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217)]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4) 구원에서 탈락한 자들이 가는 곳 중에서 성밖은 어떤 장소인가?(욜2:32, 계22:14~15)
이 설교는 구원 탈락자들이 향하는 성 밖과 지옥의 실체를 밝히고, 인간의 자유 의지와 진정한 회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기독교 설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시어 강제하지 않으시므로, 믿음을 지키지 못하거나 고의로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이들은 결국 영원한 형벌 장소인 불못이나 어두운 성 밖으로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기존의 안일한 교리에 얽매이지 말고, 예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따르며 매일 진심 어린 회개를 통해 새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하나님은 왜 구원에서 탈락하는 자가 생기는 것을 막지 않으시는가?본문 →2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은 우리에게 무엇을 깨우쳐 주시는가?본문 →3회개로 악한 영을 내보내는 것이 왜 성화의 실제인가?본문 →4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은 어떤 곳인가?본문 →5성 밖과 바깥 어두운 데는 어떤 곳인가?본문 →6성 밖에는 누가 가며, 성경은 그것을 어떻게 말하는가?본문 →7불못에는 누가 가며, 성 밖과 무엇이 다른가?본문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은 채 있기를 원하신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하신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셔서, 아들을 믿고 따라오는 모든 자를 하나도 빠뜨리지 아니하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일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렇다면 한 번 믿은 사람은 모두 천국에 들어가는가? 그렇지 않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믿음에서 파선하는 자가 생기고, 마지막 때에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자가 생기며, 고의로 계속 죄를 짓는 자와 주님을 부인하는 자가 생긴다. 탈락하지 않아야 하는데 탈락하는 자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가? 어떤 분은 이렇게 묻는다. "목사님, 천국과 지옥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성 밖은 무엇이고 바깥 어두운 데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연옥설을 주장하는 이단이 아닙니까?" 그러나 성 밖도, 바깥 어두운 데도 필자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왜 탈락하는 자가 생기는 것을 막지 않으시는지,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 안과 성 밖과 불못이 각각 어떤 곳이며 누가 그곳에 가는지를 성경과 필자가 확인한 천국의 실상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은 왜 구원에서 탈락하는 자가 생기는 것을 막지 않으시는가?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왜 탈락하는 자가 생기는 것을 막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빼앗아 가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도 자유의지를 그대로 두셨고, 노아 홍수 때에도 그대로 두셨다. 바로 왕이 스스로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것도 그대로 두셨다(출 8:15). 마태복음 22장의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 비유를 보아도, 초청을 받고 오지 않겠다는 자들을 강제로 끌고 오지 않는다. 들어오겠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데려가신다. 요엘 선지자도 이렇게 말했다.
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부르시고, 그 부름에 응답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천국에는 구원받을 총수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도 그 안에 들어오라' 하고 초청하시는 것이지, '너는 구원이고 너는 멸망이다' 하고 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다. 다 정해 놓고 어떻게 심판하시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고, 그런 하나님은 잔인한 하나님이다. 주님은 누구나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누구나 그 받은 구원을 영원한 구원으로 갖기를 원하신다.
그런데도 주님을 거부하는 자들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잔치가 다 준비되었으니 오라고 하셨는데도 가지 않겠다는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향해 이렇게 탄식하셨다.
마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이는 주님께서 그토록 품으려 하셨으나 그들이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은 영접하지 아니했다(요 1:11). 이방인 백부장은 믿음이 커서 오시지 않고 말씀만 하셔도 된다고 했는데(마 8:8), 유대인들은 고쳐 주시는데도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고 트집을 잡았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자기를 거역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이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셨고,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사랑하셨다면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지 못하게 만드시면 되지 않았겠는가? 전능하신 분이 무엇을 못 하시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지를 존중하신다.
필자도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사탄 마귀가 타락할 때부터 아예 생기지 않게 만들어 버리셨다면 우리가 이렇게 이를 악물고 고생할 필요가 없지 않았겠는가?' 우리가 AI 로봇을 만들 때에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면 된다. 하나님도 그렇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신 두 존재가 있다. 천사와 인간이다. 천사와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타락할 수 있고, 주님을 부인할 수도 있으며, 끝까지 믿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은총은 불가항력적인 은총이 아니라 거부할 수 있는 은총이다.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가진 자를 존중하시는 것, 그것이 그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고로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아주 중요하다.
