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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PQ9O451Y9YU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5)]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완벽한 모형으로서의 이삭의 생애(01)(창21: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PQ9O451Y9YU

 

 

1. 들어가며: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그 이름에 담긴 비밀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소개하실 때 반복적으로 사용하시는 매우 독특하고도 고유한 칭호가 눈에 띈다. 출애굽기 3장 6절에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2장에서 부활 논쟁을 하실 때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셨다(마 22:32). 도대체 왜 하나님은 굳이 이 세 사람의 이름을 나열하여 당신이 누군지를 설명하려 하셨을까? 단순히 이스라엘의 족보를 읊으신 것일까? 아니다. 여기에는 인류 구원을 향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대한 경륜과 구속사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추상적인 관념의 신적 존재가 아니다. 그분은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인간의 삶 속에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신다. 아브라함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자까지 아끼지 않고 내어주시는 성부 하나님의 찢어지는 마음을 대변한다. 이삭은 아버지의 그 뜻을 알고, 죽기까지 잠잠히 복종하여 제단 위에 오르는 성자 예수님의 온전한 순종을 예표한다. 그리고 야곱은 험악한 세월 속에서도 깎이고 다듬어져, 결국 열두 아들을 낳고 이스라엘이라는 승리자를 산출해 내시는 성령 하나님의 끈질긴 사역을 상징한다.

  고로 우리가 구약 성경, 그중에서도 창세기를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의 고대사를 배우기 위함이 아니다. 그 오래된 이야기 속에 감추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구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그림자요, 신약은 그 실체다. 그림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체의 윤곽을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것들 중에서도 성자 예수님의 가장 완벽한 모형이라 할 수 있는 이삭, 특히 모리아 산으로 향하던 그의 무거운 발걸음과 침묵을 추적해 보려 한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2천 년 전 골고다를 향해 걸어가셨던 아들로 오신 하나님의 그 깊고도 넓은 사랑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2. 왜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아들이라 하지 않고 이삭만 '독자'라 하셨는가?

  창세기 22장의 문을 여는 하나님의 명령은 매우 충격적이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독자'라는 표현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 외에도 먼저 태어난 아들이 있었다. 바로 하갈을 통해 이미 낳았던 이스마엘이다(창 16:15). 육체적인 순서로 따지자면 이스마엘이 엄연한 장자인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스마엘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리시고, 이삭만을 가리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Only Son)"라고 못 박으신 것일까?

  여기에는 천국 기업을 잇는 자격에 대한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가 숨어 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권은 육체의 혈통이나 인간적인 노력으로 이어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약속'을 따라, 곧 '아버지의 뜻'으로 태어난 자만이 진정한 아들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한 채, 육신적인 방법과 정욕으로 낳은 자식이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은 '육체'를 상징한다. 반면 이삭은 "내년 이맘때(생명의 때에)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라"(창 18:10)는 하나님의 약속, 즉 생명의 말씀이 불가능한 상황(사라의 태가 끊어짐)을 뚫고 성취되어 태어난 존재다. 러므로 이삭은 '성령'을 상징한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독생자(Monogenes=Only Begotten Son)'라고 부르는 이유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헬라어 '모노게네스'는 '유일하게(Mono) 낳은 자(Genes)'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부어 낳은 유일한 존재, 아버지와 본질을 이어받은 존재라는 의미다. 고로 히브리어의 '독자(야히드)'라는 표현(창 22:2)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예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된 단어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원리도 이와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단순히 교회에 마당만 밟는다고, 모태신앙이라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아버지의 생명, 즉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육체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요 3:6). 하나님께서는 육체적인 조건이 아니라, 당신의 약속을 믿고 거듭난 자,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만을 '내 아들'이라 부르시고 천국을 유업으로 주신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은 결국 아브라함의 유업을 이어받지 못한 채 쫓겨나야 했다. 하지만, 이삭은 아버지의 유일한 상속자가 되었다. 

 

3. 이삭은 모리아 산으로 갈 때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까?

