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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218)]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5) 구원에서 탈락한 자들이 가는 곳 중에서 성밖과 바깥 어두운 데는 어떻게 다른가?(욜2:32, 마25:26~30)

정보배 목사조회 11읽는 시간 약 28분

설교핵심

이 설교는 구원에서 탈락한 이들이 향하는 성밖과 바깥 어두운 곳, 그리고 천국(성안)의 실상에 대해 설명하는 기독론 강연입니다. 강연자는 구원에서 탈락한 대다수가 머무는 성밖이 지구와 유사하지만 질병과 저주가 존재하는 반면, 자격 없이 침입했거나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이들이 갇히는 바깥 어두운 곳은 엄중한 형벌이 따르는 장소라고 강조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설교의 목적은 성도들에게 철저한 회개와 신앙적 충성을 촉구함으로써, 눈물과 고통이 없는 영원한 낙원인 새 예루살렘 성안에 반드시 입성하도록 권장하는 데 있습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구원에서 탈락한 자들은 어디로 가며, 성 밖은 어떻게 나뉘는가?2천국은 만원인가, 예수님은 우리의 거처를 언제 예비하셨는가?3새 예루살렘 성 안과 성 밖은 빛과 문과 다스림에서 어떻게 다른가?4성 안에는 없고 성 밖에는 있는 것은 무엇인가?5예복 없이 혼인 잔치에 들어온 자는 왜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는가?6악하고 게으른 종은 왜 바깥 어두운 데로 가는가?7나라의 본 자손들은 왜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는가?
설교 본문 (욜 2:32; 마 25:26-30) ·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욜 2:32). 그리고 구원의 최종적인 마지막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었으나 그 구원에서 탈락하는 자들이 있다. 지난 시간에는 그들이 성 밖과 불못으로 간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회개하지 못해 자기 두루마리를 빨지 못한 채 지은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자들은 성 밖으로 간다(계 22:14-15). 그리고 비겁한 자들, 곧 주님을 부인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십계명을 어기는 심각한 죄를 지은 자들 가운데 일부는 불못에도 간다(계 21:8). 그렇다면 성 밖은 다 똑같은 장소인가? 그렇지 않다.

기존 교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과 지옥만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성 밖'이 있고, 그 성 밖에도 더 바깥쪽에 '바깥 어두운 데'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그것은 연옥 아닙니까?" 하고 묻는다. 그러나 연옥과는 전혀 다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천국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천국에 어떤 장소가 있는지, 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천국의 지위가 무엇인지, 천국에서 어떤 집에 사는지를 몰랐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성 안과 성 밖이 어떻게 다르며, 성 밖 가운데서도 바깥 어두운 데는 어떤 곳이고 누가 그곳에 가는지를 성경과 필자가 확인한 천국의 실상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구원에서 탈락한 자들은 어디로 가며, 성 밖은 어떻게 나뉘는가?

그렇다면 구원에서 탈락한 자들은 어디로 가는가? 성 밖으로 가거나 불못으로 간다. 이것은 정답이다. 그리고 구원에서 탈락한 사람의 대부분은 성 밖으로 가고 일부는 불못으로 간다. 필자가 여기서 '대부분'과 '일부'라고 표현하는 것은 성경에 문자 그대로 나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국의 실제 상황을 알고 그것을 반영한 일종의 추정치에 해당한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성 밖을 다시 둘로 나누어 말씀하셨다. 그리고 지옥을 말씀하셨다. 그것이 나오는 말씀이 마태복음 25장이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이어서 나온다. 마태복음 25장의 1-13절의 '열 처녀 비유'는 성 밖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의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문 밖에 남겨졌는데, 이 문이 신랑의 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신랑은 주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문 밖은 성 밖인 것이다. 이어서 마태복음 25장 14-30절의 '달란트 비유'는 바깥 어두운 데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마지막 비유로서 마탭고음 25장의 31-46절의 '양과 염소의 비유'는 그 땅 밑에 있는 불못, 곧 영원한 벌을 받는 장소를 보여 준다. 그 불못은 원래 인간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장소가 아니라 마귀와 그 사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예비된 형무소이자 형벌의 장소다(마 25:41). 마귀가 지옥에 갈 때 그를 따르는 자도 함께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에게서 하루라도 더 빨리 벗어나야 한다.

