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침묵상
인터넷 방송12개 메뉴전체 →
아침묵상주일낮예배주일낮설교영상주일낮설교다운설교핵심과명령선포주일찬양예배특별새벽집회수요강해설교금요기도회특별집회와간증새가족양육성경공부기타언론보도
아침묵상

[온라인새벽기도회(2026.10.26/월,새벽5시반] [바른 구원(02)]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와 그 싯점은 언제인가?(출32:30~35)

정보배 목사조회 4읽는 시간 약 25분

설교핵심

이 설교는 구원의 확신과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조건에 대한 목회적 가르침을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로, 진정한 구원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시작되며, 이때 신자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다고 설명합니다. 둘째로,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하나님의 선물이나, 신자가 지속적인 범죄와 불순종 속에서 회개하지 않고 은혜를 등한시한다면 살아있을 때라도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므로 인간에게는 믿음을 지키고 죄를 즉시 회개할 책임이 있으며, 철저한 회개를 통해 돌이킬 때만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와 영원한 구원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때는 언제이며, 그 기준은 무엇인가?2구원이 전적인 은혜라면 왜 인간에게 책임이 있는가?3한 번 주신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말은 어디까지 맞는가?4출애굽과 광야 여정은 우리의 구원 과정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5금송아지를 만든 일은 왜 그토록 큰 죄였는가?6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은 생명책에 대해 무엇이라 답하셨는가?7이름이 지워지지 않으려면 징계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설교 본문 바른 구원(02)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와 그 시점은 언제인가? (출 32:30-35) ·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야 천국에 간다. 이것은 확실하다. 그러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 그런데 생명책에 기록되었던 이름이 지워지면 어떻게 되는가? 그 역시 천국에 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한 번 기록된 이름이 지워졌다가 다시 회개하면 다시 기록되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정확히 정리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을까?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필자는 믿음과 회개로 천국에 간다고 말한다. 믿는다 할지라도 죄를 짓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우리 속에 귀신이 있어서 유혹하기 때문이다. 성령이 계시면 그 유혹을 버텨 낼 힘이 있지만,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버틸 힘이 없어서 우울증과 중독에 빠진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뒤에도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때와 그 기준은 무엇이며, 기록된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와 그 시점은 언제인지를 출애굽기 32장에서 모세가 드린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때는 언제이며, 그 기준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구원을 받는가? 거듭날 때 받는다. 정확히 말하면 성령이 들어오실 때 구원을 받는다.

요 3:5-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사람에게는 두 번의 출생이 있다. 먼저 부모를 통하여 육체로 태어나고, 그다음에 영으로 또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육신의 부모가 있고 영의 부모가 있다. 태어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부모의 생명이 나에게 분배되는 것이다. 거듭남도 마찬가지다. 육체가 그렇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생명을 분배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거듭나는 것이다.

그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 속에 성령을 넣어 주셨다.

고전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살려 주는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그런데 하늘에 있는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왜 많은 이름 가운데 '생명책'이라고 했는가? 생명의 존재 여부가 거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있으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의 생명이 없으면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야 한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이면 그분이 들어오신다. 문을 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으신다. 그리고 반드시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어 영접해야 한다(요 1:12).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령께서 생명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그 순간 하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다. 그런데 믿는 순간에 반드시 성령이 들어오시는 것은 아니다. 믿음과 동시에 오시기도 하지만, 믿은 뒤 한참 후에 성령이 들어오시기도 한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지만 아직 성령이 들어오지 않아 생명이 없는 채로 교양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곧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순간 수호천사 두 명이 붙는다. 필자가 생명책을 전수 조사해 보니, 아직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수호천사가 없었고, 기록되었다가 살아 있는 동안 지워져 버린 사람에게도 수호천사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 천사들은 우리의 상태를 알려 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생명책은 하늘에 있는 큰 건물에 보관되어 있다. 그 건물에 엄청나게 많은 생명책이 진열되어 있는데, 거기에 우리의 이름이 등재되어야 천국에 간다.

