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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회개와 천국복음(62) 바울의 회개가 주는 교훈(14:19~23)

[일시] 20200920(주일) 오전9,11시 주일낮오전예배

[찬송] 36장 주 예수 이름 높이어, 293장 주의 사랑 비칠 때에, 317장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PW: 회개, MIW:

T.S: 회개란 자신을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충성과 감사함으로 일평생 보답하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이 몇 명쯤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은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데, 나는 그 사람이 어렵고, 그 사람을 감당하기가 버겁기만 합니다. 그런데 바울에게도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자신의 동족이었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바울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대하기 힘든 사람들은 율법에 열심이었던 자기의 동족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 중에는 바울을 없애버리기 위해 아예 작정하는 암살조직까지 생겼나으니, 바울이 3차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 도착할 무렵에는, 바울을 죽여 없애버리기 위해 당을 지어 음모를 꾸미고 있던 자들이 무려 40여명이나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23:12-13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음모를 꾸미고 있는)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오늘 본문 말씀 중에는 그러한 유대인들이 갈라디아지방의 한 성인 루스드라에게까지 와서 루스드라 사람들을 설득하더니 결국에는 바울을 돌로 치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7월부터 회개와 천국복음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22에 걸쳐 신구약의 인물들 중에서 회개했던 자의 특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구약의 인물들로는 , 아브라함, 다윗왕, 아합왕, 므낫세왕, 니느웨성 사람들 등을 살펴보았으며, 신약에 들어와서는 베드로, 음부에 떨어진 부자, 탕자, 삭개오, 어느 세리, 한 편 강도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신약의 가장 중요한 인물들 중의 하나인 바울그의 회개에 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바울은 진정 회개한 사람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바울의 회개를 통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의 회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회개의 중요한 교훈에는 대체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게 되었고 성밖에 내던져졌으나 곧 일어나 그 성에 도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믿는 형제들에게는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그때 다시 살아난 뒤, 왜 자신을 돌로 쳐죽였던 자들을 고소하지 않았던 것인가요? 바울에게는 로마시민권이 있었기 때문에, 재판없이 자신을 때리거나 죽이게 되면 오히려 그들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텐데, 바울은 왜 그들에게 자신이 가진 로마시민권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인가요?

반대로 바울은 자기를 돌로 쳐죽인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을른지도 모르는 루스드라에 왜 또 다시 들어가서 복음을 전파하려 했을까요?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49년경, 갈라디아 땅에 위치한 루스드라성에서 바울에게 일어난 한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걷지 못한 사람을 걷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서 숭배하려하자, 그들을 설득하여 자신도 사람이라면서, 자기가 와서 루스드라 사람들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러한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라면서, 그들이 이제는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증언하였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런데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부터 바울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유대인들이 이고니온을 거쳐 루스드라까지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바울일행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많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을 전도하여, 교회를 세운 것에 앙심을 품고는 바울을 없애버리기 위해 온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을 떠나 이고니온도 거쳐왔는데, 이고니온에서도 그들은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돌로 치려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루스드라에 나타난 그들은 이제는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스니다. 그리고 끝내 바울을 돌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쓰러졌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그가 죽은 줄로 단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도시 밖으로 끌어다가 내동댕이쳐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몸과 생명을 보호해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시체를 보고 있는 가운데, 바울은 그 가운데서 일어섰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바울은 다시 루스드라 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튿날에는 옆동네인 더베로 전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더베는 놀라운 결실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제 1차전도여행을 마치고 되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자신이 전도했던 지역을 역순으로 되돌아갔는데,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을 거쳐 수리의 안디옥교회로 되돌아갔습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이 있는 동네로 다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기를 죽이려 했던 자들을 오히려 고소하여 그들에게 본대를 보여주려고 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고난이 두렵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할 수만 있으면 고난을 피해보려고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의 목숨이 언제나 위기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되면 전도하는데 움츠려듭니다.

믿음이 없으면, 환난을 겪으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두려우며 전도를 계속할 수 없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따라 충성하였고 또한 복음을 전파하다가 고난을 받았지만 감사하면서 전도자의 일을 수행했습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그럼, 바울은 무슨 이유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복음전파를 하다가 고난도 달게 받았으며, 그토록 어려운 선교를 계속한 것일까요?

