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예언자는 대체 무엇을 말하는 자인가? 그것은 딱 2가지였다. 하나는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일을 하는 자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메시야에 관하여 예언을 하는 자였다. 그것은 이사야선지자도 마찬가지였고, 예레미야선지자 그리고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되는 에스겔선지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구약의 예언의 성취를 두고, 메시야를 통한 교회의 성취로 보지 않고, 육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대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지금도 있다. 그러한 분은 오늘 말씀에 주목하기 바란다. 이것은 구약예언이 어떻게 신약에 성취되는가를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드디어 남유다를 심판하셨다. 그것은 요약하면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그렇게 경고를 하고 또 경고했지만 그들이 우상숭배를 그치지 않았고, 성전에까지 우상을 들여와 더럽혔으며 또한 자신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채 주변강국만을 흠모하며 그들을 의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남유다는 에스겔의 소명이 있은 후 6년 뒤인 B.C.586년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벙어리 상태를 풀어주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예언을 하도록 다시 명령하셨다(겔33장).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예언(33~39장) 중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4가지 방법 중에서 2가지를 살펴보려고 한다(겔33~34장). 우리는 이 두 가지 방법을 통해서 왜 이사야 40~66장의 기록이나 신약성경의 기록(마태복음~요한계시록)이 에스겔의 예언과 일치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회복의 방법 4가지 방법이 신약시대와 성령시대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직전까지 있을 인류의 구원역사의 구도와 어떻게 일치하는지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장차 회복하실 대상은 과연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인지 아니면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인지도 함께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려는 것인가?
2. 찬란하고 오래 갈 줄 알았던 남유다는 대체 어떻게 망했는가?
남유다의 심판에 대한 선고 후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혀를 입천장에 붙여버리셨다(겔3:26~27). 남유다의 죄는 하늘에 사무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6년이 지난 뒤 남유다 제20대 시드기야 11년 4월 9일, 드디어 남유다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남유다의 멸망하던 그날, 에스겔 선지자의 아내도 죽게 된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약 5개월이 지나 어떤 도망자가 예루살렘 멸망소식을 가지고 온다. 그런데 그것으로부터 하루 전날 밤, 하나님께서는 혀가 입천장에 붙어버린 에스겔선지자의 입을 열어주신다(겔33:21~22). 그리고 다시 예언하게 하신다. 이번에 행동예언이 아니라 입으로 선포하는 예언을 말이다.
3. 제2차로 부름받은 에스겔 선지자에 주어진 사명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다시 에스겔을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명을 주셨는가? 그것은 처음 그가 받았던 사명을 다시 일깨우는 것이었다(겔33:1~9).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이스라엘민족의 파수꾼으로 세웠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 "파수꾼의 사명"이라는 무엇인가? 그것은 적군의 공격을 먼저 보고 성 안에 있는 백성들에게 경고의 나팔을 부는 일이다. 적군이 쳐들어오고 있으니 방비태세를 갖추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경고를 했는데도 방비하지 않아서 성이 망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성 안에 있는 백성들의 책임인 것이지 결코 파수꾼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경고의 나팔을 불지 않아 성안의 주민이 망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파수꾼에게 성 사람들의 피값을 묻겠다는 것이다. 그렇다. 에스겔은 여전히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할 책임이 주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약간 다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해주시겠다고 하는 시점에서 그들에게 경고의 나팔을 불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했는데도 아직도 불어야 할 나팔이 남아있단 말인가? 그렇다. 이스라엘의 멸망후에라도 두 종류의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예루살렘에 있는 잔류인들이요, 또 하나는 바벨론에 끌려간 포로민이 그들이다.
먼저,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멸망후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잔류인들에게 경고를 해야 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도래하여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상태가 되었지만 앞으로도 심판이 없을 것이라고 결코 오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잔류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다시 힘있는 자가 강포해지고 하나님이 아닌 우상들을 섬기게 된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다시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포로민으로 잡혀온 자들에 대한 경고다. 이제 심판을 받아 포로민이 되어 적국에 끌려온 신세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는 범죄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그러한 마음이 변하여 다시 죄를 짓는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분노를 내리신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잔류민이든지 포로민이든 그들에게 다시 한 번 파수꾼으로서 경고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4. 멸망당한 이스라엘에 관한 회복의 예언은 과연 누구에게 성취될 예언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제 멸망으로 폐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강대국 바벨론에게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을 그냥 버리신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에스겔더러 그들에게 다시 소망의 말씀을 예언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앞으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 때문에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회복의 예언은 과연 누구에 대한 예언이었는가?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예언이었는가 아니면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예언이었는가?
