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6. 06. 26. (금)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UqEtW3mcZyY

20260626_015116.jpg.webp

20260626_013512.jpg.webp

20260626_013445.jpg.webp

20260626_013418.jpg.webp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33)] 다윗의 아들 솔로몬(11)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5) 창조주와 재림주(아가서 8: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UqEtW3mcZyY

 

[기독론(133)] 다윗의 아들 솔로몬(11)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5)
창조주와 재림주
본문: 아가서 8:14

1. 들어가며

  성경을 읽는 가장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아는 데 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이 자신에 관하여 증언한다고 말씀하셨고, 부활하신 뒤에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자신에 관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풀어 주셨다(요 5:39, 눅 24:44). 그러므로 구약의 인물과 사건과 제도와 시가서는 단지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문화를 알려 주는 자료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을 여러 각도에서 미리 보여 주는 예표와 그림자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다윗은 전쟁에 능한 왕으로서 원수를 이기고 왕국을 세우는 그리스도를 예표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평화의 왕, 지혜의 왕, 성전을 건축한 왕으로서 또 다른 방면에서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사무엘하 7장의 언약은 역사적으로 솔로몬에게 먼저 적용되었지만, 그 왕위가 영원하리라는 말씀은 솔로몬 한 사람에게서 완성되지 않았다. 솔로몬의 왕국은 분열되었고, 다윗 왕조의 지상 통치도 중단되었다. 이 약속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성취를 얻는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남긴 지혜문학의 정수다. 겉으로는 신랑과 신부의 사랑을 노래하지만, 그 깊은 층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보여 준다. 아가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왕이시고, 창조주이시며, 속전이시고, 목자이시며, 포도원의 주인이시고, 동산지기이시며, 다시 오실 재림주이시고, 교회의 신랑이시다. 이 여덟 신분은 흩어진 명칭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펼쳐 보이는 하나의 시간표다.

  성도는 예수님을 단지 죄를 용서해 주는 분으로만 알아서는 안 된다.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으며,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고, 장차 어떤 모습으로 다시 오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현재를 점검하고 천국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아가서에 나타난 여덟 신분의 시간표를 먼저 정리하고, 창조주이신 예수께서 왜 영광과 권세를 가진 재림주로 오시는지, 그리고 그분을 신랑으로 맞이할 성도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아가서의 여덟 신분은 어떤 시간표를 보여 주는가?

  아가서가 보여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여덟 신분은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세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단계는 그리스도의 기원과 과거 사역이다. 여기에는 창조주와 속전이라는 신분이 들어간다. 예수님은 피조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존재가 아니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다. 그러나 창조주께서 피조물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오셨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속전으로 내어 주셨다. 아가서 1장 14절의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는 바로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많은 생명의 열매를 산출하실 것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아 1:14, 막 10:45).

아 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둘째 단계는 현재 그리스도께서 수행하시는 사역이다. 여기에는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라는 세 신분이 들어간다.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은 지금도 자기 양떼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는 목자다. 그분은 참포도나무로서 가지 된 성도들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포도원의 주인이다. 또한 자기 동산에 들어가 몰약과 향품을 거두고, 양떼를 먹이며, 꺾인 백합화를 거두는 동산지기다. 이는 부활하고 승천하신 주님이 쉬고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돌보고 순교자를 맞이하며 신부를 완성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셋째 단계는 미래의 사역이다. 여기에는 재림주와 신랑이라는 신분이 들어간다. 아가서의 마지막은 신부가 신랑에게 빨리 오라고 간청하는 말로 끝난다(아 8:14). 요한계시록의 마지막도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교회의 기도로 끝난다(계 22:20). 다시 오실 예수님은 원수를 심판하는 만왕의 왕이시며, 동시에 준비된 교회를 혼인 잔치로 맞아들이는 신랑이시다.

아 8:14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왕이라는 신분은 이 모든 단계 전체를 묶는다. 창조주이신 왕이 속전으로 오셨고, 지금은 목자와 포도원의 주인과 동산지기로 일하시며, 장차 재림주와 신랑으로 오신다. 그러므로 여덟 신분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기원과 낮아지심과 구속, 현재의 돌봄, 미래의 심판과 혼인을 한눈에 보여 준다. 이 시간표를 알면 성도는 구원을 과거의 한 사건으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이미 받은 속죄를 붙들면서 현재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고, 미래에 그분을 신랑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다.

3. 왜 다시 오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신가?

  예수님의 재림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그분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임시로 사용하신 인간 도구도 아니고, 하나님보다 낮은 피조 신도 아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선포한다. 또한 만물이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어졌으며, 그가 없이는 지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증언한다(요 1:1-3).

요 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골로새서 역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왕권들과 주권들과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창조되었다고 말한다(골 1:15-17). 그러므로 예수님은 천사들과 나란히 놓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천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성도도 그분이 지으신 피조물이며, 그분에게서 생명을 공급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골 1:15-17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여기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아버지와 아들은 구별된다. 아들은 아버지께 기도하고, 자기 뜻을 아버지의 뜻에 복종시킨다. 그러나 이 구별은 두 하나님을 뜻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셨다(요 10:30). 성경이 말하는 하나는 고립된 하나가 아니라, 구별이 있으면서도 본질과 생명과 영광에서 하나인 하나님이다. 동탄명성교회가 말하는 한 분 하나님 신앙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성경적 구별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셋으로 나누지 않는다.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예수님이 아버지에게서 나오셨다는 말도 그분이 창조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그 본체의 형상이다(요 1:18, 히 1:3). 반면 성도는 창조된 피조물로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예수님의 아들 되심과 우리의 자녀 됨은 은혜 안에서 연결되지만 기원과 본질이 같지는 않다.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창조주께서 재림주가 되신다는 사실은 성육신의 깊이를 더 분명히 드러낸다.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 2:6-8). 초림은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자리까지 낮아지신 사건이고, 재림은 낮아지셨던 그분이 본래의 영광과 왕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시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재림은 다른 인물이 예수님의 자리를 계승하는 일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신 바로 그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시는 사건이다.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 구별을 놓치면 피조물이 자신을 하나님이나 재림주라고 주장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재림주는 어느 시대의 종교 지도자가 아니다. 재림주는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만물을 창조하시고, 십자가와 부활로 사망을 이기시며, 승천하여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 마지막 날 감람산에 서신다고 예언하고, 신약에서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말하는 것은 두 존재가 따로 온다는 뜻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나타나셨고, 그 예수께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시는 것이다.

4. 잠근 동산과 봉한 샘은 천국의 무엇을 보여 주는가?

  아가서 4장 12절은 신부를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라고 부른다. 동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간’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보호받는 공간을 가리킨다. 이는 아무에게나 훼손되는 들판이 아니라 주인이 구별하여 지키는 장소다. 신부가 잠근 동산이라는 말은 먼저 그녀의 순결과 전적인 소속을 뜻한다. 그녀는 여러 남자에게 열린 존재가 아니라 오직 신랑에게 속한 동산이다. 동시에 이 표현은 천국의 영적 실재를 보여 주는 상징으로도 읽을 수 있다.

아 4: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요한계시록은 새 예루살렘을 정육면체의 성으로 묘사하고, 그 성에 열두 문과 열두 기초석이 있으며,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증언한다(계 21:16, 계 22:1-2). 설교에서 소개한 천국 체험의 묘사는 이 성경적 그림을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도록 돕는 보조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체험을 교리의 최종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중심은 언제나 성경 본문이어야 한다.

계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계 22:1-2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은 천국 안에서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깊이가 있음을 보여 준다. 모든 구원받은 자가 새 예루살렘의 생명을 누리지만, 모두가 동일한 위치와 동일한 영광을 갖는 것은 아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받지만, 상속과 보상과 왕권은 이 땅에서의 충성과 순종과 정결한 삶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이는 성 밖이나 변두리와 같은 낮은 위치에 머물고, 어떤 이는 성 안의 집을 얻으며, 어떤 이는 생명수의 근원과 보좌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이 이 설교의 종말론적 관점이다.

