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6. 06. 24. (수)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RrwVaYWaQJY

아침묵상입니다(정제된 요약 글).

제목: [기독론(131)] 다윗의 아들 솔로몬(09)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3)(아가서1: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RrwVaYWaQJY

 

 

1. 들어가며

  아가서는 성경 66권 가운데서도 매우 독특한 책이다. 이 책에는 하나님, 여호와, 회개, 기도, 믿음이라는 직접적인 신앙 용어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책은 유대 랍비들의 전통 안에서 정경으로 인정되었고, 교회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혀 왔다. 왜 그런가? 그것은 아가서가 겉으로는 남녀의 사랑을 노래하지만, 그 속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이 가장 짙게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가서를 단순한 연애시로 읽으면 이 책의 영적 골격을 놓치게 된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남긴 지혜문학의 정수다.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로서 평화의 왕이요 지혜의 왕이요 성전 건축자였다. 그는 성전을 건축했지만, 그 성전의 영적 의미를 열왕기상과 역대기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성전의 내적 의미, 곧 하나님이 거하실 인격적 처소인 교회가 어떻게 산출되는지는 오히려 아가서의 상징과 노래 속에 깊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아가서를 읽을 때에는 역사, 문학, 예표, 영적 실재를 함께 보아야 한다. 역사적으로는 솔로몬의 노래이고, 문학적으로는 신랑과 신부의 가극시이며, 예표적으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이고, 영적으로는 신부를 얻으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이다.

  예수께서는 구약 성경이 자신을 증언한다고 말씀하셨다(요 5:39). 그러므로 아가서도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책으로 읽어야 한다. 부활하신 주님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눅 24:44).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 구절은 한 송이 꽃의 표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압축한 신학적 문장이다.

  이번 본문은 아가서 1장 14절이다. 술람미 여인은 사랑하는 자를 가리켜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라고 고백한다. 이 한 문장은 짧지만, 그 안에는 생명수의 근원, 포도원의 산출, 속전의 피, 무죄하신 그리스도, 천국의 영광, 복음의 향기, 신부 단장의 비밀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아가서 1장 14절의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가 왜 속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분이 어떻게 교회를 산출하고 신부를 단장하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최고 작품인가?

  아가서는 직접적인 신앙 용어가 거의 없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성령의 조명 아래에서 읽으면, 성경 전체가 말하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가장 친밀한 언어로 드러난다.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말하다가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했다(엡 5:31~32). 이 큰 비밀을 구약의 시적 언어로 가장 풍성하게 보여 주는 책이 바로 아가서다.

엡 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다윗은 시편을 통해 그리스도를 왕, 제사장, 목자, 고난받는 종으로 예언했다. 그러나 솔로몬은 아가서를 통해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보여 준다. 왕은 다스리는 분이고, 제사장은 중보하는 분이며, 목자는 돌보는 분이다. 그러나 신랑은 신부와 한 몸을 이루는 분이다. 그러므로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가장 내밀한 관계로 끌어올린다.

  솔로몬은 역사적으로 성전을 지은 왕이다. 그러나 물질적 성전은 그림자다. 신약에 와서 예수께서는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6:18). 또한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며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신다고 했다(고전 3:16). 그러므로 성전의 최종 실체는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성도들과 교회다.

  여기서 솔로몬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윗은 전쟁으로 평화를 준비했고, 솔로몬은 그 평화 위에서 성전을 세웠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종 성전은 돌과 백향목과 금으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 안에 세워지는 영적 집이다. 그래서 솔로몬이 남긴 가장 깊은 지혜는 성전 건축의 외형이 아니라, 성전의 실체인 교회가 신랑의 사랑 안에서 어떻게 세워지는지를 보여 주는 아가서 안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바로 이 지점에서 아가서가 중요하다. 아가서는 교회가 어떻게 성전이 되고, 신부가 되며, 왕의 사랑을 입은 자가 되는지를 노래한다. 술람미 여인은 처음에는 바알하몬의 포도원에서 햇볕에 그을린 시골 처녀로 등장한다. 그러나 신랑을 만나고 그의 사랑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부름받는다. 이것은 죄와 수고와 악한 영의 억압 아래 있던 인간이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을 통해 신부로 준비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아가서는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교회를 어떻게 산출하고, 어떻게 씻고, 어떻게 단장하며, 어떻게 새 예루살렘으로 이끄는지를 보여 주는 지혜문학의 최고 작품이다.

  특히 아가서가 신앙 용어를 앞세우지 않는다는 점은 오히려 이 책의 깊이를 드러낸다. 노골적인 교리 문장 대신 신랑과 신부, 향기와 포도원, 꽃과 동산, 왕의 가마와 예루살렘의 딸들을 통해 영적 실재를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는 연애 노래로만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비밀을 찾는 사람에게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열린다.

3. 한 분 하나님 이해가 왜 속전 해석의 기초인가?

  아가서 1장 14절의 고벨화를 속전이신 그리스도로 해석하려면 먼저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분이 단순한 피조물이라면 그분의 피는 온 인류의 속전이 될 수 없다. 한 사람의 피조물은 다른 피조물을 완전히 구속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이시며, 창조주께서 사람으로 오신 분이다.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하는 한 분 하나님 신앙은 여기서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약히드식으로 고립된 하나가 아니라 에하드식으로 하나이시다. 에하드는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는 것처럼 구별을 가지면서도 하나를 이루는 개념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구별되지만 본질상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께 기도하실 수 있고,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뜻을 복종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은 둘로 나뉜 두 하나님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다.

  이 점을 놓치면 두 가지 오류가 생긴다. 하나는 예수님을 창조된 존재로 낮추는 오류다. 다른 하나는 피조물인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이나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오류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는 그분에게서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피조물이다. 아가서의 신랑과 신부도 바로 이 차이를 품고 있다. 신랑은 신부를 사랑하지만 신부와 같은 피조물의 부류가 아니다. 신랑은 신부를 살리러 찾아오신 창조주다.

  예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셨다(요 10:30). 또한 요한복음 17장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같이 성도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이것은 존재의 혼합이 아니라 구별 속의 연합을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버지와 다른 분으로 나타나셨으나, 하나님 밖의 다른 피조물이 아니다.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에게서 나오신 분으로 증언한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오셨고 다시 아버지께로 가신다(요 16:28). 요한은 그분을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증언한다(요 1:18).

요 16: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이 사실이 속전 해석의 기초다. 속전은 피조물이 피조물에게 지불하는 작은 값이 아니다. 속전은 창조주께서 피조물을 살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값으로 내어 주신 사건이다. 고벨화가 신랑을 가리킨다면, 그 신랑은 단순한 남자가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나타나신 그리스도다. 그러므로 그분의 피는 온 인류를 속량하기에 충분하고, 그분의 생명은 교회를 산출하기에 충분하다.

4. 아가서 1장 14절은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가?

  아가서 1장 14절을 해석할 때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은 화자다.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가? 만약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한 말이라면 고벨화는 신부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한 말이라면 고벨화는 신랑의 상징이 된다. 이번 설교의 핵심은 후자다. 곧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는 술람미 여인이 신랑 솔로몬을 향하여 고백한 말이다.

  그 근거는 “나의 사랑하는 자”라는 표현이다. 아가서에서 여자가 남자를 부를 때는 히브리어 ‘도드’가 사용된다. 도드는 사랑하는 남자, 사랑하는 자, 신랑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반대로 남자가 여자를 부를 때는 ‘라야’ 계열의 표현, 곧 “나의 사랑”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그러므로 아가서 1장 14절의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남자를 가리킨다. 곧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향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 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문맥도 이 해석을 뒷받침한다. 1장 12절에서 왕이 식탁에 앉았을 때 술람미 여인의 나드 기름이 향기를 뿜어낸다. 이어서 13절에서 그녀는 사랑하는 자를 몰약 향 주머니라고 부르고, 14절에서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라고 부른다. 왕의 식탁 앞에서 술람미 여인이 신랑을 향하여 연속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흐름이다.

