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133)] 다윗의 아들 솔로몬(11)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5) 창조주와 재림주(아가서 8:14)
이 설교는 아가서의 상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주와 재림주로서의 신분을 기독론적 관점에서 고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천국을 울타리가 쳐진 '잠근 동산'으로 묘사하며, 그곳은 주님을 위해 헌신한 자들이 향기와 생명수를 누리는 특별한 영역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아가서 마지막 절의 노루와 사슴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여 영광과 권세로 오실 재림주를 상징하며, 성도들이 그분을 맞이하기 위해 회개와 지조 있는 신앙을 지켜야 함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하늘의 기업을 상속받는 거룩한 신부로 성장하여 영원한 천국 잔치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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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 슬라이드 251. 들어가며
아가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이 여덟 가지로 나온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아가서에 어떤 신분으로 예표되었는가? 그것은 첫 번째는 새 예루살렘의 왕, 두 번째는 창조주, 세 번째는 속전이신 고벨화 송이, 네 번째는 목자와 포도원의 주인과 동산지기로 예표되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현재 천국에서 목자로서 양 떼를 먹이고 계시고, 포도원의 주인으로서 열매를 산출하고 계시며, 동산지기로서 그 동산을 가꾸고 계신다.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분할 때 예수님의 신분은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속전이신 고벨화이신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예수님의 과거의 사역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굳이 따지자면 예수님의 창조주 되심도 과거의 근거이다. 그리고 목자와 포도원의 주인과 동산지기는 현재의 사역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미래적인 모습은 어떠한가? 그것은 재림주와 신랑으로 오시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아가서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선포하는 마지막 신분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먼저 동산지기 신분과 연결하여 그 동산이 바로 천국임을 확인하고, 아가서 5장 1절에 담긴 천국의 세 가지 풍성함을 살핀 다음, 4장 12절의 잠근 동산과 덮은 우물과 봉한 샘이 보여 주는 천국의 신분 차이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아가서의 마지막 구절인 8장 14절에 담긴 재림주에 대한 신부의 고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어떤 모습으로 오실지를 살펴보기를 원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를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렇게 구약의 기독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의 풍성함을 배우는 것이 단순히 지식의 축적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곧 곧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그분처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아가서는 이것을 가르치는 책이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처럼 살아가는 신부가 되어 가는 과정이 아가서 전체의 주제이다.
2. 아가서 5장 1절의 동산(간)은 천국을 어떻게 예표하는가?
아가서 5장 1절에서 신랑은 신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아 5:1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여기서 핵심은 '내 동산'이라는 표현이다. 히브리어로 동산은 '간(גַּן)'이라는 단어다. 간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울타리로 둘러쳐진 공간이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특별한 공간이다. 신랑이 그 동산을 내 동산이라고 부른다. 이 동산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이다. 그런데 그분은 그 동산에 신부와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청하신다. 먹으라, 마시라, 많이 마시라라는 넘치는 환대가 이 동산의 성격을 드러낸다.
이 동산이 곧 천국을 예표한다는 것은 출애굽기 3장 8절이 뒷받침해 준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의 땅이 천국의 예표이다. 아가서 5장 1절에서 꿀송이와 꿀을 먹고 포도주와 젖을 마신다는 표현은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언어이다. 동산 안에서 먹고 마시는 풍성함이 천국의 실제를 가리킨다.
출 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신랑이 이 동산을 내 동산이라 부르시는 것은 천국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언한다. 그러나 그분은 그 동산을 독점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내 친구들아,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초청하며 함께 들어오라고 부르신다. 그분의 동산은 그분의 것이되 그분의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우리가 그 동산에 들어가는 것은 은혜이다.