  아가서 8장 13절에서 신부는 마침내 “동산에 거주하는 자”로 불린다(아 8:13). 처음에는 바알하몬의 포도원에서 억압받던 시골 처녀였지만, 신랑의 사랑과 속전으로 구속받고, 왕의 가마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마침내 신랑의 동산에 거주하는 자가 된다. 이것이 구원의 방향이다. 죄 사함만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랑의 생명을 받고, 그분의 마음과 사역에 연합하여, 그분의 동산에 합당한 신부로 변화되어야 한다.

아 8:13 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가 듣게 하려무나

5. 향기로운 산의 향·꿀·포도주·젖은 무엇인가?

  아가서 5장 1절은 신랑의 동산을 네 가지 풍성함으로 묘사한다. 그곳에는 몰약과 향품이 있고, 꿀송이와 꿀이 있으며, 포도주와 젖이 있다. 이것들은 천국의 물질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누리는 영적 실재를 나타낸다.

  첫째, 몰약과 향품은 희생과 헌신에서 나오는 향기를 뜻한다. 몰약은 시체를 장사할 때 사용되었고, 예수님의 죽음과도 연결된다. 그리스도는 신부를 얻기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주셨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가장 귀한 향기는 자기 보존의 냄새가 아니라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 준 희생의 향기다. 성도가 주님의 나라와 교회와 영혼을 위해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생명을 드릴 때, 그 삶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고후 2:14-15).

고후 2:14-15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둘째, 꿀과 꿀송이는 하나님의 말씀의 달콤함을 뜻한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의 맛이 꿀보다 달다고 고백했다(시 119:103). 신랑의 동산에 들어갈 자는 이 땅에서부터 말씀을 먹는 사람이어야 한다. 말씀을 듣고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저장하고, 묵상하고, 순종하며, 필요할 때 꺼내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양식으로 사용해야 한다.

시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셋째,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와 구원의 기쁨을 가리킨다. 주님은 자기 피로 새 언약을 세우셨고, 죄인을 속량하여 신부로 삼으셨다. 포도주는 또한 성령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잔치의 풍성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포도주를 마신다는 말은 값싼 흥분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고 그 피로 정결함을 받으며, 그분의 사랑 안에서 기뻐하는 것을 뜻한다.

  넷째, 젖은 생명의 양육을 뜻한다. 갓난아이가 젖을 먹고 성장하듯이, 새로 믿은 성도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먹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한다(벧전 2:2). 신부는 태어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말씀과 성령의 공급을 받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야 한다.

벧전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출애굽기에서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약속되었다(출 3:8). 아가서의 동산에서 꿀과 젖을 먹는 장면은 약속의 땅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됨을 보여 준다. 이 동산은 굶주림과 메마름이 없는 곳이며, 말씀과 생명과 성령의 공급이 풍성한 곳이다. 그러나 신랑은 이 모든 것을 혼자 누리지 않는다.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고 초대한다. 신랑의 뜻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이 동산의 풍성함에 참여한다.

아 5:1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6. “빨리 달리라”는 말은 재림을 어떻게 증언하는가?

  아가서의 마지막 문장은 신부의 재림 기도다.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는 말은 단순히 빨리 이동하라는 말이 아니다. 설교에서 제시한 히브리어 ‘바라흐’는 본래 피하다, 도망하다라는 뜻에서 출발하지만, 문맥에 따라 서두르다, 재촉하여 가다, 신속히 움직이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아가서 8장 14절에서는 “나의 사랑하는 자여,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어서 오십시오”라는 간절한 요청이 된다.

  이 기도는 요한계시록 마지막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와 정확히 호응한다. 성경의 마지막은 공포에 질린 죄인의 외침이 아니라, 신랑을 사랑하는 신부의 초청으로 끝난다. 재림 신앙의 중심은 날짜 계산이나 세상 파괴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다. 참된 재림 신앙은 신랑을 그리워하는 사랑이며, 그분이 오실 때 부끄럽지 않도록 자신을 준비하는 삶이다.

  예수님은 속히 오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인간의 시간으로 볼 때 재림은 오래 지연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님은 약속을 잊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오래 참으신다(벧후 3:9). 재림의 지연은 무능력의 표시가 아니라 구원을 위한 자비의 시간이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렇다고 이 시간이 끝없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배교가 일어나며, 적그리스도적 세력이 강화되고, 세상의 통제 수단이 정교해지는 흐름 속에서 성도는 시대를 분별해야 한다. 특정 기술 하나를 곧바로 짐승의 표라고 단정하거나 재림 날짜를 계산해서는 안 되지만, 기술과 권력이 사람의 양심과 신앙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성경이 확실히 명령하는 것은 날짜 추측이 아니라 깨어 있음과 회개와 충성이다.

  “빨리 달리라”는 신부의 기도는 말로만 외칠 수 없다. 죄를 사랑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고, 세상에 마음을 고정한 채 신랑을 기다린다고 할 수 없다. 진실한 재림 기도는 삶의 방향을 신랑에게 맞추는 것이다. 신부는 오늘 자신의 옷을 씻고,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며, 신랑의 뜻을 행해야 한다.

7. 노루와 어린 사슴은 재림주의 무엇을 보여 주는가?

  아가서의 신부는 신랑에게 향기로운 산 위의 노루와 어린 사슴처럼 빨리 오라고 말한다. 아가서 2장에서도 신랑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 노루와 어린 사슴으로 묘사된다(아 2:8-9). 이 비유에는 속도뿐 아니라 재림주의 영광과 능력이 담겨 있다.

아 2:8-9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노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츠비’는 아름다움, 영화로움, 영광스러움과 연결된다. 설교에서는 관련 어근의 전쟁적 의미까지 함께 보아, 노루를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여 영광을 얻은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고, 공생애 동안 귀신들을 내쫓으셨으며, 십자가에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장 해제하셨다. 부활과 승천으로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이기신 그분이 영광의 왕으로 다시 오신다.

  어린 사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얄’은 힘과 능력과 관련된다. 초림의 예수님은 죽을 수 있는 육체를 입고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셨다.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러나 재림의 예수님은 약한 희생 제물의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하늘 군대를 거느리고 오시며,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원수를 치고,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로 나타나신다(계 19:11-16).

계 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노루와 사슴은 산과 골짜기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이는 신랑이 신부에게 오는 것을 어떤 장애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역사와 나라와 권세와 죽음도 그분의 발걸음을 붙잡지 못한다. 동시에 이 모습은 신부에게도 영적 교훈을 준다. 성도는 땅에 살지만 땅에 속한 자처럼 욕망과 염려에 몸을 붙이고 살아서는 안 된다. 언제라도 신랑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 함께 갈 수 있는 가벼움과 준비가 필요하다.

  재림주께서 영광과 권세를 가지고 오신다는 사실은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준비된 신부에게는 구원과 혼인의 날이지만, 회개하지 않은 자에게는 심판의 날이다. 같은 예수님이지만 관계가 다르다. 그분의 피를 거절하고 죄를 붙든 자는 심판주를 만나며, 그분의 피로 씻고 충성한 자는 신랑을 만난다.

8. 왜 재림은 지연되며 신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재림이 지연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숫자만 늘어난다고 신부가 자동으로 준비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모두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신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신부는 자기 옷을 준비해야 하며, 그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로 설명된다(계 19:7-8).

계 19:7-8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은즉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아가서가 보여 주는 신부의 성숙은 세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백합화 같은 신부가 되어야 한다. 가시나무 같은 세상과 죄의 환경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피로 씻고 순결을 지켜야 한다. 신앙의 본질은 지조다. 신부는 여러 신랑을 섬기지 않고 오직 한 분 그리스도께 속해야 한다.