  창세기 22장의 하이라이트는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 향하는 3일 길의 여정이다(창 22:4).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아들 이삭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산 아래에 도착했을 때, 아브라함은 그의 종들에게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하고, 이삭에게 번제에 쓸 나무를 지게 한다. 그리고 자신은 불과 칼을 손에 든다.

  그리고 적막이 흐르는 산행길, 그때였다. 이삭이 침묵을 깨고 아버지에게 묻는다.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 22:7). 우리는 이 질문을 철없는 아이의 순진한 호기심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삭은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사를 드리러 가는데 가장 중요한 제물, 즉 어린 양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으로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3일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의 표정, 비장하게 쥐고 있는 칼과 불. 이 모든 정황 속에서 이삭은 직감했을 것이다. "아, 이번 제사의 제물은 짐승이 아니구나. 아버지가 준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를 제물로 바치려고 하는 것이로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결코 도망치지 않았다. "왜 양이 없느냐"고 따지거나, "나는 못 가겠다"고 돌아서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대답을 들은 후, 다시 침묵하며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간 것이다. 이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고뇌하면서도, 끝내 도망치지 않고 그 길을 가셨던 예수님의 침묵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이삭은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간 희생양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뜻을 감지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내어맡긴 성숙한 아들이었다. 이 3일 길은 예수께서 죽으시고 무덤에 계셨던 3일의 시간을 예표하기도 한다.

 

4. 건장한 청년 이삭은 왜 늙은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않았는가?

  이삭이 하나님께서 제물로 바쳐졌을 때에 그의 나이는 어떠했을까? 많은 성화나 주일학교 교재를 보면, 이삭은 아주 어린 소년으로 묘사되어 있다. 성경의 원어와 역사적 정황을 종합해 보면 이는 사실과 조금 다를 수 있음을 암시해준다. 본문에 쓰인 '아이'라는 히브리어 '나아르'는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결혼 적령기의 청년, 심지어 군사에 나가는 젊은이를 지칭할 때도 쓰이는 단어다. 그러므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당시 이삭의 나이를 25세로 기록했고, 고대 문헌인 야살의 책은 37세로 추정한다.

  당시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낳았으니, 이 시점에 그는 최소 125세가 넘은 노인이었다. 반면 이삭은 번제에 쓸 만큼의 많은 땔감을(족히 수십 킬로그램은 되었을 것이다) 등에 지고 가파른 모리아 산을 오를 만큼 혈기 왕성하고 건장한 청년이었다. 그러므로 생각해 보라. 산 정상에서 노인 아브라함이 청년 이삭을 밧줄로 묶으려 할 때, 이삭이 마음만 먹었다면 늙은 아버지를 뿌리치고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다. 힘으로 따진다면 이삭이 아브라함을 제압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순간 아버지가 미쳤거나 노망을 들었다고 생각하고 반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반항하지 않았다. 야살의 책에 보면 이삭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아버지여, 나를 단단히 묶어 주소서. 내가 육체의 고통 때문에 본능적으로 움직여서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가 흠이 될까 두렵나이다." 이것은 강요된 희생이 아니었다. 철저한 자발적 헌신이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실 때, 힘이 없어서 로마 군병들에게 결박당하신 것이 아니다. 주님은 말씀 한마디로 그들을 다 넘어뜨리실 수 있었고,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부르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무력해지셨다. 이삭이 결박당한 것은 밧줄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신뢰,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 때문이었다. 이삭의 이 놀라운 순종은,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발적 순종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그림자다.

 

5. 아브라함의 믿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가? (부활 신앙)

  여기서 우리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재조명해야 한다. 100세에 얻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어떻게 자기 손으로 죽여서 각을 뜨고 불태우려 할 수 있었을까? 아브라함이 비정한 아버지여서가 아니다. 맹신도여서가 아니다. 그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믿음의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산 아래에서 종들에게 했던 말을 다시 살펴 보자.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 22:5). 그는 '나 혼자' 돌아온다고 하지 않고, 분명히 '우리가(We)' 돌아온다고 복수형으로 말했다. 거짓말을 한 것일까?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 19절은 아브라함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알려 준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었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창 21:12)는 약속을 말이다. 그런데 이삭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였고 자식도 없었다. 만약 이삭이 지금 죽어버리면 하나님의 약속은 거짓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분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내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삭을 죽여서 잿더미로 만든다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 재 가운데서 다시 이삭을 살려내셔서 당신이 직접 내게 하신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가졌던 부활 신앙이다. 구약 시대에, 부활의 개념이 희미했던 그 시절에 아브라함은 이미 부활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모리아 산은 아들을 잃는 상실의 장소가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체험하는 기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그는 믿음으로 이미 아들을 죽였고, 믿음으로 도로 받았다.

