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5(주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교회론(05)] 지금 우리 교회는 과연 하나의 새 사람일까?(엡2:11~1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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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하신 분은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견고한 신앙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하셨으며, 이러한 교회는 음부의 문들이 결코 이겨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16:18). 그리하여 베드로가 최초로 교회를 세웠는데, 그 교회가 바로 '예루살렘 교회'였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는 흠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베드로가 세운 교회는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디자인하신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디자인한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있는 교회인데, 베드로는 유대인들만으로 구성된 교회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더 불러 그에게 이와같은 막중한 사명을 맡기셨다. 그가 바로 '바울'이라는 사도이다. 그는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디자인한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에베소서에 기록해두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만세전의 작정을 이루기 위한 마당으로서 교회가 어떤 것인지를 에베소서에 소상히 설명해놓았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교회가 무엇인지를 공부하려면 우리는 에베소서를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사실 에베소서에는 교회에 대한 정의가 6가지나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중에 이번 시간에는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하나의 새로운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교회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에베소서에서는 바울은 교회를 무엇이라 고 말씀하였는가?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교회를 다음과 같은 6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6가지 정의들 중에서 직접적인 정의는 오직 한 가지 뿐이다. 그것은 첫번째 정의로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이다.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표현이자 여러 지체들의 유기적인 연합체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 리스도를 표현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더이상 교회라고 불리울 수가 없다. 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유기적인 연합체라는 점에서 본다면, 교회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것들은 다 비유적인 표현들인데, 그것으로 둘째는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것이다(엡5:25, 31~32). 이는 예수님이 교회의 신랑이 되시고, 교회는 그의 신부이자 아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셨기 때문에, 교회 역시 그리스도에게 순결과 정절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셋째로 교회는 '하나님의 가정'이라는 것이다(엡2:19). 이는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형제 자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구성원들 더이상 낯선 자들도 아니요, 이웃도 아니며,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함께 살아갈 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장차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함께 살아간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모른 체 하면서 살아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넷째로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한 새 사람'이라는 것이다(엡2:14~15). 이는 이번 시간에 살펴볼 말씀이다. 그리고 다섯째로 교회는 '성전'이자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라는 것이다(엡2:20~22). 이는 교회가 하나님이 거주하시고 사시는 집으로서 안식처라는 뜻이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성막으로 예표된 바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되려면 교회 안에 예수께서 기쁘게 들어오시고 안식할 수 있는 처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섯째 마지막으로 교회는 '영적 전사'라는 것이다(엡6:10~12). 이는 교회가 영적 전쟁을 수행할 전사인 것을 말해준다. 고로 자신이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귀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가르쳐주지 않고 귀신을 쫓아내지 아니하는 교회는 더이상 교회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에베소서 이외에도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도 정의하였다(딤전3:15). 이는 교회가 진리만을 외치는 존재여야 함을 의미한다. 고로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사도 바울이 교회에 대한 정의를 7가지로 소개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3.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한 새 사람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떤 의미로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한 새 사람이라고 정의하였는가? 그것은 교회가 다음과 같은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교회는 건물이나 천사나 동물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는 교회가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건물이 아니며, 하나님의 생명을 모실 수 없을 뿐더러 시킨 것만 행하는 천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양육강식으로 살아가는 그래서 힘 쎈 놈이 약한 자를 지배하는 동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응하는 공동체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공동체이자, 스스로 자원하여 일하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힘이 세고 강한 자일수록 자신의 은사와 달란트, 물질과 지혜를 가지고 힘이 약한 자와 소외되고 병든 자를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교회는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이 풍성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것을 가지고 가지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자들을 섬기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둘째, 교회는 차별이 없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들에 주신 규례들로 된 계명의 율법 곧 의식법들을 자신의 육체로 허무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규례들의 율법 곧 의식법들을 이용하여 자신만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축복을 누릴 자라고 주장하는 교만함과 완악함으로부터 그들을 깨우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주장하는 규례들과 된 계명의 율법들을 보면 그것들은 그리스도가 오면 없어질 의식법들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할례를 받는 것, 안식일을 지키는 것, 음식을 가려서 먹는 것, 절기를 지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실체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형식적인 의식법들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할례를 받지 않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부정한 음식도 먹고, 절기를 지키지 않는 이방인들을 지옥을 불쏘시개처럼 여겼다. 이들을 기도할 때마다 저주하였고 이들과 식사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만세전에 우리 주님께서 디자인한 교회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참여한 차별없는 공동체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전함을 기뻐하는 바울을 통하여 온 땅에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 늦게 교회에 들어왔다서해서 차별하고, 여자라고 해서 차별하고, 나이가 적다고 차별하고,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니라고 차별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우리나라의 경우, 경상도 사람만 보이는 교회를 더이상 교회라고 말할 수 없고, 전라도 사람만 모이는 교회를 더이상 교회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교회는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점을 발견하여 서로가 하나인 것을 확인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교회는 '새로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신인류라는 것이다. 여기서 '새롭다'는 말은 시간적으로 새롭다는 뜻의 '크로노스'가 아니라, 질적으로 새롭다는 뜻의 '카이노스'가 사용되고 있다. 이는 교회가 질적으로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인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럼 교회는 질적으로 새로운가?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구약시대만해도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가 없었다. 아직 그때에는 하나님의 경륜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이러한 생명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뿐만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서는 상얻는 자가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4. 위와 같은 관점으로 볼 때, 오늘날 교회가 교회되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고로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의 새로운 사람이라는 것은 교회가 교회가 되게 하려할 때에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것은 첫째,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다른 지체를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약한 지체와 새가족을 보면서도 본체만체하는 지체가 될 것이 아니며, 누가 시켜야만 일하는 공동체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교회에서 강한 자나 높은 위치에 있다면 그것으로 약한 자나 낮은 위치에 있는 자를 지배하려 한다거나 군림하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강한 자와 높은 자가 약한 자와 낮은 자르 섬기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이 먼저 걸어간 것이었고 우리가 걸어가야할 길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교회는 결단코 차별의식을 가져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공통분모가 있는지를 찾아내서 서로가 하나인 것을 재확인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고로 상대방을 두고서, 그가 이방인이라고 무시하고, 그녀가 여자라고 해서 무시하며, 또한 이제 갓 믿었다고 무시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오히려 강한 자와 높은 자가 약한 자와 낮은 자를 섬겨야 하는 것이다. 셋째, 교회는 얼마나 하나님의 생명을 충분히 갖고 있고 누리고 있느냐에 따라 성숙도가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분배받은 신인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풍성히 갖고 있는 자는 결단코 힘이 약한 자나 고통받는 자나 소외된 자를 외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 자체가 선하고 진실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오히려 겸손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로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5. 나오며
교회가 교회로서 빛나려면 교회는 본질을 잊어버려서는 아니 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생명을 풍성히 누리고 살고 있는 자일수록 자신의 것을 가지고 형제자매를 섬기려 한다. 왜나하면 천국에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 편애가 사라져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오순절이후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은 민족이라고 해서 더 우대하지 않으시고, 또한 누구든지 믿고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진정 교회가 되게 하려면, 기킨 것이나 행하는 자가 되지 말고 알아서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양육강식으로 짐승처럼 살아가서는 아니 된다. 자기가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알고 있을수록 자신의 것을 가지고 가지지 못하고 더 무지한 사람을 살리고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그렇게 섬기는 자들을 위하여 면류관을 준비해주시며, 좋은 천국집도 주시고, 더 나아가서는 보좌자리에 앉아서 왕노릇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시기도 하는 것이다.
2024년 12월 15일(주일)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