여기서 나의 친구들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요한복음 15장 15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나니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종은 주인의 뜻을 모른다. 그러나 친구는 서로의 마음을 안다.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라 부르신다는 것은 그분의 마음과 뜻과 경륜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론 공부가 중요하다.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알아 가는 것이 곧 그분의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이다. 아버지의 뜻을 아는 자가 친구이다. 그분의 경륜을 알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아는 자가 동산에 들어가는 친구가 된다. 그분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아는 것이 먼저이고 사랑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 경륜을 알고 사랑하는 자만이 이 동산에 온전히 들어갈 수 있다.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3. 동산 안의 몰약·향료, 꿀송이·꿀, 포도주·젖은 각각 무엇을 상징하는가?
아가서 5장 1절에서 동산 안에 세 가지 종류의 것들이 등장한다. 몰약과 향료, 꿀송이와 꿀, 포도주와 젖이다. 이 세 가지는 각각 동산의 서로 다른 풍성함을 상징한다. 향기의 장소, 먹는 장소, 마시는 장소이다.
첫 번째는 몰약과 향료이다. 몰약은 죽은 자의 시체에 바르는 향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례에도 몰약이 사용되었다. 몰약은 그분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 주신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향료는 그 희생이 만들어 낸 향기이다. 천국에서 향기가 가득한 곳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헌신한 자들이다. 목숨만이 아니더라도 주님의 일을 위해 자신을 드린 자, 교회를 위해 헌신한 자가 그 향기로운 산에 들어간다.
아가서 8장 14절에서 신부가 신랑에게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이 빨리 달리라고 외친다. 여기서 향기로운 산이 바로 몰약과 향료가 가득한 그 동산이다. 주님을 위해 자신을 드린 자들의 향기가 가득한 곳, 그곳이 동산의 첫 번째 풍성함이다.
아 8:14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두 번째는 꿀송이와 꿀이다. 시편 119편 103절에서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고백한다. 꿀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천국의 동산에 들어가는 자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먹은 자들이다. 말씀으로 가득 찬 자들이 꿀송이와 꿀이 있는 그 장소에 들어가 먹게 된다.
시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하니이다
세 번째는 포도주와 젖이다. 이사야 55장 1절에서 하나님은 목마른 자들에게 와서 포도주와 젖을 값없이 사라고 초청하신다.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를 상징하고, 젖은 생명의 양식을 상징한다. 요한복음 7장 37절에서 예수님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시며 이것이 성령을 가리킨다고 하셨다. 동산에서 마시는 포도주와 젖은 궁극적으로 성령을 마시는 것이다.
사 55:1 오라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요 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한계시록 22장 17절도 같은 초청을 선언한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동산 안에서 마시는 것은 결국 성령이요 생명수이다. 이 땅에서 성령을 마시며 살아온 자가 천국에서도 그 생명수를 풍성히 마시게 된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이 세 가지 향기와 먹음과 마심이 바로 천국의 동산이 가진 풍성함이다. 이것이 아가서 5장 1절 한 구절 안에 모두 담겨 있다는 것이 놀랍다. 한 구절 안에 천국의 본질이 다 있는 것이다. 헌신한 자의 향기가 가득하고, 말씀을 먹은 자의 기쁨이 있으며, 성령을 마신 자의 생명이 흐르는 그 동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내 동산이다.
이것은 단순한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천국의 풍성함을 결정한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선언한다. 천국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는 이 땅에서 이미 천국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동산의 향기를 피우고, 말씀의 꿀을 먹으며, 성령의 생수를 마시는 삶이 그것이다. 이 땅에서 그런 삶을 산 자가 천국에서 그 동산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게 된다. 헌신하고, 말씀을 먹고, 성령을 마시는 삶이 곧 믿음으로 천국을 앞당겨 사는 것이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 땅에서 헌신의 향기를 피운 자가 천국에서 향기로운 산에 들어간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먹은 자가 천국에서 꿀송이와 꿀을 먹는다. 이 땅에서 성령 충만하게 살아온 자가 천국에서 포도주와 젖을 마신다. 지금 여기서의 삶이 그 날의 누림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을 사모하는 자는 지금 이 땅에서 그 천국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서 사도 바울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준비하는 그 동산이 얼마나 놀라운 곳인지 우리는 아직 온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아가서를 통해 그 맛보기를 맛본 자는 그곳을 향한 열망이 더 강해진다.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4. 아가서 4장 12절의 잠근 동산·덮은 우물·봉한 샘은 천국의 어떤 신분 차이를 보여 주는가?
