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강해(28) 스데반은 무엇을 책망했으며 어떤 진리를 전했는가(행7:44~53)_2022-08-09(화)

by 갈렙 posted Aug 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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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9D_HA5i0FeA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28) 스데반은 무엇을 책망했으며 어떤 진리를 전했는가(행7:44~53)_2022-08-09(화) 

https://youtu.be/9D_HA5i0FeA  [혹은 https://tv.naver.com/v/28450211 ]

 

1. 스데반은 공회석상에서 어떤 변호를 했는가?

  예루살렘 교회의 안수받은 성도였던 스데반은 과부들을 위한 '구제'의 일만 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며, 기도에 있어서도 기사들과 표적들이 나타날 만큼 강력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러자 헬라파 유대인들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스데반을 능히 당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들은 사람들 매수하여 스데반을 모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성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그를 공회에 서게 만들었다. 그러자 스데반은 이전의 베드로처럼 70명이 모여있는 공회석상에 자신을 변호해야 했다. 그때 스데반은 어떤 변호의 말씀을 했을까? 그것을 요약하면, 일종의 설교와 같았다. 그리고 그 내용은 크게 3가지 정도였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할례의 언약과 모세의 율법과 솔로몬의 성전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진리였으며, 그것은 유대인들이 이때껏 잘못 알고 있고 잘못 행하고 있는 것을 책망하는 내용이었다. 

 

2. 스데반은 당시 공회석상에서 무엇을 책망했는가?

  스데반은 차분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차분히 자신과 그들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공회원들이나 자신이 다 똑같은 한 핏줄이자 아브라함의 언약의 자손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니 굳이 둘로 나눠져서 서로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넌지시 암시한 것이다. 그리고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까지의 족장들의 이야기를 언급했고, 이후에 기근으로 애굽에서 들어갔다가 출애굽하는 과정에서 모세가 했던 역할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모세가 세운 증거의 장막이 다윗과 솔로몬에 의해 성전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하나님은 과연 지금 어디에 계시며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고 있는지를 언급하였다. 이러한 진술과정을 통해 스데반은 그들에게 6가지를 책망한 것이다. 

  첫째, 자신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언약의 자손이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할례만 받았을 뿐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으며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자신의 조상들의 이야기는 사실 시기와 질투심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의인들)을 핍박하고 죽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야곱의 10명의 아들들이 자기들의 형제였던 요셉을 핍박하고 죽이려 하였으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를 원망하고 비난하고 죽이려 하였으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회개를 외쳤던 자들 곧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다는 것이다. 셋째, 그들이 모세로부터 율법을 받았지만 율법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넷째, 자기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불순종하고 우상을 숭배해 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40년간 있을 때에도 그렇게 살았고 이스라엘 본토에서 생활할 때도 그렇게 살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서 바벨론에 포로가 되게 했다는 것이다. 다섯째, 하나님은 그분을 진실로 섬기는자들의 마음 속에 있으며, 어디에나 계시는데 유대인들은 성전 자체를 우상시해왔다는 것이다. 여섯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했던 아브라함의 씨이자, 모세가 말했던 '나와같은 선지자' 한 사람을 보내준다고 했던 그분이요,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분이 의인이신 예수님이신데, 그들은 예수님을 배반하였고 그를 죽이는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3. 스데반이 전했던 진리의 말씀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스데반은 책망과 동시에 무엇이 자신과 유대인들이 지켜야만 했으며 순종해야만 했던 진리였는지를 증거한다. 그것도 역시 여섯 가지 정도로 요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할례의 언약의 효력은 형식에 있지 않고 그 내용과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할례는 반드시 회개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할례를 받게 된 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지 못했던 것을 참회하는 회개의 표시였던 것이지 할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둘째, 참된 믿음은 진실된 하나님의 종들을 잘 알아보고 그들의 지도를 잘 따라가는 것이지 그러한 참 종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에 대한 표징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나타나며 그것은 우상숭배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40년간 장막에 거했으나 그들은 그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장막에 감추어 두었던 몰록의 신과 레판(토성)의 별신을 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우상숭배행위는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을 들어간 후에도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넷째,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준 율법은 천사가 전해준 것이지만 그것마저 따르지 않았으며, 또한 율법은 모형과 그림자이며 율법을 만드신 예수님의 말씀이 진짜라는 것이다. 다섯째, 솔로몬이 지은 성전 역시 모형과 그림자이며, 진정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예수님의 몸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참 성전이었다는 것이다. 여섯째, 예수님은 요셉의 삶으로서 예표되었고 모세가 곧 오리라고 예언하였으며,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의인이셨고 또 그 약속대로 오셨는데 오히려 유대인들이 그분이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4. 스데반의 증거가 힘이 있었고 또한 유대인들이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스데반의 증거가 힘이 있었던 이유는 첫째는 그의 모든 증거가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상태에서 말씀을 증언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의 증거했던 모든 말씀은 다 성경에 근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스라엘 민족의 불순종 및 거역적인 삶 그리고 성전에 대한 맹목적인 신격화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성경적인 근거로 변호했기 때문이다. 그때 스데반은 이스라엘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장막에 돌아가서는 여러 우상들(애굽의 송아지우상, 암몬의 몰록신, 바벨론과 바사의 레판(토성)의 별신)을 섬기고 살아왔음을 아모스 5:25~27의 말씀을 인용하여 언급한다(행7:42~43). 또한 하나님께서는 만상의 주인으로서 하늘에 계시며 언제 어디서든지 그분을 찾는다면 만날 수 있는데,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안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잘못하고 가르치고 있음을 이사야서 66:1~2의 말씀을 인용하여 증언했던 것이다(행7:49~50). 그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곳에만 제한되어 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행7:48). 그러니 그 어느 누구도 그의 말을 반박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그의 증거를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빨을 갈더니 급기야는 돌로 그를 쳐죽이는 파렴치한 행각을 벌이게 된다. 

 

5. 스데반이 증거했던 책망과 진리의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깨우쳐 주는가?

  스데반은 사실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가 했던 모든 말씀은 다 성경에 근거한 것이었고 또한 참 진리를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생명을 얻을 자는 이러한 책망의 말을 들었을 때 반응이 다르다. 그들은 이러한 책망을 말을 듣게 되면 곧바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겸손히 자신의 죄를 자복하면서 "그러면 내가 어찌할꼬"라는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한 자는 책망의 말을 들었을 때에 더 악랄하게 나온다. 이것이 생명의 길을 걸어갈 자와 사망의 길을 걸어갈 자의 차이인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생명을 얻을 자는 진리의 말씀 앞에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말씀을 왜곡하고 살아왔으며 잘못 적용하고 살아왔는지를 깨닫고 회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유턴하여 그 말씀을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사망의 길을 걸어가는 자는 아무리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어도 그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정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외식된 행위만을 진리로 포장하며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진정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살펴보자. 그리고 진리의 말씀에 나는 과연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왔는지를 다시 돌아보자. 오 주여, 우리의 어리석음과 교만함과 우준함을 용서해 주소서. 아멘.

 

2022년 08월 09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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