더구나 지금은 잠잘 때가 아니다. 필자가 아는 어떤 분은 지금까지 천국에 들어간 사람과 앞으로 들어갈 사람을 합하면 한 150억 명 정도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금 지구 인구가 약 80억 명이니 그 수가 거의 다 찼다는 것이다. 그것이 맞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거의 찬 것은 분명하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고 남은 유대인의 수가 차면 주님이 오신다고 하셨는데(롬 11:25-26), 이방인의 충만한 수도 거의 찼다. 다섯째 나팔이 곧 울려 퍼질 순간이다. 무저갱에서 사탄이 올라오는 그때 유대인들의 민족적인 회개가 있을 것이고, 남은 수가 차면 끝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사람은 깨어나야 하고, 온라인으로 듣는 사람도 깨어나야 하며, 주변 사람도 깨울 수 있어야 한다.
3.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은 우리에게 무엇을 깨우쳐 주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先行的 恩寵, prevenient grace)은 우리에게 무엇을 깨우쳐 주시는가? 하나님께서 선행적 은총으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신다면(요 16:8), 내가 죄인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내가 죽은 다음에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 형벌을 받을 줄 누가 알겠는가? 사람들은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행적 은총으로 가르쳐 주셔야 한다. "너희를 향한 나의 계획은 천사와 달리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상속자가 되며, 더 나아가 왕 노릇하는 자가 되도록 예비해 놓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이렇게 예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전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알겠는가? 지금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이 계획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24장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갚아 주신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자들이었다(약 5:17). 그들 속에도 뱀들과 귀신들이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려고 노력했다. 그들 가운데 엘리야처럼 엄청난 사람도 이세벨이 죽이려 하자 로뎀 나무 아래에 가서 자기를 죽여 달라고 했다(왕상 19:4). 원망과 불평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회개하여 악한 영을 내보내고 나니 입에서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감사밖에 나오지 않는다. 날마다 눈물밖에 나오지 않는다. 너무 감사해서 맨날 울고 다닌다. 이 놀라운 비결을 엘리야가 알았는가? 몰랐다. 그런데도 그들은 부지런히 회개하고 또 회개하며 살았다. 그러나 진짜 회개하면 내 속의 귀신의 집까지 파괴되어 더 이상 귀신이 역사할 수 없는 단계가 있다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우리는 지금 이런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도 이것을 아무것도 모르고 잠자고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있다. 고로 선행적 은총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깨우쳐 줄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회개의 비밀까지 깨우쳐 주시는 것이다.
4. 회개로 악한 영을 내보내는 것이 왜 성화의 실제인가?
필자는 우리 교회에 필요한 말씀이 요한일서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요한일서에 다 말해 놓았으니 요한일서를 많이 읽어야 한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요일 3:2-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이는 주님을 향한 소망을 가진 자는 주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여 주님과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과거에는 성화(聖化, sanctification)라고 말했는데, 요식행위처럼 말했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에 물들지 말고 안목의 정욕을 따라가지 말며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지 말라고 했지만, 귀신을 뽑아내야 한다는 것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필자는 실제를 말하는 것이다. 성화란 귀신을 내보내는 것이다.
