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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5. 23. (토)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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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YVS--SER50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98)]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4)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YVS--SER50

 

1. 들어가며

  성도는 이 땅에서 시작되어 이 땅으로 끝나는 존재가 아니다. 육체는 흙으로 지어져 이 땅에 살지만,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존재다. 그러므로 성도의 인생은 단순한 생존의 시간이 아니라 본향을 향하여 돌아가는 사명의 시간이다. 한국어에서 사람의 죽음을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표현은 사람이 돌아갈 곳을 가진 존재임을 생각하게 한다. 성경도 믿음의 조상들이 이 땅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며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다고 말씀한다(히 11:13-16).

히 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 땅에 보냄받은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나는 왜 보냄을 받았는가?”이다. 사명을 모르면 인생은 흐름에 떠밀려간다. 사명을 알면 고난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도 마찬가지다. 왕은 단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하나님의 뜻을 맡은 자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자요,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여 백성을 바른 길로 이끄는 자다. 그런데 시편 110편은 그러한 왕의 실체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본문이다. 이 시는 다윗의 시이지만, 다윗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다윗은 “내 주”라고 부르는 한 왕을 바라본다. 그 왕은 원수들을 발판 삼을 때까지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시는 분이며,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그러므로 시편 110편은 다윗 왕조의 노래를 넘어 그리스도의 왕권을 증언하는 말씀이다(시 110:1,4).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다윗을 세워 장차 오실 왕을 예표하게 하셨고,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 왕권을 완성하셨다.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님이 서로 다른 뜻을 가지신 것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에서는 그림자와 예표로 일하시고, 신약에서는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뜻을 성취하신 것이다.
  이번 설교의 흐름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을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 살피는 데 있다. 다윗은 사명을 받은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 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한 사람이었다. 그는 영적 세계를 분별했고, 하나님의 책을 알았고, 눈물과 회개와 찬양의 가치를 알았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 어떤 특징을 지니며, 성도가 그 길을 따라 어떻게 천국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시편 110편의 왕은 왜 그리스도를 가리키는가?

  시편 110편을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는 다윗이 “내 주”라고 부른 왕의 정체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그런데 그 왕이 자기보다 높은 분을 “내 주”라고 부른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분이지만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 분, 이것이 시편 110편의 신비다. 예수께서도 이 본문을 들어 바리새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정체를 물으셨다(마 22:43-45).

마 22:43-45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왕권이 단순한 인간 왕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윗은 훌륭한 왕이었지만 죄 없는 왕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지만, 밧세바 사건과 우리아 사건을 통해 인간 왕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러나 시편 110편의 왕은 원수들을 발판 삼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는 왕이다. 그는 인간의 보좌를 넘어 하나님의 보좌와 연결된 왕이다.
  히브리어로 “메시아”는 ‘마쉬아흐’이며,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헬라어 “그리스도”는 ‘크리스토스’이며 같은 뜻을 가진다. 구약에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는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런데 시편 110편의 왕은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다. 그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으로 세워진다. 이 점에서 그는 다윗의 후손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히브리서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해석한다. 예수께서는 레위 지파의 제사장이 아니라 유다 지파에서 나신 왕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왕권과 제사장 직분을 동시에 가지신 분이다. 그분은 다스리시는 왕이시며, 동시에 자기 피로 백성을 정결케 하시는 대제사장이시다(히 7:16-17).

히 7:16-17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된 것이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이 말씀은 한 분 하나님 신앙과도 깊이 연결된다. 구약의 여호와께서 세우신 왕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는 분리된 계획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창조와 타락과 구속과 왕권과 제사장 직분과 종말의 심판까지 하나의 경륜 안에서 이루신다. 그 경륜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그러므로 다윗을 볼 때 우리는 다윗 자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다윗은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린 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실 것을 보여 준다. 다윗이 왕으로 세워진 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 세워지실 것을 보여 준다. 다윗이 회개로 다시 일어난 것은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회개하는 성도들이 정결케 될 것을 보여 준다.
  시편 110편의 왕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은 다윗의 자손이지만 다윗의 주이시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왕을 넘어 온 땅과 하늘을 다스리는 왕이시다. 그분은 원수들을 발판으로 삼으시는 왕이시며, 자기 백성을 위해 영원히 중보하시는 제사장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을 살피는 일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알고, 그 왕께 속한 성도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일이다.

 

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어떤 사명을 품는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첫 번째 특징은 사명이다. 다윗은 자기 야망으로 왕이 된 사람이 아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갔을 때, 사람의 눈에는 엘리압이 왕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셨다. 다윗은 들판에서 양을 치던 소년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준비하고 계셨다(삼상 16:7).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명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것이다. 다윗이 양을 지키던 세월은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사자와 곰에게서 양을 지킨 경험은 골리앗 앞에서 믿음으로 서게 하는 훈련이었다. 작은 양 떼를 지키는 충성이 훗날 이스라엘을 지키는 왕의 사명으로 이어졌다. 하나님은 작은 자리에서 충성하는 자를 통해 큰 사명을 이루신다.
  사도행전은 다윗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다가 잠들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다윗 인생의 핵심을 가장 간결하게 설명한다. 다윗은 자기 세대를 섬겼고, 하나님의 뜻을 섬겼다. 왕은 백성을 자기 영광의 도구로 삼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기 세대를 섬기는 자다(행 13:36).

