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206)]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구약시대의 성령의 내주와 성령의 은사들의 특징은 무엇인가?(욜2:28~29)

이 설교는 구약시대 성령의 내주와 은사들의 특징을 신약시대와 비교하며 영적 세계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먼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천사, 인간이라는 세 가지 영적 존재의 관계를 짚어보며, 구약의 예언자 요엘을 통해 약속된 성령의 부어짐이 오순절 사건으로 성취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이어지는 본론에서는 구약시대 성령이 일부 특별한 인물들에게 한시적으로 임하여 지도력, 예언, 초자연적 능력 등의 은사(선물)를 주었음을 사사기와 왕들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구약의 성령은 죄를 지으면 떠날 수 있었고 주로 육체 위에 머물거나 드물게 육체 속에 들어갔던 반면, 신약시대에는 더 항구적이고 풍성한 은사들이 주어진다는 점을 대조하며 강의를 마무리합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요엘은 누가 언제 누구에게 성령을 부으리라고 예언했는가?본문 →2오순절에 성령과 함께 주어진 선물은 무엇으로 드러났는가?본문 →3성령의 은사가 몸에 임하는 과정에서 회개와 정결은 왜 중요한가?본문 →4구약의 사사와 왕은 성령을 받아 어떤 직임과 능력을 감당했는가?본문 →5사울에게서 성령이 떠난 일과 다윗의 회개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본문 →6구약에 나타난 은사의 종류와 신약 이후의 특징은 어떻게 다른가?본문 →7여호수아·요셉·에스겔에게 성령이 ‘속에’ 들어오신 일은 신약의 내주와 어떻게 다른가?본문 →1. 들어가며
성경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우리가 영적으로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 아프면 검사를 통해 상태를 확인하듯, 영적인 일도 기록된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성경을 읽지 않은 채 눈앞의 현상만 좇으면 무엇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무엇이 사람을 해치는지 분별하기 어렵다.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의 경험은 그들 한 사람에게서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갈 때 그분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천사와 인간, 이 세 영적 존재의 활동이 펼쳐진다. 하나님은 영이시고(요 4:24), 천사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해 보내심을 받는 영이다(시 103:20-21; 히 1:14). 하나님께서는 사람 안에도 심령을 지으셨다(슥 12:1). 그러므로 천사와 인간의 영을 지워 버리고 하나님만 막연하게 이야기해서는 성경의 여러 사건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특별히 사람을 해치는 악한 영과 예수께서 그들을 쫓아내신 복음서의 사건도 외면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어떻게 보내셨는가? 구약에 특정한 사람에게 임하던 하나님의 영은 요엘을 통해 모든 육체 위에 부어질 것으로 약속되었고, 오순절에 실제로 내려오셨다. 이번 시간에는 그 약속을 기준으로 구약의 사사와 왕, 선지자가 어떤 은사를 받았는지 살펴보자. 그 영이 사람 위에 계시다가 떠나실 수도 있었던 시대에, 여호수아와 요셉과 에스겔에게는 왜 ‘속에 들어오심’이라는 말까지 사용되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신약의 성령 내주(內住,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가 얼마나 큰 변화인지 알 수 있다.
2. 요엘은 누가 언제 누구에게 성령을 부으리라고 예언했는가?
요엘의 예언을 읽을 때 먼저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보아야 한다. 요엘서 2장 18절부터 자기 백성에게 응답하시는 분은 여호와다. 그러므로 28절의 ‘내가’는 여호와이며, ‘내 영’은 여호와의 영이다. 그분은 당신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원문의 뜻을 따라 말하면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몇 사람만 쓰시던 때를 지나 성령의 역사를 넓히실 날을 예고하신 것이다(욜 2:18-29).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누구에게 부으시는가? 자녀들, 늙은이들, 젊은이들뿐 아니라 남종과 여종에게도 부으신다(욜 2:29). 그 결과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하고, 늙은이들이 꿈을 꾸며, 젊은이들이 이상을 본다. 이 목록은 나이와 신분에 가로막히지 않을 새로운 성령의 시대를 보여 준다. ‘부어 준다’는 말씀은 몇 방울만 건네는 듯한 표현이 아니다. 물이 쏟아지듯 넉넉하게 부으시는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여러 사람에게 각자의 직임을 감당할 능력을 주실 것이다.