사람은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의 영향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 육체의 쾌락을 추구한다. 남 앞에 드러나기를 원하고, 쾌락과 음란을 추구하며, 즐기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 육체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갈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욕심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육체의 욕심은 육체 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들, 곧 뱀들과 귀신들에 의해 계속 생기는 욕심이다. 그래서 그것을 이기려면 우선은 절제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귀신을 빼내야 한다.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이기려고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적용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그렇게 해서 성령 충만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을 때는 괜찮았다. 그러나 귀신은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버렸다. 금식도 해 보고 작정기도도 해 보았지만 안 되었다. 왜 안 되었는가? 속에 있는 귀신을 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놀라운 사실을 듣고 회개를 시작해도 귀신이 엄청나게 훼방하니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원래대로 돌아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다가 죽으면 천국에 가는 것이고, 살려 주시면 끝까지 가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거저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한 것을 제시하셨다. '정보배 목사를 봐라. 이런 것이다.' 누군가는 샘플을 보내 주셔야 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이런 은혜를 받을 이유가 하등 없는 사람이다. 저주를 받아도 저주의 앞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다. 아버지 쪽으로는 제사, 어머니 쪽으로는 무당의 엄청난 죄가 있었고, 위로 올라가면 부처와 미신과 잡신을 섬긴 죄가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필자 속에서 영적 에너지가 부글부글 타오른다. 이 모든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또 필자는 머리가 똑똑하지 않아서 성경 암송을 잘 못 한다. 어거스틴이나 칼빈처럼 보지 않고 술술 써 내려가지 못한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이었던 필자가 많이 총명해지고 있다. 악한 영이 다 나가니까 그런 것이다. 가장 큰 증거는 지식을 아무리 많이 집어넣어도 머리가 아프다거나 더 이상 못 들어온다고 스스로 중단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더 이상 안 들어가네, 그만 이야기하세요' 했는데, 지금은 박사 과정에서 세상 공부를 해도 쏙쏙 들어가고 더 갈급하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 11:2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이는 여호와의 영이 지혜와 총명의 영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혜와 총명의 영이 요셉과 다니엘에게 들어가 꿈을 해석하고 환상을 보게 했다. 그러므로 회개는 우리를 살리는 가장 강력한 도구요, 천국을 준비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이보다 나은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추구하라. 그러나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선행적 은총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얘야,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천국은 편하고 쉽게 가는 곳이 아닌데 너는 왜 그런 길을 가려고 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과 환경과 말씀과 오늘날의 유튜브를 통해 계속 우리를 깨우신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마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주님의 은혜'라고 찬송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다른 길을 따라갈 수 있다. 그렇다면 따라가면 어떻게 되는가?
5.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은 어떤 곳인가?
그렇다면 탈락하지 않은 자가 들어가는 천국은 어떤 곳인가? 필자는 들어가는 천국을 전공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천국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를 필자가 거의 다 알고 있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천국은 새 예루살렘 성 안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천국에 갈 때 보니 우리는 북쪽을 향해 우주를 빛의 속도로 날아간다. 주변에 우주의 은하와 별들이 보이다가 어느 순간 도달한다. 그러나 영의 세계의 공간은 그렇게 멀지 않다. 눈앞에 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여행을 시키기도 하시지만 1초 만에 바로 들어가 버리기도 한다. 들어가면 새 예루살렘 성 안, 곧 황금 세계, 빛의 나라로 들어간다.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진주 문이 있어 그 문을 통해 들어간다(계 21:12-13, 21).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고, 그 땅 위에 새 예루살렘 성이 있다. 그 성은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각각 1만 2천 스다디온으로 똑같다(계 21:16). 1스다디온은 약 185m이니 약 2,200km다. 이곳이 천국이다. 그리고 그 성 밖에도 땅이 있는데, 성 안보다 훨씬 넓다.
성 안은 완전히 빛의 나라다. 하나님이 빛이시고 어린 양이 등불이 되시기 때문에 해와 달과 별의 빛이 필요 없다(계 21:23). 하나님의 보좌는 영광의 빛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생명수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만 있다. 하나님께서 보좌 밑에서부터 생명수가 흘러내리게 하셨다(계 22:1). 필자가 보니 그 물이 약 1,600km를 흘러내려 와서 강을 이루기 시작하고, 시온 산을 나선형으로 빙빙 돌아 동쪽 문까지 내려간다. 그렇게 모여 흐르는 물을 생명수의 강이라고 한다. 생명수 강 양쪽에는 길이 나 있고, 그 안쪽은 공원처럼 꾸며진 사람들의 주거 공간이다. 그곳을 시온 산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흰옷을 입는다. 요한계시록 7장은 14만 4천 뒤에 서 있는 흰옷 입은 허다한 무리를 이렇게 말한다.
