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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6. 10. (수)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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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mQ8T-U8Veqw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7)]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3)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5)(시51: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mQ8T-U8Veqw

 

 

1. 들어가며

  이번 시간은 구약의 기독론 시리즈 가운데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이기는 자'의 예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창세기에 나와 있는 야곱을 시작으로 마침내 왕 같은 제사장의 전형인 다윗에게까지 이르게 되었다. 과연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우리도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왕노릇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곧 다윗과 같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결론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는 다윗이 왜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다윗은 천국에서 왕노릇하기에 합당한 자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 땅에 보내어질 때에 왕직을 수행하라고 보내어진 자였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고(행 13:22), 왕직을 수행할 만한 능력과 은사을 갖고 이 따에 온 자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영분별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환상을 보는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환상을 해석하는 은사)와 예언의 은사가 탁월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시대로부터 앞으로 천 년 후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내다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메시아가 어떤 존재이며, 그가 세상에 와서 어떤 직무를 수행할 것인지를 예언할 수 있었다. 사실 다윗은 메시야가 과연 어떻게 탄생할 것이며, 그가 어떤 사역을 펼치다가 죽고 부활할 것인지 그리고 승천하셔서 하늘의 왕권을 차지한 다음, 재림하여 심판할 것인지를 예언한 탁월한 예언가임도 함께 살펴보았다. 특히 그는 시편 110편 1절에서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을 미리 내다 보았으며, 시편 22편을 비롯한 그의 저주시에서는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하였음도 살펴보았다. 

행 13:22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그러나 그도 사람으로서 흠을 가지고 있었다. 왕이 된 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에 그는 권력의 그늘 아래에서 간음과 살인이라는 중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다윗을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부르셨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사실 그때 중죄인이었다. 왜냐하면 충성스러운 자신의 부하장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먼저 취하여 간음을 행하였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우리아 장군마저 전쟁터 최전선에 내몰아 죽게 했기 때문이다. 그의 행위는 간음죄, 살인죄, 도적질 죄, 탐욕의 죄가 한꺼번에 담겨 있는 패역무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지금 저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의 전형으로서 인정받은 채 살고 있다. 대체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그가 죄를 범한 이후 진정 용서받은 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에 대한 간략한 역사적 기술서인 사무엘하를 통해서가 아니라, 다윗이 행한 회개의 실상을 가장 적나나하게 보여주는 책으로서 시편에 나오는 참회의 시편들을 통해서 다윗의 회개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그는 일생에 참회의 시를 최소 7편 이상 썼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은 시편 6편, 32편, 38편, 51편, 102편, 130편, 143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이러한 일곱 편의 시를 면밀히 검토해 봄으로써, 다윗이 어떻게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 앞에 다시 설 수 있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 가운데서도 시편 51편은 다윗의 회개가 단순한 감정적 참회를 넘어서 하늘의 기록 체계, 곧 행위책과 생명책의 존재를 인식하는 높은 차원의 영적인 회개였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시편 51편을 중심으로, 다윗의 회개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특징 가운데 마지막 특징으로서, 그가 행했던 회개가 행위책에서 자신의 죄가 지워지는 회개와 악한 영이 쫓겨나가는 깨끗함의 회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기독론 117강이 다루는 시편 51편은 이 시리즈 전체에서 어떤 신학적 위치에 있는가?

  이번 메시지의 중심 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회개가 무엇인가를 알려면 다윗이 했던 참 회개를 한 번 들여다보자."라는 것이다. 시편에는 다윗의 쓴 것으로 인정되는 '참회시편(Penitential Psalms)'이 총 일곱 편 나온다. 그것은 시편 6편, 32편, 38편, 51편, 102편, 130편, 143편이다. 이 일곱 편의 시를 통해 다윗이 죄를 짓고 난후 어떻게 반응하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 다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진정한 회개란 무엇인가에 관한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다. 

  먼저, 다윗의 쓴 참회의 시편 가운데 시편 6편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가? 그것은 다윗이 뼈가 마르도록 지냈으며, 눈물로 침상을 적시면서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이다. 또한 시편 32편에서는 죄를 숨길 때 그가 겪었던 고통과 자백했을 때에 경험한 놀라운 자유와 해방을 생생하게 묘사해주고 있다. 그리고 시편 38편에서는 죄로 인해 몸의 성함이 없어지고 악취가 나며 상처에 화농이 생길 만큼 극한의 신체적 고통을 겪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시편 102편에서는 영혼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뼈가 불붙은 나뭇가지처럼 탄다고 고백하였으며, 그리고 시편 51편에서는 이 회개의 모든 차원을 집약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깊은 고백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시편 51편의 제목에는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온 때에"라고 명시되어 있어서, 이 시편이 구체적인 사건의 맥락에서 나온 실제 회개의 기록임을 알려 준다.

