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205)]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2) 요엘서에 나타난 성령강림의 새로운 변화와 특징은 무엇인가?(욜2:28~29)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왜 요엘의 성령 약속과 오순절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읽어야 하는가?본문 →2모세와 장로들, 엘닷과 메닷의 사건은 성령의 임하심에 관해 무엇을 보여 주는가?본문 →3요엘의 약속이 오순절에 이루어지면서 누가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되었는가?본문 →4직임을 위한 성령의 임하심과 거듭남을 위한 성령의 내주는 어떻게 다른가?본문 →5구약과 신약에서 성령의 은사와 그 지속성은 어떻게 달라지는가?본문 →6은사가 인격의 성숙을 보증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어떻게 분별하고 지도해야 하는가?본문 →7성도는 어떤 목적과 자세로 은사를 구하고 공동체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가?본문 →강의 자료
그림 3 · 슬라이드 271. 들어가며
이번 시간은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를 살피는 두 번째 시간이다. B.C.835-830년경 요엘이 예언한 성령 강림(聖靈降臨)은 약 900년이 지난 후 A.D.30년 오순절날에 마가락방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이때는 과연 누구에게 성령이 부어지게 되었으며,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했는가? 그리고 성령 받은 후에 성령의 은사(恩賜, spiritual gift)가 나타날 경우 사람은 곧 신령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가? 이런 질문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성령을 사모하면서도 은사를 잘못 사용하여 교회를 어지럽힐 수가 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시겠다는 놀라운 약속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은사를 올바르게 감당하는 일은 서로 구별되어야 한다. 성령께서 사람 안에 거하시면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역사와, 사람 위에 임하여 맡겨진 직임(職任)을 수행하게 하시는 능력의 역사가 어떻게 다른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런데 요엘 선지자는 성령이 임함으로 사람들이 예언과 꿈과 환상을 말하며, 공동체를 섬기도록 능력이 부어지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예언을 하였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요엘의 약속이 오순절에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무엇을 분별하고 어떻게 공동체를 섬겨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요엘의 성령 약속과 오순절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읽어야 하는가?
성경은 왜 읽은가? 그것은 그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다. 레위기 23장의 절기만 보더라도 절기를 해석하려 할 때,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자체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이스라엘은 메시아가 오시는 통로였고, 오순절 이후 탄생한 교회 역시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이스라엘 중심으로만 읽으려 하면 절기의 성취를 잘못 해석하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구약 성경이 자신에 대하여 증거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 5:39).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먼저 이스라엘의 일곱 절기 가운데 봄철 절기인 유월절과 무교절과 첫 이삭을 드리는 초실절은 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다. 왜냐하면 유월절양으로 오신 그리스도, 죄없으신 그리스도,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순절(五旬節, Pentecost) 절기가 있다. 이것이 바로 요엘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령강림 예언이다. 그리고 가을에는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이 있다(레 23장). 일곱 절기를 일곱 등잔이 달린 등대에 비유하면, 가운데 등잔에 오순절이 놓이고 그 양쪽로 세 절기씩 있다. 그렇다면 가운데에 놓인 오순절에 무엇이 일어났는가? 부활하시고 높임을 받으신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시는 절기다. 절기의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일로 밝히 드러난 것이다(행 2:33).
사도행전은 오순절에 어떻게 오순절 절기가 성취되었는지를 말해준다. 그날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있을 때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했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했다. 그러자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행 2:1-4).
이때 베드로는 그 일이 사람들이 술 취한 것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때가 제삼시, 곧 아침 아홉 시였기 때문이다(행 2:15). 이스라엘의 하루는 저녁부터 시작하지만, 성령 강림은 그날 아침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드러났다. 이것은 메시아가 이스라엘 가운데 오신 뒤, 그를 믿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일이 넓어지는 전환을 보여 준다.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때 주님을 따르던 약 120명의 성도들은 함께 모여 오직 기도하며 회개하면서 약속을 기다렸다(행 1:12-14). 그러다가 오순절에 그 약속이 실제로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성령 강림을 단순히 신비한 현상 하나가 일어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사람들에게 확장되는 시작이며, 그분의 증인이 되도록 능력을 입히시는 사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 주신 분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그 은사를 누구를 위하여 사용해야 하는지도 분명해진다.
