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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와 베드로의 진정한 소망(벧전1:1~5)

[일시] 20220918(주일) 오전9, 11

[찬송] 44장 지난 이레 동안에,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PW: 믿음, MIW:

T.S: 믿음이란 비록 땅에 살아도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바울이 말년에 에베소에 보낸 편지를 통해 교회를 향한 바울의 그 장엄한 스케일의 기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읽었던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셨을 때의 사도였던 곧 어린양의 사도였던 베드로가 죽기 전에 언급한 성도의 산 소망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실 우리에게 '바울' 사도와 '베드로' 사도가 있다는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2천년의 역사 가운데 베드로와 바울의 영성을 가진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사도를 이렇게 부릅니다. 베드로는 어린양의 사도라고 부르며,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사도된 것과 베드로가 사도된 것의 차이를 이렇게 구분하여 말씀했습니다.

2:7~8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이처럼, 두 사도는 부름받은 시기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즉 베드로는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에 부름받아서 사도가 된 것이지만, 바울은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에게는 ㅂ부르심에 있어서 시간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에 대상으로 삼았던 이들 곧 복음전파의 대상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는 것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유대인에게서 점차 이방인으로 전파되어야 했기에, 당연히 복음전파의 초점은 베드로에게서 바울에게고 옮겨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보다 다 이방인에게 관대했던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최초의 이방인의 교회였던 안디옥 교회에 초청받아 사역할 수가 있었고, 이방인들을 전도하기 위해 따로 세움을 받아서, 1, 2, 3차에 걸쳐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여행을 합니다.

왜 그러면, 바울은 이방인 선교에 대해 관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첫째로 그는 이방지역에서 태어난 헬라파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소아시아의 산 성인 길리기아 다소 성의 출신으로서, 헬라파 유대인으로 태어나 자랐고 예루살렘에 유학온 사람이었기에, 그는 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나라에 여행하는 것이 자유로웠고, 헬라어와 로마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기에, 이방인과 이방인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기에 적합한 인물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가 부름받은 목적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인과 임금들과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9:15-16 주께서 [아나니아에게]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임금들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그런데 베드로는 바울과는 약간 달랐습니다. 그는 갈릴리에서 태어나서 자란 히브리파 유대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릴 적부터 회당교육을 받았고, 어려서부터 율법을 잘 지켜왔습니다. 특히 음식법정결법을 잘 지켜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방인과 결코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으며, 이방인의 집에 방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에 그가 처음으로 문을 열어주기를 바랬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들을 주셨기 때문입니다(16:19).

16:18-19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페트로스, 남성명사)[는 것을] 내가 이 반석(페트라, 여성명사) 위에 내 교회를 [장차] 세우리니(건축할 것이다) 음부의 권세(문들)[그것의 권세를] 이기지(우세하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장차]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묶으면) 하늘에서도 [장차] 매일(묶여진 채 있을)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푼다면) 하늘에서도 [장차] 풀리리라(풀려진 채 있으면서 있을 것이다) 하시고