오늘날까지 에스겔의 회복의 예언들 즉 에스겔서 33장부터 48장까지의 말씀은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이니 그들에게서 성취될 것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스라엘에 다윗과 같은 성군이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고, 곡과 마곡같은 세력이 육적인 이스라엘에게 쳐들어오겠지만 그들은 결국 하나님에 의해 멸망당하게 말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진짜 회복의 예언은 과연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취되어왔는가를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회복에 관한 예언은 과연 육적인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유효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어떤 측면에서 볼 때 작은 부분적인 것에서는 그렇게 될 일도 있겠지만, 진짜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인 교회를 통해서 성취되어 왔고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전까지 있었던 에스겔의 회복에 관한 예언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회복의 예언이 정말 육적인 이스라엘백성에게 베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회복의 예언의 성취는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던 메시야의 말씀들 속에서 아주 많이 나타나는데, 결국 그 예언은 육적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장차 동쪽과 서쪽으로부터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아서 믿음의 조상들이었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의 잔치자리]에 앉게 될 것이지만, 나라의 본 자손들은 쫓겨나 바깥 어두운 데(지옥)에 거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8:11~12)
둘째, 주님께서 오셔서 가장 먼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을 그렇게 찾고 찾았는데 그들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말았지만, 가버나움의 백부장이나 가나안의 어떤 수로보니게 여인은 메시야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고백함으로서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마15:21~28).
셋째, 포도원 품군의 비유(마21:33~41)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대인들은 빼앗기게 될 것이고 그 나라의 열매맺는 자가 그 나라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1:43).
넷째, 어떤 임금의 아들의 혼인잔치의 비유(마22:1~14)에서도, 예수께서는 먼저 초대받았던 유대인들은 잔치자리에 참석하지 않지만, 주인의 말씀에 따라 오히려 악한 자들과 선한 자들이 초대를 받아서 잔치자리에 오게 된다면 그가 천국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2:1~14).
그리고 다섯째,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풍성히 맺는 것이 마땅한 이스라엘백성이었지만 그들은 잎만 무성할 뿐 메시야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지 못함으로 인해, 결국 뿌리채 말라버릴 것이라고 예언적으로 주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1:18~19).
5. 에스겔에게 주어진 회복에 관한 예언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장차 멸망당한 이스라엘을 어떻게 누구에게 회복시키시겠다고 말씀하셨는가? 어떤 분은 장차 이스라엘 땅에 제3의 성전이 세워지고, 제사제도도 회복될 것이며, 천년왕국이 지상에 건설되고 거기에 제사장으로서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언코 말하건데, 그러한 일을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에 관한 예언은 분명히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고 그것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지만, 회복에 관한 예언은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며, 오히려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스겔에게 주어진 회복에 예언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에스겔서 33장부터 48장에 나온다. 그런데 그것을 요약해보면, 딱 5가지다. 다시 말해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회복시키실 것인지가 겔 33장~48장에 딱 5가지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첫째, 메시야의 선구자의 출현에 따른 회개의 선포를 통한 회복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에스겔 33장에 적나나하게 나온다. 여기에 보면, 메시야의 선구자로서 회개를 외쳤던 세례요한의 사역이 나오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회복을 담당할 자로 장차 보내실 자는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선택하는 목자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목자로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에스겔 34장과 37장의 말씀이다. 그리고 그분이 바로 요10장에 나오는 선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이신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의 새 영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 두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겔36:26~27). 이는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성취가 되었다. 넷째, 사탄의 세력을 상징하는 곡과 마곡의 전쟁에 대비하여, 하나님께서 에스겔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군대를 준비시키신 다음(겔37장), 곡과 마곡의 전쟁인 아마겟돈전쟁에서 이미 천국에 들어가 천년왕국에 참여하고 있는 성도들을 군대로 데리고 오셔서 곡과 마곡으로 표현된 사탄의 세력들을 물리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에스겔서 37~39장에 나온다. 그리고 다섯째,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성도들을 대리고 새로운 성전인, 저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성도들을 데려감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에스겔 40~48장에 걸쳐서 나온다. 그러므로 장차 회복은 전부다 예수 그리스도가 선한 목자로 오셨다가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교회를 통하여 성취될 회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회복은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 곧 교회에게 일어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사야 40~66장에 나오는 예언의 성취와 겔33~48장에 나오는 예언의 성취가 동일한 것에 대한 다른 두 개의 예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6. 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회개와 열매가 중요한가?