3. 구원이 전적인 은혜라면 왜 인간에게 책임이 있는가?

이처럼 마음의 문을 열어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자유의지다. 하나님께서 무턱대고 "너를 구원시켜야 되겠다" 하시며 강제로 들어오시는 법은 없다. 그런데 예정론은 이 자유의지를 아주 무시해 버렸다. 천국에서 그 사람을 구원하기로 예정했으면 그 사람은 구원받고, 예정하지 않았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이중 예정론(二重豫定論, double predestination)은 틀렸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사람이 스스로 거부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 어떤 사람은 구원받고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수 없다. 멸망으로 예정해 놓고 "너는 지옥에 가라" 하시면 그 사람이 따지지 않겠는가? "왜 당신은 나를 구원으로 예정하지 않고 멸망으로 정하셨습니까?" 그러면 하실 말씀이 없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너에게 구원의 기회를 얼마나 많이 주었느냐? 그런데 네가 거역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너는 지옥에 가라." 그때 우리는 할 말 없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려면 반드시 우리에게 책임이 주어져야 한다.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모든 준비는 다 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구원은 없고, 예수 그리스도 없이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주님께서 전적으로 준비해 주신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그 구원을 우리가 등한히 여기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히 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예정론을 주장하는 사람 가운데 자기가 영원한 멸망으로 예정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모두 자기는 구원으로 예정되었다고만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만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반대편에는 공의가 있다. 공의를 빼면 안 된다. 공의를 빼면 악을 심판하실 수 없고 사탄을 심판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공평하게 "구원을 위한 만반의 준비는 내가 다 해 놓았다. 그러나 그것을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네가 선택하라"고 우리에게 맡기셨다.

그러므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극적이어야 한다. 기도하러 나오는 것도, 말씀을 듣는 것도, 회개하는 것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그냥 살아서는 안 된다. "내가 너에게 분명히 기회를 주었는데 왜 하지 않았느냐?" 하시는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로마서 8장을 들어 이렇게 말한다.

롬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렇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끊지 않으려 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을 때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 손을 놓아 버리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롬 8:26) "그렇게 살면 안 된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하고 계속 경고하신다. 그렇게 많이 말씀하셨는데도 그 음성에 순종하지 않아서 결국 멸망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우리의 책임이 항상 따른다. 그래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4. 한 번 주신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말은 어디까지 맞는가?

그렇다면 성령이 들어오셔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 이름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가? 이것이 특히 예정론 쪽 사람들이 주장하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맞는 말이면서 틀린 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영원한 구원으로 주신 것이다. 영원히 구원받으라고 주신 것이지, 빼앗아 가려고 준비하고 주신 것이 아니다. 조금 받아 보다가 지웠다가 다시 썼다가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그러나 그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성령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죄를 짓는다면, 현저하게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구원에서 제외시켜 버리신다. 영원한 구원으로 주어진 것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생명책에서 지우실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신다. 영원한 구원을 우리 스스로 놓쳐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지워지는가? 대부분은 죽을 때 지워진다. 성령께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계속 책망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건 잘못된 것이다, 빨리 돌이켜야 한다." 그런데도 돌이키지 않으면 죽을 때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우신다. 그러나 살아 있을 때 지워지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예전에 이것을 제대로 몰라서 죽을 때 지워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적 전투' 설교를 하면서 생명책을 전수 조사하다가, 죽을 때 지워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육체가 살아 있을 때에도 지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성경에도 그것이 나와 있었다.

특히 목사들은 살아 있을 때에도 지워진다. 평신도는 그렇게까지 쉽게 지우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목사들은 지우신다.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가르침을 원하지 않으신다. 야고보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라고 말했다(약 3:1). 생명도 없는 사람, 이미 지워진 사람이 가르치는 것, 또는 죄를 계속 지으면서 생명을 전하고 구원받으라고 하는 것은 가증한 일이다. 그런 자는 지워 버리시고, 다시는 회개할 기회를 주지 않으신다. 이것은 히브리서에 나온다. 그러므로 함부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평신도가 구원받는 것보다 주의 종이 구원받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한다.