그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한 완벽한 신앙고백 곧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하게 되자, 예수께서는 그 고백을 매우 기뻐하시면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라는 반석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게 될 것인데, 하나의 교회가 아니라 두 개의 교회를 세울 것을 예고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비록 할례자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지만 그가 해야 할 사명맨 처음 '유대인의 교회'를 세울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교회'도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이방인에 대한 생각은 좀처럼 잘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의 생각을 넓혀주시고자 정결법에 관한 조항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그에게 여러 사건들을 안배해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여 헬라파 유대인들이 유대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을 때에, 그들이 머문 지방을 심방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들이 사는 룻다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8년간 중풍병으로 고생하는 애니아를 고쳐주었습니다. 그런데 애니아는 헬라식 이름입니다. 그런후 이방인들이 섞여 살고 있는 항구도시 욥바에 초청을 받아서 가서는 죽은 다비다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살려내었습니다. 그런데 욥바에서 다비다는 헬라인들에게 도르가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유대인과 이방인에 상관없이 과부들을 돌바주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성령의 지시와 욥바에 있는 형제들의 요청이 아니었다면, 그는 죽은 도르가의 시체를 만지려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욥바에 있을 때에 베드로를 자기 집에 모신 자무두장이 시몬이었습니다. 시몬은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베드로를 자기 집에 모셨는데, 그는 유대인들이 볼 때에 부정한 짐승의 주검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베드로였다면 도무지 가지 않을 장소에 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기도 중에 베드로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방인이었던 가이사야의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초로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게 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흩어진 예수 믿는 성도들이 안디옥에 가서 이방인 교회를 세웠을 때에, 그곳에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바나바를 파송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다소에 있는 바울을 불러 같이 목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에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예루살렘의 히브리파 유대인이었던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할례받은 성도들이 왔을 때에, 이방인과 식사하던 베드로는 그만 그 자리를 피해버렸습니다. 이는 책잡히지 않으려 한 행동같았습니다. 그러자 남은 유대인들 역시 베드로와 같이 행동하였고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미혹받게 됩니다.

그러자 바울은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는 모든 자들 앞에서 베드로를 엄히 책망합니다. 사람의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의식법들을 지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다고 말이죠.

그렇다면 그렇게 유대인의 율법 중에서 할례법정결법음식법을 소중하게 여겼던 베드로가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질 무렵이 되었을 때에는 어떻게 달라져 있었을 까까요? 그리고 그가 유언처럼 남긴 이 편지에는 이방인에게 대한 그의 복음전파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베드로전서는 베드로가 A.D.64년경 로마에 있을 때에 쓴 편지입니다. 그런데 이때 베드로는 이 편지를 쓰고 난 뒤 약 16개월에서 2년이 되었을 때에, 네로황제의 기독교인 박해에 의해 순교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드로전서와 곧이어 쓴 베드로후서는 그의 유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편지를 통하여 그가 말년에 가지고 있던 복음전파에 대한 생각들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년의 베드로는 복음전파에 있어서 이방인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그리고 성도들을 향한 그의 진정한 소망은 대체 어떤 것이을까요?

우리는 베드로전서를 통하여, 베드로가 전했던 복음이 얼마나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위해 기도했던 내용과 비슷한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며, 그리고 베드로가 말한 바, 성도들이 가져야 할 산 소망이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서, 우리 성도들이 진정 가져야 할 신앙의 목표가 바울이 말했던 것과 얼마나 얼마나 일치하고 있는지에 관해 정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증인도 두 명 이상이 있을 때에는 법정적인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어떤 믿음의 시련이 불어닥친다고 할지라도 살아있는 소망 곧 하늘에 간직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이어받는다는 기쁨으로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 땅에서 고난을 받고 성도들에게 베드로는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인가요?

대체 하늘에 간직된 산 소망이 무엇이길래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하는 것인가요?

주님이 오시는 날 어떤 것들이 성도들에게 주어지길래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그렇게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주지하시다시피, A.D.64년경 베드로가 죽기 얼마 전에 쓴 유서와 같은 편지의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이 편지에서 그의 복음전파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방인에게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가 전한 복음전파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먼저, 그는 누구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까? 그것은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1절 말씀에 의하면, 그의 편지의 수신자들은 다 이방지역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인데, '흩어진 나그네'라는 표현을 통해서는 흩어진 헬라파 유대인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편지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벧전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벧전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벧전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그는 이제 이방인과 유대인에 관계없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다 형제자매로 받아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방인지역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격려의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는 그들에게 어떤 권면의 말씀을 하였던 것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 중에 3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을 헬라어로 살펴봅니다.

벧전1:3~5[직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자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실 분이시다. 그분은 그분의 많으신 긍휼을 따라, 죽은 자들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후살아있는 소망 안으로 [있게 하셨다]

불멸하고(썩어 없어지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쇠약해지지 않는(시들어버리지 않는) 상속(유업, 기업안으로 [있게 하셨다]  당신들 안으로 하늘들 안에 보존된 채 있는 [상속 안으로 있게 하셨다]

5 너희는 말세에(마지막 때 안에서) 드러나지도록(계시되도록) 준비되어 있는 구원 안으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보존되고 있는 이들[이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거듭난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면, 살아있는 소망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거듭난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면, 성도들이 가져야 할 산 소망이 성도들이 하늘에서 받을 유업이라는 것을 잘 모릅니다.