'바깥 어두운 데'는 원문으로 '에이스 토 스코토스 토 엑소테론'(εἰς τὸ σκότος τὸ ἐξώτερον)이다. '엑소테론'은 비교급으로서 '더 바깥쪽'이라는 뜻이고, '스코토스'는 어둠, '에이스'는 '~안으로'라는 뜻이다. 그래서 '더 바깥쪽의 어둠 안으로'다.

그림으로 상상해 보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쉽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고, 그 땅 위에 새 예루살렘 성이 있다. '성 안'은 빛의 나라다. 이곳이 바로 천국이라고 불리는 장소다. 그런데 이 성의 빛은 너무나 밝아서 그 빛이 밖에까지 비치고 생명수가 성 밖으로까지 흘러나가기 때문에 성 바로 바깥 곧 '성 밖'은 빛도 있고 물도 있고, 단풍도 드는 지구의 아름다운 자연과 거의 똑같다. 그러나 멀어질수록 점점 황량해져 식물도 자라지 않고, 나중에는 캄캄해진다. 그 캄캄한 데를 '바깥 어두운 데'라고 한다. 그리고 그 바깥 어두운 데를 지나 뚝 떨어지면 그 안쪽이 바로 빛이 하나도 없는 어둠 자체, 곧 '불못'이라는 장소다. 불못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의 바로 땅 밑에 있다. 새 하늘과 새 땅 위에 천국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새 예루살렘 성만을 우리는 천국이라고 부른다. 고로 우리 성도들은 어찌하든지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3. 천국은 만원인가, 예수님은 우리의 거처를 언제 예비하셨는가?

그렇다면 천국은 이미 사람이 가득 차서 더 들어갈 곳이 없는가? 어떤 사람은 천국이 만원이라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는 아버지 집인 천국에 거할 곳(거처)이 많으며, 예수님께서 부활 후 올라가서 우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우리의 하늘 아버지 집은 만원이 아니다. 또한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구약 시대에도 천국에 들어가 살고 있는 성도들이 있었고 신약의 성도들도 천국에 들어가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공생애의 거의 끝무렵에 예수께서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셨으니, 그때까지는 아직 성도들이 살 집이 지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고로 구약의 성도는 한 사람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낙원, 곧 아브라함의 품에 임시로 거처하고 있었다(눅 16:22).

그런데 예수께서는 부활 승천하신 뒤에 하늘에 처소를 예비하셨다. 맨션 같은 큰 집을 짓기 위해 가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목수라는 직업을 가지셨는지도 모른다(막 6:3). 그래서 우리 주님은 집을 잘 지으시는 분이다. 그러나 직접 집을 지으시는 것이 아니라 건축 천사들에게 다 지시하셔서 아름답게 지으신다. 그렇게 집을 지으신 다음에 구약의 성도들은 한꺼번에 그 집으로 들어가서 살게 하셨다. 그리고 그 뒤로는 신약의 성도들이 죽어서 부활하여 올라가는 대로, 곧바로 행위 심판이 이어져서 상과 지위를 받고 천국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주님이 오실 때 한꺼번에 부활하는 것은 단체적인 부활로서 둘째 부활이라고 칭하고,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 개인적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의 부활은 개인적인 부활로서, 첫째 부활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신 뒤로 성도들이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죽으면 오늘 바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결코 무덤에서 쉬었다가 주님이 오시는 날 부활체로 도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국이 만원이라는 말은 거짓이다. 주님께서는 구원받을 모든 성도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지어 놓으셨고, 거기에 들어갈 숫자까지 정해 놓으셨다. 그리고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그리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고로 지금 천국에는 이미 들어간 성도들이 지어진 집에서 살고 있으며, 그 가운데 14만 4천명의 주의 종들이 있다. 이들 중에 위쪽에 있는 그룹의 사람들은 지금 성 밖으로까지 나가 철장 권세를 사용하여 왕 노릇을 하고 있다. 이것을 가리켜 '천년왕국'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천년왕국의 끝머리에 일어날 일이다.