 

6. 이삭의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리고 이삭이 걸어간 여정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Via Dolorosa)과 소름 끼치도록 오버랩된다. 이삭이 자신이 태워질 나무를 등에 지고 모리아 산을 올랐다(창 22:6).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자신이 못 박힐 십자가 형틀을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다. (참고로 골고다는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이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내리치려 할 때 이삭이 잠잠했듯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조롱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털 깎는 자 앞의 양처럼 잠잠하셨다(사 53:7).

  이삭은 예수님의 '그림자'요, 예수님은 이삭의 '실체'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이삭은 죽음 직전에 하나님이 급하게 말리셔서 죽지 않았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하나님은 차마 아브라함의 아들이 죽는 것을 보지 못하신 것이다. 대신에 수풀에 걸린 숫양을 준비하여 그것으로 제사하게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떠했는가? 예수님에게는 멈춤 신호가 없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은 살려주셨지만, 당신의 아들, 아니 아들로 오신 자기 자신은 십자가에서 끝까지 죽게 내버려 두셔야만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절규에도 아버지는 침묵해야 했다.

  이삭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그 이면에는 장차 진짜 제물이 되어 피 흘리고 죽으셔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비극적이고도 위대한 사랑이 깔려 있다. 이삭을 통해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과 순종의 무게, 그리고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7. 이삭이 받은 '백 배의 축복'의 비결은 무엇인가?

  모리아 산 사건 이후, 이삭의 삶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창세기 26장을 보면 그가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의 결실을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기록한다. 남들은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굶어 죽니 사니 하는데, 이삭은 하는 일마다 대박이 났다.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우물을 메우면, 다른 곳을 팠고 거기서 또 물이 솟아났다. 샘의 근원을 얻는 복을 받았다.

  왜 이삭에게 이런 파격적인 복이 쏟아진 것일까? 그가 특별히 농사 기술이 좋아서일까? 우물 파는 기술이 뛰어나서일까? 아니었다. 그것에 대한 영적인 대답은 단 하나다. 그는 모리아 산에서 이미 바쳐졌던 자 곧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던 자요, 옛 사람이 이미 '죽었던 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제단 위에서 자기 생명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쳤다. 비록 칼이 몸에 닿지는 않았으나, 그의 중심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자기 목숨을 하나님께 바친 사람, 즉 '순교자적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그가 가는 길에 아끼지 않고 부어주신다.

  고로 자기를 온전히 드린 자는 세상도 감당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이미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드린 자에게 무엇을 아끼시겠는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힘들고, 막히고, 부족함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직 나를 온전히 제단 위에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흉내만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삭처럼 완전히 묶여서 "주님, 내 생명도 내 뜻도 다 주님의 것입니다. 죽이시든 살리시든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맡길 때, 그때부터 100배의 축복, 마르지 않는 샘물의 축복이 시작된 것이다. 죽어야 산다. 드려야 받는다. 이것이 바로 축복에 대한 비밀 열쇠인 것이다.

 

8. 하나님이 직접 보여주신 '여호와 이레'의 참뜻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수풀에 걸린 숫양으로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리고 난 후 그는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불렀다. 우리는 흔히 이 말을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라고 알고 있다. 물론 의역하면 이것도 맞는 말이다. 하나님이 숫양을 이삭 대신 준비하셨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훨씬 더 충격적이고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왜냐하면 '이레(이르에흐)'라는 단어는 '보다(라아=Ra'ah)'라는 동사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이레'는 "여호와의 산에서 그가(하나님이) 자기자신을 보이신다"는 뜻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이삭 대신 수풀에 걸린 숫양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제물 하나를 마련해 주셨다는 차원이 아니다. 장차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친히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자신을 제물로 보여주실 것을 미리 알려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그때 이삭에게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고 말했지만, 실제로 히브리어 원문은 "하나님이 자기를 번제할 어린 양으로 보여주실 것이다"이기 때문이다. 