  둘째,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 신부는 보호만 받는 연약한 존재에 머물지 않는다. 신랑의 피와 이름과 권세를 힘입어 죄와 귀신을 이기고, 억압받는 다른 사람을 해방시키는 영적 전사로 성장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악의 세력을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사건이므로,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 역시 지금 악과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셋째, 다른 신부를 낳고 양육하는 신부가 되어야 한다. 주님은 자기 동산에서 양떼를 먹이고 포도원의 열매를 얻으신다. 성숙한 신부는 신랑의 사랑을 독점하려 하지 않고, 신랑이 사랑하는 영혼들을 돌본다.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회개하도록 돕고, 다른 성도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합당한 자로 세운다.

  이 준비는 구원을 자기 공로로 얻으려는 행위가 아니다. 모든 시작은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에서 나온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예수의 피를 믿는다고 하면서 죄를 자백하지 않고, 악한 영을 품은 채 세상을 사랑한다면 신부의 단장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도는 날마다 회개하여 죄의 기록이 지워지고, 더러운 영이 떠나며, 말씀과 성령으로 속사람이 새로워져야 한다.

  또한 시대를 분별해야 한다. 교회의 외형이 약해지고 세속적 가치가 강해지며, 기술과 권력이 인간의 선택을 통제할 가능성이 커질수록 성도는 더 깊이 말씀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시대의 징조를 두려움으로 소비해서는 안 되고, 자신과 가족과 교회를 깨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재림 준비는 비상식량을 쌓는 일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결국 신부가 준비한다는 것은 신랑과 같은 생각과 감정과 뜻을 갖게 되는 것이다.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주님이 미워하는 죄를 미워하며, 주님이 돌보는 양떼를 돌보고, 주님이 찾는 잃은 영혼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기도는 공허한 문장이 아니라 삶 전체로 드리는 재림의 기도가 된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아가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여덟 신분을 과거·현재·미래의 시간표로 정리하고, 창조주이신 그리스도와 재림주이신 그리스도의 비밀을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니라 만물을 지으신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나타나신 분이다. 그분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속전이 되셨고, 지금은 목자와 포도원의 주인과 동산지기로 일하시며, 장차 영광과 권세를 가진 왕과 신랑으로 다시 오신다.

  아가서의 잠근 동산과 덮은 우물과 봉한 샘은 신부의 순결뿐 아니라 천국의 깊이와 성도의 신분을 보여 준다. 구원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신랑의 동산에 거주하고 생명수의 근원과 보좌 가까이 나아갈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 준비는 이 땅에서의 회개와 충성과 사랑과 헌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향기로운 산의 몰약과 향품은 희생과 헌신의 향기를, 꿀은 말씀의 달콤함을,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와 구원의 기쁨을, 젖은 생명의 양육을 보여 준다. 성도는 말씀을 먹고 성령을 마시며,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자로 성장해야 한다.

  신부가 “빨리 달리라”고 간청한 것은 재림 날짜를 계산한 것이 아니라 신랑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성도도 재림을 공포나 호기심으로만 다루지 말고, 신랑을 그리워하는 사랑과 준비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재림이 지연되는 동안에는 더 많은 사람이 회개하도록 복음을 전해야 하며, 자신도 매일 정결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다시 오실 예수님은 노루처럼 영광스러운 승리자요, 어린 사슴처럼 능력과 권세를 가진 왕이다. 준비된 자에게는 혼인의 기쁨을 주시지만, 죄를 붙들고 회개하지 않은 자에게는 심판주로 나타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로만 재림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백합화 같은 순결한 신부,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사, 다른 신부를 낳고 양육하는 성숙한 신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를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고 그분의 누이와 신부로 불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존귀한 신분은 오직 창조주께서 자신을 낮추고 생명을 나누어 주신 은혜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서도 우리는 자신을 높일 수 없으며, 우리를 위해 고벨화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영원히 찬양해야 한다.

  남아 있는 시간은 신부를 단장하도록 주어진 은혜의 시간이다. 성도는 날마다 죄를 자백하여 행위책의 기록이 지워지게 해야 하고, 회개를 통해 자기 안의 더러운 영을 내보내야 하며, 말씀과 성령으로 생각과 감정과 뜻을 신랑에게 맞추어야 한다. 또한 주님이 맡기신 양떼와 포도원을 돌보며, 다른 영혼이 혼인 잔치에 참여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하여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두려운 심판주로 맞이하지 않고, “내 사랑하는 자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기쁨으로 맞이하며, 새 예루살렘의 동산에서 신랑과 영원히 왕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26일(금)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아가서의 상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주와 재림주로서의 신분을 기독론적 관점에서 고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천국을 울타리가 쳐진 '잠근 동산'으로 묘사하며, 그곳은 주님을 위해 헌신한 자들이 향기와 생명수를 누리는 특별한 영역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아가서 마지막 절의 노루와 사슴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여 영광과 권세로 오실 재림주를 상징하며, 성도들이 그분을 맞이하기 위해 회개와 지조 있는 신앙을 지켜야 함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하늘의 기업을 상속받는 거룩한 신부로 성장하여 영원한 천국 잔치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기독론(133)] 인포그래픽2026-06-21.jpg.webp

 

[기독론(133)] Eight_Identities_of_Christ_in_Solomon_s_Song.pdf_1_vora.jpg.webp

[기독론(133)] Eight_Identities_of_Christ_in_Solomon_s_Song.pdf_2_vora.jpg.webp

[기독론(133)] Eight_Identities_of_Christ_in_Solomon_s_Song.pdf_3_vora.jpg.webp

[기독론(133)] Eight_Identities_of_Christ_in_Solomon_s_Song.pdf_4_vora.jpg.webp

[기독론(133)] Eight_Identities_of_Christ_in_Solomon_s_Song.pdf_5_vora.jpg.webp

[기독론(133)] Eight_Identities_of_Christ_in_Solomon_s_Song.pdf_6_vora.jpg.webp

[기독론(133)] Eight_Identities_of_Christ_in_Solomon_s_Song.pdf_7_vora.jpg.webp

[기독론(133)] Eight_Identities_of_Christ_in_Solomon_s_Song.pdf_8_vora.jpg.webp

[기독론(133)] Eight_Identities_of_Christ_in_Solomon_s_Song.pdf_9_vora.jpg.webp

[기독론(133)] Eight_Identities_of_Christ_in_Solomon_s_Song.pdf_10_vora.jpg.webp

[기독론(133)] Eight_Identities_of_Christ_in_Solomon_s_Song.pdf_11_vora.jpg.webp

[기독론(133)] Eight_Identities_of_Christ_in_Solomon_s_Song.pdf_12_vora.jpg.webp

[기독론(133)] Eight_Identities_of_Christ_in_Solomon_s_Song.pdf_13_vora.jpg.webp

[기독론(133)] Eight_Identities_of_Christ_in_Solomon_s_Song.pdf_14_vora.jpg.webp

[기독론(133)] Eight_Identities_of_Christ_in_Solomon_s_Song.pdf_15_vora.jpg.webp

 

=============================================

 

아침묵상입니다(투박한 요약 글).