아 1:12-13 왕이 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이 점을 잘못 잡으면 전체 해석이 흔들린다. 고벨화를 신부의 상징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속전 의미가 흐려진다. 그러나 고벨화를 신랑의 상징으로 보면, 술람미 여인이 첫눈에 알아본 신랑의 본질이 드러난다. 그녀는 단지 아름다운 남자를 본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피 흘려 죽으실 속전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것이다.

  아가서는 누가 말하는지를 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화자를 정할 때에는 단어, 성별 표시, 문맥, 앞뒤 대화 구조를 함께 보아야 한다. 도드와 라야의 구분은 이런 점에서 결정적인 열쇠다. 신랑과 신부의 대사를 바꾸어 읽으면 신학적 초점도 바뀐다. 그래서 본문 해석은 감상보다 먼저 정확한 언어 관찰에서 시작해야 한다.

  또한 아가서 2장 3절에서도 여자는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라고 고백한다. 여기서도 도드는 남자다. 그러므로 1장 14절과 2장 3절은 같은 방향으로 읽어야 한다. 술람미 여인은 신랑을 고벨화 송이로도 보고, 사과나무로도 본다. 하나는 속전의 피를 강조하고, 다른 하나는 생명나무의 생명을 강조한다.

5. ‘고벨화’는 왜 속전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가?

  고벨화는 아가서에 드물게 나오는 식물 이름이다. 오늘날 학자들은 이것을 헤나로 보기도 하고, 사막 장미 혹은 샤론의 장미 계열로 설명하기도 한다. 정확한 식물 동정은 논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설교의 핵심은 식물학 자체가 아니라, 아가서가 이 식물을 통해 신랑의 영적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는 데 있다.

  고벨화를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속전의 의미다. 히브리어의 속죄, 속량, 덮음과 관련된 어근은 ‘카파르’이다. 카파르는 덮다, 속죄하다, 값을 치르다의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서 속전, 몸값, 대속의 개념이 나온다. 고벨화가 이러한 속량의 의미와 연결될 때, 아가서 1장 14절의 신랑은 신부를 위해 몸값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게 된다.

  성경의 속전은 단순한 배상이 아니다. 죄로 팔린 자를 되사고,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자를 해방하며, 마귀의 종 되었던 자를 하나님의 소유로 돌려놓는 값이다. 그러므로 속전에는 법적 의미와 생명적 의미가 함께 있다. 죄의 값을 지불하는 동시에, 그 값을 통해 새로운 소유권이 세워진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죄를 덮을 뿐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옮긴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온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오셨다(막 10:45). 여기서 대속물은 헬라어 ‘뤼트론’ 계열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포로를 해방하거나 빚진 자를 풀어 주기 위해 지불하는 몸값이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베드로도 성도가 은이나 금 같은 없어질 것으로 속량된 것이 아니라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속량되었다고 말한다(벧전 1:18~19).

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러므로 고벨화가 신랑을 가리킨다는 것은,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부를 얻기 위해 값을 치르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 값은 금도 아니고 은도 아니다. 그 값은 그분 자신의 피다. 아가서의 술람미 여인은 신랑을 바라보며 그가 단순히 자신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 생명을 내어 줄 속전이신 분임을 영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아가서가 연애시를 넘어서는 지점이다. 세상의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려고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상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 준다. 세상의 신랑은 신부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지만, 아가서의 신랑은 신부를 얻기 위해 먼저 자기 피를 준비한다. 그래서 고벨화는 속전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더 나아가 속전이신 그리스도는 사탄 마귀의 권세까지 처리하신다. 사람은 죄를 지음으로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고, 귀신들은 죄의 통로를 따라 사람 안에 들어와 성품과 몸과 생각을 더럽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가 죄의 기록을 처리하고, 십자가가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장 해제했기 때문에, 성도는 회개와 예수 이름의 권세로 악한 영을 내보낼 수 있다. 속전은 구원론만이 아니라 귀신론과도 연결된다.

6. 고벨화의 세 색깔은 그리스도를 어떻게 증언하는가?

  고벨화로 추정되는 식물에는 세 가지 색이 눈에 띈다. 빨간색, 하얀색, 노란색이다. 이것은 단순한 색채 감상이 아니다. 아가서가 문학 작품이라면 색깔 하나도 의미 없이 쓰이지 않는다. 특히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식물이라면, 그 색은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을 증언하는 표지가 된다.

  첫째, 빨간색은 피 흘려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사랑의 말을 하신 분이 아니라, 실제로 피를 흘리신 분이다. 십자가에서 옆구리가 찔렸을 때 피와 물이 나왔다(요 19:34). 그 피는 속죄의 피요, 신부를 사기 위해 지불된 속전의 피다.

요 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둘째, 하얀색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분이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죄 있는 자의 피는 다른 사람을 속량할 수 없다. 속전이 되려면 그분은 죄가 없으셔야 한다. 히브리서는 예수께서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시다고 증언한다(히 4:15).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셋째, 노란색 혹은 금빛은 천국의 실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새 예루살렘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고, 그 성의 길도 순금이다(계 21:18, 21). 그러므로 금빛은 땅의 부귀가 아니라 하늘의 실재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피를 흘리기 위해 오셨지만, 그 피의 목적은 신부를 새 예루살렘의 영광으로 이끄는 것이다.

계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계 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따라서 고벨화의 세 색깔은 그리스도를 1:1로 증언한다. 빨간색은 십자가의 피다. 하얀색은 무죄하신 순결이다. 노란색은 천국의 영광이다. 속전이신 그리스도는 죄 없으신 분으로서 피를 흘리셨고, 그 피로 교회를 사셔서 하늘의 영광으로 이끄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다. 먼저 죄 없으신 분이 계셔야 한다. 그다음 그분이 피를 흘려야 한다. 그리고 그 피의 결과가 하늘의 영광으로 이어져야 한다. 만약 죄 없는 흰색이 없다면 빨간색의 피는 대속의 피가 될 수 없다. 만약 빨간색의 피가 없다면 노란색의 영광은 죄인에게 열릴 수 없다. 만약 노란색의 영광이 없다면 십자가는 단지 고난의 사건으로만 끝난다. 고벨화의 색은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을 하나로 묶어 보여 준다.

  성도는 이 세 색깔을 함께 보아야 한다. 피만 보고 천국을 보지 못하면 구속의 목적을 놓친다. 천국만 보고 피를 보지 못하면 구속의 값을 놓친다. 흰색의 무죄성을 보지 못하면 대속의 자격을 놓친다. 고벨화는 이 세 가지를 하나의 꽃 안에 담아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7. ‘엔게디 포도원’과 ‘송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아가서 1장 14절은 단순히 “고벨화”라고만 말하지 않는다.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세 단어를 따로 떼어 보아야 한다. 엔게디, 포도원, 송이다. 이 수식어들은 고벨화의 의미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첫째, 엔게디는 ‘염소의 샘’이라는 뜻을 가진다. 엔게디는 사해 근처의 광야 가운데 물이 흐르는 장소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었던 곳이기도 하다. 광야와 사해 주변의 메마른 땅 한가운데 생수가 솟는다는 점에서 엔게디는 생명수의 근원을 떠올리게 한다.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과 연결된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7:38).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그러므로 엔게디의 고벨화는 생명수의 근원에서 오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분은 메마른 광야 가운데 생명을 주시는 분이며, 염소 같은 자를 양으로 바꾸시는 분이다. 생명 없는 자를 생명 있는 자로 바꾸는 근원은 그리스도께 있다.

