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132)] 다윗의 아들 솔로몬(10)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4)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아4:12-5:2)
이 설교는 아가서를 통해 기독론의 깊이를 탐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라는 세 가지 핵심적 신분으로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아가서에 등장하는 '고벨화'와 '엔게디' 같은 상징물들이 단순한 문학적 표현을 넘어 예수님의 대속적 사역과 천국의 실상을 계시한다고 역설합니다. 특히 신랑이 밤이슬을 맞으며 늦게 귀가한 이유를 순교한 성도들을 영접하기 위한 희생적 사역으로 풀이하며, 주님과 신부의 관계를 생명으로 연결된 연합으로 묘사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회개를 통해 정결한 신부의 자격을 갖추어, 주님이 예비하신 비밀의 동산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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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 슬라이드 241. 들어가며
아가서는 구약 성경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책이다. 이 책에는 기도하라, 회개하라, 예배하라, 여호와를 경외하라와 같은 직접적인 신앙 명령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책은 정경 안에 들어와 있다. 그 이유는 아가서가 단순한 남녀의 사랑 노래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가장 깊고 진하게 보여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아가서를 표면으로만 읽으면 신랑과 신부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령의 빛 아래서 읽으면, 그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누구시며, 그분이 교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으며, 신부 된 성도들이 어디까지 준비되어야 하는지가 감추어져 있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 전체가 자신에 대해 증언한다고 말씀하셨다(요 5:39). 또한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자신에 관한 것을 풀어 주셨다(눅 24:44). 그러므로 구약을 그리스도 없이 읽으면 중심을 놓친다. 창세기의 요셉과 유다, 출애굽기의 모세와 여호수아, 사무엘서와 시편의 다윗, 열왕기상과 역대하의 솔로몬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다윗이 전쟁에 능한 왕으로서 그리스도의 승리와 영적 전쟁을 보여 준다면, 솔로몬은 평화의 왕, 지혜의 왕, 성전 건축자로서 그리스도의 또 다른 면을 보여 준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특히 아가서는 솔로몬이 남긴 지혜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잠언은 지혜의 길을 말하고, 전도서는 해 아래 인생의 헛됨을 말한다. 그러나 아가서는 지혜의 최종 목적을 보여 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얻으시고, 교회를 신부로 단장하여 새 예루살렘으로 이끄시는 것이다. 이것이 아가서가 말하는 사랑의 본질이다. 사랑은 감정의 흥분이 아니라, 피와 생명과 헌신으로 신부를 얻으시는 그리스도의 경륜이다.
이번 본문은 아가서 4장 12절부터 5장 2절까지의 흐름을 중심으로 한다. 여기에는 신부가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으로 묘사되고, 그 동산 안에 여러 나무와 향품이 있으며, 신랑이 그 동산에 들어와 몰약과 향재와 꿀과 포도주와 우유를 누리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6장에 가면 신랑이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양떼를 먹이고 백합화 가운데 거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모든 표현은 단순한 시적 장식이 아니다. 이것은 목자이신 그리스도, 포도원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동산지기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 주는 영적 실재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아가서에 나타난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이 무엇이며, 그 신분이 오늘 성도와 교회를 어떻게 신부의 자리로 이끌어 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진하게 보여 주는가?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가장 진하게 보여 주는 구약의 책이다. 그 이유는 이 책이 단순히 그리스도의 신분만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시고, 어떻게 찾으시고, 어떻게 단장하시고, 어떻게 자기 동산 안으로 이끄시는지를 사랑의 노래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신약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말한 본문은 에베소서 5장이다.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말하다가 그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큰 비밀이라고 말한다(엡 5:31~32). 그런데 그 비밀을 구약의 시가서 안에서 가장 풍성하게 보여 주는 책이 아가서다.