제목: [기독론(133)] 다윗의 아들 솔로몬(11)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5) 창조주와 재림주(아가서 8: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아가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이 여덟 가지로 나온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아가서에 어떤 신분으로  예표되었는가? 그것은 첫 번째는 새 예루살렘의 왕, 두 번째는 창조주, 세 번째는 속전이신 고벨화 송이, 네 번째는 목자와 포도원의 주인과 동산지기로 예표되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현재 천국에서 목자로서 양 떼를 먹이고 계시고, 포도원의 주인으로서 열매를 산출하고 계시며, 동산지기로서 그 동산을 가꾸고 계신다.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분할 때 예수님의 신분은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속전이신 고벨화이신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예수님의 과거의 사역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굳이 따지자면 예수님의 창조주 되심도 과거의 근거이다. 그리고 목자와 포도원의 주인과 동산지기는 현재의 사역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미래적인 모습은 어떠한가? 그것은 재림주와 신랑으로 오시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아가서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선포하는 마지막 신분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먼저 동산지기 신분과 연결하여 그 동산이 바로 천국임을 확인하고, 아가서 5장 1절에 담긴 천국의 세 가지 풍성함을 살핀 다음, 4장 12절의 잠근 동산과 덮은 우물과 봉한 샘이 보여 주는 천국의 신분 차이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아가서의 마지막 구절인 8장 14절에 담긴 재림주에 대한 신부의 고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어떤 모습으로 오실지를 살펴보기를 원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를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렇게 구약의 기독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의 풍성함을 배우는 것이 단순히 지식의 축적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곧 곧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그분처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아가서는 이것을 가르치는 책이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처럼 살아가는 신부가 되어 가는 과정이 아가서 전체의 주제이다.

 

2. 아가서 5장 1절의 동산(간)은 천국을 어떻게 예표하는가?

  아가서 5장 1절에서 신랑은 신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아 5:1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여기서 핵심은 '내 동산'이라는 표현이다. 히브리어로 동산은 '간(גַּן)'이라는 단어다. 간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울타리로 둘러쳐진 공간이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특별한 공간이다. 신랑이 그 동산을 내 동산이라고 부른다. 이 동산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이다. 그런데 그분은 그 동산에 신부와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청하신다. 먹으라, 마시라, 많이 마시라라는 넘치는 환대가 이 동산의 성격을 드러낸다.

  이 동산이 곧 천국을 예표한다는 것은 출애굽기 3장 8절이 뒷받침해 준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의 땅이 천국의 예표이다. 아가서 5장 1절에서 꿀송이와 꿀을 먹고 포도주와 젖을 마신다는 표현은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언어이다. 동산 안에서 먹고 마시는 풍성함이 천국의 실제를 가리킨다.

출 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신랑이 이 동산을 내 동산이라 부르시는 것은 천국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언한다. 그러나 그분은 그 동산을 독점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내 친구들아,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초청하며 함께 들어오라고 부르신다. 그분의 동산은 그분의 것이되 그분의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우리가 그 동산에 들어가는 것은 은혜이다.

  여기서 나의 친구들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요한복음 15장 15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나니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종은 주인의 뜻을 모른다. 그러나 친구는 서로의 마음을 안다.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라 부르신다는 것은 그분의 마음과 뜻과 경륜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론 공부가 중요하다.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알아 가는 것이 곧 그분의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이다. 아버지의 뜻을 아는 자가 친구이다. 그분의 경륜을 알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아는 자가 동산에 들어가는 친구가 된다. 그분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아는 것이 먼저이고 사랑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 경륜을 알고 사랑하는 자만이 이 동산에 온전히 들어갈 수 있다.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3. 동산 안의 몰약·향료, 꿀송이·꿀, 포도주·젖은 각각 무엇을 상징하는가?

  아가서 5장 1절에서 동산 안에 세 가지 종류의 것들이 등장한다. 몰약과 향료, 꿀송이와 꿀, 포도주와 젖이다. 이 세 가지는 각각 동산의 서로 다른 풍성함을 상징한다. 향기의 장소, 먹는 장소, 마시는 장소이다.

  첫 번째는 몰약과 향료이다. 몰약은 죽은 자의 시체에 바르는 향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례에도 몰약이 사용되었다. 몰약은 그분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 주신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향료는 그 희생이 만들어 낸 향기이다. 천국에서 향기가 가득한 곳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헌신한 자들이다. 목숨만이 아니더라도 주님의 일을 위해 자신을 드린 자, 교회를 위해 헌신한 자가 그 향기로운 산에 들어간다.

  아가서 8장 14절에서 신부가 신랑에게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이 빨리 달리라고 외친다. 여기서 향기로운 산이 바로 몰약과 향료가 가득한 그 동산이다. 주님을 위해 자신을 드린 자들의 향기가 가득한 곳, 그곳이 동산의 첫 번째 풍성함이다.

아 8:14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두 번째는 꿀송이와 꿀이다. 시편 119편 103절에서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고백한다. 꿀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천국의 동산에 들어가는 자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먹은 자들이다. 말씀으로 가득 찬 자들이 꿀송이와 꿀이 있는 그 장소에 들어가 먹게 된다.

시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하니이다

  세 번째는 포도주와 젖이다. 이사야 55장 1절에서 하나님은 목마른 자들에게 와서 포도주와 젖을 값없이 사라고 초청하신다.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를 상징하고, 젖은 생명의 양식을 상징한다. 요한복음 7장 37절에서 예수님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시며 이것이 성령을 가리킨다고 하셨다. 동산에서 마시는 포도주와 젖은 궁극적으로 성령을 마시는 것이다.

사 55:1 오라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요 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한계시록 22장 17절도 같은 초청을 선언한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동산 안에서 마시는 것은 결국 성령이요 생명수이다. 이 땅에서 성령을 마시며 살아온 자가 천국에서도 그 생명수를 풍성히 마시게 된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이 세 가지 향기와 먹음과 마심이 바로 천국의 동산이 가진 풍성함이다. 이것이 아가서 5장 1절 한 구절 안에 모두 담겨 있다는 것이 놀랍다. 한 구절 안에 천국의 본질이 다 있는 것이다. 헌신한 자의 향기가 가득하고, 말씀을 먹은 자의 기쁨이 있으며, 성령을 마신 자의 생명이 흐르는 그 동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내 동산이다.

  이것은 단순한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천국의 풍성함을 결정한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선언한다. 천국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는 이 땅에서 이미 천국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동산의 향기를 피우고, 말씀의 꿀을 먹으며, 성령의 생수를 마시는 삶이 그것이다. 이 땅에서 그런 삶을 산 자가 천국에서 그 동산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게 된다. 헌신하고, 말씀을 먹고, 성령을 마시는 삶이 곧 믿음으로 천국을 앞당겨 사는 것이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 땅에서 헌신의 향기를 피운 자가 천국에서 향기로운 산에 들어간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먹은 자가 천국에서 꿀송이와 꿀을 먹는다. 이 땅에서 성령 충만하게 살아온 자가 천국에서 포도주와 젖을 마신다. 지금 여기서의 삶이 그 날의 누림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을 사모하는 자는 지금 이 땅에서 그 천국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서 사도 바울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준비하는 그 동산이 얼마나 놀라운 곳인지 우리는 아직 온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아가서를 통해 그 맛보기를 맛본 자는 그곳을 향한 열망이 더 강해진다.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4. 아가서 4장 12절의 잠근 동산·덮은 우물·봉한 샘은 천국의 어떤 신분 차이를 보여 주는가?

  아가서 4장 12절에서 신랑은 신부를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여기에는 세 가지 층위의 공간이 등장한다.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다.

아 4: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이 세 가지는 단순히 동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천국에서의 신분과 거주 영역의 차이를 보여 주는 상징이다.

  먼저 잠근 동산이다. 동산은 울타리로 둘러쳐진 공간이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다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만이 이 동산에 들어간다. 이것은 천국의 가장 기본적인 입성을 상징한다. 구원받은 자들이 들어가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안에도 더 깊은 층위가 있다.

  덮은 우물은 동산 안에 더 깊이 들어간 곳이다. 우물은 물이 있는 곳이다. 단순히 동산 안에 들어온 것을 넘어서, 생명수가 있는 더 깊은 곳까지 나아간 자들이 거하는 공간이다. 이 땅에서 말씀과 성령으로 더 깊이 자란 자들이 이 우물 가까이 거하게 된다.