아가서 4장 12절에서 신랑은 신부를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여기에는 세 가지 층위의 공간이 등장한다.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다.
아 4: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이 세 가지는 단순히 동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천국에서의 신분과 거주 영역의 차이를 보여 주는 상징이다.
먼저 잠근 동산이다. 동산은 울타리로 둘러쳐진 공간이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다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만이 이 동산에 들어간다. 이것은 천국의 가장 기본적인 입성을 상징한다. 구원받은 자들이 들어가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안에도 더 깊은 층위가 있다.
덮은 우물은 동산 안에 더 깊이 들어간 곳이다. 우물은 물이 있는 곳이다. 단순히 동산 안에 들어온 것을 넘어서, 생명수가 있는 더 깊은 곳까지 나아간 자들이 거하는 공간이다. 이 땅에서 말씀과 성령으로 더 깊이 자란 자들이 이 우물 가까이 거하게 된다.
봉한 샘은 가장 깊숙한 곳이다. 봉한 샘은 엔게디의 샘이다.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있는 생명수의 근원이다. 이 봉한 샘까지 들어가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에 가장 가까운 곳에 거하는 자들이다. 이것이 동산 안에서의 가장 깊은 자리이다.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 보여 주는 것은 천국 안에서도 거주하는 영역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아가서 6장 8절부터 9절에서 왕비 60명, 후궁 80명, 시녀들은 무수하지만 오직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라고 말씀하신다. 천국에도 왕비와 후궁과 시녀와 같은 신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 아가서의 가르침이다.
아 6:8-9 왕비가 육십이요 후궁이 팔십이요 시녀들은 무수하되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의 외동딸이요 그녀를 낳은 자의 귀중한 자로구나
이 신분의 차이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 동산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구원받은 모든 자에게 허용되지만, 덮은 우물까지 가느냐, 봉한 샘까지 나아가느냐는 이 땅에서의 헌신과 성장에 달려 있다. 요한계시록 3장 21절에서 이기는 자에게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이 봉한 샘까지 들어가는 것과 연결된다.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그러므로 이 세 가지 공간의 차이는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단지 구원받아 동산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덮은 우물과 봉한 샘까지 나아가는 자가 될 것인가. 이 땅에서의 신앙의 깊이가 천국에서의 거주 영역을 결정한다.
아가서 6장에서 왕비와 후궁과 시녀들은 각각 다른 신분으로 솔로몬의 궁에 거한다. 왕비는 가장 가까이 왕과 함께한다. 후궁은 그 다음이다. 시녀들은 왕궁에 있지만 왕과의 거리는 더 멀다. 이것이 잠근 동산과 덮은 우물과 봉한 샘의 차이이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모두 같은 신분이 아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깊이 그분과 교제하며, 얼마나 헌신하며, 얼마나 말씀과 성령으로 성장했느냐에 따라 천국에서의 자리가 달라진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부터 2절에서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한다. 이 새 예루살렘이 바로 동산의 완성이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생명수 강이 흐르며, 생명나무가 있다. 잠근 동산과 덮은 우물과 봉한 샘이 온전히 열리는 것이 새 예루살렘이다.
계 21:1-2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그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은혜의 차원이 아니라 열매의 차원이다. 구원 자체는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이다. 그러나 그 구원받은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는 각자의 선택이다. 고린도전서 3장 12절부터 15절에서 바울은 구원받은 자들이 금, 은, 보석으로 짓는 자도 있고 나무, 풀, 짚으로 짓는 자도 있다고 가르친다. 심판 날에 불이 그 공력을 시험하면, 금은 남고 짚은 타 버린다. 동산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같지만, 그 안에서 어디까지 들어가느냐는 각자가 이 땅에서 무엇으로 지었느냐에 달려 있다.
