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라기우스주의자들과의 논쟁(the Pelagian Controversy)에 나타난 어거스틴의 성서해석

김 영 도 (목사/역사신학)

 

이 글을 쓴 김영도 목사는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미국 Union Theological Seminary in Virginia에서 역사신학(고대 교부)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입니다. 성서마당은 중요한 교부들의 성서해석을 중심으로 김영도 목사의 글을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어거스틴은 카톨릭 교회에서 말하는 위대한 4명의 교회 스승들(doctor ecclesiae)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흔히 은총의 스승(doctor gratiae)으로 불리어 왔다. 작품의 방대성과 사상의 심오성 때문에 그는 교회사를 통해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심지어 그의 신학사상은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고 일컬어진다. 그 이유는 도나투스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나타난 그의 신학적 입장과 펠라기우스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드러난 그의 입장 사이에 많은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평가들은 어거스틴이 전자(前者)에서 성례전 및 교회라고 하는 은총의 수단(the means of grace)을 절대화시켰으며, 후자(後者)에서는 그저 주시는 은총(unmerited grace)을 절대화시켰다고 본다. 그래서 혹자는 리브가의 태중에 두 아들들이 먼저 나오기 위해 싸우고 있었듯이(창 25:22-23), 그의 사상 안에서 두 상반되는 신학적 입장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고 묘사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역사적으로 전자를 중시하던 그의 추종자들과 후자를 선호하던 추종자들 사이에 많은 분쟁이 발생하게 되었다. 실제적으로 카톨릭교회와 개신교의 차이도 어거스틴의 사상 가운데 어떤 측면을 더 강조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번 호에서는 어거스틴의 은총론 논쟁에서 나타난 그의 성서해석의 원리를 살펴봄으로써 그가 인간과 구원, 죄와 은총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펠라기우스 논쟁에 있어서 중요한 은총의 종류들, 은총과 예정의 관계성, 그리고 은총과 은총의 수단의 관계성은 지면 관계상 이번 호에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1. 어거스틴의 성서해석의 특징

초기 어거스틴은 신플라톤주의의 잔재 때문에 바울보다 요한을 선호했다. 그는 구약을 은유적 방법으로 해석함으로써 마니(Manichaeism)가 영육 곧, 선악의 이원론에 기초하여 구약을 무시해 버리는 것을 공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 그는 마니교와의 논쟁에서 창조와 관련하여 창세기 1-3장에 대해서 은유적 해석이 아니라 문자적 해석법을 사용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창조의 역사성을 방어할 수 있었다. 대체적으로 어거스틴은 주석들이나 논쟁적인 작품에서 성경의 문자적 의미(literal meaning)를 강조했다. 반면 설교들, 특히 시편강해 및 요한복음 강해에서 그는 은유적­신비적 의미(allegorical-mystical senses)를 강조했다.

어거스틴은 그의 사상이 원숙해 갈수록 더욱 더 성경의 주해에 치중했다. 실제로 그의 후기 작품들 속에는 성경 주석들이 무수히 인용된 것을 볼 수 있으며, 이 기간의 많은 저술들은 단순히 성경에 대한 주해들이었다.

어거스틴은 히브리어를 알지 못했으며, 헬라어를 약간 해독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 북아프리카에는 두 종류의 라틴어 번역본이 있었다. 하나는 아프리카 판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서구판(Itala)이였다. 그는 후자를 기초로 하여 주석작업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이 번역본도 내용상 제롬(Jerome)의 불가타(Vulgata)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의 생애의 후반에 아마 불가타를 많이 사용했던 것 같다. 때로 그는 구약의 헬라어 번역본인 셉투아진타(Septuaginta)의 구절들을 라틴어로 사역(私譯)하기도 했다.

어거스틴은 신학적인 논쟁과 주석작업에 있어서 성경을 궁극적인 권위의 출처로 삼았다. 성경이 명확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 않는 경우, 그는 교회의 일치(consensus ecclesiae)에 의존했다. 그는 어느 교부들보다도 겸손하게 그의 사상이 수정되고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가 한 번 제시했던 이론이나 사상을 철칙으로 고수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의 신학의 발전과 수정은 다름 아닌 "성경의 더 나은 이해"와 관련이 있었다. 따라서 신학적 논쟁들에 있어서 그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성서해석을 고찰해 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는 그의 생애의 후반에 있었던 펠라기우스주의자들과의 논쟁의 이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죄성과 은총의 거저 주시는 은총을 강조함에 있어서 그가 사도 바울의 해석에 치중했음을 볼 수 있다.

