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시조 아담의 범죄 이래로 모든 사람은 다 한 번은 죽게 되어 있다. 좀 더 빨리 죽고 좀 더 나중에 죽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은 죽을 두려워한다. 특히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자인데도 불구하고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그에게 부활신앙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믿음이 없어서인가?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지만 그는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그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이렇듯 두려운 죽음을 이기는 방법은 대체 무엇일까? 오늘은 그것을 알아보자.
1. 들어가며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즉 죽는 것은 비그리도인일 때나 그리스도인일 때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왜냐하면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에게 주어진 형벌이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롬5:12).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인 이상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인간의 모습이 다양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덜덜덜 떨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다. 과연 어떻게 되어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오늘은 죽음의 실상에 대해 알아보고 어떻게 죽음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 사람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아마도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일 수 있다. 아니면 죽는다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죽은 다음에 무슨 일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아무도 그 길을 미리 경험해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3.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볼 때, 죽음은 사실 다음 세상으로 이사가기 위한 작업들에 불과한 것이지만, 실제로 죽음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약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 불구하고 왜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에서 그를 그리스도인의 경우로 제한한다면, 어떤 이유인가? 그것은 첫째로, 그에게 부활신앙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죽으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그에게 믿음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믿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지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이런 각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체로 아래와 같이 2가지로 요약이 될 수 있다.
첫째, 인류를 구원하시려 오셨다가 하늘로 돌아가신 예수께서 대체 누구시며 지금도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그분의 성육신 안에만 맞춰져 있다. 즉 그분은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 내지는 하나님의 아들 정도라고 알고 있는 것이 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만이 아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결코 틀린 대답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예수께서 전혀 다른 차원 안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부활이후에 예수께서는 이제 전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부활이후 예수께서는 어떤 상태로 계시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상태로 계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때나 어디든지 그분은 즉시 나타나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부활이후에 자신을 무려 12번이나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다. 그런데 그때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셨다. 어디든지 나타나셨으며, 언제든지 나타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나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 알고 있는 이들은 혹 죽음 앞에서 두려워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이 그 순간에도 여전히 자신을 떠나가지 않으시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무슨 약속을 해주셨는가? 그것은 세상의 끝날까지 항상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주셨다(마28:20). 그것은 그분이 영으로 항상 임마누엘 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한 번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죽는 그 순간까지 그를 떠나가지 아니하신다. 이런 것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홀로 내버려졌다고 생각이 들어가는 순간 그는 주님을 부인할 수도 있다. 그러면 죽음의 공포가 다가오게 되어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 부활승천이후에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되셔서 지금도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항상 함께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죽은 현장에 있게 되어서 죽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죽을 때가 다 된 것이라고 생각하라. 하지만 사람이 죽는 현장이 있다고 할지라 그가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면 아무도 그를 죽일 수는 없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사화복은 이제 주님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부활승천하신 이후 예수께서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망의 음부의 열쇠를 갖고 계신다(계1:17~18). 그러므로 그분이 하나님으로서 살아계시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때가 되었으면 그날 죽어서 주님 앞으로 가게 될 것이고, 살려주시면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을 감당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죽은 후에 들어가게 될 천국과 지옥의 존재가 잘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의외로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에 대해 긴가민가하는 상태에 놓여있다. 그러나 사람이 그것의 존재여부를 결정하든지 안하든지, 천국과 지옥은 존재하고 있다. 물론 단어 자체로 뜻으로 보면, 천국은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의 장소"요, 지옥은 땅속 곧 "불못"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 자들은 자신이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 있기에,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들은 확실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죽는 그날에 천국에 들어간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지구상에 살아있을 때 아무리 힘들다고 하여도, 죽어서 불못에 떨어져서 받는 고통보다는 낫기에, 이 세상에서의 삶에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확실히 믿고 있는 자는 죽음 앞에서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국과 지옥에 관한 여러 간증들을 들어보게 되면, 천국와 지옥에 관하여 100% 믿는 성도들이 1/10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10%정도만이 천국과 지옥을 믿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이 믿어지지 않는 자는 죽음 다음에 있을 세계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오직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목숨이 붙어있을 것만 자신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니, 그는 오직 이 세상에 집착을 한다. 그러니 이생의 삶만을 귀하게 여기고 거기에 몰빵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얕은 생각이다. 사람이 죽은 후에는 즉시 심판이 기다리고 있어서 죄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예수님의 속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생명의 부활을 입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속죄를 거부한 자들은 죽은 즉시 그의 영혼이 음부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후회는 소용이 없다.