  엔게디라는 장소는 다윗의 피난처와도 연결된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엔게디의 요새에 머문 적이 있다. 이것은 장차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그리스도께서 광야 같은 세상 속에 생명의 피난처가 되실 것을 생각하게 한다. 술람미 여인이 신랑을 엔게디와 연결한 것은, 신랑 안에 생명과 피난과 회복의 의미가 함께 있음을 보여 준다.

  둘째, 포도원은 산출의 장소다. 성경에서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가리키기도 하고, 더 넓게는 하나님의 백성을 산출하는 터전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하셨고, 성도들을 가지라고 하셨다(요 15:1, 5).

요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원은 단지 포도를 재배하는 밭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 번성하는 곳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알의 밀알처럼 죽으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으셨다(요 12:24). 고벨화가 포도원 안에 있다는 것은, 속전이신 그리스도의 피가 많은 생명의 열매를 산출한다는 뜻이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셋째, 송이는 하나가 많은 것을 품는 이미지를 가진다. 포도송이는 낱알 하나가 아니라 많은 알이 한 송이 안에 맺힌 형태다. 그러므로 고벨화 송이라는 표현은 한 분 그리스도에게서 많은 생명의 열매가 산출될 것을 암시한다. 한 분 예수께서 죽으셨지만, 그 죽음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온다.

  따라서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는 생명수의 근원에서 오신 그리스도, 포도원에서 많은 생명을 산출하시는 그리스도, 한 송이 안에 많은 열매를 품으신 그리스도를 동시에 보여 준다. 이것이 아가서의 압축된 지혜다.

  이 표현은 또한 성도의 사명을 일깨운다. 포도원은 돌보아야 할 장소이고, 송이는 맺혀야 할 열매다. 신부는 신랑의 생명을 받아 열매 없는 존재로 머물 수 없다. 그리스도의 피로 산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내야 하고, 그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의 열매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산출이며, 이것이 속전의 목적이다.

8. 고벨화의 향기와 염색은 신부를 어떻게 준비시키는가?

  고벨화가 헤나와 관련된다면, 그 특징 가운데 하나는 향기와 염색이다. 헤나의 향기는 멀리 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잎과 꽃은 염색 재료로 사용되어 신부를 꾸미는 데 쓰였다. 이것도 우연한 요소가 아니다. 속전이신 그리스도는 자기 피로 값을 치르실 뿐 아니라, 그 피와 생명으로 신부를 아름답게 단장하신다.

  먼저 향기는 복음의 확산을 가리킨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각처에서 나타내신다고 했다(고후 2:14~15). 그리스도의 향기는 한 지역에 갇혀 있지 않다.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속전 사역은 유대 땅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향기는 온 세계로 퍼져 나간다.

고후 2:14-15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다음으로 염색은 신부 단장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셨다. 그 목적은 교회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고,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다(엡 5:25~27).

엡 5:25-27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아가서의 신부는 처음부터 완성된 왕비가 아니다. 그녀는 포도원에서 그을린 여인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신랑의 사랑을 받고, 그의 피와 향기에 접촉되며, 그의 부르심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인도된다. 이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피로 씻기고, 말씀으로 단장되며, 성령의 역사로 거룩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신부 단장은 외적인 장식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죄의 씻김, 마음의 정결, 악한 영의 축출, 말씀의 새김, 성령의 다스림을 포함한다. 신부가 향기를 입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는다는 뜻이고, 신부가 염색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으로 자기 정체성이 바뀐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신부 단장은 구원 이후의 삶 전체와 관련된다.

  요한계시록은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했다고 말한다(계 19:7~8). 신부는 그냥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어야 한다. 그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고벨화의 염색은 바로 이런 신부의 단장을 예표적으로 보여 준다.

계 19:7-8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그러므로 고벨화의 향기와 염색은 두 가지 방향을 가진다. 향기는 복음이 만방에 퍼지는 사역이고, 염색은 신부가 그리스도의 피와 말씀으로 단장되는 사역이다. 속전이신 그리스도의 목적은 죄값을 치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분은 자기 피로 사람을 사시고, 그 사람들을 교회로 세우시며, 그 교회를 신부로 아름답게 준비하신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아가서 1장 14절의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가 속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증언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말씀은 짧지만, 그 안에는 아가서 전체의 핵심과 하나님의 경륜의 깊은 비밀이 담겨 있다.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보여 주는 지혜문학의 최고 작품으로 읽어야 한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나타나시고,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자리로 낮아지시며, 죄 없으신 분이 피를 흘려 신부를 사신 것이 아가서의 신랑 안에 감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고벨화를 단순한 꽃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고벨화는 속전의 피를 말하고, 무죄하신 순결을 말하며, 천국의 영광을 말한다.

  엔게디는 생명수의 근원을 생각하게 하고, 포도원은 많은 생명의 산출을 생각하게 하며, 송이는 한 분 그리스도에게서 많은 열매가 나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고벨화의 향기는 복음이 만방에 퍼져야 함을 보여 주고, 고벨화의 염색은 신부가 그리스도의 피와 말씀으로 단장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

  성도는 속전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데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 피로 씻김받고, 그 생명으로 새롭게 되며, 그 향기를 세상에 나타내고, 그분의 신부로 단장되어야 한다. 또한 이미 들어온 악한 영과 죄의 흔적을 회개로 처리하고, 그리스도의 피의 권세 안에서 정결한 신부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피는 객관적 속죄의 근거이고, 회개는 그 피를 내 삶에 적용하는 길이다. 죄를 자백하지 않고 신부의 정결을 기대할 수는 없다. 말씀을 듣고도 삶을 돌이키지 않으면서 향기로운 신부가 되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속전이 지불되었으므로 이제 성도는 그 속전에 합당한 사람으로 빚어져야 한다.

  아가서의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향해 찾아오신 신랑을 고벨화 송이로 보았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보아야 한다. 그분은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속전이시고, 죄 없으신 거룩한 분이시며, 천국의 영광으로 나를 이끄시는 신랑이시다. 그리하여 속전이신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과 향기를 알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합당한 신부로 준비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23일(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아가서 1장 14절에 등장하는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를 중심으로,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구속사적 의미를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저자는 고벨화(헤나) 꽃이 지닌 빨간색, 하얀색, 노란색의 상징성을 통해 피 흘려 죽으시고 죄가 없으시며 천국의 실제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특히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연합으로서의 하나(에하드)로 규정하며, 창조주와 피조물의 명확한 차이를 인식하는 겸손한 신앙 태도를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아가서는 단순한 연애 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풍성한 연합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과 복음 전파의 사명을 일깨우는 최고의 계시적 작품임을 역설합니다.

 

 

==============================================

 

아침묵상입니다(투박한 요약 글).

제목: [기독론(131)] 다윗의 아들 솔로몬(09)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3)(아가서1: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아가서 기독론 강의는 이제 세 번째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앞선 두 시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여덟 가지 신분 가운데 새 예루살렘의 왕과 창조주에 대해 살펴보았다. 왕으로서 그분은 새 예루살렘 성의 영원한 통치자이시며, 왕복과 왕관과 왕의 가마로 신부를 맞이하시는 분이다. 창조주로서 그분은 아버지로부터 독생하신 하나님 자신이시며, 피조물인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른 근원을 가지신 분이다. 이 두 신분이 아가서의 신학적 토대를 이룬다.

