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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9. 25. (금)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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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nofWSS9XIZk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온라인새벽기도회(2026.09.25/금)] [사역자론(19)]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국에서 받을 5대 면류관은 무엇인가?(03)(창35:9~1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nofWSS9XIZk

 

[설교핵심]

이 설교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천국에서 받게 될 5대 면류관 중 충성, 의, 그리고 승리의 면류관의 의미와 자격을 성경적 인물들을 통해 심도 있게 조명합니다. 저자는 단순한 일회성 헌신이 아닌 끝까지 변함없는 충성과 고난을 이겨내는 합당한 삶의 증명이 면류관의 핵심 조건임을 역설합니다. 특히 야곱과 요셉의 생애를 본보기로 삼아, 영적 축복에 대한 강렬한 사모함과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이자 면류관의 실체임을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성도들이 현실의 역경을 하나님의 단련 과정으로 수용하며, 개인의 축복을 넘어 공동체적 사명을 완수하여 하늘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강력히 독려합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

1. 충성의 면류관과 의의 면류관은 어떤 삶을 끝까지 산 사람에게 주어지는가?
2. 승리의 면류관은 무엇이며, 맡겨진 과업을 ‘이긴다’는 뜻은 무엇인가?
3. 하나님은 왜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어떤 복을 약속하셨는가?
4. 야곱은 어떻게 장자권을 사모하고 그 복을 자녀들에게까지 넓혔는가?
5. 야곱의 이십 년과 얍복강 기도는 승리의 길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6. 요셉은 꿈을 붙들고 어떤 고난을 지나 맡겨진 사명을 완수했는가?
7. 오늘의 사역자는 무엇을 사모하고 견디며 자신의 과업을 완수해야 하는가?

 

사역자론(19)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국에서 받을 5대 면류관은 무엇인가?(03)

(창 35:9-12)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이번 시간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국에서 받을 면류관(冕旒冠, crown) 가운데 세 번째 면류관을 살펴보려 한다. 앞선 시간에 살펴본 충성의 면류관과 의의 면류관을 기억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도 분명해진다. 주어진 일을 한 번 잘하는 것으로 끝나는가? 아니면 맡겨진 일을 끝까지 감당하며 마침내 완성하는가? 면류관에 대한 말씀은 그 질문을 우리 앞에 놓는다.

  예배를 한 번 드리고, 헌금을 한 번 하고, 교회를 위해 청소를 한 번 한 일도 헛되지 않다. 그러한 수고는 천국 집을 짓는 재료로 올라간다. 그러나 면류관은 한 번의 수고만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주님은 우리에게 작은 일을 맡겨 보시고, 그 길을 변함없이 걸어가는지를 지켜보신다. 이 땅에서 무엇을 사모하고 어떤 시련을 통과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과업을 이루는지가 우리의 영원한 상과 연결된다.

  이번에 살펴볼 승리의 면류관은 다른 사람보다 앞서 도착한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길이 있으며, 그 길에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내고 맡겨진 사명을 완수한 자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이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 불리고, 요셉이 긴 고난 끝에 가족의 생명을 보전한 일을 통해 그 뜻을 헤아릴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충성과 의의 면류관을 기억하면서 야곱과 요셉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과업을 완수했고, 우리도 어떻게 승리의 면류관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충성의 면류관과 의의 면류관은 어떤 삶을 끝까지 산 사람에게 주어지는가?