  이처럼 시편 51편은 단독으로 읽을 때보다 일곱 편의 참회의 시편 전체 흐름 속에서 읽을 때 훨씬 더 깊은 의미를 드러낸다. 시편 6편에서 32편으로, 32편에서 38편으로, 그리고 마침내 51편에 이르는 이 회개의 여정은 단순히 한 사람의 감정적 고백을 넘어서 하나님 앞에 서는 인간의 실존적 탐구다. 그러므로 이번 시간은 단순한 회개의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회개가 필요한지를 가르쳐 주는 신학적 정수라 할 수 있다.

  이 참회의 시편들이 드러내는 다윗의 회개에는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 제사가 아니라 회개의 진정성이라는 것이다. 옷을 찢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는 것, 곧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 참된 회개의 출발점이다(욜 2:13). 다윗의 전임자인 사울은 범죄 후에 "내가 범죄하였나이다"라고 말하였으나, 그 고백에는 가슴을 찢는 통회가 없었고 백성의 눈치를 살피는 체면 유지만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회개를 받지 않으셨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그는 열 달이 넘도록 뼈가 흔들리고 몸이 떨릴 만큼 죄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았다.

욜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둘째는 지(知)·정(情)·의(意)가 온전히 작동하는 회개, 곧 히브리서 '슈브' 혹은 헬라어 '메타노에오(metanoeō)'의 의미에 합당한 회개라는 것이다. 유다는 자기가 무고한 피를 팔아넘긴 것을 알고 뉘우쳤으나(마 27:3), 그것은 헬라어로 '메타멜로마이(metamellomai)', 즉 자신이 죄를 지은 결과에 대한 후회였을 뿐이다. 지(知)와 정(情)까지는 갔으나, 의지적 결단, 곧 두 번 다시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방향 전환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죄가 무엇인지 알고 눈물로 뉘우쳤다 하더라도, 의지적 결단 없이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회개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런데 다윗은 달랐다. 밧세바 사건 이후 노년에 후궁으로 들인 처녀와도 잠자리를 하지 않을 만큼 순결을 지키는 의지적 결단을 보여 주었다(왕상 1:4). 그것이 진정한 회개다.

욜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셋째가 이 시간에 집중적으로 다룰 내용이다. 그것은 죄가 행위책에서 지워지는 회개이며, 악한 영이 쫓겨남으로써 몸이 깨끗해지는 회개라는 것이다. 시편 51편은 바로 이 세 번째 특징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본문이다. 다윗은 이 시편에서 단순히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지워 달라"고, 그리고 "깨끗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시 51:1, 7, 9). 그 두 가지 요청 속에는 천국의 영적 실재, 곧 하늘의 기록 체계와 악한 영의 존재에 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이 세 번째 특징이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첫 번째와 두 번째 특징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이는 진정성 있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의 회개(첫째)와 지·정·의가 온전히 작동하는 메타노에오의 회개(둘째)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회개가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되어 있는 죄의 목록을 삭제하고 몸 속에 있는 악한 영을 내보내는 데까지 이르지 않으면, 회개의 과정이 아직 완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윗이 바로 이 세 번째 차원의 회개까지 이른 것이, 그를 왕 같은 제사장의 모범으로 세운 핵심 비결이다. 그는 용서를 구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기록이 지워지기를, 그리고 몸이 깨끗해지기를 구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완전한 회개다.

 

3. 다윗이 천국에서 왕복을 입은 왕 같은 제사장의 모범으로 인정받는 근거는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천국의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천국에는 크게 네 부류의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변두리에 있는 자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서서 예배드리는 자들, 14만 4천 명으로서 앉아서 예배드리는 자들, 그리고 24장로로서 하나님의 보좌 바로 앞에 반 타원형으로 둥그렇게 앉아 있는 자들이다. 이 각 부류는 저마다 다른 찬송을 부른다. 모두가 함께 부를 수 있는 찬송이 있고, 특정 무리만 부를 수 있는 찬송이 따로 있다. 14만 4천 명만 배울 수 있는 새 노래가 따로 있으며(계 14:3), 공중에 떠 있는 천사들만 부르는 찬송도 있다. 이처럼 천국은 공산주의적으로 모두가 동일한 세계가 아니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시다(계 22:12). 주를 믿어 구원을 받는 것은 전적인 은혜로 동일하나, 천국에서 누릴 지위와 상급은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전혀 다르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어떻게 믿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천국의 위치를 결정한다.

계 14: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144,000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 천국에서 왕복(王服)을 입고 다니는 자는 단 두 사람뿐이다. 다윗과 솔로몬이다. 다윗은 빛나는 왕복을 입고 다니고 있으며, 솔로몬은 빛이 나지 않는 왕복을 입고 다니고 있다. 요한계시록 3장 5절에는 흰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허용된 자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천국에 들어간 모든 자들이 입는 옷이다. 그런데 솔로몬은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야 마땅했으나 그렇지 못한 전형이 되었고, 다윗은 왕 같은 제사장의 모범으로 인정받은 전형이 되었다. 솔로몬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방 여인들로 인해 마음이 미혹되어 우상을 따랐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이집트 바로의 딸을 비롯하여 모압, 암몬, 에돔, 시돈, 헷 사람의 여인 등 이방 여인 700명을 아내로, 300명을 첩으로 두었다. 성경은 그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이켰다고 기록한다(왕상 11:3). 그 결과 솔로몬은 아스다롯, 밀곰, 그모스 같은 이방 신들을 위해 산당을 세우기까지 하였다. 하나님이 두 번씩이나 친히 나타나 경고하셨음에도 그는 돌이키지 않았다.

