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울왕은 왜 버림받았는가 하나님께서 다윗은 사랑하고 사울은 미워해서였는가?(삼상15:10~16)_2019-12-11(수)
https://youtu.be/MZ7iMSdBPP0
1. 하나님께서는 왜 사울왕을 세운 것을 후회한다고 했나요?(삼상15:11)
사울왕이 처음에는 겸손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지만 점차적으로 돌아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사울에게 명령하신 것은 무엇이었나요?(삼상15:3)
아말렉을 진멸하되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헤렘전쟁으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 즉 사람과 짐승까지 다 죽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왕은 백성들의 말을 듣고 아각왕과 양과 소들 중에서 기름지고 좋은 것은 살려두었습니다. 헤렘전쟁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하지 않으면 자기가 그대로 받는 전쟁이었는데, 아각왕을 살려두었고 소와 양들까지도 살려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왕이 대신 죽는 것인데 사울왕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사울왕을 버리게 된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이었나요?
겉으로 얼핏 보기에 하나님께서 사울왕을 버리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치면 다윗왕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에 버림받아야 마땅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버림받지 아니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왕이 버림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사울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사울왕은 오직 자기 체면과 위신을 세우는데 모든 것을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자, 사울왕이 맨 처음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갈멜산에 자신의 승전기념비를 세운 것이었습니다(삼상15:12). 그는 늘 자기의 이름을 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시51:11). 그러므로 그의 마음에는 백성들보다도 항상 하나님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 반대였습니다. 사무엘선지자로부터 헤렘전쟁명령에 순종하지 못했음을 지적받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했노라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저 짐승 소리는 무엇이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백성이 좋은 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제사드리려고 살려두었다고 변명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선지자를 통해서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한 것은 점치는 죄와 같은 것이며, 완고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납짝 엎드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무엘선지자에게 부탁하기를 백성들 앞에서 자기를 높여달라고 했던 것입니다(삼상15:30).
4.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본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요?(삼상16:7)
사람은 외모 즉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중심(마음)을 본다는 말은 사실 번역에 있에서 조금 실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로 보면, "외모"는 "눈들"이라는 단어이며, "중심"은 "마음"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삼상16:7의 말씀은 이렇게 번역했어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겉모습과 키 큰 것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눈으로 보지만 나 여호와는 마음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이 상대방의 눈을 보고 그를 판단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눈을 통해서 상대방을 판단한다는 뜻이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보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마음으로 사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사람은 외모만을 본다는 뜻이며,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고로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 마음에 원해서 세운 것이 아니라, 실은 백성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전쟁에 능한 사람을 왕으로 세워주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두번째부터 왕을 지명할 때에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마음으로 생각할 때에 합당한 자 즉 당신의 마음에 "이 정도면 됐어" 하는 자를 뽑겠다는 뜻입니다. 그 기준에 다윗이 들어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으로 볼 때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고 당신 마음과 함께 걷고 있었던 자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를 찾아서 무려 13년이상을 기다린 셈입니다. 우리도 지금 주께서 찾으시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그렇게 준비되고 있나요?
5. 사람은 어떤 그릇으로 쓰임받을 것인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인가요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인가요?
사람이 어떤 그릇으로 쓰임받느냐 하는 것은 그가 태어날 때 타고난 것도 있으며, 살아가면서 그가 만들어가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어떤 방면으로 쓰시려고 준비시켜둔 사람도 있습니다(렘1:5).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성품과 모습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서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다윗의 경우는 처음부터 왕으로 선택된 상태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울왕을 대신하여 다시 세울 왕으로서 하나님의 눈에 들어서 선택된 자입니다(삼상13:14, 행13:22).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을 폐위하기로 결정하신 뒤, 무려 13년이상을 그런 자를 찾으셨습니다. 그러다가 다윗을 만나니 "이는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설령 어떻게 쓰임받을 것이라고 예정된 상태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일평생을 꾸준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찾는다면 그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다른 사람보다도 은사와 달란트가 부족하다고해서 투덜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길을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 어떻께 쓰임받느냐 하는 것은 부모가 물려준 영역도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실은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아무리 부모로부터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고, 그래서 남들보다 다른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실제로 착하고 충성되어서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면 그의 능력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는 능력을 가지고도 충성된 빌라델비아 성도들을 우리도 닮아가야 하겠습니다(계3:8).
2019년 12월 11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