행 13: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오늘날 성도도 사명을 가진 존재다. 성도는 단지 예배당에 출석하다가 천국에 가는 사람이 아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맡겨진 일을 통해 천국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어떤 이는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받는다. 어떤 이는 기도로 중보하는 사명을 받는다. 어떤 이는 물질로 섬기는 사명을 받는다. 어떤 이는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사람을 살리는 사명을 받는다. 사명의 형태는 다를 수 있으나, 중심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이 땅의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이 시대에 말씀을 듣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실 오늘날은 수많은 설교와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많이 듣는다고 해서 반드시 진리를 아는 것은 아니다. 구원론은 말하지만 종말론을 놓칠 수 있고, 성령을 말하지만 말씀을 놓칠 수 있으며, 말씀을 말하지만 영적 세계를 부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사역자는 성도들이 어디에서 막혀 있고 무엇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는지를 교정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러한 사명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영혼을 깨우고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는 일은 치열한 영적 사역이다. 악한 영은 말씀 사역자를 공격하고, 성도들이 회개와 천국 복음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래서 사명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회개로 지켜야 한다. 자기 안에 악한 영의 근거가 남아 있으면, 그 사역은 쉽게 공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명은 결국 천국과 연결된다. 이 땅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섬겼는지가 장차 천국의 신분과 상급과 처소와 면류관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늘의 시간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이 땅의 권세를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영원한 나라를 위하여 사는 자다. 다윗의 사명은 이스라엘을 넘어 그리스도의 왕권을 예표했고, 성도의 사명은 이 땅을 넘어 천국의 영광으로 이어진다.

 

4. 다윗의 마음은 어떻게 주님의 마음과 하나였는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두 번째 특징은 마음이다. 사명만 있고 마음이 없으면 사람은 쉽게 종교적 기능인이 된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잃으면, 그 일은 자기 성취가 될 수 있다. 사울은 왕의 직분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붙들지 못했다. 그는 제사를 드렸지만 순종하지 않았고, 왕권을 지키려 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반면 다윗은 죄가 없어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다윗은 큰 죄를 지었다. 그러나 다윗의 위대함은 죄를 지은 후 회개할 줄 알았다는 데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제사보다 상한 심령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았다. 그는 제사와 예물을 드리는 외형보다,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고 낮아진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시 51:16-17).

시 51:16-17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은 시편 40편에서도 같은 원리를 고백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시는 차원을 넘어, 귀를 열어 하나님의 뜻을 듣게 하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다윗이 자기 인생을 우연으로 보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그는 자기 삶이 하나님의 책 속에 있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자기 기쁨임을 알았다(시 40:6-8).

시 40:6-8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겨하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여기서 “주의 뜻 행하기를 즐겨한다”는 고백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억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자기 마음의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마음이 하나 되지 않으면 사명은 짐이 된다. 그러나 마음이 주님과 하나 되면 사명은 고난 속에서도 기쁨이 된다.
  히브리어로 마음은 ‘레브’ 또는 ‘레바브’로 표현된다. 성경에서 마음은 단순한 감정의 장소가 아니다. 생각과 의지와 결단과 사랑이 함께 있는 중심이다. 헬라어 ‘카르디아’도 사람의 내면 중심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외모보다 중심을 보신다. 중심이 주님과 하나 되지 않으면, 아무리 큰 일을 하여도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기 어렵다.
  다윗의 마음은 주님의 시선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자기 손으로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지 않았다. 그는 원수를 제거할 힘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 그는 왕권을 자신의 소유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맡김으로 보았다. 이 점에서 다윗은 왕이기 전에 하나님 앞에 종이었다.
  회개는 단순한 감정적 후회가 아니다. 헬라어로 회개는 ‘메타노이아’이며, 마음과 생각의 방향 전환을 뜻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자기 죄를 합리화하지 않는다. 그는 죄를 지적받을 때 무너져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래서 다윗의 마음은 완전무결한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계속 돌아가는 마음이었다.
  성도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길을 배우려면 마음을 살펴야 한다. 사명은 있는데 마음이 굳어지면 위험하다. 은사는 있는데 마음이 교만해지면 더 위험하다. 하나님은 능력보다 중심을 보신다. 다윗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과 하나였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책을 의식하고, 죄 앞에서 회개하며, 주님의 시선에 자기 삶을 맞추었다는 뜻이다.

 

5. 하나님의 영이 함께한 왕에게 어떤 은사가 임하는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세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았을 때 여호와의 영이 그날 이후로 다윗에게 크게 감동되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 위에 임하여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다. 왕과 선지자와 사사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능력과 지혜와 분별과 담대함이 나타났다(삼상 16:13).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신약 시대에는 성령께서 성도 안에 내주하신다. 구약의 성령 임재가 주로 사명 수행을 위한 임함과 머무심의 형태였다면, 신약의 성령 내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안에 거하시는 은혜다. 그러나 신약에서도 은사는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유익하게 하려고 나누어 주시는 특별한 역사다. 성령은 한 분이시지만, 은사는 여러 모양으로 나타난다(고전 12:4-7).