  봉한 샘은 가장 깊숙한 곳이다. 봉한 샘은 엔게디의 샘이다.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있는 생명수의 근원이다. 이 봉한 샘까지 들어가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에 가장 가까운 곳에 거하는 자들이다. 이것이 동산 안에서의 가장 깊은 자리이다.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 보여 주는 것은 천국 안에서도 거주하는 영역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아가서 6장 8절부터 9절에서 왕비 60명, 후궁 80명, 시녀들은 무수하지만 오직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라고 말씀하신다. 천국에도 왕비와 후궁과 시녀와 같은 신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 아가서의 가르침이다.

아 6:8-9 왕비가 육십이요 후궁이 팔십이요 시녀들은 무수하되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의 외동딸이요 그녀를 낳은 자의 귀중한 자로구나

  이 신분의 차이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 동산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구원받은 모든 자에게 허용되지만, 덮은 우물까지 가느냐, 봉한 샘까지 나아가느냐는 이 땅에서의 헌신과 성장에 달려 있다. 요한계시록 3장 21절에서 이기는 자에게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이 봉한 샘까지 들어가는 것과 연결된다.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그러므로 이 세 가지 공간의 차이는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단지 구원받아 동산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덮은 우물과 봉한 샘까지 나아가는 자가 될 것인가. 이 땅에서의 신앙의 깊이가 천국에서의 거주 영역을 결정한다.

  아가서 6장에서 왕비와 후궁과 시녀들은 각각 다른 신분으로 솔로몬의 궁에 거한다. 왕비는 가장 가까이 왕과 함께한다. 후궁은 그 다음이다. 시녀들은 왕궁에 있지만 왕과의 거리는 더 멀다. 이것이 잠근 동산과 덮은 우물과 봉한 샘의 차이이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모두 같은 신분이 아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깊이 그분과 교제하며, 얼마나 헌신하며, 얼마나 말씀과 성령으로 성장했느냐에 따라 천국에서의 자리가 달라진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부터 2절에서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한다. 이 새 예루살렘이 바로 동산의 완성이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생명수 강이 흐르며, 생명나무가 있다. 잠근 동산과 덮은 우물과 봉한 샘이 온전히 열리는 것이 새 예루살렘이다.

계 21:1-2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그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은혜의 차원이 아니라 열매의 차원이다. 구원 자체는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이다. 그러나 그 구원받은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는 각자의 선택이다. 고린도전서 3장 12절부터 15절에서 바울은 구원받은 자들이 금, 은, 보석으로 짓는 자도 있고 나무, 풀, 짚으로 짓는 자도 있다고 가르친다. 심판 날에 불이 그 공력을 시험하면, 금은 남고 짚은 타 버린다. 동산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같지만, 그 안에서 어디까지 들어가느냐는 각자가 이 땅에서 무엇으로 지었느냐에 달려 있다.

고전 3:13-14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깊이 심은 자는 깊이 거두고, 얕게 심은 자는 얕게 거둔다. 이것이 잠근 동산과 덮은 우물과 봉한 샘의 차이를 만드는 원리이다. 지금 이 땅에서 무엇을 심고 있는지가 그 날 어느 영역에 거주하게 될지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헌신의 씨를 뿌리고, 말씀의 씨를 뿌리며, 성령 안에서 기도의 씨를 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5. 아가서 8장 14절에서 신부가 '빨리 달리라'고 외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아가서 8장 14절은 아가서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 한 구절이 아가서 전체의 결론이자 신부의 최종 고백이다.

아 8:14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빨리 달리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보면 바라흐(בָּרַח)이다. 바라흐의 원래 뜻은 피하다, 도망치다이지만, 여기서는 서두르다, 재촉하다, 어서 오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내 사랑하는 자야, 어서 오십시오, 빨리 오십시오라는 간절한 요청이다.

  이것이 아가서의 마지막 말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지금까지 온 긴 여정, 레바논의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고통받고, 신랑을 잃어버려 찾아 헤매고, 마침내 신랑이 동산에서 일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그 일에 동참하며 성장해 온 신부의 최종 고백이 이것이다. 빨리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이것이 성숙한 신부의 마지막 고백이다.

  이 고백은 요한계시록 22장 20절의 고백과 정확히 일치한다.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심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구약 아가서의 신부가 마라나타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마라나타는 주님, 오시옵소서라는 뜻이다. 이 간절한 기다림이 아가서의 결론이다.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신부가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랑 없이는 동산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부가 동산 안에 있지만, 신랑이 아직 오시지 않았다. 그래서 신부는 신랑이 어서 오시기를 기다린다. 신랑이 오실 때 비로소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시작된다. 신랑 없는 동산은 아직 완성이 아니다.

  또한 빨리 달리라는 표현 뒤에 향기로운 산들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다는 수식어가 붙는다. 노루와 어린 사슴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상징이다. 빠르게 달려오시는 그분, 가볍고 민첩하게 오시는 그분, 땅에 속하지 않으시고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그분을 노루와 어린 사슴이 표현한다.

  아가서 2장 8절부터 9절에서도 이미 신랑이 노루처럼 산에서 달려오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라고 하면서, 그가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다고 하였다. 아가서의 처음 장면에서 신랑이 노루처럼 달려왔고, 마지막 장면에서 신부가 노루처럼 빨리 달려오라고 재촉한다. 수미쌍관의 구조이다.

아 2:8-9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이 빨리 오라는 외침은 오늘 우리의 고백이기도 하다.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고, 그 날을 기다리며, 그 날을 준비하는 것이 성숙한 신부의 삶이다.

  처음에 신부는 신랑을 기다리기만 했다. 신랑이 나타나면 기뻐했고 신랑이 사라지면 찾아 헤맸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에는 신부가 먼저 빨리 오라고 재촉한다. 이것은 신부의 성장을 보여 준다. 처음에는 신랑의 사랑을 받는 존재였지만, 이제는 신랑의 오심을 재촉할 만큼 주도적으로 그 관계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 7절에서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다고 선언한다. 신부가 준비된 것이다. 아가서의 신부가 빨리 오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준비된 신부만이 담대히 신랑에게 어서 오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다. 준비되지 않은 신부는 신랑의 오심이 두렵다. 그러나 준비된 신부는 그 오심을 사모한다. 이것이 두 종류의 신부를 구별하는 기준이다. 지금 나는 주님의 재림을 두려움으로 기다리는가, 아니면 사모함으로 기다리는가. 이 질문이 우리 각자의 신앙 상태를 점검하게 해 준다.

계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니

  신앙의 성숙은 이렇게 수동적인 수혜자에서 능동적인 동반자로 변해 가는 것이다.

  또한 이 빨리 오라는 외침 안에는 세상에 대한 갈망이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성숙한 신부는 세상의 것들을 더 이상 붙잡지 않는다. 신랑이 어서 오시기를 바란다는 것은 이 세상의 것들보다 신랑을 더 원한다는 뜻이다. 세상을 놓지 못하면 신랑의 오심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을 내려놓은 자, 신랑만을 사모하는 자만이 빨리 오십시오를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다. 처음에는 신랑의 사랑을 받기만 하던 신부가, 이제는 신랑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고 재촉하는 자로 성장했다. 이것이 아가서가 보여 주는 신부의 완성이다.

 

6. 히브리어 노루(채비)와 어린 사슴(아이알)은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어떻게 묘사하는가?