고전 3:13-14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깊이 심은 자는 깊이 거두고, 얕게 심은 자는 얕게 거둔다. 이것이 잠근 동산과 덮은 우물과 봉한 샘의 차이를 만드는 원리이다. 지금 이 땅에서 무엇을 심고 있는지가 그 날 어느 영역에 거주하게 될지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헌신의 씨를 뿌리고, 말씀의 씨를 뿌리며, 성령 안에서 기도의 씨를 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5. 아가서 8장 14절에서 신부가 '빨리 달리라'고 외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아가서 8장 14절은 아가서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 한 구절이 아가서 전체의 결론이자 신부의 최종 고백이다.
아 8:14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빨리 달리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보면 바라흐(בָּרַח)이다. 바라흐의 원래 뜻은 피하다, 도망치다이지만, 여기서는 서두르다, 재촉하다, 어서 오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내 사랑하는 자야, 어서 오십시오, 빨리 오십시오라는 간절한 요청이다.
이것이 아가서의 마지막 말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지금까지 온 긴 여정, 레바논의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고통받고, 신랑을 잃어버려 찾아 헤매고, 마침내 신랑이 동산에서 일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그 일에 동참하며 성장해 온 신부의 최종 고백이 이것이다. 빨리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이것이 성숙한 신부의 마지막 고백이다.
이 고백은 요한계시록 22장 20절의 고백과 정확히 일치한다.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심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구약 아가서의 신부가 마라나타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마라나타는 주님, 오시옵소서라는 뜻이다. 이 간절한 기다림이 아가서의 결론이다.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신부가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랑 없이는 동산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부가 동산 안에 있지만, 신랑이 아직 오시지 않았다. 그래서 신부는 신랑이 어서 오시기를 기다린다. 신랑이 오실 때 비로소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시작된다. 신랑 없는 동산은 아직 완성이 아니다.
또한 빨리 달리라는 표현 뒤에 향기로운 산들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다는 수식어가 붙는다. 노루와 어린 사슴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상징이다. 빠르게 달려오시는 그분, 가볍고 민첩하게 오시는 그분, 땅에 속하지 않으시고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그분을 노루와 어린 사슴이 표현한다.
아가서 2장 8절부터 9절에서도 이미 신랑이 노루처럼 산에서 달려오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라고 하면서, 그가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다고 하였다. 아가서의 처음 장면에서 신랑이 노루처럼 달려왔고, 마지막 장면에서 신부가 노루처럼 빨리 달려오라고 재촉한다. 수미쌍관의 구조이다.
아 2:8-9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이 빨리 오라는 외침은 오늘 우리의 고백이기도 하다.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고, 그 날을 기다리며, 그 날을 준비하는 것이 성숙한 신부의 삶이다.
처음에 신부는 신랑을 기다리기만 했다. 신랑이 나타나면 기뻐했고 신랑이 사라지면 찾아 헤맸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에는 신부가 먼저 빨리 오라고 재촉한다. 이것은 신부의 성장을 보여 준다. 처음에는 신랑의 사랑을 받는 존재였지만, 이제는 신랑의 오심을 재촉할 만큼 주도적으로 그 관계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 7절에서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다고 선언한다. 신부가 준비된 것이다. 아가서의 신부가 빨리 오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준비된 신부만이 담대히 신랑에게 어서 오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다. 준비되지 않은 신부는 신랑의 오심이 두렵다. 그러나 준비된 신부는 그 오심을 사모한다. 이것이 두 종류의 신부를 구별하는 기준이다. 지금 나는 주님의 재림을 두려움으로 기다리는가, 아니면 사모함으로 기다리는가. 이 질문이 우리 각자의 신앙 상태를 점검하게 해 준다.
계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니
신앙의 성숙은 이렇게 수동적인 수혜자에서 능동적인 동반자로 변해 가는 것이다.