요엘이 활동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835년에서 830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약 900년이 흘렀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일어난 일을 설명하면서 요엘의 말씀을 인용하고, 그때를 ‘말세’라고 선포했다(행 2:16-18). 약속의 시점을 요엘은 ‘그 후에’라고 했고 베드로는 그 일이 자신들이 맞은 새로운 때에 이루어졌다고 증언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전에 하신 말씀을 잊지 않고 약속하신 때에 성취하셨다.
이 역사를 그리스도와 떼어 놓고 읽으면 안 된다. 구약에서 여호와는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이지, 그 이름을 곧바로 성부 한 분만의 이름으로 좁혀서는 안 된다. 신약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경을 읽어야 성령을 부으시는 분도 분명해진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예수를 높이시고, 그분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사람들이 보고 듣는 것을 부어 주셨다고 증언한다(행 2:33). 구약의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성령 강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순절에 현실이 된 것이다.
3. 오순절에 성령과 함께 주어진 선물은 무엇으로 드러났는가?
오순절에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사람들이 앉아 있던 집을 채웠다. 이어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에게 보여 한 사람 위에 하나씩 임했다. 요엘이 모든 육체 위에 영을 부어 주시겠다고 한 말씀이 눈앞의 사건으로 드러난 것이다. 불에 실제 혀가 달렸다는 말이 아니다. 보는 사람에게 불의 모양이 혀처럼 보였다는 뜻이다(행 2:1-3). 그다음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다.
행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때 성령께서 임하셨음을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는가? 눈앞에 보인 불의 모양과 입으로 나오는 말이 그 표적이었다. 성령께서 오실 때 그분의 선물도 함께 온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베드로는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권한 뒤 성령의 선물을 말한다. 그 선물이 사역 가운데 드러나는 것을 은사(恩賜, spiritual gift)라고 한다. 성령을 받는 일과 그분께서 주시는 은사를 함께 살펴야 한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사도행전을 따라가 보자. 사마리아에서는 빌립의 전도를 듣고 믿은 이들이 사도들의 안수를 받고 성령을 받았다(행 8:14-20). 이 장면은 그들이 말한 은사의 종류를 일일이 적지 않는다. 고넬료의 집에서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방언으로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고(행 10:44-46), 에베소의 제자들에게는 방언과 예언이 나타났다(행 19:1-6). 바울이 성령을 받은 사건도 사도행전 9장에 기록되어 있고, 그는 뒤에 자신이 방언을 말한다고 밝혔다(고전 14:18). 필자가 이 사건들에서 주목하는 공통점은 성령께서 사람의 입을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오순절의 사람들은 말하기 시작했고, 고넬료의 집은 방언으로 하나님을 높였으며, 에베소 사람들은 방언하고 예언했다.
방언은 성령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기본적인 말의 은사다. 오순절의 ‘다른 언어들’이라는 표현에서 ‘다른’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테로스’는 평소 하던 말과 다른 종류의 말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누군가는 성령을 받았으면서도 아직 방언을 말하지 못한다. 필자가 사역 현장에서 살펴본 바로는 믿음이 부족하거나 혀를 막는 악한 영이 많아 입이 열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혀를 풀도록 도우며 기도하도록 한다. 방언 한 가지를 자랑하기보다 왜 성령께서 그 입을 열어 주셨는지, 그 말로 누구를 섬길 것인지를 살펴야 한다.
말의 선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눈이 열리면 환상을 보고, 영의 머리에서 꿈을 꾸며, 손에 능력이 나타나면 병을 고치거나 악한 영을 내보내는 사역을 할 수 있다. 필자는 축사 사역 중 손끝에 칼 같은 영적 무기가 장착되고 발에서도 불이 나가는 것을 체험했다. 요엘이 예언과 꿈과 이상을 말한 것은 성령이 가져오실 선물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이 모든 은사를 한 사람의 장식으로 받을 것인가,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일을 하려고 받을 것인가? 선물이 주어지는 목적을 잊으면 은사만 좇다가 정작 직임은 놓치게 된다.
4. 성령의 은사가 몸에 임하는 과정에서 회개와 정결은 왜 중요한가?
