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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구원론(01)] 사람이 구원을 얻는 시점과 구원을 잃어버리는 시점은 언제인가?(히10:26~31)

정보배 목사조회 370읽는 시간 약 28분

설교핵심

본 설교는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유지된다는 전통적인 장로교 교리를 반박하며, 신앙생활 중 죄에 빠지거나 타락하면 어린양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성경 원문과 구절들을 세밀하게 분석한 결과, 구원은 단순히 과거에 한 번 믿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믿음을 지켜야 완성되는 과정임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청중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갈 것을 촉구하며, 교리에 안주하지 말고 지속적인 회개와 진리 안에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 메시지의 핵심 목적입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왜 구원의 문제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가?2사람이 구원을 얻는 시점은 언제인가?3생명책은 무엇이며, 성경에서 누가 생명책을 알고 있었는가?4생명책에 한 번 기록된 이름은 지워질 수 있는가?5한 번 구원이 영원하다는 근거 구절은 원문으로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6요한복음 6장 37절과 10장 28-29절은 무엇을 말하는가?7생명책의 이름은 언제 지워지는가?
설교 본문 (히 10:26-31) ·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이번 시간부터 바른 구원론을 다시 시작해 본다. 그 첫 시간으로 '사람이 구원을 얻는 시점과 구원을 잃어버리는 시점은 언제인가?'를 살펴보려 한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구원이다. 내가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이것이 모든 것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원의 문제를 너무 쉽게 알려 주는 곳이 있고, 너무 어렵게 알려 주는 곳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쪽을 따라가야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알려 주는 곳으로 가기를 원할 것이다. "예수만 믿으면 당신은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사실 구원을 받았다는 것과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똑같은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리가 아니라 성경을 따라가야 한다. 이번 시간에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말씀이 많이 있을 것이니 잘 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올바른 구원론이 무엇인지를 성경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2. 왜 구원의 문제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가?

구원의 문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첫째, 천국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는 장소를 가리킨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완전한 구원은 죽을 때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죽을 때 누가 나를 데리러 오느냐가 내 신앙의 진면목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첫째, 예전에 상태적인 천국을 주장하는 자들 때문에 많은 사람이 장소적 천국을 희미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상태적인 천국이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면 거기가 곧 천국이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들어가는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라는 사상이 들어왔다. 우리 안에 주님의 다스림이 있으면 우리는 천국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확대됨으로 인하여 이단이 나왔다. 천국 이야기를 할 때 상태적인 천국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천국을 이루자며 공동생활을 하고 서로 돈을 다 갖다 놓고 즐겁게 사는 것이 천국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대표적인 이단이 있다. 필자가 보니 그 이단의 괴수는 결국 지옥에 있었다. 그러므로 천국을 이야기할 때에는 상태적인 천국도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장소적인 천국을 말해야 하며, 천국에 들어가는 문제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둘째,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이 땅에서 예수를 믿고 영생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의 시작이고, 구원의 과정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왜냐하면 완전한 구원은 내가 죽었을 때 내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죽었을 때 천사들이 오든지 아니면 마차가 대령해 있든지, 우리는 천사와 마차의 인도를 받아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이 온전히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과연 내가 죽었을 때 과연 누가 나를 데리러 올 것인가? 천사가 오는가 저승사자가 오는가? 이 땅에 살면서 주 예수님을 믿고 주님의 일을 많이 했거나 귀하게 쓰임받은 사람은 그날 마차가 대령한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천사 두 명이 그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간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영안이 열려서 보거나 죽어 보면 알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죽으려고 할 때 시커먼 옷을 입은 저승사자 같은 존재가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죽을 무렵이 되면 영안이 열리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얘야, 저 복도에 웬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으나 죄의 총량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과 비슷할 때에는 저숭사자도 오고 천사도 온다. 그러므로 이때는 정말 가족과 성도들의 중보기도가 매우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적어도 우리가 눈을 감을 때에 "얘야, 저기에 빛나는 천사들이 왔다"고 말해야 한다. 고로 구원의 문제는 참으로 소중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아니 말할 수 없다.

3. 사람이 구원을 얻는 시점은 언제인가?

사람이 구원을 얻는 시점을 바로 알려면 세 가지를 보아야 한다. 첫째는 구원이 시작되는 때이고, 둘째는 믿음과 성령의 내주가 따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며, 셋째는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 최종적인 구원이라는 것이다.

