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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08. (목)2026년 교회표어 「시대적인 사명완성을 위해 성전을 짓는 해」 (역대상 28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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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207)]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4) 오순절이후 성령의 내주와 성령의 은사들의 특징은 무엇인가?(요엘2:28~29)

정보배 목사2026-10-08조회 6읽는 시간 약 29분

설교핵심

구약 시대에는 소수의 특별한 직임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임했던 성령의 은사가 오순절 이후 요엘서의 예언 성취를 통해 모든 신자에게 보편적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신약 시대의 성령 강림은 단순한 은사의 확장을 넘어 영적 내주와 생명의 분배를 가져왔으며, 특히 구약에는 없었던 방언의 은사와 마지막 때를 대비하기 위한 축사(귀신 축출)의 은사가 새롭게 주어졌다. 결국 이 설교는 신자들이 성령 세례와 은사를 통해 영적으로 무장하고, 종말론적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일꾼으로 온전히 쓰임받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요엘이 예언한 보편적 성령 강림은 왜 사역자의 보편화를 뜻하는가?2일반 은사와 특별 은사는 어떻게 다르며 각각 어디서 오는가?3에베소서 4장의 사도·선지자·전도자·목사와 교사는 어떤 부르심인가?4고넬료 가정의 성령 강림은 성령 세례와 방언에 대해 무엇을 보여 주는가?5내주하시는 성령은 구약과 달리 어떻게 사람의 영 속에 들어오시는가?6오순절 이후에만 나타난 방언과 축사의 은사는 왜 중요한가?7마지막 시대에 성도는 어떻게 성령의 전사로 준비되어야 하는가?
설교 본문 기독론(207)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4) 오순절 이후 성령의 내주와 성령의 은사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욜 2:28-29) ·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요엘서는 특별한 책이다. 특히 성령 강림(聖靈降臨, descent of the Holy Spirit)에 관하여 요엘서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내용은 대단하다. 구약 시대에는 몇몇 사람만 성령을 받았다. 그런 사람들이 죽어 버리거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나라와 민족과 공동체 자체가 위험에 빠졌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특별한 사람에게만 성령을 부어 주지 않고, 남녀를 불문하고, 늙은이와 젊은이와 어린아이를 가리지 않고, 주인이든 종이든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B.C. 835년에서 830년경으로 추정되는 남유다 요아스 왕 때에 활동한 요엘 선지자를 통해 주어졌다. 그러나 그 약속은 A.D. 30년 성령이 강림하실 때까지 성취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뒤 40일 동안 계시다가 승천하셨고, 그로부터 10일 뒤 오순절(五旬節, Pentecost) 날에 성령이 강림하셨다. 그때 마가 다락방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에게, 각 사람 위에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임하였고, 그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했다. 이로써 요엘서 2장 28-29절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요엘의 예언은 특별 성령 강림에서 보편적인 성령 강림으로 바뀔 것을 선언한 것이다. 이번 시간에는 그 보편적인 성령 강림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오순절 이후 성령의 내주와 은사들에는 구약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자.

2. 요엘이 예언한 보편적 성령 강림은 왜 사역자의 보편화를 뜻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시기로 결정하셨는가? 요엘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는 요아스 왕의 시대였다. 그 요아스 왕에서 4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여호사밧 왕이 있다.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친하게 지내면서 자기 아들을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시켰다(왕하 8:18). 그 바람에 남유다가 바알 신앙, 곧 우상숭배(偶像崇拜, idolatry)로 넘어가 버렸다. 하나님께서는 그 죗값을 여호사밧에서 4대인 요아스 왕까지 물으셨다. 이것은 우상을 숭배하면 그 죗값을 묻는다는 원리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하나님의 사람, 곧 지도자가 없게 되면 한 시대가 완전히 끝난다. 한 시대가 망한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나 몇 사람에 의해 나라가 좌지우지되는 것을 보시고,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어 그들로 하여금 그 시대에 일할 수 있게 하셨다.