  첫 번째는 충성(忠誠, faithfulness)의 면류관이다. 누구나 한 번은 잘할 수 있다. 교회에서 음식을 한 번 만들고, 청소를 한 번 하고, 물질을 한 번 드리는 것도 귀하다. 그 일 하나하나가 천국 집의 재료가 된다. 하지만 주님께서 보시는 충성은 끝까지 변함없이 그 일을 감당하는 데 있다. 처음의 열심이 사라지고 어려움이 닥치자 일을 내려놓는다면, 그 수고를 오래 지켜 낸 사람과 같을 수 없다. 충성의 면류관을 생각할 때 우리는 늘 ‘얼마나 오래 주님께 맡은 자리를 지켰는가’를 물어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을 준비시키실 때 처음부터 큰 일을 맡기지 않으신다. 작은 일을 하나 맡겨 보시고 그가 어떻게 감당하는지 지켜보신다. 그 일을 성실히 마치면 다음 일을 맡기실 수 있다. 작은 일도 거절하면서 큰 일을 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쓰임 받을 수 있겠는가? 믿음의 분량이 모자라거나 마음이 교만하면 오래 견디지 못한다. 주님이 맡겨 주신 일이 작아 보여도 그것을 충실히 감당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한 번 쓰시고 곧바로 면류관을 씌워 주시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가 같은 마음으로 맡은 일을 계속하는지를 보신다. 누가 시켜 줄 때만 잠깐 움직이다가 다음에는 하지 않겠다고 물러서면, 맡기실 일이 점점 줄어든다. 주님이 쓰실 사람으로 부르셨는데도 본인이 그 기회를 거부한 셈이다. 그래서 자신을 돌아볼 때 ‘주님이 왜 큰 일을 주시지 않는가’부터 따질 것이 아니라 ‘지금 맡은 작은 일에 충성하고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쓰임 받을 기회를 가볍게 여기고 뒤늦게 후회해도 지나간 시간이 저절로 돌아오지 않는다. 장자의 복을 소홀히 여겼던 에서가 나중에 눈물로 그것을 구했으나 돌이키지 못한 일을 히브리서 12장은 들려준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작은 일을 맡기실 때, 또 주의 종을 통해 일할 자리를 열어 주실 때 순종해야 한다. 지금 맡은 자리에서 충성하지 않으면서 훗날 천국에서 충성의 면류관을 바라기만 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는 의의 면류관(義의 冕旒冠, crown of righteousness)이다.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 상을 받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낸 사람에게 주어진다.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며 믿음을 지켰으므로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고백했다(딤후 4:7-8). 말로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한 것이 아니다. 고난을 겪고 시련을 통과하면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길을 끝까지 걸어간 것이다.

  주님께서 지켜보시는 것은 시작의 뜨거움만이 아니다. 바람이 한 번 불자 주저앉아 짜증을 내고, 어려운 일이 생기자 금세 돌아서는 마음으로는 그 길을 완주할 수 없다. 믿음의 심지가 굳어야 한다. 바울이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말한 것처럼, 주님께서 맡기신 길을 끝까지 가야 한다. 그 길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고 나서야 의의 면류관을 바라볼 수 있다. 그렇다면 끝까지 가는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길에서 맡겨진 과업 자체를 완성한 사람에게는 무엇이 주어지는가?

  천국에서 면류관을 받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상을 받을 만한 삶을 이 땅에서 살아 내는 일은 쉽지 않다. 바울에게도 선한 싸움이 있었고 달려야 할 길이 있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뒤에야 그는 의로우신 재판장이 주실 면류관을 말할 수 있었다. 주님께서 ‘이 일을 감당한 네 삶이 옳다’고 인정하실 만한 길을 걸어야 한다. 면류관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땀 흘려 지킨 믿음의 길과 연결되어 있다.

3. 승리의 면류관은 무엇이며, 맡겨진 과업을 ‘이긴다’는 뜻은 무엇인가?

  세 번째가 승리의 면류관(勝利의 冕旒冠)이다. 여기서 ‘이긴다’는 말을 전쟁에서 적을 무찌르는 뜻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 이 땅에 보내실 때 각자에게 맡기신 과업을 끝까지 수행하고 완성하는 것이 승리다.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는 사람이 고난 속에서도 달려갈 길을 지켰다면, 승리의 면류관을 쓰는 사람은 마침내 그 길에서 맡은 일을 완수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 면류관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면류관을 가리키는 헬라어 ‘스테파노스’에는 경기에서 이긴 자가 받는 관의 뜻이 들어 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은 경기하는 자가 썩을 면류관을 얻으려 절제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것을 얻으려 한다고 말씀한다. 디모데후서 2장 5절도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면류관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의 승리를 세상 경기의 일등 상 하나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는 한 사람에게만 맡기신 길을 두고 다른 사람을 모두 패자로 만드시는 분이 아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끝까지 감당한 자를 보시고 ‘너는 네 사명을 잘 마쳤다’고 인정하신다.

