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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16. (금)2026년 교회표어 「시대적인 사명완성을 위해 성전을 짓는 해」 (역대상 28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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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214)]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1) 칼빈의 5대 교리는 과연 성경적인가?(욜2:30~32, 요6:37~39)

정보배 목사2026-10-16조회 7읽는 시간 약 46분

설교핵심

본 설교는 칼빈의 5대 교리 중 무조건적 선택과 성도의 견인을 뒷받침하는 핵심 성경 구절들이 잘못된 번역과 왜곡된 해석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칼빈의 이중예정론은 인간을 멸망이나 구원으로 미리 정해 둔 잔인한 가설일 뿐이며, 성경은 본래 모든 인류를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로 삼으려는 원대한 경륜을 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구속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발생한 이차적인 구원 계획일 뿐 원래의 계획은 생명 분배를 통한 영원한 축복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정보배 목사는 인간이 만든 교리가 아닌 오직 성경 원문의 정확한 뜻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칼빈의 5대 교리는 누가 언제 만들었으며, 이중 예정론은 무엇인가?2왜 교리가 아니라 성경, 특히 예수님의 말씀이 기준이어야 하는가?3요한복음 15장 16절은 왜 만세 전 구원 예정의 근거가 될 수 없는가?4칼빈주의는 요한복음 6장과 10장으로 5대 교리를 어떻게 세웠는가?5에베소서 1장의 만세 전 예정은 왜 속죄가 아니라 생명 분배인가?6타락을 아신 하나님은 왜 인간의 자유의지를 끝까지 존중하셨는가?7요한복음 6장 37-39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설교 본문 기독론(214)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1) 칼빈의 5대 교리는 과연 성경적인가? (욜 2:30-32; 요 6:37-39) ·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이번 시간은 기독론 214번째 시간이며,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 열한 번째 시간이다.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성경적인가를 살펴보았다. 이번 시간에는 그 연장선에서 '칼빈의 5대 교리는 과연 성경적인가?'라는 물음을 정면으로 다루고자 한다.

요엘 선지자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외쳤다(욜 2:32). 그런데 칼빈주의는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구원받을 개인과 멸망할 개인을 이미 정해 놓으셨다고 가르친다. 둘 중 하나는 성경과 맞지 않는다. 필자는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칼빈주의 5대 교리와 칼빈주의에 관한 책들이 근거로 내세우는 성경 구절을 모두 찾아 읽었다. 혹시 단 한 구절이라도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말씀이 있다면 필자가 잘못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칼빈의 5대 교리는 성경적이지 않다. 성경 구절을 말하고 있지만 그 구절을 잘못 해석했거나, 정확한 뜻을 살리지 않고 번역하여 우리를 헷갈리게 만든 것이다. 그 가운데 칼빈의 예정론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구절이 요한복음 6장 37절과 39절, 그리고 요한복음 10장 28-29절이다. 이번 시간에는 이 구절들이 어떻게 5대 교리의 기둥이 되었는지 살펴보고, 요한복음 6장을 헬라어 원문에 입각하여 다시 읽으며,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원래 예정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확인하려 한다.

2. 칼빈의 5대 교리는 누가 언제 만들었으며, 이중 예정론은 무엇인가?

칼빈의 5대 교리를 바로 알려면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 첫째는 그것이 생겨난 역사이고, 둘째는 칼빈 자신이 직접 세운 교리가 무엇인가이며, 셋째는 그 모든 것의 뿌리인 이중 예정론의 내용이다.

첫째, 칼빈의 5대 교리라는 체계는 칼빈이 쓴 것이 아니다. 칼빈(A.D.1509-1564)이 죽고 나서 약 54년 뒤인 1618-1619년에 네덜란드에서 도르트 회의가 열렸다. 그보다 앞선 1610년에 아르미니우스(1560-1609)를 따르던 사람들이 다섯 조항으로 된 항론서를 냈는데, 도르트 회의는 이 알미니안 5대 조항을 배척하고 그 반대 의견을 채택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 칼빈의 5대 교리라고 불리는 것이다. 고로 5대 교리라는 체계는 칼빈 사후에 그의 후계자들이 정리한 것이다.

둘째, 그렇다면 칼빈은 무엇을 했는가? 5대 교리는 전적 타락(全的墮落, 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無條件的選擇, unconditional election), 제한 속죄(制限贖罪, 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혜(不可抗力的恩惠, 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聖徒의 堅忍, 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다. 그 가운데 칼빈이 직접 교리로 세워 강조한 핵심이 둘째 무조건적 선택과 마지막 성도의 견인이다. 무조건적 선택이 곧 예정이고, 성도의 견인이 곧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나머지 셋은 도르트 회의에서 그의 후계자들이 조항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 자신이 칼빈주의 5대 교리 전체를 만든 것은 아니다.