욜 2:28-29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그러므로 보편적인 성령 강림은 하나님의 사역자의 보편화다. 구약 시대에 성령을 받은 몇몇 사람을 보면 일반 평민에게 준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사역을 맡기기 위해 직임(職任)에 따라 주신 것이다. 그 직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것을 주셨다. 그런데 그 제한을 없애 버리시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으로 사용하실 사람을 누구든지 감당할 수 있도록 다 열어 버리시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필자처럼 우상숭배에 찌들었던 사람도 주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에 쓰임받을 수 있다. 예전 같으면 대대로 좋은 집안, 성골과 진골 같은 사람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성령 받은 사람들로 말미암아 교회가 탄생했고, 각 지역에 교회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목회자가 아니어도 선교사로 간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으면 가는 것이다.

필자는 6년 전부터 성령에 대해 확실하게 경험하고 천국의 상황까지 확인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에게는 직임에 따라 특별 은사가 부어진다는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라. 특별 은사가 없는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다면 그 직분을 감당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구약 시대를 보니 사사의 직임, 왕의 직임, 선지자의 직임, 제사장의 직임을 담당할 때 기름부음과 함께 성령의 특별 은사가 부어졌고, 그 은사로 그 직임을 감당하게 하셨다.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뒤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제자들이 하게 하셨다. 누구든지 성령을 받아 직임을 수행할 수 있지만, 그 직임을 수행하는 사람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은사가 있다.

3. 일반 은사와 특별 은사는 어떻게 다르며 각각 어디서 오는가?

은사(恩賜, spiritual gift)는 보통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일반 은사라 하고, 성령께서 직임을 위해 더 특별하게 주실 때 특별 은사라고 한다. 일반 은사는 로마서 12장에 나오고, 특별 은사는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온다. 딱 부러지게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보편적으로 이렇게 구분해서 말한다.

은사는 선물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특별히 주시는 성령의 선물을 특별 은사라 하고, 사람으로 태어날 때 보통 부모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일반 은사라고 한다.

롬 12:6-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로마서 12장은 특별 은사와 일반 은사를 나누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은사를 보면 성령을 받지 않아도 나타나는 은사가 있다. 처음에 나오는 예언은 고린도전서 12장 8-10절에서 여섯 번째로 나오는 특별 은사다. 그러나 그다음부터 보면 예수를 믿지 않아도 나타나는 은사들이다. 섬기는 일을 잘하는 섬김의 은사가 있다. 가르치는 일을 잘하는 가르침의 은사가 있다. 약한 자들을 위로하고 권면하고 격려하는 은사가 있다. 성실하게 구제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 다스리는 지도력의 은사가 있다. 긍휼을 베푸는 은사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데 성령의 특별 은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노래 잘하는 은사, 건축하는 은사, 음식 잘하는 은사, 아이들을 잘 돌보는 은사, 그림 잘 그리는 은사는 모두 일반 은사다. 일반 은사는 보통 부모로부터 내려온다. 부모가 어떤 부모였느냐가 중요하다. 이번에 우리나라 선수가 체조 도마에서 메달을 따는 것을 보니, 아버지가 도마 국가대표였는데 딸도 같은 종목에서 뛰어난 기록을 냈다. 그 유전자가 벌써 다른 것이다. 운동 잘하는 사람, 노래 잘하는 사람, 음악 잘하는 사람이 다 그런 은사를 가진 것이다.

필자가 말을 해도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것은 조상들이 500년 동안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훈장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손으로 태어나니 자연스럽게 말을 하면 사람들이 귀 기울이게 하는 은사가 있다. 좋은 은사다. 필자는 이 일반 은사를 세상의 학문을 가르치는 데 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데 쓰고 있다.

4. 에베소서 4장의 사도·선지자·전도자·목사와 교사는 어떤 부르심인가?

은사는 직분의 형태로도 표현된다. 에베소서 4장을 보자. 그리스도께서 땅 아래 낮은 곳, 음부로까지 내려가셨던 그분이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분이며,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다(엡 4:9-10). 그렇다면 그분이 올라가셔서 무엇을 하셨는가?

