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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5. 23. (토)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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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JkxdS9pahcY
날짜 2026-05-22
본문말씀 사도행전 2:1~13
설교자 정보배목사
주제어 #방언 #성령은사 #성령충만 #방언기도 #영의기도 #성령강림 #오순절 #예언 #방언통역 #회개 #거룩 #말씀 #새방언

2026-05-22(금) 금요기도회

제목: [제3회 방언열기세미나] "방언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나도 방언으로 말할 수 있는가?"(사도행전 2: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JkxdS9pahcY

 

 

1. 들어가며

 방언은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말해지면서도 가장 많이 오해되는 은사 가운데 하나다. 어떤 사람은 방언을 성령 충만의 분명한 표적으로 여기지만, 어떤 사람은 이미 사라진 은사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을 외국어로만 보며, 오늘날 성도들이 말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무의미한 소리라고 판단한다. 또 어떤 사람은 방언을 말하고 싶어 하면서도 두려움과 선입견 때문에 자기 혀를 성령께 내드리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은 방언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새 방언을 말하는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제자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했다. 사도 바울도 방언을 많이 말함으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했으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교회에 권면했다. 그러므로 방언은 특정 교단의 체험담이나 일시적 흥분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그것은 성경이 증언하는 성령의 실제 역사 가운데 하나다(16:17; 2:4; 고전 14:18,39).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고전 14:18,39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이번 설교의 핵심은 방언을 막연한 체험으로 밀어붙이는 데 있지 않다. 성경이 말하는 방언이 무엇인지, 오순절 방언이 왜 단순한 외국어만이 아닌지, 방언이 왜 지금도 교회 안에서 필요하며, 성령 방언과 귀신 방언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세우는 데 있다. 더 나아가 방언을 영의 기도와 찬양으로 사용하고, 방언 통역과 예언의 질서 안에서 교회를 세우며, 실제로 성령께 혀를 내드리는 길을 밝히는 데 있다.

 방언의 문제는 결국 혀의 주권 문제다. 혀를 혼이 붙들면 사람의 언어가 나온다. 혀를 성령께 내드리면 영으로 하나님께 말하는 언어가 나온다. 그러나 혀를 귀신에게 빼앗기면 거짓된 말과 더러운 말과 미혹의 말도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방언은 단순한 소리의 문제가 아니라, 내 혀가 누구에게 쓰임받고 있는가의 문제다. 성도는 두려움이나 무지에 붙들려 방언을 막아서는 안 되지만, 분별 없는 체험주의에 빠져서도 안 된다. 성경과 회개와 성령의 질서 안에서 방언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성경이 말하는 방언이 무엇이며, 성도가 어떻게 성령께 혀를 내드려 영으로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성경이 말하는 방언은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방언을 이해하려면 먼저 헬라어 단어를 보아야 한다. 신약성경에서 방언으로 번역된 말은 주로 글로사. 이 말은 기본적으로 를 뜻한다. 물론 혀가 말하는 언어라는 의미로도 쓰이지만, 그 출발은 단순한 랭귀지가 아니라 혀다. 그러므로 방언은 먼저 혀의 문제다. 누가 그 혀를 붙들어 쓰느냐가 핵심이다.

 한국어에서 방언은 사투리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전라도 말, 경상도 말, 충청도 말처럼 한 나라 안의 지방 말도 방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방언은 단순한 지방 말이 아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성도의 영을 감동하시고, 그 영이 혀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말하게 하시는 영의 언어다. 그러므로 성경의 방언을 단순히 사투리나 외국어의 차원으로만 낮추어서는 안 된다.

 사도행전 24절은 방언의 출발점을 정확히 보여 준다. 제자들이 먼저 자기 의지로 이상한 소리를 만든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라는 표현이다. 방언은 성도가 자기 혀를 성령께 내드릴 때 성령께서 그 혀를 사용하시는 사건이다(2:4).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고린도전서 14장은 이 방언의 성격을 더 분명히 설명한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한다.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 여기서 방언은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일반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께 향하는 영의 발설이다. 헬라어로 말하다는 말 가운데 랄레오는 발설하다, 소리를 내어 말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방언은 성령께서 성도의 영과 혀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발설하게 하시는 언어다(고전 14:2).