성령께서 선물을 주셔도 그 선물이 사람에게 온전히 자리 잡지 못할 수 있다. 필자가 영적 사역 가운데 본 바로는 은사와 능력이 머리와 가슴, 손과 발에 붙어 나타난다. 어떤 은사는 머리에서 지혜와 믿음으로, 어떤 은사는 입에서 말로, 어떤 은사는 눈에서 환상을 보는 능력으로 드러난다. 손에서 불이 나거나 병을 고치는 능력이 나타나고 발에서도 사역을 위한 능력이 나타난다. 그러나 육체에 악한 영이 가득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내려와도 제대로 붙지 못하고 떨어지는 경우를 보았다. 성령께서 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받은 선물이 그 몸에서 온전히 작동할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은사를 사모하는 사람은 먼저 회개해야 한다. 죄를 자백하여 사함을 받고, 자기 속을 깨끗하게 하여 악한 영이 떠나도록 해야 한다. 입으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고백하고 정죄받지 않는다고 선포하면서도 속의 죄와 악한 영을 그대로 두면, 은사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까닭을 모른 채 또 다른 선물만 구하게 된다. 원칙을 아는 것과 실제로 정결해지는 것은 다르다. 회개하여 속죄를 받을 뿐만 아니라 깨끗하고 거룩해지는 과정을 끝까지 가야 한다. 필자가 영적 사역에서 본 은사의 안착은 바로 이 정결함과 연결되어 있었다.
한때 필자는 은사를 얻으려면 얼마나 기도해야 하는지 스승에게 물었다. 하루에 일곱 시간씩 기도하면 방언과 방언 통역과 예언의 은사가 나타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하루 일곱 시간을 기도해 보니 그 시간을 채우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나라와 민족, 교회와 가정을 위해 기도하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방언으로 기도하게 되었다. 그때는 회개기도문의 내용을 충분히 알지 못했다. 지금은 『평생 회개기도문』으로 다섯 시간, 쓴 뿌리를 다루는 기도로 두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큼 무엇을 회개하고 기도할지 알게 되었다. 필자가 깨달은 것은 시간을 채우는 행위보다 필자 안을 정결하게 하는 실제 회개가 먼저라는 사실이다.
은사에 따라 사역의 모양도 다르다. 필자가 지치면 조경미 사모님이 안수하여 도울 때가 있다. 사모님의 손에서 뜨거운 불의 역사가 나타나고, 그 불이 필자 안에 들어와 막힌 것을 풀어 주는 경험을 했다. 필자에게는 뚫고 나가는 능력이 강하게 나타났고 사모님에게는 풀어 주는 능력이 강하게 나타났다. 같은 ‘불’이라고 말해도 하나님께서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맡기신 직임과 작용이 서로 다른 것이다. 필자는 이 차이를 겪으며 배우자의 도움도 하나님의 사역 안에 있다고 감사했다. 은사의 모양만 보고 두 사람을 똑같은 일을 하는 사역자로 묶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은사를 원한다는 말만 계속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을 회개와 정결을 통해 제대로 사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람마다 필요한 직임이 다르므로 은사의 종류도 다르다. 사람을 이끄는 지도력, 손에서 나타나는 치유의 능력, 영의 세계를 보는 은사도 그 목적이 따로 있다. 악한 영이 사람 속에서 사역을 가로막는다고 가르치면서 동시에, 선물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붙들어야 한다. 은사가 붙는지 떨어지는지에만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받은 것을 통해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5. 구약의 사사와 왕은 성령을 받아 어떤 직임과 능력을 감당했는가?
구약에서는 성령께서 모든 백성에게 똑같이 임하여 은사를 나누어 주시지 않았다. 특정한 사람을 세워 국가와 민족, 공동체를 돌보게 하실 때 여호와의 영이 그 위에 임하셨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했다’는 말만 읽고 지나가지 말아야 한다. 누구에게 임하셨고, 그 사람이 무슨 직임을 맡았으며, 임하신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이 세 가지를 함께 보아야 구약의 은사를 이해할 수 있다.
사사 옷니엘의 경우를 보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자로 그를 세우셨고,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자 그는 사사가 되어 싸움에 나갔다. 그 결과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이겼다(삿 3:9-10). 영의 임하심은 자기 안의 기쁨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백성을 이끌고 적에게 맞서는 지도력과 승리로 드러났다.
