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내가 진정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고전15:50~58) [일시] 2024년 03월 31일(주일) 오전9시, 11시 [찬송] 찬 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 찬 164장 예수 부활했으니, 찬 160장 무덤에 머물러 PW: 믿음, MIW: 주의 일 T.S: 믿음이란 믿음이 확고부동하여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을 넘치도록 행하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죽으셔서 무덤에 묻히셨는데, 약속대로 3일만에 무덤에서 걸어나오심으로, 그 누구도 사망의 문턱을 넘어설 수 없었는데, 처음으로 사망의 문턱을 넘어서 나오신 것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죽은 나사로가 죽었다가 4일만에 다시 살아난 기적과는 좀 다른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죽은 나사가 다시 살아난 것은 ‘소생’한 것이라면, 예수께서 다시 살아난 것은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은 우리 주님의 부활과는 다른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는 첫째, 살아나기는 했지만 다시 죽을 사람으로 살아난 것이요, 둘째,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니라 썩을 육체를 그대로 가지고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은 ‘소생했다’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예수께서 다시 살아난 것은 ‘소생’한 것이 아니라 ‘부활’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다시 죽지 아니할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가리켜 부활의 첫 열매(아파르케)라고 부릅니다.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이미 일으키심을 받은 채 있다), 잠자는(잠을 자 채 있어온)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로서)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과 앞으로 있을 성도들의 부활은 어떤 공통점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첫째, 예수님도 죽으셨고 우리도 죽을 것이지만 공통점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으니가 우리가 그 다음에 익어가는 곡식의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차이점은 예수께서는 33년반 생애동안 사용하셨던 그 몸을 그대로 가지고 부활하셨지만 우리 사람들이 부활할 때에는 흙으로 만들어진 썩어질 육체를 가지고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영의 몸, 곧 썩지 아니할 부활의 몸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영원한 말씀이 육신이 되셨지만, 우리는 육신이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썩을 육체를 위해 죽은 다음 장례식에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편안하게 흙으로 다시 돌아가게 해 드리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2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즉 우리가 부활신앙에 관한 질문은 크게 2가지인 것입니다.
첫째는 과연 죽은 자가 진짜로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고전15:12~34절).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육체를 가지고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은 사람이 진짜로 부활의 몸을 가지고 부활하는지를 모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영안이 열린 사람의 눈으로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과연 부활의 몸은 어떤 몸일까 하는 것입니다(고전15:35~49절). 그것은 썩어질 육신이 소생하는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보면, 사람이 죽으면 끝입니다. 육신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며, 썩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살아날 때에는 부활의 몸을 입고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부활의 몸은 과연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우리의 육체와는 얼마나 다른지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인간의 육신의 몸은 서로간에 별로 차이가 나지 않지만, 부활의 몸 곧 부활체는 그 영광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15:41).
고전15:41~43 해의 영광이 다르고(알로스) 달의 영광이 다르며(알로스), 별[들]의 영광도 다른데(알로스), [왜냐하면]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별이 영광 안에서 자신을 구별하기 때문이다) 42 죽은 자[들]의 부활도 [역시] 그와 같으니, [그것은] 썩을 것(파멸 안)으로 심고(뿌려지지지만) 썩지 아니할 것(불멸 안)으로 ‘다시 살아나며’(다시 일으킴을 받고 있는 중이다) 43 [그것은] 욕된 것(비천함 안)으로 심고(뿌려지지만) [그것은] 영광스러운 것(영광 안)으로 다시 살아나며(일으키심을 받는 중이다), [그것은] 약한 것(연약함 안)으로 심고(뿌려지지만) 강한 것(능력)으로 다시 살아나며(일으키심을 받는 중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사람이 죽은 다음에 부활체를 입으며, 부활체의 영광이 각각 다른 부활을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것을 잘 믿지를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가지고 부활한 것입니까? 그것은 2가지 의미입니다.
첫째, 육체와 같은 몸의 부활도 확실히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영혼의 부활이 아니라 몸의 부활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몸 안에는 창자국과 못자국과 가시면류관 자국이 영원히 남아있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영원한 간증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영적인 몸의 부활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직접 부활하셨고, 그 몸을 40일동안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제자들은 부활후 40일동안 그 몸을 가지고 이 땅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개인의 주장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본 사람들이 적어도 6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고전15:1~11).
