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9(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부활체의 신비(01)] 장차 우리가 받을 놀라운 부활체의 영광은 어떤 것인가?(고전15:40~4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정병진)목사
https://youtu.be/O0GL_0LC8so [또는 https://tv.naver.com/v/35305689]
1. 들어가며
'부활'이란 죽은 자가 일어서는 것 혹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죽은 자'란 죄를 지은 사람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아담과 함께 범죄에 참여했으며 그리하여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고로 '죽은 자의 부활'은 곧 죄인이 부활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부활은 '육체'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인가 아니면 '영'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인가? 그것은 영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부활은 죽은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가리키지 않고, 죽은 자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똑같은 죄인이라 할지라도 어떤 자는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는 이도 있고, 또 어떤 자는 '심판의 부활'에 참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요5:29).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딴 부활을 경험하게 되는 것인가? 그리고 사람이 부활의 몸을 입을 때에, 변화된 부활의 몸은 대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사도 바울은 부활의 몸에 관하여 언급할 때에, 왜 다 똑같은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영광에 참여한다고 언급하였는가? 그리고 더 좋은 부활에 이르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의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사람은 누구든지 죽은 후에 다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 이는 영이 변화되어 몸을 입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그 사람이 신자이든지 불신자들이든지 상관없이 다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여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심판의 부활에 참여하여, 자신이 지은 죄값에 따라 영원한 형벌을 받기도 한다. 그러면 누가 과연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며, 누가 과연 '심판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인가? 우리 주 예수께서는 우선 그 사람 안에 죄가 없고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가 생명의 부활에 참여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사람 안에 여전히 죄가 있고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심판의 부활에 참여한다고 하셨다(요5:29).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죄사함을 받는 일이며, 자신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일평생을 살아가면서도 죄사함을 얻지 못하고 또한 하나님의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죽은 후에 심판의 부활에 참여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불못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 육안으로는, 어떤 사람이 과연 죄사함을 받은 자인지 그리고 그 사람 안에 생명이 있는지를 잘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달걀이 있는데, 겉만 볼 때에는 그 달걀이 과연 무정란인지 혹은 유정란인지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 달걀을 21일 동안 품어보면 알 수있다. 왜냐하면 유정란에서는 병아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무정란은 병아리가 나오지 않고 달걀이 썩어버리기 때문이다. 고로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 주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정말 자신의 목숨보다도 귀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하겠다.
3. 왜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셨는가?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셨는가? 얼핏 생각하기에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사람이 죽더라도 다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사망 권세에 매여 있는 인류를 놓아주시기 위해 먼저 샘플로 부활하셨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것에 대한 이유를 궁극적으로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만약 아담이 범죄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았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러한 아담에게도 과연 부활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 필요하다. 왜 그런가? 그것은 아담에게는 아직 영원히 사는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에덴동산에 생명나무의 실과의 형태로 갖다 놓으셨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그것을 따먹기 전에, 먼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하여 선과 악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런데 아담은 이미 선한 존재로 창조되었으니 그때에 아담은 악을 받아들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악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악한 영들로서 귀신들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것은 아담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러한가?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당신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면 정녕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죽음'이란 일차적으로는 육체적인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자신의 영과 몸이 분리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사람의 영이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면 그러한 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불못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범죄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일차적인 죽음과 이차적인 죽음이 예고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은 인간이며, 하나님의 짝으로 지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를 그냥 내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간 대신 죽으러 이 땅에 오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성육신이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께서는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 인간이 지은 죄값을 대신 지불하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범죄하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으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왜 부활하셨는가? 그것은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넣어 주시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죽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생명주는 영이 되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고전15:45). 고로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아담이 범죄하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은 것이요,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성령을 보내셔서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품으신 원대한 계획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품으신 원대한 계획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아담을 창조하실 때에 조금은 계시가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만물을 다 창조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그 인간에게 만드신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창1:28). 