고전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러므로 방언은 이성의 언어와 대립되는 무질서한 소리가 아니다. 혼의 언어가 있고 영의 언어가 있다. 혼은 배운 말로 생각하고 말한다. 그러나 성령께서 내 영을 감동하시고 내 혀를 붙들어 쓰실 때에는 내가 배우지 않은 말로 하나님께 말하게 된다. 이것이 성령 방언이다. 성도는 이 차이를 알아야 한다. 방언은 생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영의 깊은 기도를 성령께 내드리는 것이다.

 또한 방언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도 연결된다.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분리된 별개의 신비가 아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생명 주는 영으로 성도 안에 들어오신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 주는 영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이다(고전 15:45; 3:20).

고전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러므로 성령께 혀를 내드린다는 것은 결국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내 혀와 내 영을 내드리는 것이다. 방언은 혀의 기술이 아니라 순종의 문제다. 자기 혼으로만 기도하려는 고집을 내려놓고, 성령께서 내 혀를 사용하시도록 맡기는 것이 방언의 시작이다.

 

 

3. 오순절 방언은 왜 단순한 외국어가 아닌가?

 오순절 방언을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을 외국어로만 해석한다. 그 이유는 각 나라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자기들이 태어난 곳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들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 전체를 자세히 보면, 오순절 방언은 단순히 제자들이 여러 외국어를 배워서 말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령께서 말하게 하신 글로사였고, 듣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각자의 언어로 듣게 하신 표적이었다.

 사도행전 23절은 먼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임했다고 말한다. 성령 강림의 표지가 바람과 불과 혀로 나타난 것이다. 이어서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다른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같은 종류 안에서 다른 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류의 언어를 가리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곧 이 세상에서 배운 혼의 언어가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영의 언어가 터진 것이다(2:3-4).

2:3-4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런데 이 사건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갈라졌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태어난 곳의 말로 하나님의 큰일을 듣고 놀랐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제자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다. 만일 모든 제자가 분명한 외국어만을 말했고 모든 사람이 그 말을 자연스럽게 알아들었다면, 새 술에 취했다는 조롱이 나오기 어렵다. 어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큰일로 들렸고, 어떤 이들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처럼 들린 것이다(2:6-8, 11-13).

2:6-8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2:11-13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여기서 방언각 언어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말하는 자에게서 나온 것은 성령이 말하게 하신 글로사였다. 그러나 듣는 자들에게는 각자의 디알렉토스, 곧 자기들이 난 곳의 말로 들렸다. 그러므로 오순절 사건에는 말하는 기적과 듣는 기적이 함께 있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말하게 하셨고, 동시에 복음을 받아들일 자들의 귀를 열어 그들이 자기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듣게 하셨다.

 이 해석은 사도행전의 다른 성령 강림 사건과도 연결된다. 고넬료의 집에서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에도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다. 그런데 그 자리는 사도행전 2장처럼 15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모인 장소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그 사건을 처음 우리에게 임하신 것과 같은 성령의 역사라고 증언했다. 이것은 방언이 단순한 선교용 외국어에만 제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10:44-46; 11:15-17).

10:44-46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11:15-17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오순절 방언은 교회 탄생의 표적이었다. 120명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했고, 흩어진 유대인들이 자기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들었으며, 그 결과 회개와 세례와 예루살렘 교회의 탄생이 이어졌다. 그러므로 오순절 방언을 외국어 현상으로만 축소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령께서 혀를 붙들어 영의 언어를 말하게 하시고, 필요한 때에는 듣는 자의 귀까지 열어 복음을 듣게 하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였다.

 

 

4. 방언은 왜 지금도 계속되어야 하는가?

 방언에 대한 가장 큰 오해 가운데 하나는 방언이 이미 중지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대체로 고린도전서 13장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는 말씀을 근거로 삼는다. 어떤 이들은 여기서 온전한 것을 성경 기록의 완성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성경이 완성되었으니 예언도, 방언도, 지식도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맥을 자세히 보면 이 해석은 본문과 맞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의 영원성과 은사의 부분성을 비교한다.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때는 단지 성경책이 완성되는 때가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여 보고,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되는 때다. 이것은 종말론적 완성, 곧 주님을 대면하는 때를 가리킨다(고전 13:8-12).

