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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6038JrHiBsA
날짜 2022-07-20
본문말씀 요한복음 1:19~51(신약 143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세례요한의신분,세례요한의사역,세례요한의제자들,예수님의첫제자들,안드레와요한,베드로,빌립과나다나엘

2022-07-20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복음강해(07) 세례요한의 증언 및 예수님의 갈릴리의 제자들(요1:19~5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6038JrHiBsA

1. 들어가며

  요한복음은 어떤 책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지난 여섯 차례에 걸쳐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요한복음의 독자들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저자인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사도 요한이 흔들리고 있는 독자들을 위하여 이 책을 기술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원인은 2가지였다. 하나는 유대인들에 의한 핍박이었다. 그것은 여호와만이 유일한 신(하나님)으로 고백해야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시인하면 출교 조치를 당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초기 영지주의자들의 미혹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만을 인정한 채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 부인하는 고도의 이단이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의 서막(1:1~18)에서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처방을 우선 내리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1장의 나머지 부분(1:19~51)을 통해 우리는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공부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알려 주어 그분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고 기술했다고 저자가 쓰고 있기 때문이다(요20:31). 그래서 이번 시간과 다음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 1:19~51절 사이에서 12가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의 배경이 되는 부분 곧 세례 요한의 신분과 증언 그리고 예수께서 선택하셨던 첫 제자 5명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세례 요한의 정체성과 겸손함을 그리고 첫 제자를 선택하는 과정에 드러난 예수님의 신성의 어떠함과 부르심의 비밀을 공부하게 될 것이다. 

 

2. 요한복음 서막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의 서막(1:1~18)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그것은 크게 보면 2가지다. 하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 앞의 부분(1~9절)은 유대인들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성도들에게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말씀하는 것이며, 뒤의 부분(10~18절)은 예수께서 육신을 입지 않으셨다는 초기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흔들리고 있는 성도들에게 예수께서는 육신을 가진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말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여섯 번의 시간을 통하여 요한복음의 서막의 배경이 되는 역사를 공부했으며, 이어서 요한복음의 서막에서 말씀하는 바 곧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해 공부했다.

  요한복음 서막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4가지로 소개한다. 첫째로, 로고스(말씀) 하나님으로 소개한다(1~2절). 그리고 모든 만물 또한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었다고 언급함으로 예수님을 창조주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3절). 둘째로 말씀이자 하나님이신 예수 안에는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이 있으며 이것이 세상에 들어와 비출 때에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참 빛'이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4~5절,9절). 그러므로 만약 사람이 생명을 얻으려면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빛' 곧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빛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알려 주려고 먼저 먼저 온 이가 바로 세례 요한이다(6~8절,15절). 그래서 세례 요한은 빛이 아니라 빛을 비추는 등불이라고 주님이 말씀해 주셨던 것이다(요5:35). 셋째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셨다고 소개한다(14절). 그리하여 볼 수 없는 하나님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18절). 다시 말해 예수님은 나타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18절). 그것도 인류의 속죄를 위해 사람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장막을 치셨다는 것이다(14절). 넷째로, 이어서 사도 요한은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을 통하여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진리와 실제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고 소개한다(17절).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서막의 핵심 내용들이다.

 

3. 세례 요한은 누구이며 그는 자신의 사역을 어떻게 소개했는가?

  세례 요한, 그는 누구인가? 그는 제사장의 아들이자 선지자인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정체성은 그가 누군지를 물으러 찾아온 자들에 의해 소상히 밝혀지게 된다. 그럼, 그가 누군지를 물으러 보낸 자들은 대체 누구였는가? 그들은 겉으로는 유대인들이나(19절) 실제는 유대 종교지도자들로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였다(23절).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흔들고 있는 세례 요한이 그저 싫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행동에 대해 어떤 제 조치를 취하기 위하여 전문가들을 파송한 것이다. 그러자 그들이 와서 세례 요한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그리스도인가? 엘리야인가(말3:1,4:5~6, 왕하1:8), 아니면 모세가 말했던 바로 그 선지자인가?(신18:15)"라고 물었다. 그런데 그때 세례 요 전부 아니라고 감추지 않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때 상황은 대체 어떤 상황이었는가? 모든 유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로 알고 있었던 때였다. 그리고 그가 유대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며 또한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자, 수많은 예루살렘과 유대 사람들이 그에게로 몰려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까지 가서 세례를 받는 판국이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교만하지도 않았고 거만하지도 않았다. 모두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렇지만 가 죽고 난 뒤에 예수께서는 그를 가리켜 "오리라 한 엘리야"라고 그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다고 했다(마11:14, 17:12~13).

