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들이, 칼빈이여, 당신의 대적자들이 당신의 교리에 관하여 품는 관점과 논점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교리를 그것의 열매를 통해 판단하도록 조언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 모두가 당신의 하나님의 열매로 넘친다고 단언한다. 즉 그들은(당신의 제자들은) 대부분에서 논쟁을 좋아하고 보복에 목마르고 받은 상처에 늘 집착하고 신경을 쓰고 당신의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낳은 다른 셀 수 없는 악들로 가득차 있다. 만약 당신의 대적자들의 이러한 주장들에 누군가 대답하며 이러한 것들은 당신의 교리에 의해 기인한 잘못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당신의 반대자들은 당신의 교리가 확실하게 그러한 사람들을 낳았고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교리를 담고 따른 후에, 전에는 그 악한 묘사의 사람들인 것과 거리가 멀었던 그러한 인물들이 되었다는 사실로부터 그 주장이 분명하다고 대답한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교리를 믿는 사람들은 항상 더 선한 사람들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들이 당신에 교리에 의해서 분명하게 늘 더 악해진다고 단언한다. 그들은 또한 당신과 당신의 추종자들이 당신이 건전한 교리를 붙들고 있다고 고백할 때 당신들은 신뢰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내가 실제로 분명하게 그것을 이해하지는 않았지만 나 자신이 한때 당신의 교리를 옹호하였고 심지어 그것을 변호하였던 것이 진실이다. 나는 당신의 권위의 무게를 너무 많이 생각해서 나는 그것에 반대되는 하나의 생각을 단지 품는 것도 엄청 큰 죄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의 반대자들의 논증을 듣고 나서는 나는 그들의 결론과 증명에 대답하여 말할 어떤 것도 결코 가지고 있지 않다. 당신의 제자들은 참으로 당신을 변호하려고 어떤 대답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들이 당신의 교리의 옹호자로 발견한 사람들 가운데서 그들은 담대하게 그들의 측면에서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그들이 당신의 반대자들을 대하러 올 때 그들은 흔들리고 보호를 위해 당신의 책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그들이 거기서 발견한 것은 너무 약해서 그들을 돕지 못한다. 당신의 논리가 너무 약하고 대부분에서 너무 불건전해서 당신의 책이 그들의 손으로부터 떨어지자마자 당신의 논리는 그들의 기억에서 떨어지고 그러므로 그들은 당신의 대적자들을 납득시키는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당신의 반대자들의 논증은 분명하고 강력하고 쉽게 기억에 남겨져 있고 그러므로 배움이 적은 사람들(그리스도를 따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묘사된다)에 의해서 단번에 이해가 된다. 그러므로 당신의 제자들 대부분은 건전한 논리보다는 당신의 권위에 더욱 의존한다는 결론이 된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의 대적자들을 논증으로 물리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들은 그들을 이단자와 광신자로 여기고 그들과 교재를 꺼리고 각종 입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일을 하도록 경고한다. 반대로, 나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해진 것이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는 의견을 항상 가지고 있는데, 나는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들어야 하고 말해진 모든 것들이 정당하게 증명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선한 것은 마땅히 받아 들여지고 간직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칼빈이여, 만약 당신이 참되고 분명하고 건전한 것을 만들어 내는 어떤 논증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당신의 대적자들이 반박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것들을 내 놓기를 요청한다. 그리고 이처럼 당신 스스로 실제적으로 진리의 변호자임을 증명하길 요청한다. 당신은 기록된 것 즉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눅21:5)”을 알고 있다. 나 스스로에 대하여 내가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어느 곳이든지 나는 그것을 따르고 동일한 과정을 취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준비가 되어 있다. 만약 당신이 어쩌면 오류가 있다면(우리는 모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칼빈이여, 나는 당신에게 온전한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간청한다. 당신의 그러한 행동이 오류에 악착같이 머무르는 것보다 더 고상하고 더 당신에게 명성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편지 때문에 나에게 분노하지 않기를 나는 부탁한다. 만약 당신이 의롭고 참되다면, 당신은 그것으로부터 아무런 두려움을 전혀 가지지 않는 것이다. 첫째, 그 편지의 논증에 의해서 훈계를 받는 것이 당신 자신의 진보이기 때문이다. 둘째,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행해진다고 당신이 믿고 말한 것처럼, 당신은 반드시 이 편지 또한 나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쓰여졌다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잘 계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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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텔리오 예정론] 거짓 하나님에 대한 비방자의 묘사 거짓 하나님은 긍휼에 느리고 진노에 빠르다. 세상의 가장 큰 부분을 파멸하기 위해 창조하였고 그들을 저주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저주의 원인을 위해서 예정하였다. 그리고 그러므로 영원으로부터 규례를 정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죄들을 뜻하고 원인이 된다. 이 죄들은 결과적으로 필연에 의하여 존재하는데 이는 어떤 도둑질이든 간음이든 살인이든 결코 하나님의 뜻과 자극이 아니고서는 범해지는 것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 안에 부패하고 악한 정서를 단지 허용으로 뿐만 아니라 효과적으로 생각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악하게 사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달리 행동할 수가 없다. 이 하나님은 사단을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그러므로 사단은 자기 자신의 거짓말의 원인이 아니라 반대로 칼빈의 하나님이 그 원인이다. 