3. 모세와 장로들, 엘닷과 메닷의 사건은 성령의 임하심에 관해 무엇을 보여 주는가?
요엘 2:28~29절에 예언된 요엘의 약속을 이해하려면 먼저 민수기 11장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짐을 홀로 지던 모세는 그 책임이 너무 무겁다고 하나님께 아뢰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 칠십 명을 모아 회막 앞에 서게 하라고 하셨다. 그런 다음 모세에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여 백성의 짐을 함께 맡기겠다고 말씀하셨다(민 11:14-17). 왜 영을 부어 주셨는가? 지도자의 일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직임을 주실 때 그 일을 감당할 능력도 주시는 것이다.
모세는 장로들을 그들을 모아 장막에 둘러 세웠다. 하나님께서 구름 가운데 내려오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에게도 영이 임하게 하셨다. 그러자 그들이 예언했으나 그 예언은 계속되지 않았다(민 11:24-25). 여기서 은사가 나타난 목적을 보아야 한다. 그들이 자기 이름을 높이거나 날마다 예언하며 사람을 모으도록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시고 백성의 짐을 함께 맡기셨다는 표지였다.
그런데 장로들 중에 엘닷과 메닷은 회막에 나오지 않고 진영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도 영이 임하여 진에서 예언했다(민 11:26). 한 소년이 달려와 그 사실을 모세에게 알렸고, 모세를 섬기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들을 말리라고 청원했다. 정해진 자리에 나오지 않았는데 진영에서 예언하니 여호수아의 눈에는 질서에 어긋나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권위가 흔들린다고 여기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더 많은 백성에게 주시기를 원한다고 말했다(민 11:27-29).
민 11:27-29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전하여 이르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나이다 하매 28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이르되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 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모두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받아서 일하기를 바라는 모세의 마음이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만 백성의 모든 일을 감당하게 두지 않으시고 장로들에게 영을 주셨다면, 언젠가 더 많은 사람에게도 주셔야 하지지 않겠는가? 모세의 말은 곧 뒤에 요엘이 전할 약속을 생각하게 한다. 요엘이 활동한 시기는 기원전 835년에서 830년 무렵으로 추정되지만, 모세가 광야에서 이런 소원을 밝힌 때는 그보다 훨씬 앞선 기원전 1445년 무렵이다. 먼저 모세가 모든 백성에게 성령이 임하기를 원했고, 훗날 요엘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그 날을 선포한 것이다. 민수기의 사건은 직임과 성령의 능력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보여 준다.
그 시대에는 하나님의 영을 받은 지도자가 드물었다. 지도자가 없거나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공동체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남유다가 여호사밧 이후 요아스 무렵에 이르기까지 우상숭배와 바알 신앙으로 어지러워진 역사를 생각해 보라. 소수의 사람에게만 영의 역사가 집중되는 상태로는 공동체의 위기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다. 그래서 모든 백성에게 영을 부어 주시겠다는 약속은 단지 개인이 신비한 일을 체험한다는 소식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분의 일을 맡고 감당하게 하신다는 소식이다.
모세가 여호수아의 말을 듣고도 엘닷과 메닷을 막지 않은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라. 모세는 회막으로 나온 장로들이 자기 곁에서만 예언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영을 주신 두 사람이 진영에 남아 예언하는 것을 들었을 때, 차라리 모든 백성이 선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바란 것은 자기에게 집중된 권한을 지키는 일이 아니었다. 백성 모두가 성령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장로들을 세우는 일을 넘어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바라보는 마음이 여기에 있다.
4. 요엘의 약속이 오순절에 이루어지면서 누가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되었는가?