4. 새 예루살렘 성 안과 성 밖은 빛과 문과 다스림에서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성 안과 성 밖은 어떻게 다른가? 성 밖도 천국과 거의 같은 환경이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 성 안과 성 밖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장차 들어갈 새 예루살렘에 대한 소망이 더 생긴다. 이에 대해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말한다.

계 21:23-25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새 예루살렘 성은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은 1만 2천 스다디온, 약 2,200km의 정방형이다(계 21:16).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약 400km이니 그 다섯 배가 훨씬 넘는다.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 성은 황금으로 되어 있어 빛이 나면서도 황금색깔이다. 옛날부터 천국을 '황금 집'이라고 많이 말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빛처럼 성을 비치니 성 안에는 전기 시설이 필요 없다. 가장 따뜻하고 춥지 않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성 밖은 이와 다르다. 그러나 성 밖은 성 안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장소다.

여기에 나오는 '만국'은 성 밖에 사는 사람들이다. 원문으로는 '민족들'(에트네, ἔθνη)이다. 24-27절을 원문에 입각하여 직역하면 이렇다. "민족들이 그 도시(성)의 빛을 인하여 장차 걸어 다닐 것이다. 그리고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을 그 도시 안으로 가져온다. 낮들에 그 도시의 문들은 결코 닫히지 아니할 것이다. 그곳에는 밤이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민족들의 영광과 존귀를 그 도시 안으로 장차 운반할 것이다." 원문에서 성은 여성 명사이므로 '그녀'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을 '그 도시'로 바꾸어 두었다. 그리고 26절의 '그들'은 사람들이 아니라 땅의 왕들이다. 한글 성경은 '사람들이'라고 잘못 번역해 놓았다.

이 말씀에서 성 안과 성 밖의 차이가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드러난다. 먼저, 빛이다. 성 안에 밤이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 안을 두루 비추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 안은 항상 낮이어서 밤이 없다. 그런에 성 안에 있는 장소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얼마나 강한지, 성 바깥 곧 성의 바로 뽀짝 옆에 살게 있는 민족들은 그 성의 빛을 인하여 다닐 수 있다. 그 빛은 성 바로 바깥까지는 강하게 비치지만 더 바깥쪽으로는 그 빛이 비치지 않는다. 다른 데는 칠흑 같은 어둠인데 성의 빛이 비치는 곳까지만 밝은 것이다.

다음으로, 문이다. 성문들은 결코 닫히지 않는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만 통과할 수 있다. 그래서 성 밖에 사는 사람들은 성 안에 들어갈 수 없다. 희한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진주 문 앞에 가서 문이 열리지 않아 울었다는 간증도 있다. 그 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열린다. 혹시 거기에 갔는데 문이 열리지 않으면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열어 주소서' 할 것이 아니라 '주 예수여' 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가 천국의 실제를 말하자면, 성 밖에 사는 사람도 성 안에 들어갈 수는 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성 밖에 있는 사람을 부르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지옥에 있는 사람은 부르지 않으시지만 성 밖에 있는 사람은 부르실 때가 있다. 그때가 되면 그 시간만 허용되어 성 밖에 살던 사람도 천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들도 과거에 주 예수님을 믿어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범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는 절대 들어오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다스림이다. 땅의 왕들은 자기 영광, 곧 밖에서 군림할 수 있는 왕적 권세를 가지고 성 안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성 밖에까지 가서 왕 노릇을 하고 들어오는 것이다. 왕 노릇은 성 안의 백성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다. 땅의 왕들은 이미 첫째 부활로 인하여 천국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왕노릇하는 자들을 갈라진다. 이들은 왕노릇을 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성 밖으로 나가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다스린다. 고로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계 2:26-28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이는 이기는 자가 철장을 가지고 민족들을 다스린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철장으로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한다는 것은 성 밖에는 여전히 거역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에다가 왕노릇하는 자에게는 새벽 별을 주신다고 하셨다. 필자는 이 별이 은하계의 행성들이라고 본다. 행성을 다스릴 자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주인들이 있는지는 필자도 거기까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우주까지 다스리게 하실 것이다.