셋째, 칼빈이 만든 예정론을 우리는 이중 예정론(二重豫定論, double predestination)이라고 부른다. 두 가지 예정을 했다는 것이다. 곧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어떤 사람은 영생과 구원으로, 어떤 사람은 영원한 멸망으로 예정하셨으며, 예정이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어떻게 하실지 결정하신 영원한 뜻으로서 인간은 하나님의 그 뜻을 결코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것을 1559년 「기독교 강요」 최종판 제3권에서 더 확대했다. 제3권 21장 5절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경건한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자는 아무도 예정, 즉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생명의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사망을 선고하시는 그 예정을 감히 부정하지 못한다. 우리는 예정을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라고 부르며, 이 작정에 의해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시는지를 스스로 결정하셨다. 이는 모든 사람이 같은 상태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떤 사람을 위해서는 영생이 예정되며 어떤 사람을 위해서는 영원한 저주가 예정되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이 중 어느 한쪽 결말에 이르도록 창조되었으므로, 우리는 그가 생명 또는 사망으로 예정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을 원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을 원하셔서 그렇게 예정하셨다니, 이것은 성경에 없는 말을 쓴 것이다. 칼빈의 5대 교리는 바로 여기에 근거하여 나왔다. 그렇다면 이 5대 교리는 성경적인가? 성경적이지 않다. 필자가 여러 번 말해 왔듯이 칼빈의 예정론은 잘못된 가설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성경이 아니라 칼빈 자신의 주장이었고, 자기가 만든 일종의 교리였다. 고로 그 위에 세워진 5대 교리도 성경적이라 할 수 없다.

3. 왜 교리가 아니라 성경, 특히 예수님의 말씀이 기준이어야 하는가?

교리가 아니라 성경이 기준이어야 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교리는 사람이 만든 것이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람은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구원에 관하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 1차적 본문이기 때문이다.

첫째, 필자는 이 교리를 신봉하여 교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칼빈의 5대 교리가 틀렸으면 자기 목을 걸겠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무모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필자는 성경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건다. 그러나 교리 때문에 목숨을 바치지는 않는다. 교리는 누가 만들었는가? 사람이 만들었다. 필자는 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 오직 필자를 위해서 생명을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성경이기 때문에 필자는 성경을 지키려고 몸부림을 친다. 그래서 누가 필자에게 "당신은 왜 성경을 따라가지 않소?"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그 앞에 무릎 꿇고 굴복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왜 교리를 따라가지 않소?"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무엇이 있겠는가? 왜 우리가 사람이 만든 것을 추구해야 하는가?

둘째, 사람은 틀릴 수 있다. 사도 바울도 임박한 환난 때문에 처녀인 딸을 시집보내지 않는 것이 더 잘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고전 7:26, 38)? 시장에서 파는 것은 우상의 제물로 바친 음식이라도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 하지 않았는가(고전 10:25)?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하지 않았는가(고전 14:34)? 그렇다면 그런 말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인간은 틀릴 수 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하나님만은 틀리지 않으신다. 그래서 필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100% 옳다고 믿는다. 고로 누가 사도 바울의 글을 가지고 따진다면 필자는 그것은 2차적인 성경 본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셋째, 1차적 성경 본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는가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가를 마태복음 22장의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 비유로 딱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으로 초청하신다. 그런데 거기에는 순서가 있었다. 유대인이 먼저다. 그러나 먼저 청함을 받은 유대인, 곧 종교 지도자들이 오지 않았다(마 22:3-6). 누가복음 14장의 어떤 주인의 큰 잔치 비유에서는 그 빈자리에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이 들어온다(눅 14:21). 실제로 그렇게 힘들고 병든 사람들이 먼저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네거리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데려온다(마 22:9-10; 눅 14:23). 이것을 보면 사도행전 1장 8절의 예수님 말씀에 따라 우리가 복음을 전파해야 할 대상에도 순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행 1:8). 그래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좇아야 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문제인데,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은 입으로 주여 주여 부르는 것만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아버지의 뜻을 행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찢어 버리고 바울의 말을 더 높여야 하는가? 그것은 아니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고 그 말씀을 좇아가야 한다.

4. 요한복음 15장 16절은 왜 만세 전 구원 예정의 근거가 될 수 없는가?

요한복음 15장 16절이 만세 전 구원 예정의 근거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성경에는 만세 전 개인 구원 예정과 개인 멸망 예정을 말하는 구절이 단 하나도 없다. 둘째, 이 구절의 선택은 구원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사역을 위한 선택이다. 셋째, 바로 뒤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가 그것을 증명한다.

