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08) 진정한 회개의 조건 4가지는 무엇인가?(렘3:6~6:30)_2023-02-15(수)
https://youtu.be/ediVq8AnBAk [또는 https://tv.naver.com/v/33254109]
1. 예레미야가 회개를 촉구하는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예레미야가 남유다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했던 목적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것은 과연 남유다를 멸망함으로부터 건져내는 것이었을까? 아니었다. 예레미야가 남유다를 향해 회개를 촉구했던 것은 이미 예고된 멸망을 돌이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남유다 백성들 중에서 다만 몇이라도 건질 자를 건지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바라시지만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지는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자유의지로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에 참여하기를 진정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남유다 백성은 선지자를 통해 외치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2.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 회개에 동참하여 구원얻을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 회개에 동참하여 과연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극소수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회개를 촉구했어도, 진정 예레미야의 외침을 듣고 회개에 동참하여 구원얻는 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그 숫자를 언급하셨는데, 그것은 성읍에서 한 명 정도요 족속 중에 둘 정도라고 말씀하셨다(렘3:14). 이 숫자가 회개의 외침을 듣고 구원얻을 자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 보좌에 앉을 144,000명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천국에 들어가는 숫자가 그 숫자만큼 적을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성읍에 한 명, 족속에 둘 이라는 말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도 144,000명에 포함될 숫자를 말하는 것같이 보인다.
3.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12가지 단편 예언들 중에 2번째 단편 예언의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서에 말씀하신 단편 예언들이 앞부분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2장부터 25장에 수록되어 있다. 그것들 중에서 제1예언은 2:1~3:5까지 말씀이며, 제2예언은 3:6~6:30까지의 말씀을 가리킨다. 전후 문맥으로 볼 때, 제1예언은 요시야왕이 종교개혁을 시도하기 전에 주신 말씀으로 보이며, 제2예언은 요시야왕이 종교개혁(B.C.622년)을 단행한 이후에 주신 말씀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제2예언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북이스라엘을 답습한 남유다의 심판에 관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남유다 백성들에게 진실한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남유다 백성들이 비록 요시야의 종교개혁에 동참하였으나 그들의 동참은 아주 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4. 남유다는 종교개혁 중에도 어떤 것을 답습하고 있었는가?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자매'라고 하셨다. '언니'가 '북이스라엘'이고 '동생'이 '남유다'라고 하셨다(렘3:6~7). 그런데 북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다가 그만 회개하지 못하고 나라가 망해버렸다. 그때가 B.C.722년 남유다의 13대 히스기야왕 때다. 이때 북이스라엘은 19대 호세아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앗수르의 살만에셀의 침입을 받아 나라가 멸망했다. 그런데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의 모습을 자기들도 역시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남유다는 언니 북이스라엘의 영적 음행을 그대로 따라가고 말았다. 높은 산 위의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들을 섬기면서 그들에게 절하며 향을 피웠고 음식을 바쳤기 때문이다(렘2:20, 3:6).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가리켜 '변절자'라고 말씀하셨고, 이혼 증서를 써서 그들과 이혼한 관계라고 언급하셨다(렘3:6,8). 그런데 이것을 지켜본 남유다도 역시 똑같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따라가고 있었다. 남유다도 북이스라엘과 똑같이 '돌'과 '나무'와 더불어 영적 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여기서 '돌'이라 함은 남성신으로서, '풍요'를 상징하는 '바알신'을 가리키고, '나무'라 함은 여성신으로서, '다산'을 상징하는 '아세라신'을 가리킨다.
5.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회개의 4가지 조건을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남유다가 주님께 돌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4가지를 언급하셨다.
그것은 첫째로, 가증한 우상들을 제거하되 망설이지 말고 제거하라고 하신 것이다(렘4:1). 이는 이방신들과 완전한 결별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회개는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들과의 완전한 결별을 하는 것이라야 한다. 하나님도 섬기면서 우상들도 함께 섬겨서는 절대 아니 되는 것이다. 둘째로, 진실과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회개여야 한다고 밀씀하셨다(렘4:2). 즉 회개는 말이 아니라 삶이 따라오는 회개여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행함으로 그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회개란 사실상 하나님께서 회개로 인정해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이요, 또한 행함없는 믿음이 죽은 것같이,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는 회개 역시 죽은 회개일 뿐인 것이다(약2:26). 셋째로,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위에 씨를 뿌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렘4:3). 이는 기존에 갖고 있는 생각과 관념을 뒤집어 엎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낱낱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가시덤불 위에 씨를 뿌리는 격이 되고 말아서, 결코 열매를 수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 마음이 잘못된 생각과 관념을 유지한 채로 회개하면, 회개의 모양은 있겠지만 그 결과는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시덤불 위에 씨를 뿌리면 그 사이에서 씨앗이 싹은 틔우겠지만 결코 열매를 거두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넷째로, 스스로 할례를 행하되 자신의 마음의 가죽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셨다(렘4:4).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진정 마음을 다해서 돌이키는 회개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심을 담지 않은 회개는 회개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시야왕 때에 남유다 백성이 그러했다. 그들도 역시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에 동참하고 있는 듯했으나 그들은 위의 4가지와 같은 진실한 회개를 실천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를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알려 주시면서,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유다는 회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무인 그들에게 불이 되어 그들을 사를 것이라고 하셨다(렘5:14).
