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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로마서강해(38)] 야곱과 에서는 과연 개인구원예정과 개인멸망예정의 예표였는가?(롬9:6~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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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로마서 9~11장의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 만약 로마서 1~8장의 말씀이 개인구원론을 언급한 것이라고 한다면, 로마서 9~11장의 말씀은 민족구원론을 언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이 어떻게 구원받는지를 알려면 우리는 로마서 1~8장을 읽어보아야 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로마서 9~11장에 나오는 민족 구원론에 관한 예화를 개인 구원 예정론의 근거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인간의 선택이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작정과 절대예정으로 된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그러므로 개인이 구원받거나 혹은 개인이 멸망받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리는 성경을 볼 때면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안경을 쓰고 성경을 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쓰고 있는 안경이 투명한 안경이 아니라 색깔이 있는 안경이라면 우리는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성경을 보게 된다. 그때에는 우선 내가 쓰고 있는 안경을 벗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색깔의 안경도 한 번 써보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믿고 따라고 있는 교리의 안경이 과연 다른 안경을 쓰고도 합당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진정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 따라가야 한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과연 야곱과 에서가 개인 구원 예정과 개인 멸망 예정의 예표가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과연 무엇에서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올바른 구원론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자 한다.
2. 로마서 9~11장의 주제는 무엇인가?
로마서 9~11장의 주제는 무엇인가? 로마서 9~11장의 주제는 한 마디로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구원론 곧 민족의 구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바울이 마음에 심히 큰 고통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기 민족에 관한 구원문제였기 때문이다(롬9:1~3, 10:1). 그러므로 바울은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린 것 같다. 그러자 주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게 되었고, 민족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것을 기록한 것이 바로 로마서 9~11장의 말씀인 것이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해 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결코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말한다(롬11:1~2). 그래서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구원을 받은 이후에 남은 이스라엘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롬11:25). 그리하여 이기는 자로 예표된 모든 이스라엘(창32:28)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롬11:26).
롬9: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2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3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롬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창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롬11:25~26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3.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민족의 구원순서에 대하여 바울이 받은 계시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바울이 나중에 깨닫게 된 유대인의 구원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민족 구원의 순서를 미리 정해놓으셨다는 사실이다. 이때 구원의 순서는 맨 처음은 유대인이요 그 다음이 이방인이라는 것이다(롬1:16). 그런데 이것보다 보다 더 구별된 순서를 보면, 가장 먼저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요(마10:6), 그 다음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족인 사마리아인이 될 것이며(마10:5), 그 다음에 비로소 이방인들(민족들)이 구원받게 될 것이다(마10:5, 28:19, 행1:8).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이스라엘의 남는 자가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롬9:27, 11:5).
그런데 민족 구원의 순서를 바울이 로마서 9장에서 언급한다. 그것은 롬9:6~13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이다. 첫째는 이스라엘(이기는 자)인 야곱에게서 난 민족들이 둘로 갈라져서, 야곱의 열 아들들은 훗날 사마리아인이 되었고, 두 아들들(유다와 베냐민)은 유대인이 되었는데, 구원의 순서는 유대인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사마리아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롬9:6). 둘째는 아브라함의 씨도 둘로 나뉘었는데, 먼저 태어난 이스마엘(육신의 자녀)은 훗날에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고, 나중에 태어난 이삭(약속의 자녀)은 언약계승자인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된다는 것이다(롬9:7~9). 이는 구원의 순서가 이삭민족이 먼저이고, 나중은 이방민족인 아랍민족이 될 것이라고 말씀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시대에는 아랍민족들 가운데에서도 구원받은 자들이 더러 있는 것이다. 셋째는 이삭의 두 아들들이 있었는데, 형 에서는 에돔족속의 조상이 되었고, 동생 야곱은 이스라엘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롬9:10~12). 그리하여 먼저 이스라엘 족속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에돔족속들도 구원을 받게 된 것이라고 했다.
4.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는 과연 개인 구원 예정과 개인 멸망 예언의 예표인가?
그렇다면 롬9장에 나오는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는 민족 구원의 순서에 대한 예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구원이나 개인멸망 예정을 말함인가? 그런데 그렇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종교개혁자 존 칼빈(A.D.1509~1564)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책 [기독교강요(1559년판)] 제3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다.