반면에 생명책에 아예 기록되지 않은 사람, 곧 교회에 다니지만 아직 성령이 들어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구원받을 기회가 있다. 그러나 한 번 생명을 받아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며 살면서도 성령의 계속된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지워진 사람은 다시 기록되지 않는다.

5. 출애굽과 광야 여정은 우리의 구원 과정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그렇다면 언제 지워지는지를 성경은 어디에서 말하는가? 오늘 본문 출애굽기 32장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우리 구원의 정확한 예표다. 애굽의 바로 왕은 사탄과 세상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나옴으로 사탄과 마귀의 포로에서 나와 1차적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죽이려고, 구원을 잃어버리게 하려고 그들을 데려오신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서(출 3:6)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데려가시려고 데려오셨다. 그들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나왔고 홍해를 건너 세례를 받았다. 성막으로 보면 번제단과 물두멍을 통과한 것이다. 그리고 광야에서 성소의 일곱 금 촛대인 성령의 인도와 분향단의 기도와 떡상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다. 그리고 요단강, 곧 우리 육체의 죽음을 건너야 천국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무 범죄도 하지 않은 사람을 광야에서 죽이시겠는가? 하나님의 목적은 영생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구원을 주셨다가 빼앗았다가 하며 장난치시려고 주신 것이 아니다. 그런데 광야로 데려갔더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싫다고, 애굽이 더 낫다고, 애굽의 음식이 더 좋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 믿는 것은 녹록하지 않다. 광야 생활은 쉽지 않다. 신앙생활을 잘해서 천국에 가도록 귀신이 가만두겠는가? 어떻게든 실족시켜 떨어지게 만들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데려가시려고 예수를 믿게 하셨으니, 내 인생이 힘들고 어려워도 반드시 믿겠다고 끝까지 가는 사람이 천국에 간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셨으면 어떤 적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땅을 차지할 것이다. 이 고통은 일시적이다. 우리는 그 땅을 향해 가자." 이렇게 가면 성공한다.

그리고 광야에 나온 사람이 다 범죄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오늘날 돈으로 어마어마한 액수의 예물을 자발적으로 드려 성막을 지었다. 너무 많이 가져와서 그만 가져오라고 할 정도였다(출 36:5-7).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도 있었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불평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은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광야에 나왔던 사람 가운데 일부는 천국에서 14만 4천에 들어 보좌에 앉아 있는 이들도 있다. 다 지옥에 간 것이 아니다. 각자의 믿음으로 된 것이다.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지휘관을 세워 그를 따라갈 것인지, 끝까지 하나님을 믿을 것인지는 각자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교단에 소속되어 있느냐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것이 아니다. 교단이 무엇을 하든지 그것을 따라가지 않으면 된다. 필자는 목사가 된 지 30년이 되었지만 교단이 필자에게 무엇을 믿으라고 강요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소속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이 중요하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다고 아들의 이가 실 필요가 없다(겔 18:2). 끝까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믿음을 지켜 하나님의 뜻대로 산 사람은 천국에 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6. 금송아지를 만든 일은 왜 그토록 큰 죄였는가?

그런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그들은 애굽에서 눈에 보이는 신을 섬겼다. 애굽의 소 신(아피스·하토르)을 섬겼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숫자만 많아졌을 뿐(출 1:7)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했다. 그래서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우리를 인도할 신이 없다며 신을 만들자고 했다. 그들은 다른 신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 곧 엘로힘을 자기들의 신 개념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의 세계에 계신 분이다. 그런데 어떻게 물질로 만드는가? 그래서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만들고 광란의 춤을 추었다. 모세가 깜짝 놀랐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신데 왜 그러는가?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으면 그것이 신격화되고 사람들이 거기에 절을 한다. 나무를 깎아 금박을 붙여 놓은 것에 불과한데 사람들이 왜 거기에 절을 하는가? 효험이 있고 영험이 있기 때문이다. 자꾸 절을 하니 큰 귀신들이 와서 달라붙어 있다가 일을 일으키고, 소원이 이루어지니 사람들은 신이 응답했다고 생각한다. 다 귀신이 장난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상을 만들어 절하면, 그 형상이 신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악한 영이 오는 것이다.