  그날 이삭은 죽지 않았다. 대신 하나님이 죽으셨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그날 모리아 산에서, 먼 훗날 오실 아들로 오셔서 어린 야응로 죽이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미리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은혜로 살았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나의 순종, 나의 노력, 나의 공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어린 양, 아들로 오셔서 나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그분을 믿을 때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당신자신의 몸을 준비하셨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다.

 

9. 나오며: 나는 과연 너의 하나님이라 불릴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기자신을 소개하실 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왜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고, 그 뜻에 자신의 전 존재, 아니 생명까지 내주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독자를 내어주는 아버지의 찢어지는 마음을 알았기에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다. 이삭은 죽기까지 복종해야 하는 아들의 고독한 순종을 배웠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모형이 되었다.

  이 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하나님은 나를 보며 "나는 아무개(너)의 하나님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실 수 있는가? 나의 믿음은, 나의 순종은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실 만큼 온전한가? 그런데 우리도 이삭처럼 온전한 순종의 제단 위에 올라갈 때, 내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된다. 그때 우리의 삶에도 이삭과 같은 100배의 결실과 샘 솟는 기쁨이 임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들로 오신 하나님,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 사랑에 보답하는 삶,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주님께 드리는 순교자적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을 통해, 이 시대의 또 다른 이삭으로 살아가는 저와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

 