엡 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아가서는 성전의 영적 의미를 문학적으로 풀어 놓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솔로몬은 역사적으로 성전을 건축한 왕이다. 그러나 열왕기상과 역대하는 성전의 건축 과정과 봉헌 기도를 기록할 뿐, 그 성전이 장차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를 충분히 풀어 주지는 않는다. 성전의 외형은 돌과 백향목과 금으로 지어졌지만, 성전의 영적 실체는 하나님이 거하실 인격적 처소다. 신약에 와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교회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 간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다면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내적 의미는 어디에서 가장 깊이 드러나는가? 그것이 바로 아가서다. 아가서는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이, 물질적 성전의 영적 실체인 교회를 사랑의 노래로 표현한 책이다. 여기서 신부는 단순한 여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사시고 생명으로 낳으시며 향품으로 단장하시는 교회를 예표한다. 그러므로 아가서는 교회론의 숨은 보고다. 그리스도를 깊이 알지 못하면 아가서는 연애시로만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과 신부의 경륜을 알면, 아가서는 구약 최고의 교회론으로 열린다.
아가서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논리로만 설명하지 않고 감각과 상징으로 보여 준다. 포도원, 동산, 고벨화, 몰약, 유향, 백합화, 사자굴, 표범산, 레바논, 생수의 우물, 봉한 샘, 밤이슬 같은 표현은 모두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설명하는 영적 언어다. 여기서 성도는 자신이 어떤 존재로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본다. 성도는 단순히 죄 사함만 받은 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을 받아, 그분의 동산 안에서 향기를 내고 열매를 맺고 양떼를 함께 돌보는 신부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가서는 성도의 최종 목적지를 보여 준다. 그것은 단순히 천국 변두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아가서가 보여 주는 신부는 신랑의 동산 안으로 들어가고, 신랑의 사역을 이해하며, 신랑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 이 점에서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가장 친밀하게, 가장 진하게 보여 주는 책이다.
3. 왜 세 신분을 한 묶음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가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여러 신분이 나온다. 그분은 왕이시고, 창조주이시고, 속전이시며, 목자이시고, 포도원의 주인이시고, 동산지기이시고, 재림주이시고, 신랑이시다. 이 여덟 가지 신분은 따로 떨어진 명칭이 아니다. 하나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중 이번 시간에 살피는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는 특히 하나의 묶음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 신분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신부와 양떼와 열매를 어떻게 돌보시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아가서에서 그리스도는 첫째로, 목자로서 양떼를 먹이고 보호하는 분이다. 둘째로, 포도원의 주인으로서, 열매를 바라보고 포도원을 맡기고 거두는 분이다. 셋째로, 동산지기로서, 잠근 동산 안에 있는 생명과 향기와 열매를 돌보는 분이다. 세 표현은 모두 관리와 돌봄과 산출의 언어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사역이 들어 있다. 그리스도는 신부를 사랑하는 데서 멈추지 않으신다. 그분은 자기 양떼를 먹이시고, 자기 포도원을 통해 많은 열매를 산출하시고, 자기 동산에서 몰약과 향재료와 꿀과 포도주와 우유를 누리신다.
아가서 4장 12절은 신부를 “잠근 동산”이라고 부른다. 이 동산은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울타리가 있고, 봉함이 있고, 덮임이 있다. 히브리어로 동산은 ‘간’이라고 하는데, 이는 울타리 쳐진 공간을 뜻한다. 에덴동산도 이러한 동산이다. 에덴은 하나님이 사람을 두신 곳이었고, 생명나무와 강물이 있던 곳이었다. 아가서의 동산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신부 안에 감추어진 생명과 향기와 열매의 공간이며,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는 장소다.
아 4: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그런데 이 동산은 양떼와도 연결된다. 아가서 6장 2절은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서 양떼를 먹인다고 말한다. 동산은 단순히 신랑과 신부만의 사적인 정원이 아니다. 그 안에는 양떼가 있고, 백합화가 있고, 신랑의 돌봄이 있다. 이것이 목자와 동산지기의 신분이 분리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포도원도 마찬가지다. 포도원은 열매를 산출하는 곳이다. 신랑은 포도원의 주인으로서 열매를 원하고, 동산지기로서 그 열매와 향품을 거두며, 목자로서 그 안의 양떼를 먹인다.