  그럼, 왜 세례 요한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모세가 말한 그 선지자가 아니었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소개하도록 먼저 보내준다고 예언된 엘리야였음에도 불구하고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는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말했던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너 자신은 너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답이 들어 있다. 그때 그는 다만 자신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다만 자신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드러내어 소개하기 위해 온 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그는 겸손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오로지 예수님만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며칠 뒤에 세례 요한은 자신을 따르고 있는 자기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이것 때문에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31절)" 그렇다. 그는 대체 왜 회개를 외쳤고 또한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는가? 그 이유는 그가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선행위였던 것이다(31절). 그래서 어느 날 성령이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볼 때에 그는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 당국자들이 왜 세례를 주는지 물어 보았을 때에 그는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자기 뒤에 그들이나 자기도 알지(직관적으로) 못하는 분이 올 터인데, 자기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합당하지 않는 자라 말했던 것이다(26~27절). 이는 예수님은 장차 성령과 불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실 분이었기 때문이다(33절).

 

4.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사람은 누구였는가?

  세례 요한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인물이었음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제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죽은 다음에도 그러한 세력은 없어지지 않고 한동안 유지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그의 영성은 매우 뛰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그가 행한 것을 살펴보면 그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났으며 또한 그때도 세례를 주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예수님을 메시야로서 세상에 소개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메시야의 선구자로서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자였던 것이다(말3:1, 4:5~6). 그러므로 그는 그 일을 위해 30년을 준비해 왔고 때가 되을 때에 그 일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분을 발견하게 되자,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분을 소개한 뒤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게 된다. 심지어 자신의 제자들에게까지 그분을 따라갈 것을 간접적으로 권면하게 된다(29,31절).

  그런데 그때 두 명의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가게 된다. 그렇다면 이 두 명의 제자는 대체 누구며, 이들의 행위는 배신의 행위인가 아니면 잘한 행위인가? 먼저 이 책의 저자는 이 두 명의 제자들 중 한 명의 이름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바로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였다(40절). 그리고 한 명의 이름은 일부러 감추어 버린다. 그것은 그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자신의 이름을 감추는 것은 끝까지 계속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바로 사도 요한이라는 것을 여러 정황을 통해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만났던 그들은 예수님이 머물러 계시는 곳에 가서 그분을 만나서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눈다(39절). 이들의 선택은 자신의 스승을 배신한 행위인가 아니면 그것은 필연적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두 명의 제자가 예수님의 계신 데로부터 다시 돌아오는데, 그때 안드레는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기의 친형을 찾아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그를 데리고 예수님에게 온 것이다(41~42절). 그렇다면 이때 안드레는 그가 행한 일이 장차 얼마나 중요한 일이 될 것인지를 미리 알고 그렇게 한 것인가? 아마도 그러지는 않았으리라고 본다. 그것은 그가 그토록 찾 헤매던 메시야를 이제 직접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 그분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분을 자신의 친형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예수께로 나아오고 있는 베드로를 향하여 주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42절)". 그렇다면 예수님은 과연 안드레 친형의 이름과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으며, 왜 그에게 반석(베드로)이라는 별명을 지어 준 것인가?

 

5. 예수께서는 어떻게 빌립과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르시고 취하셨는가? 