첫째, 칼빈의 5대 교리는 칼빈의 후계자들이 정리한 것인데, 그들은 성경을 말한다고 하지만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그것을 잘못된 근거로 삼았다. 그래서 필자는 영혼 구원에 관한 성경 구절을 다 찾아보았다. 만세 전에 개인을 구원하기로 예정했다는 구절, 만세 전에 개인을 멸망으로 예정했다는 구절을 다 찾아보았지만 그런 구절은 없었다. 단 한 구절도 없었다. 우리는 신학자들, 특히 조직신학자들이 성경 구절을 달아서 가르쳐 놓았으니 그 주장이 맞겠거니 생각한다. 그러나 그 구절은 교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구절이 아니라 잘못 해석된 구절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제대로 바로잡아야 한다.

둘째, 한 구절을 보자. 요한복음 15장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세 전에 선택하여 구원하기로 예정하시고 어떤 사람은 멸망을 예정하셨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칼빈주의는 그것이 맞다고 하는 성경 구절이 여기 있다고 한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그들은 "보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하여 구원하신다고 하지 않느냐? 그 구원이 어떤 사람에게는 멸망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생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해석이다. 왜 해석인가? 여기서 '너희를 택하였다'는 것은 복음을 전파하고 사역을 맡기기 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역자를 세우시는 선택을 말하는 것이다. 만세 전에 구원을 선택했다는 말은 이 구절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해석을 그렇게 해 놓고 이 말씀을 들고서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고 하니, 그 해설을 들은 사람은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니 속지 말아야 한다. 성경 구절을 말하고 있지만 그 사람이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요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뒤 겟세마네로 가시기 전에 대제사장의 기도를 드리신다(요 18:1).

요 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이는 지금 기도하시는 대상인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려고 선택된 사람들임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복음 전파할 사람으로 쓰시려고 선택하신 것이지, 만세 전에 이 사람들을 구원하기로 선택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말을 바꾸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가설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성경을 똑바로 보아야 하는데 두루뭉술하게 보고 그냥 넘어가니 이것이 성경이라고 하지만 성경이 아니었다. 가설을 세운 것에 성경 구절을 가져다 붙여 놓았으나 그것은 합당한 말이 아니다.

5. 칼빈주의는 요한복음 6장과 10장으로 5대 교리를 어떻게 세웠는가?

필자는 칼빈주의 5대 교리와 칼빈주의에 관한 책에 나와 있는 성경 구절을 다 찾아보았다. 진짜 맞는지, 혹시 한 구절이라도 있으면 필자가 잘못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다른 구절은 다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는 말씀이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하신 것처럼(딤전 2:4),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지 그렇게 결정이 났다는 말이 아니었다. 아니면 방금 본 요한복음 15장 16절처럼 성경 구절을 잘못 해석한 것이었다. 그런데 요한복음 6장과 10장은 달랐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어떤 개인은 구원하고 어떤 개인은 멸망하기로 하셨을 가능성이 좀 있어 보이는 말씀이 있었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일 수 있어 보이는 말씀이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내가 지금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바로 이 구절들이 무조건적 선택과 성도의 견인 교리의 근간이 되는 구절이다. 칼빈주의는 이 두 장을 가지고 세 단계로 5대 교리를 세운다.

첫째, 요한복음 6장으로 무조건적 선택을 세운다. 이 말씀은 오병이어 다음 날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생명의 떡에 관하여 가르치신 말씀이다(요 6:59). 먼저 구원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버지께서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인간이 실패했기 때문에 이제는 구제받을 방법이 있다는 것을 성령께서 선행적 은총(先行的 恩寵, prevenient grace)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 그리고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을 아들이 와서 다 실행하셨다. 잔치를 다 마련하시고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다 준비하신 것이다. 칼빈의 이중 예정론도 이 틀을 쓴다. 아버지가 예정하시고, 그것이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성취되며, 성령의 유효적인 부르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버지의 예정이 '어떤 사람은 구원하고 어떤 사람은 구원하지 않기로 정하신 것'이라는 것이 이중 예정론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 이 구절을 든다.

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칼빈주의는 이렇게 읽는다. 아버지께서 구원할 사람을 예정해 두셨고, 아버지는 그 구원받을 사람을 아들에게 보내 주시며, 아들은 그 사람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반드시 구원해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 이것을 조금 더 응용하면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사람을 위해서만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제한 속죄가 되고, 그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는다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해서 칼빈의 예정 교리,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믿게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그렇게 해석해 놓으면 누가 아니라고 말하기가 곤란하다. 멸망은 여기서 말하지 않지만, 최소한 구원의 문제만큼은 아버지께서 정하신 자를 아들에게 주시고 아들은 그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정론이 맞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정론의 무조건적 선택이다. 아버지가 정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느냐, 아버지가 그를 구원하기로 결정하셨다는데 누가 이의를 달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예정하신 것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라고 한다. 왜 그런가? 네가 선하다 악하다 말하기 전에 아버지는 선하신 분이니, 아버지의 결정을 네가 이해하지 못하면 신비라고 해야 하고,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도 있을 것인데 네 이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거부하지 말고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칼빈이 한 말이다. 그런데 이 구절이 성경을 왜곡하여 번역한 것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둘째, 요한복음 10장으로 성도의 견인을 세운다. 성도의 견인이란 하나님께서 참으로 구원하신 사람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와 보호로 인하여 최종적으로 구원을 잃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게 되므로,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을 수밖에 없다는 교리다. 이 견인 교리의 핵심 구절이 바로 이것이다. 수전절에 예루살렘에서 하신 말씀이다(요 10:22).