  이 시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 번째 신분인 속전으로 초점이 옮겨진다. 속전이란 몸값이라는 뜻이다. 죄와 사망의 종살이에서 우리를 건져 내기 위해 값을 치르고 사신 구속주, 이것이 속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이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했다. 이것은 구원을 얻기 위해 두려워하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받은 구원의 놀라움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가라는 권면이다. 속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귀함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두렵고 떨림으로 그분 앞에 서게 된다. 무심코 죄를 짓는 것이 얼마나 그분의 속전을 가볍게 여기는 행위인지를 깨닫게 된다. 동시에 그 귀한 속전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알게 된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부터 19절은 이렇게 선언한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허망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허망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리고 이 속전의 신분이 아가서 1장 14절이라는 단 한 구절 속에 놀라운 방식으로 농축되어 있다.

아 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이 구절 안에는 엔게디, 포도원, 고벨화, 송이라는 네 가지 핵심 단어가 들어 있다. 이 단어들 각각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전 되심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엔게디는 하나님의 생명이 솟아나는 원천을 가리키고, 포도원은 십자가의 피와 교회 산출을 상징하며, 고벨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색깔로 그분의 신분과 사역을 드러내고, 송이는 많은 하나님의 자녀를 산출하시는 그분의 사역을 그린다.

  그런데 이 구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가서의 독특한 성격을 알아야 한다. 아가서에는 하나님이나 여호와 같은 신앙의 언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이 어떻게 성경이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 책 안에서 화자가 누구인지를 분별하는 것이 해석의 첫걸음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아가서가 하나님의 언어 없이도 성경이 된 이유에서 시작하여, 도드와 라야라는 두 히브리어 호칭의 차이, 타부아흐의 원어 의미, 엔게디와 고벨화의 상징, 그리고 고벨화 송이가 통합적으로 드러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전 사역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아가서에 하나님·여호와·기도가 단 한 번도 없는데도 성경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아가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당혹감을 느끼는 것은 이 책이 가진 독특한 언어 세계 때문이다. 창세기부터 시편에 이르기까지 구약 성경의 모든 책에는 하나님 혹은 여호와라는 이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기도가 있고, 찬양이 있고, 제사가 있으며, 율법이 있다. 그러나 아가서에는 이 모든 신앙 언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기도도 없고, 찬양도 없고, 하나님이나 여호와라는 이름도 없다. 겉으로 보면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연애 편지처럼 읽힌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이 성경에 포함된 것인가? 유대 랍비들도 이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결국 이 책은 정경으로 확정되었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가서가 단순한 연애 시가였다면 성경으로 받아들여질 이유가 없었다. 이미 이스라엘에는 수많은 시와 노래가 있었다. 그것들이 모두 성경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어 하나님의 경륜을 담은 것만이 성경이 되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 선언이 아가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가서가 그 기준을 충족한 것은 그 안에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 안에는 다른 어떤 책도 이처럼 풍성하게 담아내지 못한 진리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진리이다.

  에베소서 5장 32절에서 사도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비밀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 비밀을 가장 구체적이고 풍성하게 담아낸 책이 바로 아가서이다. 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신부인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그 신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성숙해 가는지를 문학의 언어로 담아낸 책이다. 신앙의 용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신앙의 실재를 가장 진하게 전달하는 책, 그것이 아가서이다.

엡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아가서가 성경이 된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문학 작품으로서의 아가서가 가진 깊이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소품들, 즉 등장인물, 식물, 동물, 색깔, 숫자, 지명들이 우연히 선택된 것이 아니다. 그것들 하나하나가 고도로 계산된 상징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 왕이었다. 그 지혜로 성전을 짓고, 그 지혜로 이 책을 기록했다. 성령의 감동으로 씌어진 이 지혜 문학의 정수가 아가서이다. 그 안에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진리가 빠짐없이 담겨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아도 이 책은 가장 거룩한 성경이 될 수 있었다.

  솔로몬이 아가서를 쓸 당시 아직 왕비가 60명, 후궁이 80명 정도였던 초창기였다고 추정된다. 말년에는 처첩이 천 명에 이르렀지만, 아가서의 배경은 그 이전이다. 그 시기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하고 지혜가 절정에 달해 있었다. 그 지혜로 기록한 아가서는 겉보기에는 연애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창조와 구속과 종말에 이르는 하나님의 경륜이 빠짐없이 담겨 있다. 이것이 아가서가 성경이 된 이유이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이 진리를 담은 최고의 책, 그것이 아가서이다. 아가서를 바르게 이해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게 되고, 교회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게 되며, 자신이 어떤 존재로 불렸는지를 알게 된다.

  아가서가 성경으로 확정되는 과정에서 유대의 위대한 랍비 아키바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온 세상이 거룩하지만 아가서는 지극히 거룩하다. 이 한 문장이 아가서의 위상을 말해 준다. 아가서가 단순한 연애 시라면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없었다. 그 안에 담긴 영적 진리의 깊이가 아가서를 성경의 정경으로 만든 것이다.

  또한 솔로몬이 아가서를 기록한 시기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성전을 완공한 직후, 지혜가 절정에 달해 있던 시기에 이 책을 썼다. 열왕기상 4장 32절에 따르면 솔로몬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었다. 그 수천 편의 노래 가운데 성경에 포함된 것이 아가서이다. 수천 편 중에 하나만 성경이 되었다는 것은, 그 하나가 다른 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내용을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계시이다. 솔로몬이 기록한 수천 편의 노래 가운데 오직 아가서만이 이 계시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 아가서가 성경이 되었다.

왕상 4:32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

 

3. 아가서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도드)'와 '나의 사랑(라야)'은 각각 누구를 가리키는가?

  아가서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화자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분별해야 한다. 아가서에는 남자와 여자, 두 화자가 번갈아 등장하며, 각각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이 다르다. 이 호칭의 차이를 히브리어 원문에서 확인하면 화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먼저 나의 사랑하는 자라는 표현이다. 히브리어로 도드(דּוֹד)이다. 아가서 1장 14절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라고 할 때 등장하는 나의 사랑하는 자가 바로 이 도드이다. 도드는 일관되게 여자가 남자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호칭이다. 영어로 표현하면 my beloved on, 즉 나의 사랑하는 분이라는 뜻이다.

  아가서 2장 10절에서는 반대로 남자가 여자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여기서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는 주어는 도드, 즉 남자이다. 그리고 남자가 여자를 부를 때 쓰는 호칭이 나의 사랑인데, 히브리어로는 라야(רַעְיָה)이다.

아 2: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정리하면, 여자가 남자를 부를 때는 도드(나의 사랑하는 자)이고, 남자가 여자를 부를 때는 라야(나의 사랑)이다. 이 구분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화자를 혼동하면 본문 전체가 엉뚱하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문법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으로 중대한 문제이다. 신학적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화자를 정확히 알 때 아가서의 각 구절이 드러내는 신학적 메시지가 선명해진다. 반대로 화자를 혼동하면 신학적 의미가 왜곡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고벨화 송이에 비유한 것이 술람미 여인의 고백인지, 아니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한 말인지에 따라 그 신학적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1장 14절은 술람미 여인이 신랑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드리는 고백이다. 신부가 신랑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고벨화 송이로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아가서 1장 14절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라고 말하는 화자는 여자, 즉 술람미 여인이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고벨화 송이로구나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 구분을 모르면 1장 14절에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고벨화 송이라고 말했다고 잘못 해석하게 된다. 실제로 성지 순례를 인솔하는 유명한 목사도 이 구절을 그렇게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의 도드라는 호칭을 확인하면 이것은 여자가 남자에게 건네는 말임이 분명하다. 원문을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한 구절이 잘 보여 준다.

