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우상숭배 행위, 과연 그것은 어디에서 그리고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그 뿌리가 애굽에서부터 있었다고 했다. 그때 이스라엘은 애굽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에 도착했어도 여전히 그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었다. 고로 출애굽1세대들의 시내광야에서의 송아지우상숭배 행위나, 출애굽2세대들의 모압평지에서의 모압신의 경배행위와 제물을 먹고 음행하는 일로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그들은 여전히 산당에서 우상에게 제사드렸고, 푸른나무 아래에서도 우상숭배행위를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라가며 숭배했던 이스라엘민족의 반역의 역사를 차근차근 돌아보면서, 우리에게도 이러한 우상숭배행위가 없는지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1. 들어가며
이스라엘민족은 B.C.586년에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그런데 B.C.591년 즉 예루살렘이 패망하기 5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끌려간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스라엘의 패망원인을 설명해주신다. 그것이 바로 에스겔 20장의 말씀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장로들의 방문으로 빚어진 일이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 벽에다가 온갖 종류의 (이스라엘 성읍 수만큼 많은) 우상들을 그려놓고 향을 피우며 경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벌써 세번째로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떤 말씀도 해주지 말라 하신다. 그리고 그들 조상들의 죄악상을 낱낱이 들려주신다. 그래서 오늘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3기로 구분하여볼 때 곧 그들이 애굽에 있을 때 그리고 광야에 있을 때(출애굽1세대들과 2세대들),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에 있을 때를 기준으로, 그들이 얼마나 우상숭배를 했으며, 가증한 일을 행했고,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게 했는지를 살펴보고, 그것 중에서 둘째 시기와 셋째 시기에 관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2.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하나님을 반역하였으며 우상을 숭배해온 것인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 자신에게 물으려 찾아온 장로들에게 이스라엘의 반역의 모습을 고스란히 들려주라고 하신다. 말씀을 요약해보면, 이스라엘은 작게는 3시기로, 좀 많게는 4개의 시기로 하나님을 배반하며 우상숭배를 해왔다고 하셨다. 먼저는 애굽에서의 반역과 우상숭배가 있고, 이어서 출애굽후 광야에서의 반역과 우상숭배가 있었는데, 출애굽1세대들의 반역과 우상숭배,그리고 출애굽2세대들의 반역과 우상숭배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나안땅에서의 반역과 우상숭배가 있었다.
3.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배반했으며, 우상을 숭배했을까?
우리는 출애굽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서는 출애굽 직전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찾으셨고, 그들을 거기에서 구출하신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에스겔20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찾아가셨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들의 눈을 끌어당기는 애굽의 가증한 것과 우상들로 인해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경고하셨다고 말씀하신다(겔20:7~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역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듣기를 거절했고, 오히려 그들의 눈을 유혹하는 애굽의 가증한 행위들 곧 음행들로서 근친상간, 수간, 동성애 등을 저지르고 있었으며, 애굽의 각종 우상들을 자기들의 신으로 숭배하고 있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를 쏟아 부어 그들을 아주 멸하려 하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 때문에, 애굽인들의 눈 앞에서 그들을 건져내셨다고 말씀하셨다. 곧 출애굽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종노릇하는 것이 불쌍해 보여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명예 때문에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것이다.
4.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어떠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애굽에서 탈출하여 나온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잘 섬겼을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민족이 애굽에서 아무런 법동없이 살아왔기에 우상을 숭배한 것이 아닐까 하여, 그들이 애굽의 종노릇하는 데서 구출받은 것을 기념으로, 당신과 언약을 맺기를 말씀하셨다. 이제부터라도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애굽의 가증한 풍속을 따르지 않을 것을 약속하다면, 그들에게 생명과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자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순종할 것을 약속했다. 이것이 바로 "시내산언약"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때에 그들에게 3가지 법을 지키라고 말씀해주셨다(겔20:11, 느9:29). 첫째는 "도덕법"을 지키라고 하셨다(느9:29). 그것은 10개의 계명들(미쯔바)을 가리킨다. 그리고 둘째는 "의식법"을 지키라고 하셨다. 그것은 에스겔에서는 "율례(훅카)"라고 말씀하셨다(겔20:11,13,16,18,21,24,25). 그런데 이러한 의식법(훅카)에서는 3가지가 있었으니 제사법, 절기법, 정결법, 음식법 등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재판법"을 지키라고 하셨다. 그것을 에스겔서에서는 "규례(미쉬파트)" 혹은 "법도"라로 했다(겔20:11,13,16,18,19,21,24,25).
