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GION/동탄명성교회
믿기만 하고 회개 없으면 공허한 신앙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성경에 없어요”
www.kns.tv 오성환 취재부장
종교개혁하면 떠오르는 마틴 루터와 장 칼뱅. 하지만 이들의 주장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칼뱅은 엄격한 금욕 생활과 더불어 인간의 구원을 미리 정해 놓았다는 예정설을 주장했다. 그의 사상이 집대성된 저서 ‘기독교 강요’는 오늘날 개신교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동탄명성교회 정병진 목사는 칼뱅의 교리의 오류를 꼬집고 있다. 오랜 전통을 이어온 ‘믿으면 구원’이라는 교리에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았을 터. 널리 알려져 있고 오랫동안 인기가 있었다 해서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그의 묵직한 외침은 이미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저서 『회개와 천국복음』은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의 잘못된 전통을 바로잡고 참된 성경적 구원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2017년 12월 책이 출간된 이후 조직신학 분야에서 꾸준히 베스트 셀러 반열에 든 것이 그 반증이다. 교인 수가 대폭 감소함에 따라 자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 때에 잘못된 신앙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외치는 그의 소신을 담아봤다.
신앙의 이유는 천국가기 위해서
“실제적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의 비중은 아주 적습니다.”
개신교의 신앙인들이 교회에 가고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이유의 중심엔 ‘천국’이 있다. 개신교 신앙을 하지 않더라도 천국이란 것은 받고 싶은 복의 가장 좋은 단계, 사후세계에 가게 되는 좋은 곳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흡사 불교의 극락과 유사한 개념이다. 천국에 가고자 하는 이유의 기저에는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도 포함된다. 죄를 지은 사람이 사후세계에서 끊임없이 형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해당 종교의 기반이 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천국은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신앙생활을 스스로 잘 한다고 자부하면 갈 수 있는 것인가? 정 목사는 이에 대해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신앙관이라고 지적한다. ‘오직 믿음’을 외쳐온 한국 교계에 큰 반향이 일만한 주장이다. 정확한 기준 없이 하는 신앙생활은 천국이라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사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천국에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회개’
정 목사가 주장하는 핵심은 ‘회개’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믿음과 더불어 ‘회개’가 더 강조되어야 한다고 그 중요성을 피력한다.
“예수님께서는 ‘믿음’과 ‘회개’를 통한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하면 모든 신앙의 결과가 다 종결된 것이고 용서되었기 때문에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쉬운 비성경적인 구원론에 빠져버린 신앙관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착각 속에 머물러 있게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장은 성경에는 단 한 구절도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편하게 믿고 쉽게 신앙하려고 만들어낸 믿음이죠.”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마음으로 아무리 예수를 열심히 믿는다고 해도 회개가 빠진 믿음은 천국이라는 목적달성이 불가능하다고 그는 말한다. 만일 교회에서 장로, 권사 등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고 할지라도 회개를 하지 않는다면 죄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위를 막론하고 천국에 가고자 하는 신앙인이라면 열외 없이 ‘믿음’과 함께 ‘회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종교개혁으로 다시 돌아가자!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있던 1517년으로부터 505년이 지난 올해. 과연 그의 개혁은 이어져 오고 있을까? 정 목사는 한국 교계에 다시금 구원관에서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지금 개신교가 과연 제대로 가고 있을까요? 제가 봤을 때는 개신교도 똑같습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에는 자신이 지은 죄를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백해서 회개해야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주님을 위해서 봉사하고 헌금하고 그 행위로만 천국에 가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 한 겁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구원관은 여기에서 많이 퇴색이 되어버린 거죠.”
퇴색된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개신교가 말하는 ‘죄’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인류가 죄를 범해서 그 죄로 인해 인간이 죄 값을 치르게 됐다. 그 죄의 값이 사망이고 지옥이다. 그러나 인류를 창조한 신은 인간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조치를 취한 것이 예수를 십자가 지게 하는 사건이었다. 인간 스스로는 자신의 죄 값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이 대신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사람이 되어서 이 땅에 예수로 왔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린 것이다.
“성경 레위기 16장에서 보면, 전체가 지은 죄를 한 마리의 속죄양에게 뒤집어 씌워서 그 양을 죽게 한다는 법을 만들어 두셨어요. 그런 법이 세상이 없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이죠. 그 법의 절차를 따라서 하나님이 죄를 지고가는 한 마리의 양이 되셔서 인류를 위한 희생제물이 된 거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겁니다. 고로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 곧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믿을 때에 이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이 되는 겁니다.”