왕상 11: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그러므로 솔로몬은 왕복을 입고는 있지만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야 마땅하였는데 그 기대를 배신한 자의 전형으로 천국에 서 있는 것이다. 반면 다윗은 큰 죄를 지었음에도 진정한 회개를 통해 왕 같은 제사장의 모범으로 인정받았다. 요한계시록 1장과 5장은 이렇게 선포한다.

계 1: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계 5: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렇다면 사울왕보다 더 파렴치한 죄를 범한 다윗이 어떻게 왕 같은 제사장의 모범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는가? 그 답은 바로 그의 회개에 있다. 다윗은 범죄하였으나 그 죄를 감추거나 덮으려 하지 않았다. 죄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 진정성 있는 회개를 하였고, 의지적으로 방향을 전환하였으며, 나아가 하늘의 행위책에서 그 죄가 지워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 회개의 깊이와 진정성이 다윗을 왕 같은 제사장의 전형으로 세운 것이다.

  그래서 다윗이 쓴 시편이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도들의 영적 좌표를 찍어 주는 것은 단순한 문학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의 실재를 직접 본 자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생명책을 보았고(시 69:28), 행위책이 존재함을 알았으며(시 51:1), 그래서 행위책에 기록된 죄라도 그것이 지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이 땅에서 그 진리를 붙잡고 끝까지 회개의 길을 걸어간 것이 그를 왕 같은 제사장의 모범으로 만든 것이다. 천국에서 다윗의 생명책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이름 위에 금 왕관이 얹혀 있었다고 한다. 그 왕관은 이 땅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간 자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증표다. 이 땅의 삶이 천국에서의 신분과 직결된다는 것을 다윗의 사례가 웅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동일한 원리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도 얼마든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 핵심은 다윗처럼 진정한 회개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4. 진정한 회개의 세 가지 특징은 무엇이며, 다윗은 그것을 어떻게 보여 주었는가?

  이제는 앞서 간략하게 언급했던 바, 다윗의 회개가 가졌던 세 가지 특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그는 진정성이 있는 회개를 하였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제사만 드리면 죄가 용서된다고 가르치신 적이 없다. 시편 51편 17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시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다. 사울의 회개가 거절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사무엘 선지자 앞에서 사울은 "내가 범죄하였나이다"라고 말하였으나(삼상 15:24), 그 고백의 동기는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통회가 아니라 백성 앞에서의 체면 유지였다.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나이다"라는 고백이 이를 증명한다. 하나님은 그 회개를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들은 즉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하였다(삼하 12:13). 그리고 그 고백은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 아니었다. 시편 6편에서 그는 이렇게 부르짖는다.

시 6:6-7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열 달이 넘는 세월 동안 뼈가 마르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는 고통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찾았다. 시편 32편 3절과 4절은 그 고통을 이렇게 묘사한다.

시 32:3-4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이것이 진정성 있는 회개다. 죄를 짓고도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악한 자의 표시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은 죄를 지을 때 아파하는 자, 그 죄 때문에 통회하는 자를 통해 일하신다. 통회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은 그 회개를 받지 않으신다. 성경은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시 34:18)고 약속한다. 마음이 상한 자, 통회하는 자, 이것이 하나님이 가까이 하시는 자의 조건이다. 형식적 종교 행위가 아니라 부서진 마음이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다.

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둘째, 그는 지·정·의가 온전히 작동하는 회개, 곧 메타노에오의 회개를 하였다. 그렇다. 회개는 다윗처럼 지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였는지를 알아야 하고, 정적으로는 그 죄를 가슴 아파하며 눈물로 뉘우쳐야 하며, 의지적으로는 두 번 다시 그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결단까지 나아가야 한다. 가룟 유다는 지적으로 알고 정적으로 뉘우쳤으나 의지적 결단 없이 스스로 죽음으로 나아감으로써 온전한 회개에 이르지 못하였다. 지정(知情)까지는 갔으나 의(意)까지 가지 못한 비극적 실패다. 반면 다윗은 범죄 이후 노년에 후궁으로 들인 처녀와도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증언한다(왕상 1:4). 다윗은 의지적으로 죄를 끊어낸 것이다.