삿 3:10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자 그는 나팔을 불렀고 아비에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삿 6:34). 히브리어 본문은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을 ‘입으셨다’는 표현을 쓴다. 영께서 그를 온전히 사로잡으셔서 사람들을 부르는 지도력을 주신 것이다. 이어 그는 삼백 명과 함께 미디안 사람들에게 맞섰다(삿 7장). 자신에게 사람이 따르게 할 힘이 원래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맡기신 일을 위하여 성령께서 그를 사로잡으셨기 때문이다.
삼손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강하게 임하자 손에 아무것도 없이 사자를 찢었다(삿 14:6). 나중에는 나귀 턱뼈로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쳤다(삿 15:14-16). 옷니엘에게서 지도력과 승리를 보았다면, 삼손에게서는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던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을 본다. 사사의 직임이 같다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똑같은 선물을 주신 것은 아니다.
왕에게 임하신 영도 보라. 사울은 왕이 되기 전 선지자들의 무리를 만나 함께 예언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고, 실제로 예언했다(삼상 10:5-13). 그가 왕의 직임을 맡을 때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신 것이다. 이후 암몬의 위협을 들었을 때도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여 그의 노가 일어났다(삼상 11:6). 한 사람이 한 번 임하심을 겪었다고 다시는 임하실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때 다른 일을 맡기실 때 다시 능력을 주실 수 있다. 그러나 구약에서 한 사람에게 여러 은사가 나타나는 경우는 흔한 모습이 아니었다.
삼상 10:6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다윗에게도 사무엘이 기름을 붓자 그날 이후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셨다(삼상 16:13). 후에 그는 여호와의 영이 자신을 통해 말씀하셨다고 고백했다(삼하 23:2). 왕이 백성을 다스릴 때는 군사의 힘만 있으면 되는가? 백성이 듣는 말에 권세가 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람을 이끌어야 한다. 필자는 자신의 목회에서도 사람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의 권세가 필요함을 경험했다. 왕에게, 사사에게, 선지자에게 각각 다른 능력이 임한 까닭은 각자가 맡은 일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6. 사울에게서 성령이 떠난 일과 다윗의 회개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
구약의 성령 역사를 말할 때 반드시 보아야 할 사건이 있다. 한때 영이 크게 임했던 사울에게서 여호와의 영이 떠나셨다(삼상 16:14). 예언했고 왕이 되었으니 영원히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타락한 뒤 영이 떠나시자 그는 하나님께 응답을 구해도 응답을 얻지 못했다. 결국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묻는 자리까지 내려갔다(삼상 28:6-7). 은사를 받았던 이력이 현재의 순종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의 삶이 보여 준다.
다윗은 사울에게 일어난 일을 가까이서 보았다. 사울에게도 영이 강하게 임했고 자신에게도 영이 임했는데, 사울에게서 떠나시는 일을 보았다. 그래서 밧세바와 범죄한 뒤 다윗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고 성령이 거두어지는 일이었다. 시편 51편에서 그는 자기 속에 정한 마음을 새롭게 해 달라고 간구한 뒤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말아 달라고 기도한다(시 51:10-11).
시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이어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신다고 고백한다(시 51:17). 죄를 지었는데도 왕이라는 직함과 과거의 기름부음만 붙들겠는가? 다윗은 마음을 찢고 회개했다. 이것이 구약에서 성령의 임하심을 경험한 사람이 붙들어야 했던 길이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시면 그가 맡았던 일을 바르게 감당하기 어렵다. 은사를 받는 것만큼이나 죄를 깨닫고 돌이키는 일이 중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드러난다. 구약에서는 특정 사람에게 영이 임하여 직임을 맡기셨지만, 그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갈 때 성령이 떠나실 수도 있었다. 신약의 오순절 이후에는 성령께서 사람 안에 거하시며 역사하시는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이 내주와 은사의 지속성은 구약의 임하심과 다르다. 신약의 내용을 여기서 모두 앞당겨 설명할 필요는 없다. 이번 시간은 사울과 다윗을 통해 왜 성령이 머무시도록 죄를 회개해야 하는지 분명히 보아야 한다.