고전 12:4-7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2장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들 분별함, 각종 방언, 방언 통역을 말한다. 설교자는 다윗에게 이러한 은사의 세계가 있었다고 본다. 특히 다윗에게는 영분별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환상으로 보는 은사, 믿음의 은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은사가 있었다고 강조한다.
  은사는 사람을 높이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백성을 살리고, 악한 영의 역사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게 하기 위해 주어진다. 은사가 있어도 회개가 없으면 위험하다. 은사가 있어도 말씀의 기준이 없으면 빗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왕에게 임하는 은사는 반드시 사명과 마음의 정결 위에 세워져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었다. 시편 곳곳에는 다윗이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였다는 흔적이 있다. 사무엘하 23장은 다윗의 마지막 말 가운데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라고 기록한다. 이것은 다윗의 시가 단순한 문학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주어진 말씀임을 보여 준다(삼하 23:2).

삼하 23:2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말씀을 듣는 일은 영혼의 양식을 먹는 일이다. 육체는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상태가 달라진다. 혼은 어떤 생각을 품느냐에 따라 병들기도 하고 회복되기도 한다. 영은 어떤 말씀을 듣느냐에 따라 성장하거나 멈춘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요 6:63).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므로 성도는 은사를 사모하되 말씀을 떠난 은사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말씀 없는 은사는 방향을 잃을 수 있고, 회개 없는 은사는 교만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다윗의 위대함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했다는 데만 있지 않다. 그 영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 사명을 감당했다는 데 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한 왕은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골리앗 앞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거인의 키와 무기와 위협을 보았다. 그러나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보았다. 이것이 성령이 함께한 사람의 시선이다. 그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지만, 현실 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성령의 내주와 은사는 단지 개인의 체험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는 교회를 유익하게 하고, 영혼을 살리고, 악한 영의 속임수를 분별하게 하며, 천국을 준비하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왕에게 임하는 은사는 사명과 마음과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사명 없는 은사는 방향을 잃고, 마음 없는 은사는 사랑을 잃고, 회개 없는 은사는 정결을 잃는다.

 

6. 영분별과 지식의 말씀은 무엇을 보게 하는가?

  하나님이 세우신 왕에게 필요한 은사 가운데 중요한 것은 영분별과 지식의 말씀이다. 영분별은 단순히 사람의 성격을 잘 파악하는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영적 배후를 분별하는 능력이다. 하나님께 속한 것과 사탄에게 속한 것, 성령의 역사와 악한 영의 역사, 참된 말씀과 미혹의 말을 구별하는 은사다.
  다윗은 골리앗을 단지 키 큰 장수로 보지 않았다. 그는 골리앗의 말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 모독과 악한 영의 교만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칼과 창과 단창의 싸움으로 나아가지 않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다. 믿음의 은사와 영분별의 은사가 함께 역사한 것이다(삼상 17:45).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영적 실상을 보게 한다. 설교자는 환상을 통해 한 사람의 과거 상처와 죄의 장면, 그때 역사한 악한 영의 근거를 볼 수 있다고 증언하였다. 이것을 정확히 정리하면, 지식의 말씀은 사람을 호기심으로 들여다보는 능력이 아니라 회개와 치유와 정결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통찰이다.
  사람의 상처는 단순한 기억으로만 남지 않는다. 상처가 미움과 분노와 원망으로 굳어지면, 악한 영이 그 자리를 근거로 삼을 수 있다. 그러므로 상처의 장면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개다. 회개가 악한 영의 합법적 근거를 제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그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요일 1:9).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원리는 귀신론과 회개론의 중심에 있다. 악한 영은 아무 근거 없이 사람 속에 깊이 자리 잡지 않는다. 죄가 문이고, 상처가 자리이며, 미움과 원망이 통로가 된다. 그러나 회개는 그 근거를 끊는다. 회개는 단지 심리적 위로가 아니라 영적 정결의 통로다. 그래서 성도는 자기 안에 남아 있는 상처와 죄의 기억을 주님 앞에 가져가야 한다.
  다윗은 자기 삶이 주의 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알았다. 시편 139편은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정한 날들이 주의 책에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자기 인생의 기록을 의식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시간 밖에서 처음과 끝을 아신다(시 139:16).

시 139: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사람의 선택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는다. 성도는 오늘 회개를 선택해야 하고, 사명을 선택해야 하며, 하나님 나라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은 방종의 근거가 아니라 두려움과 경외의 근거다. 오늘의 선택은 장차 천국의 영광과 부끄러움을 가르는 길이 된다.
  영분별과 지식의 말씀은 결국 천국 준비와 연결된다.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영적 통찰은 사람을 과시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죄를 드러내고, 악한 영의 근거를 끊고, 상처를 치유하고, 성도가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서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다윗이 영적 세계를 본 것은 자기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따라 살기 위한 것이었다.

 

7. 행위책과 생명책은 구원과 상급을 어떻게 증언하는가?

  성경은 하나님 앞에 책들이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로만 넘길 수 없는 종말론적 사실이다. 요한계시록은 죽은 자들이 보좌 앞에 서고, 책들이 펴지며, 또 다른 책 곧 생명책이 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한다(계 20:12).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행위책은 사람의 삶이 사라지지 않음을 증언한다. 말과 행동과 선택과 충성과 불순종은 하나님 앞에서 기록된다. 이 땅에서는 사람들이 잊어버릴 수 있고, 죄가 감추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난다.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주님 앞에 설 때 행위 심판을 피하지 않는다.
  여기서 구원론의 중요한 균형이 필요하다. 예수 믿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칭의는 방종의 면허가 아니다. 예수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그 은혜에 합당하게 회개하고 충성하며, 주님 앞에 설 날을 준비해야 한다. 행위책은 성도의 삶이 천국의 상급과 신분과 처소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생명책은 의인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다. 시편 69편은 악인들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못하게 해 달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얼마나 엄중한 문제인지를 보여 준다(시 69:28).