요엘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만민에게(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시겠다고 전했다.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고, 젊은이는 이상을 보게 된다. 남종과 여종도 그 약속에서 빠지지 않는다(욜 2:28-29). 나이가 많으냐 적으냐, 남자냐 여자냐, 높은 지위에 있느냐 낮은 자리에 있느냐가 성령을 받는 경계를 결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오순절의 새로운 변화다.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베드로는 오순절에 나타난 일을 바로 이 요엘의 말씀으로 설명했다(행 2:16-18). 그날 한곳에 있던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으로 말하는 모습을 여러 나라에서 온 이들이 들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듣고 놀랐다(행 2:5-12). 오순절에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 모두에게 방언이 나타났다. 방언은 성령을 받고 그 충만함을 경험하는 데 기본적으로 열려지는 은사다. 하지만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 하나로 그 사람이 어떤 직임까지 온전히 감당할 자격을 얻게 되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또한 요엘의 약속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선언으로 이어진다(욜 2:32; 행 2:21). 구원의 길을 특정 민족이나 소수의 예정된 사람에게만 묶어 놓을 수 없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권하며, 성령의 약속이 당시 듣던 이들과 그 자녀들, 먼 데 사람들에게도 주어졌다고 선포했다(행 2:38-39). 요엘이 예언한 성령의 확대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열리는 구원의 길은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열렸다는 말이, 은사를 받은 사람이 저마다 교회를 떠나 자기 뜻대로 예언하고 사역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예언과 꿈과 환상을 누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요엘은 많은 사람에게 성령이 부어지는 새 시대를 알렸지만, 그 은사의 목적이 하나님과 공동체를 위한 섬김이라는 사실은 똑같다. 문은 넓게 열렸지만, 받은 것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분별과 책임이 요구된다.
그런데 여기서 “누구든지”라는 말을 듣고 두 방향으로 잘못 나아갈 수 있다.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은사를 특정 지도자에게만 묶어 두려 한다. 다른 쪽에서는 누구나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을, 누구나 준비와 분별 없이 사람들 앞에서 예언을 해도 된다는 허락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둘 다 요엘의 약속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한다. 모든 사람이 성령을 사모하되, 실제 은사를 사용하며 직임을 맡을 때에는 그 사람과 공동체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은사를 받은 사실보다 그 은사를 어디에 쓰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 교회에도 이 약속이 절실하다. 한 사람이 나라의 우상숭배와 신사참배의 죄를 회개한다고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빗방울이 모여 시내가 되고, 시내가 모여 강이 되듯이 여러 사람이 함께 회개해야 한다. 필자는 이 시대에 회개와 천국 복음이 한 교회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 민족 가운데 증거되기를 원한다. 지금 이 나라가 영적으로 갈림길에 놓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더 많은 사람을 깨우셔서 각자의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하게 하시기를 구한다.
5. 직임을 위한 성령의 임하심과 거듭남을 위한 성령의 내주는 어떻게 다른가?
성령의 역사에는 두 방면이 있다. 하나는 구원과 관련된 측면이 있고, 또 하나는 직임을 위한 측면이 있다. 즉 사람의 구원과 관련된 성령의 역사는 성령께서 사람 안에 들어가심으로 그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람 위에 내려오심으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맡겨 주신 직무를 수행할 은사와 능력을 얻게 하는 성령의 역사가 있다. 요엘서의 예언은 자녀들의 장래 일 말함과 꿈과 이상,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주심을 앞세우므로 특히 직임을 위한 외적 역사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읽을 때에는 사람 속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변화와 새롭게 하심도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렘31:31-34, 겔 36:26-27).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는 두 방면이 있는 것이다. 먼저, 거듭남 곧 중생(重生, regeneration)은 성령께서 사람의 영 속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일이다. 이것은 사람이 구원받는 것과 연결된다. 반면 위에 부어 주시는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실 때 필요한 도구와 힘을 주는 일이다. 필자는 복음서를 함께 읽을 때 요한복음에서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위에서 능력을 주시는 역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는 것을 본다. 같은 성령의 역사이지만 사람 안의 생명의 역사와 밖으로 나타나는 직임의 능력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의 내적인 역사와 성령의 외적인 역사의 두 측면을 혼동하면 어떻게 되는가? 