또한 이 빨리 오라는 외침 안에는 세상에 대한 갈망이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성숙한 신부는 세상의 것들을 더 이상 붙잡지 않는다. 신랑이 어서 오시기를 바란다는 것은 이 세상의 것들보다 신랑을 더 원한다는 뜻이다. 세상을 놓지 못하면 신랑의 오심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을 내려놓은 자, 신랑만을 사모하는 자만이 빨리 오십시오를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다. 처음에는 신랑의 사랑을 받기만 하던 신부가, 이제는 신랑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고 재촉하는 자로 성장했다. 이것이 아가서가 보여 주는 신부의 완성이다.
6. 히브리어 노루(채비)와 어린 사슴(아이알)은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어떻게 묘사하는가?
아가서 8장 14절에서 신부는 신랑에게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이 빨리 달리라고 말한다. 노루와 어린 사슴이라는 두 동물이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두 동물의 히브리어 이름 안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
먼저 노루이다. 히브리어로 채비(צְבִי)이다. 채비의 어근인 차바(צָבָא)는 싸우다, 정렬하다, 전쟁에 나가다는 뜻이다. 그리고 차바에서 파생된 채비는 영광, 빛남, 광채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노루 채비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영광을 얻은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 싸움에서 이기시고 영광을 얻으신 분으로 오신다는 것을 노루라는 단어가 표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십자가에서 사탄을 이기셨다. 사탄이 인간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만들었지만, 그것은 도리어 사탄이 불법을 저지르게 된 것이었고, 부활로써 그 죽음의 권세를 이기심으로 완전한 승리를 거두셨다. 그 승리의 영광을 가진 분이 재림하신다. 요한계시록 19장 11절에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백마를 타고 오시는데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불린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신 분이 영광의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다.
계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두 번째는 어린 사슴이다. 히브리어로 아이알(אַיָּל)이다. 아이알의 어근은 울(אוּל)인데, 이것은 힘, 권세, 능력이라는 뜻이다. 어린 사슴이라는 단어 안에 힘과 권세가 담겨 있다.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는 능력과 권세를 가진 분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분, 만유의 권세를 가진 분이 그 권세로 오신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선언하셨다. 그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재림하신다. 마가복음 14장 62절에서는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고 하셨다. 권세를 가지신 분, 구름을 타고 오시는 분, 그분이 어린 사슴 아이알이시다.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또한 노루와 사슴이라는 동물이 가진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이들은 발이 땅에 딱 붙어서 걸어가는 맹수들과 다르다. 사자나 표범은 발을 땅에 딱 붙이고 걷는다. 그러나 노루와 사슴은 팔짝팔짝 뛴다. 이 땅에 발을 붙이지 않는 것이다.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속한 분이 아니시다. 하늘에서 오시는 분이시다. 우리도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에 딱 붙어서 살지 말고, 노루와 사슴처럼 이 땅을 밟고 있지만 이 땅에 속하지 않은 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 동물들이 가르쳐 준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선언한다. 노루처럼, 사슴처럼, 이 땅에 발을 딱 붙이지 않고 하늘 시민권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빌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시 18:33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는도다
노루 채비와 어린 사슴 아이알, 이 두 단어 안에 영광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와 권세로 오시는 그리스도가 담겨 있다. 아가서가 마지막 단어까지 얼마나 정교하게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는지를 이 두 히브리어 단어가 보여 준다.
사도행전 1장 11절에서 천사는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말한다. 올라가신 그대로 오신다. 그런데 오실 때의 모습은 이미 아가서가 묘사하고 있다. 노루처럼, 어린 사슴처럼, 빠르고 영광스럽고 권세 있게 오신다. 이 땅에서 신부를 사랑하며 일하셨던 분이 신부를 데려가러 노루처럼 달려오신다.