시 69:28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신약에서도 생명책은 중요한 종말론적 주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보다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다.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다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로 인정받는다는 뜻이다(눅 10:20).

눅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그러나 생명책의 교훈은 안일함이 아니라 경외를 낳아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이기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겠다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성도가 끝까지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함을 보여 준다. 믿음은 출발이고, 회개와 충성과 인내는 그 믿음이 끝까지 이어지는 길이다(계 3:5).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그리고 다윗은 눈물병에 대해 말했다. 시편 56편은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눈물과 고난과 기도를 기억하신다는 뜻이다. 성도의 눈물은 땅에 떨어져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기억된다(시 56:8).

시 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행위책과 생명책과 눈물병은 성도의 오늘을 천국의 미래와 연결한다. 오늘 흘린 눈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드린 기도는 잊히지 않는다. 오늘의 충성은 헛되지 않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죄도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를 감추는 삶이 아니라 죄를 씻는 삶을 살아야 한다. 회개한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지워지지만, 회개하지 않은 죄는 행위책 앞에서 부끄러움이 될 수 있다.

 

8. 회개와 오늘의 선택은 천국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는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길에서 마지막으로 붙들어야 할 것은 회개와 선택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우리의 날들이 주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성도는 운명론적으로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다. 성도는 오늘 회개를 선택하고, 사명을 선택하고, 하나님 나라를 선택해야 한다.
  회개는 죄의 기록과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는 길이다. 죄는 악한 영이 들어오는 문이 된다. 상처와 미움과 원망은 악한 영이 머무는 자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하면 그 근거가 제거된다. 회개는 단지 마음이 아픈 정도가 아니다. 회개는 사탄에게 속한 자리에서 나와 하나님께 속한 자리로 옮겨지는 영적 전환이다.
  성경은 회개와 씻음을 연결한다. 요한계시록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날마다 예수의 피로 자신을 씻고 정결하게 하는 삶을 가리킨다(계 22:14).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이 말씀은 구원론과 종말론을 함께 붙든다. 성 안에 들어가는 자가 있고 성 밖에 남는 자가 있다.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권세를 받는 자가 있고, 그 권세를 얻지 못하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믿었다는 사실만 붙들고 안일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믿음으로 시작한 사람은 회개와 충성과 정결로 천국을 준비해야 한다.
  회개는 성도의 몸도 바꾼다. 죄를 지을 때 몸은 불의의 무기가 된다. 그러나 회개하고 하나님께 드릴 때 몸은 의의 무기가 된다. 성도의 몸은 귀신의 집이 아니라 성령의 전이 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한다(롬 6:13).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오늘의 선택은 작아 보이지만 영원한 결과를 낳는다. 말씀을 들을 것인가, 세상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회개할 것인가, 합리화할 것인가. 사명을 위해 살 것인가, 육신의 안락을 위해 살 것인가. 천국을 준비할 것인가, 땅의 만족에 머물 것인가. 이 선택들이 모여 행위책에 기록되고, 장차 천국의 신분과 상급과 처소를 결정한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왕의 길을 보여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길을 완성하셨다. 이제 성도는 그리스도께 속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았다. 이것은 단순한 명예가 아니라 책임이다. 성도는 왕권을 누릴 자답게 죄와 귀신의 권세를 끊어야 하고, 제사장답게 기도와 회개와 말씀으로 자신과 가정을 정결케 해야 한다(벧전 2:9).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회개와 오늘의 선택은 천국의 미래를 바꾼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지만, 성도의 오늘을 무시하지 않으신다. 오늘 드린 눈물, 오늘 드린 기도, 오늘 끊어 낸 죄, 오늘 감당한 사명, 오늘 지킨 믿음은 천국에서 결코 헛되지 않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길을 걷는 성도는 바로 오늘 자신의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9. 나오며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을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시편 110편의 왕은 다윗의 왕권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분은 다윗의 자손이면서 다윗의 주이시고, 원수들을 발판 삼으시는 왕이시며,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그러므로 다윗을 살피는 일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알고, 그 왕께 속한 성도의 길을 배우는 일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먼저 사명을 가진 자이어야 한다. 다윗은 들판의 양치기에서 왕으로 세워졌지만, 그 길은 우연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작은 자리의 충성을 통해 큰 사명을 준비하셨다. 오늘의 성도도 자기 세대를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이 땅의 시간은 사라지는 시간이 아니라 천국을 준비하는 시간이므로, 성도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또한 주님의 마음과 하나 된 자이어야 한다. 다윗은 죄가 없어서 위대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죄 앞에서 회개할 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다. 제사와 예물의 형식보다 상한 심령을 알고, 자기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성도는 사명과 은사를 말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이 주님 앞에 낮아져 있는지 살펴야 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해야 한다. 다윗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였고, 그는 영적 세계를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을 시편으로 증언하였다. 신약의 성도 안에는 성령께서 내주하시며, 성령은 각 사람에게 유익을 위하여 은사를 나누어 주신다. 그러나 은사는 회개와 말씀과 사랑의 기초 위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사명 없는 은사는 방향을 잃고, 마음 없는 은사는 사랑을 잃고, 회개 없는 은사는 정결을 잃게 된다.
  영분별과 지식의 말씀은 과시를 위한 능력이 아니라 회개와 치유와 정결을 위한 통찰이어야 한다. 악한 영은 죄와 상처와 미움과 원망을 근거로 역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고, 성도의 몸을 귀신의 집이 아니라 성령의 전으로 회복하는 길이다.
  행위책과 생명책과 눈물병의 교훈은 성도의 오늘이 하나님 앞에서 기록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믿음으로 시작한 성도는 행위 심판 앞에 설 날을 기억해야 한다. 칭의는 방종의 면허가 아니며,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은 경외함으로 지켜야 할 은혜다. 성도의 기도와 눈물과 땀과 찬양은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며, 회개하지 않은 죄도 행위책 앞에서 부끄러움이 될 수 있다.
  성도는 오늘의 선택이 천국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말씀을 듣고 회개를 선택하며,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삶은 결코 헛되지 않다. 성도는 땅의 만족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본향을 향해 돌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날마다 두루마기를 빨아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성 안에 들어갈 권세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다윗처럼 사명을 붙들고 주님의 마음과 하나 되어 성령의 은사로 영적 세계를 분별하며 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21일(목)