  이어 우리는 다음의 장면을 통해서 위의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안드레와 베드로 한 동네였던 벳새다 사람인 빌립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자신의 친구인 나다나엘을 부르셨던 장면을 통해서,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날이었다. 예수께서 이제 갈릴리로 가시려던 찰나였다. 그때 예수께서는 벳새다 사람인 빌립을 보셨다. 그리고 그는 그를 제자로 부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43절)". 그런데 빌립도 역시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즉시 자신의 가까운 친구인 나다나엘('바돌로매'와 동일인)을 찾아가서 구약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바로 그 메시야를 만났다고 소개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45절) 그렇면 왜 빌립은 자신의 친구 나다나엘에게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을 했던 것인가? 그것은 나다나엘이라고 하는 친구가 율법 공부벌레였기 때문이다. 빌립이 그를 부르러 갈 때까지 그는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통하여 메시야가 누군지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미 메시야의 선구자로서 세례 요한이 와 있었고 또한 그때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아마 세례 요한이 그의 스승이었을른지도 모른다). 그런데 빌립의 마지막 한 마디의 말이 그를 실망시키고 말았다. "요셉의 아들 나사렛 사람 예수이니라"(45절). 이는 메시야가 나사렛 출신이라는 말에 그만 부딪혔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 미가서 5:2의 말씀에 따르면, 메시야는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이것을 푸는 비밀은 다음 시간에 배우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빌립은 어찌 되었든 한 번 "와서 보라"고 하면서 그를 강권하여 예수님께로 데려간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를 보시자마자 대뜸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의 속에 간사함(교활함, 간교함)이 없도다"(47절)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나다나엘은 깜짝 놀라서 말한다. '당신이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그러자 주님은 말씀하신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다"(48절). 그러자 나다나엘은 자신이 과거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금 알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한다. "랍비여(율법 선생이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49절). 그러자 주님은 그에게 앞으로 놀라운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알려 준다.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고 말하므로 네가 믿느냐? 앞으로는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을 보게 될 것이다."(50절).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고 거듭 말씀하신다. 대체 예수께서는 나다나엘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어떻게 아셨던 것일까? 천리안이라 지니시고 있었던 것인가?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처음 5명의 제자들을 갈릴리 사람들에게서 불러내시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부르심'에 관하여 잠깐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적어도 오늘 다루는 것은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 천국복음 전파를 위하여 아예 처음부터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보다 더 성숙한 영의 나이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의 영적인 욕구는 대단하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가 아는 것이 있을 때에 그것을 자기만 알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를  알고자 하는 열심도 또한 감출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무엇보다도 영적인 이야기를 한 마디만 들어도 금방 깨우쳐 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다나엘의 신앙고백은 결코 지니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없다(49절). 이는 베드로의 경우도 같다. 예수께서 직접 베드로의 영혼을 창조해서 그의 어머니의 모태의 자궁 속에 넣어 주셨기에, 예수께서는 이미 그의 아버지의 이름도 알고 있었으며 그의 이름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게 될 것을 아셨기에 예수께서는 그를 만나자마자 또한 그의 별명을 '반석'이라고 지어 주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안드레와 요한이 세례 요한의 제자였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필연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나오며

  메시야의 선구자적인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던 세례 요한, 그는 대체 어떠한 삶을 살다 갔는가? 오늘까지의 말씀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걸어갈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걸어갔다. 또한 누구를 감추고 누구를 드러내야 할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심지어 자신의 제자들마저 예수님에게 인수 인계하려고 하였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사명에 충실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예수님의 사도가 되어 천국복음을 이 땅에 전파해야 할 제자들의 부르심은 정말 어떠하겠는가? 제자가 되는 일이 우연히 발생하겠는가? 아니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겠는가?(요15:16) 그리고 안드레에게 형제로서 친형 베드로가 있었다는 사실과 빌립에게 자신의 가까운 친구로서 나다나엘이 있었다는 것은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 중에는 가족과 친족 그리고 친구로서 같이 이 땅에 태어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구약 시대 출애굽의 영도자였던 모세를 보라. 그의 형은 제사장 아론이었고 그의 누나는 선지자 미리암(헬라어는 '마리아')이지 않았던가! 안배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는 과연 어떤 하나님의 안배가 나와 내 주변에 있는 것인가? 우리는 그냥 대충 세상을 살아가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내가 어떤 존재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는지, 그리고 내가 이 땅에 태어나서 어떤 존재로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첫 갈릴리의 5명의 제자들을 통하여 배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2022년 07월 20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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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2.07.21 21:59