고전 13:8-12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러므로 방언은 성경 기록이 완성되었다고 자동으로 사라진 은사가 아니다. 성경은 완성되었고, 계시의 기준은 성경으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성령께서 성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은사의 차원은 주님을 대면하는 날까지 계속된다. 성도는 여전히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깨닫고, 부분적으로 기도한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도우시는 영의 기도와 찬양은 여전히 필요하다.

 예수께서도 믿는 자들에게 새 방언을 말하는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하셨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사마리아, 다메섹, 고넬료의 집, 에베소까지 성령의 역사가 확장되는 흐름을 보여 준다. 이 흐름은 방언이 단지 한 번의 오순절 사건에만 갇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한다. 바울도 고린도 교회에 방언을 가르치며, 방언을 금하지 말라고 했다(16:17; 고전 14:39-40).

고전 14:39-40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여기서 중요한 균형이 필요하다. 방언을 금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방언을 무질서하게 사용해서도 안 된다. 바울은 방언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품위와 질서를 강조했다. 이것은 성령의 은사가 무질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사용될 때 교회와 성도를 세우는 도구가 된다는 뜻이다.

 방언이 지금도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마지막 시대의 성도에게 영적 전쟁과 영적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도는 혼의 지식만으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다.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도 있고, 자기 안에 있는 상처와 죄와 영적 눌림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때 성령께서는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게 하신다. 이 은사는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기 전까지 교회 안에서 유익하게 쓰일 수 있다.

 그러므로 방언중지론은 성경 본문보다 사람의 해석을 앞세운 결과가 될 수 있다. 성도는 은사를 성경 위에 올려놓아서는 안 되지만, 성경이 말하는 은사를 사람의 전통 때문에 막아서도 안 된다. 방언은 재림 전까지 성령께서 교회에 주실 수 있는 실제 은사이며, 성도는 그 은사를 말씀과 회개와 질서 안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5. 성령 방언과 귀신 방언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방언을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분별이다. 모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곧 성령 방언인 것은 아니다. 동시에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해서 모두 귀신의 소리로 정죄해서도 안 된다. 성경적 분별은 두 극단을 피한다. 하나는 방언을 무조건 금하는 극단이고, 다른 하나는 방언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모든 것을 검증 없이 받아들이는 극단이다.

 방언은 혀의 주권 문제이므로, 성령께 혀를 내드릴 수도 있고 귀신에게 혀를 빼앗길 수도 있다. 성령께서 혀를 사용하시면 하나님께 영으로 말하는 성령 방언이 나온다. 그러나 악한 영이 혀와 생각과 몸을 붙들면 거짓 방언, 미혹의 말, 더러운 말, 저주의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방언을 두려워해서 물러설 것이 아니라, 회개와 분별로 혀를 깨끗하게 하여 성령께 드려야 한다.

 성령 방언의 첫 번째 특징은 하나님께 향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2절은 방언을 말하는 자가 사람에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말한다고 했다. 곧 성령 방언은 사람을 현혹하거나 자기 신령함을 자랑하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향하는 영의 발설이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 영혼 구원, 회개, 중보, 찬양, 주님의 뜻을 향한다.

 성령 방언의 두 번째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성령은 예수님을 증언하시는 영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간다. 그러나 귀신의 역사는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하더라도 결국 사람을 미혹하고, 회개를 막고, 교만하게 하며, 하나님의 질서를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성도는 영을 다 믿지 말고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해야 한다(요일 4:1-3).

요일 4:1-3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성령 방언의 세 번째 특징은 정결과 회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참된 성령의 역사는 죄를 덮어 주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한다. 성령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 그러므로 방언을 많이 한다고 하면서 회개하지 않고, 교만하고, 남을 정죄하고, 질서를 무너뜨린다면 그 사람은 자기 은사를 다시 살펴야 한다(16:7-8).

16:7-8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귀신 방언은 두려움만으로 분별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방언에 대한 무지 때문에 모든 방언을 귀신의 역사로 몰아간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을 근심하게 할 수 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들리는 음성이나 보이는 영적 형상을 무조건 성령의 역사로 받아들인다. 이것도 위험하다. 악한 영은 빛의 천사처럼 가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말씀의 기준으로 분별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앞에서 모든 영을 시험해야 한다.