4. 그리스도인이 죽고 사는 것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에 혹 핍박을 받다가 죽음(순교)에 이르게 되는 성도가 있다면 그것은 그에게 커다란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차피 사람은 한 번 죽게 되어 있는데, 그 순간 자신의 목숨을 주님을 위해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분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그러한 사실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순교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먼저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우리가 이 세상을 마치는 그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음을 다시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마28:19~20). 그리고 예수께서 영원히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쥐고 계시다는 것도 우리는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계1:17~18). 그러므로 첫째사망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탄마귀라도 예수님의 허락없이는 우리를 함부로 죽일 수가 없음을 믿어야 한다. 그렇다. 생사화복의 모든 주권이 주님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시 내게 순교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님께 정말 감사할 일이 되는 것이다. 마치 버가모교회의 안디바처럼 말이다(계1:13). 그리고 만약 그때 죽을 때가 아니라면 주님은 그를 지키시고 보호하여 죽지 않게 하실 것임을 믿어야 한다. 마치 사자굴속에 던져진 다니엘처럼, 그리고 풀무불 속에 던져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처럼 말이다.
5. 지옥이란 어떤 곳인가?
그렇다면 지옥은 어떤 곳인가? 지옥은 이 세상에 살던 자가 자신이 지은 죄를 해결하지 못했을 경우 죽은 다음에 들어가는 형벌의 장소를 가리킨다. 구약시대에 그곳은 "음부(스올)"라고 불리웠고, 예수님의 재림이후에는 그곳은 "불못"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그곳은 죄를 지은 자가 죄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 들어가는 장소인데, 지금은 일시적이지만 타락한 천사들도 함께 있는 장소다. 그런데 그곳의 참혹함을 성경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음부는 첫째, 불과 유황이 타는 장소다(눅16:24, 계21:8). 그곳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으며 불도 꺼지지 않는다. 불로 소금치듯 하는 장소인 것이다(막9:48). 그러므로 둘째, 그곳은 영혼이 고통받는 장소다(눅16:23). 뜨거움과 갈증이 말할 수 없이 심하지만 그곳에서 스스로 도망칠 자가 아무도 없다. 그곳에서 영혼은 밤낮으로 고통을 받지만 쉼을 가질 수가 없다.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계14:8~11). 셋째, 슬피울며 이빨을 가는 장소다(마22:13). 매우 후회가 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 살았을 때에 그곳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주어졌지만 그것을 주의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되는 것이다. 또한 이미 예수님을 믿었으나 결국 타락하여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아서 들어가는 장소가 또한 그곳이다. 그러므로 죄를 지을 때마다 성령께서 책망을 하셨지만 그것에 반응하지 않은 자신이 후회스러운 것이다. 그렇다. 그곳은 너무나 가혹한 장소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든지 그곳에 들어가면 절대 안 된다. 우리 인간들이 그곳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고 죽으셨음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되신 예수님을 영원히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6. 나오며
그리스도인들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아니 그리스도인을 비롯한 모든 인간은 사실 죽음을 상당히 두려워한다. 어차피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은 한 번은 죽게 되어 있다. 그러나 죽은 다음에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첫째사망(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사망)은 누구나 다 받게 되어 있다(히9:27). 단지 그것을 조금 더 빨리 경험하느냐 조금 늦게 경험하느냐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첫째사망을 겪고 난 후의 일이다. 왜냐하면 죽으면 둘째사망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계21:14). 만약 이 땅에서 자신의 죄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죽게 된다면, 그는 틀림없이 둘째사망의 해를 입게 될 것이다. 여기서 "둘째사망"이란 영혼이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것으로서, 영혼이 형벌하는 장소인 불못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모든 사람은 첫째사망은 다 겪게 되겠지만, 둘째사망은 겪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이 둘째사망을 겪지 않도록 하려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이 행하신 그 대속의 사건에 감사를 드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는 죽은 후에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할 것이다. 첫째사망이야 모든 사람이 다 한 번 겪을 일이겠지만, 둘째사망은 아니 겪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둘째사망에 들어가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려고 사람이 되셔서 죽음의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이다. 고로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은 그것을 깨우쳐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주신 기회라고 보아야 한다. 부디 예수님을 잘 믿어서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말자. 특히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생사화복의 주권이 다 주님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2020년 04월 17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