즉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통치권을 인간에게 주시려고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만 말씀하신 것이다. 그때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피조물에 대해서까지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피조물에 대한 계획까지 들어 있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단서가 에덴동산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생명나무'다. 생명나무는 원래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에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생명강을 이루고 그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이 나무를 이 세상의 에덴동산에 갖다 두신 것이다(창2:9). 고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은 생명나무와 아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찾아오셨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계획하신 원대한 뜻을 계시해 주셨다. 그것이 에베소서 3장에 나온다. 이는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한 것을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알려 주셨다는 것이다(엡3:9). 그것은 바로 유대인들을 포함하여 이방인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공동 상속자들이 되는 것이다(엡3:6).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이 세상의 만물과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의 모든 것을 다 상속시켜 주려고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물질세계와 영의 세계의 상속자로 삼으시고자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계획이 창세기 3장에서, 뱀을 가장한 사탄의 침범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계획을 다시 성취하시고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다. 그래서 우선 인간이 지은 죄값을 대신 담당하시려고 죽으신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을 믿는 자들 가운데에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넣어 주기 시작하셨다. 고로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것을 큰 각도로 보면 결국 우리 인간을 온 우주 만물의 상속자로 만들기 위함이었다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5. 부활체는 어떤 것을 가리키며 왜 필요한 것인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부활체(부활의 몸)를 주시려는 것인가?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보이는 물질세계와 보이지 않는 물질세계 즉 둘의 세계에서 다 왕 노릇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육체를 가진 인간은 보이지 않는 영적 피조물인 천사보다 앎(지식과 지혜)에 있어서나 능력에 있어서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명을 받아야 완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아담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가? 아담은 육체가 갖는 다섯 가지 감각과 영이 갖는 두 가지 감각이 있었다. 여기서 오감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가리킨다. 그리고 영의 2가지 감각은 사물을 보고서 금방 아는 앎의 감각과 그것을 실행시키는 능력의 감각이다. 천국에 가보면, 이미 부활체를 입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영으로 그곳에 가보면, 부활체를 입고 사는 사람들의 놀라운 세계를 엿볼 수가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인간이 지녔던 완전한 오감을 사용하고 있으며, 완전한 영의 감각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곳에서는 무엇인가를 물어볼 필요가 없다. 보면 그냥 알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만난 사람에게 굳이 이름을 물어볼 필요가 없다. 그냥 보고, 당신은 아브라함이요, 당신은 모세요, 당신은 다윗이군요 하고 알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실행하는 능력이 완전해진다. 그러므로 공간의 이동이 자유롭다. 가고 싶으면 그곳에 가 있다. 아니 멋지게 가고 싶으면 천사를 시켜 마차를 준비시키면 된다. 그렇다. 부활체란 모든 만물을 다스릴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부활체는 인간의 육체와 달리 강하다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부활체는 육체와는 달리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다(고전15:42, 53~54). 이것은 영체를 닮은 것이다. 영체도 또한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부활체와 영체가 다른 것은 영체는 피가 나지 않으며 꼬집어도 아프지 않지만, 부활체는 피도 나고 꼬집으면 아픔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만약 부활체가 다치게 되면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약제가 항상 비치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생명나무의 잎사귀다(계22:1~2). 그러므로 천국에서는 병원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누군가 죽거나 없어져서 겪어야 할 아픔이 없다. 그것이 바로 부활체인 것이다.
6. 부활체의 영광이란 대체 어떤 것을 가리키며,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갖는 영광이 각각 다르다고 하였다. 그런데 진정 우리 성도들이 온전히 사모해야 할 부활체의 영광의 수준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준이다. 그러나 어떤 성도들이라도 그러한 수준을 갖지는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거듭난 이후부터 죽는 그날까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부활체의 영광의 수준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마치 영의 나이와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영도 사실은 나이를 먹기 때문이다. 사람의 육체가 음식을 먹어야 성장하듯이, 사람의 영도 역시 영의 음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밀을 알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려 하지도 않고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우리가 죽을 때에 가진 영의 나이는 영원토록 천국에서의 나의 나이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천국에서 부활체의 영광을 이 땅에서만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10년이 넘도록 영의 나이가 1살을 먹지 못하는 자가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1년에 3살 이상의 나이를 먹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라.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부활체는 어떤 수준으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인가? 그것에 대해 사도 바울은 4가지로 이야기하였다. 그것은 빛 곧 영광의 크기로서 예를 들어 설명했는데, 사도 바울은 그것에 대해 해와 달과 별 그리고 별과 별의 빛의 차이라고 했다. 그렇다. 어떤 사람의 영광의 수준은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못한 이는 달처럼 빛날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못한 이는 별처럼 빛날 것이다. 그런데 별들도 더 밝은 별들도 있고 더 희미한 별들도 있듯이, 천국에서의 부활체의 작은 영광도 그렇게 다를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성경에서는 천국에서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의 차이를 여러 가지로 표현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아가서에는 부활체의 등급을 왕권신부(술람미 여인), 왕후신부, 비빈신부, 시녀신부로 들려주고 있으며(아6:8~9), 레위기서에서는 대제사장과 제사장 그리고 레위인과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편 45편에서 고라 자손은 그것을 가리켜 왕의 딸들, 왕후, 두로의 딸들, 시종처녀라고 구분하고 있다.