죄를 용서받고 싶다면 죄를 두고 판결하는 신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정 목사는 천국과 지옥을 두고 심판하는 신이라도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 인정할 때에 그에게 죄를 용서받는 자격이 생긴다고 말한다.
16세기 초반 종교개혁이 발생한 배경도 사실 이 ‘죄’와 관계가 있다. 당시 베드로 성당을 지어야 하는데 헌금이 부족하다 보니 헌금을 많이 내면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면죄부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옥’이라는 개념은 사실 가톨릭 교리에 있을 뿐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사회적 배경 속에서 속인들이 만들어냈을 따름이다. 신만이 할 수 있는 죄를 사하는 권한을 어찌 사람이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인 교황과 신부가 그것을 거머 쥐게 되고 이로 인해 종교계는 많은 부정부패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지만 그러나 현재는 그 의미마저 금새 퇴색되고 말았다.
루터의 교리를 비틀어버린 칼뱅
마틴 루터보다 26년 후에 탄생한 장 칼뱅은 루터의 구원론을 다시 비틀어버렸다. 믿고 회개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구원 혹은 심판으로 사람은 예정되어 있다는 이중예정론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이 예정론은 비성경적입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이 사람은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이라면 그는 믿고 회개해서 천국에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회개도 안 하고 믿지도 못한 상태에서 지옥에 가게 된다는 교리이지요. 그냥 비튼 것이 아니고 어거스틴이 만들어왔던 절대예정론을 꺼내 들고 와서 다시 확대 주장한 겁니다. 상당히 잘못됐죠.”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어 있다면 회개의 중요성은 당연히 더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과가 이미 정해졌다면 과정에서 노력을 소홀히 하려는 것은 사람의 당연한 심리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은 이미 구원받았으니 더 회개하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되게금 예정론이 현실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의 그의 설명이다. 반대로 예수를 믿지 않고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지옥에 가게 된다는 말에도 힘이 실리게 된다. 이로 인해 이중예정론은 늘 뜨거운 감자였다. 교회에 다니는 것과 다니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람들 사이의 판단과 차별을 생산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던 것이다.
진정한 회개를 위해서는 기도로 자백해야 한다.
믿음만으로 천국에 갈 수 없고 회개가 필요하다면 분명 이를 위한 행위도 존재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 목사는 회개를 위해서는 자백하는 기도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회개란 자신이 지은 죄를 자신의 입술로 또 다시 주님께 아룀으로 죄를 시인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길을 가다가 남의 밭의 오이를 하나 따먹으면 이를 자백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 않으면 그 죄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믿기만 해서 천국가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게 된 후라도, 자신이 죄를 지었다면 그 죄를 신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기도를 할 때 ‘목사’라는 중보자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천주교에서 사제를 통해서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가톨릭 교리와 큰 차이를 갖는 것입니다. 중세시대에는 신부가 죄를 사해주지 아니하면 그 죄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었죠. 하지만 실제는 누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기도로 용서를 구해야 하는 거죠. 예수님과 하나님께 말이죠.” 정 목사는 누구의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성도 스스로 회개를 통해 진정한 구원에 이르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제는 실제적인 성장을 해야 할 때
우세하게 이어온 다수론자의 전통을 깨고 소신을 외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소수의 바른 외침을 통해 이 사회가 개혁ㆍ발전되어 왔듯이 종교계 또한 마찬가지다. 교회의 성장을 말할 때는 외형적인 건물이나 성도 수와 같은 양적 성장과 교리의 내용, 성도들의 믿음의 신실성 등질적 성장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정 목사는 한국 교계가 이제는 질적 성장을 위해서 성경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고 바른 교리를 전해야 한다고 외친다.
“종교개혁 이후 신학자들이 얼마나 성경을 왜곡했고, 이것을 이용해 자신에게 맞는 교리들을 만들어냈는지 적나라하게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교회사도 보면 당시 지식 정보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을 이제나마 비로소 발견한 것입니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들이 신의 말씀을 왜곡하면 그 또한 큰 죄가 아니겠는가. 정 목사는 바르지 않는 길로 가고 있는 교계의 위기감 속에서 바쁜 목회 시간을 할애하여 계속해서 책을 편찬할 계획을 늦추지 않고 있다. “앞으로 헬라어 직역 신약성경도 발간할 계획입니다. 바른 구원론에 접근하기 위해 꾸준히 근거를 제시할 겁니다.” 무엇이 한국교회를 향해 바른 가르침인지 알리려는 그의 노력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