  아가서 8장 14절에서 신부는 신랑에게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이 빨리 달리라고 말한다. 노루와 어린 사슴이라는 두 동물이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두 동물의 히브리어 이름 안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

  먼저 노루이다. 히브리어로 채비(צְבִי)이다. 채비의 어근인 차바(צָבָא)는 싸우다, 정렬하다, 전쟁에 나가다는 뜻이다. 그리고 차바에서 파생된 채비는 영광, 빛남, 광채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노루 채비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영광을 얻은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 싸움에서 이기시고 영광을 얻으신 분으로 오신다는 것을 노루라는 단어가 표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십자가에서 사탄을 이기셨다. 사탄이 인간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만들었지만, 그것은 도리어 사탄이 불법을 저지르게 된 것이었고, 부활로써 그 죽음의 권세를 이기심으로 완전한 승리를 거두셨다. 그 승리의 영광을 가진 분이 재림하신다. 요한계시록 19장 11절에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백마를 타고 오시는데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불린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신 분이 영광의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다.

계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두 번째는 어린 사슴이다. 히브리어로 아이알(אַיָּל)이다. 아이알의 어근은 울(אוּל)인데, 이것은 힘, 권세, 능력이라는 뜻이다. 어린 사슴이라는 단어 안에 힘과 권세가 담겨 있다.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는 능력과 권세를 가진 분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분, 만유의 권세를 가진 분이 그 권세로 오신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선언하셨다. 그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재림하신다. 마가복음 14장 62절에서는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고 하셨다. 권세를 가지신 분, 구름을 타고 오시는 분, 그분이 어린 사슴 아이알이시다.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또한 노루와 사슴이라는 동물이 가진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이들은 발이 땅에 딱 붙어서 걸어가는 맹수들과 다르다. 사자나 표범은 발을 땅에 딱 붙이고 걷는다. 그러나 노루와 사슴은 팔짝팔짝 뛴다. 이 땅에 발을 붙이지 않는 것이다.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속한 분이 아니시다. 하늘에서 오시는 분이시다. 우리도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에 딱 붙어서 살지 말고, 노루와 사슴처럼 이 땅을 밟고 있지만 이 땅에 속하지 않은 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 동물들이 가르쳐 준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선언한다. 노루처럼, 사슴처럼, 이 땅에 발을 딱 붙이지 않고 하늘 시민권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빌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시 18:33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는도다

  노루 채비와 어린 사슴 아이알, 이 두 단어 안에 영광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와 권세로 오시는 그리스도가 담겨 있다. 아가서가 마지막 단어까지 얼마나 정교하게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는지를 이 두 히브리어 단어가 보여 준다.

  사도행전 1장 11절에서 천사는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말한다. 올라가신 그대로 오신다. 그런데 오실 때의 모습은 이미 아가서가 묘사하고 있다. 노루처럼, 어린 사슴처럼, 빠르고 영광스럽고 권세 있게 오신다. 이 땅에서 신부를 사랑하며 일하셨던 분이 신부를 데려가러 노루처럼 달려오신다.

행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그리고 아가서 2장 8절부터 9절에서도 이미 신랑이 산을 달려오는 장면이 노루와 어린 사슴으로 묘사되었다. 아가서의 처음과 끝이 같은 동물로 연결된다. 처음에 신랑이 노루처럼 신부를 찾아왔고, 끝에 신부가 신랑에게 노루처럼 빨리 오라고 재촉한다. 이 수미쌍관의 구조 안에 아가서 전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처음에는 신랑이 주도적으로 찾아오셨고, 마지막에는 신부가 주도적으로 기다린다. 처음에는 신부가 신랑에게 이끌리는 자였고, 마지막에는 신부가 신랑의 오심을 재촉하는 자가 된다. 이 변화가 아가서가 보여 주는 신부의 성장이다. 아가서 전체의 구조가 이 성장을 보여 준다. 1장에서 나는 검으나 아름답다라고 자신을 표현하던 신부가, 8장에서는 빨리 오십시오라고 담대히 외친다. 처음의 신부는 자신이 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족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신랑의 사랑 안에서 성장하여 마침내 신랑과 같은 마음을 품는 자가 된다. 신랑이 기다리시는 것을 알기에 신부도 함께 기다리며 재촉한다.

아 1: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포도원지기로 일하던 그 여인이 동산에 거주하는 자가 되어 신랑을 재촉한다. 이것이 신앙의 여정이다. 신랑이 먼저 찾아오심으로 시작된 관계가, 이제 신부가 신랑의 오심을 재촉함으로 마무리된다. 구원은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시고, 우리의 사모함으로 완성을 향해 달려간다. 빌립보서 1장 6절에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한다. 시작하신 분이 완성하신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면 그분이 반드시 완성으로 이끄신다.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한다. 신랑이 먼저 오심, 그것이 구원의 시작이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신랑이 먼저 오심, 그것이 구원의 시작이다. 그 구원이 완성되기까지 우리도 달려야 한다. 그러나 그 구원이 완성되기까지 우리도 달려야 한다. 신부가 빨리 달리라고 재촉하는 것은, 신랑의 오심을 간절히 바라는 만큼 자신도 그 오심을 위해 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다리되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7.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고벨화가 되신 이유는 무엇이며, 백합화(아네모네)와 어떻게 대비되는가?

  아가서에는 두 가지 식물이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각각 상징하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하나는 고벨화이고 다른 하나는 백합화, 히브리어로 수산나이며 우리가 아네모네라고도 부르는 꽃이다. 이 두 식물의 대비가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피조물인 우리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드러낸다.

  고벨화는 나무이다. 아가서 4장 13절에서 고벨화는 동산 안의 나무들 가운데 등장한다. 나무는 생명이 길고 강하며 뿌리가 깊다. 고벨화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카파르(כָּפַר), 즉 속죄하다, 몸값을 지불하다는 동사에서 왔다. 그래서 고벨화를 속죄나무, 구속의 나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나무는 세 가지 색을 가지고 있다. 빨간색은 피를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 흰색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노란색은 천국의 실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왜 고벨화가 되셨는가? 우리 때문이다. 우리가 죄를 지어 귀신의 노예가 되고 영원히 지옥에 갈 운명에 처했을 때, 창조주이신 그분이 친히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독생자가 피조물의 몸을 입으시고, 피조물을 위해 자신을 속전으로 내어 주신 것이다. 이것이 창조주가 고벨화가 되신 이유이다.

  반면 백합화, 즉 아네모네는 풀이다. 마태복음 6장 28절부터 30절에서 예수님은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이라고 표현하신다. 아네모네는 오늘 피었다가 내일 질 수 있는 연약한 풀이다.

마 6:28-30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우리 인간은 이 아네모네와 같다. 오늘 피었다가 내일 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인생의 영화는 풀의 꽃과 같고 아침 안개와 같다. 우리는 스스로 여우를 잡을 수 없다. 귀신들의 억압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술람미 여인이 내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라고 고백했듯이, 우리는 연약한 아네모네이다.

  그러나 이 연약한 아네모네 안에 강한 고벨화 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오신다. 그분이 우리 안에 오실 때 여우들을 잡을 수 있게 된다. 귀신들이 쫓겨 나간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고벨화이신 그분이 연약한 아네모네인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 우리도 원수의 진영에 깃발을 꽂는 자가 될 수 있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나무와 풀의 대비, 고벨화와 아네모네의 대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대비이다. 그러나 이 대비가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강한 나무이신 고벨화가 연약한 풀인 아네모네를 신부로 취하신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신부로 삼으신다. 이것이 아가서가 선포하는 가장 놀라운 복음이다. 로마서 8장 29절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고 한다. 창조주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고벨화이신 그분의 세 가지 색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피 흘리심(빨간색)을 통한 속죄, 흰색의 순결함, 노란색의 천국 영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질 때 신부는 완성된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벨화이신 그분이 아네모네인 우리를 자신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신다. 이것이 구원이다.

  에베소서 5장 25절부터 27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선언한다. 그 목적이 교회로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이다.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물인 교회를 신부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주셨다. 이것이 고벨화가 되신 이유이다.

엡 5:25-27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8. 초림 때 약하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재림 때 강하게 오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다른가?