5. 성 안에는 없고 성 밖에는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성 안에는 없고 성 밖에는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 가지 정도이다.

첫째, 저주와 상처다. 요한계시록 22장은 이렇게 말한다.

계 22:1-3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이는 성 안에는 다시 저주가 없지만, 생명나무 잎사귀가 만국, 곧 성 밖의 민족들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다는 것을 말한다. 고로 성 밖은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부활체라도도 다친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주님의 특별한 보호가 있어 다치지 않는다. 성 밖은 보호가 없다.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철장으로 맞기도 하니 다치고,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생명나무 잎사귀가 필요하다. 성 안에는 가난이나 질병이나 신기나 귀신 들림 같은 저주가 없다.

둘째, 밤과 피곤이다. 성 안에는 다시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다(계 22:5). 밤이 없다는 것은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보통 사람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고 쉬는데, 쉬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다. 천사들을 보라. 귀신들은 24시간 우리를 공격해도 피곤하지 않다. 우리는 피곤한데 그들은 피곤하지 않다. 천국에서도 쉬지 않아도 항상 최상의 컨디션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는 왜 잠을 자는가? 그건 지구에서 잠자던 기억이 나서 한 번씩 자 보는 것이지 피곤해서 쉬는 것이 아니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부활체는 천사와 비슷하여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다. 지구에서 먹던 습관이 있어서 먹고, 잔치에 초대할 때 기쁨을 더하려고 먹는 것이지,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먹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빛이 하나도 없이 어둠만 있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불못이다. 그곳에서는 빛이 전혀 없다. 다만 지글지글 타오르는 유황불로 인하여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뿐이다.

셋째, 사망과 애통과 아픔이다.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는 성 안에는 더 이상 사망도, 애통도, 곡하는 것도, 아픈 것도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영원한 부활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 밖에서는 죽었다 사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필자는 본다. 성 안에 들어간 사람 가운데 자기를 비관하는 사람은 없다. 필자의 아버지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섬기며 다녀도 그곳에 들어온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다. 울부짖음도 없다. 사망은 죄의 삯이다(롬 6:23). 그런데 성 안에서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 죄를 짓게 유혹하던 마귀와 귀신도 없다. 귀신은 어둠의 세상 주관자인데, 천국에는 귀신도 마귀도 없다. 그러므로 성 안에는 죄도, 어두운 밤도, 아픔도, 죽음도, 눈물도, 슬픔도 없다. 전기도 에어컨도 히터도 약도 필요 없다. 그곳에 가지 않으려면 죄를 짓고 절대 회개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반드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

6. 예복 없이 혼인 잔치에 들어온 자는 왜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는가?

그렇다면 성 밖 가운데서도 더 바깥 어두운 데에는 누가 가는가? 성경은 세 부류를 말한다. 그 첫 번째가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 잔치에 들어온 자다. 천국의 실상을 모르면 이 이야기를 하기 곤란할 것이다. 필자는 실상을 알고 천국을 전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종이니 말한다.

마태복음 22장의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 비유는 두 가지 비유가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누가복음 14장 15-24절의 큰 잔치 비유는 마태복음 22장 1-10절에 해당한다. 초청에서 잔치에 들어가기까지의 이야기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그 뒤에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고 휴거와 지상 재림이 끝난 뒤,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시작될 때의 상황이다.