첫째, 구원은 이 땅에서부터 받기 시작한다. 영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시점은 내가 거듭나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으며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이 믿음을 제대로 간직해야 한다. 이 믿음을 간직하지 못하고 타락하거나 잘못되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둘째, 믿는 것과 내 속에 성령께서 들어오시는 것은 약간 차이가 있다. 사도행전 2장의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믿을 때 성령께서 들어오셨다.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런데 사도행전 8장의 사마리아 교회에서는 믿는 것과 성령께서 들어오시는 것이 따로 일어났다. 빌립 집사가 전도할 때 그들은 믿었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성령이 없었다. 사도들인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안수하자 그때 성령을 받았다(행 8:14-17). 그러므로 믿었다고 해서 성령이 있다고, 믿었다고 해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믿지 않고서는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다.

셋째, 그러므로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 최종적인 구원이고, 그다음에는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지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평소에 예수를 믿지 않다가 죽을 때 병상에서 예수 믿겠다고 하여 세례를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그 순간에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가? 그것은 물음표다. 확실하지 않다. 이것은 나중에 정확히 말하겠다.

4. 생명책은 무엇이며, 성경에서 누가 생명책을 알고 있었는가?

생명책을 바로 알려면 세 가지를 보아야 한다. 첫째는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다는 것이고, 둘째는 생명책이 창세 이후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며, 셋째는 성경에서 생명책을 알았던 사람들이다.

첫째,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말한다.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그 성,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는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간다. 여기서 '기록된'은 원문에서 완료 수동 분사다. 이미 기록된 채 있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내가 기록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록하신다. 그래서 수동태다. 그리고 완료형이니 이미 기록된 채 있어야 한다. 죽을 때 기록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이는 생명책에 기록되었느냐 아니냐가 불못에 던져지느냐 아니냐를 가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책의 존재가 중요하다.

둘째, 그렇다면 생명책은 언제부터 기록되었는가?

계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는 창세 이후로, 곧 천지 창조 이후 아담부터 이름이 기록되었다. 어떤 사람은 아담과 하와가 지옥에 있다고 하는데, 지옥에 있지 않다. 천국에 있다. 잘못 본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곳은 조심해야 한다. 이것은 필자가 확인하고 말하는 것이며, 천국에 가서 확인하면 된다.

셋째, 그러면 어떤 사람은 "목사님, 요즘 말씀에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를 자꾸 말씀하시는데,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생명책을 보는 것은 직통계시 아닙니까? 이단 아닙니까?"라고 묻는다. 필자를 이단으로 잡으려면 빌립보서 4장을 읽고 이단이라고 하라. 이단은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는 자다. 천국으로 보내는 사람, 회개시키는 사람, 예수의 피를 말하는 사람은 이단이 아니다. 지옥 갈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빌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유오디아와 순두게, 그리고 글레멘드와 바울의 동역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고 한다. 바울은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보았으니까 안 것이다.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모두가 보는 것은 아니지만 볼 수는 있다. 보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는 것이 이상하다면 사도 바울부터 정죄하여 이단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신약에서는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이 생명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바울은 그 속에 누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구약에서도 생명책의 존재를 알았던 세 사람이 있다. 다윗과 모세와 다니엘이다. 이들도 생명책의 존재를 알았으니 그 속에서 자기 이름도 보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지 않으시려거든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 달라고 했다(출 32:32-33).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단 12:1). 그리고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다.

시 69:28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여기서 '그들'은 앞에서부터 이어지는 악인들이다. 다윗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5. 생명책에 한 번 기록된 이름은 지워질 수 있는가?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는가를 알려면 세 가지를 보아야 한다. 첫째는 필자가 받은 충격이고, 둘째는 그 충격 뒤에 내린 결론이며, 셋째는 다투던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경우다.

첫째, 필자가 일생에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은 2013년경이다. 그때부터 회개와 천국복음을 시작했다. 필자는 요한계시록을 52주씩 두 번 강의했고 보완편까지 냈으니 요한계시록 강의의 준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면서 3장 5절을 읽을 때 충격을 받았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자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우지 않으신다고 한다. 필자는 이것을 거꾸로 생각해 보았다. 이기지 못하는 자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는 말이 아닌가? 필자는 생명책에 한번 기록되면 지워지지 않는 줄 알았다. 이긴다는 표현은 어떤 이단이 자기 교주를 이긴 자라고 부르며 쓰고 있지만, 원래는 죄를 이기고 사탄과 마귀를 이기며 세상 욕심과 옛사람을 이기는 것을 다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기는 자가 아니라 세상에 지고, 마귀에게 지고, 죄에 지고, 귀신에게 지며 사는 사람들은 결국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해서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잘못하다가는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내가 지옥에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정신이 바짝 들었다.