 

2. 펠라기우스주의자들과의 논쟁의 성격

어거스틴의 사상이 펠라기우스(Pelagius)의 사상에 대해 승리한 사건은 고대 세계의 종말을 고하고 중세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어거스틴 이전의 이단이란 아리우스주의 논쟁(the Arian Controversy)에서 볼 수 있듯이, 주로 삼위일체론 혹은 기독론에 있어서의 이단을 의미했다. 어거스틴 이전에 인간론(anthropology)이 문제된 적은 거의 없었다. 주님의 파루시아(parousia)의 지연과 단속(斷續)적인 핍박으로 인해 교회는 성도들의 윤리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으며, 그러다 보니 인간은 스스로의 도덕적인 노력으로 선을 성취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풍미하고 있었다. 인간성에 대한 낙관론은 서방교부들보다 동방교부들 사이에 더 만연되어 있었다.

펠라기우스는 비록 영국 출신이었으나, 사상적으로는 동방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인물이었다.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보다도 그의 제자들이 있던 카일레스티우스(Caelestius)와 줄리언(Julian of Eclanum)과 더 많은 논쟁을 벌였다. 특히 후자와는 입증시까지 논쟁을 벌였음을 볼 수 있다. 펠라기우스주의와의 논쟁은 어거스틴의 감독생활의 후반 곧, 신학적으로 성숙한 시기에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이는 또한 지리적으로 도나투스주의자들과의 논쟁과는 달리 동서방교회 모두가 연루된 국제적 사건이었다.

펠라기우스는 스토아주의의 윤리를 이상으로 하던 사회개혁자(a social reformer)였다. 기독교가 국교화된 이후 교회는 영적인 박진감을 상실하기 시작했으며 사회악은 곧 교회악으로 여겨졌다. 그는 이러한 시대상을 개탄했다. 그는 금욕적 낙관주의(ascetic optimism)에 근거하여 특별한 은총의 도움 없이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어거스틴은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곧, 특별한 은총의 도움 없이 믿음의 시작과 선의 성취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두 거장들의 견해의 차이는 바로 구원론(은총과 원죄), 인간론(인간의 의지), 그리고 은총의 수단(유아 세례)의 이해의 차이에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 논쟁은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가 은총의 효과를 어떻게 이해했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양자는 모두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기 위해 최후의 근거로써 성경에 의지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어거스틴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누구보다도 성경을 더 잘 알고 있었으며, 여기에 고전적인 수사학적 기법을 적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 원죄:"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롬 5:12)

어거스틴은 원죄의 유전적 성격을 규명한 최초의 교부였다. 그는 로마서 5:12의 원죄론의 전개를 위한 석의적 기초로 삼았다. 비평가들은 그의 원죄론이 잘못된 성경번역 때문에 생겨나게 되었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더 정확하게는 그가 오역(誤譯)된 라틴어 번역본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원죄론을 정당화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in quo omnes peccaverunt)"로 번역하는 것이 헬라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용한 라틴어 번역본에는 이 구절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per unum hominem omnes peccaverunt)"로 되어 있다. 어떻든 그에 따르면 아담의 범죄로 인해 그의 후손들은 멸망의 총체(massa perdictionis), 죄의 총체(massa peccati), 혹은 죄인들의 총체(massa peccatorum)가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죄는 개별적인, 잘못된 행위가 아니다. 모든 인류가 정죄 아래 있는 이유는 개인들의 행위의 결과 때문이 아니라, 아담의 후손들이 공유하고 있는 집단적 소외(collective alienation) 때문이다. 죄를 이렇게 이해함으로 그 이전의 일반적인 죄의 개념이었던 도덕론(moralism)을 극복할 수 있었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원죄는 죄(peccatus)일 뿐만 아니라, 죄의 징벌(poena peccati)이기도 하다. 원죄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육욕(concupiscentia canalis)이고, 다른 하나는 육욕으로 인한 죄책(reatus concupiscentiae)이다. 이 육욕은 아담에게는 범죄의 결과로 생겼으며, 그의 후손들에게는 범죄의 원인이 되었다. "죄의 딸(the daughter of sin)"인 육욕은 이제 "죄의 어머니(the mother of sin)"가 되어 버렸다. 어거스틴에 다르면, 세례를 통해 원죄가 용서된다는 것은 육욕이 제거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책이 용서되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 이후에도 육욕은 여전히 성도들 안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세례 이후에도 계속적인 은총의 역사가 필요한 것이다.