아 6:2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의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그러므로 이 세 신분은 그리스도의 현재 사역을 보여 준다.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으로만 알아서는 안 된다. 그분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에도 계속 일하신다. 그분은 지금도 자기 양떼를 먹이시고, 포도원의 열매를 찾으시고, 신부의 동산에서 향기를 거두신다. 이 사역을 알 때 성도는 자신의 신앙을 다시 보게 된다. 나는 단순히 구원받은 자인가, 아니면 신랑의 동산 안에서 향기와 열매를 내는 자인가? 나는 양떼로 먹임받는 자인가, 아니면 주님의 마음을 알고 함께 양떼를 돌보는 신부인가? 아가서는 이 질문을 우리 앞에 세운다.
4. 신부는 왜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나와야 하는가?
신랑은 신부에게 레바논에서부터 함께 가자고 부른다. 그리고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오라고 말한다(아 4:8). 이 말씀은 단순한 지리적 초청이 아니다. 신부가 있던 자리가 어디였는지를 보여 주는 영적 묘사다. 신부는 처음부터 왕궁에 있던 자가 아니다. 그녀는 바알하몬 포도원에서 오빠들에게 부림을 당하던 자였고, 햇볕에 그을려 거무스름해진 자였으며, 사자굴과 표범산 같은 위험한 영적 지형 속에 있던 자였다.
아 4: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여기서 '사자'와 '표범'은 성경에서 영적 권세와 포악함의 상징으로 쓰인다. 다니엘서 7장은 짐승들을 통해 세상 제국의 포악한 권세를 보여 주고, 요한계시록 13장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을 표범과 곰과 사자의 복합 이미지로 묘사한다. 이는 적그리스도적 세력과 사탄의 권세를 보여 주는 상징이다. 그러므로 아가서 4장 8절의 사자굴과 표범산은 신부가 있던 영적 억압의 자리를 가리킨다. 신부는 안전한 곳에 있던 자가 아니라, 사탄의 세력과 타락한 영들의 압제 가운데 있던 자다.
계 13: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여기서 우리는 귀신론의 실제를 보아야 한다. 인간은 단순히 도덕적 약함 때문에 고통받는 것이 아니다.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들이 사람을 포도원지기처럼 부리고, 사자굴과 표범산 같은 두려움과 고통의 자리로 몰아넣는다. 아가서 1장 6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단순한 가정사의 상처가 아니라, 영적으로는 타락한 영들이 인간을 억압하고 자기 포도원을 지키지 못하게 만드는 상태를 보여 준다.
아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자리로 찾아오신다. 신랑은 왕궁에 앉아 신부가 알아서 오기를 기다리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레바논의 위험한 자리, 사자굴과 표범산 같은 자리로 찾아와 신부에게 함께 가자고 부르신다. 이것이 구원의 시작이다. 예수님은 죄와 귀신과 사탄의 억압 아래 있던 우리를 찾아오셔서, 그 자리에서 나오게 하신다. 그리고 신부를 단순히 해방시키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자기 동산과 새 예루살렘으로 데려가신다.
그러므로 신부의 구원은 위치 이동이다. 바알하몬의 포도원에서 왕의 동산으로,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새 예루살렘으로, 오빠들의 억압에서 신랑의 사랑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회개와 축사는 이 이동의 실제 과정이다. 죄를 회개해야 하고,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영들이 떠나야 하며, 성도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따라 악한 영들의 영역에서 내려와야 한다. 이것이 신부가 “내려오라”는 부름을 들어야 하는 이유다.
5. 목자이신 그리스도는 양떼를 어떻게 돌보시는가?
아가서 6장은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 양떼를 먹이고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셨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요 10:11). 그분은 양을 이용하지 않으신다. 양을 먹이고, 지키고, 생명수로 인도하신다. 아가서의 신랑도 그러하다. 그는 신부와의 사랑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기 동산 가운데서 양떼를 먹인다.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한계시록 7장은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목자가 되셔서 성도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한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놀라운 역설이 있다. 어린양이 목자가 된다. 죽임당한 어린양이 다시 목자가 되어 자기 백성을 돌본다. 그분은 굶주린 자를 먹이시고, 목마른 자를 생명수로 인도하시며, 뜨거운 기운에 상한 자의 눈물을 씻어 주신다. 아가서의 목자도 이와 같다. 그는 자기 동산에서 양떼를 먹이시는 분이다.