    1. 들어가며

      요한복음은 어떤 책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지난 여섯 차례에 걸쳐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요한복음의 독자들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저자인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사도 요한이 흔들리고 있는 독자들을 위하여 이 책을 기술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원인은 2가지였다. 하나는 유대인들에 의한 핍박이었다. 그것은 여호와만이 유일한 신(하나님)으로 고백해야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시인하면 출교 조치를 당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초기 영지주의자들의 미혹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만을 인정한 채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 부인하는 고도의 이단이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의 서막(1:1~18)에서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처방을 우선 내리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1장의 나머지 부분(1:19~51)을 통해 우리는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공부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알려 주어 그분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고 기술했다고 저자가 쓰고 있기 때문이다(요20:31). 그래서 이번 시간과 다음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 1:19~51절 사이에서 12가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의 배경이 되는 부분 곧 세례 요한의 신분과 증언 그리고 예수께서 선택하셨던 첫 제자 5명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세례 요한의 정체성과 겸손함을 그리고 첫 제자를 선택하는 과정에 드러난 예수님의 신성의 어떠함과 부르심의 비밀을 공부하게 될 것이다. 

     

    2. 요한복음 서막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의 서막(1:1~18)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그것은 크게 보면 2가지다. 하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 앞의 부분(1~9절)은 유대인들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성도들에게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말씀하는 것이며, 뒤의 부분(10~18절)은 예수께서 육신을 입지 않으셨다는 초기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흔들리고 있는 성도들에게 예수께서는 육신을 가진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말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여섯 번의 시간을 통하여 요한복음의 서막의 배경이 되는 역사를 공부했으며, 이어서 요한복음의 서막에서 말씀하는 바 곧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해 공부했다.

      요한복음 서막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4가지로 소개한다. 첫째로, 로고스(말씀) 하나님으로 소개한다(1~2절). 그리고 모든 만물 또한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었다고 언급함으로 예수님을 창조주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3절). 둘째로 말씀이자 하나님이신 예수 안에는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이 있으며 이것이 세상에 들어와 비출 때에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참 빛'이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4~5절,9절). 그러므로 만약 사람이 생명을 얻으려면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빛' 곧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빛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알려 주려고 먼저 먼저 온 이가 바로 세례 요한이다(6~8절,15절). 그래서 세례 요한은 빛이 아니라 빛을 비추는 등불이라고 주님이 말씀해 주셨던 것이다(요5:35). 셋째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셨다고 소개한다(14절). 그리하여 볼 수 없는 하나님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18절). 다시 말해 예수님은 나타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18절). 그것도 인류의 속죄를 위해 사람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장막을 치셨다는 것이다(14절). 넷째로, 이어서 사도 요한은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을 통하여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진리와 실제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고 소개한다(17절).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서막의 핵심 내용들이다.

     

    3. 세례 요한은 누구이며 그는 자신의 사역을 어떻게 소개했는가?

      세례 요한, 그는 누구인가? 그는 제사장의 아들이자 선지자인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정체성은 그가 누군지를 물으러 찾아온 자들에 의해 소상히 밝혀지게 된다. 그럼, 그가 누군지를 물으러 보낸 자들은 대체 누구였는가? 그들은 겉으로는 유대인들이나(19절) 실제는 유대 종교지도자들로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였다(23절).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흔들고 있는 세례 요한이 그저 싫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행동에 대해 어떤 제 조치를 취하기 위하여 전문가들을 파송한 것이다. 그러자 그들이 와서 세례 요한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그리스도인가? 엘리야인가(말3:1,4:5~6, 왕하1:8), 아니면 모세가 말했던 바로 그 선지자인가?(신18:15)"라고 물었다. 그런데 그때 세례 요 전부 아니라고 감추지 않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때 상황은 대체 어떤 상황이었는가? 모든 유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로 알고 있었던 때였다. 그리고 그가 유대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며 또한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자, 수많은 예루살렘과 유대 사람들이 그에게로 몰려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까지 가서 세례를 받는 판국이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교만하지도 않았고 거만하지도 않았다. 모두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렇지만 가 죽고 난 뒤에 예수께서는 그를 가리켜 "오리라 한 엘리야"라고 그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다고 했다(마11:14, 17:12~13).