  중도에 그 길을 버린다면 승리의 면류관을 기대할 수 없다. 데마는 한때 바울과 함께 복음 전파의 어려움에 참여했으나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바울은 기록했다(딤후 4:10). 그가 끝까지 머물렀다면 어땠겠는가? 필자는 맡겨진 길에서 돌아서는 일을 두렵게 여긴다. 천국에서 어떤 자리에 이를지도 그 길의 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중에 힘들다고 떠나 버리면, 함께했던 수고가 있다고 해도 완수한 사람의 상을 받을 수는 없다.

  고린도전서의 경기하는 사람이 절제하는 까닭은 결승선을 향해 가기 때문이다. 그가 경기 도중 마음대로 코스를 벗어나면 아무리 빨리 뛰었어도 면류관을 받을 수 없다. 사역자의 길도 그렇다. 시작할 때 능력이 보였는지, 사람이 많이 따랐는지보다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마지막까지 어떻게 수행했는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승리의 면류관을 사모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에게 주어진 과업을 분별하고, 그 과업에서 도망가지 않아야 한다.

  승리한 사람들의 생애에는 고난과 역경이 빠지지 않는다. 욥과 모세, 다니엘과 여호수아, 다윗을 생각해 보라. 그중에서도 야곱과 요셉은 맡겨진 일을 붙들고 오래 견디는 길을 특별히 선명하게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셨다고 해서 모든 장애물을 즉시 걷어 내시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죽을 고비를 넘고 긴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을 두려워하여 물러서면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 주께서 사람을 단련하시는 과정으로 받고 끝까지 서 있어야 한다.

4. 하나님은 왜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어떤 복을 약속하셨는가?

  창세기 35장 9절부터 12절을 보자.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그에게 나타나 복을 주셨다. 야곱은 떠날 때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지팡이 하나를 들고 요단을 건넜지만, 돌아올 때는 아내들과 자녀들과 많은 소유를 데리고 왔다. 라헬이 베냐민을 낳기 전의 일이므로 그에게는 열한 아들과 딸 디나가 있었다. 그가 빈손으로 떠났다가 두 무리를 이루어 돌아온 사실을 먼저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부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창세기 32장 얍복강의 씨름 뒤에 이름에 관한 말씀을 들었고, 창세기 35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 그 이름을 거듭 확증하셨다. 야곱이라는 이름에는 발뒤꿈치를 붙잡은 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스라엘에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이 있다. 필자는 여기서 ‘이겼다’를 하나님을 적으로 삼아 싸워 굴복시켰다는 뜻으로만 읽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길을 붙들고 결국 그 과업을 이루어 냈다는 뜻으로 읽는다.

창 35:10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알리시며 야곱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하셨다.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그에게서 나오고 왕들이 그의 허리에서 나오며,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땅을 그와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창 35:11-12).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신 말씀을 들어 보라. 주님께서 못 하셔서 그 일이 막힌 것이 아니다. 사람이 포기하면 약속을 붙들고 걸어갈 길을 놓치지만, 끝까지 그 길을 걸으면 하나님께서 없던 길도 여실 수 있다. 야곱의 이름을 바꾸신 일에는 그런 복의 선언이 함께 있었다.

  하늘에서 왕 노릇 하는 자리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스라엘이라 불릴 만한 이긴 자, 곧 주께서 맡기신 과업을 완성한 자가 그 영광을 받는다고 본다. 야곱에게서 왕들이 나오리라는 약속을 볼 때, 우리는 그가 한때 장자권을 갖고 싶어 했다는 사실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얼마나 넓게 이루어 갔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 복은 야곱 한 사람의 자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아브라함과 이삭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필자가 이번 말씀에서 특별히 야곱에게 주목하는 까닭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그가 걸어온 길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이, 이삭에게서 야곱이 났다. 야곱에게서는 장차 열두 아들이 나와 한 백성의 기초가 된다. 약속의 자손이 한 사람에서 여러 지파로 넓어지는 자리에 야곱의 생애가 놓여 있다. 그렇기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은 그저 자녀가 많아졌다는 감탄이 아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백성의 길이 실제로 열리고 있다는 선언이다.

5. 야곱은 어떻게 장자권을 사모하고 그 복을 자녀들에게까지 넓혔는가?