그것은 첫째, 열두 사도의 대표자인 게바 즉 베드로에게 보여주셨고, 둘째, 열두 제자들에게도 보여주셨으며, 셋째, 승천하실 때에는 500여 형제에게 보여주셨고, 넷째, 주의 동생 야고보에게도 보여주셨으며, 다섯 번째로, 모든 사도들에게 보여주셨고, 여섯 번째 맨 마지막에는 조산아와 같은 바울 자신에게도 보여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어떻게 꾸며낸 이야기도, 한 사람의 간증이 아니라 수백명이 다 지켜본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부활하셨다면 성도들도 반드시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영적인 몸으로 부활했듯이 우리 성도들은 영적인 몸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첫째로, 성도에게 왜 부활이 필요한지를 말해 주었으며, 둘째로, 부활이 주는 의미는 대체 무엇인지를 말했으며, 마지막 셋째로, 부활신앙을 가진 자의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고전15:50~58).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떤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래서 첫째, 내가 진정 주님께서 원하시는 부활신앙을 갖고 있다면 지금 나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요? 둘째, 부활신앙은 우리의 먼 미래에 가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인데, 부활신앙의 잣대는 대체 무엇일까요?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성도들이 부활한다는 것은 예수님에 의해 사망이 생명에 의해 패배당하는 것이니, 성도들도 반드시 부활할 것을 기대하며 더욱더 견실하여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부활신앙이 확고부동한 자는 대체 어떤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그것을 3가지로 말합니다. 그것은 첫째로, 신앙이 견고하다는 것이다. 요동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굳게 지속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셋째, 주의 일을 넘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주의 일을 늘 초과할 정도로 풍성하게 준행하는 것입니다.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55년경 바울이 제3차전도여행 중에 있을 때에, 에베소에서 고린도 성도들에 보낸 첫 번째의 편지 가운데 교리에 관한 부분들 중, 마지막 주제로서 ‘부활’에 관한 신성한 계시의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바울은 여기에서 성도들이 왜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부활은 사망을 이긴 놀라운 사건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난 뒤, 부활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첫째, 부활신앙을 견고하게 가지고, 둘째, 이 신앙에서 흔들리지 말며, 셋째, 항상 주의 일을 넉넉히 감당하는 자들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부활신앙이 견고하지 않으면, 신앙이 견고하지 못하고 믿음을 굳게 지속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부활신앙이 견고하지 않으면, 환경의 변화에 따라 믿음이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믿음이 있어도 부활신앙이 견고하지 않으면, 죽은 다음의 몸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믿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부활신앙이 견고하지 않으면, 육체에는 몸이 있지만 영에도 몸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부활신앙이 견고하지 않으면, 주의 일을 맡겨줘도 제대로 일하지 않을뿐더러 초과해서 일하는 것은 있을 수 없게 됩니다.
믿음이 있어도 부활신앙이 견고하지 않으면, 주의 일에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달란트를 내어드리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부활신앙이 견고하지 않으면, 자신의 모든 관심이 이 땅엣 것에만 있을 뿐, 상속받을 하나님의 나라에는 도무다 관심갖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부활신앙이 견고하지 않으면, 주의 일에 힘쓰지 않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죽은 다음에는 몸의 부활이 있음다는 사실을 믿고 그 부활 때에 받을 영광을 위해 힘써 일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가. 왜 성도 중에는 견고하여서 흔들리지 않는 부활신앙을 갖지 못하는가?
첫째, 사람에게는 죽은 다음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 들어가서 하늘의 복을 받아야 진정 복있는 자라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고전15:50~53).
고전15:50~53 [그런데]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피)과 육[체]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상속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파멸하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불멸의) 것을 유업(상속)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장차]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눈깜짝할 시간에) 홀연히(한 순간에) 다 [장차] 변화되리니 52 [왜냐하면] 나팔 소리가 나매(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자들]으로 다시 살아나고(일으키심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장차] 변화되리라(변화될 것이다) 53 [왜냐하면] 이 썩을(파멸의)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불멸의) 것을 [장차] 입겠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이 흔들리고 있는 자는 내가 죽은 다음에 들어가서 살게 될 천국을 잘 믿지 않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사모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 누릴 복이 아니라 하늘에서 누릴 복이라는 것입니다(50~53절). 왜냐하면 우리가 진정 사모해야 하는 복은 이 썩을 육신이 받을 복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영의 몸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서 받을 복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망은 결코 생명을 이길 수 없다는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새로운 진리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54~57절).