아 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또한 아가서 2장 1절의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라는 구절도 화자 문제가 있다. 이 나는이 누구인지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다. 성경에서 1인칭 단수 나는이라는 표현은 나 여호와는, 나 예수는처럼 하나님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2장 1절의 나는이 예수 그리스도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문맥과 앞뒤 절을 면밀히 검토하면, 이 구절은 여자가 자신을 겸손하게 표현하는 말로 볼 수도 있다. 확실히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므로 원문을 면밀히 살피고 다양한 번역을 참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처럼 아가서는 화자가 끊임없이 바뀌며 대화를 주고받는 구조이다. 이 대화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면 아가서의 신학적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화자를 정확히 분별하는 것이 아가서 해석의 가장 기본적인 첫걸음이다.

  아가서 1장 12절부터 14절의 문맥을 전체적으로 살피면 화자 분별이 더욱 명확해진다. 12절은 왕이 식탁에 앉았을 때 나의 나드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다고 말한다. 여기서 나의 나드 기름이라고 말하는 화자는 여인이다. 왕이 식탁에 앉은 상황에서 자신의 향기가 풍겨 나왔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다음 13절에서도 여인은 나의 사랑하는 자(도드)는 내 품에 있는 몰약 향 주머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14절에서 동일한 화자인 여인이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라고 고백한다. 12절부터 14절까지 화자는 일관되게 술람미 여인이며, 그녀가 신랑 솔로몬,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고벨화 송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아 1:12-14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드 기름이 향기를 발하였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있어 내 품에 누인 몰약 주머니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있어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4. 히브리어 타부아흐(사과나무)가 숨·호흡을 뜻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드러내는가?

  아가서 2장 3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신랑을 가리켜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라고 고백한다. 앞선 강의에서 이미 다루었듯이, 이 사과나무는 생명나무를 가리키는 상징이며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러나 사과나무라는 단어 안에는 그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그 깊이가 드러난다.

  히브리어로 사과나무는 타부아흐(תַּפּוּחַ)이다. 이 단어의 어근은 나파흐(נָפַח)라는 동사이다. 나파흐는 숨을 불어넣다, 호흡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타부아흐의 1차 의미는 단순한 식물 이름이 아니라 숨, 호흡, 생명의 기운이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실 때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이때 불어넣다가 바로 나파흐이다. 하나님의 숨이 들어가자 흙으로 빚어진 인간이 산 영이 되었다. 이것이 생명의 본질이다. 생명은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호흡이다.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예수님도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요 20:22). 그 숨 역시 나파흐이다. 창세기의 창조에서 코에 불어넣으신 그 숨과, 요한복음의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불어넣으신 그 숨이 같은 단어이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숨,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요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사도행전 2장 1절부터 4절에서 성령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함께 임하셨다. 바람은 숨이고 호흡이다. 히브리어로 바람, 숨, 영은 모두 루아흐(רוּחַ)라는 한 단어로 표현된다. 이 단어 하나가 자연 현상으로서의 바람, 생명의 기운으로서의 숨, 그리고 하나님의 영 모두를 포괄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은 바람처럼 오시고 숨처럼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현존을 느낄 수 있다. 사과나무인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 루아흐, 이 생명의 숨이 우리에게 흘러온다. 성령은 바람처럼 임하신다. 이 바람 같은 성령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불어넣으신다.

행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창세기 3장 8절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에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는 장면에서도 바람이 등장한다. 개역개정 번역에는 그날 바람이 불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라고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영 안에서 혹은 영으로라는 표현이 담겨 있다. 하나님의 임재는 언제나 영으로, 바람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성경 전체의 일관된 증언이다.

창 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이 모든 증거를 종합하면, 사과나무를 뜻하는 타부아흐가 숨과 호흡을 어근으로 가진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과나무는 생명나무를 닮은 나무라는 시각적 유사성뿐 아니라, 히브리어 어근을 통해 생명의 본질인 하나님의 숨, 곧 성령을 상징한다. 사과나무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이유는 그분이 생명나무처럼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그분이 생명의 숨결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생명 자체이시다(요 14:6). 타부아흐가 숨 호흡을 뜻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생명의 숨을 받는 것임을 의미한다. 그분이 우리에게 오실 때 성령의 바람이 함께 온다. 그 바람이 우리 속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것이 거듭남이며, 이것이 구원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 성령은 바람이다. 그 바람처럼 오시는 성령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불어넣으신다. 사과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 호흡이신 그분이 우리에게 오실 때, 성령의 바람이 우리를 새롭게 탄생시킨다.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5. 엔게디 포도원은 어디이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전 되심을 어떻게 상징하는가?

  아가서 1장 14절의 엔게디 포도원이라는 표현을 이해하려면 엔게디가 어떤 곳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엔게디(עֵין גֶּדִי)는 히브리어로 두 단어가 합쳐진 지명이다. 에인(עַיִן)은 눈, 혹은 샘을 뜻하고, 게디(גְּדִי)는 새끼 염소를 뜻한다. 합치면 새끼 염소의 샘이라는 뜻이다. 엔게디는 사해 바다 서편 광야 절벽 사이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으로,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에 생명수가 솟아오르는 곳이다. 지금도 이곳에는 동그랗게 샘이 있어 물이 솟아오른다.

  이 엔게디라는 지명 자체가 이미 깊은 상징을 담고 있다. 눈처럼 생긴 둥근 샘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온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을 상징한다. 요한계시록 22장 1절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생명수 강이 흘러나오는 장면이 묘사된다. 엔게디의 샘이 바로 그 생명수의 예표이다.

계 22:1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그 생명수가 솟아오르는 엔게디에 포도원이 있었다. 아가서 8장 11절에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 두었다고 나온다. 그 포도원은 엄청난 규모였다. 포도원 열매로 은 천 개를 받아야 하는 큰 포도원이었다. 이 포도원이 솔로몬, 곧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이다.

아 8:11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 두고 그들로 각기 그 열매로 말미암아 은 천 개를 바치게 하였구나

  포도원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상징하다가 신약에서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셨고(요 15:5), 포도주는 그분의 피를 상징한다. 따라서 엔게디 포도원은 하나님의 생명수가 솟아오르는 곳에서 자라는 교회, 곧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킨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엔게디 포도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전 되심을 상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속전이란 몸값이다. 구속이란 값을 치르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흘러나오는 그곳, 엔게디의 샘에서 자라는 포도원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보좌로부터 나오신 생명이신 분이다. 그 생명이신 분이 이 땅에 오셔서 포도원, 곧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 내기 위해 자신의 피를 속전으로 치르셨다. 이것이 엔게디 포도원이라는 두 단어 안에 담긴 속전의 신학이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대속물이 바로 속전이다.

  엔게디라는 장소가 성경에서 다른 곳에도 등장한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사무엘상 24장에서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며 엔게디 광야에서 피신하고 있었다. 사울이 굴 속에 있는 다윗을 알지 못하고 그 굴 앞에 들어왔을 때,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베었지만 죽이지 않았다. 엔게디는 다윗이 원수인 사울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린 장소이다. 이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그분은 원수된 죄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목숨을 속전으로 내어 주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셨다.

  엔게디가 생명수의 샘이며 포도원과 연결된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 둘의 연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전 사역의 두 차원을 드러낸다. 하나는 그분이 하나님 보좌로부터 생명을 가져오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생명으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 즉 포도원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생명을 가져오시는 것과 그 생명으로 열매 맺으시는 것, 이 두 사역이 엔게디 포도원이라는 두 단어 안에 담겨 있다. 이처럼 아가서의 단어 하나하나는 단순한 문학적 장식이 아니다.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에 관한 깊은 신학이 담겨 있다. 이것이 성경 연구에서 아가서를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다.

