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죄를 지으면 원죄를 회개하게 될까요 아니면 자범죄를 회개하게 될까요? 그리고 죄를 사함받으려면 우리는 자신이 지었던 낱낱의 죄를 다 고백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생각나는 죄만 회개하면 될까요? 혹시 한 개라도 자범죄가 남아 있다면 우리는 그 죄 때문에 지옥에 가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이 시간에는 욥의 회개를 통해서 우리가 회개할 때 과연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면서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욥은 까닭없이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것도 사탄으로부터 2차에 걸린 시험을 받아야 했다. 그의 시련의 출발은 자신의 그 많던 재산을 하루 아침에 다 잃어버리는 일이었고, 이어서 수많은 종들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리는 것과 심지어 7남3녀의 자녀들까지 하루아침에 비명횡사로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2차 고난에서 욥은 자신의 몸에 악한 종기로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이빨을 부득부득 가는 하나님을 저주하는 아내의 배신이었다.
그런데 여러분은 욥이 과연 몇 세에 이런 일을 겪었어야 했으며, 얼마동안 이 고난을 겪었으리라 생각해 보았는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역성경의 기록만으로는 그것을 추정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 의하면, 욥은 70세부터 이 고난을 받기 시작했으며 그러기를 약 30년을 지속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나긴 세월동안 참으로 욥은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욥은 끝까지 기도줄을 놓지 않았다. 자신이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를 꼭 알려달라고 끝까지 매달렸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 욥은 즉시 재를 뒤집어쓰고 티끌을 날리며 진심으로 회개하였다. 대체 하나님과 욥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그날의 대화를 예상해보자. 아마도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서 "욥아, 너에게 이러한 고난을 허락한 것은 내 본심이 아니었단다. 미안하구나. 너에게 설명도 안 해 주고 이 일을 시작했으니 얼마나 힘들었니? 하지만 이것은 다 너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으니 너그럽게 이해해다오." 또한 욥도 이렇게 말했어야 했을 것이다. "아니요. 하나님. 제가 그 새를 못참고 하나님을 의심했으니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고난이 길어지다보니 저도 모르게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대들었던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그러나, 사실 이런 대화는 오간 적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그러한 고난을 왜 겪어야 했는지 설명해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폭풍 가운데서 나타나시어 그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셨을 뿐이다. 하지만 욥은 용케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즉시 알아들었고 즉시 진실로 회개하였다. 그렇다면 대체 욥은 무슨 죄를 지었으며, 또 무슨 죄를 회개했던 것일까?
우선 욥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간단하게 정리해보기로 하자. 첫째, 욥은 고난받기전에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고난이 지속되자 원망하고 불평했다(욥7:11). 그리고 둘째, 자신은 의로운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재앙을 내리자,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 아니라고 판단하고는 하나님께 대들었다(욥33:9~11). 하지만 욥은 자신의 이러한 낱낱의 죄를 고백하지 않았다. 다만 회개했을 뿐이다. 대체 욥은 무엇을 회개한 것일까?
끝까지 자신의 의를 주장하던 욥은 대체 무엇때문에 회개한 것일까? 그것은 욥에게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질문을 던진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이나 능력으로는 도무지 대답할 수 없는 수십가지의 질문들이었다. 예를 들어보자. “네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그 척도를 어떻게 계산했는지 알기나 하느냐? 바다가 어떻게 그 모태에서 터치고 나왔는지 네가 보았느냐? 왜 파도가 땅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는지 너는 아느냐? 네게 바다의 샘에 들어가 본 일이나 있으며, 사망의 그늘진 문에 들어가 보았느냐? 빛의 길과 어둠의 길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너는 아느냐?...” 이어지는 수십가지의 질문에 욥은 단 한 번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 질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밖에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욥은 입을 다물기 시작하였다. 그러고 또 한 번 하나님으로부터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자 욥은 이렇게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42:3-6)" 그렇다. 욥은 이렇게 회개한 것이다. 욥이 낱낱의 죄를 열거하며 회개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 사람이었는지를 그 순간 철저히 알게 되었다. 그는 그때서야 자신이 얼마나 교만한 사람이었는지를 즉시 알아차렸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듣기 전까지는 자신이 최고로 의로웠었는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얼마나 자신이 추한 죄인인지를 즉각적으로 알아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회개요, 참된 회개의 본질이다. 이처럼 사람의 참된 회개는 자신이 범한 낱낱의 죄를 자백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 자신이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죄성을 가진 인간이요, 아주 무지한 자인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중에서 누가복음에 보면, 5명의 죄인이 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눅5장의 베드로의 회개, 눅15장의 돌아온 탕자의 회개, 눅18장의 세리의 회개, 눅19장의 삭개오의 회개, 눅23장의 한 편 강도의 회개가 그것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이들은 자신이 지은 낱낱의 죄를 고백하지 않았다. 베드로를 보라. 그는 예수님에게 죄를 짓지도 않았다. 다만 고기잡이의 기적을 통해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보니, 그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돌아온 탕자를 보라. 그는 무엇을 회개했는가? 아버지의 재산을 허비한 죄를 회개했는가? 아니다. 그는 하늘과 아버지에게 배은망덕한 죄를 지은 죄인인 것을 회개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어떠한 처분도 달게 받겠다는 각오로 회개했다. 뿐만 아니라 세리를 보자. 그는 정말 현장에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던 자였고 아주 불의한 자였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회개했는가? 자범죄를 자백했는가? 아니다. 그는 감히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지도 못할 죄인인 것을 고백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다만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저는 죄인일 따름입니다." 그렇다. 사람이 하는 회개는 낱낱의 죄를 하나씩 하나씩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못난 죄인이며 무식한 사람이었는지를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인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근거로 욥이 진실로 회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그것은 회개 후의 그의 행동이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세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 욥은 어떻게 했는가? 욥의 친구들은 나빴다. 욥을 위로한다고 와놓고서는 오히려 욥을 정죄했다. 욥이 죄를 지었으니까 벌을 받은 것이 아니냐면서, 욥의 가슴을 후벼팠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다. 만약 그때 욥이 회개한 자가 아니었다면 그는 그 일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미운 마음이 남아있는 자는 용서할 수 없고 보듬을 수가 없다. 욥은 생각했다. 자신도 몰라서 하나님께 대들었던 것처럼 그들로 몰라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을 용서해주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었다. 이것이 바로 회개하여 용서받은 자의 행동양식이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나님께서는 즉시 욥을 그의 곤궁에서 돌이켜주셨다. 우선 질병에서 즉시 나았으며, 새로운 재산을 갑절로 얻게 되었고, 새가족들까지 얻게 되었고, 천수를 누리다가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참된 회개는 자신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서 낱낱의 죄를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대로 아뢰며 회개하는 것이다. 그동안 당신은 어떻게 회개해왔는가? 이제는 참된 회개를 하라. 그것만이 자신이 살 길이고 영혼을 보장받는 길이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