펠라기우스는 바울서신에 대한 주석에서 인간에 대한 낙관론인 견해를 피력했으며, 따라서 원죄와 이의 결과들을 과소평가 했다. 그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완전함에 이를 수 있으며, 따라서 완전하게 되는 것은 의무라고 주장했다. 죄는 생물학적 유전에 의해 자동적으로 후손에게 이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손들이 죄짓는 것은 최초의 범죄자를 모방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며, 죄의 보편성은 아담이 나쁜 본보기를 보인 결과로 초래된 사회적 관습(social habit)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죄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얼마든지 자신의 선택을 번복할 수 있으며 과거의 선택은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았다.

펠라기우스에 따르면 인간이란 도덕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개별적 존재(a separated individual)이다. 이에 반해, 어거스틴은 인류 전체가 신비스런 죄의 결과(solidas peccati) 속에 있는 총체적 인간이다. 어거스틴은 아담의 범죄 원인을 교만(superbia)으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육욕으로도 보았다. 육욕을 성적인 것으로만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영혼이 하나님보다 열등한 것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그가 악을 선의 결핍(privatio boni)으로 이해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어거스틴은 원죄가 육체적 행위를 통해 유전된다고 보았다. 그가 성적 욕망을 원죄의 소재(所在)로 본 이유는 이것이 이성과 의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러한 성의 통제불가능성은 영혼이 하나님 혹은 선을 추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징벌로 주어졌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성의 결정성을 강조한 사실을 두고 혹자는 서구의 구원론은 그가 "인간의 허리를 어떻게 이해했느냐"에 따라 형성되게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요컨대, 어거스틴은 생물학적 유전의 개념(the biological idea of heredity)과 사법적 책임의 개념(the idea of juridical liability)을 결합시켜 원죄를 설명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전자는 바로 그의 성의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4. 의지:"…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시 119:133).

펠라기우스는 어거스틴이 "당신이 명하시는 것을 주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명하소서(Da quod jubes et jube quod vis)"라고 하는 어거스틴의 기도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 펠라기우스는 이 기도에 따르면 인간이란 의지력이 결핍된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만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마 5:8에 의거하여 인간은 스스로 완전함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행할 수 없는 것을 명령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유와 책임을 모두 주셨다. 그래서 그는 시편 119:133의 기도문을 즐겨 인용하던 어거스틴을 운명론자로 간주하였다.

펠라기우스는 본성이 선택의 자유(liberum arbitrium)를 구사함으로써 행복과 완전함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의지(voluntas)가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이며 인간에게 자유(libertas)가 있음을 말해 준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선택의 자유가 선을 택할 때 인간에게 참된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초자연적인 은총의 도움이 필연적이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의지가 작용함(the willing of the will)에 있어서 가능성(posse), 능력(velle), 그리고 행위 자체(esse)를 구분했다. 전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이며, 나중 2개는 우리 자신들에게서 온다고 생각하였다. 이 셋에 의해 하나님의 뜻이 수행된다고 주장했다. 어거스틴은 이 셋 모두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으로 보았다.

어거스틴도 초기에 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이 세상에서 완전한 삶(becata vita)이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회심의 체험에 비추어 이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설명했다. 그는 의지에 손상이 초래되었기 때문에 선택의 자유의 바른 사용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 반드시 우리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은혜의 도움 없이 선택의 자유는 항상 악을 선택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 의지는 무력하나 자유로우며, 자유로우나 무력할 따름이다. 그는 원죄와 관련된 인간 의지의 무능성을 언어의 유희(word play)로 설명할 적이 있다. 타락 전 아담은 죄를 안 지을 수도 있었다(posse non peccare). 타락한 인간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non posse non peccare). 나중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이후에 인간은 죄 짓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다(non posse peccare). 비록 타락했으나 은혜 아래서 우리는 죄를 안 짓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거스틴에 따르면 성도들은 타락 전 아담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 낙원에서조차 아담에게는 끊임없는 은총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5. 결론

어거스틴이 그의 정신적인 제자 칼빈과 달리 타락 후 예정론(infralapsarianim)을 주장한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극단적인 예정론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마니교의 비난과 달리 그는 형벌의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다고 하지 않았으며, 펠라기우스의 주장과는 달리 인간이 선을 행하기에 전적으로 무능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거저 주시는 은총은 반드시 인간으로 하여금 선을 행하도록 인간의 의지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의 은총론은 그의 사도 바울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자신의 회심의 체험에 기초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 그의 체험을 바울의 입장에서 해석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펠라기우스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나타난 그의 성경해석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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