삼상 24:4 다윗의 부하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리니 당신의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더라

엔게디 포도원의 주인이신 그분이 그 포도원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속전으로 내놓으셨다. 이것이 아가서 1장 14절이 선포하는 진리의 핵심이다. 속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신 분이시다. 그 속전 사역의 배경이 엔게디 포도원이며, 그 사역의 내용이 고벨화요, 그 사역의 열매가 송이이다. 에베소서 1장 7절은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모든 것이 아가서 1장 14절이라는 단 한 구절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이 놀랍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6. 고벨화의 세 가지 색깔(빨강·흰색·노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떤 신분을 계시하는가?

  고벨화(כֹּפֶר)는 아가서에만 등장하는 식물 이름이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 아가서 1장 14절과 4장 13절, 단 두 번만 나온다. 다른 어떤 성경 책에도 이 식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고벨화가 아가서에 특별히 배치된 상징임을 의미한다.

아 4:13-14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샤프란과 창포와 계수나무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오늘날 고벨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학자들은 두 가지 견해를 제시한다. 하나는 헤나(Henna)이고, 다른 하나는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 곧 사막 장미이다. 두 견해 모두 고벨화의 정확한 정체를 단정 짓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온 추정이다. 그러나 이 두 식물 사이에는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 바로 색깔이다.

  헤나와 샤론의 장미는 각각 세 가지 색깔을 공유한다. 빨간색, 흰색, 노란색이다. 샤론의 장미를 보면 꽃잎은 선명한 빨간색이고, 꽃받침 부분은 흰색이며, 꽃의 중심 수술 부분은 노란색을 띤다. 헤나도 마찬가지이다. 헤나 꽃은 포도송이처럼 작은 꽃들이 모여 피는데, 그 안에 빨간색, 흰색, 노란색의 세 가지 색이 어우러져 있다.

  이 세 가지 색깔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을 계시한다.

  빨간색은 피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분이다. 이사야 53장 5절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선언한다. 그분의 붉은 피가 우리의 속전이다. 고벨화의 빨간색은 피흘려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흰색은 순결과 무죄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분이다. 히브리서 4장 15절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선언한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만이 우리의 속전이 될 수 있다. 고벨화의 흰색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노란색은 황금색이며 천국을 상징한다. 요한계시록이 묘사하는 새 예루살렘은 정금으로 만들어졌다. 길도 금이고, 집도 금이며, 면류관도 금이다. 천국 전체가 황금빛으로 빛난다. 그 천국의 실제이신 분, 천국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노란색으로 상징된다. 고벨화의 노란색은 천국의 실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계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이렇게 고벨화의 세 가지 색깔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 방향으로 계시한다. 이 세 색깔의 조합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은, 고벨화의 정체가 헤나든 샤론의 장미든 상관없이 두 가지 모두에서 동일한 세 색깔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하나님은 이 식물을 아가서에 배치하실 때 이미 이 색깔의 상징을 의도하셨다.

  또한 이 세 색깔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반영하기도 한다. 빨간색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 흰색은 성령의 거룩케 하심으로 이루어지는 순결, 노란색은 성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천국의 영광을 가리킨다. 세 색깔 안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사역 전체가 담겨 있다. 아가서의 지혜 문학이 얼마나 정교한지를 이 한 가지 예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피흘려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천국의 실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아가서의 저자는 이 세 가지 색깔을 가진 식물을 고의적으로 선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다면적 신분을 드러냈다. 이것이 지혜 문학의 정수라 불리는 아가서의 정교함이다. 겉으로는 사랑 시로 읽히지만, 그 안에는 그리스도의 신분에 관한 가장 정밀한 신학이 숨겨져 있다. 독자는 그 아름다운 언어에 감동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 담긴 진리의 깊이에 경외를 느끼게 된다. 이것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의 방식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선택된 이 세 가지 색깔 속에 복음의 핵심이 모두 담겨 있다.

 

7. 고벨화(헤나)의 향기와 염색 용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의 관계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

  고벨화의 상징성은 색깔에서 끝나지 않는다. 고벨화가 헤나라고 본다면, 헤나라는 식물이 가진 두 가지 특성이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의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향기와 염색이다.

  먼저 향기이다. 헤나는 그 향기가 매우 강하고 멀리 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그루의 헤나 나무에서 나오는 향기가 최대 2킬로미터까지 퍼진다고 한다. 작은 한 그루가 넓은 반경에 향기를 가득 채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방식을 그대로 닮아 있다.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퍼져 나가 만국을 향기로 채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2장 14절에서 우리를 통하여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했다.

고후 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복음은 향기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들이 그분의 향기를 세상에 전파한다. 작은 헤나 한 그루의 향기가 2킬로미터를 가득 채우듯,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온 세상을 채운다. 이것이 선교이고, 이것이 복음 전파이다. 고벨화의 향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만방으로 퍼져 가야 한다는 사명을 담고 있다.

  그런데 헤나 향기의 특성 중에 흥미로운 것이 또 있다. 헤나의 향기는 꽃이 활짝 피었을 때 가장 강하게 퍼진다. 꽃봉오리 상태에서는 향기가 약하다. 이것은 성도의 성숙과 연결된다. 신앙이 자라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갈수록, 그 사람을 통해 퍼져 나가는 복음의 향기도 더욱 강해진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할수록 세상에 전해지는 향기도 강해지는 것이다.

  다음으로 염색이다. 헤나는 고대 중동 지방에서 가장 중요한 염색 재료였다. 특히 결혼식 때 신부를 아름답게 꾸미는 데 사용되었다. 중동의 전통 결혼 문화에서 신부는 결혼 전날 밤 헤나로 손발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이것은 신부가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신랑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이다. 그래서 헤나는 중동 지방에서 신부의 식물이라 불린다.

  이 상징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벨화는 신부를 위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부인 교회를 아름답게 꾸미시는 분이다. 에베소서 5장 25절부터 27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신 것은 교회로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선언한다. 그분은 자신의 피로 신부인 교회를 씻으시고, 성령으로 아름답게 꾸미시며, 흠 없는 신부로 만들어 가신다.

엡 5:25-27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헤나의 빨간색 염료가 신부의 손발을 물들이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붉은 피가 우리 죄인들을 정결하게 물들인다. 이사야 1장 18절에서 하나님은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빨간 죄가 흰 순결로 바뀌는 것, 이것이 복음이다. 고벨화의 염색이 그 복음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 준다.

  또한 헤나 염색의 또 다른 특성이 있다. 헤나로 물들인 색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오래 지속된다. 이것도 의미심장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받은 구원의 표식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한번 주어진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피로 물들인 우리의 신분은 영원하다. 이것이 고벨화 염색이 담고 있는 또 다른 신학이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8절에서 에바브로디도가 가져온 선물을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표현했다. 성도의 헌신과 섬김이 향기롭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성도들의 삶 자체가 세상에 향기를 전하는 것이다. 고벨화의 향기가 멀리 퍼지듯, 그리스도를 아는 성도들의 향기가 삶의 현장에서 퍼져 나간다.

빌 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고벨화는 향기와 염색이라는 두 특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렇게 드러낸다. 그분의 복음은 온 세상으로 향기롭게 퍼져 나가고, 그분의 피는 죄인인 신부를 아름답게 물들여 흠 없는 신부로 만든다. 이것이 속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이다.

 

8.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속전 사역과 교회 산출을 어떻게 통합하는가?