요 10:28-29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그들은 "보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내 주신 자가 있고 아들은 그를 반드시 구원하는데,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지 않느냐? 아무도 아버지의 손과 아들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고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생명을 주셨다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느냐?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참이 아니다. 이 성경 구절이 지금 잘못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신학자들 가운데 아는 사람은 안다. 신약학을 진짜로 공부한 사람은 안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 이 구절이 왜곡되어 번역되었다고 밝힌 책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나온 책 가운데 필자가 쓴 「회개와 천국복음」 하나밖에 없다.

셋째, 이 두 장을 이어 붙이면 5대 교리 전체가 완성된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구원받을 자를 예정하시고 아들에게 보내 주셨다(무조건적 선택). 아들은 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제한 속죄). 아버지께서 구원하려고 보내 주신 사람이니 그가 아버지의 사랑을 거부하고 제 마음대로 갈 수 없으며 믿을 수밖에 없다(불가항력적 은혜). 그래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성도의 견인). 그럼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으셨다는 것이다(전적 타락). 이것이 칼빈주의 5대 교리다.

고로 칼빈의 이중 예정론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구절은 요한복음 6장 37절과 39절, 요한복음 10장 28절과 29절이다. 다른 구절은 쉽게 해석을 잘못한 것이고, 이 구절들은 번역을 잘못하여 오해하게 만든 것이다. 멸망 예정은 없어도 영생 예정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여기처럼 확실한 구절이 어디 있겠는가? 한 번의 선택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니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얼마나 확실해 보이는가? 그런데 필자가 헬라어 원문을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그 충격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완전히 속았구나. 칼빈의 예정론자들에 의해서 전 세계 기독교가 완전히 잘못된 안경을 쓸 수밖에 없었구나.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따르지 않으면 이단이라는 말을 그토록 했구나.' 그들은 알미니안주의자들에게 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느냐고 했던 것이다. 사실 알미니안주의에서는 조건적 선택, 곧 예지 예정(豫知豫定)이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다 맞으며, 성경 구절을 하나도 왜곡하지 않았다. 반면 칼빈주의는 성경 구절을 왜곡하여 번역하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교리를 세웠다.

6. 에베소서 1장의 만세 전 예정은 왜 속죄가 아니라 생명 분배인가?

칼빈주의자들은 칼빈의 이중 예정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성경 구절까지 왜곡하여 번역해 우리에게 말해 줌으로써 우리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신 것은 무엇인가? 필자가 이미 몇 번 말했지만 엄청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려 한다.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예정론의 근거로 쓴 것은 로마서 9장의 야곱과 에서, 그리고 에베소서 1장이다. 그런데 우리는 에베소서 1장을 너무나 잘못 해석해 왔다. 에베소서 1장의 예정을 바로 알려면 세 가지를 보아야 한다.

엡 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첫째, 이 단락에서 예정하신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며, 그 예정은 '그리스도 안에서'(4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5절) 이루어진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신 것이다(3절). 이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적 무리, 곧 인류다. 이 계획을 언제 세우셨는가? 창세 전이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4절). 선택했다는 것은 고를 것이 있었다는 뜻이다. 창세 전에 누구를 고르신 것인가? 천사를 택할 것인가, 인간을 택할 것인가를 고르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로 택하셨다. 그렇다면 예정은 무엇인가?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이다(5절). 여기서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헬라어 휘오테시아(υἱοθεσία)로, 양자(養子, adoption)로 삼으심을 뜻한다. 친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양자가 되게 하시는 것을 예정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그가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의 영광을 찬송할 수밖에 없다(6절). 그래서 천국에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만세 전 경륜(經綸), 곧 이 계획을 찬송하는 것이다.