2023년 02월 15일(수)
정병진목사
1. 예레미야가 회개를 촉구하는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예레미야가 남유다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했던 목적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것은 과연 남유다를 멸망함으로부터 건져내는 것이었을까? 아니었다. 예레미야가 남유다를 향해 회개를 촉구했던 것은 이미 예고된 멸망을 돌이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남유다 백성들 중에서 다만 몇이라도 건질 자를 건지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바라시지만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지는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자유의지로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에 참여하기를 진정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남유다 백성은 선지자를 통해 외치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2.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 회개에 동참하여 구원얻을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 회개에 동참하여 과연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극소수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회개를 촉구했어도, 진정 예레미야의 외침을 듣고 회개에 동참하여 구원얻는 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그 숫자를 언급하셨는데, 그것은 성읍에서 한 명 정도요 족속 중에 둘 정도라고 말씀하셨다(렘3:14). 이 숫자가 회개의 외침을 듣고 구원얻을 자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 보좌에 앉을 144,000명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천국에 들어가는 숫자가 그 숫자만큼 적을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성읍에 한 명, 족속에 둘 이라는 말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도 144,000명에 포함될 숫자를 말하는 것같이 보인다.
3.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12가지 단편 예언들 중에 2번째 단편 예언의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서에 말씀하신 단편 예언들이 앞부분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2장부터 25장에 수록되어 있다. 그것들 중에서 제1예언은 2:1~3:5까지 말씀이며, 제2예언은 3:6~6:30까지의 말씀을 가리킨다. 전후 문맥으로 볼 때, 제1예언은 요시야왕이 종교개혁을 시도하기 전에 주신 말씀으로 보이며, 제2예언은 요시야왕이 종교개혁(B.C.622년)을 단행한 이후에 주신 말씀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제2예언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북이스라엘을 답습한 남유다의 심판에 관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남유다 백성들에게 진실한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남유다 백성들이 비록 요시야의 종교개혁에 동참하였으나 그들의 동참은 아주 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4. 남유다는 종교개혁 중에도 어떤 것을 답습하고 있었는가?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자매'라고 하셨다. '언니'가 '북이스라엘'이고 '동생'이 '남유다'라고 하셨다(렘3:6~7). 그런데 북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다가 그만 회개하지 못하고 나라가 망해버렸다. 그때가 B.C.722년 남유다의 13대 히스기야왕 때다. 이때 북이스라엘은 19대 호세아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앗수르의 살만에셀의 침입을 받아 나라가 멸망했다. 그런데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의 모습을 자기들도 역시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남유다는 언니 북이스라엘의 영적 음행을 그대로 따라가고 말았다. 높은 산 위의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들을 섬기면서 그들에게 절하며 향을 피웠고 음식을 바쳤기 때문이다(렘2:20, 3:6).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가리켜 '변절자'라고 말씀하셨고, 이혼 증서를 써서 그들과 이혼한 관계라고 언급하셨다(렘3:6,8). 그런데 이것을 지켜본 남유다도 역시 똑같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따라가고 있었다. 남유다도 북이스라엘과 똑같이 '돌'과 '나무'와 더불어 영적 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여기서 '돌'이라 함은 남성신으로서, '풍요'를 상징하는 '바알신'을 가리키고, '나무'라 함은 여성신으로서, '다산'을 상징하는 '아세라신'을 가리킨다.
5.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회개의 4가지 조건을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남유다가 주님께 돌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4가지를 언급하셨다.
그것은 첫째로, 가증한 우상들을 제거하되 망설이지 말고 제거하라고 하신 것이다(렘4:1). 이는 이방신들과 완전한 결별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회개는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들과의 완전한 결별을 하는 것이라야 한다. 하나님도 섬기면서 우상들도 함께 섬겨서는 절대 아니 되는 것이다. 둘째로, 진실과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회개여야 한다고 밀씀하셨다(렘4:2). 즉 회개는 말이 아니라 삶이 따라오는 회개여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행함으로 그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회개란 사실상 하나님께서 회개로 인정해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이요, 또한 행함없는 믿음이 죽은 것같이,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는 회개 역시 죽은 회개일 뿐인 것이다(약2:26). 셋째로,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위에 씨를 뿌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렘4:3). 이는 기존에 갖고 있는 생각과 관념을 뒤집어 엎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낱낱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가시덤불 위에 씨를 뿌리는 격이 되고 말아서, 결코 열매를 수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 마음이 잘못된 생각과 관념을 유지한 채로 회개하면, 회개의 모양은 있겠지만 그 결과는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시덤불 위에 씨를 뿌리면 그 사이에서 씨앗이 싹은 틔우겠지만 결코 열매를 거두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넷째로, 스스로 할례를 행하되 자신의 마음의 가죽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셨다(렘4:4).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진정 마음을 다해서 돌이키는 회개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심을 담지 않은 회개는 회개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시야왕 때에 남유다 백성이 그러했다. 그들도 역시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에 동참하고 있는 듯했으나 그들은 위의 4가지와 같은 진실한 회개를 실천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를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알려 주시면서,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유다는 회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무인 그들에게 불이 되어 그들을 사를 것이라고 하셨다(렘5:14).
2023년 02월 15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