  예수 그리스도는 두 번 오신다. 첫 번째 오심, 즉 초림은 약한 자로 오신 것이다. 두 번째 오심, 즉 재림은 강한 자로 오시는 것이다. 아가서는 이 두 가지 오심을 모두 담고 있으며, 특히 재림에 대해 신부의 간절한 고백으로 마무리된다.

  초림의 예수 그리스도는 연약함으로 오셨다. 빌립보서 2장 7절에서 그분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선언한다. 아기로 태어나시고, 목수의 아들로 자라시며,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과 함께 사셨다.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죽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초림의 약함이었다.

빌 2:7-8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나 그 약함은 계획된 약함이었다. 사탄은 예수님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약점으로 보고 죽였다. 그러나 그 죽음을 통해 오히려 사탄이 불법을 저지르게 되었고, 부활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다. 히브리서 2장 14절에서 예수님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다고 선언한다. 이것이 초림의 역설이다. 약하게 오셔서 죽으심으로 가장 강한 승리를 거두셨다. 죽음을 통해 죽음을 이기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서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선언한다.

고전 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히 2: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는 강한 자로 오신다. 아가서 8장 14절의 노루 채비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영광을 얻은 자를 상징하고, 어린 사슴 아이알이 능력과 권세를 가진 자를 상징한다는 것이 이미 살펴보았다. 요한계시록 19장 11절부터 16절에서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백마를 타고 오시며, 그의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불리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이름이 옷과 허벅다리에 기록되어 있다.

계 19:15-16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초림과 재림의 차이는 또 다른 측면에서도 드러난다. 초림에는 약하게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다. 재림에는 강하게 오셔서 심판을 행하신다. 우리가 그분을 신랑으로 맞이하느냐, 심판주로 맞이하느냐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 회개하지 않은 채 그분을 맞이하면 그분은 심판주이시다. 그러나 그분의 피로 죄를 씻고 신부로 준비된 자에게는 그분이 신랑으로 오신다.

  그러므로 초림의 약하심을 아는 자는 감사하고, 재림의 강하심을 아는 자는 두렵고 떨림으로 신부를 준비한다. 아가서의 신부가 빨리 달리라고 외치는 것은 두려움에서 나온 외침이 아니다. 사랑에서 나온 외침이다.

  초림과 재림 사이에 우리가 살고 있다. 초림으로 구원의 길이 열렸고, 재림으로 그 구원이 완성된다. 이 사이에서 우리는 신부를 준비해야 한다. 초림이 준 것을 누리면서, 재림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우리의 시간이다. 베드로전서 1장 13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고 권면한다. 마음의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준비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재림을 바라면서 지금 이 땅에서 허리를 동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부의 삶이다. 이것이 아가서의 신부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모범이다. 아가서의 신부는 처음부터 완전하지 않았다.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두려움을 경험했고, 신랑이 두드릴 때 문을 열지 않는 실수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빨리 오십시오를 외치는 성숙한 신부로 완성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여정이기도 하다.

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을 받고(초림의 은혜), 말씀과 성령으로 성장하며(현재의 과정), 재림을 사모하는 것(신부의 완성), 이 세 가지가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구성한다.

  디도서 2장 12절부터 13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라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다. 현재를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동시에 재림을 기다리는 것, 이것이 아가서의 신부가 보여 주는 삶이다.

딛 2:12-13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3절에서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고백했다. 이것이 아가서의 신부가 빨리 오라고 외치는 마음과 같다. 세상에 있는 것보다 신랑 곁에 있는 것이 훨씬 더 좋기 때문에 빨리 오라고 재촉한다.

빌 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사랑하는 자의 오심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나온 간절한 재촉이다. 이 사랑이 우리가 신부를 준비하는 동력이 된다.

 

9. 나오며

  아가서 5장 1절의 동산이 천국임을 확인하고, 그 동산 안의 세 가지 풍성함인 몰약과 향료와 꿀과 포도주와 젖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헌신한 자의 향기, 말씀을 먹은 자의 기쁨, 성령을 마신 자의 생명, 이 세 가지가 천국 동산의 풍성함이다.

  아가서 4장 12절의 잠근 동산과 덮은 우물과 봉한 샘은 천국 안에서의 신분 차이를 보여 준다. 단지 구원받아 동산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봉한 샘까지 나아가는 자가 될 것인가. 이 땅에서의 신앙의 깊이가 천국에서의 거주 영역을 결정한다.

  아가서 8장 14절은 아가서의 마지막 구절이며 신부의 최종 고백이다. 빨리 달리라, 어서 오십시오, 마라나타. 이 간절한 기다림이 신부의 완성된 모습이다. 요한계시록의 마라나타가 이미 아가서에서 선포되고 있다.

  노루 채비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여 영광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어린 사슴 아이알은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오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재림하시는 그분은 초림 때의 약한 모습과 달리 강한 자로 오신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오신다.

  고벨화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아네모네인 우리의 대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대비이다. 그러나 창조주가 피조물을 신부로 취하신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이것이 아가서가 말하는 가장 충격적인 진리이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아내로 삼으신다. 나무가 풀을 품으신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신부로 선택하신다. 이 일을 위해 창조주가 몸값을 지불하셨다. 그것이 고벨화 속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강한 나무이신 고벨화가 연약한 풀인 아네모네 안에 들어오실 때, 우리는 비로소 귀신을 쫓아내고 원수의 진영에 깃발을 꽂는 자가 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재림주로 기다리는 자, 빨리 오십시오를 진심으로 고백하는 자,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며 신부로 준비되어 가는 자, 이것이 아가서가 제시하는 성도의 마지막 모습이다.

  아가서는 왕에서 시작하여 재림주로 마무리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고, 창조주이시고, 속전이시고, 목자이시고, 포도원의 주인이시고, 동산지기이시고, 재림주이시고, 신랑이시다. 이 여덟 가지 신분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 그분의 모든 사역을 설명한다. 이것을 아는 자가 그분을 온전히 알고, 온전히 알 때 온전히 사랑하게 된다. 온전히 사랑할 때 비로소 빨리 오십시오를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다. 이 여덟 가지 신분이 아가서 전체에 걸쳐 선포된다. 이 모든 신분을 아는 자가 진정한 신부이다. 신랑이 누구인지를 온전히 아는 자, 그 신랑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 그 신랑과 함께 동산에 거주하게 될 자, 그것이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모습이다.

  아가서 기독론 강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여덟 가지 신분을 하나씩 알아 온 것이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이다. 그분을 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분을 알아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목적이다. 이 다섯 번째 시간까지 오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다면적이고 풍성한 분이신지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 남은 신부에 관한 내용이 마지막으로 예정되어 있다. 그분을 아는 만큼 우리가 어떤 신부가 되어야 하는지도 더 분명해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고, 그분의 말씀을 먹으며, 성령을 마시며, 헌신의 향기를 피우며 살다가, 마침내 그분의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며 빨리 오십시오를 고백하는 복된 신부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6월 26일(금)

정보배 목사

 

 

[기독론(133)] 아가서_시간표_그리스도의_신분_vora.jpg.webp

 

 

 

 

[기독론(133)] The_Eightfold_Christ.pdf_1_vora.jpg.webp

[기독론(133)] The_Eightfold_Christ.pdf_2_vora.jpg.webp

[기독론(133)] The_Eightfold_Christ.pdf_3_vora.jpg.webp

[기독론(133)] The_Eightfold_Christ.pdf_4_vora.jpg.webp

[기독론(133)] The_Eightfold_Christ.pdf_5_vora.jpg.webp

[기독론(133)] The_Eightfold_Christ.pdf_6_vora.jpg.webp

[기독론(133)] The_Eightfold_Christ.pdf_7_vora.jpg.webp

[기독론(133)] The_Eightfold_Christ.pdf_8_vora.jpg.webp

[기독론(133)] The_Eightfold_Christ.pdf_9_vora.jpg.webp

[기독론(133)] The_Eightfold_Christ.pdf_10_vora.jpg.webp

 