고전15:54~57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장차]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찌르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찌르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능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통하여) 우리에게 승리(이김)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죽은 육신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죽음 앞에서 생명은 무력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이란 무엇일까요? 이와 반대되는 것입니다. 거꾸로 생명이 사망을 이기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최초로 보여주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것도 그분은 영원히 죽지 않을 몸의 부활을 직접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우리 인간의 육신은 흙에서 왔기에 다시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우리가 죽은 후에 받게 될 몸은 부활의 주님처럼 그 몸은 썩지 않을 것이며, 영광스러울 것이며, 아주 강할 것입니다(42~43절).
고전15:42~43 죽은 자[들]의 부활도 [역시] 그와 같으니, [그것은] 썩을 것(파멸 안)으로 심고(뿌려지지만) 썩지 아니할 것(불멸 안)으로 ‘다시 살아나며’(다시 일으킴을 받고 있는 중이다) 43 [그것은] 욕된 것(비천함 안)으로 심고(뿌려지지만) [그것은] 영광스러운 것(영광 안)으로 다시 살아나며(일으키심을 받는 중이다), [그것은] 약한 것(연약함 안)으로 심고(뿌려지지만) 강한 것(능력)으로 다시 살아나며(일으키심을 받는 중이다)
그러므로 그날이 참으로 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나. 부활은 대체 어떻게 이뤄지는가?(54~57절)
그렇다면, 대체 생명의 사망을 이기는 부활은 어떻게 어떤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에게 죄가 없을 때 이뤄지는 것입니다(고전15:5~56).
고전15:55~56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찌르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찌르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능력)은 율법이라
예수께서 죽으셨지만 그분이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에게는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망이 힘을 쓸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힘은 바로 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이 사람을 사로 잡으려면 죄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놀라운 영적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망의 실체입니다.
첫째, 사도 바울은 꼭 사망을 사람에게 하듯 말합니다. 이것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둘째,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망의 실체가 나옵니다.
계6:7~8 [그리고 그분이]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너는] 오라 하기로 8 [이에]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것 위에] 탄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와 함께] 뒤를 따르[고 있]더라. ]그리고] 그들이(에게)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가) 얻어(주어졌다). 검(칼)과 흉년(기근)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죽이도록)
여기에 보면, 사망은 청황색 말 위에 타고 있는 존재로서, 사람을 죽이는 존재입니다. 이는 사망이 아주 권세를 가진 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20:13~14 바다가 그[것] 가운데에서[있는]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것들]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들]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안]에(으로)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의] 못이라
여기서도 사망이 마치 인격체처럼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둘째사망 곧 불못 안으로 던져지는 것을 보니, 이것들은 천사들로서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귀신들을 일컫는 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산 채로 불못에 던져질 자는 ‘짐승’과 ‘거짓선지자’ 그리고 ‘사탄’인데(계19:20, 20:10) 이들은 모두 ‘귀신의 영’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16:13~14 또 내가 보매 개구리[를] 같은(닮은) 세 더러운(깨끗하지 못한) 영[들]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부터] 나오니 14 [왜냐하면] 그들은 귀신[들]의 영[들]이라(이기 때문이다) 이적(표적)[들]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떠나]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실제로 사망을 영안을 열어서 보면, 엄청난 많은 수의 새까만 영들인데, 공처럼 동글동글 말아져 있는 쥐며느리깥은 영들이 사망의 실체입니다. 이들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의 부하들입니다. 사망의 세력을 잡은 귀신들의 우두머리가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그것은 ‘사망’이라는 귀신들에게 사로잡혀 일평생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놓아주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히2:14~15 자녀들은 혈(피)과 육[체=살]에 속하였으매(참여한 채 있어온 이후로) 그[분]도 또한 같은 모양(방식)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동참하심)은 죽음(사망)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가지고 있는)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쓸모없게 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해방시키려) 하심이니
이를 위해 예수께서 친히 죄가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값을 지불하신 대속죄일 어린양이셨기 때문에, 더 이상 사망이라는 귀신이 우리 믿는 이들을 주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는 죽고 사는 모든 것이 예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계1:17~18 내가 [그분을] 볼 때에 [나는] 그[분]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분]가 [그의]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나는] [현재]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죽은 자가 되었다). 볼지어다. [나는]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부활신앙에서 흔들리지 않으면서 날마다 우리 몸에서 사망으로 역사하고 있는 죄를 제거해주어야 합니다. 먼저는 예수 믿은 후의 죄를 제거하고 그리고 예수 믿기 전의 죄를 제거하고, 자신의 조상들의 죄까지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망이 우리를 삼킬 수 없게 됩니다. 이때 죄를 인격화시키면 그것이 곧 귀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망이 나를 삼키게 하지 않으려면 날마다 회개하여 자기 몸에서 귀신을 제거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다. 부활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나타나는 특성은 무엇인가?(58절)