둘째, 그런데 이 단락에 구속이 나오는가? 속죄가 나오는가? 피 흘림이 나오는가? 나오지 않는다. 필자에게는 72강으로 이루어진 「바른 구원론」 강의가 있는데, 아직 책으로 출판하지 않았지만 빨리 내야 할 것 같다. 거기서 필자가 다 말해 두었다. 사람의 구원에는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하나는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이것이 속죄(贖罪, atonement)이며 그리스도의 피다. 그렇다면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면 구원받은 것인가? 구원을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만으로 본다면 그리스도의 피로 충분하겠지만, 하나님의 경륜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인류의 구원이 단순히 속죄만이 아니라 '속죄 더하기 생명 분배'라고 말해 왔다. 교회에서는 이 사실을 구별해 주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엄청난 공부를 통해서 이것을 일찍감치 알았다. 그런데 에베소서 1장 3-6절은 생명 분배만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거듭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3장에서 말씀하신 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요 3:5). 그러므로 여기서는 속죄를 예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생명 분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는 것을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 이것이 더 확장되면 에베소서 3장 6절에서 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까지 이어진다(엡 3:6). 이것이 예정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예정하신 '우리'는 누구인가? 타락하기 전의 인간이다. 타락하기 전의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고 상속자가 되게 하려고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야 한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요일 5:12).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다(요 5:26).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 12:24).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살려 주는 영이 되어 오셔서(고전 15:45) 그 생명을 우리 속에 넣어 주시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만세 전 예정은 우리 인간에게 그 생명을 주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상속자가 되게 하는 계획을 세우신 것이며, 그렇게 선택하신 것이다.

셋째, 선택이라면 다른 선택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천사다. 천사도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지혜도 인간보다 뛰어나고 능력도 인간보다 뛰어나다. 그러나 종으로 지으셨기 때문에 천사를 하나님의 아들들과 상속자가 되게 하는 데에는 선택하지 않으신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히 1:4-5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이는 하나님께서 천사 중 누구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것, 곧 천사는 결코 하나님의 아들들로 삼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까지다. 인간을 선택하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떤 개인을 구원하기로 예정하고 어떤 개인을 멸망으로 예정하시는 잔인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토기장이가 토기 그릇을 만들었는데 그 그릇이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말할 수 없듯이(롬 9:20-21),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계획하셨다는데 누가 이의를 말하겠는가? 그런데 천사가 그것을 싫어했다. "하나님, 왜 우리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더 뛰어난 것 같은데 왜 우리를 위해서는 생명을 예정하지 않으시고 인간을 위해서 생명을 예정하여 인간에게 그 생명을 주십니까?" 하며 거역한 것이 마귀다. 이 근본적인 것을 알았어야 하는데, 가설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을 예정론에 끌어왔으니 지금 이렇게 사단이 나서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다.

7. 타락을 아신 하나님은 왜 인간의 자유의지를 끝까지 존중하셨는가?

여기에는 네 가지를 보아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생명을 주시는 이유이고, 둘째는 타락 이후 하나님의 2차적인 계획이며, 셋째는 자유의지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이고, 넷째는 칼빈의 이중 예정론이 이 사랑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이다.

첫째, 왜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를 아들로 삼지 않으시고 아들을 통해서 하시는가? 이것이 타락을 방지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아버지는 어둠이 생기는 것까지 허용하실 수 있는 분이시나 결코 악을 택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명을 그대로 인간에게 주어 버리면 인간이 또 어떻게 타락할지 모른다. 그래서 아들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아들은 인성을 지니셨으나 전혀 악을 택하지 않으셨고, 죄가 없으실 뿐 아니라 죄에 대한 마음조차 품지 않으셨다(히 4:15). 그 생명, 인간에게 없던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에,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생명을 받은 우리는 거역할 수가 없다. 고로 천국에 들어가면 우리는 영원히 거역할 수가 없다. 그러나 천사는 그 생명이 없다. 천사도 인간처럼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가 있는데 그 생명이 없으니 악도 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천사는 악을 택하여 스스로 타락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더니 인간에게 만물의 지배권을 주시는 것을 보고, '저것을 내 것으로 삼아 내 밑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을 꾀었고, 결국 인간이 타락해 버렸다.

둘째, 인간이 타락해 버렸지만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계획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다. 칼빈의 제자 베자(1519-1605)는 타락전 예정론(墮落前豫定論, supralapsarianism)을 주장했다. 구원론 자체에 집중하여 하나님께서 영생 예정과 멸망 예정을 하셨다고 하니, 그러면 구원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이 타락할 것까지 예정해 놓으셨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베자는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 죄의 조성자로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예정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유의지를 가진 두 종류의 존재를 만드셨다. 먼저 천사를 만드셨고 그다음에 인간을 만드셨다. 그리고 천사를 택하지 않으시고 인간을 택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주어 아들들이 되게 하고 상속자가 되게 하기로 선택하셨다. 이것을 보고 배가 아파서 사탄이 타락한 것이다. 토기장이가 토기 그릇을 어떻게 하든 하나님의 뜻이다. 그래서 우리가 영원토록 찬양할 수밖에 없다. 죄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찬양하지만 그것은 2차적인 것이다. 만세 전에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들과 하늘의 상속자로 영원토록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을 우리가 찬송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말한 예정론의 출발이다.