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율법말씀을 주셨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는가?
오늘날 개신교인은 보통 신약성경을 많이 읽고 듣는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을 약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즉 율법은 지키라고 준 법이 아니라, 그것을 다 지킬 수 없으니 그것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으라고 주셨다는 것이며, 그것으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붙잡아서 죄용서를 받으라고 주신 법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 것이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몽학선생)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구약성경에서 특히 신명기서나 레위기, 에스겔서나 느헤미야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을 바울의 경우과 같이 소개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죽이려고 주신 법이 결코 아니라, 살리려고 주신 법이라고 언급한다(신10:13). 그러므로 율법은 인간에게 무거운 것이 아니며, 자신의 마음과 입술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한다면 얼마든지 지켜서 생명을 얻고 복을 얻을 수 있는 법이라고 말씀하고 있다(신30:11, 레18:5, 겔20:11,13,21). 즉 사람이 준행하면, 그것으로 말밍마아 생명을 얻을 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계명(미쯔바)와 율례(훅카)와 규례(미쉬파트)를 멸시하고 하나님을 크게 더럽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랬다. 이스라엘 민족은 잔인했다. 자기를 구출해내신 전능자를 잊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신들(형상, 우상)을 만들어 섬기기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6. 광야에서 거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겔20:10~22)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초자연적인 역사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를 건너 광야까지 나왔지만 그래도 이스라엘의 습성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진정한 자신의 신으로 섬기지 않은 것이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의 율법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를 보라. 그들은 애굽에서 섬기던 송아지우상을 자기들의 신이라고 만들어 광란의 춤을 추며 축제를 벌이지 않았던가! 그러자 하나님은 대노하셨고 당신의 분노를 쏟아서 그들을 광야에서 아주 없애버리려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이름 때문에 그들을 아껴서(불쌍히 여겨서) 아주 없이하지는 않으셨다. 한편 그들의 반역과 우상숭배는 출애굽1세대들(겔20:10~17)이나 광야에서 태어났던 출애굽2세대들(겔20:18~22)이나 마찬가지였다. 출애굽1세대들은 시내광야에서 우상숭배했고, 출애굽2세대들은 모압평지에서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명을 지키지 않았고, 율례와 법도를 따르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백성의 표징으로 주었던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겔20:13,16,21,24).
7.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주의했어야 했던 안식일은 오늘날 주일로 다시 탄생한 것인가?
특히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안식일들을 더럽힌 것은 하나님의 분노를 한층더 강화시키고 말았다. 여기서 "안식일들"(겔20:13,16,21,24)이란 단지 제칠일(주간) 안식일(단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제칠일(주간) 안식일과 절기의 안식일들(민28~29장)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에서는 겔20:13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믿는 자라도 다 제칠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개신교인들이 이것을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의 분노가 지금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식교에서는 이 구절과 계12:17을 인용하여, 마지막 시기에 나타날 진정한 여인의 자손들(구원받을 하나님의 144,000명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명인 안식일을 지키며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가르친다. 특히 그들은 기독교공인자였던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를 제칠일 안식을 없애버리고 안식일을 주일을 바꿔버린 나쁜 놈이라면서 그를 죽일 놈 취급한다. 하지만 콘스탄틴 대제는 결코 안식일을 주일로 바꾼 적이 없다. 그는 존엄한 태양의 날(일요일)에 쉬어야 한다고 공포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안식교에서는 주일은 태양의 날이라고 하면서,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태양신인 니므롯과 그의 아들로 환상한 담무스를 섬기는 날인고로, 주일을 지키면 태양신 우상을 섬기는 것이며,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게 찍히는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 개신교도들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이기에 죽어서는 세세무궁토록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형벌받을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이 주일에 예배드린 것은 2세기부터 이미 실행되어 왔었고(왜냐하면 기독교인들에 있어서 주일은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작은 부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독교가 공적인 종교가 인정되면서 일요일이 쉬는 날이 되었기에, 그날에 더욱 더 많은 사람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스스로 부활의 날을 기념하는 것이었지 결코 콘스탄틴 대제가 안식일을 없애고 주일을 지키게 한 것이 아니다.