엡 4: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사도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어떤 특별한 직임 때문에 사도적 직임을 가지고 이 땅에 온 사람이 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영적으로 볼 때 천국의 14만 4천 명은 사도적인 직임을 가진 사람들이다. 사도는 예수님 때의 사도뿐이지만, 그들에게는 사도적 직임이라는 특별한 부르심이 있다.

다음은 선지자다. 선지자는 예언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내는 자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내려면 성령께서 계시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 와서 구약과 같은 선지자는 끝났다. 예수님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고 하시고,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고 하신 뒤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11: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까지다. 세례 요한은 율법이 예언한 바로 그분,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로 그분이 오셨다고 증언한 마지막 주자다. 그러므로 구약적인 모든 특별 혜택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종결되었다. 지금은 그런 선지자가 없고, 그런 사도도 없다. 다만 그와 비슷한 부르심이 있다.

여기서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가 틀렸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려 하셨고, 예수님 시대에 암탉이 새끼를 품듯이 그들을 품으셨다(마 23:37). 그러나 그들은 따라오지 않았고,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하면서 스스로 끝내 버렸다(마 27:25). 그러므로 이제 그 민족에게 특별 사역이 주어지지 않는다. 구원받을 남은 자들은 있으나(롬 11장), 하나님은 이제 그들이 아니라 성령 받은 자들을 통해 교회사를 이끄신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사도적 부르심과 선지자적 부르심이 있어야 그 시대에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받을 수 있다.

그다음은 복음 전하는 자다. 다른 말로 전도자라고 번역할 수 있다. 복음 전하는 자도 당연히 성령을 받아야 하지만, 복음을 잘 전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이 있다. 전도에 탁월한 은사가 있는 사람은 전도를 많이 한다. 그런 사람은 진돗개 같아서 한번 물면 놓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 걸리면 교회에 나와야 한다. 교회로 끌고 와 버린다.

마지막은 목사와 교사다. 목사도 물론 성령을 받아야 하지만 목사의 직무를 감당하는 데 필요한 것이 있고, 교사의 직무를 감당하는 데 필요한 것이 있다. 모두 교회와 공동체의 필요를 위해 주시는 것이다. 목사는 일종의 말씀을 가르치는 종이라고 하지만, 본래 목양하는 자다. 양을 먹이고 치는 것이 목양이다. 이 단어는 원래 목자를 뜻하는 ‘포이멘’이다. 양을 치고 양을 돌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특별 은사가 없어도 양 떼를 사랑하고 그들을 돌보는 마음이 충분한 사람이 목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마지막 시대다. 그 정도 수준으로 될 때가 아니다. 지금은 더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

5. 고넬료 가정의 성령 강림은 성령 세례와 방언에 대해 무엇을 보여 주는가?

일반 은사와 특별 은사는 우리 모두에게 함께 주어진다. 그러나 일반 은사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오는 것이고, 특별 은사는 예수를 믿을 때 성령 세례(聖靈洗禮, baptism of the Holy Spirit)가 함께 부어지면서 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 예수를 믿을 때 성령 세례가 함께 부어지는 사람이 있고, 예수를 믿을 때는 특별한 은사가 부어지지 않았지만 믿은 뒤에 성령 세례를 받을 때 방언(方言, tongues)이 터지면서 성령의 은사가 오는 사람이 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자.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이 내려오셨고, 함께 간 할례받은 신자들은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부어 주심을 보고 놀랐다. 그들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기 때문이다(행 10:44-46). 세례도 받지 않았고 안수도 받지 않았는데, 말씀을 듣다가 성령이 부어져 버린 것이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해 버린 것이다.

원래 유대인은 이방인과 교제하면 안 되었다. 그들은 음식법을 확대 적용하여 더러운 것과 접촉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방인과 사마리아인과 접촉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꿈과 환상과 천사를 통해 강제로 베드로와 고넬료를 연결하셨다.