먼저 칼빈은 자신의 책 기독교강요 제3권 제21장에서는 "영원한 선택으로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은 구원으로 어떤 사람들은 멸망으로 예정하셨다"라고 말했으며, 제22장 11절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른 유기'가 있다고 말했고, "선행에 어떤 공로도 없는 야곱이 은혜로 취함을 받게 되듯이, 아직 범죄로 더럽혀지지 않은 에서가 미움을 받게 된다(롬9:13)"고 말했다. 그리고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야곱과 에서가 아직 아무 선한 일과 악한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택함을 받았고, 하나는 배척을 당했음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예정의 기초가 행위에 있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했으며, "이는 유기된 자들이 마지막에 그렇게 세움을 받는 것은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은 순전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선행에 어떤 공로도 없는 야곱을 은혜로 취하시거나, 아직 더럽혀지지 않은 에서를 미워한 적이 한 번도 없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곱과 에서가 아직 아무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을 행하지도 않은 상태에 있을 때에, 야곱을 선택하여 그를 [구원으로 인도하]셨으며, 에서는 선택하여 배척[하여 멸망으로 인도]한 일이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에서가 아직 자신의 어머니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에 두 국민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예지를 말씀해주셨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큰 자(형)로 태어날 에서가 작은 자(동생)로 태어날 야곱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는 말씀에 해당한다(창25:23). 그렇다면 창25:23의 말씀은 무슨 말씀인가? 그것은 두 국민이 장차 어떻게 쓰임받게 될 것인지에 대한 예지예정을 말하는 것 뿐이다. 오히려 신약에 들어와서는 섬기는 자가 군림하는 자보다 천국에서 더 큰 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창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둘째로, 하나님께서 야곱과 에서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단지 이 둘이 엄마의 태중에 있을 때에 두 국민을 형성할 두 아이들이 있다고 하셨고, 이 둘은 태중에 있을 때부터 나누이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야곱 민족보다 에서 민족이 더 강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큰 자인 형 에서가 작은 자인 동생 야곱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만 말쓰하셨을 뿐이다. 그 어디에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곳이 없다. 더욱이 그래서 야곱은 구원으로 예정하고 에서는 멸망으로 예정하였다는 말씀이 나오지 않는다.
5. 바울이 말한 바,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바울이 로마서 9:13에 언급하고 있는 바,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들(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들을 그렇게 하기로 결정해 놓으셨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사실 인용구절로서 마침내 그렇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에서와 야곱에 대한 예지예정의 말씀이 나오는 창세기 25장을 들춰서 보라. 거기에는 이러한 말씀이 없다. 로마서 9:13의 말씀은 창세기를 기록한 시기보다 최소 1,500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하나님께서 결국 그들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아주 후대에 즉 B.C.400년경에 기록한 말라기 선지자의 글을 인용한 것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야곱은 사랑하게 되었고, 에서는 미워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야곱이 언약계승자가 되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으나, 에서는 언약계승자가 되는 것을 경홀히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다. 에서와 야곱은 사실 쌍둥이였다. 먼저 에서가 태어났고 이어서 야곱이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이 동생으로 태어난 것 때문에 늘 언약계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늘 형이 가진 장자권을 사모하고 사모하였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그러니까 그가 약 16세의 소년이었을 때부터 이미 형으로부터 장자권을 빼앗기 위해 노력하였다. 마침내 그는 형이 배고플 때에 형이 좋아하는 팥죽을 끓여서 먹게 하므로 장자의 명분을 사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76세 때에는 어머니와 협동작전을 벌여 아버지 이삭으로 장자의 축복까지 받게 된다.
그러나 에서는 어떠하였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왜 에서는 훗날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었는지를 아주 간략하게 소개한다. 그것은 한 그릇 음식을 먹기 위해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쉽게 동생에게 넘겨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망령된 행동이었다.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야 장자의 복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기에 아버지도 그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 줄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눈물을 흘렸지만 더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렇다. 야곱이 장자권을 취하고 에서가 장자권을 잃어버린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그것을 예정해 놓으셔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훗날 이들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에, 말라기에서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히12:16~17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6. 나오며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방인)이나 누구든지 다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을 만세전에 구원과 멸망으로 미리 정해 놓으시고 그리로 이끌어가시는 잔인하고도 폭군이신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회개하기를 바라신다(딤전2:4, 벧후3:9).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 취하셨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을 때에도 믿을 자만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다. 다만 예수께서 흘리신 피를 믿지 아니하는 자가 구원을 못 받고 있는 것뿐이다. 그분의 피의 효능은 인류를 구원하고도 남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선택하신 자에게 불가항력적인 은총을 베푸신다는 말은 틀린 것이다. 왜나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도록 길을 열어놓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자신이 구원의 초청을 거부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태복음 22장의 아들의 혼인잔치의 비유를 기억해야 한다(마22:1~14). 왜 천국잔치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이 발생하게 되는가? 그것은 본인이 구원의 초청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순서를 미리 정해놓으셨다. 먼저는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막상 메시야가 오셔서 그들을 구원으로 초청했을 때에 거절하고 말았다. 그들은 자기 밭으로 가버렸고, 자기 사업한다고 가버렸다. 어떤 이는 결혼을 해서 못간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못 들어간 것이다. 그때에 왕이신 하나님은 모든 제한을 폐지하였다. 이미 구원받을 자의 자리가 준비되어있으나 처음에 초청받은 자들이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나가서 만나는대로 누구든지 그 자리에 오기를 원하는 자는 다 데려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22:9). 그렇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이방인들의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진 것이다. 그러나 곧 이 문이 닫힐 것이다. 왜냐하하면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차면 이제는 남은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차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때가 언제인가? 그때는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환난의 시대에 돌입할 때다. 그때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두 증인이 활동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더이상 이방인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에 의한 환난의 시대가 되기 전에 먼저 내가 구원받아야 하고 나의 믿지 않는 식구를 구원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2025년 06월 11일(수)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