      그럼, 왜 세례 요한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모세가 말한 그 선지자가 아니었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소개하도록 먼저 보내준다고 예언된 엘리야였음에도 불구하고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는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말했던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너 자신은 너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답이 들어 있다. 그때 그는 다만 자신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다만 자신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드러내어 소개하기 위해 온 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그는 겸손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오로지 예수님만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며칠 뒤에 세례 요한은 자신을 따르고 있는 자기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이것 때문에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31절)" 그렇다. 그는 대체 왜 회개를 외쳤고 또한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는가? 그 이유는 그가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선행위였던 것이다(31절). 그래서 어느 날 성령이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볼 때에 그는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 당국자들이 왜 세례를 주는지 물어 보았을 때에 그는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자기 뒤에 그들이나 자기도 알지(직관적으로) 못하는 분이 올 터인데, 자기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합당하지 않는 자라 말했던 것이다(26~27절). 이는 예수님은 장차 성령과 불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실 분이었기 때문이다(33절).

     

    4.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사람은 누구였는가?

      세례 요한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인물이었음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제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죽은 다음에도 그러한 세력은 없어지지 않고 한동안 유지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그의 영성은 매우 뛰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그가 행한 것을 살펴보면 그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났으며 또한 그때도 세례를 주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예수님을 메시야로서 세상에 소개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메시야의 선구자로서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자였던 것이다(말3:1, 4:5~6). 그러므로 그는 그 일을 위해 30년을 준비해 왔고 때가 되을 때에 그 일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분을 발견하게 되자,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분을 소개한 뒤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게 된다. 심지어 자신의 제자들에게까지 그분을 따라갈 것을 간접적으로 권면하게 된다(29,31절).

      그런데 그때 두 명의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가게 된다. 그렇다면 이 두 명의 제자는 대체 누구며, 이들의 행위는 배신의 행위인가 아니면 잘한 행위인가? 먼저 이 책의 저자는 이 두 명의 제자들 중 한 명의 이름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바로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였다(40절). 그리고 한 명의 이름은 일부러 감추어 버린다. 그것은 그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자신의 이름을 감추는 것은 끝까지 계속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바로 사도 요한이라는 것을 여러 정황을 통해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만났던 그들은 예수님이 머물러 계시는 곳에 가서 그분을 만나서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눈다(39절). 이들의 선택은 자신의 스승을 배신한 행위인가 아니면 그것은 필연적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두 명의 제자가 예수님의 계신 데로부터 다시 돌아오는데, 그때 안드레는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기의 친형을 찾아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그를 데리고 예수님에게 온 것이다(41~42절). 그렇다면 이때 안드레는 그가 행한 일이 장차 얼마나 중요한 일이 될 것인지를 미리 알고 그렇게 한 것인가? 아마도 그러지는 않았으리라고 본다. 그것은 그가 그토록 찾 헤매던 메시야를 이제 직접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 그분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분을 자신의 친형에게 소개해 주싶어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예수께로 나아오고 있는 베드로를 향하여 주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42절)". 그렇다면 예수님은 과연 안드레 친형의 이름과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으며, 왜 그에게 반석(베드로)이라는 별명을 지어 준 것인가?

     

    5. 예수께서는 어떻게 빌립과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르시고 취하셨는가?