첫째, 어떤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면 그 사역자가 성숙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환상을 보거나 귀신을 쫓는다고 하여 그 영혼의 성품이 성숙한 자라고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반대로 그 사람에게서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 때문에 성령께서는 그 사람 안에서 일하시지 않는다고 속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둘 다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죄를 버리고 성품이 바뀌는 것과, 밖으로 보여지는 능력을 받아 특정 일을 수행하는 일은 함께 필요한 사역이기는 하지만 같은 자리에 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성령의 내적 사역과 외적 사역을 섞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쪽 사역만으로 그 사람이 온전한 성령의 사역자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성령의 외적인 은사와 능력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자. 만약 어떤 사람이 귀신을 내보내는 직임을 맡은 사역자인데, 그가 축사의 능력을 받지도 않고 그 일을 하면 어떻게 될까? 그는 끝까지 그 일을 감당하기 어렵고 자신이 공격을 받아 위험한 지경에 처할 수도 있다. 이와 반대로, 성령의 은사는 매우 강한데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성품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그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와 능력은 그 사람을 세우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으로 자신의 영광을 받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필자가 사역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사람의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사용하는 사역자가 되려면 먼저 회개를 통해 사람의 안을 정결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은사와 능력을 받아 사용하면 그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타락하여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은사를 사모하는 자인데 계속해 죄를 붙잡고 있다가 은사를 받으면 그는 반드시 내면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들로 인하여 그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비참해질 수 있다.
필자가 성령의 사역자가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성령의 은사는 사람의 신체의 네 부위에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령의 은사가 머리와 가슴에 달라붙고, 그리고 손과 발에 달라붙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만약 자기 안에 악한 영이 많이 있으면, 은사가 내려오다가 사람의 육체에 안착하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고 만다. 은사는 사람의 육체에 내려올 때 스며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죄가 많은 상태에서는 은사가 들어갈 공간이 없기 때문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전히 회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은사를 받게 되면, 그 은사자는 쉽게 타락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받은 성령의 은사보다도 악한 영이 주는 은사에 매료되어 악한 영의 은사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역자가 되기 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회개하는 것이다. 이때 회개하는 목적은 내가 남보다 대단한 은사를 얻어 자랑하려는 데 있지 않다. 이는 죄를 끊고 정결해져서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직무를 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다. 결론적으로 성령의 역사는 먼저는 내주를 통한 인격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그것과 동시에 위에 부어지는 성령의 은사와 능력의 방면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내주는 죄에 대한 깨달음과 거듭남과 그리고 사람의 성격의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먼저 회개한 다음에 직임을 수행하기 위한 능력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개함으로 죄에 대한 깨달음이 깊어져서 성령의 내주를 통한 거듭남을 겪어야 한다.
예를 들어 여기에 영을 볼 수 있는 사람과 악한 영을 내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어떤 이에게는 보는 은사가 탁월하지만, 그에게 축사할 능력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사람에게 은사와 능력은 교회의 필요에 따라 받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은사가 바깥으로 드러나는 모양만 보고 무리하게 축사 사역에 내몰면 그 은사가 오히려 악한 영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사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은사가 더 강해졌는데 그것이 올무가 되어 타락의 길로 접어들 수가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공동체의 필요와 맞물려 구하고 받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사역자는 자신이 성령을 받았으니 이제는 더 이상 설교 준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지 않다. 성령께서는 얼마든지 그 시에 말씀을 주실 수 있다. 그러하면 성령께서 그 이전에 먼저 말씀을 주실 수는 없는가? 있다. 그러나 말씀사역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일반 은사들, 곧 지성과 감성도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 중에서 목회자는 말씀을 연구하고 준비하여 전하라고 특별히 세워진 자이다. 그런데 설교를 준비하지 않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말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와 자기 생각을 혼동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그때그때 떠오러는 성령의 말씀을 전한다면 그것은 설교가 아니라 예언일 뿐이다. 설교에는 예언적인 부분이 들어갈 수 있지만 예언이 설교의 전부일 수는 없다.