 방언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준비는 회개다. 회개는 단지 죄책감을 덜어내는 일이 아니다. 회개는 귀신이 붙들고 있는 근거를 제거하는 일이다. 혀에 거짓과 저주와 음란과 원망과 비방이 가득하면, 그 혀를 성령께 온전히 내드리기 어렵다. 성도는 혀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말로 지은 죄, 하나님을 원망한 죄, 사람을 저주한 죄, 악한 말을 즐긴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때 혀는 점점 성령께 쓰임받는 도구가 된다.

 그러므로 성령 방언과 귀신 방언의 구별은 은사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다. 혀를 누가 붙들고 있는가, 그 말이 누구를 향하는가, 그 결과가 회개와 거룩과 주님 사랑으로 이어지는가를 살펴야 한다. 성도는 방언을 두려워해서 막지 말아야 하지만, 회개 없는 방언을 자랑해서도 안 된다. 참된 방언은 깨끗해진 혀가 성령께 쓰임받을 때 나타난다.

 

 

6. 방언은 영의 기도와 찬양에 어떤 유익을 주는가?

 방언의 가장 큰 유익은 영의 기도와 영의 찬양에 있다. 사람은 혼으로 기도할 수 있다. 내가 아는 말, 내가 배운 말, 내가 이해하는 문장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것도 귀하다. 그러나 성경은 영으로 기도하는 차원도 말한다. 바울은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한다고 말한다.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할 수 있지만, 영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고전 14:14-15).

고전 14:14-15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여기서 바울은 마음의 기도를 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영으로도 기도하고 마음으로도 기도하겠다고 말한다. 또한 영으로도 찬송하고 마음으로도 찬송하겠다고 한다. 그러므로 방언은 이성적 기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한다. 성도는 말씀을 붙들고 자기 언어로 기도해야 한다. 동시에 성령께서 주시는 방언으로 영의 깊은 기도를 올려 드릴 수도 있어야 한다.

 방언 기도는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기도다. 여기서 비밀은 이상한 비밀주의를 뜻하지 않는다. 내 혼이 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 내 영혼의 깊은 필요, 가족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향한 중보, 아직 내가 언어로 정리하지 못한 탄식이 성령의 감동 가운데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방언 기도는 때로 매우 깊은 중보가 된다. 내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다 이해하지 못해도, 성령께서는 내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를 올리게 하신다.

 로마서 8장은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말씀한다.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 이 말씀을 방언만으로 제한할 수는 없지만, 방언 기도는 이 성령의 도우심을 실제로 경험하게 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8:26-27).

8: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방언의 또 다른 유익은 자기의 덕을 세운다는 데 있다. 고린도전서 144절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했다.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말은 자기 영을 세우고, 영적 힘을 회복하고, 믿음의 내적 구조를 튼튼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은 말씀을 통해 세워지고, 회개를 통해 깨끗해지며, 기도를 통해 힘을 얻는다. 방언은 그 기도의 영역에서 성도의 영을 세우는 유익을 준다(고전 14:4).

고전 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방언은 찬양의 유익도 준다. 바울은 영으로 찬송하겠다고 했다. 영으로 찬송한다는 것은 내 영이 성령의 감동을 따라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으로 아는 찬송을 부르는 것도 귀하지만, 때로 성령께서 주시는 영의 언어로 하나님을 높일 때 영혼 깊은 곳에서 찬양이 터져 나온다. 이것은 공연이 아니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영의 찬미다.

 그러나 방언의 유익을 말할 때 반드시 기억할 것이 있다. 방언을 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지만,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그 은사를 오용할 수 있다. 방언이 많아도 사랑이 없으면 유익이 작아진다. 방언이 많아도 교만하면 위험하다. 그러므로 방언은 말씀, 회개, 사랑, 질서와 함께 사용되어야 한다.