7. 더 좋은 부활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죽은 후에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국에서 우리가 영원토록 갖게 될 지위와 신분을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그것은 오직 이 땅에서만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을 우선 알아야 한다. 죽은 후에는 결코 부활체의 영광의 등급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준비하여 얻은 그 등급을 영원히 간직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좋은 부활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를 종합해 보면 이렇다. 그것은 기본적으로는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맡겨진 일이 있다면 그것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20:26~27, 25:20~21).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싸움에 능한 자가 되는 것이다(엡6:10~16). 그래야 천국에서 최고의 등급의 지위와 신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영물인 귀신들 천지인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건져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게 하고 천국에서 보다 더 영광스러운 존재로 살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귀신들과의 싸움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날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악한 영들과 전투하여 승리하는 것이다. 특히 이 전쟁을 잘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검(칼)을 가져야 한다. 그것으로써 적을 찌를 수 있고 베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성령의 칼을 '하나님의 레마(말씀)'라고 하였다(엡6:17).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도 레마 말씀을 가져야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말씀에는 기록된 말씀 곧 '로고스'가 있으며, 성령이 지금 말씀하시는 '레마' 말씀도 있고, 목회자의 입에서 선포되는 '설교' 말씀도 있다. 그런데 만약 성도가 목회자의 입에서 나오는 설교 말씀만을 듣고 있다면 그는 사실상 영적 전쟁을 수행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기록된 말씀을 읽어서 그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께서 그 시에 주시는 말씀으로 대비해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악한 영들은 오늘도 24시간 내내 잠도 안 자면서 우리를 공격할 틈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8. 나오며
어떤 사람은 왜 동탄명성교회에서는 그토록 많은 귀신 이야기를 하고, 귀신과 싸우라는 말씀을 그토록 많이 하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원대한 목적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는 것이다. 우리가 장차 들어가서 차지하게 될 천국의 기업(영토)은 우리가 얼마나 자신의 몸속에 있는 가나안 일곱 족속을 쫓아냈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나안 일곱 족속'이란 우리의 영이 우리의 몸에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 몸에 들어와 있던 귀신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해야 할 가나안 땅은 그냥 들어오라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가나안 일곱 족속이 칼을 갈면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과 전쟁하여 그들을 죽이거나 그들을 그곳에서 쫓아내야만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다. 고로 악한 영들과 많이 싸워 그들을 이기는 바로 그가 결국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계2:26~27). 즉 왕권신부가 되는 것이요 왕후신부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예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다 사탄에게 갇혀 있는 포로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탄 마귀는 자신에게 속한 자식들을 호락호락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요8:44). 사탄 마귀와 싸워서 빼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은 우리에게 필수적인 것이라고 하겠다(엡6:10~17). 그래서 영적 전쟁에 능한 자가 결국 천국에서 더 좋은 부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히11:35). 그러면 천국에서 더 좋은 부활체를 입게 되는 것이다(고전15:40~41).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곳에서 해의 영광스러운 지위를 차지할 것이고, 어떤 이는 달의 영광의 지위, 어떤 이는 별의 영광의 지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러한 영적 싸움을 죽는 그날까지 쉬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친 후에 비로소 천국 안으로 들어갔다(딤후4:7~8,18). 그래서 그는 지금 천국에서 왕권신부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고로 우리들도 죽는 날까지 이러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함으로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더 높은 부활체의 영광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3년 04월 09일(주일)
정보배(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