행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그리고 아가서 2장 8절부터 9절에서도 이미 신랑이 산을 달려오는 장면이 노루와 어린 사슴으로 묘사되었다. 아가서의 처음과 끝이 같은 동물로 연결된다. 처음에 신랑이 노루처럼 신부를 찾아왔고, 끝에 신부가 신랑에게 노루처럼 빨리 오라고 재촉한다. 이 수미쌍관의 구조 안에 아가서 전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처음에는 신랑이 주도적으로 찾아오셨고, 마지막에는 신부가 주도적으로 기다린다. 처음에는 신부가 신랑에게 이끌리는 자였고, 마지막에는 신부가 신랑의 오심을 재촉하는 자가 된다. 이 변화가 아가서가 보여 주는 신부의 성장이다. 아가서 전체의 구조가 이 성장을 보여 준다. 1장에서 나는 검으나 아름답다라고 자신을 표현하던 신부가, 8장에서는 빨리 오십시오라고 담대히 외친다. 처음의 신부는 자신이 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족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신랑의 사랑 안에서 성장하여 마침내 신랑과 같은 마음을 품는 자가 된다. 신랑이 기다리시는 것을 알기에 신부도 함께 기다리며 재촉한다.
아 1: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포도원지기로 일하던 그 여인이 동산에 거주하는 자가 되어 신랑을 재촉한다. 이것이 신앙의 여정이다. 신랑이 먼저 찾아오심으로 시작된 관계가, 이제 신부가 신랑의 오심을 재촉함으로 마무리된다. 구원은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시고, 우리의 사모함으로 완성을 향해 달려간다. 빌립보서 1장 6절에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한다. 시작하신 분이 완성하신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면 그분이 반드시 완성으로 이끄신다.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한다. 신랑이 먼저 오심, 그것이 구원의 시작이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신랑이 먼저 오심, 그것이 구원의 시작이다. 그 구원이 완성되기까지 우리도 달려야 한다. 그러나 그 구원이 완성되기까지 우리도 달려야 한다. 신부가 빨리 달리라고 재촉하는 것은, 신랑의 오심을 간절히 바라는 만큼 자신도 그 오심을 위해 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다리되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7.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고벨화가 되신 이유는 무엇이며, 백합화(아네모네)와 어떻게 대비되는가?
아가서에는 두 가지 식물이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각각 상징하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하나는 고벨화이고 다른 하나는 백합화, 히브리어로 수산나이며 우리가 아네모네라고도 부르는 꽃이다. 이 두 식물의 대비가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피조물인 우리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드러낸다.
고벨화는 나무이다. 아가서 4장 13절에서 고벨화는 동산 안의 나무들 가운데 등장한다. 나무는 생명이 길고 강하며 뿌리가 깊다. 고벨화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카파르(כָּפַר), 즉 속죄하다, 몸값을 지불하다는 동사에서 왔다. 그래서 고벨화를 속죄나무, 구속의 나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나무는 세 가지 색을 가지고 있다. 빨간색은 피를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 흰색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노란색은 천국의 실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왜 고벨화가 되셨는가? 우리 때문이다. 우리가 죄를 지어 귀신의 노예가 되고 영원히 지옥에 갈 운명에 처했을 때, 창조주이신 그분이 친히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독생자가 피조물의 몸을 입으시고, 피조물을 위해 자신을 속전으로 내어 주신 것이다. 이것이 창조주가 고벨화가 되신 이유이다.
반면 백합화, 즉 아네모네는 풀이다. 마태복음 6장 28절부터 30절에서 예수님은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이라고 표현하신다. 아네모네는 오늘 피었다가 내일 질 수 있는 연약한 풀이다.
마 6:28-30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우리 인간은 이 아네모네와 같다. 오늘 피었다가 내일 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인생의 영화는 풀의 꽃과 같고 아침 안개와 같다. 우리는 스스로 여우를 잡을 수 없다. 귀신들의 억압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술람미 여인이 내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라고 고백했듯이, 우리는 연약한 아네모네이다.