 방언은 영의 기도요 영의 찬양이다. 그것은 성도의 영혼 구원, 가족 구원, 교회와 나라를 위한 중보, 회개와 정결, 사명을 위한 간구를 깊게 한다. 성도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으로도 기도해야 한다. 마음으로 찬송하고 영으로도 찬송해야 한다. 이 균형 속에서 방언은 매우 유익한 성령의 도구가 된다.

 

 

7. 방언 통역과 예언은 방언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유익하게 쓰이려면 통역이 필요하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성령의 은사 가운데 방언과 방언 통역을 함께 말한다. 성령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신다. 이것은 방언이 하나님께 향하는 영의 언어이지만,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 의미가 드러나야 할 때가 있음을 보여 준다(고전 12:10).

고전 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방언 통역은 남이 하는 방언의 의미를 성령의 감동으로 알아듣고 전하는 은사다.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나오는 영의 발설이고, 방언 통역은 그 발설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옮기는 것이다. 예언은 성령께서 주시는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직접 전하는 은사다. 그러므로 방언, 방언 통역, 예언은 서로 전혀 무관한 은사가 아니다. 모두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는 계열의 은사이며, 교회와 성도를 세우는 목적을 가진다.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을 더 사모하라고 말하면서도, 방언을 낮추지 않았다. 그가 말한 것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더 직접적으로 유익하다는 뜻이다. 방언이 통역되면 예언처럼 교회의 덕을 세울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기를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고전 14:5,13).

고전 14: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고전 14: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예언과 방언 통역의 내용은 성도를 세우는 방향을 가진다. 고린도전서 14장은 예언하는 자가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한다고 했다. 또한 예언을 통해 책망과 판단이 일어나고, 마음에 숨은 일이 드러나며, 사람이 하나님께 엎드리게 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성령의 말씀이 사람을 무너뜨리기 위한 폭로가 아니라, 회개와 회복을 위한 드러냄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전 14:3,24-25).

고전 14: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고전 14:24-25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에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그러나 방언 통역과 예언은 매우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사람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누군가의 숨은 죄를 함부로 공개하여 사람을 망가뜨리는 일은 성령의 질서와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지혜로우시다. 회개하게 하실 때에는 드러내실 것을 드러내시되, 사람을 살리는 방식으로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방언 통역과 예언은 사랑과 질서와 목회적 분별 안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바울은 공예배 안에서 방언을 사용할 때에도 질서를 요구했다. 방언하는 자가 있으면 둘이나 셋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해야 한다.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해야 한다. 이것은 방언을 금하는 말씀이 아니라, 방언을 교회 질서 안에서 사용하라는 말씀이다(고전 14:27-28).

고전 14:27-28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방언 통역과 예언은 방언의 깊은 유익을 교회 공동체로 확장한다. 방언이 개인의 영을 세운다면, 통역된 방언과 예언은 교회를 세운다. 그러나 이 은사들은 반드시 성경의 기준 아래 있어야 하며, 회개와 사랑과 질서 안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성도는 은사를 사모하되, 은사보다 주님의 뜻과 교회의 덕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8. 어떻게 성령께 혀를 내드려 방언을 말할 수 있는가?

 방언을 말하려면 먼저 잘못된 선입관을 내려놓아야 한다. 방언은 이미 중지되었다는 선입관, 방언은 모두 외국어였다는 선입관, 오늘날 방언은 모두 귀신의 소리라는 선입관은 성령께 혀를 내드리는 일을 막는다. 성경은 방언을 글로사라고 말하고, 하나님께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람의 전통보다 성경의 증언을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회개해야 한다. 혀는 죄를 많이 짓는 기관이다. 야고보서는 혀가 작은 지체이지만 큰 것을 자랑하고, 불과 같으며, 온몸을 더럽힐 수 있다고 말한다. 성령께 혀를 내드리려면 혀로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거짓말, 비방, 원망, 저주, 음란한 말, 교만한 말, 하나님을 불신한 말을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혀를 성령께 드리는 정결의 길이다(3:5-6).

