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내가 부활생명으로 살고 있다는 흔적(빌3:10~14) [일시] 2016년 04월 16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찬161장 할렐루야 우리예수, 찬164장 예수부활했으니, 찬162장 부활하신 구세주 PW: 믿음, MIW: 부활생명으로 사는 T.S: 믿음이란 부활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주일은 예수께서 죽으셨지만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음부의 문을 열고 밖으로 살아서 나오셨음을 증거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죽으심은 온 인류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며, 그분의 살으심은 온 인류를 위한 생명의 부활임을 온 세상에 드러내주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부활절은 기독교의 최대의 절기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전능자이신 예수님을 자신의 마음 속에 모신 자는 2가지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는 자신이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오는 ‘사는 생명’이요, 또 하나는 예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에 가지고 들어오시는 ‘부활생명’입니다. 사는 생명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받은 생명이라면, 부활생명은 믿을 때에 새로 들어오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리킵니다. 또한 사는 생명이 죽을 수 있는 사람의 생명이라면, 부활생명은 죽을 수 없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내가 부활생명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자신이 부활생명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 곧 부활생명의 흔적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또한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눠보겠습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만큼 이전에 자신이 가졌던 사는 생명으로 살지 않고, 그때로부터는 부활생명으로 살려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내 생명대로 살기도 바쁘기만 하며, 받은 부활생명은 나의 생명도 아닌데, 굳이 부활생명으로 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요?
부활생명은 눈에 보이거나 손에 붙잡히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부활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2)청중적 접근
오늘 누군가가 나에게, 자신이 가진 ‘사는 생명’으로 사는 것도 시간이 없는데, 예수께서 주신 부활생명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62년경 사도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자신이 2차전도여행 때에 개척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서, 더 이상 자신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사는 생명으로 살지 않고, 이제는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부활생명으로 살아서, 부활생명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달려가노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자신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사는 생명을 더욱 가꾸어나가도 어렵고 바빠 죽겠는데, 어찌 예수께서 새로 주신 부활생명으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사는 생명으로만 살려고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부활생명으로 살려고 하지 아니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믿는 자가 되었어도 부활생명에 대해서 관심조차 가지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죽으면 없어지고야마는 사는 생명에 목숨을 겁니다.
믿음이 없으면, 영원한 상급으로서 천국에서 누릴 복 곧 부활생명으로 살아서 얻을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합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사는 생명으로 살지 않고 이제부터는 믿음으로 부활생명으로 살아보려고 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가. 사는 생명과 부활생명은 무엇인가요?
사는 생명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이 가진 혼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혼의 욕구가 바로 사는 생명입니다.
이제 사도바울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오로지 사는 생명으로만 살았습니다. 사는 생명을 따라사는 그의 욕구는 지나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있는 혼의 생명을 따라 살아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믿는 사람들을 붙잡아 옥에 넘기고 죽이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혼의 생명이 더 영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오늘 말씀 바로 앞의 빌3:6의 말씀을 봅시다. 그는 열심히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는 생명으로 자신을 더 영광스럽게 하려고 율법도 철저히 지켰습니다. 자신의 사는 생명이 자신을 영광스럽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빌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던 어느날 그만 그는 부활생명을 가진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어느날 갑자기 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전까지 그는 부활생명이 없었기에, 사는 생명으로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는 생명으로 살고 있는 사울에게 예수님은 미치광이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나사렛 촌동네에서 나온 목수의 아들로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조금 안다면서 구경꾼을 모아 가르치는 선지자정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죽고난 후에, 그분이 살아났다고 말하는 제자들이 정신이 좀 돌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지금 하늘로부터 그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는 그날부터 밥을 먹을 수 없었고 잠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역사에서 사라진 줄로만 알고 있던 예수께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셨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고 없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하늘에서 그분의 음성이 또 들려왔습니다. “너는 일어나서 시내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게 어떻게 행할 것인지를 네게 알려줄 자가 있을 것이다(행9:6)” 그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다메섹으로 들어갔고, 직가라하는 동네의 유다의 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 사울아, 주님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행9:17)”고 안수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겨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제 예수께서 구약에서 예언되어온 메시야이심과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이 임하자,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꿈꾸어왔던 모든 소원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가 쑥 깨달아졌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빌3:7-9a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이익이 되었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손)해로 여길뿐더러 8 (참으로) 또한 모든 것을 (손)해로 여김은(생각한다. (왜냐하면)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탁월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단번에)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자 함이라) 9 (그리고)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그렇습니다. 그는 이때까지 오직 자기의 사는 생명으로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것을 위해 그는 그렇게 까다롭게 배우기 어려운 율법도 열심히 익혔습니다. 그리고 윗사람들에게 더 잘 보이려고 안간힘도 썼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지만 장차 산헤드린공회원이 되기 위해 사두개인들에게도 잘 보이려고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서 예수믿는 자들을 잡아다가 가두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갈릴리출신의 미치광이 선지자이요 죽어 없어진 나사렛예수를 따르는 이단자들을 처단하는 것이 자신이 출세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대낮 정오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에게 안수기도해주어 눈을 뜨게 되었으며, 자기의 사명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방눌은 그때부터 그분이 누군지 제대로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셔야 했는지를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대체 어떻게 되어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졌습니다.