6. 구약과 신약에서 성령의 은사와 그 지속성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구약 시대에는 성령께서 사람 위에 내려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구약 시대에는 한 마디로 성령께서 아직 사람 속에 들어와서 연합하여 한 영이 되는 일이 시작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구약 시대에 성령은 대부분 외적인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 위에 내려가셔서 그로 하여금 왕과 선지자와 사사, 특별히 세우신 지도자의 직임을 감당하게 하셨다. 이때 쓰임받았던 사사로는 옷니엘과 기드온과 입다와 삼손 등이 있다. 그리고 왕으로는 사울과 다윗이 있었고, 모세와 여호수아와 여러 장로 등도 성령을 받아 사역하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영이 임한 목적은 조금씩 달랐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일한다는 점은 모두 같았다. 또한 구약 시대에는 성령을 받은 사람이 극히 소수였으며, 공동체 전체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었다.
예를 들어 보자. 구약 시대 사울에게도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여 예언을 하였다. 사무엘이 먼저 그것을 알려 주었고, 사울이 선지자 무리와 함께 예언할 때 사람들은 그가 어찌 예언할 수 있는가 하면서 매우 놀라워했다(삼상 10:5-13).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여 왕으로 쓰실 것이라고 하는 강력한 표적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 사건이 사울의 인격과 이후의 순종을 보증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어 그가 다윗을 죽이려고 사람을 보냈을 때 그가 보낸 사자들에게도 예언이 나타났고, 사울 자신에게도 다시 예언이 나타났다(삼상 19:20-24). 그러나 이렇듯 누구에게 은사가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이 달라진 것이라고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삼상 10:5-6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 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6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또한 민수기 11장에 보면, 모세가 세운 70명의 장로들도 예언을 하다가 그쳤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성령의 은사가 특정 시기에 임하고 또한 멈추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신약의 오순절 이후에는 성령께서 사람 안에 내주하기 시작하면서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역사도 함께 나타났다. 이것 때문에 은사가 한 번 사람에게 임하면 거의 대부분 소멸되지 않고 지속된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받은 은사는 그에 따른 매우 무거운 책임이 뒤따른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은사가 나타났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언제나 올바르게 쓰임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은 사역자가 자신의 욕심과 교만에 사로잡혀 타락을 한다고 할지라도 은사가 계속해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약 시대에는 한 사람이 필요에 따라 특정한 능력을 받았지만 그가 그 일을 마치면 그 사람에게 주어진 성령의 역사가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민수기 11장에서 모세가 선택한 장로들에게서 예언이 나타났다가 다시 나타나지 않은 사례가 좋은 예다. 그리고 구약 시대에 나타난 은사와 능력은 그 사람이 행할 직무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한 사람에게 하나의 은사가 나타났다. 하지만 신약 시대에는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것도 있지만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신약 시대에는 성령께서 한 사람에게 여러 은사를 부어 주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약 시대처럼 비록 사역자의 인격이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일지라도 성령의 은사가 부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 어떤 은사가 나타났다고 해서 그가 인격이 성숙한 단계에 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인격과 성품은 내적인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수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와 능력의 지속성을 가지고, 그 사역자가 인격적으로 매우 성숙한 것이 아닌가 하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구약에서 성령을 받았던 사역자의 숫자와 대상에도 변화가 있었다. 요엘 선지자는 어느 때에 부어질 성령의 은사는 아들과 딸, 늙은이와 젊은이, 남종과 여종을 구분하지 않을 것임을 언급하였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도 특별한 소수만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자신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두고 자신이 무슨 특별히 신령한 사람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신약 시대에는 누구든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누구든지 동일한 직임을 위해 동일한 특별한 은사를 갖는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의 필요와 맡기실 일을 아시고 그에 합당한 능력을 주시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자신에게 공동체의 필요를 따라 성령의 은사가 부어졌으면 그것으로 공동체를 잘 섬길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직임은 수행하지 않으면서 “나도 이런 은사와 능력이 있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회개하지 않고, 은사와 능력이 어떻게 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것인지를 잘못 파악하면,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받은 은사와 능력을 돈벌이나 명예를 얻는 수단으로 돌릴 위험이 커진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 교회와 공동체에 보내셨고, 또한 이 교회와 공동체에 필요한 은사와 능력을 주셨는지를 겸손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공동체를 잘 섬길 수 있어야 한다.