고전15:58 그러므로(그 결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견실하며(확고부동하게 되어라). [너희는] 흔들리지 말고 [있어라]. [너희는]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고 있어]라(풍성하게 되고 있어라). 이는(왜냐하면) 너희[의] 수고(노력, 노동, 고통)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알아차린 채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뒤집으면 부활신앙을 가진 자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자신이 가진 믿음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점철되어 있어서 그 믿음이 확고부동하고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신앙이 어떤 환경에 놓여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셋째,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그런 자는 주의 일을 넘치도록 초과하면서 행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 일’이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한 일 곧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일을 나도 행하는 것입니다(마9:35). 그리고 이 땅 위에 음부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가도록 돕고, 천국에서 상얻는 자가 되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믿음이 확고부동하여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을 넘치도록 행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나.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그렇다면, 과연 나도 과연 부활신앙을 가진 자일까요? 이상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부활신앙은 이 땅에 사는 육체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신앙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부활체가 누릴 영광스러운 지위와 영광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나. 결단의 축복
우리 성도들에게 왜 부활신앙이 중요합니까? 죽음이 생명을 이길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중요합니까? 우리도 예수님처럼 다시 살 수 있다는 것이어서 중요합니까? 부활신앙이 중요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는 것을 붙들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잠도 못자고, 옷도 못입고 살아도 이것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기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다가 침뱉음을 당해도, 매를 맞고 옥에 갇힐 지라도, 그리고 믿음 지키다가 목이 잘려나가는 것도 행복한 것은 우리가 부활체를 입는 그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했고 충성했던 모든 것이 하나도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부활체를 입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이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영원히 누릴 나 자신의 위치와 신분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영원이 누릴 나의 누림이 어떤 것인지를 비로소 찾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체를 입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금방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영원히 누릴 영광의 크기가 얼마인지를 알려주는 것이기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수고하는 모든 것은 그날이 되면 다 밝혀질 것입니다. 진실로 수고했는지, 사람들 앞에 보이려고만 했는지를 알려줄 것입니다. 내가 오직 주 예수님을 위해 살아왔는지, 나의 명성와 인기를 위해 살았는지를 그날에 알려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1. 주여, 부활신앙의 핵심은 우리가 죽은 후에 받아서 누리게 될 부활체의 영광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주여, 사람이 부활신앙을 갖지 못하는 데에는 죽은 후의 세계를 육안으로 볼 수가 없으며, 죽음 앞에서 사람은 무력하다는 것만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3. 주여, 예수께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에게는 죄가 없었으므로 사망이 그를 더 이상 사로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4. 주여, 사망의 실체는 사망을 담당하는 귀신들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5. 주여, 참된 부활신앙을 가진 자는 믿음이 확고부동하며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에 넘치도록 힘쓰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6. 주여, 그동안 주의 일을 넘치도록 하지 못했었나이다. 용서해 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1. 주여, 이제는 주의 일에 힘쓰겠나이다.
2. 주여, 이제는 주의 일이라면 넘치도록 하겠나이다.
3. 주여, 이제는 믿음만을 붙들겠나이다.
4. 주여, 이제는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겠나이다.
5. 주여, 이제는 장차 있을 영원한 부활체의 영광을 가슴에 깊이깊이 새기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1.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부활체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이 세상과 육신의 것만을 추구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2.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주의 일에 힘쓰는 것을 두고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시도라고 속이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3.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4.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고 더욱더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에는 소생 기적과 부활 기적이 있구나.
2. 예수께서는 부활 기적으로 살아나신 분으로 다시 죽지 아니할 부활이자 썩지 아니할 몸으로 살아나신 것이로구나.
3. 예수님의 부활의 특수성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부활할 것인지에 대해 자꾸 의심하고, 부활체가 누릴 영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주목하지 못하는구나.
4. 육안으로는 죽은 다음에 과연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가 있는지, 사망이 생명을 이길 수 없는지를 볼 수 없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부활 신앙이 흔들리고 마는구나.
5.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사망이라는 귀신들을 가지고 있는 마귀를 쓸모 없게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 일평생 종노릇하는 자를 놓아주려 하심이었구나.
6. 부활신앙이 견고한 자는 믿음이 확보부동하고, 환경에 흔들리지 않으며, 끝까지 주의 일에 더욱더 힘쓰는 자들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