믿음이 있어도 거듭난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면, 썩어버리고 더럽혀지고 쇠약해지는 이 땅의 유업에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믿음이 있어도 거듭난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면, 불멸하고, 더럽혀지지 않고, 쇠약해지지 않는 하늘의 유업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거듭난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면, 말세에 하나님께서 드러내보이시는 참된 구원이 무엇인지를 모른 채 살아가게 됩니다. .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주시고자 하는 것이 하늘에 간직된 유업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살아있는 소망으로 삼고 부지런히 달려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베드로 당시 성도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는가?

베드로 당시 이 땅에 사는 성도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요? 그들은 무법한 우상숭배를 거부했습니다(벧전4:3). 그리고 음란과 방탕과 향락을 즐기는 생활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니 다른 불신자들로부터 엄청 비방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인격적으로 모독적인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일터에서는 해고를 당하기 일쑤였고, 폭행과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핍박을 피해 토굴과 암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갑바도기아에 벽화에 남아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고 외로웠을까를 우리는 생각해보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앙을 토굴같고 암굴같은 바위 속에 집을 짓고 거기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그림으로 남겨놓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앙을 전해들은 베드로그들이 비록비록 땅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성도라도 그들의 신분인 어떤 존재인지를 편지의 서두에 남겨놓았습니다.

첫째, 그들은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그리고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함고 피뿌림을 얻은 택함받은 자라고 하였습니다(1~2). 너희들은 택함받은 족속이라고 한 것입니다.

벧전1:1~2[직역[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의, 갈리디아의, 갑바도기아의, 아시아의 그리고 비두니아의 흩어짐의 선택받은 나그네들(체류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아버지의 미리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함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함과 피뿌림 안으로 [있는 이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많아지게 되기를 바란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거듭난 자로서 하늘의 산 소망을 가지고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3~4).

벧전1:3~4[직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자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실 분이시다. 그분은 그분의 많으신 긍휼을 따라, 죽은 자들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후살아있는 소망 안으로 [있게 하셨다] 4 불멸하고(썩어 없어지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쇠약해지지 않는(시들어버리지 않는) 상속(유업, 기업안으로 [있게 하셨다]  당신들 안으로 하늘들 안에 보존된 채 있는 [상속 안으로 있게 하셨다]

그리고 셋째, 믿음을 통해 말세에 나타나기로 준비된 구원을 받았고 그것을 보존받고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5).

벧전1:5[직역] 너희는 말세에(마지막 때 안에서) 드러나지도록(계시되도록) 준비되어 있는 구원 안으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보존되고 있는 이들[이다]

 

. 바울의 기도와 베드로의 하늘에 간직된 산 소망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그런데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의 기도를 통해 성도들의 궁극적인 신앙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불러내었으며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상속분이 얼마나 풍성한 것이며,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고 그것을 사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곧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이어서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것은 바울의 기도에 해당할 뿐 성도들의 궁극적인 신앙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바울이 아닌 다른 사도, 베드로 사도의 말씀도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바울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복음을 전파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오. 바울이 한 말을 표현만 다르게 했을 뿐 똑같이 베드로 사도 역시 그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후에 성도들은 산 소망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 사도가 말했던 바, 성도들의 가져야 할 살아있는 소망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아니라, 저 하늘에서 우리에게 주실 '유업'의 분량이 성도에게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유업 곧 상속분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서, 하늘나라를 상속받게 될 자들이 얻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벧전1:3[직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자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실 분이시다. 그분은 그분의 많으신 긍휼을 따라, 죽은 자들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후살아있는 소망 안으로 [있게 하셨다]