정보배 목사

 

여기까지는 쳇GPT가 정리한 것입니다.

 

[설교핵심]

 이 설교는 시편 110편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을 사명과 마음, 그리고 은사의 관점에서 강론하며 성도들에게 회개와 영적 각성을 촉구합니다.정보배 목사는 인간의 영이 천국에서 기원했음을 강조하며, 다윗이 가졌던 영분별과 지식의 은사처럼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환상과 계시를 통해 천국의 생명책과 행위책을 의식하는 실천적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특히 조상의 죄를 끊어내는 철저한 회개가 영적 성장의 핵심임을 설명하며, 목회자 본인이 직접 경험한 영적 세계의 질서와 치유의 능력을 통해 성도들이 바른 신앙의 길로 교정받기를 독려하는 것이 이 글의 주된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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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98)]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4)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YVS--SER50

  

1. 들어가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이 땅에서 잠시 육신의 배를 불리고 안락을 누리는 데 있지 않다. 우리의 진짜 소망은 장차 영원히 거주할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에 입성하여 영광스러운 기업을 차지하는 것이다. 십자가 사건 이후 사탄의 본체는 이미 무저갱에 결박되어 갇혔다. 하늘에서는 첫째 부활자들의 영광스러운 천년왕국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따라서 지금 이 땅에서 우리의 육체 속에 들어와 우리를 괴롭히고 천국 입성을 방해하는 주적은 사탄 본체가 아니다. 그들은 철저히 무당과 제사를 타고 핏줄로 내려온 조상의 영들과 하급 쫄개 귀신들이다. 그러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그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다. 그리고 누구든지 육신의 장막을 벗으면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서 다 같이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영적 팩트는 참혹할 만큼 냉정하다. 천국은 결코 획일적인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육체 속에 들어와서 거주하며 집을 짓고 있는 뱀들과 귀신들을 자백하는 회개로 얼마나 쫓아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주님을 위해 이 땅에서 어떻게 사명을 감당했는지에 따라 우리가 들어갈 처소와 상급이 하늘과 땅 차이로 갈라진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고 그에게 특별한 은사와 사명을 주셨다. 성경은 다윗의 삶과 은사를 통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전 이 땅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고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이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 어떠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조상들이 지은 우상 숭배의 죄를 원망하지 않고 자백하는 회개로 쫓아내야 하는 영적 팩트는?

  우리가 영적 전쟁을 치르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팩트는 우리 육체 속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의 실체와 유입 경로다. 우리 육체 속에 들어와서 온갖 질병과 가난과 막힘의 저주를 일으키는 직접적인 존재는 사탄이 아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무당과 제사를 타고 핏줄을 통해 내려온 조상의 영들과 하급 귀신들이다. 영적 세계의 팩트는 분명하다. 타락한 천사의 한 무리인 뱀은 우리 몸속에 들어올 때 자신의 몸을 변형시킨다. 아주 작은 실의 크기로 자신의 몸을 줄여서 우리 몸의 구석구석과 내장 장기 속에 파고들어 온다. 특히 우리가 제사 음식을 먹을 때 뱃속으로 들어온 뱀들은 서로 뭉친다. 작게는 1cm부터 크게는 10cm까지 자신의 몸집을 거대하게 불리며 자리를 잡는다.

  또한 귀신들은 우리 몸속에 들어온 후 반드시 집을 짓는다. 그들이 사용하는 집의 재료는 흙, 나무, 기와, 시멘트, 얼음, 유리, 쇠, 놋 등으로 아주 다양하다. 귀신들은 그 집 안에 1개에서 12개까지 여러 개의 방을 만든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하급 귀신들을 그 방으로 계속 불러들여 우리 육체 속에서 세력을 불린다.