  아가서 1장 14절 전체를 이제 하나로 연결해 보자.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이 짧은 한 문장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속전 사역과 교회 산출의 경륜이 통합되어 있다. 이 짧은 구절이 구원 역사 전체를 요약하는 것이다. 단 열 글자 남짓의 한 구절이 이처럼 광대한 신학적 진리를 담고 있다는 것, 이것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명한다. 어떤 인간의 지혜도 이렇게 압축적으로 진리를 담아낼 수 없다.

아 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먼저 엔게디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엔게디는 사해 광야 한가운데에 있는 샘이다. 그 샘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예표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근원이 되는 곳, 그곳이 엔게디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엔게디로부터 오신 분이다.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에서 나오신 독생자, 생명의 근원이신 그분이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이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죄와 사망의 종살이에서 우리를 건져 내기 위해서이다. 이 목적이 바로 속전이다. 엔게디의 생명수 샘처럼, 그분은 생명 자체이신데 그 생명으로 죽음 가운데 있는 우리를 살리러 오셨다.

  그다음은 포도원이다. 포도원은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상징한다. 포도원은 하나님의 백성, 곧 교회를 나타낸다. 이사야 5장 7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포도원이라고 부르셨다.

사 5:7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예수님도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교회를 포도원으로 표현하셨다.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생명으로 많은 열매, 즉 많은 하나님의 자녀를 산출하시기 위해 오셨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 포도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세 번째는 고벨화이다. 고벨화의 세 가지 색깔이 말하는 것이 바로 속전의 내용이다. 빨간색으로 피를 흘려 죽으시고, 흰색으로 상징되는 죄 없으신 몸으로 우리의 속전이 되시며, 노란색이 상징하는 천국의 실제이신 그분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신다. 고벨화는 속전 사역의 핵심을 색깔로 압축한 상징이다.

  마지막으로 송이이다. 송이는 하나가 아니라 많음을 의미한다. 포도송이처럼 한 줄기에서 수많은 알갱이가 달려 있는 것이 송이이다. 헤나 꽃이 수많은 작은 꽃들이 모여 한 송이를 이루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속전 사역을 통해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산출된다. 그 자녀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룬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산 하나의 송이이다.

  이 네 단어를 하나로 연결하면 이런 서사가 완성된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 전체의 구속 서사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 것이기도 하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흐르는 하나님의 경륜이 아가서 1장 14절 한 절 안에 모두 담겨 있다. 창세기에서 잃어버린 에덴의 생명나무(엔게디), 출애굽기에서 유월절 어린 양의 피(고벨화의 빨간색), 레위기에서 흠 없는 제물의 순결(고벨화의 흰색), 계시록에서 황금 성읍 새 예루살렘(고벨화의 노란색), 그리고 교회라는 포도원과 많은 성도라는 송이가 이 한 문장 안에 통합된다. 이것이 솔로몬이 지혜 문학의 정수로 남긴 아가서의 깊이이다.

  한 구절 안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구속 서사가 담겨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겠지만, 네 단어를 풀어보면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된다. 창세기에서 잃어버린 에덴의 생명수 샘(엔게디),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고벨화의 빨간색), 죄 없으신 순결(고벨화의 흰색), 새 예루살렘 황금 성읍(고벨화의 노란색), 교회(포도원), 하나님의 많은 자녀들(송이), 이 모든 것이 1장 14절 한 문장 안에 있다.

  아가서 한 구절이 이처럼 풍성한 진리를 담고 있다면, 아가서 전체는 얼마나 더 큰 보화를 감추고 있겠는가. 이것을 알게 될 때 아가서를 읽는 눈이 달라지고, 성경 전체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아가서 한 구절에서 이처럼 풍성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성경의 모든 구절 안에 그와 같은 보화가 감춰져 있다는 것을 믿게 된다. 성경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날마다 이 보화를 캐내는 기쁨으로 성경을 연구하게 된다. 솔로몬이 지혜 왕이었다면, 아가서는 그 지혜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계시의 정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시다(마 12:42). 솔로몬의 지혜가 아가서에 담겼다면, 솔로몬보다 더 크신 그분의 지혜는 얼마나 더 크겠는가. 그 지혜를 이 시간 배우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른다.

마 12: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러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지혜의 왕 솔로몬이 성령의 감동 아래 남긴 이 책을 깊이 연구할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더 분명하게 알게 된다. 하나님의 생명의 근원(엔게디)에서 나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 생명으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산출하시기 위해(포도원), 피흘려 죽으시고 죄 없으심으로 우리의 속전이 되어 천국의 실제를 우리에게 주시며(고벨화),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송이를 열매 맺으신다(송이).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이라 불리며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 한다. 첫 번째 아담이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의 숨을 받아 산 영이 된 것처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그 생명을 흘려보내심으로 수많은 생령들, 곧 하나님의 자녀들을 탄생시키신다.

고전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느니라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 이 다섯 단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전 사역과 교회 산출의 경륜을 통합하는 방식이 이것이다. 아가서 1장 14절이라는 단 한 구절이 구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풍성한 계시를 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여기에 속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와 사역이 오롯이 담겨 있다.

 

9. 나오며

  아가서에 하나님이나 여호와라는 이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성경이 된 이유에서 시작하여, 도드와 라야라는 히브리어 호칭의 차이, 타부아흐의 원어 의미, 엔게디의 상징, 고벨화의 세 가지 색깔, 헤나의 향기와 염색, 그리고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가 통합적으로 드러내는 속전의 경륜을 살펴보았다.

  아가서가 성경이 된 것은 그 안에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진리가 다른 어떤 책보다 더 풍성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가장 깊이 드러내는 책이 아가서이다. 도드와 라야의 차이를 통해 화자를 정확히 분별하는 것이 아가서 해석의 출발점이다. 원문을 모르면 유명한 목사도 화자를 혼동하게 된다. 성경 연구에서 원어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한 구절이 잘 보여 준다.

  성지 순례를 다니며 오랜 세월 아가서를 가르쳐 온 목사도 화자를 혼동할 수 있다. 그만큼 아가서의 화자 분별은 쉽지 않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에서 도드와 라야를 구분하는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여자가 남자를 부를 때 도드라고 하고, 남자가 여자를 부를 때 라야라고 한다. 이 두 단어만 알아도 아가서의 수많은 구절에서 화자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분별할 수 있다. 원어 연구가 아가서 해석의 열쇠이다.

  사과나무를 뜻하는 히브리어 타부아흐가 숨과 호흡을 어근으로 가진다는 사실은, 사과나무가 단순히 생명나무처럼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생명의 본질인 하나님의 숨결 자체를 상징함을 보여 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나무이시고, 생명의 숨이시며,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시다.

