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96) 롯의 두 딸들의 동침사건, 과연 손가락질만 할 것인가?(창19:30~38)_2021-05-13(목)
https://youtu.be/7hS0b9U6gJ8
1. 롯이 소돔과 고모라성에 내린 불과 유황 심판을 피해 도망친 곳은 어디였나요?
롯이 불심판을 피해 도망친 곳은 소알 성이었습니다(창19:22~23). 소알 성은 성의 규모가 작아서 붙혀진 이름으로서, 그 뜻이 바로 "작음"입니다.
2. 롯은 왜 계속해서 소알성에 살지 않고 산으로 갔나요?
롯이 소알성으로 피신했지만 그는 소알성에서 계속해서 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창19:30). 그래서 소알성에서 빠져나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두 딸과 함께 산에 있는 굴에 거주하였습니다. 그럼, 왜 롯은 소알 성에 살지 않았던 것일까요? 가능성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소알 성도 곧이어 멸망받지 아니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파멸의 교훈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즉 소알 성은 성의 규모만 작을 뿐 소돔과 고모라 성과 같은 동일한 종류의 사람들로 살고 있는 지역이었기에, 역시 성적인 타락과 도덕적인 타락에 물들어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소알 성에 계속해서 거주했다가는 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까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과 섞여사는 것을 두려워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신앙적인 순수성과 혈통적인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그는 소알 성에서 빠져나와 산으로 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후자가 더 옳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3. 롯의 두 딸의 아버지와의 동침사건은 어떤 사건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래서 롯과 두 딸들은 소알성으로부터 빠져나와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의 어떤 굴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딸이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늙으셨고(약 78세 정도), 어디에서 결혼할만한 남자가 자기들이 살고 있는 굴 속으로 들어올 리가 없으니, 아버지와 동침하여 자손을 잇게 하자고 한 것입습니다. 그리하여 두 딸은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는 들어가서 차례대로 자식을 낳게 됩니다. 그래서 태어난 자식이 '모압("나의 아버지로부터")'이요, '벤암미("내 아버지의 아들", "내 백성의 아들")'입니다. 이 사건을 두고 사람들은 2가지 반응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두 딸들이 파렴치한 일을 저질렀다고 말할 것입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녀들이 저지른 것은 근친상간을 저지른 것이기에 그 행동을 두고 결코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하나는 이것이 패륜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딸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는 것입니다. 즉 롯의 가문의 경건한 자손을 잇고자 선택한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4. 롯의 두 딸들의 행위는 손가락질만 당할 일이었는가?
롯의 두 딸들의 행위는 결로 칭찬하거나 자랑할만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근친상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롯의 두 딸들에게 손가락질만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두 딸의 행위의 의도와 목적이 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간음을 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품에 누웠던 것이 아닙니다. 두 딸들을 처녀였으며, 아버지의 방침에 따라 신앙적 순수성과 혈통성인 순수성을 가진 남자를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후손을 얻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로 우리가 롯의 두 딸들에게 손가락질만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신앙의 계보인 유다의 혈통에서도 역시 이와 비슷한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도 자신의 여동생을 아내로 취했던 사람입니다(물론 이복누이동생입니다만)(창20:12). 또한 야곱의 넷째 아들으로서 메시야의 조상이 된 유다도 이번 사건과 거의 유사한 일을 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유다가 이방인이었던 가나안사람 수아의 딸을 취하였고 그녀로 인하여 세 명의 아들들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동족에게서 아내를 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든지 유다는 수아의 딸을 통하여 엘과 오난과 셀라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엘을 장가 보냈습니다. 그런데 엘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형수인 다말을 둘째 아들 오난에게 보내어 첫째 아들을 씨를 얻게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오난은 형수에게 씨를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치셔서 오난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며느리(다말)를 친정에 보내버립니다. 그리고 셀라가 장성했어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유다가 어느날 양털깎는 일로 며느리가 사는 지역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던 다말은 창녀 분장을 하고서 시아버지로부터 씨를 받아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임신소식을 들은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죽이려고 하지만 그 씨의 임자가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자 그는 "그녀가 옳게 행했다"고 말했습니다(창38:26). 그래서 다말은 쌍둥이 아들을 낳습니다. 결국 유다의 신앙적 혈통적 계보는 셀라가 아니라 며느리 다말이 낳았던 첫째 베레스에게로 이어집니다(마1:3). 그런데 사람들은 롯의 행동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하면서, 유다가 메시야의 조상이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유다의 행위는 적당히 슬쩍 넘겨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요?
5. 롯의 두 딸들을 왜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우고 들어가서 그렇게 자손을 잇고자 했을까요?
롯의 두 딸들이 저지른 행동은 사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음란해서 일으킨 행동도 아니었고, 아버지가 일부러 일으킨 행동도 아니었습니다. 두 딸들이 신앙적인 순수성과 혈통적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행동을 꼭 비난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과연 자신의 신앙적인 순수성을 보존하고 혈통적인 순수성을 보존하고자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어쩌면 그들이 했던 행동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나태하고 태만한 삶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주어 천국백성(영적 자손)을 만드는 일을 하는데 우리는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자신의 영적인 후손을 얻고자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비록 행동은 바람직하지는 아니하였으나, 롯의 두 딸이 행한 행동은 믿음의 행동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그래서 큰 딸이 낳은 족속들이 생겨났으니 그 종속을 우리는 "모압'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모압족속 가운데 "롯"이라는 여인이 베들레헴 사람 유다지파의 엘리멜렉의 아들 말룐의 아내가 됩니다. 그런데 남편이 일찍 죽자 시어머니를 따라 모압 땅에서 베들레헴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말룐의 친족인 보아스를 만나 재혼에 성공함으로써 그녀는 메시야의 직계조상인 오벳을 낳게 됩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았으니,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었고, 룻이 낳았던 아들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오늘은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노력했던 롯의 두 딸들의 기기막힌 사연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2021년 05월 13일(목)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