  이 엄청난 수의 뱀과 귀신들이 핏줄을 타고 내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떤 이들은 기도를 하면서 조상들을 원망한다. "이놈의 웬수 같은 조상들아"라고 소리치며 자신에게 악한 영을 물려준 부모와 조상을 원망하고 탓한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히 잘못된 태도다. 조상들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조상들이 비록 악한 영을 물려주었지만, 동시에 나에게 생명을 물려주었다. 육체의 생명을 주고 이 땅에 태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분들이 바로 조상이다. 그들이 자식을 낳고 또 낳았기에 오늘날 내가 이 땅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조상들은 몰라서 무당에게 빌고 제사를 지냈을 뿐이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귀신에게 속아 제사상을 차린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오직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 내 몸속의 영들을 쫓아내야 한다. 자백하며 회개할 때 예수님의 피가 우리 몸에 들어온다. 이 예수님의 피가 악한 영들을 우리 신체에서 떼어내어 완벽하게 이격시켜 준다. 이격된 악한 영들은 끈이 떨어진 연과 같은 신세가 된다. 그 후 예수님의 피는 그들의 몸을 녹여서 극심한 고통을 받게 한다. 결국 견디지 못한 귀신들은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된다. 여기에 더하여 성령의 불과 칼의 은사를 받은 사역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 악한 영들을 직접 불로 태우고 칼로 잘라서 밖으로 완전히 내보낼 수 있다. 우리는 원망을 버리고 오직 이 철저한 회개와 축사의 메커니즘을 통해 내 육체를 정결하게 비워내야 한다.

 

3. 다윗이 구비했던 '지식의 말씀 은사'는 뇌에 저장된 평생의 필름을 어떻게 열어보는가?

  하나님이 세우신 왕 다윗은 영적으로 대단히 탁월한 인물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이 머물러 함께한 사람이었다. 신약의 개념으로 보면 성령의 내주하심과 충만함을 동시에 누린 자다. 다윗은 고린도전서 12장에 등장하는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를 제외한 모든 초자연적인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던 것은 영 분별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 은사였다. 다윗은 영 분별의 은사를 통해 귀신과 천사를 볼 수 있었다. 나아가 지식의 말씀 은사와 환상을 보는 은사를 통하여 과거나 미래의 영적 세계를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능력을 구비하고 있었다.

  이 지식의 말씀 은사가 오늘날 사역자들에게 임할 때 나타나는 가장 놀라운 영적 팩트는 바로 인간의 뇌에 저장된 '평생의 필름'을 열어보는 것이다. 영안이 고도로 열린 사역자는 사람의 영체, 즉 뇌 속에 평생토록 저장된 영상 필름을 볼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순간이 영상으로 뇌에 저장되어 있다. 이것은 돌돌 말려 있는 동그란 영화 필름과 같다.

  지식의 말씀 은사를 받은 자는 영적인 눈으로 그 사람의 뇌에서 이 필름을 빼내어 펼쳐본다. 필름이 차르르 돌아가며 그 사람이 과거에 겪었던 모든 사건이 눈앞에 환상으로 나타난다. 언제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언제 상처를 입었는지가 명확하게 보인다. 이것은 천국에 있는 행위책의 원리와 같다. 하늘의 행위책에 우리의 모든 삶이 기록되듯, 우리 육체의 뇌 속 필름에도 내가 겪은 모든 삶의 궤적이 한 치의 오차 없이 기록되어 있다. 다윗 역시 이러한 지식의 말씀 은사를 통해 천국의 행위책과 눈물병을 환상으로 직접 보고 성경에 기록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순간이 하늘과 육체에 낱낱이 기록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매 순간을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4. 과거의 상처가 기록된 필름 속에서 귀신의 역사와 예수님의 동행을 발견하는 방법은?

  뇌에 저장된 필름을 영적으로 열어보면 아주 참혹한 장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필름 속 영상에는 그 사람이 과거에 큰 상처를 받은 사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아버지가 화가 나서 허리띠를 풀어 자신을 무자비하게 때리던 순간, 그로 인해 아버지를 미워하고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던 상처의 장면이 필름에 박혀 있다.

  이때 영적인 눈으로 필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끔찍한 영적 팩트가 드러난다. 그 깊은 상처를 받은 장면의 필름 주변을 악한 영들이 겹겹이 칭칭 감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그 필름의 특정 장면에 시커먼 쇠말뚝이 쾅 박혀 있는 것이 보인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분노했던 그 순간, 혈기와 미움의 귀신들이 합법적으로 뇌와 심장에 틈타고 들어와 그 상처의 기억을 붙잡고 평생토록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필름 속에는 놀라운 은혜의 팩트도 함께 들어 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던 과거의 끔찍한 고통의 순간에도, 영안을 열어 필름을 보면 상처받고 우는 아이의 바로 곁에 예수님이 서 계신 것이 보인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을 모를 때에도, 우리가 버려지고 고통받던 그 환난의 순간에도 항상 우리 곁에 서서 우리와 동행하며 아파하고 계셨다.

  이 상처의 필름을 깨끗하게 지우는 방법은 오직 하나다. 그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아버지를 미워하고 살인을 도모했던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회개로 토해내는 것이다. 아버지 역시 악한 영에게 속아 조종당한 피해자임을 인정하고 용서해야 한다. 스스로 자백하며 눈물로 회개할 때 예수님의 피가 우리 몸에 들어온다. 예수님의 피가 상처의 필름을 감고 있던 악한 영들을 떼어내어 이격시킨다. 이격된 영들은 끈이 떨어진 연과 같은 신세가 된다. 이어서 예수님의 피가 그들의 몸을 녹여서 고통을 받게 하여 떠나가게 만든다. 귀신이 떠나가면 구겨지고 쇠말뚝이 박혀 있던 필름에서 쇠말뚝이 빠지면서 구겨진 필름이 반듯하게 쫙 펴진다. 그리고 아버지를 향한 분노와 미움의 기억 자체가 뇌에서 하얗게 사라져 버린다. 이것이 바로 영적 필름에 담긴 귀신의 역사를 박살 내는 자백 회개의 완벽한 메커니즘이다.