제사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차려 놓고 신주와 위패를 놓고 절하면 원래는 없었던 것이 오는데, 그것은 조상이 아니라 귀신이다. 귀신이 조상 흉내를 내는 것이다. 필자가 우리 속에 있는 귀신의 방, 곧 조상 귀신 역할을 하는 귀신의 방에 들어가 보니, 영정 사진을 벽에 갖다 놓고 그 모양을 흉내 내기 위해 꾸미고 있었다. 그런데 100% 똑같이 흉내 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아는 사람은 "어, 이건 좀 다르다" 하고 안다. 불신자도 "우리 조상이 아닌데" 하고 알아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은 진짜 조상이 오셨다고 생각한다. 무당을 찾아가면 무당은 그 사람과 돌아가신 어머니만 아는 추억, 예를 들어 장롱 속에 돈다발을 넣어 둔 일 같은 것을 말한다. 그러면 "어머니가 오셨구나" 한다. 그러나 귀신은 그 속에서 다 지켜보고 있었다. 귀신이 알고 있는 정보로 100%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 만들지 말라고 하신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광란의 춤을 춘 것은 큰 죄였다. 하나님의 진노로 다 죽게 될 것 같으니 모세가 먼저 하나님 대신 진노했다. 하나님 편에 선 레위 자손에게 그들을 치게 하니 그날 백성 중에 삼천 명가량이 죽었다(출 32:28).

7.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은 생명책에 대해 무엇이라 답하셨는가?

그 상태에서 모세는 이 죄를 어떻게 용서받아야 할지 고민하며 하나님께 올라갔다.

출 32:31-32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모세는 아주 세게 나갔다. 배포가 컸다. 모세의 영의 나이가 22세였기 때문이다. 영의 나이가 큰 사람은 포용력이 크고 그릇이 크다. 영의 나이가 적으면 속이 좁아 자꾸 삐지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며, 무슨 말을 들으면 완전히 뒤집어진다. 그러나 영의 나이가 큰 사람은 무슨 말을 들어도 "음, 음" 하고 있다. 배포가 크니 담판을 지어도 세게 짓는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용서하지 않으시려면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주옵소서." 이것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청이었다.

모세가 자기 이름을 지워 달라고 한 것은 그의 이름이 이미 기록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래, 네 이름을 지우고 백성을 살리겠다"고 하지 않으셨다. 모세의 이름을 지워 달라는 청에 응답하지 않으셨다. 필자는 그것이 한 번 지워지면 다시는 기록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답하셨다.

출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범죄하면 지워 버린다고 하셨지, 죽을 때 지운다고 하지 않으셨다. 오늘날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회개할 것입니다. 1년만, 2년만 기다려 주세요" 하시며 떠나지 않고 붙잡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죽을 때가 아니라 범죄할 때 지우신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려면 믿음에서 빨리 회개해야 한다. 그래서 믿음과 회개가 필요하다.

물론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빌립보서 4장에서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서로 다투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과 함께 복음에 힘쓴 이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고 말한다(빌 4:2-3). 그 정도로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빨리 지워지는 것은 주님을 부인할 때다. 예수를 믿으면서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 예수를 믿으면서 무당을 찾아가는 것도 지워질 일이다. 그런데 그런 그리스도인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신사참배도 마찬가지다. 예수를 믿었으나 신사참배를 한 사람들은 다 지워진 것은 아니지만 거의 지워졌다고 본다.