 

. 바울은 회심한 것인가 회개한 것인가?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체험했던 그 경험을 일컬어 바울의 회심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바울의 회개라고는 말하지는 않습니다. 왜 사람들은 다메섹도상에서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식음을 전폐하고 3일동안 금식하한 뒤에 아나니아로부터 안수를 받고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면서 성령세례를 받은 사건을 가리켜, “바울의 회개라고 말하지 않고, “바울의 회심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일까요?

바울은 진정 회심을 한 것인가요 아니면 회개한 것인가요? 성경에서 사실 그 어느 곳에서도 회심이라는 단어는 사실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회개라는 단어만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개신교단 중에는 회개라는 말보다는 회심이라는 단어를 더 즐겨 사용하는 교단이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회심이라는 것과 회개라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요? 한자로서 의미상 이 두 가지 단어는 사실 대동소이한 단어인데도 말이죠. 하지만 실제로 이 단어가 교회 가운데 사용될 때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회심이 일종의 개종을 의미한다면, ‘회개어떤 삶과 상태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둘째, ‘회심이 주로 단회적인 사건을 가리키고 있다면, ‘회개반복적인 것을 가리킨다 하겠습니다.

셋째, ‘회심회개에다가 믿음까지 포함하는 의미라면, ‘회개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이키는 것에 집중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넷째, ‘회심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전환을 의미한다면, ‘회개다시 반복할 수 있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방금 설명한 관점을 통하여 다메섹도상에서의 바울이 경험했던 것을 평가한다면, 바울은 그때 회심한 것인가요 아니면 회개한 것인가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다메섹에서의 바울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회개하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애통하고 통회자복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통곡했다든지, 가슴을 치면서 울었다든지 하는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회개하지 않았던 것인가요? 그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는 회개없이는 죄사함을 받을 수 없으며, 회개없이는 구원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회개의 중요성을 모를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바울은 그날 회심하였고 그때부터 회개하기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는 진정 어떻게 회개를 한 것일까요?

 

. 바울은 무슨 죄를 지었는가?

사실 바울이 그날 회심한 것이 사실이고 또한 그날 회개한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날 회개를 경험했고 일평생을 걸쳐 회개를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그날 회개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분명히 회개가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고후7:10).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그렇다면, 그날 바울은 무슨 죄를 지었을까요? 바울은 훗날에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소개한 바가 있습니다.

3:5-6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는 율법의 규정을 따라서 볼 때에는 흠이 없던 자였다고 자신을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한 것은 무슨 죄에 해당하는 것인가요? 특히 스데반집사를 돌로 쳐죽이는데 가담했던 자였습니다. 그것은 죄가 될까요 죄가 아닐까요?그는 율법의 의로 볼 때에는 자신이 흠이 없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말할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율법규정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24:13-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저주한 사람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그것(하나님을 저주하는 것)들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바울이 생각할 때, 스데반이 지극히 높으신 분은 손으로 지은 성전에 계시지 아니하신다고 설교했으니, 그가 성전을 모독한 것은 곧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그는 당연히 돌에 쳐죽임을 당해야 마땅한 자였습니다. 또한 그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죽일 때에도 그를 성전 밖으로 끌거나간 후에 거기에서 돌로 쳐죽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나타나 있는 규정대로 그렇게 행했던 것입니다(24:13~16).

그러나 훗날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보니,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로 행했던 것을 알게 되었으며, 죄없는 스데반을 죽인 것을 살인죄를 저지른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나사렛 이단의 괴수였던 예수를 믿는 자를 죽였는데,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예수님은 여호와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으로서, 그분을 따르는 이들을 경멸했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늘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는 스데반이 아니라 정작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바울은 자신을 죄인의 괴수(첫째가는 이)라고 말했습니다(딤전1;15).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첫째가는 이)니라

특히 주님께서 핏값을 주고 산 지체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말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죽인 스데반은 주님의 몸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는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하였으며, 그리고 그때에는 알지 못하여 그렇게 행했었노라고 말했습니다.

고전15: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딤전1:12-13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신성모독자)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한 마디로, 바울이 저지른 죄는 살인죄신성모독죄를 지은 것입니다.