왕상 1:4 그 소녀가 왕을 받들어 섬겼으나 왕이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지금도 역시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 회개 기도문으로 회개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 회개를 받지 않으신다. 그런 자에게서 악한 영의 집은 파괴되지 않으며, 하나님이 그 사람을 들어 쓰시지도 않는다. 쓰다가 버리게 되면, 그를 쓰셨던 하나님의 이름이 먹칠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지적 결단 없는 회개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회개로 인정받지 못한다. 운전 중에 중앙선을 넘어 다시 방향을 바꾸어 되돌아오는 것을 가리켜 유턴(U-turn)이라고 한다. 진정한 회개는 바로 이 유턴이다. 방향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삶의 방향을 바꾸지 않은 채 입술로만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셋째, 그는 행위책에서 죄가 지워지는 회개이며, 악한 영이 나가서 깨끗해지는 회개를 하였다. 이것이 요번 시간의 핵심이다. 다윗은 시편 51편 1절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구했다. 하나는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죄를 깨끗하게 하소서"이다. 이 두 가지 간구는 단순한 수사적 반복이 아니다. 각각 다른 영적 실재를 향한 구체적인 요청이기 때문이다. 지워지는 것은 행위책에 기록된 죄의 목록이 삭제되는 것을 가리키고, 깨끗해지는 것은 몸 안에 자리 잡은 악한 영이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이 두 가지 회개를 함께 이루어야 진정한 회개가 완성되는 것이다.

 

5. 행위책에서 죄가 지워지는 회개란 대체 어떤 것이며, 시편 51편은 이를 어떻게 증언하는가?

  시편 51편 1절을 이제 주의 깊게 읽어 보자.

시 51: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여기서 "지워 주소서"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마하(māḥâ)'다. 이 단어는 기록된 것을 문질러서 지운다는 뜻이다. 다윗은 자신의 죄가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음을 알았고, 그 기록이 지워지기를 간구한 것이다. 그 '어딘가'가 바로 '행위책'이다. 요한계시록 20장은 마지막 심판 장면에서 두 종류의 책을 언급한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펼쳐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펼쳐져 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하나는 '생명책'이고, 다른 하나는 '행위책'이다. 생명책에는 구원받은 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행위책에는 이 땅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행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 행위책은 단 한 권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각자 한 권씩의 행위책이 있다. 그 책에는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의 생각까지 다 기록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 땅에 성령으로 보내심을 받은 일곱 영이 마음까지 알기 때문이다(계 5:6). 보고하는 기록 천사는 말과 행동만을 보고하지만, 성령은 마음까지 아신다. 그러므로 행위책에는 생각으로 범한 죄도 남김없이 기록되어 있다.

계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사실 이 땅에서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기록 천사 한 명이 그에게 달라붙는다. 그 천사는 우리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해가 지는 시간에 보고를 올린다. 거듭난 성도의 경우에는 기록 천사가 두 명으로 늘어난다. 성령을 받은 자에게는 기록하는 자도 하나가 더 붙는 것이다. 이것이 그저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라 영적 실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시간 개념에서 하루는 저녁부터 시작하는데,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는 바로 이 행위 기록이 마감되는 시간적 구조를 반영한다. 그렇게 보고된 내용을 하늘의 기록 천사가 받아서 행위책에 기록한다. 거기에는 글로 쓰인 기록이 있고, 영상으로 저장된 것도 있다. 그 영상은 행위책이 펼쳐질 때 마치 필름처럼 펼쳐진다.

  심지어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와 눈물까지도 기록하고 계심을 알았다. 시편 56편 8절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시 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여기서 다윗은 하늘에 '책'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시편 69편 28절에서는 그러한 책들 가운데 생명책이 있고, 그 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시 69:28 그들을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여기서 "도말하사"는 히브리어로 역시 '마하', 곧 지우다는 뜻이다. 이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이며 그리고 행위책에서도 죄가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시편 51편 9절에서 그는 다시 이렇게 구한다.

시 51: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이것은 단순한 용서의 요청이 아니다. 행위책에 기록된 죄의 목록이 삭제되기를 구한 것이다.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 해도 그 죄는 행위책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이렇게 가르친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자백하지 않으면 지워지지 않는다. 형식적 자백도 지워지지 않는다. 진심으로 자백하는 회개만이 행위책에 기록된 죄를 지운다.

  어느 목사님이 천국에서 자신의 행위책이 펼쳐져 보여지는 경험을 하였다. 영상 필름처럼 자신이 죄를 지었던 삶이 펼쳐지는데, 어떤 장면은 선명하게 나타나고 어떤 장면은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어떤 장면은 아예 하얗게 지워져 있었다. 희미하게 보였다가 사라진 것들은 회개기도는 하였으나 기도가 부족한 것들이고,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들은 아직 회개하지 않은 죄들이며, 하얗게 지워진 것들은 진심으로 통회하며 자백하였기에 완전히 삭제된 것이었다. 나중에 주님께 여쭈니, 희미하게 보인 것은 회개하였으나 아직 온전히 지워지지 않은 것이고, 하얗게 지워진 것은 진심으로 회개하여 완전히 삭제된 것이라 하셨다고 한다.