3:5-6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셋째, 통성으로 기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하나님은 조용한 기도도 들으신다. 성도는 묵상으로도 기도할 수 있고, 마음속으로도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방언은 혀를 사용하여 발설하는 은사다. 입을 닫아 두고 마음속으로만 방언을 달라고 반복하는 것으로는 혀를 성령께 내드리는 실제가 일어나기 어렵다. 성도는 하나님께 소리 내어 기도하고, 입술과 혀를 성령께 맡기는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넷째, 방언은 수동적 기다림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순종으로 시작된다. 사도행전 2장에서도 제자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기를 시작했다. 성령께서 감동하시지만, 말하기 시작한 것은 제자들이었다. 성령께서 혀를 사용하시도록 입을 열고 발설해야 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할 수 있다. 그러나 성도는 자기 혼의 언어를 잠시 내려놓고, 성령께서 주시는 소리에 순종하여 발설하는 믿음의 걸음을 떼어야 한다.

 다섯째, 귀신의 방해를 끊어야 한다. 악한 영은 성도가 성령의 은사를 받아 영으로 기도하는 것을 싫어한다. 방언 기도는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기도이므로, 귀신은 그 내용을 알 수 없고 막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두려움, 의심, 조롱, 부끄러움, 완고한 선입견, 혀가 굳어지는 느낌이 올 때 성도는 그것을 단순한 성격 문제로만 보지 말고 영적 방해로도 분별해야 한다. 회개와 믿음으로 그 방해를 끊고 성령께 혀를 내드려야 한다.

 여섯째, 방언을 말한 뒤에는 계속 사용해야 한다. 자전거를 한 번 배운 사람이 다시 탈 수 있듯이, 방언도 한 번 열리면 계속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질 수 있다. 방언 기도는 영의 기도이므로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조용히 해야 할 장소에서는 조용히 자기와 하나님께 말하고, 개인 기도의 자리에서는 충분히 기도해야 한다. 은사는 사용될수록 정돈되고 깊어진다.

 일곱째, 질서를 지켜야 한다.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고 해서 아무 장소에서나 큰소리로 방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예배나 다른 교회의 기도 분위기 안에서는 그 교회의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방언은 성령의 은사이므로 성령의 질서 안에 있어야 한다. 방언으로 자기 신령함을 과시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성령께 혀를 내드리는 사람은 동시에 자기 태도와 사랑과 질서도 성령께 내드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방언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다. 방언을 말하게 되는 것 자체가 신앙의 완성은 아니다. 방언은 회개를 돕고, 영의 기도를 돕고, 찬양을 깊게 하며, 영적 전쟁에서 성도를 세우는 도구다. 성도는 방언을 통해 더 주님을 사랑하고, 더 회개하며, 더 거룩해지고, 더 충성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방언이 열렸는데도 회개가 줄어들고 교만이 늘어난다면 그 은사의 사용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령께 혀를 내드리는 길은 분명하다. 성경적 무지를 버리고, 회개로 혀를 깨끗하게 하며, 통성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여 입을 열고, 귀신의 방해를 믿음으로 끊고, 질서 있게 계속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방언은 막연한 체험이 아니라 성도의 영을 세우는 실제 은사가 된다.

 

 

9. 나오며

 우리는 방언이 무엇이며 성도가 어떻게 성령께 혀를 내드려 영으로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방언은 단순한 사투리나 외국어만이 아니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방언은 글로사, 곧 성령께서 성도의 혀를 사용하여 영으로 하나님께 말하게 하시는 은사다. 그러므로 방언의 핵심은 소리의 이상함이 아니라 혀의 주권에 있다. 혀를 혼이 붙들면 사람의 언어가 나오지만, 성령께 내드리면 영의 기도와 찬양이 나온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방언은 단순한 외국어 발화로만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제자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말했고, 듣는 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들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다. 이것은 말하는 자에게서 성령의 글로사가 나왔고, 하나님께서 필요한 사람들의 귀를 열어 자기 언어로 듣게 하신 표적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방언은 지금도 계속될 수 있는 은사로 보아야 한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온전한 것은 성경 기록의 완성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는 종말론적 완성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님을 대면하기 전까지 영의 기도와 찬양을 필요로 한다. 성령께서 주시는 방언은 마지막 시대 성도가 회개하고 중보하며 영적 전쟁을 감당하는 데 유익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도는 방언을 분별 없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 성령 방언과 귀신 방언을 구별해야 한다. 성령께서 주시는 방언은 하나님께 향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회개와 거룩과 사랑으로 이어져야 한다. 악한 영의 미혹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질서를 무너뜨리며, 회개를 막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회개로 혀를 깨끗하게 하고, 말씀의 기준으로 영을 분별해야 한다.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는 영의 기도이며 영의 찬양이다. 성도는 마음으로도 기도해야 하고 영으로도 기도해야 한다. 마음으로도 찬송해야 하고 영으로도 찬송해야 한다. 방언 통역과 예언은 그 영적 유익을 교회 공동체로 확장하는 은사다. 하지만 모든 은사는 사랑과 질서 안에서 사용되어야 하며, 교회를 세우는 목적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성도는 방언을 말하기 위해 먼저 잘못된 선입관을 내려놓아야 한다. 방언중지론과 외국어 방언론의 한계를 성경적으로 분별해야 하며, 모든 방언을 귀신의 소리로 정죄하는 두려움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동시에 귀신의 방해와 거짓 역사를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한다. 회개하고, 혀를 성령께 내드리고, 통성으로 기도하며, 성령의 감동에 믿음으로 순종해야 한다.