더욱이 안식교에서는 "주간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에스겔서에서는 "주간의 안식일" 뿐만 아니라 "절기의 안식일들"까지 같이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나의 안식일"이란 결코 단수가 아니라 "나의 안식일들"로서 복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제칠일 안식일만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것과 더불어 절기의 안식일 7개(무교절의 첫날과 마지막날,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의 첫날과 마지막날)도 함께 지켜야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간의 안식일과 절기의 안식일은 다 의식법(율례=훅카)에 속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법들은 다 장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실 메시야가 어떤 분인지를 예표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셔서 이러한 것을 성취하심으로 의식법으로서의 안식일법은 이미 폐지되었다. 예수님을 붙잡으면 안식할 수 있게 되고, 유월절양을 잡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제칠일 안식일과 절기의 안식일들을 우리 기독교인들은 더이상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수 안에 거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십계명에서 도덕법으로서의 안식일의 정신은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모든 것을 중지하고(그치고) 자신을 창조하셨으며,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께 감사하며 그분을 높여드리며, 자신의 영혼을 위한 날로 그날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사람은 금방 세상적인 사람으로 바뀌어버리기 때문이다.
8. 가나안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했는가?(겔20:23~29)
그렇다면, 요단강을 건너갔던 출애굽2세대들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했는가? 안타깝지만 그들은 우상숭배를 이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그들은 가나안땅에서 들어가서 2가지를 더 행함으로 하나님의 분노를 더 야기시켰다. 하나는 자신의 자녀를 가나안 우상(몰렉 등)에게 태워서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행한 것이며(겔20:26, 레18:21,20:2~5),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제부터는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리라고 했지만, 그들은 가나안 전지역에 걸쳐 있던 우상숭배의 장소로서 산당(산 꼭대기에 있는 제사 장소=바마)이나 푸른 나무 아래에서 여전히 그리고 더 많이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겔20:28~29). 특히 북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더욱 더 산당제사나 푸른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고 향을 살랐으며, 전제물을 붓는 등의 행위를 더 많이 저질렀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라의 경계선을 넘어 남쪽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까지 가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합왕의 왕비였던 이세벨의 우상숭배로 인하여 북이스라엘을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도록 허용했지만, 남유다는 그후로도 약 130년동안 계속해서 산당과 푸른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사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기 전까지는 남유다에서도 다 산당제사를 드렸다. 하지만 성전이 완공되자 하나님께서는 산당제사를 금지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이 있고 쉽게 가서 제사드릴 수 있는 산당제사를 아무 없이하지 못했다. 남유다 왕 중에서 그나마 하나님을 잘 섬겼던 제4대 여호사밧왕도 산당만큼은 제거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제13대 히스기야왕 때 비로소 산당을 없애는 일을 시작했으며, 남16대 요시야왕 때에 비로소 대대적인 산당제거작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시야의 아들들이었던 제17대 여호아하스(둘째아들), 제18대 여호야김(첫째아들), 제20대 시드기야(셋째아들) 때에 다시 산당제사를 허용함으로 남유다는 급속히 우상을 섬기는 이방민족처럼되어갔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제18대 여호야김의 아들이었던 여호야긴 왕 때부터 더이상 남유다는 소생불가능한 반역의 무리가 되었고 우상숭배자가 되었다면서, 예레미야 선지자나 에스겔 선지자에게 더이상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하였다. 남유다를 멸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9. 나오며
그렇다. 우상숭배를 끊기가 이처럼 지 않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애굽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눈으로 봄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광야로 그리고 가나안땅까지 이어졌다. 한 번 보고 경험한 우상숭배행위는 이처럼 그들 뼈속 깊이 간직되었고, 그것은 광야에서는 시내산에서의 송아지 우상숭배행위로 나타났으며, 가나안에서는 북이스라엘의 단과 벧엘에 세운 송아지 우상행위로 나타났다. 그러니 오늘날 기도모임을 한다면서, 한 가정에 모여서 기도모임을 하고 예언하고 안수기도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경우처럼 매우 위험한 신앙행위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그것이 점차 사라지면서 집회쪽으로 이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령하다는 예언자나 대언자를 모셔다가 기도하는 것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정기도모임은 성전에까지 나가지 않아도 기도할 수 있는 장점은 있다고 하겠지만 이스라엘의 산당 제사처럼 결국 점치는 예언쪽으로 흘러가 그것이 결국 하나님이 아닌 귀신을 섬기는 우상숭배행위로 흘러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북이스라엘이나 남유다가 멸망했던 가장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우상숭배였다. 자기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자기들의 신으로 숭배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여전히 오늘날 기독교 내에도 남아있다. 이를 조심하지 않는다면 결국 마7장의 말씀처럼, 주의 이름으로 예언사역을 했다고 하지만,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실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마7:23). 건투를 빈다.
2019년 8월 7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