  이 체험은 대단히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준다. 형식적 회개 기도는 흔적을 남긴다. 입으로는 죄송하다고 하면서 마음 속에서 그 죄를 즐거워하거나 다시 범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회개는 행위책에서 그 죄를 지우지 못한다. 오히려 그 기도마저 행위책에 기록되어 버린다. 하나님을 속이려 한 행위가 하나의 새 기록으로 남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두렵고 엄중한 사실인가! 반면 진심으로 상하고 통회하며, 두 번 다시 그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의지적 결단까지 이른 회개는 그 죄가 완전히 삭제되어 하나님도 보지 못하신다.

  행위책에서 죄가 지워진다는 것은 영적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기록이 삭제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도 그것을 보지 못하신다. 지워졌기 때문이다. 수백 번 수천 번을 회개했는데도 불구하고 귀신이 나가지 않았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만 행위책의 기록이 지워지고, 내 속에 있는 악한 영이 나가기 때문이다.

 

6. 다윗은 하늘에 '행위책'과 '생명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가?

  구약 성경에서 생명책을 직접 언급한 인물은 두 사람이다(신약에서는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 뿐이다). 먼저는 모세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범죄한 후, 모세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중보한다.

출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모세는 하나님이 기록하신 책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음을 알았다. 이것이 구약에서 생명책의 존재를 증언하는 첫 번째 기록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앞서 살펴본 다윗의 시편 69편 28절이다. '생명책'이라는 이름을 구약에서 명시적으로 사용한 것은 다윗이 처음이다. 그렇기에 다윗은 단순한 왕이나 시인이 아니라 탁월한 영성가였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떤 통로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가? 그는 환상의 은사를 받은 자였다. 시편 110편 1절에서 그는 천 년 후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을 미리 보았고(마 22:44), 시편 22편에서는 십자가의 고통을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묘사하였다. 그 동일한 환상의 은사로 다윗은 하늘의 실재, 곧 생명책과 행위책의 존재를 보았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도 하나님이 살아 계신 자들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방식이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 중에 느보산을 올라가는 길에서도 이러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느보산은 모세가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던 곳이다. 그곳을 오를 때 어떤 이들은 자신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겠다는 결단이 불처럼 솟아오르는 경험을 한다. 하나님이 장소를 통해 사람의 심령에 역사하시는 것이다. 다윗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이 그의 영적 눈을 열어 하늘의 실재를 보게 하셨을 때, 그는 단순히 정서적인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영적 사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시편에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그 기록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달된 것이다.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또한 다윗은 시편 56편 8절에서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물음으로써, 자신의 행위가 기록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기록이 남는다는 영적 확신에서 나온 고백이다.

  행위책의 기록 방식에 관해서도 성경은 단서를 제공한다. 요한계시록 4장에 등장하는 네 생물을 보라. 사자 같은 얼굴, 송아지 같은 얼굴, 독수리 같은 얼굴, 사람 같은 얼굴을 가진 네 생물의 온 몸에 눈들이 가득하다(계 4:6). 이 눈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이 눈들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인류를 동시에 감시하고 기록하는 하나님의 눈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태어났다 죽은 사람의 수를 훨씬 초과하는 수의 눈이 네 생물의 몸에 박혀 있으며, 그 눈들은 말과 행동은 물론 마음의 생각까지 초선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계 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이 땅에서의 하루가 끝나면, 기록 천사가 보고하고 하늘의 행위책에 그날의 기록이 남는다. 이스라엘의 시간 개념에서 하루는 저녁부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는 단순히 창조의 순서가 아니라, 행위의 기록이 마감되는 시간적 구조를 반영한다. 이 기록 구조를 이해하면 왜 성경이 해가 지기 전에 분을 해소하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권면하는지가 명확해진다. 하루의 기록이 마감되기 전에 그날의 죄를 청산하는 것이 지혜로운 성도의 삶이다. 그러므로 해가 지기 전에 그날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베소서 4장 26절과 27절이 이렇게 권고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엡 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다윗은 이 모든 영적 실재를 알았기 때문에, 단순한 용서의 차원을 넘어 행위책에서 기록이 지워지기를 간구하는 회개를 하였다. 그리고 그 회개가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졌다. 생명책에서도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고 도리어 그 이름 위에 금 왕관이 얹히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완전한 계시가 임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다윗은 행위책과 생명책을 통해 많은 영적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 그가 기록한 시편들이 오늘 우리 신앙의 방향과 좌표를 찍어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7. 악한 영이 나가야 깨끗해진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요한일서 1장은 이를 어떻게 가르치는가?

  이제 시편 51편 7절을 다시 읽어 보자.

시 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우슬초는 구약 의식에서 피를 뿌릴 때 사용하는 도구다(출 12:22). 유월절 밤 이스라엘 백성이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뿌릴 때 사용한 것이 우슬초였다. 그러나 다윗은 동물의 희생 제물이 자신의 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편 51편 16절에서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라고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우슬초로 피를 뿌려 정결하게 해 달라고 구한다.