그런데 우리가 타락해 버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타락할 것을 하나님께서 모르셨겠는가? 전지전능하시니 그것도 아셨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타락을 하든 안 하든 나는 너의 의지를 존중한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주신 존재는 천사와 인간밖에 없다.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엄청나게 존중하신다는 것이다. 아예 타락하지 못하게 프로그램하면 되지 않는가? 인간을 처음부터 로봇처럼 만들어 버리면 되지 않는가?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신 것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셔서 우리의 의지를 존중하시겠다는 것인가? "나는 너의 의지를 존중하겠다. 네가 타락하는 데에도 너의 의지를 존중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세 전에 세운 계획, 곧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상속자가 되게 하는 계획은 변치 않는다. 너희가 타락한다 할지라도, 만약 타락한다면 내가 사람이 되어 내려가서라도 너희를 반드시 구원하겠다." 할렐루야! 이것이 하나님의 2차적인 계획이다. 이것은 타락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멸망 예정, 구원 예정 같은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상속자가 되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탄의 말, 그 교만하고 나쁜 사탄의 말을 듣고 스스로 선악과를 먹었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으니(창 2:17), 우리는 영원토록 멸망으로 치달아 영원히 마귀와 같은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이 인간을 버릴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결정하셨다. "나는 만세 전에 세운 계획을 절대 버리지 않는다. 내 계획을 반드시 실천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내가 죽어서라도, 지옥에 들어가서라도 그 값을 지불하고 인간을 구원하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2차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우리가 타락한 뒤에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것을 만세 전에 예정하셨다고 말하니 이렇게 사단이 난 것이다. 만세 전의 계획은 우리를 흠 없고 거룩한 아들들이 되게 하고 상속자가 되게 하는 계획이다. 만세 전에 구원하겠다, 멸망시키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 칼빈이 잘못 만들어 낸 것이다. 만세 전의 계획은 생명을 주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고 속죄는 2차적이다. 생명을 주려고 하셨는데 인간이 타락하여 멸망으로 가니, 살리려고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번 마음에 품으신 것을 버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로 삼겠다고 하셨고, 심지어 예수님은 우리를 신부로 맞이하시고 우리와 한 몸이라고 여기신다. 그래서 그 희생을 스스로 자처하신 것이다.

셋째, 그래서 우리는 더욱 주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대한 경륜을 따르지 않겠다고 다른 것을 따라갔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살리시려고 먼저 사랑의 손을 내미셨다(요일 4:10). 잘못한 쪽이 잘못했다고, 살려 달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는 살려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내가 너희를 살리겠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이 혜택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자기가 비참한 처지에 들어가 봐야 알 텐데 그때는 너무 늦다. 인간의 이 선택은 육체가 있을 때만 해당되기 때문에, 그 전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살려 주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주님은 인간의 자유의지 때문에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실 뿐이다(계 3:20). 너의 자유의지를 끝까지 존중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으셨다면 로봇처럼 절대 타락하지 못하는 구조로 디자인해 놓으셨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노예다. 주님은 "나는 너희를 노예로 만들고 싶지 않다. 너희 스스로 선택하여 나를 따르는 그런 존재로 만들겠다"고 하신 것이다. 이 엄청난 특권을 우리 인류에게 주셨다. 그런데 우리가 결국 사탄 마귀의 잘못된 꾐에 넘어갔다. 마귀는 스스로 타락했고 우리는 미혹을 받아서 타락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 번 더 재생의 기회를 주셨는지도 모른다.

넷째,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멸망으로 예정하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주로 예정하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저주로 예정하고 멸망으로 예정하셨는데 그분을 선하시다고 말하라고 하는가?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을 너무 잔인하게 만들고 폭군으로 만든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신데,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렇게까지 양보하시고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시는 이 놀라운 사랑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여러분은 「기독교 강요」 라틴어 번역판을 꼭 직접 읽어 보기 바란다. 제3권 21장의 제목은 '영원한 선택으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구원으로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예정하심'이다. 그 4절은 '예정 교리는 위험하지 않음'이다. 위험하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신데 왜 그런 하나님을 만들었는가? 22장은 '성경 증언들을 통한 이 교리의 확정'이고, 그 11절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른 버림, 곧 유기(遺棄, reprobation)'다. 어디 하나님께서 유기를 하시겠는가? 살리려고 이렇게 몸부림을 치셨는데 말이다.