한편 바울과는 달리 베드로는 유업의 영원함을 3가지로 강조하여 말했습니다. 바울은 지난주에 살펴본 바와 같이 받을 유업이 '많고' '크고' '풍성하다'는 것을 말했다면, 베드로는 그 유업이 '영원무궁하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이때 베드로는 하늘에서 성도들이 받을 유업은 3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벧전1:4[직역불멸하고(썩어 없어지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쇠약해지지 않는(시들어버리지 않는) 상속(유업, 기업안으로 [있게 하셨다]  당신들 안으로 하늘들 안에 보존된 채 있는 [상속 안으로 있게 하셨다]

첫째, 썩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불멸하는 기업을 받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한 번 받은 유업은 소멸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둘째,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는 악한 영들이 없고 우상숭배같은 것을 행하여 자신은 받은 유업을 더럽힐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우리가 받는 유업은 항상 빛이 나는 것들입니다. 희고 깨끗한 것들입니다.

셋째, 쇠하지(시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시들시들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빛을 발하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고 사는 것들은 어떠할까요? 그러한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썩어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깨끗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더럽혀지게 될 것들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어버릴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 장차 천국에 들어가서 받을 유업은 영원무궁하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바울 사도는 천국에서 성도들이 받아 누리게 될 유업이 3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베드로도 과연 이러한 것을 언급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베드로 역시 하늘에서 받을 성도의 유업이 3가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이 땅의 장막이 아니라 하늘에 마련된 '장막'이 있다고 했습니다(벧후1:14).

벧후1: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둘째, 시들지 않은 '면류관'을 쓰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벧전5:4).

벧전5:3-4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셋째, 하늘에서도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벧전2:9).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왕국)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두 사도 역시 같은 유업에 대해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베드로의 진정한 소망사실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지금 우리 성도들의 진정한 소망은 무엇인가?

그럼,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소망하는 것들은 어떤 것인가요? 시간이 지나면 썩어버리고 시들어버리는 것인가요? 아니면 영원무궁토록 없어지지 아니하는 영광스러운 것인가요?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고로, 믿음이란 비록 땅에 살아도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비록 지금의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함께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면 살수록 우리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어쩌면 믿는 이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과 교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혼자만 살아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우리의 '고난''영광'이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핍박받은 삶''보석'으로 변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이 깊어질수록 눈을 들어 '하늘에 있는 기업'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절대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도 않고, 쇠하지도 아니하는 하늘의 기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 결단의 축복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와 베드로의 간절한 소망이 어떻게 같은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바울의 기도는 성도들이 하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었는데, 베드로의 소망도 성도들이 하늘의 유업을 이어받는 것이라고 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베드로가 처음에는 이방인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그의 말년에는 복음 안에서 모든 사람들을 다 포용하였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바울은 하늘나라의 유업이 '많다'는 것과 '풍성하다'는 것과 '크다'는 것을 중심으로 말했다면, 베드로는 유업이 '영원하다'는 것을 말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베드로가 말한 '하늘의 산 소망'이란 하늘에 간직된 성도의 기업은 결코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의 두 사도들이었던 바울의 기도와 베드로의 소망이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하늘의 산 소망을 갖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기업을 사모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나도 하늘의 상속자가 되기를 힘쓰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나도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천국집과 면류관과 왕같은 제사장직을 사모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성도의 보편적인 신앙이 아니라고 속여온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하늘에 있는 산 소망에 대해 흠모하지 못하게 막아온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하늘의 산 소망에 집중하고 하늘의 상속자가 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2천년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영성가는 바울과 베드로였구나.

2. 베드로가 처음에는 이방인을 구원하는 일에 소극적이었구나.

3.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헤아린 베드로는 말년에 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다 형제로 받아주었구나.

4.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와 베드로의 간절한 소망은 결국 같은 것이었구나.

5. 신앙인의 최고의 목표는 하늘에 준비된 유업을 상속받을 상속자가 되는 것이로구나.

6. 성도가 천국에서 누릴 상속분은 천국집과 면류관과 왕같은 제사장직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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