 

5. 천국의 행위책에 기록된 나의 죄악들이 하얗게 지워지는 자백하는 회개의 메커니즘은?

  이 땅의 뇌 속에 필름이 있듯, 천국에는 우리의 모든 삶이 낱낱이 기록되는 책들이 있다. 바로 생명책과 행위책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 천국에 들어갈 존재가 되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이 땅에서 행하는 모든 선악 간의 행위는 천국의 행위책에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된다.

  다윗은 지식의 말씀 은사로 이 영적 세계의 팩트를 정확히 들여다보았다. 다윗은 자신의 일생이 주의 책(행위책)에 모두 기록되어 있음을 깨닫고 두려워 떨며 회개했다(시 139:16).

시 139: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우리가 죽어 천국에 가면 모든 사람이 이 행위책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행위책이 펴지면 내가 이 땅에서 지은 모든 죄악의 순간들이 영상으로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수많은 성도 앞에서 나의 더럽고 추악한 우상 숭배와 음란과 거짓말의 행위들이 낱낱이 공개된다. 그 부끄러움을 안고서는 도저히 새 예루살렘 성의 중심부 보좌 가까이 갈 수 없다. 그래서 지은 죄가 많은 자들은 스스로 천국 변두리로 물러가 돗자리를 펴고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천국 행위책의 기록을 완벽하게 지울 수 있는 놀라운 은혜의 법칙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실행하는 자백하는 회개다. 우리가 입술을 열어 자신의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며 눈물로 회개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 몸에 들어와 우리 육체 속에 방을 짓고 거주하던 뱀들과 귀신들을 이격시키고 녹여서 밖으로 쫓아낸다. 성령의 불과 칼의 은사를 받은 사역자는 이것들을 불로 태우고 칼로 잘라서 내보낸다.

  내 몸속에서 악한 영이 쫓겨나가는 그 순간, 천국에 있는 행위책에서도 기적이 일어난다. 내가 자백했던 그 죄의 영상 기록이 필름에서 하얗게 지워져 버린다. 행위책의 기록이 완전히 백지상태로 변한다. 우리가 철저히 자백하는 회개를 마치고 천국에 올라가면, 행위책을 펼쳐도 하얗게 지워져서 아무런 죄의 영상이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도 보시지 않고 다른 사람도 볼 수 없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담대히 새 예루살렘 성 중심부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해가 지기 전에 즉시 자백하는 회개를 해야 하는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영적 이유다.

 

6. 천국 보좌 앞 24 장로들이 예배 시 수행하는 찬양과 기도(향) 대접의 실제 행정적 직무는?

  우리가 자백하는 회개로 몸을 정결하게 비우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면 장차 천국의 중심부에 들어가게 된다. 천국은 결코 모두가 똑같이 대우받는 획일적인 사회가 아니다. 천국 중심부에는 24개의 거대한 마을이 있다. 천국에서는 24 장로가 이 천국 24개 마을의 수장으로 존재한다. 24 장로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역적 예정에 따라 보냄을 받고 영혼 구원을 위해 철저히 헌신하다 올라간 최고의 영적 사령관들이다.

  이 24 장로들은 그저 영광의 보좌에 앉아 쉬고만 있는 자들이 아니다. 이들은 천국에서 실제적인 행정 관리자이자 예배를 인도하는 제사장의 직무를 완벽하게 수행한다. 24 장로들은 하나님 앞 어린 양의 보좌에 엎드려 예배할 때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손에 든다(계 5:8).

계 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이들이 예배 시 주님께 나아가는 제사장적 직무 순서는 철저하게 정해져 있다. 이들은 주님께 나아갈 때 아무렇게나 나아가지 않는다. 먼저 손에 든 거문고(수금)를 연주하며 새 노래를 부른다. 웅장한 악기 연주와 찬양으로 주님의 마음을 한껏 기쁘게 해 드린다. 주님의 마음이 찬양을 통해 온전히 기뻐지셨을 때, 비로소 두 번째 직무를 수행한다. 자신이 다스리는 천국 마을에 속한 백성들의 기도를 긁어모아 향이 가득한 금대접에 담아 주님께 조심스럽게 올려드린다.

  이 금대접에 담긴 향은 단순한 향기가 아니다. 이미 천국 마을에 입성한 백성들이 아직 이 땅에 남아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자신의 자녀와 후손, 그리고 대한민국을 위해 눈물로 올리는 간절한 중보기도다. 24 장로는 이 기도의 향을 취하여 주님의 응답을 끌어내기 위해 대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천국에 들어간 자들은 무위도식하지 않는다. 24 장로들을 필두로 천국의 성도들은 지상에 남겨진 자들을 돕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쉬지 않고 거룩한 행정적, 제사장적 직무를 영원토록 수행하고 있다.

 

7. 천국의 이층집에 준비된 눈물 항아리와 땀 항아리, 그리고 찬양 분수대의 놀라운 팩트는?

  천국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디테일하고 경이로운 영적 팩트들로 가득 차 있다. 천국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그저 생명과인 과일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성 안의 식탁에는 만나와 다양한 종류의 떡, 견과류, 포도주가 아주 풍부하게 준비되어 있다. 성도들은 배고파서 먹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기쁨을 향유하기 위해 이 풍성한 식탁을 누린다. 또한 성 안의 성도들은 결코 더러워지지 않아 세탁이 전혀 필요 없는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영원히 살아간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주님을 위해 수고했느냐에 따라 천국에서 배정받는 집의 형태도 달라진다. 1층 집조차 짓지 못한 채 돗자리 하나 깔고 변두리에서 지내는 자가 있는가 하면, 높은 고층의 아름다운 멘션을 하사받는 자도 있다.