계 7:13-14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이는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 흰옷을 입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흰옷은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평상복이다. 그런데 그 옷에서 나는 빛의 강도가 다르다. 솔로몬처럼 죄를 짓고 간신히 턱걸이로 들어간 사람은 빛이 나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도 이 땅의 인류에게 죄를 끌어들였기 때문에 빛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윗과 이사야와 바울은 빛이 확 난다. 그 빛의 정도가 곧 하나님을 닮은 정도다. 그래서 예배를 드릴 때 빛이 많이 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 있고, 빛이 덜 날수록 뒤로 간다. 필자는 수십억 명이 영광의 광장에서 예배를 드리면 저 뒤에서는 하나님이 보이겠는가 하고 걱정했다. 그런데 천사가 가르쳐 주었다. 그때에는 당겨서 크게 보게 된다는 것이다. 천국에서는 어디서든 주님을 똑바로 본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떻게 해서든 우리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
6. 성 밖과 바깥 어두운 데는 어떤 곳인가?
그렇다면 성 밖은 어떤 곳인가? 성경은 새 예루살렘 성 바깥을 둘로 나누어 말한다. 성 밖이라는 장소가 있고, 그보다 더 바깥의 어두운 데가 있다.
성 밖은 지구와 환경이 비슷하다. 새 예루살렘 성이 엄청 높기 때문에 성 가까운 곳은 밝다. 그래서 성 바로 바깥쪽은 빛도 비치고 물도 있으며, 지금의 설악산처럼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있는 곳도 있다. 에스겔 성전을 보면 동쪽 문에서 물이 흘러나와 바깥으로 흘러간다(겔 47:1-12). 그처럼 생명수도 성 밖으로 어느 정도 흘러간다. 그러나 멀리 갈수록 물이 없어진다. 그래서 바깥쪽은 갈수록 황량해진다. 비가 내려야 하는데 바깥쪽으로 갈수록 비가 내리지 않는다. 구약의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은혜를 상징한다. 바깥쪽으로 갈수록 은혜가 미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바깥쪽은 어둡다. 성 밖에 가면 계속 노동을 해야 하고, 다치기도 하니 생명나무 잎사귀를 발라야 한다(계 22:2).
이 더 바깥쪽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깥 어두운 데'다. 바깥 어두운 데는 성경에 세 번 나오는데, 모두 마태복음에 있다(마 8:12; 22:13; 25:30). 원문은 '토 스코토스 토 엑소테론'(τὸ σκότος τὸ ἐξώτερον)으로, '엑소테론'은 비교급이다. 그래서 '더 바깥의 어두운 데'다. 그런데 우리 개역 성경은 '더'를 빼고 '바깥 어두운 데'라고 번역해 놓았다. 우리 가운데 지옥과 방불한 곳에 갈 자가 있다는 말,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은 구원(고전 3:15)이라는 말이 이렇게 너무나 바깥쪽에 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천국 밑이 지옥이라는 것이다. 지옥은 멀리 있지 않다. 이 지구도 똑같이 지어졌다. 에덴동산에 생명나무를 두시고 물이 네 강으로 흘러가게 하셨으며(창 2:9-10), 땅속에는 마그마, 곧 불이 들어 있다. 아마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 가운데 타락할 자가 나왔을 때 그는 지구의 땅속 불못에 들어갈 확률이 많았을 것이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그 밑이 12개 층 정도로 되어 있고, 층마다 고문받는 수준이 다르다. 그 밑이 불못이다. 그곳은 빛이 하나도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곳이다. 그곳에서는 빛이 있어서 다니는 것이 아니라, 고문하는 이글이글 타는 불꽃 때문에 사람을 본다. 그러므로 성 밖과 불못은 한 끗 차이지만 엄청난 차이가 난다. 성 밖에만 살면 그래도 살 만하다. 그러나 점점 더 어두워져 완전한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다가 뚝 떨어지면 완전한 어둠의 세계로 간다. 그것이 불못, 곧 지옥이라고 지칭하는 곳이다.
7. 성 밖에는 누가 가며, 성경은 그것을 어떻게 말하는가?
그렇다면 성 밖에는 누가 가는가? 그것은 예수를 믿었던 자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던 자,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했던 자, 교회에 나왔던 자, 은혜를 받아 눈물 콧물을 흘렸던 자가 간다. 예수를 믿지 않았던 사람이 성 밖에 갈 확률은 제로다. 성경은 이것을 세 가지 정도로 말한다.