23장은 '이 교리를 항상 부당하게 짓누르고 있었던 참소자들에 대한 반박'이다. 칼빈은 1539년 제2판에서 예정론을 처음 쓰고 약 20년 뒤인 1559년 최종판에서 이 장을 썼다. 자기 교리를 반박하는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쓴 것이다. 23장 3절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영원한 저주는 불공평하지 않다'고 써 놓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불공평하다. 우리에게 선택이 없는데 왜 우리가 지옥에 가야 하는가? 7절은 '한 사람의 타락과 그로 인한 그의 후손들의 멸망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다'라고 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려고, 살리시려고 몸부림을 치셨는데 멸망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라니 될 말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차라리 천사처럼 지으셨어야 할 텐데, 그런데도 우리를 자녀로 삼겠다고 계획하시고 우리를 사람으로 지으신 것이 너무 감사한 것이다. 9절은 '유기된 자들, 곧 버림받은 자들에게 미치는 저주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지만 그 원인은 그들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저주를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고 한 것이다.

24장은 '선택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서 확정되나, 유기된 자들은 자기들에게 지정된 의로운 파멸을 스스로 초래한다'이다. 자기가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해 놓으셨다고 해 놓고, 왜 그것을 부정하는 말을 또 여기에 써 놓았는가? 이것은 스스로 모순된 말이다. 그리고 13절은 유기된 자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하나님께서 절대 깨닫지 못하게 하신다고 했고, 14절은 유기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변명하지 못하고 심판을 받는다고 했다. 나에게 선택의 의지가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를 심판하시겠는가? 만세 전에 나를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셨는데 어떻게 나를 심판하시겠는가? 15절은 유기된 자들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회개하지 않고 멸망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미리 그를 버림받을 자로 예정하셨다면 그는 회개하지도 않을 것이고 멸망에 이를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누구든지 회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다(요 7:37-39). 이 물은 믿는 자가 받을 성령, 곧 생명이다. 성령을 받으라, 생명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16절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지만 택함받은 자들만 영의 은밀한 감동으로 인도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삼는 것이 바로 이번 시간의 본문인 요한복음 6장이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 예정한 자만 아들에게 보내시고 아들은 그들을 위해서만 제한 속죄로 죽으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8. 요한복음 6장 37-39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렇다면 요한복음 6장이 얼마나 왜곡되어 해석되고 그것이 맞다고 주장되고 있는지 원문으로 살펴보자. 다음 시간에는 헬라어 본문까지 다 보여 드리겠지만, 이번 시간에는 필자가 원문에 입각하여 직역한 것을 읽으려 한다. 여기서는 세 가지가 달라진다.

첫째, 37절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와 '내게 오는 자'는 다른 말이다. 우리말 성경은 '내게 주시는 자'라고 하여 사람을 말하는 것처럼 번역했다. 그러나 헬라어에서 앞의 '판 호'(πᾶν ὃ)는 중성 단수이고, 뒤의 '톤 에르코메논'(τὸν ἐρχόμενον)은 남성 단수다. 보통 남자와 여자를 함께 가리킬 때는 남성으로 쓴다. 그러므로 뒤의 '오는 자'만 사람이고, 앞의 '주시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번역은 둘 다 사람으로 해 버렸다. 원문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또 '주시는'(디도신, δίδωσιν)은 현재형이고, '오는'(에르코메논)은 현재분사이며, '올 것이요'(헥세이, ἥξει)는 '이를 것이다, 도착할 것이다'라는 미래형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직역한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고 있는 모든 것, 그것은 나를 향하여 장차 이를 것이다. 그리고 나를 향하여 계속해서 오고 있는 사람은 내가 결코 바깥쪽으로 내쫓지 않을 것이다."

뒷부분은 그대로 이해된다. 성령께서 선행적 은총을 통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우리를 책망하시고(요 16:8) 우리를 주께로 보내시며 구원을 받으라고 초청하신다. 그래서 스스로 구원받겠다고 주님을 향하여 나아오는 사람을 주님은 결코 내쫓지 않으신다. 그가 선행적 은총으로 깨달았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고 환경을 주셨든, 누가 전도를 했든,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말씀하셔서 "나도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나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도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고 나아오는 자를 예수님은 결코 바깥쪽으로 내쫓지 않으신다. 그러나 앞부분은 우리말 번역이 틀린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만 보내신 것이 아니다.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고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영생 얻기로 예정된 자를 보내 주고 계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둘째, 그렇다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고 있는 '모든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해석이 필요하다. 필자에게 해석하라고 하면 이렇게 하겠다.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구원받겠다고 하는 사람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면 아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고 계시고, 그것이 지금 아들에게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곧 예수님께 구원받겠다고 나아오는 모든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고 계신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까지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계속 오고 있었다. 십자가에 죽으실 때 자기 원대로 하지 않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기를 구하며 자기 의지를 내려놓는 그런 마음도(마 26:39) 아버지께서 계속 부어 주셨을 것이다. 아들이 인간으로 태어나 그 일을 못 할까 봐 아버지께서는 아버지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시면서 "너에게 구원받으러 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떨어뜨리면 안 된다"고 하신 것이다.