7. 구약에 나타난 은사의 종류와 신약 이후의 특징은 어떻게 다른가?
구약에서 영이 임하신 뒤 나타난 선물들을 실제 인물에 따라 정리해 보자. 먼저 예언과 계시다. 모세가 백성의 짐을 나누어질 장로들을 세웠을 때 영을 받은 칠십 명이 예언했다. 진영에 머문 엘닷과 메닷도 그 칠십 명에 속한 채 예언했다(민 11:16-17, 24-29). 사울도 선지자들 가운데서 예언했고, 선지자 발람과 다른 예언자들도 장래 일을 전했다. 어떤 선지자에게는 앞으로 될 일을 말하는 데서 나아가 여호와의 말씀이 들려왔다. 필자는 귀에 임하는 계시의 은사까지 이 범주에서 살핀다. 누구에게 무엇을 전해야 할지 들었으므로, 그것을 백성 앞에 선포할 수 있었다.
다음은 지혜와 지식, 분별이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자 여호수아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해졌다(신 34:9). 그는 모세 뒤를 이어 백성을 이끌 지도자가 되었다. 애굽의 바로는 요셉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다고 알아보았고,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여 나라가 겪을 풍년과 흉년을 대비하게 했다(창 41:25-38). 브살렐은 하나님의 영으로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재주를 받아 성막 제작의 일을 맡았다(출 31:1-5). 요셉의 꿈 해석과 브살렐의 손기술은 모습이 다르지만, 모두 맡겨진 일을 위한 지혜의 선물이었다.
지도력과 통치의 은사도 있다. 옷니엘과 기드온이 사람들을 이끌어 대적과 싸웠고, 사울과 다윗은 왕으로 백성을 다스렸다. 왕에게 기름을 붓는 일도 단순한 지위 표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 직무를 맡기시고 필요한 말의 권세와 능력을 주신 사건이다. 삼손에게는 초자연적인 힘이 나타났다. 엘리야와 엘리사에게는 병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의 역사가 나타났다(왕상 17:17-24; 왕하 4:32-37). 같은 ‘은사’라고 해도 지도력이 필요한 자리와 초자연적인 능력이 필요한 자리가 서로 다른 것이다.
선지자에게 주어진 담대함도 빠뜨릴 수 없다. 하나님께서 백성의 죄를 알리라고 보내셨다면 권력자와 백성의 얼굴을 두려워하며 침묵할 수 없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어리다고 말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가서 명하시는 말을 전하라고 하셨다(렘 1:6-10). 미가와 여러 선지자가 죄를 책망할 수 있었던 것도 맡겨진 말씀을 담대하게 전할 힘을 받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이 시대에 회개를 선포할 때 담대함이 없다면 그 일을 오래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정리하면 예언과 계시, 지혜와 지식, 지도력과 왕의 기름부음, 힘과 치유와 기적, 죄를 책망하는 담대함이 구약에서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소수의 사람에게 그 직임에 맞는 능력을 주셨고, 한 사람에게 대개 한 가지 또는 몇 가지를 맡기셨다. 오순절 이후에는 이 선물들이 끊어진 것이 아니다. 구약의 은사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신약의 성도에게는 성령의 내주로 인한 새로운 역사가 더해진다. 고린도전서 12장이 여러 은사를 나누어 말하는 것도 함께 살펴야 한다(고전 12:8-10). 바울에게서도 아홉 가지 은사가 모두 나타났다. 신약에서는 한 사람에게 여러 은사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구약보다 넓어졌다. 그 차이의 핵심은 다음 시간에 더 살피겠지만, 지금은 선물이 언제나 직임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8. 여호수아·요셉·에스겔에게 성령이 ‘속에’ 들어오신 일은 신약의 내주와 어떻게 다른가?
구약의 성령은 사람 위에만 계셨는가? 대부분은 위에 임하셨지만, ‘그 안에’ 영이 있다고 말하는 사례도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후계자를 세우라고 하실 때 여호수아를 가리켜 말씀하신 표현을 보라. 여호수아 안에 영이 머무신다고 하셨다(민 27:18). 이 말씀을 듣고 구약에도 신약과 꼭 같은 거듭남의 내주가 있었다고 바로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과 이스라엘의 지도라는 무거운 직임을 감당하도록 영께서 그의 육체 안에까지 머무신 사건이다.