  야곱이 이긴 자가 된 길의 출발은 사모함이다. 리브가의 태에서 쌍둥이가 나올 때 에서가 먼저 나오고 야곱은 그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나왔다. 필자는 그 장면에서 형보다 앞서 복을 받고 싶어 했을 만큼 사모하는 야곱의 마음을 본다. 태중에서 그가 실제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성경이 기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발뒤꿈치를 붙잡은 장면은 훗날 장자권을 향해 매달린 그의 삶과 이어진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향한 사모함이 있다.

  그는 형 에서가 사냥하고 돌아와 허기졌을 때 팥죽을 끓여 장자권을 샀다. 필자가 설교에서 짚은 나이로는 야곱이 열여섯 살 무렵이었다. 에서는 배고픔 앞에서 장자권을 가볍게 여겼다. 야곱은 그 권리를 얻고자 기회를 붙잡았다. 그 뒤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으로 눈이 어두워진 아버지 이삭에게서 장자의 축복까지 받았다. 필자가 살펴본 야곱의 나이로는 일흔여섯 살 무렵이었다. 그 과정에 속임이 있었고 형제의 갈등이 깊어졌다. 그러나 장자의 복을 향해 그가 얼마나 집요하게 나아갔는지도 드러난다.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과 바꾼 에서와 무엇이 다른가?

  야곱은 그 복을 얻고도 편히 지내지 못했다. 에서가 죽이려 하자 어머니의 말을 따라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했다. 떠날 때 그에게 있었던 것은 지팡이 하나와 기름병이었다. 벧엘에서 꿈을 꾸며 하늘과 땅 사이를 오르내리는 천사들을 보았고, 하나님께서 자기 길에 함께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길을 혼자 가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은 낯선 땅으로 향하는 그에게 붙들 말씀이 되었다.

  필자도 처음부터 성경을 잘 알았던 사람이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교회에 가서 말씀을 듣고 싶었다. 당시 같은 학년 고등부 학생만 약 백오십 명이었다. 그런데 설교 시간에 스피노자와 소크라테의 말, 토끼와 거북이 같은 세상 예화는 많이 들려주면서 정작 다니엘이나 사드락·메삭·아벳느고, 바울과 야곱의 이야기는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성경 인물을 아직 모르던 필자는 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주보에서 수요일의 ‘수요 성서 강의’를 보고 광주중앙교회 변한규 목사의 말씀을 들으러 갔다. 그때 ‘필자는 성경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결심 뒤에도 성경을 깨닫는 길은 쉽지 않았다. 제대로 된 핵심을 찾기 위해 오래 공부해야 했다. 잠깐 감동을 주는 예화나 육체의 복을 받은 이야기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천국을 사모하고, 고난을 통과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었다. 필자는 자신의 은사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회개를 약 칠 년 전한 뒤 더 깊이 공부하던 때, 은사를 살펴보니 처음에는 ‘은사 사모함의 은사’를, 다시 이 년 뒤에는 ‘은사 열어 주는 은사’를 알게 되었다. 사 년 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사역의 능력을 알지 못했다.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 함께해야 한다는 사모함 가운데 주님께서 이 길로 이끄셨다고 믿는다. 받은 것을 돈이나 이름을 위해 쓰지 않고, 다른 사람도 말씀의 실제를 알도록 돕고 싶다.

  야곱에게도 복을 독차지하는 것만이 마지막 목표는 아니었다. 훗날 얍복강에서 자녀들을 데리고 형에게 돌아가야 했을 때, 자신이 겪은 형제 간의 아픔을 자녀들에게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한 사람에게만 두지 않고 자녀들이 함께 언약(言約, covenant)의 계승자가 되기를 구했다고 본다. 뒤에 태어난 베냐민까지 포함하여 열두 아들이 한 백성의 줄기가 되었다. 넷째 아들 유다는 요셉을 죽이지 못하게 막고, 나중에는 베냐민을 위해 자신을 내놓았다. 자기 어머니의 자식만 생각하지 않고 형제를 지키려는 마음이 그에게 왕권의 계보를 잇는 자리를 열었다고 필자는 본다. 진정한 장자의 복은 남을 밀어내고 혼자 차지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함께 복을 누리도록 길을 넓히는 데까지 가야 한다.