그때 예루살렘 교회는 어떤 상황이었는가?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탄생했다. 그 뒤 구제 문제로 안수 집사 격인 일곱 사람을 세웠고, 사도행전 15장의 최초의 예루살렘 교회 회의를 주관한 사람은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쓴 바로 그 사람이다. 야고보는 할례파의 수장이었고, 할례파의 사도는 베드로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이 한 사람도 없는, 할례받은 사람만 모인 교회였다.

그러니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가 자기를 이상한 사람이나 이단으로 취급할까 봐 해명해야 했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행 11:1). 형제들의 대표는 야고보이고 사도들의 대표는 베드로다. 그리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자 할례자들이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고 비난했다(행 11:2-3). 할례파를 의식하는 베드로의 이런 처지는 뒤에 안디옥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이방인과 식사하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할례자들이 오자 자리를 피해 버렸다(갈 2:11-12).

베드로는 이방인과 유대인을 혈통으로 구분하지 않으신다는 보자기 환상이 세 번 있었다고 보고하고(행 11:10), 성령의 명령으로 유대인 여섯 형제와 함께 고넬료의 집에 갔으며, 고넬료가 천사의 지시로 자기를 청했다고 전했다(행 11:12-14).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행 11:15-17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이 부어져 성령이 말하게 하신 것처럼 똑같이 그들에게도 임했다. 다만 우리는 기도하다가 받았고, 그들은 말씀을 듣다가 받았다. 그러므로 말씀만 잘 들어도 방언이 터질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교단은 방언을 신령한 사람만 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또한 이 사건은 요엘서 2장 28-29절이 유대인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도행전 2장 1-4절에서는 할례받은 유대인에게, 8장에서는 사마리아에, 10장에서는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부어졌다. 개역개정 번역자들은 원문의 ‘모든 육체 위에’를 ‘만민에게’라고 번역했다. 원문 그대로는 아니지만 신약의 해석을 넣은 것이다. 주님께서 ‘모든 육체’라고 하셨을 때 그 모든 육체가 유대인만이 아니었다는 것이 사도행전을 통해 확실해졌다.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는 방언을 통해 감별할 수 있다. 방언 말고 다른 표적도 있겠지만, 방언이 기본적으로 터졌다는 사실을 통해 성령 세례를 받으면 방언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순복음 교단은 교회에 나오면 반드시 방언을 하게 한다. 구역장이 한 달에서 몇 달 동안 집중적으로 기도하여 방언이 터지게 만든다. 순복음 교회의 아주 탁월한 점이다. 장로교에서는 믿기만 하면 다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 말도 틀렸다고 하기는 곤란하다. 그런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이 부어지면 성령께서 그 사람을 사로잡아 혀를 잡고 말하게 하신다.

필자는 방언 세미나에서 이렇게 가르쳤다. 방언은 누구든지 한다. 성령이 내 영 속에 들어오시면 내 영이 생명 주는 영에게서 생명을 받아 거듭난 것이고, 방언은 그 표적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방언한다. 방언을 못 하면 나를 따라 하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분은 혀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분이 나중에 영상을 보며 따라 하다가 방언이 터져 버렸다. 그리고 필자에게 사역을 받으면서 방언을 하는데 영어 방언이 터졌다. 원래 영어를 못 하는 분이었다. 성령이 쇄도하시면 우리의 의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특별한 것이 내려온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1절부터의 사건은 성령 세례이며, 그 성령 세례에는 반드시 방언이 나타났다.

