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처음부터 복음전파를 잘 하던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설교도 잘 하던 사람이었을까? 아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도 아주 서투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초기사역에는 열매도 없었다. 하지만 이것에 굴하지 않고 또 부딪혔다. 그리고 또 시도하였다. 그러자 그는 점차 복음전파를 잘 하는 사람으로 탈바꿈되어갔으며, 이윽고 말씀도 잘 전하는 사람이 되었.
사실 그는 유대인들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갈2:8). 하지만 그의 초기의 복음전파사역을 쭉 들여다보면, 그는 처음부터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지 못했고 오히려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 즉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었다. 하지만 그는 점차적으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음전파자가 될 수 있었고,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교도 썩 잘 하는 전도자가 될 수 있었다. 그것도 오직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들을 많이 얻게 된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른 사람이 없다"는 우리나라의 속담처엄, 처음에는 그 결과가 빈약하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다 보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제는전문가로 만들어 사용하시는 것 같다.
사도행전14장은 바울의 제1차전도여행(A.D.47~49년) 가운데 후반부에 해당되는 전도사역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에 전반부는 사도행전13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사역의 중심축은 비시디아 안디옥이었다. 마찬가지로 후반부 복음전파사역의 중심축은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였다. 바울의 맨 처음 복음전파는 헬라파유대인들에게 한 것으로 대부분 각 지역에 있는 회당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루스드라에 이르러서 바울은 처음으로 회당이 아닌 개방적인 공공장소에서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으며, 유대인이 아닌 순수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바울도 직접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미적거린 것도 있었다. 하지만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면서 바울은 이방인들에게는 과연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터득할 수 있었다. 즉 그는 헬라파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서와 선지서에 기록된 메시야를 시작으로 복음을 전파했고, 이방인들에게게는 자연만물을 통한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함으로써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누구든지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도하다보면, 언젠가는 그와 비릇한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며, 나중에는 전혀 생소한 것이라고 잘 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에 결과물이 시원치 않다고 결코 실망하지 말라. 바울도 그의 첫 선교지였던 구브로의 살라미에서 그 어떤 결과물도 얻지 못했음을 기억하라. 하지만 그는 점차 사람들을 하나씩 둘씩 얻기 시작하였고, 나중에 가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목회자들 사이에서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다. "천사가 목회해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고, 악마가 목회를 해도 찬성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고 말이다. 유대인들의 지나친 국수주의와 편협한 사고방식에 따라 수많은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원수로 행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울이 복음을 전하러 가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방해했으며, 그곳에 사는 이방인들까지 선동하여 합세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시도했다. 귀를 틀어막고 복음듣기를 거부하자 그들은 결국 다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자들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훗날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대놓고 가로막는 장본인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 조금 시야를 바꾸어 루스드라의 기적적인 치유사건을 살펴보자. 루스드라는 회당이 없는 몇 안 되는 도시였다. 아마도 유대인들의 활동이 미미했거나 거의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므로 바울일행은 성문어귀에서 서서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나가는 행인들과는 달리 바울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주목하고 있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로서 동네거지였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었고 바울의 지시에 따라 벌떡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걷기 시작했다. 너무나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루스드라 성 사람들이 요동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고서는 도무지 가능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도시에는 뼈아픈 전설도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이 그 도시에 사람으로 모양으로 내려왔는데, 가난한 노부부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을 몰라본 까닭에, 두 신들이 화가나서 그 도시에 홍수를 보내어 다 멸망시켜버렸다는 전설이 회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루스드라 사람달은 이번만큼은 신을 소홀히 대접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성밖에 있는 제사장들에게 기별을 하여 바나바와 바울에게 제사하게금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바울일행은 그들 앞에서 자기들의 겉옷을 찢어가며 그 일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것을 그들에게 말했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 가운데 히브리인들 즉 이스라엘 백성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민족도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는 종족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루스드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바나바와 바울을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으로 숭배하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신이 아닌 피조물인 사람을 신으로 숭배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바울은 그런 행위야말로 헛된 일인 것을 분명히 가르쳐주었으며, 그날 선천성 장애인이 낫게 된 것은 오직 천지만물을 창조후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싸인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이방인들로 가득차 있던 그 도시로부터 한 사람을 얻게 되니 그가 바로 '디모데'였다(딤후3:11, 행16:1~3). 비록 디모데는 외할머니도 유대인이었고 어머니도 유대인이었지만 그는 헬라인처럼 그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할례도 받지 아니하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바울은 맨 먼저 그를 할례받도록 하였으며, 제2차전도여행을 할 때에는 그를 전도팀에 합류시켜주기도 했다. 그를 아예 아들처럼 훈련시킨 것이다.
하지만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까지 쫓아왔던 골수분자 유대인들이 이번에는 이방인의 도시였던 루스드라까지 쳐들어 와서는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돌로 쳐버렸다. 바울은 그때 돌을 맞고서 쓰러지고 말았다. 순간 의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골수 유대인들은 그를 죽은 줄 알고, 그를 메어다가 성밖에 던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다시 일어나 의식을 회복하였고 그 다음날까지 치료를 받고는 곧바로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도자의 삶이다. 그렇다. 전도자는 자신의 사명이 끝날 때까지 결코 죽지 않는다. 남들이 죽이려도 해도 죽지 않게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거나 다시 소생의 복을 내리시는 것이다. 그러니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자들이여, 두려워 하지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라.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