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여기서 양떼는 누구인가? 좁게는 주님의 백성이고, 넓게는 주님의 생명을 받아 돌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성도다. 신부도 처음에는 먹임을 받아야 하는 양이다. 그러나 성숙한 신부는 신랑의 마음을 알고 양떼를 함께 돌보는 자리로 나아간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반드시 주님의 양떼를 돌보는 사역으로 이어져야 함을 보여 준다.
요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그러므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자기 구원만 생각하지 않는다. 주님의 양떼를 생각한다. 교회 안에는 굶주린 양이 있고, 목마른 양이 있고, 상처 입은 양이 있고, 귀신에게 눌려 헤매는 양이 있다. 목자이신 그리스도는 이들을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지금도 양떼를 먹이고 계신다. 신부가 성숙한다는 것은 그 목자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신랑이 어디에 계신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분은 자기 동산에서 양떼를 먹이고 계신다.
따라서 아가서의 신앙은 감상적 사랑에 머물지 않는다. 신랑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양떼에는 관심이 없다면 아직 신랑의 마음을 온전히 모르는 것이다.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떼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신 분이다. 그분의 신부라면 결국 그분의 양떼를 사랑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6. 포도원의 주인은 무엇을 산출하시는가?
아가서에는 포도원 이미지가 반복된다. 술람미 여인은 자기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하고, 솔로몬에게는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었다고 기록된다. 포도원은 성경에서 열매와 산출의 장소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포도원으로 묘사되고,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포도원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는 자기 생명으로 많은 열매를 산출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나는 참포도나무”라고 하셨고, 성도들은 그 가지라고 말씀하셨다(요 15:1,5).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지만, 떨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은 교회의 산출 원리다. 교회는 인간 조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에 붙어 있을 때 산출된다. 포도원의 주인은 그리스도시고, 열매의 생명도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원은 또한 피와 관련된다. 포도주는 포도의 생명에서 나온다. 아가서에서 신랑은 신부를 포도주의 집으로 이끌어 간다. 이는 신랑이 자신의 피와 생명을 통해 신부를 얻으실 것을 예표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고, 그 피로 죄를 속죄하셨으며, 그 생명을 해방하여 많은 열매를 맺게 하셨다. 요한복음 12장 24절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한다. 포도원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도 바로 그 방식으로 많은 하나님의 자녀를 산출하신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속전이신 그리스도와 포도원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가 연결되어 있음을 본다. 앞서 아가서 1장 14절의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는 피 흘려 죽으실 그리스도를 보여 주었다. 그분은 고벨화처럼 피의 색을 가지신 분이며, 포도원 안에서 송이처럼 많은 열매를 산출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포도원의 목적은 단지 풍성함이 아니다. 포도원의 목적은 생명의 번식이다. 한 분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아들들, 많은 신부들, 많은 왕노릇할 자들이 산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포도원 안에 있는 가지인지 점검해야 한다. 그리스도께 붙어 있지 않은 열매는 영원한 열매가 아니다. 세상 성공, 종교적 활동, 외적 규모가 포도원의 열매가 아니다. 주님의 피와 생명으로 산출된 사람, 회개와 정결을 통해 주님의 생명을 담는 사람이 참 열매다. 포도원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열매를 찾으신다.
7. 동산지기는 잠근 동산에서 무엇을 하시는가?
아가서 4장 12절은 신부를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신부가 아무에게나 열려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신부는 신랑에게 속한 존재다. 동산은 울타리가 있는 공간이고, 우물은 덮여 있으며, 샘은 봉해져 있다. 이것은 정결과 소유와 보호를 동시에 말한다. 신부는 세상에 함부로 열려 있어서는 안 된다. 신부는 신랑에게 열려야 한다.