필자도 그런 과정을 겪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친구가 학교에서 사영리를 읽어 주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 우리는 죄인이다, 주 예수를 믿으면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친구를 따라 “주님, 제 마음속에 들어오시고 내 죄를 용서해 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그러자 친구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했으니 이제 너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다. 필자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친구가 성경을 믿을 것이냐, 네 마음을 믿을 것이냐고 물었다. 성경은 잘 몰라도 권위가 있어 보여 성경이 맞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속에 주님이 찾아오셨다. 주님을 처음 본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흰옷이 발목까지 내려왔고 반짝반짝 빛이 났다. 너무 빛이 나서 도저히 바라볼 수가 없어 엉금엉금 기었다. 그런데 주님께서 필자에게 안수 기도를 해 주셨다. 그것이 필자에게 주신 사명이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필자 안에 영이 너무 많아 잘 보이지도 않았다. 지금은 꿈속에서도 예수의 피를 사용할 수 있다. 예전에는 예수의 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만 알았지, 그 피로 귀신을 쫓는다는 것은 몰랐다. 배우니까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이 구원자가 맞다고 믿었다. 1년이 지나 세례를 받았고, 2년이 지나 교회에서 교사를 맡겼다. 초등부 3-4학년 교사였는데 교사가 열두 명 정도 되었다. 아침에 교사들이 모여 기도할 때 한 집사님이 필자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기도했다. 다른 젊은 교사에게 물었더니 방언이라고 했다. 신령한 사람이 되면 방언을 하고, 기도를 많이 해야 신령한 사람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을 지켜보았다. 그분은 아이를 두세 명 받으면 매년 열 명 이상을 졸업시켰다. 필자는 네 명을 받으면 두 명은 떨어지고 두 명을 간신히 졸업시켰다. 그래서 저것이다, 방언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대에 갔을 때 일이다. 필자는 장로교에 있었는데, 종교다원주의(宗敎多元主義, religious pluralism) 신학을 가르치던 한 교수의 직제자가 나이가 많이 들어 입대하여 필자 밑으로 왔다. 그는 예수만 구원자가 아니라고 했다. 필자는 너무 놀랐다. 그 친구의 전도를 받은 날부터 단 한 번도 다른 데를 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따라왔기 때문이다. 감리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몇몇 사람이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고, 감리교는 훌륭한 교단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에게 큰 충격을 받았다. 필자의 사수는 매일 방언으로 기도했는데 그것이 너무 부러웠다. 그래서 제대 5개월 전부터 기도했다. “주님, 세상에 나가면 나가자마자 저에게도 성령 세례의 표적이 있기를 원합니다.”

제대하고 교회에 나갔더니 전단지가 나왔다. 한 목사님이 염주체육관에서 집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집회에 갔더니 그 목사님이 “우리 교회는 다섯 살짜리도 방언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하겠다 싶어 따라 했더니 그날 방언이 터져 버렸다. 그러므로 성령 세례는 따로 받을 수도 있고, 믿어서 생명이 그 안에 와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신령한 사람만 하는 줄 알았는데, 몰라서 못 했던 것이다. 성경은 신령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든지 성령을 부어 주신다고 한다. 그러므로 무엇을 듣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다시 사도행전 11장 17절을 보자.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이라고 한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었지만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의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언제 생명을 주셨는가? 부활하신 뒤 오셔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셨을 때(요 20:22) 내주하시는 성령이 들어갔을 것이고,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성령 세례가 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때는 순차적으로 되었지만 지금은 동시에도 될 수 있다. 예수를 믿을 때 바로 방언이 터질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은사는 선물이고, 성령이 들어오시면 선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의 특별 은사가 오고, 그 특별 은사의 최초의 사건은 방언이다.

6. 내주하시는 성령은 구약과 달리 어떻게 사람의 영 속에 들어오시는가?

방언의 은사는 왜 나타났는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가 육체 속에 머무시던 구약의 경륜(經綸)에서 사람의 영 속에 들어오시는 경륜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사람의 영 속에 들어오시는 내주의 성령은 주로 요한복음이 말하고, 요엘서에 근거한 위로부터 부어지는 성령의 역사는 주로 누가가 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타난다.