그러나 이 연약한 아네모네 안에 강한 고벨화 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오신다. 그분이 우리 안에 오실 때 여우들을 잡을 수 있게 된다. 귀신들이 쫓겨 나간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고벨화이신 그분이 연약한 아네모네인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 우리도 원수의 진영에 깃발을 꽂는 자가 될 수 있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나무와 풀의 대비, 고벨화와 아네모네의 대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대비이다. 그러나 이 대비가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강한 나무이신 고벨화가 연약한 풀인 아네모네를 신부로 취하신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신부로 삼으신다. 이것이 아가서가 선포하는 가장 놀라운 복음이다. 로마서 8장 29절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고 한다. 창조주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고벨화이신 그분의 세 가지 색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피 흘리심(빨간색)을 통한 속죄, 흰색의 순결함, 노란색의 천국 영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질 때 신부는 완성된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벨화이신 그분이 아네모네인 우리를 자신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신다. 이것이 구원이다.
에베소서 5장 25절부터 27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선언한다. 그 목적이 교회로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이다.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물인 교회를 신부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주셨다. 이것이 고벨화가 되신 이유이다.
엡 5:25-27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8. 초림 때 약하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재림 때 강하게 오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다른가?
예수 그리스도는 두 번 오신다. 첫 번째 오심, 즉 초림은 약한 자로 오신 것이다. 두 번째 오심, 즉 재림은 강한 자로 오시는 것이다. 아가서는 이 두 가지 오심을 모두 담고 있으며, 특히 재림에 대해 신부의 간절한 고백으로 마무리된다.
초림의 예수 그리스도는 연약함으로 오셨다. 빌립보서 2장 7절에서 그분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선언한다. 아기로 태어나시고, 목수의 아들로 자라시며,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과 함께 사셨다.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죽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초림의 약함이었다.
빌 2:7-8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나 그 약함은 계획된 약함이었다. 사탄은 예수님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약점으로 보고 죽였다. 그러나 그 죽음을 통해 오히려 사탄이 불법을 저지르게 되었고, 부활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다. 히브리서 2장 14절에서 예수님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다고 선언한다. 이것이 초림의 역설이다. 약하게 오셔서 죽으심으로 가장 강한 승리를 거두셨다. 죽음을 통해 죽음을 이기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서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선언한다.
고전 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히 2: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는 강한 자로 오신다. 아가서 8장 14절의 노루 채비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영광을 얻은 자를 상징하고, 어린 사슴 아이알이 능력과 권세를 가진 자를 상징한다는 것이 이미 살펴보았다. 요한계시록 19장 11절부터 16절에서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백마를 타고 오시며, 그의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불리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이름이 옷과 허벅다리에 기록되어 있다.
계 19:15-16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초림과 재림의 차이는 또 다른 측면에서도 드러난다. 초림에는 약하게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다. 재림에는 강하게 오셔서 심판을 행하신다. 우리가 그분을 신랑으로 맞이하느냐, 심판주로 맞이하느냐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 회개하지 않은 채 그분을 맞이하면 그분은 심판주이시다. 그러나 그분의 피로 죄를 씻고 신부로 준비된 자에게는 그분이 신랑으로 오신다.
그러므로 초림의 약하심을 아는 자는 감사하고, 재림의 강하심을 아는 자는 두렵고 떨림으로 신부를 준비한다. 아가서의 신부가 빨리 달리라고 외치는 것은 두려움에서 나온 외침이 아니다. 사랑에서 나온 외침이다.
초림과 재림 사이에 우리가 살고 있다. 초림으로 구원의 길이 열렸고, 재림으로 그 구원이 완성된다. 이 사이에서 우리는 신부를 준비해야 한다. 초림이 준 것을 누리면서, 재림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우리의 시간이다. 베드로전서 1장 13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고 권면한다. 마음의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준비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재림을 바라면서 지금 이 땅에서 허리를 동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부의 삶이다. 이것이 아가서의 신부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모범이다. 아가서의 신부는 처음부터 완전하지 않았다.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두려움을 경험했고, 신랑이 두드릴 때 문을 열지 않는 실수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빨리 오십시오를 외치는 성숙한 신부로 완성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여정이기도 하다.