 

. 바울의 회개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바울이 사실 그러한 악한 죄를 저질렀지만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예수믿는 자들을 미친 사람이라고 취급하면서 그들을 없애버리기 위해 별별 방법을 다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에서 가던 중에서 그는 하늘로부터 비치는 강렬한 빛을 보게 되었고 그 가운데 말씀하시는 예수님도 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자 바울은 자기 앞에 나타난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그분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이 한 마디에 그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첫째,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예수께서 죽어서 사라지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셔서 일하고 계시는 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바울은 예수님이야말로 육체를 입고 오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딤전3;16). 왜냐하면 한 번 죽어서 땅에 묻힌 자는 절대 다시 살아서 나타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가 그토록 핍박하고 잔해하였던 교회의 성도들을 예수께서는 자신의 몸으로 생각하면서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스데반을 박해하고 죽인 것은 곧 예수님을 그렇게 한 것이라는 사실이 스스로 깨달아졌습니다.

그러자 그는 주님께 얼마나 송구하고 죄스럽고 망극한 마음을 갖게 되었을지를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통곡과 회개는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회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교회를 잔해한 것에 대하여, 그는 일평생의 속죄를 그때부터 실천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제 유대 랍비로서 가던 길을 멈추고, 이제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로 결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함에 있어서,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목숨이 끝나는 그날까지 그일을 결단코 멈추지 않을 것을 결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 경험하는 모든 고난과 핍박은 고난과 핍박이 아니라 그의 속죄의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결코 핍박과 고난 앞에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다가 그러한 일을 만나게 되도, 결코 고난에 대해 원망하거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울 자신에게만 베푸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다메섹 체험이후 그의 삶을 조명해보는 그에게 회개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회개의 모습이 꼭 감정적인 결과로만 나타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3:12).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바울의 회개의 모습은 어쩌면 삭개오의 경우가 좀 비슷합니다. 그가 흘린 눈물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속으로 흘린 눈물이었기에 어떻게 기록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가 그 뒤로 살다간 그의 의지적인 행동이, 그가 진실로 회개한 자였다는 것을 알게 해 줄 뿐입니다.

둘째, 회개는 주님께서 부탁하신 부르심과 택하심에 대한 충성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9:15). 바울은 회심한 즉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부탁하신 사명에 충성하였습니다. 그는 복음전파를 일생의 과업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어떤 죽음도 각오하며 앞으로 나가는 투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20:24).

그럼, 그의 사명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래서 그는 어떤 길을 걸어갔습니까?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20:24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셋째, 회개는 고난을 기쁨으로 맞이하면서 감사로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루스드라 사건입니다. 그는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거의 죽을 뻔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성 밖에 버리고 떠났습니다. 제자들도 그를 다시 살리기 위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그가 죽은 줄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두 개골은 돌에 맞아 찢겨져서 엉겨붙어 있었고 옷은 거의 찢어져 있었으며, 온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것을 고난을 자신의 속죄로 받아들이고 있는 바울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순간 그의 찢겨진 상처를 꿰매어주셨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니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여기서 그가 일어났다(아나스타스)”는 동사를 보면(동분과능), “아니스테미로서, “아나(다시)”히스테미(서다)”가 합쳐진 말로서, “다시 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뜻하는 다른 용어로 많이 사용된 단어입니다.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다시 살아나서 자신을 돌로 쳤던 자들에 대해 앙갚음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일을 감사했습니다. 나도 전에는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거두어가지 아니하시고, 나를 려주신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넷째, 회개는 한 순간에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평생을 두고 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는 자신이 지었던 죄는 한 순간의 일로 마무리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평생을 두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자신이 죄를 지은 것에 대한 속죄의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바울은 자신의 죄인의 첫째가는 이였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용서해주시고 충성된 이로 여겨주셔서, 복음전파의 기회를 주셨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받는 고난을 자신의 회개의 일환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했습니다.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는 회개를 한 순간의 감정적인 것으로 취급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그것은 과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난까지도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갔습니다.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는 실컷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바울은 동료인 실라와 더불어 하나님을 기쁘게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회개란 애통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불러주신 주님의 크신 은혜에 잎평생을 충성과 감사함으로 보답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그때 바울이 회개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오늘날의 기독교가 이 땅에 존재케 한 원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특별히 루스드라에서 자신이 돌에 맞아 죽어가는 고통을 겪었지만 그는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그의 감사함 때문에 바울에게는 큰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루스드라 성에 있는 디모데를 자신의 후계로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데반이 죽어갈 때에 기도함으로 바울을 건져내었듯이, 바울도 그때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디모데를 건져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을 속죄로 알고 고난을 감사로 바꾼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선물로 디모데를 안겨준 것입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 결단의 축복