둘째, 필자는 그때부터 구원론을 정리하기 시작하여 7년 동안 정리했다. 그것이 2017년에 낸 「회개와 천국복음」(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 발행)이며, 그 개정판이 이번 주에 약 580쪽으로 나온다. 우리는 장로교이고, 장로교는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쪽에 가깝다. 필자는 장로교 교리를 알고 그 교리를 따라가야 하는 사람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때 성경을 믿고 따라가야지 교리를 따라가서는 위험하겠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구원론을 정리하고 나니 결론은 이것이었다. 구원받으려면 계속 회개하고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회개는 예수 믿을 때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믿고 나서 지은 죄들은 자백함으로 용서받는 것이다. 주님께서 미래의 죄까지 다 씻어 주신 것이 아니다. 어떤 죄라도 용서받을 수 있도록 무한한 효능으로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는 피를 준비해 놓으신 것이다. 예수를 믿을 때 미래의 죄까지 용서되었다는 말은 성경에 없다. 만들어 낸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도 죄를 짓고 있으면 지옥에 갈 수도 있다.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셋째, 그런데 빌립보서 4장을 보면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했다. 두 사람이 한마음이 되게 하라는 것은 지금 두 사람이 마음이 나뉘어 싸우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의 표현으로 하면 두 집사님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빨리 회개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들도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언제 지워지는가? 필자는 성경을 읽는 가운데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었다. 이번 시간에 그것을 수정하려 한다.

6. 한 번 구원이 영원하다는 근거 구절은 원문으로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의 근거 구절을 바로 읽으려면 세 가지를 보아야 한다. 첫째는 그 근거 구절이고, 둘째는 '영원토록'의 원문이며, 셋째는 '너희'가 누구인가이다.

첫째,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의 근거가 되는 구절은 이것이다.

요 14:15-16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하나님께서 한 번 성령을 주시면 영원히 떠나지 않으신다고 했으니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3장 5절은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뒤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있을 때 천국에 계신 예수님께 들은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 하신 말씀과 천국에 가셔서 하신 말씀이 다를 수 있는가? 둘 중 하나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든지, 예수님께서 실언하셨든지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실언하셨을 가능성은 없다. 받아 적은 사람이 잘못 들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은 모두 사도 요한이 썼다. 같은 사람이 썼는데 서로 틀릴 리가 없다. 그런데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사람은 요한복음 14장 16절을 계속 주장하고,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요한계시록 3장 5절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어느 관점이 맞는가?

둘째, '영원토록'은 헬라어 원문으로 '에이스 톤 아이오나'(εἰς τὸν αἰῶνα)다. 영어로는 '포에버'(forever)로 번역된다. 여기서 '톤'은 정관사이고, '아이온'은 세대, 시대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형용사가 되면 '영원한'이라는 뜻으로 바뀐다. 그러나 여기는 형용사가 아니라 부사구다. '에이스'는 '~안으로'라는 이동의 뜻인데, 시간을 알려 주는 단어와 결합하면 '~까지' 또는 '~동안'이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이것은 '그 시대 동안'으로 풀어야 한다. 이 시대와 다음 시대가 있다. 우리의 구원은 이 시대에 시작되지만 다음 시대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예전에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동안에는 성령이 떠나지 않으실 것이라고 풀었다. 그래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것은 이 시대가 끝나는 날, 곧 그 사람이 죽는 날이 아니겠는가, 사람이 구원을 받을지 못 받을지는 죽는 날에 결정된다고 풀었다.

셋째, 그런데 이것은 다소 폭넓은 해석이었다. 이 시대 동안 성령이 떠나지 않으신다고 했지만, '누구에게' 그렇다는 것인지에 필자가 주목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너희에게' 주어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신다고 하셨다. 너희는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가룟 유다는 이미 성찬을 마치고 예수님을 팔려고 나갔으니 여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남은 열한 명만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문맥을 보면 바로 앞의 15절에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고 있는 자들이다. 그 시대까지 성령이 떠나지 않고 구원이 지켜질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과 십계명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다. 필자는 '너희'에 초점을 두지 않고 '예수만 믿으면'이라는 가정을 세웠는데, 그것은 잘못이었다. 고로 이 구절은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7. 요한복음 6장 37절과 10장 28-29절은 무엇을 말하는가?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구절이 또 있다. 요한복음 6장 37절과 10장 28-29절이다. 이 두 구절을 원문으로 보면 세 가지가 드러난다. 첫째는 요한복음 6장 37절의 '주시는 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고, 둘째는 요한복음 10장의 '양들'이 누구인가이며, 셋째는 10장 29절의 번역 문제다.