참 하나님에 대한 비방자의 묘사 하지만 본성과 이성과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은 분명하게 칼빈의 이 하나님과 반대된다. 하나님은 긍휼에 기울어져 계시고 분노에 느리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그로부터 나온 첫 사람을 하나님 자신의 형상에 따라 하나님께서 첫 사람을 낙원에 두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다. 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아무도 결코 멸망하지 않기를 뜻하신다. 그리고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은 사람의 죄가 넘지는 곳마다 하나님의 의가 넘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이러한 의의 빛이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고” 그리고 세상의 구주이신 이 하나님의 아들이 모든 사람을 큰소리로 부른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하나님은 선하고 명예로운 정서를 생각나게 하고 사람들을 범죄의 필연성으로부터 건져낸다(그 안으로 사람들은 스스로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곤두박질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백성들 가운데에 있는 각 양의 질병과 각 양의 병폐를 고치신다. 참으로 하나님은 이처럼 자비하셔서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의 긍휼을 부인하지 않으시고 그것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도우신다. 사실 이러한 참 하나님은 칼빈의 그 하나님의 일을 멸하시고 그 하나님을 문밖으로 내던지기 위해서 바로 마지막 날에 오신다. 이제 이러한 두 하나님은 그들이 본성으로 서로에게 반대가 되는 만큼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자녀들을 낳는다. 그 무자비한 거짓 하나님의 자녀들은 늘 교만하고 무자비하고 시기하고 피흘리기 좋아하고 비방하고 꾸며내고 그들의 얼굴로는 한 가지를 지니고 그들의 마음으로는 다른 것을 지니고 참을성이 없고 성급하고 사악하고 선동적이고 논쟁을 좋아하고 야망을 품고 탐욕적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기 보다는 더욱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한마디로 그들의 하나님 자신이 그들에게 불어넣은 부패하고 악한 정서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다른 하나님은 자비롭고 겸손하고 온화하고 자선을 베풀고 피를 흘리는 것을 가증하게 여기고 열려있고 솔직하고 넘치는 마음으로 진리를 말하고 다정하고 차분하고 평화롭고 소요와 폭동을 싫어하고 명예를 멸시하고 자유롭고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이기보다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한마디로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로부터 불어 넣어진 모든 순수하고 정직한 정서로 가득차 있다. |
[카스텔리오 예정론] 제13항(즉, 비방13)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목적으로나 우연적으로 죄를 짓든지, 우리는 필연적으로 죄를 짓는다(하나님의 측면에서). 제14항(즉 비방14)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뜻으로 무슨 악을 범하든지, 그러한 악은 또한 하나님의 그 뜻으로부터 나온다. 제13항과 제14항에 대한 비방자의 논평과 진술 이 두 조항에 반대하여 당신의 반대자들은 뒤따르는 논증을 주장한다. 만약 우리가 필연적으로 죄를 짓는다면 모든 훈계는 확실하게 헛되다. 그리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들을 백성에게 헛되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느니라 이 성읍에 사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나 그의 목숨은 전리품 같이 되리라(렘21:8,9)” 이 모든 경고와 훈계는 궁극적으로 헛되다. 나는 반복하는데, 만약 사물의 상태와 필연성으로부터 갈데아인에게 도망하는 것이 산을 삼키는 것만큼이나 커다란 불가능하다면, 이 모든 경고와 훈계는 궁극적으로 헛되다. 만약 칼빈이 여기서 하나님의 명령들이 사람들 앞에 그들이 핑계할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우리는 이 것을 또한 실증적으로 헛되다고 대답한다. 만약 어떤 아버지가 그의 아들에게 산을 삼키라고 명하고 그 아들이 그것을 하지 않았다면, 그 아들은 그가 전보다 그의 아버지의 명령 이후에 더욱 핑계하지 못하지 않을 것이다.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만약 하나님이 도둑질하지 말라고 명하시고 하지만 나는 반드시 하나님에 의해서 나에게 주어진 필연성으로 인하여 도둑질해야만 한다면, 그리고 만약 내가 산을 삼키는 것보다 그 필연성으로 인하여 도둑질로부터 더 멀어질 수 없다면, 나는 전보다 그러한 명령 이후에 더욱 핑계하지 못하지 않은 것이다. 한마디로, 칼빈의 반대자들은 만약 이러한 그의 교리가 참되다면 사람은 심지어 하나님의 명령이 그 앞에 주어지기 전에 핑계할 수 없는 것이다. 이로부터 모든 명령은 사람 안에 핑계할 수 없음을 만들기 위한 의도로 주어진 모든 명령은 불필요하며 동시에 헛되다는 결론이 된다. 더 나아가, 만약 악인이 그가 악하기 전에, 즉 그가 심지어 영원으로부터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에 의해 유기된다면, 그리고 만약 그러므로 그가 필연적으로 죄를 짓는다면, 그는 심지어 어떤 계명이 그에게 주어지기 전에 이미 핑계할 수 없고 정죄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그가 어떤 악행을 조금도 행하기 전에 정죄되는 것이다. 반면 모든 법들은 인간적이든지 신적이든지 행위 후에 그리고 행위로 인하여 사람을 정죄한다. |
[카스텔리오 예정론] 제12항(즉 비방12) 악인들은, 그들의 악행들에 의해서, 그들 자신의 일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제12항에 대한 비방자의 논평과 진술 이 제12항에 관하여, 칼빈이여, 이것은 당신의 교리인데, 당신의 반대자들은 이와같이 논한다. 만약 이것이 참으로 경우에 맞다면, 그렇다면, 하나님은 자주 선한 것에 진노하신다. 만약 악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악 자체가 선하다. 하나님의 모든 일이 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만약 악이 선하다면, 필연적으로 경건이 악이라는 결론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악에 직접적인 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우리에게 악을 미워하고 선한 것을 사랑하라고 명령할 때 성경은 우리에게 악을 사랑하고 경건을 미워하라고 명령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된다. 당신의 반대자는 더 나아가 당신의 교리의 이 조항은 참으로 방종주의의 본색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그들은 결과적으로 당신이 방종주의의 적이라고 그토록 결심하는 것에 놀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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