 방언은 신앙의 최종 목적이 아니다. 성도의 최종 목적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회개로 정결케 되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신부로 준비되는 데 있다. 방언은 그 길에서 영의 기도와 찬양을 돕는 은사다. 그러므로 방언을 받은 성도는 더 많이 회개해야 하고, 더 깊이 사랑해야 하며, 더 질서 있게 교회를 섬겨야 한다. 은사가 주어졌을수록 더 겸손해야 하고, 더 깨끗해야 하며, 더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마지막 시대의 성도는 혼의 기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성령께서 주시는 영의 기도와 찬양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그 회복은 말씀을 벗어난 체험주의가 아니라, 말씀과 회개와 분별과 질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성령께 혀를 내드려 영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며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정결한 신부로 준비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22일(금)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성령의 은사인 방언의 본질을 규명하고, 성도들이 실제 방언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실천적 지침을 제공합니다. 본 설교는 방언을 뜻하는 헬라어 ‘글로싸(glossa)’가 단순히 외국어거 아니라 성령의 도구로 드려진 ‘혀’ 자체를 의미함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비밀스러운 기도의 유익을 설명합니다. 특히 정보배 목사는 방언이 성경 시대 이후 중지되었다는 방언 중지론이나 방언을 단순한 외국어로 치부하는 견해를 성경적 근거로 반박하며,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영적 무기임을 역설합니다. 또한, 방언이 터지지 않는 원인을 조상 숭배와 관련된 악한 영의 방해나 유교적 체면 문화로 분석하며, 회개와 통성 기도를 통해 성령께 혀를 맡김으로써 누구나 방언의 은사를 받을 수 있음을 권면하는 것이 이 설교의 핵심 목적입니다.

 

#방언 #성령은사 #성령충만 #방언기도 #영의기도 #성령강림 #오순절 #예언 #방언통역 #회개 #거룩 #말씀 #새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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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3(금) 금요기도회 제목: 영의 능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3단계 실천 방안(막11:22~2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6WKsZYLm7PU 1. 들어가며: 아는 것을 넘어 누리는 신앙으로 하나님은 찾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주...
    Date2026.01.24 By갈렙 Views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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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금요기도회] 내가 지금 회개를 잘 하고 있는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일3:1~3)_2026-01-16(금)

    2026-01-16(금) 금요기도회 제목: 내가 지금 회개를 잘 하고 있는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일3: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_VHBg7MXtAQ 1. 왜 예수를 믿어도 삶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가? 필자는 동탄 신도시가 처음 개발될 때,...
    Date2026.01.17 By갈렙 Views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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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영성의 길을 가려고 하는 자에게 드리는 당부의 말(고전14:40)_2026-01-09(금)

    2026-01-09(금) 금요기도회 제목: 영성의 길을 가려고 하는 자에게 드리는 당부의 말(고전14:4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ymf5N0moIp0 1. 들어가며: 영성의 길, 아무나 갈 수 있는가? 성도들 중에는 영적인 세계를 동경하는 분들이 있다. ...
    Date2026.01.10 By갈렙 Views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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