 By갈렙 Views1542
    Read More
  6. 2015-05-06 사도행전강해(29) 이방인신자 할례문제에 대한 예루살렘 공회의의 결의(행15:1-35)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구원받는 방법은 동일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A.D.49년경 최초의 교회회의였던 예루살렘공의회는 이 문제에 대한 확실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때까지만해도 유대인이면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은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
    Date2015.05.06 By갈렙 Views1225
    Read More
  7. 2015-04-29 사도행전강해(28) 바울일행의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전도(행14:1~28)

    바울은 처음부터 복음전파를 잘 하던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설교도 잘 하던 사람이었을까? 아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도 아주 서투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초기사역에는 열매도 없었다. 하지만 이것에 굴하지 않고 또 부딪혔다. 그리고 또...
    Date2015.04.29 By갈렙 Views1282
    Read More
  8. 2015-04-22 사도행전강해(27)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복음사역과 그 결과(행13:13~52)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의 자세는 어떤 자세여야 할까? 그리고 복음을 전파할 때에는 무엇을 중점적으로 전해야 하는가? 그리고 복음을 전파할 대상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그리고 오늘날 예배의 순서는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그것은...
    Date2015.04.22 By갈렙 Views1601
    Read More
  9. 2015-04-15 사도행전강해(26) 안디옥교회의 파송과 구브로지역에서의 선교사역(행13:1~12)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가운데 주신 직책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리고 전도사역을 감당할 때 사탄의 방해공작과 맞물려 전도자가 꼭 주의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예루살렘교회를 중심으로 한 유대인과 ...
    Date2015.04.15 By갈렙 Views1341
    Read More
  10. 사도행전강해(25)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탈옥(행12:1~25)_2015-04-08(수)

    오늘 우리는 두 명의 사도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 명의 사도는 그 시기에 순교를 당했지만 다른 한 명의 사도는 탈출하여 목숨을 건지게 된다. 무엇 때문에 그런 차이가 난 것일까? 그들은 바로 요한의 형 야고보와 안드레의 형 베드로였다. 똑같이 둘...
    Date2015.04.08 By갈렙 Views1687
    Read More
  11. 사도행전강해(24) 베드로의 설교와 안디옥교회의 탄생(행11:1~30)_2015-04-01(수)

    오늘날 기독교인이라 하면 대부분 이방인이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통한다. 왜냐하면 유대인이면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s)라고 불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역사를 보면, 맨 처음 교회의 ...
    Date2015.04.01 By갈렙 Views1373
    Read More
  12. 사도행전강해(23) 이방인 고넬료의 회심(2)-베드로의 설교와 성령강림(행10:24~48)_2015-03-25(수)

    사도행전에 기록된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극적인 장면을 고르라고 한다면, 우리는 단연코 사도행전 2장의 유대인들을 향한 최초의 오순절성령강림사건과 사도행전 10장의 이방인들을 향한 최초의 고넬료가정의 성령강림사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
    Date2015.03.25 By갈렙 Views1709
    Read More
  13. 사도행전강해(22) 이방인 고넬료의 회심(1)- 두 개의 환상(행10:1~23)

    결코 허물어지기가 어려웠던 두터운 장벽, 유대인과 헬라인의 장벽 즉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장벽은 견고했다. 무려 1,500년 동안 그것은 그렇게 세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허물어질 때가 되었다. 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
    Date2015.03.18 By갈렙 Views1322
    Read More
  14. 사도행전강해(21) 베드로의 전도행전(행9:32~43)

    복음전파는 어떻게 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복음전파시 효과적인 전도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또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힘입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 특히 병든 자를 치유할 때에는 어떻게 행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오늘...
    Date2015.03.11 By갈렙 Views1587
    Read More
  15. 사도행전강해(20) 사울의 변화된 행보(행9:20~31)

    지금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계신 영역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상속받도록 예정된 사람들 즉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인간들이 지옥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구원받는 것이다. 사실 천사들은 하나님과 ...
    Date2015.02.25 By갈렙 Views1492
    Read More
  16. 사도행전강해(19) 사탄의 종이었던 사울의 회심(행9:1~19)_부제: "누가 과연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누가 과연 사울을 바울로 만들었을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사울이 바울이 된 데에는 오직 하나님뿐이었을까? 아니다. 거기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신구약성경을 통틀어서 가장 역사적인 장면을 하나 고르...
    Date2015.02.11 By갈렙 Views1303
    Read More
  17. 사도행전강해(18) 빌립집사의 이디오피아 내시 전도(행8:26~40)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주님이 원하시는 순종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오늘 본문에는 이러한 질문을 다시 던져보게 하는 한 사람에 ...
    Date2015.02.04 By갈렙 Views1147
    Read More
  18. 사도행전강해(17) 사마리아까지 전파된 복음(행8:4~25)

    (부제: 사마리아 사람들이 비록 복음을 듣고 믿어 세례까지 받았지만 왜 그들에게는 성령의 선물들이 하나도 나타나지 아니했던 것일까?) 예루살렘교회에 대한 핍박으로 사방으로 흩어진 성도들 가운데 하나였던 빌립집사, 그는 예루살렘교회가 세운 일곱집사 ...
    Date2015.01.28 By갈렙 Views1154
    Read More
  19. 사도행전강해(16)스데반의 순교와 대대적인 교회박해(행7:54-8:3)

    그리스도인의 죽음 가운데는 고귀한 죽음이라 불리울 수 있는 죽음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곧 순교(殉敎)다. 그렇다면 당신은 순교라는 것이 과연 어떤 죽음을 가리키는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가? 그리고 순교의 순간에는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도 생각해 보...
    Date2015.01.21 By갈렙 Views1685
    Read More
  20. 사도행전강해(15) 스데반의 놀라운 변증적 설교(2)(행7:17~53)

    성경을 통틀어 과연 이만한 집사가 어디 있을까? 그는 바로 스데반집사이다. 그는 만 명 이상이 모인 예루살렘교회에서 성도들의 택함을 받아 집사가 된 사람이다. 그가 믿음과 성령이 충만했을 뿐만 아니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
    Date2015.01.14 By갈렙 Views123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 30 Next
/ 30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