7. 은사가 인격의 성숙을 보증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어떻게 분별하고 지도해야 하는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은사가 뛰어난 사람이 곧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 필자는 예언을 잘하고 환상을 본다는 이유로 한 남자 목회자와 여자 목회자가 함께 교회를 시작한 사례를 지켜 보았다. 얼마 시간이 지난 후 여자 목회자가 성도들을 향하여 자신의 예언이 맞지 않으면 교회를 없애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결국 그 교회는 공중분해되었다. 환상과 예언이 그 사역자에게 나타났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악한 영이 주신 것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목회자였기 때문에 자신이 예언한 것이 그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교회가 은사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채 사용하면 공동체 전체가 흔들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는 성령께서 나타나시는 까닭을 개인의 과시가 아니라 공동의 유익을 위해서 주어진다는 말씀하고 있음을 본다(고전 12:7).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와 능력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주어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신약의 은사자들은 항상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받은 이 은사가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주며 교회를 세우는 것인가?" "내가 받은 은사가 약한 자를 살리고 하나님의 사역을 돕는 것인가?" 만약 그렇지 않고 어떤 사람의 이름을 높이고 사람들을 자기에게 묶어 두려고 한다는 그것은 은사를 오용하고 있는 것이다. 은사자는 자신의 은사가 사용되는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필자는 동탄의 목회 초기에 예언하는 사역자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 말이 맞는지 분별하기 어려웠다. 워낙 영적 지식이 없었고 그 방면에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그 사역자의 예언은 약 95퍼센트가 맞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예언을 받으려고 쫓아다녔고 또한 돈을 바쳤다. 어떤 이는 자신이 목회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지만 나이 일흔이 되도록 목회자로서의 준비는 하지 않고 있었다. 잘못된 예언을 분별하지 못하면 세월과 물질을 낭비하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을 놓쳐버린다.
예언한다고 하는 사람에게 묻고 돈을 바치며 이곳저곳을 쫓아다니는 일은 대체 무슨 일인가? 필자는 이런 모습을 보며 무당에게 묻고 복채를 주는 일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에게 어떤 은사가 실제로 조금은 나타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사역자가 과연 하나님의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 그 공동체를 섬기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어느 공동체에도 속해 있지 않으면서 은사를 남발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예언을 한느 사역자에 주목해야 한다. 만약 제대로 된 예언 사역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사역자가 하는 말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한때 필자도 신사도 운동과 빈야드 운동에 속한, 많이 알려진 예언 사역자를 만나 본 일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길게 예언하던 그 사역자가 필자에게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예언을 테이프에 녹음하여 건네주는 시기였는데, 집에 와서 들어 보니 테이프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 사역자의 음성이 녹음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 일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여러 경험을 거치고 말씀과 은사에 대해 공부를 한 끝에, 예언이 얼마나 잘못되게 사용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제대로 된 지도가 있어야 한다. 사마리아에서 빌립이 그리스도를 전하자 귀신들이 나가고 병든 사람들이 나았으며 남녀가 세례를 받았다(행 8:5-12). 그러나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안수한 뒤에 성령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행 8:14-17). 이것은 사마리아의 새 신자들이 사도들로부터 성령을 받아 한 교회가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으며, 또한 사마리아 교회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끊어진 채 있는 교회가 되지 않고, 사도들의 지도를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행 8:16 -17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필자는 이 장면을 보며 은사에도 바른 지도와 계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때 빌립이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가 복음을 전할 때 귀신이 떠나고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았기 때문이다. 다만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는 그 일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함께 살피고 잘못 사용할 때 그것을 바로잡아 줄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필자의 스승은 자신을 통해 전해진 은사를 누군가 잘못 사용할 때 주님께 구하여 그 은사가 닫히게 할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것은 필자가 들은 사역 경험에 관한 이야기다. 스승을 통해 은사를 받고 지도를 받는 유익과, 혼자 능력을 좇다가 통제 없이 타락할 위험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은사만 보고 따라갔다가 사역자의 거친 성품과 삶 때문에 실망한 사람이 적지 않다. 반대로 인격은 훌륭해 보이지만 고통받는 사람의 문제를 실제로 돕는 능력이 전혀 없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교회에는 성숙한 인격과 직임을 감당할 은사가 함께 필요하다. 그래서 성령의 음성을 분별하고 말씀을 공부해야 한다. 신사도나 빈야드라는 이름, 화려한 예언이나 영적 분위기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말고 그 사람의 삶과 은사의 열매, 공동체 안의 책임을 살펴야 한다.