2026년 2월 2일(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구약의 인물인 이삭의 생애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완벽한 모형으로 제시하며,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설명합니다. 본 설교는 하나님이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신 이유가 각 인물을 통해 성부의 마음, 성자의 순종, 성령의 사역을 계시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모리아산에서 번제물로 바쳐진 이삭의 사건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과 절대적인 순종을 예표하는 핵심적인 장면으로 묘사됩니다. 이삭이 자신이 제물이 될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를 배려하며 기꺼이 결박당했듯이, 예수님 또한 인류 구원을 위해 스스로를 내어주신 아들 하나님이심을 밝히는 것이 이 설교의 주된 목적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성경 속 인물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그 뜻에 합당한 삶을 살 것을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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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방언통역(03)] 방언통역을 하려고 할 때 주의해야할 사항들 5가지(02)(고전 14:12~18)_2026-01-27(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방언통역(03)] 방언통역을 하려고 할 때 주의해야할 사항들 5가지(02)(고전 14:12~18)_2026-01-27(화) https://youtu.be/B2YzNhNP9vQ 1. 들어가며: 준비된 자가 누리는 영적 통치권 방언 통역은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니다. 몰라서 못 하...
    Date2026.01.27 By갈렙 Views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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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방언통역(02)] 방언통역을 하려고 할 때 주의해야할 사항들 5가지(01)(고전 14:12~18)_2026-01-26(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방언통역(02)] 방언통역을 하려고 할 때 주의해야할 사항들 5가지(01)(고전 14:12~1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GizonuTRWb0 1. 들어가며: 영적 세계를 여는 첫 관문, 방언 많은 성도가 영적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 ...
    Date2026.01.27 By갈렙 Views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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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기독론(10)]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면 가능한 일은 무엇인가?(창1:26~28)_2026-01-23(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면 가능한 일은 무엇인가?(창1:26~2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VRrhXHiKVLk 1. 들어가며: 장롱 면허를 가진 그리스도인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면서 믿는 자들에게 엄청난 권...
    Date2026.01.24 By갈렙 Views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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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기독론(09)]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것의 의미와 그 어마어마한 활용(창1:26~27)_2026-01-22(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9)(풀영상)]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것의 의미와 그 어마어마한 활용(창1:26~2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SouzHRBryVY 1. 들어가며: 왜 나는 영적 능력을 행하지 못하는가? 예수께서는 제...
    Date2026.01.22 By갈렙 Views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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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기독론(08)]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이 자칫 삼신론 신앙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려면?(사9:6~7)_2026-01-21(수)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8)]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이 자칫 삼신론 신앙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려면?(사9:6~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ROWbBUOJxls 1. 들어가며: 우리는 진짜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오염된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
    Date2026.01.21 By갈렙 Views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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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기독론(07)] 한 분 하나님 신앙과 양태론 이단은 어떻게 다른가?(02)(열왕기하 19:15~19)_2026-01-20(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7)] 한 분 하나님 신앙과 양태론 이단은 어떻게 다른가?(02)(열왕기하 19:15~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wtk4ytaEY7U 1. 들어가며: 우리는 하나님을 몇 분으로 믿고 있는가? 우리는 교회에서 "성부, 성자,...
    Date2026.01.20 By갈렙 Views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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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기독론(06)] 한 분 하나님 신앙과 양태론 이단은 어떻게 다른가?(01)(창2:1~9)_2026-01-19(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6)] 한 분 하나님 신앙과 양태론 이단은 어떻게 다른가?(01)(창2:1~9)_2026-01-19(월) https://youtu.be/GXQ4VPjxu3U 1. 들어가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진짜인가, 섞여진 것인가? 우리는 매주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한다...
    Date2026.01.19 By갈렙 Views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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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기독론(03)]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03)(창1:1~3,26~28)_2026-01-16(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3)]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03)(창1:1~3,26~2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sUfpe5Q7u2I 1. 들어가며: 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공부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예수님...
    Date2026.01.16 By갈렙 Views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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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기독론(02)]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02)(창1:1~3, 26~28)_2026-01-15(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2)]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02)(창1:1~3, 26~2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tK7VDmsjxQQ 1. 들어가며: 그림자(한자)를 넘어 실체(예수)를 마주하다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한자 속...
    Date2026.01.15 By갈렙 Views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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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기독론(01)]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01)(창1:1~3,26~28)_2026-01-14(수)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1)]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01)(창1:1~3,26~2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oI6_OpRuGfY 1. 들어가며: 그림자에서 실체로, 욕단에서 벨렉으로 우리는 고대의 한자(漢字) 속에도 숨...
    Date2026.01.14 By갈렙 Views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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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한자와 창세기(12) 최종회] 창세기 1~11장만을 알았던 욕단민족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려면?(딤전2:4~6)_2026-01-13(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한자와 창세기(12) 최종회] 창세기 1~11장만을 알았던 욕단민족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려면?(딤전2:4~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Onpu4OIyPNM 1. 들어가며: 창세기 11장에서 멈춘 욕단 민족의 시계 하나님은 인류 구...
    Date2026.01.13 By갈렙 Views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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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한자와 창세기(11)] 동이족(東夷族)의 명칭에 깃들어 있는 또 하나의 기억장치 무지개(창9:8~17)_2026-01-12(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한자와 창세기(11)] 동이족(東夷族)의 명칭에 깃들어 있는 또 하나의 기억장치 무지개(창9:8~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xeFtcxA9u_c 1. 들어가며: 동이족, 그 이름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총...
    Date2026.01.12 By갈렙 Views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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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한자와 창세기(09)] 바벨 탑(塔) 사건이 들려주는 놀라운 한자(漢字) 이야기(창11:1~9)_2026-01-09(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한자와 창세기(09)] 바벨 탑(塔) 사건이 들려주는 놀라운 한자(漢字) 이야기(창1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i0atrWj10fs 1. 들어가며: 바벨탑은 신화인가, 역사인가?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노아의 홍수가 전 지...
    Date2026.01.09 By갈렙 Views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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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한자와 창세기(08)] 노아의 방주(方舟)에 나타난 방주모양(方)과 여덟(八)식구의 비밀(창 6:9~22)_2026-01-08(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한자와 창세기(08)] 노아의 방주(方舟)에 나타난 방주모양(方)과 여덟(八)식구의 비밀(창 6:9~22)_2026-01-08(목) https://youtu.be/AViHZ9W32Rc 1. 들어가며: 전설의 장막을 걷어내고 역사를 마주하다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한자 속에...
    Date2026.01.08 By갈렙 Views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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