하나님께서는 언약백성으로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면 그들이 하나님만을 잘 섬기며, 그들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서 이방인들도 하나님께로 잘 인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들포도만을 맺혔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을 구원하여 젖과 꿀이 가나안땅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버렸으며, 가나안 우상들을 가져다가 섬겼으며, 이 세상 사람들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천년전 유대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만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혜택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천국은 믿음이 있고 회개하는 자요, 그 나라의 열매맺는 백성이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전에 주셨던 죄인의 파멸과 의인의 구원에 관한 말씀을 다시 하게 했다. 그것이 바로 에스겔 33:10~20에 기록된 말씀이다. 그런데 사실 이 말씀은 이미 에스겔 18장에서 주셨던 말씀이다. 하지만 한 번 더 반복하신다. 악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돌이켜 회개하여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인이라도 돌이켜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다면 그는 반드시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에스겔서 33장은 장차 오실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들의 자세에 관한 예언의 말씀인 것이다. 이것은 정확히 예수께서 출현하기 6개월 전에 이스라엘의 광야에서 성취되었다. 그것은 바로 세례요한의 회개선포사역이었다. 그는 메시야를 영접하기 위해 회개할 것을 선포했던 것이다.
7. 이스라엘의 회복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사항과 그 인물은 누구인가?
이처럼 이스라엘의 회복의 성취는 첫째로, 메시야의 선구자인 세례요한의 회개선포사역을 통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둘째로, 이제는 메시야의 출현을 통해서 성취되었다. 그런데 에스겔은 장차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스라엘의 목자들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 사람을 통해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악한 목자들로서 양떼를 돌보지도 않고 자기들의 배만 배불리는 약탈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그들에게 양떼들을 맡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들을 이스라엘 목자들로 삼아 이스라엘의 양떼를 맡겼지만 그들은 오히려 양떼들을 방치해놓아 목자가 없는 것처럼 만들었기 때문이다(겔34:1~10). 그들은 오히려 자기가 가진 권력과 돈을 이용하여 양떼들을 부려먹었고 억압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양떼들이 들짐승에게 먹히도록 그냥 놔 두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에스겔 34장에 나오는, 자기만 배불리 먹고 있는 악한 목자들에 대한 비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선지자를 통해 앞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자가 없이 유리방황하며 들짐승에게 좇기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방법은 바로 주 여호와께서 친히 양떼들의 목자가 되어 오시겠다는 말씀이었다(겔34:11~16).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종이엇던 다윗과 같은 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앞으로 회복하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이 되시고 그의 종 다윗이 그들 중에 왕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겔34:23~24, 37:24~28).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다윗의 후손으로서 예수께서 오셔서, 친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심으로 성취되었다. 그래서 구약의 예언을 따라 예수께서는, 악한 자들인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건지셨으며, 그들의 죄들을 용서하기 위해 친히 속죄제물로 되시어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양떼들을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선한 목자이셨기 때문이다. 고로, 선한 목자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은 구약의 메시야 예언의 중요한 핵심이 되었다. 그래서 진짜 선한 목자로 오셨던 예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양떼들을 죄로부터 건지기 위해 내놓으셨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 목자의 비유다. 이것이 바로 에스겔 34장(겔34:23~24)의 성취이자 37장(겔37:24~28)의 성취인 것이다.
8. 나오며
그렇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결코 다윗과 같은 이스라엘의 왕의 출현으로 인하여 성취된 적이 없었다.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과 같은 왕은 바로 이 땅에 선한 목자로 오셨던 예수님을 예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구약의 여호와께서 친히 선한 목자에 관한 약속의 성취자로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구약의 백성들도 하나님을 선한 목자로 표현했을 뿐 아니라(시100:3, 23편, 5:6~7, 78:70~72, 렘23:5~6, 슥12:8), 예수께서도 친히 오셔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던 사도들도 예수님을 목자로 표현하였던 것이다(행20:28, 벧전5:1~4, 계7:17). 고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믿음과 회개로 나아오는 모든 이들을 회복시켜 완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시는 우리 주 예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2019년 10월 02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