      이어 우리는 다음의 장면을 통해서 위의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안드레와 베드로 한 동네였던 벳새다 사람인 빌립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자신의 친구인 나다나엘을 부르셨던 장면을 통해서,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날이었다. 예수께서 이제 갈릴리로 가시려던 찰나였다. 그때 예수께서는 벳새다 사람인 빌립을 보셨다. 그리고 그는 그를 제자로 부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43절)". 그런데 빌립도 역시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즉시 자신의 가까운 친구인 나다나엘('바돌로매'와 동일인)을 찾아가서 구약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바로 그 메시야를 만났다고 소개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45절) 그렇면 왜 빌립은 자신의 친구 나다나엘에게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을 했던 것인가? 그것은 나다나엘이라고 하는 친구가 율법 공부벌레였기 때문이다. 빌립이 그를 부르러 갈 때까지 그는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통하여 메시야가 누군지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미 메시야의 선구자로서 세례 요한이 와 있었고 또한 그때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아마 세례 요한이 그의 스승이었을른지도 모른다). 그런데 빌립의 마지막 한 마디의 말이 그를 실망시키고 말았다. "요셉의 아들 나사렛 사람 예수이니라"(45절). 이는 메시야가 나사렛 출신이라는 말에 그만 부딪혔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 미가서 5:2의 말씀에 따르면, 메시야는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이것을 푸는 비밀은 다음 시간에 배우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빌립은 어찌 되었든 한 번 "와서 보라"고 하면서 그를 강권하여 예수님께로 데려간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를 보시자마자 대뜸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의 속에 간사함(교활함, 간교함)이 없도다"(47절)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나다나엘은 깜짝 놀라서 말한다. '당신이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그러자 주님은 말씀하신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다"(48절). 그러자 나다나엘은 자신이 과거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금 알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한다. "랍비여(율법 선생이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49절). 그러자 주님은 그에게 앞으로 놀라운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알려 준다.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고 말하므로 네가 믿느냐? 앞으로는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을 보게 될 것이다."(50절).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고 거듭 말씀하신다. 대체 예수께서는 나다나엘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어떻게 아셨던 것일까? 천리안이라 지니시고 있었던 것인가?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처음 5명의 제자들을 갈릴리 사람들에게서 불러내시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부르심'에 관하여 잠깐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적어도 오늘 다루는 것은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 천국복음 전파를 위하여 아예 처음부터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보다 더 성숙한 영의 나이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의 영적인 욕구는 대단하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가 아는 것이 있을 때에 그것을 자기만 알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를 알고자 하는 열심도 또한 감출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무엇보다도 영적인 이야기를 한 마디만 들어도 금방 깨우쳐 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다나엘의 신앙고백은 결코 지니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없다(49절). 이는 베드로의 경우도 같다. 예수께서 직접 베드로의 영혼을 창조해서 그의 어머니의 모태의 자궁 속에 넣어 주셨기에, 예수께서는 이미 그의 아버지의 이름도 알고 있었으며 그의 이름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게 될 것을 아셨기에 예수께서는 그를 만나자마자 또한 그의 별명을 '반석'이라고 지어 주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안드레와 요한이 세례 요한의 제자였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필연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나오며

      메시야의 선구자적인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던 세례 요한, 그는 대체 어떠한 삶을 살다 갔는가? 오늘까지의 말씀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걸어갈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걸어갔다. 또한 누구를 감추고 누구를 드러내야 할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심지어 자신의 제자들마저 예수님에게 인수 인계하려고 하였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사명에 충실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예수님의 사도가 되어 천국복음을 이 땅에 전파해야 할 제자들의 부르심은 정말 어떠하겠는가? 제자가 되는 일이 우연히 발생하겠는가? 아니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겠는가?(요15:16) 그리고 안드레에게 형제로서 친형 베드로가 있었다는 사실과 빌립에게 자신의 가까운 친구로서 나다나엘이 있었다는 것은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 중에는 가족과 친족 그리고 친구로서 같이 이 땅에 태어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구약 시대 출애굽의 영도자였던 모세를 보라. 그의 형은 제사장 아론이었고 그의 누나는 선지자 미리암(헬라어는 '마리아')이지 않았던가! 안배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는 과연 어떤 하나님의 안배가 나와 내 주변에 있는 것인가? 우리는 그냥 대충 세상을 살아가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내가 어떤 존재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는지, 그리고 내가 이 땅에 태어나서 어떤 존재로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첫 갈릴리의 5명의 제자들을 통하여 배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2022년 07월 20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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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언기자는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있다고 말했다(잠18:21). 그런데 이와 비슷한 말이 야고보서에도 등장한다. 그는 어느 누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는 자신의 말과 지혜를 통하여 자기가 올바른 믿음 안에 서 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고 ...
    Date2022.04.20 By갈렙 Views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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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야고보서강해(03)이웃사랑 계명 실천과 행함 없는 믿음의 허구와 실상(약2;1~26)_2022-04-06(수)

    왜 성도들은 이웃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는가? 과연 믿음만 붙들고 있어도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으며, 구원을 받아서 장차 천국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인가? 우리는 오늘 야고보서 2장과 마주 대하...
    Date2022.04.06 By갈렙 Views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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