시 51: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이것은 훗날 흘려질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정결을 예표적으로 구한 것이다. 아직 예수의 피가 흘려지지 않은 시대에 살았던 다윗이 그 실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죄가 깊은 차원에서 깨끗하게 씻겨야 한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요한일서 1장 7절은 이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 그런데 이 깨끗함은 어떻게 받는가? 9절이 그 방법을 가르쳐 준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기서 '자백(自白)'은 하나님 앞에 죄를 고하는 것을 가리킨다. '자백'이라는 말의 헬라어 원어는 '호모로게오(homologeō)'로, 문자 그대로 '같은 말을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죄라고 하시는 것을 나도 죄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내 행동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그것을 죄라고 부르시는 그 이름으로 나도 그것을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백이 이루어질 때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발생한다. 하나는 행위책에서 그 죄가 지워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속에 들어온 악한 영이 나가는 것이다.

  마태복음 이후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귀신을 '더러운 영(unclean spirit)'이라고 부르신다(막 1:23). 귀신이 더럽다고 불리는 이유는, 귀신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더러운 영이 사람 안에 들어와 있으면 그 사람의 몸도 더럽혀진다. 더러운 영이 나가야 그 사람이 깨끗해진다. 그러므로 회개를 통해 더러운 영이 나가는 것은 단순한 심리적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실제적인 영적 정결이다. 우리 몸이 깨끗하게 되지 않으면 성령이 온전히 거할 수 없고, 성령이 온전히 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충분히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이 다윗이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라고 구한 이유다.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리는 의식이 상징하는 실재, 곧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악한 영이 쫓겨나고 몸이 깨끗해지는 것을 구한 것이다. 다윗은 완전한 계시를 받지 못한 시대에 살았지만, 회개의 깊이가 어디까지 이르러야 하는지를 보았다. 단순히 죄책감을 해소하는 차원이 아니라, 몸 속에 자리 잡은 악한 영이 나가서 몸 자체가 깨끗해지는 차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그러므로 회개는 두 가지 방향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하늘을 향하여서는 행위책에 기록된 죄가 지워지는 것이고, 내 몸을 향하여서는 악한 영이 나가서 몸이 깨끗해지는 것이다. 이 두 방향의 정결이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이 온전히 거하실 수 있는 성전이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선언한 것은 단순한 도덕적 권면이 아니다. 더러운 영이 나간 깨끗한 몸에야 비로소 성령이 온전히 거하실 수 있다는 영적 사실을 가르치는 것이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다윗이 알지 못하였던 것, 사도 바울도 명시적으로 가르치지 않았던 것을 이제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알려 주셨다. 더욱이 그것은 내 죄뿐만 아니라 조상이 물려준 악한 영들도 회개와 자백을 통해 내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내 죄로 들어온 영들과 부모와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영들을 함께 끊어 내는 것이 이 시대에 요구되는 온전한 회개다. 다윗은 자신이 직접 지은 죄로 인한 영들만을 의식하였으나,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는 조상에게서 흘러내려온 악한 영들까지 포함하여 회개함으로 더 철저한 정결을 이룰 수 있다. 시편 51편 5절에서 다윗이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은 원죄의 보편성을 언급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죄의 세력과 연결되어 있음을 고백하는 깊이 있는 자기 인식이기도 하다. 다윗은 9절에서 다시 한번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라고 구한다. 행위책에서의 삭제와 악한 영의 축출, 이 두 가지가 함께 이루어질 때 회개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시 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8. 살아 있는 동안 행위책을 백지 상태로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 가장 실제적인 질문에 이르렀다. 살아 있는 동안 이미 행위책에 기록된 채 있는 죄를 지울 수 있는가? 답은 '그렇다'이다. 다윗이 그것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중요한 단서가 있다. 살아 있을 때만 가능하다.

  죽으면 행위책은 영원히 고정된다. 천국의 도서관의 서가에 꽂혀 영원히 남는다. 죽은 이후에는 그 기록을 바꿀 방법이 없다. 그 행위책을 가지고 심판을 받는다. 천국의 낙원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심판이 이루어지고 상이 결정된다. 내가 변두리에 살 것인지, 집을 짓고 살 것인지, 얼마나 중심부에 가까이 살 것인지가 거기서 결정된다. 그때 행위책이 펼쳐지는 것이다. 반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진심으로 자백하고 회개하면 그 기록이 지워진다. 그리고 지워진 기록은 하나님도 보지 못하신다. 하얗게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그러나 회개를 했는데도 죄가 지워지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있다. 수백 번을 회개했는데도 여전히 그 죄가 남아 있는 것 같고, 귀신도 나가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회개가 진심에서 우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 회개 기도문을 읽은 것이다. 진심으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의지적 결단까지 동반한 회개만이 행위책의 기록을 지운다. 자백과 회개를 통해 행위책에 기록된 죄들이 점차적으로 지워져 가는 것이다. 요한일서 1장 9절의 말씀을 붙잡고 진심 어린 자백을 계속해야 한다.

  다윗을 생각해 보라.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들은 후 열 달이 넘도록 그는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셨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은 언제까지 지속하게 두셨는가! 어느 순간 하나님은 나단을 다시 보내어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라고 선언하게 하셨다. 그만하면 됐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지점까지 다윗을 내버려 두셨다가, 회개가 충분히 이루어졌을 때 사면을 선언하신 것이다.