첫째, 요한복음 6장 37절이다.

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자는 예수님께 갈 것이고, 예수님은 그 사람을 내쫓지 않으실 것이니, 그렇게 믿게 된 사람은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는다고 푼다. 그러나 이것은 다 만들어 낸 가정이다. 원문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모든 것이 나를 향하여 이를 것이다'이다. '주시는 모든 것'은 중성이다.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구원하실 수 있도록 능력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권세도 주셨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예수님께 도착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내게 오는 자'는 원문에서 현재분사로서 '나를 향하여 오고 있는 자'다. 주님은 그를 결코 밖으로 내쫓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믿음을 붙잡고 계속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핍박 속에서 무너져서는 안 된다. 칼이 들어와도 주님을 믿겠다고 주님께 계속 나아가고 있는 자를 주님은 결코 내쫓지 않고 구원하신다. 그렇게 구원하실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 이것이 필자가 2013년부터 공부하면서 충격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둘째, 요한복음 10장 28-29절이다.

요 10:27-29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그들은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시면 그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예수님의 손에서도 아버지의 손에서도 빼앗을 수 없으니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도 자기 해석이다. 28절의 '영원히'도 똑같이 '에이스 톤 아이오나'다. 원문은 이렇다. "그리고 내가 그것들에게 시대의 생명을 주고 있다. 그러면 그것들이 그 시대까지 스스로 결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다. 아무도 그것들을 내 손으로부터 밖으로 낚아채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그것들'은 중성인 양들이다. 시대의 생명을 받는 자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맞다. 문제는 그 양들이 누구냐는 것이다. 27절이 양들을 정의한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고 지금도 주님을 따라가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냥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해석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어야 영생을 주시고 스스로 멸망하지 않게 하시는 것이다.

셋째, 특히 29절 때문에 더 그렇게 믿는다.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니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29절은 후대의 사본에서 끌어온 번역이다. 우리 개역 성경은 대체로 A.D.4-5세기의 대문자 사본을 따라 번역했다. 소문자 사본은 그보다 훨씬 후대인 9세기 이후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만은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에 맞추기 위해 후대 사본의 독법을 끌어왔다. 그 교리를 믿는 사람들이 번역했기 때문이다. 대문자 사본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나의 아버지께서 이미 나에게 주신 채 있는 그것은 모든 것들보다 더 크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들을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낚아채는 것을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 이미 주신 것은 사람이 아니라, 나아오는 자를 다 구원할 수 있도록 주신 지혜와 능력과 권세다. 그것이 모든 것보다 더 크니 구원하실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에서는 그것이 오고 있다고 했고, 10장에서는 이미 주신 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주님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자를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지금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한눈을 팔아 교회를 몇 달, 1년씩 나오지 않고 있는데 그날 주님이 오신다면 100% 지옥이다. 그러니 깨어 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울도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도리어 자신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한다고 했다(고전 9:27). 필자도 그렇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헬라어로 증거하는 신약학을 더 공부했다. 그리고 해석을 잘못하고 원문을 지키지 않아 우리가 속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고 믿어 버리니 "나는 예수 믿었으니 천국 갈 사람이다. 내가 교회 나와 준 것을 목사는 고맙게 여겨라. 십일조 바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말하는 교만이 하늘을 찌른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교회의 상황이다. 그런 신앙으로 천국에 가겠는가? 우리는 성경 말씀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야 한다. 교리를 잣대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 교리는 사람이 만든 것이니 틀릴 수 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66권 전체는 정확무오한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8. 생명책의 이름은 언제 지워지는가?

생명책의 이름이 언제 지워지는가를 알려면 세 가지를 보아야 한다. 첫째는 필자가 견해를 수정하게 된 계기이고, 둘째는 히브리서 10장의 말씀이며, 셋째는 실제로 이름이 지워진 사례다.