6. 야곱의 이십 년과 얍복강 기도는 승리의 길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이십 년을 보냈다.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 일한 칠 년은 며칠처럼 여겼다. 그러나 약속한 날에 먼저 아내가 된 사람은 언니 레아였다. 그 뒤 라헬도 아내가 되었고, 자녀가 없던 라헬은 자신의 여종 빌하를 내어 주었다. 레아의 여종 실바까지 더해져 네 여인에게서 자녀들이 태어났다. 레아에게서 딸 디나도 났다. 야곱은 그 긴 세월을 지나 열한 아들과 디나를 데리고 돌아왔다. 베냐민은 귀향 뒤에 태어난다.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다는 약속의 길이 이미 그 가정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 앞에는 두려운 소식이 기다렸다.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온다는 것이었다. 야곱은 먼저 예물을 보내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 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는 얍복강에 홀로 남아 밤새 씨름하고 기도했다. 지팡이 하나로 떠났던 사람이 이제 두 무리를 이루었지만, 그 자녀들을 잃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자기 목숨만 살겠다고 도망치지 않고, 함께 돌아온 가족 모두를 붙들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필자는 그 기도의 중심을 이렇게 읽는다. ‘주님, 장자의 축복을 한 사람만 차지하려 한 일 때문에 형제 사이에 피 맺힌 아픔이 남았습니다. 이십 년이 지나도 형은 사백 명을 데리고 옵니다. 이제는 이 자녀들이 서로 죽이고 빼앗지 않게 하시고, 모두 언약의 계승자로 살게 해 주십시오.’ 이것은 성경에 그대로 기록된 야곱의 기도문이 아니라, 그의 생애와 그 밤의 간구를 묵상하며 붙든 뜻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야곱이 그 밤에 자기만의 장자권을 넘어 여러 자녀가 함께 누릴 복을 붙들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신 일이 더욱 깊이 다가온다.

  하나님은 야곱이 강에 이르기 전에도 그가 혼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다. 벧엘의 꿈에서는 천사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고, 귀향 길의 마하나임에서는 하나님의 군대를 만났다. 필자는 마하나임의 ‘두 무리’를 묵상하며 한 무리는 야곱 곁을 지키고 다른 무리는 에서에게 가서 그의 마음을 돌이키는 하나님의 도움을 생각한다. 성경이 두 천사 무리의 행로를 낱낱이 기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야곱에게 먼저 천사를 보이신 하나님께서 그 앞길도 이미 돌보고 계셨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호수아 앞에 하나님의 군대 장관이 나타났던 것처럼, 주님께서는 당신이 맡기신 일을 향해 가는 자에게 도움을 준비하신다.

  야곱이 그 밤을 자기만 살겠다는 두려움으로 끝냈다면 자녀를 위한 복을 붙들지 못했을 것이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놓지 않고 복을 구했다. 필자가 오늘날 주님께 받은 은사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자는 우상숭배의 흔적이 있던 집안에서 태어나 뒤늦게 신앙을 배웠다. 스스로 특별한 자격이 있다고 여길 수 없다.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치는 사역까지 다른 사람도 감당하도록 돕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주님께서 특별히 어떤 사람에게 맡기신 몫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복을 혼자 붙들어 놓지 않고 몸 된 교회의 지체들이 함께 쓰임 받도록 길을 열고 싶은 마음은 버릴 수 없다. 야곱이 보여 준 승리의 길은 하늘의 복을 사모하고 그 복을 함께 누릴 자리를 넓히는 길이다.

7. 요셉은 꿈을 붙들고 어떤 고난을 지나 맡겨진 사명을 완수했는가?

  야곱에게서 시작된 복이 후손에게 이르러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요셉을 보라. 필자는 야곱이 이긴 자의 표상이라면 그 복의 꽃은 요셉에게서 피었다고 본다. 요셉은 열일곱 살 때 형들의 곡식 단이 자기 단에 절하는 꿈을 꾸었다. 다시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도 꾸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겠다는 사실을 먼저 꿈으로 알리신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을 받았다고 곧 높은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다. 꿈과 성취 사이에는 혹독한 시간이 놓였다.