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해가 지기 전에 그날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에베소서 4장 26절과 27절이 권고하는 대로, 날마다 쌓이는 죄의 기록을 그날 안에 지워 나가는 것이 지혜로운 성도의 삶이다. 수백 번 했는데 왜 안 지워지냐고 하나님께 따지지 말아야 한다. 다윗처럼 진심으로, 가슴을 찢으며, 의지적 결단까지 동반한 회개를 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지워 주신다.

엡 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 기록된 자신의 이름을 더 빛나게 할 수 있다. 다윗의 생명책에는 금빛이 빛나는 이름 위에 금 왕관이 얹혀 있었다. 이것은 이 땅에서의 신실한 삶이 천국에서의 영광과 직결됨을 보여 준다. 행위책에서 죄의 기록이 지워지고, 선한 행위의 기록이 쌓여 갈 때,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의 빛도 더욱 밝아진다.

  그리고 천국에 있는 행위책에 내 기록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어떤 사람은 행위책에 그가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지은 죄들로 빼곡히 차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 아름다운 일들이 빼곡히 차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죄를 지었으면 회개하여 행위책에서 그 부분이 지워져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천국에 가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그대로 기록으로 행위책에 남아 있다. 그러므로 죄진 장면은 하얗게 지워지고, 선하게 행한 장면들만 가득한 행위책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지향해야 할 목표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루를 시작할 때 그날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겠다는 결단을 하는 것이고, 하루를 마칠 때 해가 지기 전에 그날 지은 죄를 낱낱이 하나님 앞에 자백하는 것이다. 말로 범한 죄, 행동으로 범한 죄, 마음으로 범한 죄를 하나씩 떠올리며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그 죄를 사하시고 행위책에서 지워 주실 것이다. 이것이 날마다 반복되어야 한다. 한 번의 거창한 회개 집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 해가 지기 전에 그날의 장부를 청산하는 것이다.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행위책은 점점 더 하얀 페이지들이 늘어 가고, 선하게 행한 기록들이 채워져 가게 된다.

  이 땅에서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기회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오늘의 죄를 오늘 자백하고, 오늘 회개하여 오늘 지워 버리는 것, 이것이 다윗이 가르쳐 준 지혜다. 죽어서는 못 한다. 영원토록 그 기록이 그대로 남는다. 살아 있는 동안에만 지울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천국에 들어갔을 때 부끄럽지 않은 자로 서기 위하여 지금 이 자리에서 내 회개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자. 행위책에는 죄의 기록만 남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한 행위의 기록도 남는다. 나눔, 섬김, 헌신, 기도, 말씀 붙잡음, 이웃 사랑,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예배, 이 모든 것이 기록된다. 죄가 지워지는 동시에 선한 행위가 쌓여 갈 때, 그 행위책은 점점 더 하나님 앞에 드리기 부끄럽지 않은 책이 되어 간다. 그러므로 회개는 소극적인 것이 아니다. 죄를 지우는 것뿐만 아니라 선한 것을 채우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적극적인 삶의 방향이다. 다윗이 참회의 시편 뿐만 아니라 감사의 시편, 찬양의 시편, 역사 시편을 함께 기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회개한 자리에는 반드시 새로운 헌신과 감사가 따라온다. 시편 51편 13절에서 다윗은 회개의 은혜를 받은 이후에 이렇게 고백한다.

시 51:13 그러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 우리는 다윗의 참회의 시편을 통해 드러나는 회개의 세 가지 특징, 그 세 번째 특징인 '행위책에서 죄가 지워지는 회개'와 '악한 영이 나가서 깨끗해지는 회개'를 살펴보았다. 다윗은 시편 51편 1절에서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와 "나의 죄를 깨끗하게 하소서"라는 두 가지 간구를 통해, 회개가 단순한 정서적 해소가 아닌 하늘의 기록 체계와 관련된 실재적 사건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천국에는 생명책과 행위책이 있다. 생명책에는 거듭난 자의 이름이 기록되고, 행위책에는 이 땅에서 행한 모든 것이 기록된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진심으로 자백하고 회개하면 행위책에 기록된 죄가 지워진다. 그것은 하나님도 보지 못하실 만큼 완전히 삭제되는 것이다. 이 은혜를 알았기에 다윗은 쉬지 않고 "지워 주소서, 깨끗하게 하소서"를 구하였던 것이다.

  다윗은 사실 완전한 계시가 임하기 천 년 전의 사람이다. 예수의 피가 흘려지기 전이었으므로 죄 씻음의 실체를 온전히 알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볼 수 있는 최대한의 영적 실재를 붙잡고 끝까지 회개의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그 회개가 그를 천국에서 왕복을 입은 왕 같은 제사장의 모범으로 세웠다. 하나님은 다윗의 그 간구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사면을 선언하셨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기억하셨으며, 시편이라는 불멸의 기록으로 후세에 그 진리를 전달하게 하셨다. 그것이 수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까지 닿아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다윗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예수의 피가 흘려졌고(요일 1:7), 진심으로 자백하면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된다는 약속이 주어졌다(요일 1:9). 내 죄로 들어온 영들뿐만 아니라 조상에게서 내려온 악한 영들까지 회개를 통해 내보낼 수 있음을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알려 주셨다. 이 은혜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면서 형식적인 립싱크 회개에 머무는 것은 합당하지 아니 된다.