빌3:10-11 내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권능과 그(분의)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그래서 그는 제일 먼저, 사는 생명으로 살아왔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섬기지 시작했습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래서 그는 이전까지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사는 생명으로 살았지만, 그후부터는 예수께서 자신 안에 가져다 준 부활생명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에게 있어서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체험은 그로하여금 사는 생명으로 살던 것에서 벗어나 부활생명으로 살게 만들어준 귀중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는 생명이 바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천연적인 생명이라면, 부활생명이란 부활하신 예수님이 믿는 자들 안에 들어오실 때에 가져오신 새로운 생명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부활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이요, 죽음이 정복할 수 없는 생명인 것입니다.
고전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사는 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생명주는 영)이 되었나니
한편, 모든 생명에는 다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봄철에 식물의 싹을 보고 꽃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저마다 자신의 생명이 어떤 것인지를 드러내기 위해 저마다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자기의 생명이 아름답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의 능력을 자랑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는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사는 생명에도 욕구가 있습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으려 합니다. 돈과 권력을 쥐어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합니다. 이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즉 자신이 높아지고 인기를 얻고 권력을 얻을 수는 있는 것이라면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습니다. 마찬 사울이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쳐넣고 열성분자들을 쳐 죽여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사는 생명에게 단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과 동시에 흔적없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 순간의 물거품과 같은 것입니다. 아침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부질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죽을 때에 비로소 아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어느날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에게 찾아오시더니, 그의 안에 다른 생명을 집어넣어주셨습니다. 그것이 곧 부활생명입니다.
나. 내 안에 있는 부활생명으로 산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러므로 부활생명이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붙잡으신 후에, 주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그것을 행하며 살게하는 생명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 부활생명으로 살았다는 것은 그가 이제는 자신의 사는 생명으로 살지 않고, 부활생명으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에게 들어온 부활생명이 가르쳐 준 그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이룬 상태에 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잡혀버렸던)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예수께서 바울을 불러내었을 때, 부활생명은 바울에게 그가 걸어가야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결국 바울은 부활생명으로 인하여, 자신의 사명을 확실히 알게 되었고, 그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사명이 무엇이었습니까?
행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20:24 내가 달려갈 길(노정)과 주 예수께(로부터) 받은 사명(봉사직무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마칠수만 있다면) 나의 생명(목숨)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여기에 나오는 바울의 사는 생명이란 그의 혼의 생명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부활생명을 만나자, 바울은 사는 더 이상 사는 생명을 따라 살지 않고, 부활생명을 따라 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그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빌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붙)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관심갖지 않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좇아가노라)
바울은 이제 복음전파의 그 일을 곧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는 그날까지 그 사명을 감당하다가 일생을 마쳤습니다.
한편, 각 사람의 욕구가 다 다르듯, 사람에게 들어오신 부활생명도 다 욕구가 다르기 때문에, 부활생명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다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믿는 이들이 다 바울과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생명의 욕구가 각각 다르게 나타나듯, 각자의 사명도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모세시대의 예를 들어봅니다. 모세가 해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받아서 선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옆에서 아론이 해야 할 사명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갈렙이 해야 할 사명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군대를 몰고가서 적군을 무찌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미리암이 해야 할 사명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는 춤을 추며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신약의 사도바울의 예를 들어봅시다. 그의 사명은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자손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물질로 봉사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힘들어 지쳐 쓰러지거나 풍토병에 시달릴 때 그를 치료해주는 의사 누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을 듣고 본받아 미래의 목회자로 훈련받고 있는 디모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협력자로서 바나바와 실라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복음전파를 위해 각자 자신의 사역으로 사도바울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러자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과 함께 협력하는 자들이 있어서, 그들 각자의 사명이 어울어질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 내가 붙잡고 일평생 따라갈 부활생명의 흔적이 나에게도 과연 있는가?