첫째, 요한계시록 22장이 말한다.
계 22:14-15 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14절과 15절을 함께 보아야 한다. 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자는 성 안에 들어간다. 자기 두루마리를 빤다는 것은 요한계시록에서 예수의 피로 죄를 깨끗하게 하여 흰옷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회개하면 성 안으로 들어가지만, 예수를 믿고도 회개하지 않고 15절에 나와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은 성 밖으로 간다. 성 밖이 바로 구원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가는 장소다.
둘째, 마태복음 25장이 말한다. 열 처녀 비유를 보면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의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마 25:1-13). 신랑이 문을 닫아 버렸다. 그 신랑의 집은 예수님의 집이자 아버지의 집인 새 예루살렘 성이다. 그렇다면 미련한 다섯 처녀는 예수를 믿었는가? 믿었다. 등불을 들고 있었다. 요한계시록에서 등불은 성령을 상징한다(계 4:5). 그들은 등불을 들고 있었으나 충분한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이었다. 그래서 성 밖에 있게 된 것이다. 또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은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둔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하고(마 25:26), 이렇게 말했다.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이는 주인의 종이었던 자도 무익하면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 밖도 바깥 어두운 데도 필자가 지어낸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셋째, 요한계시록 3장의 사데 교회가 말한다. 사데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다(계 3:1). 죽은 믿음을 가진 교회, 교회는 다니나 죽어 있는 교회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려도 감격이 없다. 우리는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면 눈물이 나고, 찬송만 불러도 기도만 해도 눈물이 나며, 말씀을 들으면 '진작 이 말씀을 들었어야 했는데 이제야 듣게 하시니 너무너무 감사하다' 하지 않는가? 그런데 사데 교회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자는 흰옷을 입고 천국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이기지 못하는 자는 흰옷을 입지 못하고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이기는 자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으시고 시인하신다고 했으니, 이기지 못하는 자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주님께서도 모른다고 하신다는 것이다.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는 것은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워지는 것이다. 믿기는 믿었는데 회개하지 않아 흰옷을 입지 못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분이 성 밖이 연옥설을 주장하는 이단이 아니냐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따라가야 하겠는가, 기존의 교리를 따라가야 하겠는가? 교단마다 교리가 다 다른데 언제까지 내 교단 교리만 정통이고 너의 교단은 이단이라고 할 것인가? 그 사람들도 다 천국에 간다. 나만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교단을 초월할 때다. 교단 교리를 따라가다가 엉뚱한 것을 믿으며 허송세월하면 열심히 수고한 모든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지금은 성경을 따라갈 때이고, 성경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다. 예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의 표준이요 기준이요 판단의 근거다.
8. 불못에는 누가 가며, 성 밖과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구원에서 탈락한 사람이 갈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소, 불못에는 누가 가는가? 요한계시록 21장은 이렇게 말한다.
계 21:7-8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7절과 8절을 연결해서 보면 8절의 사람들은 이기지 못하고 진 자들이다. 마귀에게 속아 마귀에게 지고, 귀신에게 지고, 영적 싸움에서 진 자들이다. 이들은 세 부류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두려워하는 자들이다. 이것은 비겁한 자들이라는 뜻이다(데일로이스, δειλοῖς). 필자는 이들을 주님을 부인한 자들로 추정한다. 순간적으로 '나는 안 믿는다' 하고, '주님, 지금은 살아야 하니 이렇게 하다가 환난이 지나가면 용서해 주세요' 하는 자들이 천국에 가겠는가? 천국에 갈 사람은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 부인했던 사람들은 성 밖이나 불못으로 갈 것이다. 주님께서 경고하셨다. 네가 나를 부인하면 나도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너를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며(마 10:33; 눅 12:9), 참으면 함께 왕 노릇하고 부인하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신다(딤후 2:12).
둘째,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다. 불신자들은 반드시 불못에 간다. 그리고 8절 안에 불신자가 들어 있으니 나머지는 믿었으나 죄를 짓고 있는 자로 추정된다.