그러므로 함부로 예수를 믿다가 예수를 안 믿는다고 부인해서는 안 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 믿음을 지켜 내야 한다. 믿음이란 한 번 믿은 것을 끝까지 지켜 내는 것이고, 회개란 지은 죄를 빨리 회개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예수님을 잘 믿던 한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를 무효로 만드는 말을 하게 되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죽을 때까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겠는가? 당장 지워 버리신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기록되지 않는다. 한 번 지워지면 회개할 기회가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이 히브리서에 나오는데, 그것은 다음 시간에 살펴볼 것이다.

8. 이름이 지워지지 않으려면 징계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를 만든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셨는가? 결국 용서하지 않으셨다. 왜 그런가?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이스라엘 민족은 우상숭배의 죄에 대해 한 번도 회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다른 방식을 취하셨다.

출 32: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그 죗값을 묻겠다는 것이다. 우상숭배의 죄는 삼사 대까지 이른다고 하셨다.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이것은 고통이 찾아올 때 "아, 이래서 이런 고통이 왔구나.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하고 빨리 회개하라는 것이다.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민족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 그런데 그 죄를 회개하지 않으니 지워질 위기에 처했고, 그래서 벌을 주신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그 죗값으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게 된다.

오늘날도 똑같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는데 죄를 짓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귀신에게 허락하셔서 질병과 가난과 어려움이 찾아온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 빨리 "아, 회개해야 하는구나" 하고 돌이키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고 천국에 간다. 그럼에도 계속 회개하지 않다가 어느 날 현저하게 죄를 지으면 그날로 지워진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처음부터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셨겠는가? 우리가 거역해서 그런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는데도 그 피를 믿지 않겠다고 하니 지옥에 가는 것이다.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다 해 주셨는데도 믿고 회개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니 지옥에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그 무한한 사랑 앞에 빨리 무릎을 꿇어야 한다. "하나님,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겼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신다. 돌아온 탕자를 보라(눅 15:11-32). 아들은 아버지가 살아 계신데 재산을 달라고 했다. 아버지더러 죽으라는 말과 같다. 아직 성숙하지 않아 돈을 쓸 능력이 없으니 허랑방탕하게, 원문의 뜻대로 하면 돈을 마구 뿌리며 다 날려 버렸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기근을 보내셨다. 징계를 내리신 것이다.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라도 배를 채우고 싶었으나 그것도 주는 자가 없었다(눅 15:16). 그때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 버린 것이 잘못되었구나. 아버지께 가서 용서를 빌자. 아들로 받아 주지 않으시면 품꾼의 하나로라도 받아 달라고 하자" 하고 돌아갔다.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는 "이놈의 자식, 내 말을 들을 때 들었어야지" 하고 단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아들이 온다고 하니 버선발로 달려 나가 목을 안았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 죄를 묻지 않으신다. 우리는 용서한다면서도 "이번 한 번만 봐준다" 하며 다 기억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든지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돌아오면, 손에 가락지를 끼워 주시고 발에 신을 신기시고 옷을 입히시며 아들의 자리를 다 회복시켜 주신다. 그래서 회개가 이렇게 중요하다.

9. 나오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성령께서 생명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다. 그때 우리는 거듭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히 구원받으라고 영원한 구원을 주신다. 그러나 그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성령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신다. 대부분은 죽을 때 지워지지만, 주님을 부인하거나 현저하게 죄를 짓는 자, 특히 잘못 가르치는 지도자는 살아 있을 때에도 지워진다.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출 32:33)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죽을 때가 아니라 범죄할 때 지우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한 번 지워진 이름은 다시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영접했으면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목숨도 걸어야 하고, 죄를 지었으면 빨리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과 회개로 천국에 간다. 하나님께서 질병이나 가난이나 어려움으로 징계하실 때, 그것을 회개하라는 신호로 받아 탕자처럼 아버지께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큰 구원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고, 어떤 핍박과 환난이 닥쳐도 믿음을 지키며, 잘못했으면 즉시 회개하여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하자. 그리하여 이 구원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 끝까지 지켜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10월 25일(일)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