그렇다면, 부활생명이 가리키는 최종적인 푯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입니다. 여기서 ‘위’라는 것은 하늘이자 하나님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실 때, 곧 사는 생명으로만 살고 있는 사울을 불러내실 때에, 주님께서는 그냥 불러낸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주시기 위해 하늘에서 준비해 둔 상급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생명은 바로 이러한 자신만의 상급, 하늘에서 얻을 상급을 얻기 위해서 지금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거룩한 욕구라고 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사람은 부활생명을 따라 자신의 사명을 위해 살아야 아릅답습니다. 사람으로 부활생명으로 살아야 복됩니다. 사람은 부활생명으로 살아야 하나님께서 위에서 준비한 상급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값진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거룩한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날도 오직 그것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자신의 육체의 욕구 곧 사는 생명의 욕구를 쳐 복종시켰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겼습니다. 그래야 사는 생명으로 살지 않고 사는 생명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사는 생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부활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부활생명으로 살아서 자신의 사명을 깨닫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부활생명으로 살아서 하늘에서 하나님이 준비한 상급을 얻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사도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더 이상 사는 생명으로 살지 않고, 자기 안에 들어온 새로운 생명 곧 부활생명으로 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발견하게 되었고, 끝내 그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생명이 끊임없이 자신을 일으켜 세워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넘어져도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고달퍼도 다시 오뚜기처럼 그를 일어나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자신의 사명을 끝내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주님이 준비한 상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렇습니다. 바울에 들어온 부활생명은 그를 어떤 상황에서도 지치지 않게 했습니다. 좌절하지 않게 했습니다. 낙심하지 않게 했습니다. 기운을 차리게 했습니다. 그것이 부활생명의 능력인 것입니다. 결국 그는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음을 증거해 열매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발자취는 오늘날까지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 골로새교회의 이름으로 남아있습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들어온 부활생명은 내가 걸어가야할 길을 찾아줍니다. 하늘의 상급을 얻도록 나를 이끌어갈 것입니다. 사실 믿는 자라도 해서 다 똑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부활생명은 각자가 가야 할 길들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찾아줍니다. 그러면 자신의 사명이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천국에서 받을 상이 무엇인지도 보이게 될 것입니다.
2)결단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사는 생명으로 살지 말고, 부활생명으로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여러분도 이제 부활생명으로 살려고 하기만 하면, 그 생명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늘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천국과 하늘상급을 얻게 해 줄 것입니다.
나. 결단의 축복
부활생명은 사실 내 생명이 아닙니다. 내가 믿을 때에 들어온 새로운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에 주입해준 생명입니다. 곧 예수의 생명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생명은 예수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는 사는 내 생명으로 살아서는 아니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내 생명은 아담의 범죄이후로 타락한 본성에 물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이들은 죄짓기를 좋아하는 사는 생명으로 살아서는 아니 됩니다. 이제는 내 안에 들어온 거룩한 생명, 예수생명으로 살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부활생명은 나로 하여금 나의 사명을 발견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 생명이 나를 일으켜 세워줄 것입니다. 그 생명이 나를 일으켜 다시 도전하게금 우리를 인도해 줄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내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내가 하늘에서 받아야할 상급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고로 부활생명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생명으로 산다는 것으로서, 결국 내 사명을 향하여 산다는 것이요, 하늘에서 받을 상급을 바라보고 끊임없이 달려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우리도 이제는 바울처럼 부활생명으로 살아서, 이 세상에서 내가 부활생명으로 살고 있음을 흔적으로 남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 흔적은 고스란히 천국에서 상급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이제는 사는 생명으로 살지 않고 부활생명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모든 생명에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는 생명으로 산다는 것은 부패한 본성을 따라 사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부활생명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람의 성품이 각각 다르듯 부활생명도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부활생명으로 살려고 할 때 사명도 깨닫게 되고 하늘 에 준비된 상급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부활생명으로 살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사는 생명으로 살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부활생명으로 살아 내 사명대로 살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내 사명에 충실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예수생명만 따라가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부활생명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는 생명은 십자가에 못박힐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부활생명을 따라 살지어다. 내 사명에 충실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사는 생명이란 사람이 태어날 때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천연적인 생명이로구나.
2. 부활생명이란 예수님을 영접할 때 내 안에 들어오는 예수생명이로구나.
3. 사는 생명을 죽음을 넘기면 그때부터 부활생명이 내 안에서 활동하는구나.
4. 부활생명을 따라 살 때 자신의 사명도 발견하게 되는구나.
5. 자신의 사명에 충실한 자가 천국에서 부르심의 축복을 받게 되는구나.
6. 부활생명을 따라 살면 설령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가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