  엔게디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생명수가 솟아오르는 샘이다. 그 샘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예표이며, 그 생명의 근원에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숨어든 광야의 오아시스가 엔게디였고, 거기서 그는 원수를 용서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 이 엔게디의 역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우리의 원수가 되어 죄 가운데 있던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신 그분이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이시다. 고벨화의 빨강, 흰색, 노랑의 세 가지 색은 피흘리신 그리스도, 죄 없으신 그리스도, 천국의 실제이신 그리스도를 각각 계시한다. 헤나의 향기는 복음이 만방으로 퍼져 나가는 선교를 상징하고, 헤나의 염색은 그리스도의 피로 신부인 교회가 아름답게 단장되는 구원의 역사를 상징한다. 그리고 송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의 속전 사역을 통해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산출되는 교회 산출의 경륜을 선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 한 구절 아가서 1장 14절 안에서 이렇게 다양하고 풍성하게 계시된다. 이 진리를 마음에 새기며,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이신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그분의 복음을 향기처럼 세상에 전하며, 그분의 피로 아름답게 단장된 신부로 그날을 준비하며,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이신 그리스도를 날마다 더 깊이 경배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6월 24일(수)

정보배 목사

 


  1. NEW

    [기독론(131)] 다윗의 아들 솔로몬(09)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3)(아가서1:14)_2026-06-24(수)

    아침묵상입니다(정제된 요약 글). 제목: [기독론(131)] 다윗의 아들 솔로몬(09)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3)(아가서1: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RrwVaYWaQJY 1. 들어가며 아가서는 성경 66권 가운데서도 매우 독특한...
    Date2026.06.24 By갈렙 Views13
    Read More
  2. [기독론(130)] 다윗의 아들 솔로몬(07)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2)( 아가서 4:9~5:2 )_2026-06-23(화)

    아침묵상입니다(정제된 요약 글). 제목: [기독론(130)] 다윗의 아들 솔로몬(07)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2)( 아가서 4:9~5:2 )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e9f_TUkraVA 1. 들어가며 아가서는 성경 66권 가운데 가장 깊고...
    Date2026.06.23 By갈렙 Views33
    Read More
  3. [기독론(129)] 다윗의 아들 솔로몬(07)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1)(아가서3:6~11 )_2026-06-22(월)

    아침묵상입니다(정제된 요약 글). 제목: [기독론(129) 다윗의 아들 솔로몬(07)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1)(아가서3:6~11 )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3iT_tPBgq-o 1. 들어가며 구약 성경을 읽는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
    Date2026.06.22 By갈렙 Views56
    Read More
  4. [기독론(127)] 다윗의 아들 솔로몬(05) 지혜의 3가지 방면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지혜(고전1:18~31)_2026-06-19(금)

    아침묵상 요약입니다(투박한 요약). 제목: [기독론(127)] 다윗의 아들 솔로몬(05) 지혜의 3가지 방면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지혜(고전1:18~3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D6EOSr8i32o 1. 들어가며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은 과연 누구로 예표되...
    Date2026.06.19 By갈렙 Views167
    Read More
  5. [기독론(126)] 다윗의 아들 솔로몬(04) 그는 평화의 왕이자 지혜의 왕이었다(02)(잠8:11~36)_2026-06-18(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6)] 다윗의 아들 솔로몬(04) 그는 평화의 왕이자 지혜의 왕이었다(02)(잠8:11~3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KlMu5KPPQsw 1. 들어가며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이다.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왕의 예표를 보...
    Date2026.06.18 By갈렙 Views157
    Read More
  6. [기독론(125)] 다윗의 아들 솔로몬(03) 그는 평화의 왕이자 지혜의 왕이었다(01)(왕상3:1~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5)] 다윗의 아들 솔로몬(03) 그는 평화의 왕이자 지혜의 왕이었다(01)(왕상3:1~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Dp4JsG_SQhU 1. 들어가며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살필 때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사실이 있다. ...
    Date2026.06.17 By갈렙 Views160
    Read More
  7. [기독론(124)] 다윗의 아들 솔로몬(02)”그는 메시야에 대한 어떤 예표자인가?(02)(왕상 4:20~34)_2026-06-16(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4)] 다윗의 아들 솔로몬(02)”그는 메시야에 대한 어떤 예표자인가?(02)(왕상 4:20~3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kFkuAEFbJfc 1. 들어가며 다윗의 이야기는 결코 다윗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다윗은 ...
    Date2026.06.16 By갈렙 Views143
    Read More
  8. [기독론(123)] 다윗의 아들 솔로몬(01) 그는 메시야에 대한 어떤 예표자인가?(01)(삼하7:8~17)_2026-06-15(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3)] 다윗의 아들 솔로몬(01) 그는 메시야에 대한 어떤 예표자인가?(01)(삼하7:8~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iSRdz_kLeHM 1. 들어가며 다윗을 오래 살핀 이유는 단순히 한 위대한 왕의 일대기를 배우기 위...
    Date2026.06.15 By갈렙 Views150
    Read More
  9. [기독론(120)]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6) 그는 전쟁에 능한 자였다(03)(시24:7~10)_2026-06-12(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0)]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6) 그는 전쟁에 능한 자였다(03)(시24:7~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LH5-_yQy5EM 1. 들어가며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전쟁에 능한 자라는 사실이다. ...
    Date2026.06.12 By갈렙 Views187
    Read More
  10. [기독론(11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5) 그는 전쟁에 능한 자였다(02)(시편24:7~10)_2026-06-11(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5) 그는 전쟁에 능한 자였다(02)(시편24:7~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XxZNSynCtQA 1. 들어가며 예수님을 믿는 순간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신앙은 위험하다. 구원...
    Date2026.06.11 By갈렙 Views172
    Read More
  11. [기독론(118)]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4) 그는 전쟁에 능한 자였다(01)(시24:7~10)_2026-06-10(수)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8)]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4) 그는 전쟁에 능한 자였다(01)(시24:7~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HftS79XS4J8 1. 들어가며 지금까지 우리는 다윗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았다. ...
    Date2026.06.10 By갈렙 Views188
    Read More
  12. [기독론(117)]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3)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5)(시51:1~19)_2026-06-09(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7)]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3)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5)(시51: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mQ8T-U8Veqw 1. 들어가며 이번 시간은 구약의 기독론 시리즈 가운데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에 ...
    Date2026.06.09 By갈렙 Views160
    Read More
  13. [기독론(11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2)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4)(시51:1~19)_2026-06-07(주일)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2)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4)(시51: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R3lkAyHzK88 1. 들어가며 이번 기독론 연속 강해 116번째 시간이자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으...
    Date2026.06.08 By갈렙 Views218
    Read More
  14. [기독론(11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9)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1)(시38:1~13)_2026-06-05(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9)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1)(시38: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NMuZ0Ly2igs 1. 들어가며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억된다. 그는 골리앗 앞에...
    Date2026.06.05 By갈렙 Views204
    Read More
  15. [기독론(11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8) 다윗의 저주시, 과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시51:10~12)_2026-06-04(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8) 다윗의 저주시, 과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시51:10~1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Bu-ht_hrNmM 1. 들어가며 시편을 읽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
    Date2026.06.04 By갈렙 Views212
    Read More
  16. [기독론(111)]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7)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4)(시22:1~21)_2026-06-03(수)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1)]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7)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4)(시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SMRwAH_FhHU 1. 들어가며 다윗은 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이다. 이사야를 메시아 ...
    Date2026.06.03 By갈렙 Views184
    Read More
  17. [기독론(110)]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6)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3)(시22:1~21)_2026-06-02(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0)]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6)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3)(시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MpzXbxrIduQ 1. 들어가며 다윗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불리는 인...
    Date2026.06.02 By갈렙 Views182
    Read More
  18. [기독론(10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5)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2)(시22:1~21)_2026-06-01(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5)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2)(시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8_z-Y2WW3yY 1. 들어가며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구약 성경을 통해서 살...
    Date2026.06.01 By갈렙 Views193
    Read More
  19. [기독론(10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2) 찬양대장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78:65~71)_2026-05-29(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2) 찬양대장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78:65~7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ZUPCGQWtCgU [기독론(10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2) 찬양대장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
    Date2026.05.29 By갈렙 Views260
    Read More
  20. [기독론(105)]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1) 고라자손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48:1~14)_2026-05-28(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5)]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1) 고라자손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48:1~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Y1hbJRiwHcs 1. 들어가며 한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깊이 하나님을 사랑했는가는, 그가 죽은 ...
    Date2026.05.28 By갈렙 Views21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17 Next
/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