마 22:11-14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마지막에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주님을 부인할 자도 있고, 666표를 받지 않으면 죽이려 할 때 부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죄를 지어 옷이 너무 더럽혀져 들어가지 못하는 자도 있다. 더러운 옷을 입고 혼인 잔치에 오는 신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들어올 수 없는 자가 들어와 버렸다. 성 안의 사람들은 다 흰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는 예복 없이 들어온 것이다. 합당하지 않은 자, 자격이 없는 자가 들어온 것이다. 그 예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입혀지는 의의 옷이라고도 할 수 있고, 혼인 잔치에 참여할 때 입는 옷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은 항상 열려 있어서 보이기는 하지만 들어갈 수는 없는데, 이 사람이 어떻게든 들어와 버린 것이다. 주님께서 '네가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느냐' 하시자 그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옛날 개역한글 성경은 이것을 '유구무언이어늘', 곧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고 번역했다.

이 사람은 원래 성 밖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합당하지 않게 성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벌을 주시려고 손발을 묶어 더 바깥 어두운 데로 쫓아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더 바깥 어두운 데는 성 밖에 있어야 할 사람이 허락 없이 성 안에 들어왔다가 쫓겨나 형벌을 받는 장소다. 그곳은 캄캄함이 어마어마하여 거의 지옥을 방불한다. 손발이 묶인 채 그곳에서 형벌을 받는다. 이곳도 성 밖의 하나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도 죄를 적게 지은 사람은 성 밖에 있고,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더 바깥쪽에 있게 된다. 죄를 많이 지었든 적게 지었든 다 같은 지옥에 간다는 것은 옛날 말이다. 지은 죄만큼 대가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하는 방법을 알려 주셔서, 행위책에 기록된 죄 된 행위를 다 지워 버릴 수 있도록 육체가 있는 동안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그러므로 남은 기간에 빨리 회개해야 한다. 천국에 턱걸이로 들어간다 할지라도 회개하지 못한 만큼 빛이 나지 않는다. 그러면 예배를 드릴 때 앞으로 가고 싶다고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주님과 친밀한 정도에 따라 자리가 정해져 있어 앞으로 가지 못한다. 누리는 빛과 영광이 다르다. 고로 우리는 회개를 많이 해야 한다.

7. 악하고 게으른 종은 왜 바깥 어두운 데로 가는가?

그렇다면 바깥 어두운 데에 가는 두 번째 부류는 누구인가?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땅에 감추어 두고 일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주인이 굳은 사람이어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은다고 핑계를 댔다. 그러자 주인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했다(마 25:24-26). 게으르다는 것은 일하기 싫었다는 것이고, 악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색한 분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일하기 싫어서 하지 않고는, 주인이 자기를 착취하려고 달란트를 주어 부려 먹으려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주인은 그렇다면 차라리 그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 맡겨 이자라도 받게 했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마 25:27).

이 달란트 비유는 주님의 종들에 관한 비유다.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종들, 곧 14만 4천을 지칭한다. 그들이 나중에 어떻게 심판을 받는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왜 그들이 14만 4천인지는 필자의 요한계시록 강의 보완편 52강에 다 나와 있고, 앞으로 책으로도 나올 것이다. 그 14만 4천 가운데서 왕 노릇하는 자가 나온다. 그들에게만 보좌가 있기 때문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은 이렇다.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는 이기는 자가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14만 4천은 보좌에 앉아 예배를 드리고, 통치자로서 왕 노릇을 한다.

그런데 악하고 게으른 종은 일하라는 사명을 받아 이 땅에 보내졌는데 그 일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 종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시고, 영적 나이도 성숙하게 하시고, 은사와 달란트를 합쳐 주시고, 더 큰 천사를 붙여 주셔서 이 땅에 보내셨다. 그런데도 일하기 싫어서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형벌을 주신다.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이는 사명을 받은 종이 그 사명을 저버리면 무익한 종으로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더 나쁜 종도 있다. 마태복음 24장은 이렇게 말한다.