셋째, 39절도 마찬가지다. '내게 주신 자 중에'라고 하니, 아버지께서 만세 전에 구원받을 자를 예수님께 보내 주시면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원문에는 이것도 사람이 아니다. 여기의 '주신'(데도켄, δέδωκεν)은 완료형이므로 '이미 주신 채 있는'이라는 뜻이고, 다시 중성 단수 '판 호'가 쓰이며, 그 뒤의 '그것에서부터'(엑스 아우투, ἐξ αὐτοῦ)와 '그것을'(아우토, αὐτό)도 중성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직역한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이것이다. 내게 이미 주신 채 있는 모든 것, 그것에서부터 내가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오직 마지막 날에 그것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구원하라고 담대함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명철도 주시고 생명도 주시고 많은 것을 주셨을 것이다. 아들은 그것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반드시 자기 삶에 일으켜 세워서, '나에게 구원받겠다고 나아오는 사람을 나는 반드시 구원하겠다'고 하시는 말씀이다. 만세 전에 구원할 자를 정해 아들에게 보내신다는 말이 아니었고, 예수님께서 제한 속죄로 그들만을 위해서 죽으시고 그들을 살리는 일에만 힘쓰셨다는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번역했는가? 칼빈의 예정론이 맞다고 말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멸망 예정은 나오지도 않지만 최소한 생명 예정만큼은 맞다,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가 아들에게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누가 하겠는가? 신학자가 말하겠는가? 말하면 아마 그날로 신학교에서 해고당할 것이다. 필자를 쫓아낼 사람이 우리 교회에 있는가? 없다. 그러나 교단 신학교의 교수라면 그 자리에서 쫓겨날 것이다. 교회는 교단에 있다가도 탈퇴해 버리면 그 교단의 신학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 탈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필자를 안수해 준 고마운 곳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곳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긴다.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가 필자에게 다 도움이 되었고, 수많은 해석들을 다 해 주었기 때문에 오늘날 필자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를 강제로 뽑아내지 않는 한 교단을 탈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필자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이 방면에 대해서 수십 년 동안 연구하게 하셨으며, 필자는 헬라어를 30년 넘게 계속 연구해 온 사람이다. 어떤 조직 안에 들어가 있으면 이런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필자는 교단을 초월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필자는 교단을 초월해서 성경대로 믿고, 특히 예수님의 말씀대로 믿는다. 아버지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 구원받으라고 우리를 초청하신다. 마태복음 22장이 그것을 보여 준다. 그 초청이 시간적 경륜의 차이와 민족적 구별에 따라 유대인 먼저, 헬라인 나중으로 이루어져 지금도 초청하고 계신다(롬 1:16). 다 구원받으라는 것이다. 바울도 이렇게 말한다.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도 제외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번 시간의 본문인 요엘서도 그렇게 말한다.

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그래서 누구든지 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구원받겠다고 오는 자를 나는 결코 하나도 떨어뜨릴 수 없다. 나를 구원받기 위해서 그렇게 목숨 걸고 따라온 자를 나는 하나도 놓치면 안 된다"고 하신다. 고로 아버지께서는 그 일을 하게 하시려고 아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고 계신다. 이것이 요한복음 6장 37-39절의 뜻이다.

9. 나오며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만 이야기한다. 죄 사함을 받아서 구원받는 이야기만 하고, 하늘에 들어갈 우리의 신분에 대해서 말해 주는 곳은 별로 없다. 필자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말한다. 하나님의 원래 뜻은 우리를 자녀가 되게 하고 상속자가 되게 하며 왕 노릇 하게 하는 데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죄에서 구원받는 것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상태로 살리는 일차적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오직 십자가, 십자가만 이야기한다. 십자가는 인간이 잘못 선택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다. 그러나 원래 계획이 있었고, 우리는 그 계획에 맞춰서 가야 한다. 할렐루야! 사실은 그 계획이 더 중요하다. 이 중요한 계획은 버려 두고 십자가 구속의 은혜만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이 타락에서 돌이키는 것,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상태만 날마다 이야기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어마어마하게 큰 은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우리 인류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되며 왕 노릇 하게 될 자로 계획하셨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수님께 주셨고, 예수님은 그것을 받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지금도 그분께 나아오는 자를 구원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첫째, 교리의 안경이 아니라 성경, 특히 예수님의 말씀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교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둘째,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주님은 구원받겠다고 나아오는 자를 결코 바깥쪽으로 내쫓지 않으신다. 지금도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주님께, 육체가 있는 이때에 스스로 문을 열고 나아가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알아 하늘나라에 들어갈 합당한 준비를 잘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상속자로 부름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 때가 되었다. 성경도 원문 그대로 번역한 것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말씀이 왜곡되어 번역됨으로써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으나, 이 말씀을 듣는 우리만이라도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것을 주셨고 아들이 그것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고로 영원토록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신 일을 찬양할 수밖에 없고, 아들의 그 순종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가 그런 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10월 16일(금)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