  날마다 해가 지기 전에 그날의 죄를 자백하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회개하여, 행위책의 죄 부분이 하얗게 지워지고 악한 영이 쫓겨나 몸이 깨끗해지는 은혜를 경험해야 한다. 다윗이 시편 51편 10절에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구한 것처럼, 우리도 그 동일한 간구를 날마다 드려야 한다.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이 나가야 비로소 성령이 새롭게 하시는 그 자리가 열린다.  그리하여 천국에 들어갔을 때 부끄럽지 않은 행위책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2026년 6월 9일(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인정받은 다윗의 영적 성취를 통해 진정한 회개의 본질을 규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이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수준을 넘어 마음의 중심을 드리는 회개의 진정성과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의지적 결단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합니다. 특히 천국에 존재하는 생명책과 행위책의 존재를 강조하며, 회개란 곧 행위책에 기록된 죄가 하얗게 지워지고 악한 영으로부터 심령이 깨끗해지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함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다윗처럼 살아 있을 때 철저히 자백함으로써, 심판의 날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죄의 기록을 말소하는 삶을 살 것을 강력히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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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론(117)]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3)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5)(시51:1~19)_2026-06-09(화) updatefile 갈렙 2026.06.09 42 https://youtu.be/mQ8T-U8Veqw
2327 [기독론(11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2)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4)(시51:1~19)_2026-06-07(주일) file 갈렙 2026.06.08 103 https://youtu.be/R3lkAyHzK88
2326 [기독론(11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9)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1)(시38:1~13)_2026-06-05(금) file 갈렙 2026.06.05 118 https://youtu.be/NMuZ0Ly2igs
2325 [기독론(11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8) 다윗의 저주시, 과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시51:10~12)_2026-06-04(목) file 갈렙 2026.06.04 114 https://youtu.be/Bu-ht_hrNmM
2324 [기독론(111)]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7)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4)(시22:1~21)_2026-06-03(수) file 갈렙 2026.06.03 100 https://youtu.be/SMRwAH_FhHU
2323 [기독론(110)]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6)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3)(시22:1~21)_2026-06-02(화) file 갈렙 2026.06.02 102 https://youtu.be/MpzXbxrIduQ
2322 [기독론(10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5)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2)(시22:1~21)_2026-06-01(월) file 갈렙 2026.06.01 117 https://youtu.be/8_z-Y2WW3yY
2321 [기독론(10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2) 찬양대장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78:65~71)_2026-05-29(금) 갈렙 2026.05.29 168 https://youtu.be/ZUPCGQWtCgU
2320 [기독론(105)]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1) 고라자손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48:1~14)_2026-05-28(목) file 갈렙 2026.05.28 125 https://youtu.be/Y1hbJRiwHcs
2319 [기독론(104)]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0)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3)(시110:1~7)_2026-05-27(수) file 갈렙 2026.05.27 129 https://youtu.be/O7qFXjZSbUA
2318 [기독론(10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9)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2)(시110:1~7)_2026-05-26(화) file 갈렙 2026.05.26 104 https://youtu.be/dK6eZeWZvT4
2317 [기독론(10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8)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1)(시110:1~7)_2026-05-25(월) file 갈렙 2026.05.25 166 https://youtu.be/_Y-0B3nPzV4
2316 [기독론(9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5)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2026-05-22(금) file 갈렙 2026.05.22 153 https://youtu.be/nXjJaFuelYY
2315 [기독론(98)]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4)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2026-05-21(목) file 갈렙 2026.05.21 198 https://youtu.be/-YVS--SER50
2314 [기독론(97)]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3)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2026-05-20(수) file 갈렙 2026.05.20 162 https://youtu.be/EJEfSxYsP64
2313 [기독론(9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2)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2026-05-19(화) file 갈렙 2026.05.19 144 https://youtu.be/6WsAuOlbj40
2312 [기독론(95)]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1)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2026-05-18(월) file 갈렙 2026.05.18 145 https://youtu.be/INsYN08YZ2k
2311 [기독론(95)]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1)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2026-05-18(월) file 갈렙 2026.05.18 96 https://youtu.be/INsYN08YZ2k
2310 [기독론(92)] 사람들이 세운 왕과 하나님이 세운 왕의 차이는?(삼상9:1~17)_2026-05-15(금) file 갈렙 2026.05.15 137 https://youtu.be/e0IZ5pgUl98
2309 [기독론(9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를 위한 왕을 구한 대가는?(삼상8:1~22)_2026-05-14(목) file 갈렙 2026.05.14 150 https://youtu.be/IwGzbUx6K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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