첫째, 필자는 예전에 생명책의 이름은 죽을 때 지워지는 줄 알았다. 다투고 있던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이름도 생명책에 있다고 했으니, 지워진다면 죽을 때가 아니겠는가 하고 나름대로 정리했다. 그래서 늘 죽기 전에 회개하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대한민국에서 쓰임받는 주의 종들을 생명책에서 전수 조사해 보았다. 지금 살아 있는 대한민국의 유명한 목회자로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생명책에 그 이름이 없었다. 깜짝 놀랐다. 죽을 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전에도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시 성경을 찾아보니 그 말씀이 있었다. 정확히 판정하기는 어렵지만 잘못된 견해를 가질 수 있으니 수정한다. 예전에 필자는 죽을 때 지워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는데, 그것을 취소하고 잘못을 인정한다.

둘째, 예수를 믿다가도 타락하거나 주님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부인하면 그날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해석할 수 있는 말씀이 성경에 다섯 군데 나온다. 이번 시간에는 그 가운데 하나만 살펴본다.

히 10:26-2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우리가 진리이신 예수님을 온전한 지식으로 알고 믿었는데 고의로 다시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범한즉'은 원문에서 현재분사로서 '범하고 있으면'이다. 고의로 죄를 범하고 있다면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 믿는 사람 안에는 성령께서 계셔서 '너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하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늘 책망하신다(요 16:8). 그런데 그 책망을 듣지 않고 계속 죄를 짓고 있으면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무서운 심판과 맹렬한 불만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심판인데 이미 끝난 것이다.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의로 죄를 짓는 것은 무엇인가?

히 10:28-29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이는 율법을 폐한 자도 죽었는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세 가지 죄를 범한 자의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는 경고다. 율법과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한 사람들도 지옥에 갔는데, 복음을 무시한 사람들을 가만두시겠는가?

셋째, 실제로 이런 사례가 있다. 한때 많은 사람이 따라다니던 어느 이단의 교주는 처음에 장로교의 장로로서 기적이 나타나는 사람이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생명책을 보니 처음부터 믿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랐지만 사실은 사탄의 능력으로 행한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 주의 종들도 다 예수의 이름으로 사역한다. 그 교주의 손으로 씻은 물을 생수라 하여 마시면 병이 낫기도 했다. 우리 교회의 예전 권사님도 그를 따라갔었다. 그러다가 점점 이상해졌다. 그는 자기를 감람나무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어 실패했고 자기를 통해 영생을 얻는다며 본색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에게서 갈라져 나온 또 다른 단체는 지금도 예수를 욕하며 짓밟는 모독의 말을 교리로 삼고, 자기를 믿는 자만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친다.

여러분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며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를, 예수를 믿었던 사람이니 회개하기를 기다렸다가 죽을 때 지우시겠는가, 그날로 지우시겠는가? 즉시 지우신다. 필자가 이번에 생명책을 들여다보고 알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나 히브리서 10장 29절처럼 행하는 자들은 주님께서 즉시 지워 버리신다. 그러므로 이단은 처음부터 절대 이단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필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 어떤 종의 설교를 다 들어 보았는데 단 한마디도 실수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보아야 안다. 그래서 필자가 예수의 피를 강조하는가, 회개를 강조하는가를 보라고 힌트를 알려 준 것이다. 그들은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틀린 말도 하지 않는다.

반면에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주님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둘이 싸운 것이다. 싸우는 정도로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혈기와 분을 내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귀신이 있는데도 계속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갈 수도 있다. 그것은 죽을 때의 문제다. 지금 말하는 것은 당장 지워지는 문제다. 차라리 예수를 아예 믿지 않고 교회만 50년 다닌 사람은 지워질 일이 없을 것이다. 아직 기록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다가 이렇게 타락하면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구절이 성경에 다섯 번 나온다. 그렇다면 생명책에서 한 번 지워진 사람이 다시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다시 기록되는가? 그리고 처음부터 믿지 않았으면서 자신은 믿는다고 말했지만 그 안에 예수 생명이 없어 사탄이 들어가 있는 자는, 믿는다고 하면 생명책에 기록되는가? 이것은 다음 시간에 이어서 살펴보겠다.

9. 나오며

우리가 한 번 예수를 믿었으면 영원히 구원받았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우리는 구원받은 것이 있지만 그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로 구원을 잃어버려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첫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끝까지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둘째,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쳐서 이미 받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셋째, 행위나 이단 괴수에게 속아 잘못된 것을 믿다가 함께 타락하여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의 영혼을 소중히 간직하며 진리의 복음만을 온전히 따라가야 한다. 우리 모두가 그런 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4년 05월 22일(수)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