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정원 목사
영성의 발전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중에서

질문자> 방언 통역에 대하여 궁금합니다. 저는 방언을 받은 지 한 십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통역 부분이 막혀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통역이 되는 적도 있지만 잠시뿐이고 열심히 입반 움직입니다.
통역을 사모하고 기도하지만 한참 방언을 하다보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이런 저의 모습이 참으로 한심합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좋고 일을 하다가도 방언을 하지만 통역이 되면 주의 뜻을 알고 기도가 더욱 더 즐거워질 것 같은데 왜 목놓아 기도해도 통역은 안 되나요? 목사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변>
방언 통역을 하려면
제가 방언 통역 전문이나 은사 전문도 아닌데 이런 질문에 대답하려니 쑥스럽군요. 기본적인 영적 원리를 조금 이야기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방언 통역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방언의 의미를 알아야겠지요. 그냥 기계적으로 방언을 많이 한다고 해서 저절로 방언통역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에 10시간씩 해도 모르지요.
AFKN 방송을 하루 종일 듣고 있으면 저절로 영어를 알아듣게 될까요? 아무리 오래 들어도 모르는 것은 계속 모르는 거지요.
방언이란 영의 기도입니다. 내 안에 있는 영이 영적인 필요에 의해서 기도하는 거예요. 일반적으로 사람은 어린 시절을 지나 장성해지면서 이성에 의하여 살게 됩니다.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며 생각에 의해서 항상 움직이지요. 이 생각이란 영과는 다른, 정신적인 혼에 속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각, 혼이라는 것이 완전한 것이 아니거든요. 이것은 물질적이고 논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한 시간 후에 교통사고가 난다고 합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은 내적이며 천계에 속한 것으로서 물질과 논리를 초월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일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은 이것을 위해서 기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혼, 이성은 그러한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방언기도는 곧 영의 기도이며 이와 같이 방언기도는 우리의 지식이나 이성을 초월하여 드리는 기도입니다.
원래 인간은 영으로 주님과 교통하면서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 타락해서 영이 죽었어요. 그래서 원래 영을 보조하는 역할로 만들어진 혼이 사람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영접하면 영이 다시 살아나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방언은 이 살아난 영이 움직이며 표현되고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혼은 원래 영계와 교통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 아니고 사람의 육체를 지배하고 물질계를 컨트롤하며 영과 몸의 연결 역할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영이 죽었으니 이 혼이 할 수 없이 주인 노릇을 하는데 이 혼은 근본적으로 논리적인 존재이며 직관적인 진리를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제가 지금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것은 저의 혼입니다. 혼에 속한 이성이지요. 여러분이 아, 그렇구나.. 하고 끄덕이는 것은 여러분의 혼이며 혼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듣다보면 뭔가 속에서 뭉클하고 치밀어 오르는 분도 있지요. 그것이 바로 속에서 영이 움직이는 것이며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제가 강의를 하거나 집회를 할 때 쓰러지거나 토하거나 구르시는 분도 있는데 그것도 일종의 영의 작용입니다. 혼은 그런 짓을 하지 않지요. 그것은 영이 깨어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육체의 현상입니다. 이 정도면 혼과 영의 차이를 이해하시겠지요?
혼의 기능은 그와 같이 현실인식이기 때문에 우리의 일반적인 기도는 우리의 현실적인 필요를 위하여 주로 기도합니다. 예를 들어 혼, 이성은 ‘주님, 저 물질이 부족해요.. 그리고 외롭구요. 저 시집가고 싶어요..’ 하고 기도하려고 하는데 영은 ‘주님, 제 영이 너무 약해요. 주님의 영으로 채워지고 싶어요..’ 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성은 자기의 현실적인 문제, 물질적인 문제만을 위해서 주로 기도하게 되고 영이 뭘 원하고 기도하고 싶어 하는지를 잘 몰라요. 그러나 방언으로 기도하고 나면 이성은 그게 무슨 기도인지 모르지만 그 기도는 영의 필요를 따라서 기도한 것이기 때문에 기도를 마친 후에는 깊은 속에서 영혼이 아주 행복해하고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영과 혼의 갈등이 있기 때문에 영의 힘이 강한 사람은 영적으로 살기 쉽지만 영이 약하고 육과 혼의 힘이 강한 사람은 잘 변화가 안 되고 죄를 이기는 것도 어려운 것이지요.
방언을 한다는 것 - 그것은 생각과 이성, 머리로 살던 사람이 영으로 살기 시작한다는 의미이고 영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사람이 생명적이고 내면적인 사람이 되기 시작한다는 것이지요.