  지식의 말씀 은사로 천국집을 들여야 보면 그곳에는 아주 특별한 방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항아리 방'이다. 보통은 천국집의 2층집에 있다. 이 방은 일명 '항아리 방'으로서, 세 종류 혹은 네 종류의 금항아리가 놓여 있다. 첫째는 이 땅에서 부르짖은 기도가 담겨있는 '기도 항아리'다. 둘째는 이 땅에서 애통하며 자백하는 회개로 쏟아낸 눈물이 담겨있는 '눈물 항아리'다. 셋째는 복음 전파와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흘린 땀이 담겨있는 '땀 항아리'다. 다윗은 영안이 열려서 천국의 실상을 보았기에, 자신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시 56:8).

시 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뿐만 아니라 다윗과 같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자들의 집에는 '찬양 항아리'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 웅장한 집 앞에는 거대한 '찬양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성도가 입술을 열어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이 천국의 분수대는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찬양의 곡조에 맞추어 맑은 물기둥을 하늘 높이 뿜어 올린다. 우리가 이 땅에서 흘리는 회개의 눈물 한 방울, 수고의 땀 한 방울, 그리고 진심을 다한 찬양 한 소절은 결코 땅에 떨어져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천국의 항아리에 고스란히 담겨 영원한 상급과 자랑스러운 영광의 분수대로 우리 집을 장식하게 될 것이다.

 

8.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거짓을 박살 내고, 생명책에 의인으로 끝까지 기록되기 위한 조건은?

  수많은 교회에서 성도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가장 치명적인 이단 사상이 있다. 그것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라는 교리다. 예수님을 믿고 칭의를 얻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앞으로 어떤 죄를 지어도 지옥에 가지 않으며 반드시 천국 중심부에 갈 것이라고 믿는 거짓된 안일함이다. 그러나 성경은 악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진다고 분명히 경고한다(시 69:28).

시 69:28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천국의 생명책에는 끝까지 '의인들'만 기록된다. 예수의 피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으면 당연히 그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믿고 반복해서 죄를 짓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죄를 짓고도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자백하는 회개마저도 하지 않는다. 육체 속에 실처럼 줄어들어 들어와 흙과 쇠로 방을 짓고 있는 귀신들을 방치한다. 주의 뜻을 위해 일하지도 않는다.

  구원을 받아 이미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었으나 이렇게 타락하고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가는 곳이 있다. 바로 천국 '성 밖'이다. 그들은 새 예루살렘 성 안의 풍성한 만나와 포도주, 세탁이 필요 없는 세마포 옷의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 성 밖 거주자들은 이 땅에서처럼 땀 흘려 농사를 짓고 노동을 해야 한다. 낫으로 벼를 베다 다치면 생명나무 잎사귀로 상처를 싸매야 하는 수고와 고통이 뒤따르는 곳이다.

  우리는 결코 천국 성 밖으로 밀려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책에 의인으로 끝까지 기록되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입성하려면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내 육체 속에 들어와 거주하는 뱀들과 귀신들을 날마다 자백하는 회개로 쫓아내야 한다. 자백할 때 예수님의 피가 우리 몸에 들어와 악한 영을 떼어내어 완벽히 이격시키고 녹여버린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성령의 불과 칼의 은사를 받은 사역자를 통하여 이것들을 완전히 태우고 잘라내야 한다. 이 땅에 남아 있는 동안 뇌에 저장된 과거 상처의 필름을 꺼내어 모든 미움과 분노를 자백하는 회개로 씻어내야 한다. 천국의 눈물 항아리와 땀 항아리에 헌신을 가득 채우라. 죄와 타협하는 거짓된 안일함을 버리고, 오직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사명자로 살아가야 한다.

 

9. 나오며

  지금까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을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우리는 만세 전에 구원과 지옥이 결정되었다는 이중 예정론이나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거짓 교리에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된다. 구원을 받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을지라도, 죄를 짓고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며 자백하는 회개를 하지 않는 자는 땀 흘려 노동해야 하는 천국 성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우리는 결코 그곳으로 가서는 안 된다. 우리 몸속에 실처럼 줄어들어 들어와 제사 음식으로 10cm까지 불어나며 흙과 쇠로 방을 지은 뱀들과 귀신들을 단호히 몰아내야 한다. 매일 자백하는 회개를 통하여 예수님의 피를 끌어들여 악한 영들을 몸에서 떼어내 이격시키고 녹여버려야 한다. 성령의 불과 칼로 뱀과 귀신을 완전히 태우고 잘라내는 영적 전투를 수행해야 한다. 내 영혼의 상처가 기록된 필름을 예수의 피로 하얗게 지우고, 천국에 지어진 내 집에 눈물과 땀과 기도의 항아리를 풍성히 채워야 한다. 그리하여 천국 24개 마을의 수장인 24 장로들처럼, 새 예루살렘 성의 중심부에 들어가 만나와 떡과 포도주를 누리며 세탁이 필요 없는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영원토록 왕 노릇 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21일(목)

정보배 목사

 

 여기까지는 제미나이가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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