마 24:48-51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이는 하나님의 참 종들을 이단이라 정죄하고 때리며, 술친구들과 먹고 마시며 세상의 향락과 명예와 즐거움을 따라 산 종이 엄히 맞고 형벌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종'이란 하나님께서 보내신 특별한 종들이다. 그들도 바깥 어두운 데로 가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종으로 세워 보내셨는데, 자유의지가 있으니 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실제로 하지 않은 것이다. 사명 없이 이 땅에 온 평신도들은 하지 않았다고 책망받지 않고 한 일에 대한 보상이 있다. 그러나 주의 종들은 사명을 하지 않으면 성 밖으로 간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내팽개치고 세상의 즐거움과 향락을 따라 세상 길로 간 쓸모없는 종은 가진 것까지 다 빼앗겨 열 달란트 받은 자에게 주어지고(마 25:28-29), 자기는 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난다. 원래 그 사람이 충성했다면 14만 4천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창조 이후 주님의 재림 때까지 보내시는 종의 숫자는 14만 4천에서 한 명도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 그 종들이 상당수 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지 않으니 믿지 않아도 된다. 천국에 가 보아야 아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종들이 말하고 있으니 귀담아들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또 요한계시록 21장 27절은 거짓말을 일삼는 자는 결코 그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원문으로는 '거짓말을 만들고 일삼고 있는 자들'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도 '성 밖이 어디 있느냐, 바깥 어두운 데가 어디 있느냐, 천국과 지옥밖에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그 죄의 대가를 반드시 받는다. 모세도 한 번 혈기를 내어 잘못했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민 20:10-12). 그러므로 지도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진실해야 하는지 모른다. 주님께서는 주의 종들을 엄하게 심판하신다.

8. 나라의 본 자손들은 왜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는가?

그렇다면 바깥 어두운 데에 가는 세 번째 부류는 누구인가? 민족적 사명이 있는데도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은 자들이다. 마태복음 8장은 하인의 중풍병을 고침받은 가버나움의 이방인 백부장 이야기다.

마 8:10-12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여기서 동서로부터 오는 많은 사람은 이방인들을 지칭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언약 백성인 유대인들을 지칭한다. '앉으려니와'는 원문에서 비스듬히 기대어 앉는다는 뜻으로, 천국의 혼인 잔치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난다. 유대인들은 언약 자손으로서 먼저 초청을 받아 그 자리에 갈 수 있었고, 많은 이방인을 천국으로 인도해야 할 사명을 받은 민족으로 이 땅에 보내졌다. 그런데 그 민족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니 그냥 성 밖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더 바깥쪽 어두운 데로 보내시는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형벌이다. 우리 민족에게도 마지막 때에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할 민족적 사명이 있다.

그런데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는 말씀은 마태복음에 여섯 번 나온다(마 8:12; 13:42, 50; 22:13; 24:51; 25:30). 성 바로 바깥, 지구처럼 환경이 좋은 곳에서는 이를 갈지 않는다.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난 자들이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지옥에까지 떨어진 자들이 슬피 울며 이를 간다. 그것은 후회한다는 것이다. '나도 예수를 믿었는데, 그렇게 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도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가 지워졌으나 지옥은 아닌 곳, 그러나 어둠이 가득한 그 더 바깥쪽 어두운 데에서 손발이 묶이고, 마태복음 25장처럼 매를 맞기도 한다. 말을 듣지 않으니 철장으로 맞는 것이다. 고로 성 밖과 바깥 어두운 데는 같은 성 밖이지만, 바깥 어두운 데는 형벌을 받는 장소다.

9. 나오며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주님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인해서는 안 된다. 목숨은 하나지만 일찍 죽든 늦게 죽든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순교자는 더 큰 일을 할 수 있었는데도 일찍 죽었기 때문에 천국에서 엄청난 보상을 받는다. 그러므로 언젠가 죽을 것이라면 순교의 현장이 온다 할지라도 스데반처럼 기꺼이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행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그리고 살려 주시면 주님의 일을 더 하여 천국 집을 준비하고 아름다운 지위를 준비해야 한다. 비록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지 못했어도 회개만 한다면 우리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주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다.

계 22:14 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아니하고, 지은 죄를 회개하여, 더 이상 사망과 저주와 죽음과 귀신과 아픔과 슬픔과 눈물이 없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10월 22일(목)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