  형들은 그를 미워하여 죽이려 했고 구덩이에 던졌다가 종으로 팔았다. 요셉은 약 십 년 동안 종으로 살고, 다시 삼 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열일곱 살에 꿈을 꾸었던 그는 서른 살이 되어서야 애굽의 총리로 서게 되었다. 종으로 사는 동안이나 죄수로 지내는 동안 모두 긴 인고의 세월이었다.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형들에게 팔리던 날에도, 그는 그 꿈을 버리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다면 지금의 구덩이와 감옥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하는 믿음으로 맡은 자리를 성실히 지켰다.

  필자는 주님께서 사명(使命, mission)을 알리실 때 이렇게 앞날을 미리 암시해 주시기도 한다고 믿는다. 그 뒤에 곧장 길이 열리지 않는다고 약속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요셉은 자기를 종으로 판 형들과 억울한 감옥 생활을 이유로 사람을 미워하며 주저앉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찾아올 수는 있다. 그러나 원망과 살인의 마음이 삶을 지배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품고 오늘 맡은 일을 감당했다. 고난이라는 학교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맡겨진 큰 일을 감당할 사람이 되기 어렵다.

  요셉에게 맡겨진 일은 개인의 출세가 아니었다. 야곱의 가족이 흉년 속에서 살아남고, 약속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도록 길을 여는 일이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필자는 그 땅에 사는 일곱 족속의 죄악이 차는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고 본다. 그 사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자손의 약속은 이어져야 했다. 하나님은 요셉을 당시 큰 나라 애굽의 통치자가 되게 하셨다. 바로가 왕의 자리에 있었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요셉에게 맡겼다. 그 권한으로 요셉은 가족이 살 길을 마련했다.

  야곱의 집안 사람들은 칠십 명이 애굽에 내려갔다(출 1:5). 요셉은 그들이 고센의 목축하기 좋은 땅에 머물게 했다. 애굽 사람들이 목자를 가증하게 여긴다는 사정을 통해, 그들은 애굽 사람들과 섞여 사라지지 않고 따로 살며 번성할 수 있었다. 라암셋으로도 불린 그 땅에서 자손이 많아졌다. 출애굽기 1장 5절부터 7절은 요셉과 그의 형제들과 그 시대 사람들이 죽은 뒤 이스라엘 자손이 생육하고 불어나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야곱에게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이 요셉의 수고를 거쳐 공동체의 열매가 된 것이다.

출 1: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요셉이 높은 자리에 오른 것만으로 사명이 끝난 것은 아니다. 만약 총리의 자리에 앉아 자기 형들에게 원수를 갚았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그 자리에 먼저 보내신 뜻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흉년에 곡식을 구하러 온 가족을 살리고 후손이 머물 땅을 마련했을 때, 그에게 주신 꿈은 여러 사람의 생명을 보전하는 열매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사역의 성공을 개인의 지위와 능력으로만 재어서는 안 된다. 맡겨진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의 약속이 다음 세대에 이어지도록 하는 데까지 가야 한다.

  흉년 중에 형들이 요셉 앞에 섰을 때 그는 자기 생애를 새롭게 고백했다. 자신을 애굽에 판 일로 근심하지 말라고 하며,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고 후손을 보전하시려고 자신을 먼저 보내셨다고 말했다(창 45:5-8). 형들이 자기를 판 사실을 지운 말이 아니다. 그 아픔을 겪고도 그 사건 너머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뜻을 붙든 것이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렸다는 기억에만 갇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먼저 보내셨다는 믿음으로 가족을 살렸다. 이것이 필자가 말하는 섭리 신앙이다. 꿈을 붙들고 종과 죄수의 자리를 견뎌 낸 끝에,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과업을 완수했다.

8. 오늘의 사역자는 무엇을 사모하고 견디며 자신의 과업을 완수해야 하는가?

  야곱과 요셉을 보며 오늘 우리에게 묻고 싶다. 무엇을 사모하며 살아가는가?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보다 귀하게 여겼던 야곱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복을 사모하는가? 아니면 이 땅에서 편안해지고 이름을 얻는 일만 바라는가? 사모함이 없으면 주님께서 주실 것을 가볍게 여긴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정말 사모하면, 지금 주어진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야곱처럼 장자의 복을 붙들고, 그 복이 다른 사람에게도 흘러가기를 구하게 된다.