8. 성도는 어떤 목적과 자세로 은사를 구하고 공동체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가?
왜 은사를 구하는가? 자기에게도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맡아 섬기기 위해서인가? 먼저 일반적으로 주신 재능과 은사로 공동체를 섬길 수 있다.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직무가 주어졌다면 그 일에 맞는 은사를 구해야 한다. 우리 교회에서 필자가 살피기 어려운 영역을 부목회자가 살피도록 영안이 열리는 경우도 있다. 그 은사는 개인의 자랑이 아니라 공동체의 필요에 쓰이도록 주어진 것이다.
회개와 천국 복음 전파는 이 시대에 주어지는 매우 중요한 사역이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들려주실 때에도 표적과 기적으로 사람을 모으셨다. 사람들은 신기한 일을 보러 왔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와 능력도 보이는 일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사람이 회개하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사람을 돕는 데 사용해야 한다. 회개 없이 능력만 좇으면 은사가 드러나도 그것을 바르게 사용할 사람은 준비되지 않는다.
또한 성령의 내적인 음성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령께서 내 안에서 순간순간 들려주시는 말씀에 순종하고,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있어도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소욕을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갈 5:16-17). 탐욕과 자기 자랑을 붙들고 있으면서 더 큰 은사만 달라고 요청할 수는 없다. 인격의 성숙은 내주하시는 성령께 순종하는 자리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필자 역시 주님 앞에서 인격이 성숙하고, 맡겨진 일을 감당할 은사도 합당하게 사용하기를 원한다. 영적 세계를 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넉넉하지 않다. 강한 은사를 얻었다고 안전한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이 성령의 능력을 돈벌이와 명예의 수단으로 삼고 끝까지 돌이키지 않을 때 그 결말이 얼마나 두려운지 영적 체험 가운데 살펴보았다. 생명책의 이름까지 지워질 수 있음을 보았기에 은사를 잘못 사용하는 일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사람은 교회 안에서 더욱 겸손해야 한다. 주님께서 주신 능력을 자기 뜻대로 휘두르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공동체를 떠나 독립하는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 지도받을 것은 지도받고, 잘못 사용했다면 즉시 회개해야 한다. 직분을 맡았다가 교만하여 무너지면 그동안의 수고가 허사가 될 수 있다. “주님, 이 몸을 공동체의 필요에 드리겠습니다. 주신 은사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끝까지 섬기는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
9. 나오며
요엘의 성령 약속이 오순절에 이루어지며 가져온 변화와, 그 은사를 감당하는 길을 살펴보았다. 모세는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영을 받기를 원했고, 요엘은 만민에게 영을 부어 주실 날을 전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으신 뒤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그 약속이 실제 역사 가운데 나타났다. 이제 성령의 은사는 특별한 몇 사람의 장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직임을 위해 공동체 안에서 쓰여야 한다.
성령께서 사람 안에 거하시며 거듭나게 하시는 일과, 위에서 능력을 주셔서 직무를 감당하게 하시는 일은 함께 살펴야 한다. 은사가 인격의 성숙을 보증하지 않으므로, 성도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고 계속 회개해야 한다. 목회자는 말씀을 공부해야 하며, 예언을 받는 사람도 그 말을 성경과 삶의 열매로 분별해야 한다.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공동체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일을 맡아야 한다.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죄를 끊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일반 은사와 특별 은사를 모두 주님의 뜻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지도와 권면을 받아들이고, 받은 직임을 끝까지 겸손하게 수행해야 한다. 그리하여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고 받은 은사로 교회를 섬기는 일을 감당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10월 06일(화) ·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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