구약 시대에도 성령이 들어오신 경우가 있었다. 여호수아나 에스겔이나 요셉 같은 특별한 몇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들어가셨다. 물론 나가실 수도 있었지만 나가지는 않으셨다. 사울 왕에게는 위에 계시다가 떠나셨다. 보통은 다 사람 위에 계셨고, 안에 들어오신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안에 들어오신 경우도 다 육체 속에 들어오신 것이지 영 속에 들어오신 것이 아니다. 왜 그런가? 예수님께서 아직 구속(救贖, redemption) 사역을 완성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영 속에 들어오셨는가? 성령이 영 속에 들어오셔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실 때부터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요 3:5-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영으로 난 것은 구약에 없었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물은 회개를 상징할 것이다. 그리고 성령을 집어넣어 그 사람을 거듭나게 하신다는 뜻이다. 오순절 이전에도 성령은 계셨다. 그러나 그 성령이 사람의 영 속에 들어가지는 않으셨다. 경륜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 성령을 고린도전서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고전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첫 사람 아담은 생령, 곧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마지막 아담이 되신 뒤 살려 주는 영,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언제 생명 주는 영이 되셨는가?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올라가신 뒤에 생명 주는 영을 보내 주셨다. 그러므로 생명 주는 영이 들어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이것이 확실히 일어났다. 위에 부어지는 성령과, 사람의 영 속에 들어가 내주하시는 성령이 동시에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을 때 그 전에 받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는 확실히 모든 사람에게 그 일이 일어났다. 그 120명 가운데는 사도가 아닌 사람도 있었다.

내 영 속에 성령이 들어오시면 내가 생명을 받는다. 이것을 생명 분배라고 한다. 우리 부모가 나를 낳은 것은 육체와 육체의 생명을 분배해 준 것이다. 그러나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사람의 영은 성령으로 나야 한다. 성령으로 나면 영으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가 부모에게서 육체로 태어나 말을 하기 시작하듯이, 성령으로 나면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방언이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성령의 은사가 몇몇 특별한 사람에게 한시적으로 임했지만 그 은사에는 방언이 없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을 때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하더라도 방언의 은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비로소 오순절에 나타났다. 그러므로 생명 주는 영이 들어와 거듭나는 일과, 성령이 부어져 쇄도하여 사로잡으실 때 방언이 터지고 은사가 나타나는 일이 같이 일어나기도 하고 따로 일어나기도 한다. 분명한 사실은 성령이 부어지면 방언을 말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7. 오순절 이후에만 나타난 방언과 축사의 은사는 왜 중요한가?

이제 고린도전서 12장의 특별 은사를 보자. 이것은 성령이 오셔야만, 성령이 부어질 때만 주어지는 특별한 은사들이다.

고전 12:8-10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필자는 원문에 입각하여 이 은사들을 다시 구분해 보았다. 특별 은사가 이 아홉 가지만은 아니지만 핵심은 여기에 있다. 먼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다. 지혜와 지식의 은사는 일반 은사이고,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은 특별 은사다. 지혜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특별한 은사다. 지식의 말씀은 환상을 통해 영적 세계를 보고 “아, 이것이 무엇이다” 하고 지식으로 알아 버리는 은사다.

다음은 믿음이다. 이 믿음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는 일반적인 믿음이 아니다. 지금 내가 안수하면 이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간다는 그런 믿음이다. 다음은 치유의 은사들이다. 치유의 은사는 사람마다 종류가 다르다. 다음은 능력들의 역사들이다. 그 종류도 많다. 엘리야와 엘리사처럼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고, 기적을 행하기도 하고, 독을 해독하기도 한다. 그다음에 예언, 영들 분별, 각종 방언, 방언들 통역이 있다.

이 가운데 예언과 능력들의 역사는 구약 시대부터 있었고, 영들 분별도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구약 성도들에게는 계시, 지혜와 지식의 말씀, 지도력, 초자연적인 힘, 엘리야와 엘리사의 병 고침과 죽은 자를 살림과 비를 그치게 하는 기적, 사울과 다윗의 왕의 직무, 담대함의 은사가 있었다. 그러나 방언의 은사는 없었다. 구약 성도는 단 한 사람도 방언을 한 일이 없다.