아 4: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이 동산 안에는 여러 나무와 향품이 있다. 석류나무, 각종 아름다운 과수(무화과 나무, 포도나무, 사과 나무), 고벨화, 나도, 번홍화(샤프란), 창포, 계수, 유향목, 몰약, 침향(알로에)과 모든 귀한 향품이 언급된다. 이 목록은 단순한 식물 목록이 아니다. 각각은 그리스도와 신부의 성숙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 석류나무는 많은 씨를 품고 있는 열매로서 생명의 번식을 생각하게 하고, 고벨화는 피와 속전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하며, 몰약은 죽음과 장사를, 유향은 부활의 향기와 하나님께 올라가는 향을 떠올리게 한다.
아 4:13-14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동산지기이신 그리스도는 이 동산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 아가서 5장 1절에서 신랑은 “내 동산에 그녀가 들어왔다”고 말한다. 솔로몬은 자기의 동산에서 몰약과 향재를 거두고, 꿀송이와 꿀을 먹고, 포도주와 우유를 마신다. 이것은 신랑이 신부 안에서 산출된 향기와 열매를 누리시는 장면이다. 신부는 단순히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신랑이 기뻐하실 향기와 열매를 내는 존재다.
아 5:1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재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여기서 동산지기의 사역은 매우 중요하다. 주님은 신부의 동산을 방치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들어오시고, 거두시고, 누리시고, 친구들과 사랑하는 자들을 초청하신다. 동산은 폐쇄적 자기 만족의 공간이 아니다. 신랑이 들어오시고, 신랑이 누리시고, 신랑이 다른 사람들을 초청하시는 생명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동산은 교회의 내적 실재다. 참 교회는 세상에 열려 있으면서도 영적으로는 잠겨 있어야 한다. 세상과 귀신에게는 닫혀 있고, 그리스도께는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그 안에서 향기와 열매와 생수가 나온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교회가 프로그램은 많으나 향기가 없을 수 있다. 교회가 활동은 많으나 봉한 샘의 생명수가 없을 수 있다. 교회가 외적으로 열려 있으나 신랑에게는 닫혀 있을 수 있다. 아가서의 동산은 이와 반대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잠겨 있고, 그리스도께 열려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먹고 마시고 기뻐하시는 곳이다. 신부 된 성도도 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8. 신부는 왜 신랑의 사역에 동참해야 하는가?
아가서 5장 2절은 매우 중요한 장면을 보여 준다. 신랑이 밤이슬을 맞고 새벽녁에 신부의 문을 두드린다. 그는 신부를 “내 누이, 내 사랑,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라고 부르며 문을 열어 달라고 말한다. 신혼의 시기인데도 신랑은 밤늦게 돌아왔다. 그의 머리에는 이슬이 있고,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다. 왜 신랑은 늦게 돌아왔는가? 이것이 아가서의 깊은 질문이다.
아 5: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어 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처음 신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녀는 이미 발을 씻었고 옷을 벗었기 때문에 일어나 문을 열기 망설인다. 그러나 신랑은 그냥 밖에서 방황한 것이 아니다. 아가서 6장에 가면 신랑이 어디 있었는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 양떼를 먹이고 백합화 가운데 있었다. 그는 신부 곁에서만 머물던 분이 아니라, 양떼와 백합화를 돌보던 분이다.
아 6:2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의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여기서 백합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다. 아가서 2장 2절에서 신부는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로 불렸다. 이것은 죄와 저주의 세상 가운데 피로 정결하게 될 신부를 보여 준다. 그런데 6장에서는 신랑이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인다. 동산에서 꺾여진 백합화는 피 흘림과 순결과 순교의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 “백합화를 꺾는다”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꺾는 것이 아니라, 꺾여진 백합화들을 주워 거두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이해해야 한다. 주님은 오늘도 자기 이름을 위해 피 흘린 자들을 맞이하시고, 고난받는 자들을 위로하시며, 양떼를 먹이신다.