셋째, 죄를 짓는 자들이다. 흉악한 자들, 살인자들, 음행하는 자들, 점술가들, 우상 숭배자들, 거짓말하는 자들, 특별히 십계명을 어기는 자들이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빛이 하나도 없는 그곳에 간다. 그러므로 성 밖에는 예수를 믿었던 자만 가지만, 불못에는 예수를 믿었던 자도 가기도 하나 대부분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과 비겁한 자들, 곧 부인한 자들이 간다.
그렇다면 불못은 원래 어떤 곳인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주님은 왼편의 염소에 속한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여기서 '저주를 받은'은 원문으로 '저주를 받은 채 있는'이라는 뜻이다. 영원한 불은 원래 타락한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곳이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종으로 지으셨으나 그 지위와 신분과 처음 자리를 버리고 자기 처소를 떠나 타락한 자들을 가두시는 감옥이자 형벌 장소다(유 1:6). 그래서 그들은 영원한 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간다(마 25:46). 그러므로 마귀를 따라가면 함께 간다. 마귀는 죄를 짓게 하는 자다. 그 죄를 지으면 마귀가 지옥에 갈 때 너도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마귀는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갇혀 있으면서 그 종들인 귀신과 뱀을 보내어 지금 우리에게 죄를 짓게 하고 있다. 그러니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려면 귀신과 뱀을 빼내야 한다. 누구는 금식을 안 해 보았는가? 누구는 작정기도를 안 해 보았는가? 누구는 성경 암송을 안 해 보았는가? 누구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암송하며 선포해 보지 않았는가? 그러나 회개도 하지 않고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만 하는 사람에게서는 귀신이 나가지 않는다. 합법적으로 들어왔는데 왜 나가겠는가? 주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법의 하나님이시다. 법대로 처리하신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으니, 그 말씀이 법이 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간이 영원토록 지옥에 가는 것은 하나님의 만세 전 계획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살리시려고 아들이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이 예수님이다. 하나님께서는 하신 말씀을 책임지신다. "나는 너희를 나의 양자로 삼고 상속자가 되게 하며, 더 나아가 왕 노릇하는 자로 예정해 놓았다. 나는 그것을 반드시 성취한다. 너희가 자유의지로 잘못된 길을 선택해도 나는 계속 말하겠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를 구원으로 초청하고 계신다.
9. 나오며
그러므로 우리는 한 번 예수를 믿었다고 영원히 구원받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되도록 주신 것이고 주님께서도 그것을 바라신다. 그러나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영혼이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야 완성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거나 계속 죄를 짓고 있으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죄를 지었으면 빨리 회개하여 죄가 누적되지 않게 해야 한다. 악한 영이 너무 많아 빛이 아예 비치지 못할 정도로 검은 것으로 나를 가득 채우지 말아야 한다. 빨리 덜어 내야 한다. 이것이 회개다. 회개가 살길이다.
우리가 얼마나 '예루살렘, 예루살렘' 하고 찬양했는가? 우리도 곧 그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난과 핍박이 와도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날마다 죄를 회개하여 악한 영이 우리를 유혹으로 끌고 가 고의로 죄를 범하게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악한 영들이 많이 들어왔는데도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고집하다가 성 밖으로 떨어지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존의 교리나 들어 왔던 상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직접 가르침을 따라가야 한다.
성 밖으로 가게 되면 얼마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겠는가? 지옥에 가서도 슬피 울며 이를 갈 자가 있다고 하셨다. 그들은 어느 순간 예수님을 알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령께서 깨우쳐 주셨기 때문에 후회하는 것이다. 몰랐다면 후회 자체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마디 말씀을 들어도 나를 깨우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지 듣고, 오늘도 그 말씀을 준행하여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된 사람이 되어, 꼭 새 예루살렘 성에 아름다운 지위를 얻고 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10월 21일(수) · 정보배 목사
![이번 주 말씀 [기독론(217)]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4) 구원에서 탈락한 자들이 가는 곳 중에서 성밖은 어떤 장소인가?(욜2:32, 계22:14~15)](https://i.ytimg.com/vi/PWRdxgpPCmM/mqdefault.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