그런데 신약에 들어와서 추가된 것이 있다. 각종 방언과 방언들 통역이다. 방언이 없을 때는 방언을 통역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가 핵심이다.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방언 말함은 성령이 부어지실 때 항상 보편적으로 나타난 은사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가 더 있다. 신약 시대에만 나타나는 특별 은사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이 축사(逐邪, exorcism)의 은사, 곧 귀신을 쫓는 은사다. 구약에는 귀신을 정확히 쫓았다고 말할 만한 장면이 단 한 번도 없다. 다윗도 귀신을 쫓은 것이 아니라 연주만 했다(삼상 16:23). 다윗이 사울 속에 있는 귀신에게 나오라고 명하지 않았다. 그때는 아직 구약 시대였다. 귀신이 있기는 있었으나 그 수가 얼마 없었고, 귀신 쫓는 은사도 없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 아직 성령을 주시지 않았을 때 무엇이라 하셨는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셨다(마 10:1, 8). 그런데 병을 고치는 일은 구약 시대에도 있었다. 그러나 귀신을 쫓는 일은 없었다. 그러므로 축사의 은사는 신약에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하늘나라의 기업을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

왜 구약 시대에는 축사의 은사와 방언의 은사가 필요 없었는가? 그때는 귀신이 별로 없었다. 숫자가 적었고 약했으므로 그 영향을 덜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는 이미 사탄의 왕국이 있었다.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말할 때 예수님은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고 하셨다(마 12:26). 또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고 하셨다(요 12:31). 왕국이 있었다. 그놈은 예수님의 공생애 때까지 하늘 보좌까지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그를 쫓아 버렸다. 그것이 요한계시록 12장의 말씀이다(계 12:7-9).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곧 A.D. 30년 이후에 나타난 두 가지 특별 은사는 방언의 은사와 축사의 은사다. 신약 시대에 나타난 방언의 은사는 반드시 받을 필요가 있다. 필자가 일부러 방언 세미나를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언이 기본이 되어야 축사의 은사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8. 마지막 시대에 성도는 어떻게 성령의 전사로 준비되어야 하는가?

신약의 은사들은 구약의 은사들을 그대로 가져오되 더 풍성해졌다. 사역의 직임을 누구든지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이 성취되어 사역자가 더 늘어나게 하려고 성령 세례가 부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축사의 은사가 필요한가? 마지막 때에 귀신이 창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생 가운데서도 무당이 나온다. 옛날에는 청소년 때 신이 내렸는데, 지금은 신이 너무 많이 내려와 초등학교 때부터 신이 들어가 신을 받고 예언을 한다. 유튜브를 보라. 마지막 때가 되니 귀신들이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벧전 5:8). 축사의 은사 없이 이것을 이길 수 있겠는가?

이때 우리는 방언을 통해 나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방언은 내 영 속에 들어오셔서 내주하시는 성령의 은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본적으로 방언을 말하고, 그다음에 회개(悔改, repentance)를 하여 내 안의 귀신을 쫓아낸 뒤 축사의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필자가 매주 금요일마다 귀신 이야기를 하고 전투 기도를 하며 방언 세미나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전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육체를 가진 사람들, 곧 가나안 일곱 족속을 정복했지만 우리는 악한 영들을 정복해야 한다.

아직 방언을 모르는 분은 필자가 1차, 2차, 3차로 진행한 방언 세미나를 보고 성령 세례의 표적으로서 방언을 반드시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회개를 계속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느 날 은사를 붙여 주시고, 축사의 은사도 붙여 주시며, 무기도 장착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

9. 나오며

하나님께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요엘서 2장 28절 이하의 말씀을 성취하시면서 방언을 말하는 은사를 나타내셨다. 모든 사람은 영이 살아나 생명을 공급받아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방언을 말하게 하심으로 알려 주셨다.

이제 마지막 때다. 귀신이 엄청나게 많다. 앞으로 다섯째 나팔이 불리면 무저갱이 열리고 어마어마한 영들이 올라와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계 9:1-3). 그러므로 회개를 많이 해야 한다. 귀신을 쫓는 은사, 귀신을 이길 수 있는 은사를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이 마지막 시대에도 복음을 증언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 나가는 성령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

2026년 10월 08일(목)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