사실 회개란 감정적인 변화로도 얼마든지 표현될 수 있습니다. 아니 표현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일순간의 감정적인 변화로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일평생 헌신함으로,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에게 충성됨으로 회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고난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떠한 고난을 감사함으로 받으며 회개를 실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더 큰 놀라운 계시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오늘날에도 이 땅위에도 많이 나타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무엇이 진정한 회개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회개는 꼭 감정적인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회개는 일평생동안 지속해야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남을 핍박하고 살해했던 자가 회개할 때에는 일평생 자신이 고난받는 것을 회개로 알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어떤 고난이라도 기쁘게 맞이하면서 감사로서 회개를 표현하는 이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회개는 죄인을 은혜로 불러주신 부르심에 충성하는 것으로도 나타날 수 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일평생 회개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감사하면서 회개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충성함으로 회개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고난받음으로 회개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열매로 회개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진정한 회개는 잃어버린 채, 얄팍한 회개를 회개라고 속였던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충성과 감사함은 버린 채, 말로만 회개해도 괜찮다고 속이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고난 중에도 감사함으로 충성함으로 회개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회개에는 다양한 표현들이 있구나.

2. 회개는 한 순간에 하는 회개도 있지만 일평생을 통하여 행하는 회개도 있구나.

3.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성하는 것도 회개의 한 방편이로구나.

4. 어떤 고난이라도 기쁘게 감사함으로 받는 것이 곧 회개였구나.

5. 바울은 한 순간에 회심했지만 회개는 일평생을 두고 실천했구나.

6. 진정한 회개는 반드시 선한 열매가 꼭 뒤따라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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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가짜 천국과 지옥,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06) - 천국편(05) - 테레사 수녀는 과연 천국에 있을까?(엡6:12)_2020-10-18(주일) 갈렙 2020.10.18 303
304 적당히 회개해도 되는가?(눅3:7~9)_2020-10-11(주일) 갈렙 2020.10.11 181
303 회개와 천국복음(76) 영적 분별력이 사라진 교회에 대한 주님의 처방전(계3:14~22)_2020-10-04(주일) 갈렙 2020.10.04 271
302 회개와 천국복음(70) 교회의 두 종류의 지도자들과 회개의 상관관계(계2:20~28)_2020-09-27(주일) 갈렙 2020.09.26 204
» 회개와 천국복음(62) 바울의 회개가 주는 교훈(행14:19~23)_2020-09-20(주일) 갈렙 2020.09.20 165
300 회개와 천국복음(54) 세리장 삭개오의 회개가 주는 교훈(눅19:1~10)_2020-09-13(주일) 갈렙 2020.09.13 227
299 회개와 천국복음(47) 니느웨성 사람들의 회개가 주는 교훈(마12:41)_2020-09-06(주일) 갈렙 2020.09.06 249
298 코로나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가(눅21:7~19)_2020-08-30(주일) 갈렙 2020.08.30 198
297 예수님은 주 하나님이신가 어린양이신가(계22:1~5)_2020-08-23(주일) file 갈렙 2020.08.23 141
296 나는 아직 무엇을 회개하지 않았을까?(요16:8~9)_2020-08-16(주일) 갈렙 2020.08.16 147
295 그의 아들 안에 있는 생명(요일5:11~12)_2020-08-09(주일) 갈렙 2020.08.09 179
294 마귀가 얼마동안 떠나가 있었던 이유(눅4:13)_2020-08-02(주일) 갈렙 2020.08.02 240
293 사람이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시7;12~13)_2020-07-26(주일) 갈렙 2020.07.26 196
292 천한 그릇에서 귀한 그릇으로(딤후2:20~21)_2020-07-19(주일) 갈렙 2020.07.19 271
291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가(롬8;28~29)_2020-07-12(주일) 갈렙 2020.07.12 206
290 하늘의 보고를 여시사 때를 따라 은혜주시는 하나님(신28;12~14과 마24;45~47)_2020-07-05(주일) 갈렙 2020.07.05 250
289 회개할 때에는 왜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 회개해야 하는가(출20:1~5)_2020-06-28(주일) 갈렙 2020.06.28 345
288 성령의 은사(03) 방언을 말하게 되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고전14:2~4)_2020-06-21(주일) 갈렙 2020.06.21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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