신부는 처음에는 신랑이 자기 곁에만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성숙한 신부는 신랑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신랑은 나만 사랑하시는 분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양떼와 다른 백합화들을 돌보시는 분이다. 그분의 마음은 넓다. 그분은 순교자들을 맞이하시고, 굶주린 양을 먹이시고, 목마른 자를 생명수로 인도하신다. 신부가 성숙한다는 것은 바로 이 사역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부는 사랑받는 자리에서 사역에 동참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신부는 신랑의 품에서 위로만 받는 자가 아니다. 신부는 신랑의 시선을 배워야 한다. 신랑이 양떼를 보는 곳을 같이 보아야 하고, 신랑이 백합화를 거두는 곳을 같이 보아야 하며, 신랑이 밤이슬을 맞는 이유를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신부의 성숙이다.
이것은 오늘 성도에게 매우 실제적인 적용을 준다. 성도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고백에서 멈추면 안 된다. 그 사랑이 참되다면, 주님이 사랑하시는 양떼와 신부들과 순교자들과 고난받는 자들을 향해 마음이 열려야 한다. 그리스도의 동산 안에 들어간 신부는 결국 동산지기이신 그리스도의 일을 함께 배우게 된다. 이것이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길이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아가서에 나타난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그 사역의 비밀을 살펴보았다. 아가서는 단순한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가장 진하게 보여 주는 지혜문학의 정수다. 그 안에서 그리스도는 신부를 사랑하는 신랑이실 뿐 아니라, 양떼를 먹이시는 목자요, 많은 생명의 열매를 산출하시는 포도원의 주인이요, 잠근 동산 안에서 향기와 열매를 거두시는 동산지기이시다.
성도는 먼저 자신이 어디에서 불러냄을 받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신부는 처음부터 왕궁에 있던 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레바논의 험한 곳, 사자굴과 표범산, 바알하몬의 포도원에서 고생하던 자였다. 그러나 신랑이 찾아오셔서 함께 가자고 부르셨다. 이것이 구원의 은혜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와 귀신과 세상 권세의 자리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따라 내려와야 한다.
또한 성도는 그리스도를 목자로 알아야 한다. 그분은 양떼를 먹이시고,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며, 고난받은 자들의 눈물을 씻어 주시는 분이다. 그래서 성도도 그분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 주님의 양떼를 향한 관심이 없는 신부는 아직 신랑의 사역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신부는 사랑받는 자리에서 양떼를 함께 돌보는 자리로 자라가야 한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포도원의 주인으로 알아야 한다. 그분은 많은 열매를 원하신다. 그 열매는 세상적 성공이나 종교적 숫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으로 산출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께 붙어 있어야 하고, 그분의 생명 안에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포도원의 주인이 기뻐하시는 열매는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맺힌 열매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동산지기로 알아야 한다. 신부는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 되어야 한다. 세상과 더러운 영들에게 함부로 열려 있는 동산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열려 있는 동산이 되어야 한다. 그 동산 안에는 향기와 열매와 생수의 샘이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신랑은 그 동산에 들어오셔서 몰약과 향재와 꿀과 포도주와 우유를 누리신다.
마지막으로 성도는 신랑의 밤이슬을 이해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만 위해 계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지금도 자기 동산에서 양떼를 먹이시고, 꺾여진 백합화를 거두시며, 고난받는 성도들을 위로하신다. 신부는 이 마음을 알아야 한다. 신랑의 사랑을 받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신랑의 마음과 시선과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 그럴 때 신부는 완전한 자로 빚어져 간다.
오늘의 교회는 다시 아가서의 동산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는 세상적 프로그램만 많은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께 잠겨 있고, 그리스도께 열려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향기와 열매를 거두시는 동산이 되어야 한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도 그렇게 준비되어야 한다. 회개를 통해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고,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으로 정결하게 되고, 주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향기를 내며, 양떼를 먹이고 백합화를 거두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동산 안에서 향기와 열매를 내며 주님의 양떼를 함께 돌보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25일(목) ·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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