  그리고 고난이 왔을 때 그 길에 머물 수 있는가? 야곱은 이십 년 동안 타향에서 일했고 얍복강에서 사백 명을 데리고 오는 형의 소식을 들었다. 요셉은 십 년의 종살이와 삼 년의 감옥 생활을 지나야 했다. 고난과 시련을 겪지 않고 큰 사역만 달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맡길 사람의 마음을 먼저 다루신다. 감당하지 못할 듯한 시간이 와도 자신에게 주신 말씀과 꿈을 붙들어야 한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일을 기다리는 동안 원망과 불평에 머물지 말고, 무엇을 배우고 돌이켜야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필자에게도 아직 걸어갈 길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없던 은사가 열리고 사역에 능력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이 길의 끝은 아니다. ‘왜 이런 것을 주셨는가’를 물어야 한다. 돈을 벌거나 자기 이름을 높이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말씀을 전하고, 다른 사람을 살리고, 몸 된 교회가 함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하신 것이다. 은사를 자랑하다 교만에 넘어지면 끝까지 가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필자를 더 훈련하시는 시간이 남아 있다면 그 시간을 피하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는 ‘오래 기도하고 회개(悔改, repentance)했는데 왜 아직 풀리지 않느냐’고 묻는다. 하나님이 못 하셔서 막아 두신 것인가? 필자는 그때 자신에게 더 다루어져야 할 것이 없는지, 아직 배워야 할 훈련이 없는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살펴야 한다고 권한다. 요셉은 꿈을 받았다고 감옥의 문을 스스로 열 수 없었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주어진 일을 성실히 감당했고 하나님의 때에 그 문이 열렸다. 기도가 더뎌 보인다고 맡겨진 자리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

  승리의 면류관은 남과 겨루어 남을 떨어뜨린 사람의 상이 아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과업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위해 사람을 살리고, 고난과 역경을 견뎌 내며 마지막까지 감당한 사람의 상이다. 그러므로 작은 일을 맡았다면 거기서부터 충성하자. 여러 사람과 함께해야 할 일이라면 복을 독차지하려 하지 말고 길을 넓히자. 언젠가 주님께서 ‘네게 맡긴 일을 잘 마쳤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포기하지 말자. 그 길을 간 자가 승리의 면류관을 쓸 것이다.

  고난을 통과하는 동안 자신이 언제 쓰임 받을지를 재촉할 필요가 없다. 야곱에게는 라반의 집에서 보낸 이십 년이 있었고 요셉에게는 종과 죄수로 보낸 십삼 년이 있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가족을 품고 한 백성을 살리는 자리에 이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당장 모든 일이 풀리지 않아도, 주님께서 맡겨 주신 오늘의 일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승리의 길을 걷는 방법이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충성과 의의 면류관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과업을 끝까지 완성한 사람에게 주시는 승리의 면류관을 야곱과 요셉의 삶을 통해 살펴보았다. 충성은 한 번의 열심이 아니라 변함없이 맡은 일을 감당하는 것이고, 의의 면류관은 달려갈 길을 마치며 믿음을 지킨 삶에 주어진다. 승리는 거기서 더 나아가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끝내 이루는 것이다.

  야곱은 장자의 복을 사모하여 붙들었고, 이십 년을 지나 자녀들을 데리고 돌아왔으며, 얍복강에서 가족의 앞날을 위해 매달렸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생육과 번성, 왕들과 땅을 약속하신 까닭을 그 삶에서 생각하게 된다. 요셉은 열일곱 살에 받은 꿈을 놓지 않고 종과 죄수의 세월을 견뎠다. 서른 살에 애굽의 통치자가 되어 가족의 생명을 보전하고 그 후손이 번성할 길을 열었다. 형들의 악행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내심을 붙든 그의 믿음은 맡은 사명을 완성하는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보여 준다.

  주님께서 아직 우리를 이 땅에 두신 까닭이 있다. 땅의 것만 찾느라 하루를 보내지 말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작은 일부터 충실히 감당하자. 시련을 만날 때에는 사모함을 버리지 말고, 받은 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주님의 때까지 견디자. 그리하여 각자에게 맡겨진 과업을 마침내 완수하고 승리의 면류관을 쓰는 영광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9월 25일(금)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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