민 27: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왜 그에게 특별히 이런 임하심이 필요했는가? 모세의 뒤를 이어 온 회중을 이끌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여호수아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 앞에 세우고 위탁하라고 하셨다(민 27:19-23). 모세가 안수하자 여호수아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했고 이스라엘 자손이 그의 말을 들었다(신 34:9). 그 안에 영이 머무신다는 말씀과, 지혜를 받아 백성의 복종을 이끌어 낸 일이 이어진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라고 말씀하신 이 사례는, 구약에서도 사람 속에 임하심을 말씀한 중요한 본문이다.
다른 두 사례는 누가 ‘안에 있다’고 말했는지도 구별해야 한다. 바로는 요셉을 보며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고 신하들에게 말했다(창 41:38). 그 말의 원문은 요셉 속에 하나님의 영이 계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 판단을 말한 이는 바로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 관해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신 경우와 같은 방식으로 인용할 수 없다. 그래도 요셉에게 주어진 꿈 해석과 지혜가 그 나라의 흉년을 대비하고 가족을 살리는 직임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에스겔은 자신에게 말씀하실 때 영이 임하여 자신을 일으켜 세우셨다고 기록했다(겔 2:1-2). 개역개정판은 ‘내게 임하사’라고 번역하지만, 그 구절의 원문은 ‘내게 들어와서’라는 움직임을 담고 있다. 에스겔 3장 24절에서도 영이 그를 일으켜 세우시는 장면이 다시 나온다. 한편 에스겔 11장 5절에서는 여호와의 영이 그 위에 임하셨다고 말한다. ‘위에 임하심’과 ‘안에 들어오심’을 함께 살펴야 한다. 여호수아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 요셉을 본 바로의 판단, 에스겔 자신의 체험을 모두 한 문장으로 합쳐 버리면 세 본문의 차이를 놓친다.
겔 2:2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그러면 구약의 ‘속에’와 신약의 내주는 어떻게 다른가? 그 영이 어디에, 무엇을 위하여 들어오셨느냐가 핵심이다. 구약의 사례에서는 하나님께서 지도와 예언의 직임을 맡기시려고 사람의 육체 안에까지 임하셨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에 말하는 성령의 내주는 성령께서 사람의 영 안에 들어오셔서 그 영과 연합하시는 일이다(요 14:16-17; 고전 6:17). 사람 위나 육체 안에 임하여 은사를 주시는 것과, 사람의 영 안에 생명의 영으로 거하시는 것을 같은 뜻으로 합쳐서는 안 된다. 구약의 특별한 세 사례를 살핀 까닭도 신약의 성도가 받은 이 변화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9. 나오며
요엘은 그날이 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시겠다고 전했다. 그 약속에 이르기 전 구약의 사사와 왕과 선지자에게 일어난 일을 돌아보면, 성령의 은사가 언제나 맡겨진 직임과 관계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옷니엘은 백성을 이끌어 싸웠고, 기드온은 나팔을 불러 사람을 모았으며, 삼손은 강한 힘으로 싸웠다. 사울은 예언했고 다윗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러나 사울에게서 영이 떠나신 일은 과거에 받은 능력만 믿고 죄를 가볍게 여길 수 없다는 경고다.
구약에도 여호수아와 요셉과 에스겔처럼 영이 사람 속에 계시거나 들어오신 것으로 설명되는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임하심은 특정 사명을 위한 것이었고, 필자는 이를 오순절 이후 성령이 사람의 영과 연합하시는 내주와 구별한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복된 자들인가? 구약의 은사들이 끊어지지 않았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주시는 더 큰 선물도 있다. 그 신약의 특징은 이어지는 시간에 살펴볼 것이다.
지금 우리가 붙들 일은 분명하다. 주신 은사를 자랑하기 전에 죄를 회개하여 정결해지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임을 확인하여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 성령의 선물을 사모하되 자기 이름을 드러내는 장식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주시는 지혜와 말과 능력을 받아 사람들을 섬기고, 끝까지 그 직임을 감당해야 한다.
2026년 10월 07일(수) · 정보배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