Who's 갈렙

profile
Atachment
첨부 '31'

  1. NEW

    [기독론(133)] 다윗의 아들 솔로몬(11)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5) 창조주와 재림주(아가서 8:14)_2026-06-26(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33)] 다윗의 아들 솔로몬(11)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5) 창조주와 재림주(아가서 8: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UqEtW3mcZyY [기독론(133)] 다윗의 아들 솔로몬(11) 아가서에 나오는...
    Date2026.06.26 By갈렙 Views84
    Read More
  2. [기독론(132)] 다윗의 아들 솔로몬(10)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4)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아4:12-5:2)_2026-06-25(목)

    아침묵상입니다(투박한 글 요약) 제목: [기독론(132)] 다윗의 아들 솔로몬(10)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4)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아4:12-5: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zlfsiieZce4 1. 들어가며 아가서는 예...
    Date2026.06.25 By갈렙 Views138
    Read More
  3. [기독론(131)] 다윗의 아들 솔로몬(09)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3)(아가서1:14)_2026-06-24(수)

    아침묵상입니다(정제된 요약 글). 제목: [기독론(131)] 다윗의 아들 솔로몬(09)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3)(아가서1: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RrwVaYWaQJY 1. 들어가며 아가서는 성경 66권 가운데서도 매우 독특한...
    Date2026.06.24 By갈렙 Views67
    Read More
  4. [기독론(130)] 다윗의 아들 솔로몬(07)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2)( 아가서 4:9~5:2 )_2026-06-23(화)

    아침묵상입니다(정제된 요약 글). 제목: [기독론(130)] 다윗의 아들 솔로몬(07)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2)( 아가서 4:9~5:2 )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e9f_TUkraVA 1. 들어가며 아가서는 성경 66권 가운데 가장 깊고...
    Date2026.06.23 By갈렙 Views77
    Read More
  5. [기독론(129)] 다윗의 아들 솔로몬(07)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1)(아가서3:6~11 )_2026-06-22(월)

    아침묵상입니다(정제된 요약 글). 제목: [기독론(129) 다윗의 아들 솔로몬(07)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1)(아가서3:6~11 )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3iT_tPBgq-o 1. 들어가며 구약 성경을 읽는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
    Date2026.06.22 By갈렙 Views116
    Read More
  6. [기독론(127)] 다윗의 아들 솔로몬(05) 지혜의 3가지 방면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지혜(고전1:18~31)_2026-06-19(금)

    아침묵상 요약입니다(투박한 요약). 제목: [기독론(127)] 다윗의 아들 솔로몬(05) 지혜의 3가지 방면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지혜(고전1:18~3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D6EOSr8i32o 1. 들어가며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은 과연 누구로 예표되...
    Date2026.06.19 By갈렙 Views190
    Read More
  7. [기독론(126)] 다윗의 아들 솔로몬(04) 그는 평화의 왕이자 지혜의 왕이었다(02)(잠8:11~36)_2026-06-18(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6)] 다윗의 아들 솔로몬(04) 그는 평화의 왕이자 지혜의 왕이었다(02)(잠8:11~3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KlMu5KPPQsw 1. 들어가며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이다.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왕의 예표를 보...
    Date2026.06.18 By갈렙 Views170
    Read More
  8. [기독론(125)] 다윗의 아들 솔로몬(03) 그는 평화의 왕이자 지혜의 왕이었다(01)(왕상3:1~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5)] 다윗의 아들 솔로몬(03) 그는 평화의 왕이자 지혜의 왕이었다(01)(왕상3:1~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Dp4JsG_SQhU 1. 들어가며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살필 때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사실이 있다. ...
    Date2026.06.17 By갈렙 Views170
    Read More
  9. [기독론(124)] 다윗의 아들 솔로몬(02)”그는 메시야에 대한 어떤 예표자인가?(02)(왕상 4:20~34)_2026-06-16(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4)] 다윗의 아들 솔로몬(02)”그는 메시야에 대한 어떤 예표자인가?(02)(왕상 4:20~3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kFkuAEFbJfc 1. 들어가며 다윗의 이야기는 결코 다윗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다윗은 ...
    Date2026.06.16 By갈렙 Views154
    Read More
  10. [기독론(123)] 다윗의 아들 솔로몬(01) 그는 메시야에 대한 어떤 예표자인가?(01)(삼하7:8~17)_2026-06-15(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3)] 다윗의 아들 솔로몬(01) 그는 메시야에 대한 어떤 예표자인가?(01)(삼하7:8~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iSRdz_kLeHM 1. 들어가며 다윗을 오래 살핀 이유는 단순히 한 위대한 왕의 일대기를 배우기 위...
    Date2026.06.15 By갈렙 Views158
    Read More
  11. [기독론(120)]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6) 그는 전쟁에 능한 자였다(03)(시24:7~10)_2026-06-12(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0)]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6) 그는 전쟁에 능한 자였다(03)(시24:7~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LH5-_yQy5EM 1. 들어가며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전쟁에 능한 자라는 사실이다. ...
    Date2026.06.12 By갈렙 Views196
    Read More
  12. [기독론(11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5) 그는 전쟁에 능한 자였다(02)(시편24:7~10)_2026-06-11(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5) 그는 전쟁에 능한 자였다(02)(시편24:7~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XxZNSynCtQA 1. 들어가며 예수님을 믿는 순간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신앙은 위험하다. 구원...
    Date2026.06.11 By갈렙 Views181
    Read More
  13. [기독론(118)]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4) 그는 전쟁에 능한 자였다(01)(시24:7~10)_2026-06-10(수)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8)]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4) 그는 전쟁에 능한 자였다(01)(시24:7~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HftS79XS4J8 1. 들어가며 지금까지 우리는 다윗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았다. ...
    Date2026.06.10 By갈렙 Views198
    Read More
  14. [기독론(117)]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3)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5)(시51:1~19)_2026-06-09(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7)]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3)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5)(시51: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mQ8T-U8Veqw 1. 들어가며 이번 시간은 구약의 기독론 시리즈 가운데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에 ...
    Date2026.06.09 By갈렙 Views173
    Read More
  15. [기독론(11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2)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4)(시51:1~19)_2026-06-07(주일)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2)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4)(시51: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R3lkAyHzK88 1. 들어가며 이번 기독론 연속 강해 116번째 시간이자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으...
    Date2026.06.08 By갈렙 Views226
    Read More
  16. [기독론(11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9)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1)(시38:1~13)_2026-06-05(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9)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1)(시38: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NMuZ0Ly2igs 1. 들어가며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억된다. 그는 골리앗 앞에...
    Date2026.06.05 By갈렙 Views212
    Read More
  17. [기독론(11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8) 다윗의 저주시, 과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시51:10~12)_2026-06-04(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8) 다윗의 저주시, 과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시51:10~1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Bu-ht_hrNmM 1. 들어가며 시편을 읽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
    Date2026.06.04 By갈렙 Views216
    Read More
  18. [기독론(111)]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7)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4)(시22:1~21)_2026-06-03(수)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1)]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7)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4)(시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SMRwAH_FhHU 1. 들어가며 다윗은 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이다. 이사야를 메시아 ...
    Date2026.06.03 By갈렙 Views194
    Read More
  19. [기독론(110)]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6)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3)(시22:1~21)_2026-06-02(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0)]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6)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3)(시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MpzXbxrIduQ 1. 들어가며 다윗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불리는 인...
    Date2026.06.02 By갈렙 Views190
    Read More
  20. [기독론(10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5)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2)(시22:1~21)_2026-06-01(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5)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2)(시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8_z-Y2WW3yY 1. 들어가며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구약 성경을 통해서 살...
    Date2026.06.01 By갈렙 Views20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17 Next
/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