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을 받고(초림의 은혜), 말씀과 성령으로 성장하며(현재의 과정), 재림을 사모하는 것(신부의 완성), 이 세 가지가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구성한다.
디도서 2장 12절부터 13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라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다. 현재를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동시에 재림을 기다리는 것, 이것이 아가서의 신부가 보여 주는 삶이다.
딛 2:12-13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3절에서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고백했다. 이것이 아가서의 신부가 빨리 오라고 외치는 마음과 같다. 세상에 있는 것보다 신랑 곁에 있는 것이 훨씬 더 좋기 때문에 빨리 오라고 재촉한다.
빌 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사랑하는 자의 오심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나온 간절한 재촉이다. 이 사랑이 우리가 신부를 준비하는 동력이 된다.
9. 나오며
아가서 5장 1절의 동산이 천국임을 확인하고, 그 동산 안의 세 가지 풍성함인 몰약과 향료와 꿀과 포도주와 젖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헌신한 자의 향기, 말씀을 먹은 자의 기쁨, 성령을 마신 자의 생명, 이 세 가지가 천국 동산의 풍성함이다.
아가서 4장 12절의 잠근 동산과 덮은 우물과 봉한 샘은 천국 안에서의 신분 차이를 보여 준다. 단지 구원받아 동산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봉한 샘까지 나아가는 자가 될 것인가. 이 땅에서의 신앙의 깊이가 천국에서의 거주 영역을 결정한다.
아가서 8장 14절은 아가서의 마지막 구절이며 신부의 최종 고백이다. 빨리 달리라, 어서 오십시오, 마라나타. 이 간절한 기다림이 신부의 완성된 모습이다. 요한계시록의 마라나타가 이미 아가서에서 선포되고 있다.
노루 채비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여 영광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어린 사슴 아이알은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오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재림하시는 그분은 초림 때의 약한 모습과 달리 강한 자로 오신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오신다.
고벨화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아네모네인 우리의 대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대비이다. 그러나 창조주가 피조물을 신부로 취하신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이것이 아가서가 말하는 가장 충격적인 진리이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아내로 삼으신다. 나무가 풀을 품으신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신부로 선택하신다. 이 일을 위해 창조주가 몸값을 지불하셨다. 그것이 고벨화 속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강한 나무이신 고벨화가 연약한 풀인 아네모네 안에 들어오실 때, 우리는 비로소 귀신을 쫓아내고 원수의 진영에 깃발을 꽂는 자가 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재림주로 기다리는 자, 빨리 오십시오를 진심으로 고백하는 자,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며 신부로 준비되어 가는 자, 이것이 아가서가 제시하는 성도의 마지막 모습이다.
아가서는 왕에서 시작하여 재림주로 마무리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고, 창조주이시고, 속전이시고, 목자이시고, 포도원의 주인이시고, 동산지기이시고, 재림주이시고, 신랑이시다. 이 여덟 가지 신분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 그분의 모든 사역을 설명한다. 이것을 아는 자가 그분을 온전히 알고, 온전히 알 때 온전히 사랑하게 된다. 온전히 사랑할 때 비로소 빨리 오십시오를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다. 이 여덟 가지 신분이 아가서 전체에 걸쳐 선포된다. 이 모든 신분을 아는 자가 진정한 신부이다. 신랑이 누구인지를 온전히 아는 자, 그 신랑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 그 신랑과 함께 동산에 거주하게 될 자, 그것이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모습이다.
아가서 기독론 강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여덟 가지 신분을 하나씩 알아 온 것이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이다. 그분을 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분을 알아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목적이다. 이 다섯 번째 시간까지 오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다면적이고 풍성한 분이신지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 남은 신부에 관한 내용이 마지막으로 예정되어 있다. 그분을 아는 만큼 우리가 어떤 신부가 되어야 하는지도 더 분명해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고, 그분의 말씀을 먹으며, 성령을 마시며, 헌신의 향기를 피우며 살다가, 마침내 그분의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며 빨리 오십시오를 고백하는 복된 신부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6월 26일(금) ·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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