전에는 이성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았지만 지금은 내면의 영이 인도하고 감동하는 대로 사는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새로운 사건의 시작입니다. 항상 생각을 한 후에 그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하여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이 그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는 것 - 이것은 패러다임의 충격이며 전혀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 것을 말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 안에서 전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존재가 그의 의견을 표현하고 그의 영역을 넓혀가기를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그가 바로 우리의 영이며 주님과 연합된 존재인 것입니다.
그것이 방언의 원리이고 의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방언을 하시는 분들이 방언의 가치와 의미를 알지 못하고 방언을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의 생각대로 기도하고 자기의 이성을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이성은 영의 부하인데 말입니다.
그러니 그런 상태에서는 방언을 몇 십 년 동안 하루에 10시간씩 해도 발전할 수 없습니다. 영의 원리는 인격적인 것이기 때문에 기계적인 노력만으로는 전혀 발전할 수 없지요.
그러므로 방언의 통역을 위해서는 무조건 기계적으로 방언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내 속에 있는 영을 존중하고 방언을 할 때 그가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지, 즉 내 영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아, 지금 내 영이 울고 있구나. 참 이상하다. 나는 울 일이 없는데 애가 왜 울지? 아, 지금은 내 영이 즐거워하는구나. 음, 나는 즐거운 일이 없는데. 내 영은 무엇을 즐거워하는 것일까? 이런 식으로 살피고 관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훈련이 반복되면 나의 겉사람의 생각과 나의 속사람의 영의 느낌이 전혀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혼이 원하는 것과 내 영이 원하는 것의 차이를 느끼게 되지요. 나는 싫지만 내 영이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성이 발달된 분들은 그만큼 영의 기능이 약해있기 때문에 영의 심오하고 깊은 것들을 잘 이해하거나 체험하지 못합니다. 성경을 읽어도 이것을 자꾸 논리적으로 분석하려고 하지 그저 영으로 먹고 받아들일 줄을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묵상은 많이 하지만 변화와 생명과 자유함은 별로 많지 않지요. 말씀은 영인데 이것을 혼으로 먹으려고 하니 소화가 어려운 것입니다. 깨달은 사람들은 아주 단순하여 외견으로는 전혀 지혜로워 보이지 않으며 영의 사람들도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영적인 삶의 시작입니다. 단순히 기도할 때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평소에 영으로 사는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를 하다보면 점점 내가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기도가 영으로 이끌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 나는 오늘 이것을 기도하고 싶었는데 한 마디도 못했어.. 참.. 주님이 다른 기도만 시키시는 바람에..’ 그러한 사람은 이제 어느 정도 내적인 기도를 아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기도와 깊은 속에서 일어나는 기도, 주님께서 강권하시고 인도하시는 기도의 차이점을 느끼는 거예요.
그 정도가 되면 방언 통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차츰 내 이성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기도가 영으로 이끌려지는 수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영의 내적인 감각이 자꾸 발전하게 되면 대인관계에서도 느낌이나 인식이 달라집니다.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그들의 말 자체보다도 그들의 영, 그들의 영적 상태를 보고 듣고 느끼는 상태로 발전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나 결정을 내릴 때에도 상황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면적인 감동과 인도하심을 따라 결정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지요. 다시 말하면 삶의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방언은 내적인 기도이고 움직임이며 그것은 외적인 것, 이성적인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방언은 내면의 영의 움직임이다... 이런 것을 이해하신 후에 그 내면을 느끼고 발전시키고 훈련하는 것, 그것이 통역의 방식인 것을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관찰하고 내 안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서 자기의 방언을 들으면 그것이 중보기도인지, 찬양의 기도인지, 전투의 기도인지, 교제의 기도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내면의 언어, 방언의 의미를 느끼고 알게 되기 시작하지요.
성도님께서 단순한 사람이라면, 예를 들어 별로 논리가 뛰어난 편이 아니며 공부를 잘 못하는 편이었다면 별로 어렵지 않게 통역과 예언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리한 축에 든다면 조금 고생을 하시겠지요. 그만큼 영보다 혼이 발전되어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마시고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어렵게 얻는 만큼 잘 관리하실 수 있으니까요.
방언의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의 방언을 통역하며 영의 기도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한 기도에는 강렬한 주님의 임재와 기름부으심이 있으며 그러한 기도가 주는 기쁨과 만족감은 경험하지 않고는 표현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부디 더 많이 기도하시고 더 갈망하십시오. 방언으로 기도하며 더 깊은 세계로 나아가기를 사모하십시오. 갈망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님은 결코 은혜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부디 풍성한 영의 세계를 누리고 발전해가시기를 바라고 기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