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223)]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2)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1)(아모스9:11~12)
본 설교는 구약 성경 아모스서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교만, 그리고 진정한 회개의 필요성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남유다의 웃시아 왕과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가 거둔 국가적 번영이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섭리와 역사적 도우심의 결과였음을 역사적 사건과 대조하여 설명합니다. 그러나 두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를 자신의 공로로 착각하고 타락하자, 하나님께서는 대지진과 같은 강력한 경고를 통해 그들의 교만을 깨우치려 하셨음을 강조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메시지는 인간의 업적을 자랑하는 삶에서 돌이켜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하는 것만이 진정한 구원과 회복에 이르는 길임을 청중에게 일깨워 줍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아모스서의 주제 말씀은 왜 5장 24절이 아니라 9장 11-12절인가?본문 →2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마귀에게 눌린 자를 어떻게 도우셨는가?본문 →3아모스 1장 1-2절의 지진은 무엇을 미리 보여 준 하나님의 경고였는가?본문 →4여로보암 2세와 웃시야 때 남북 왕국은 어떻게 가장 강성해졌는가?본문 →5요나의 니느웨 선포와 일식은 북이스라엘의 평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본문 →6웃시야가 나병에 걸린 날의 대지진은 두 왕에게 무엇을 깨우쳤는가?본문 →7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신다는 약속은 무엇을 말하는가?본문 →1. 들어가며
우리가 누리는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恩惠, grace)로 된 것이다. 나라의 안정도, 개인의 형통도, 사역의 열매도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게 도우시고 보호하시고 미리 일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사람은 그것을 자주 잊는다. 자기가 설교를 잘해서 교회가 부흥한 줄로, 자기가 정치를 잘해서 나라가 안정된 줄로 착각한다. 어리석은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런 착각에 빠진 자들을 어떻게 깨우시는가? 그리고 깨우침을 받지 못하고 무너진 자들을 어떻게 다시 세우시는가?
아모스서에는 바로 이 착각에 빠진 두 명의 정치 지도자가 등장한다. 한 사람은 남유다의 웃시야 왕이고, 또 한 사람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다. 두 사람 모두 자기가 정치를 잘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고 착각했다. 왜 이 두 왕이 아모스서의 첫 장 첫 절에 등장하는가? 그리고 왜 아모스서는 9장 11-15절,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시겠다는 약속으로 끝나는가? 첫 단락과 마지막 단락은 하나의 이야기로 묶여 있다. 그 사이를 잇는 것이 1장 1절에 나오는 지진이다.
이번 내용은 필자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아모스서의 주제 말씀이 무엇인지를 먼저 바로 세우고, 성경과 함께 역사의 기록, 곧 요나 시대의 일식과 요세푸스가 남긴 웃시야 때의 대지진 기록을 통하여 아모스 9장 11-12절의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아모스서의 주제 말씀은 왜 5장 24절이 아니라 9장 11-12절인가?
그렇다면 아모스서의 주제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5장 24절이라고 말한다.
암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그러나 오직 정의를 물 같이 흐르게 하고,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이요 심판자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이지, 가난한 자를 도와주라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니 너희 부자들은 회개하라는 것이다. 이 본문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가난한 자를 도와주라는 말씀은 율법에 나온다. 객과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라고 하셨고(신 24:17-21), 옷 한 벌밖에 없는 사람의 옷을 전당 잡았으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라고 하셨으며(출 22:26), 너희 형제를 종으로 삼지 말라고 하셨다(레 25:39-42). 그러므로 우리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겨야 한다. 가난한 자를 돕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긴다고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런 긍휼(矜恤, mercy)의 마음을 받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밥을 퍼 주는 사역을 해야 한다. 그것은 그의 사명이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면 아모스서의 주제 말씀은 무엇인가? 필자에게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9장 11-12절이다.
암 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왜 이것이 핵심인가? 이 말씀을 따라가면 누구나 구원을 받고 이방인도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지하여 아모스서를 보면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는 말씀에만 초점을 맞춘다. 옛날부터 다 그래 왔기 때문에 그것이 중심인 줄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고로 아모스서의 중심은 공의로운 심판의 경고를 넘어, 그 심판으로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시고 이방인까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에 있다.
3.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마귀에게 눌린 자를 어떻게 도우셨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를 어떻게 도우셨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약한 자와 힘없는 자를 도우셨다. 그런데 복음서를 다 들어가 보면 예수님은 가난한 자보다 귀신에게 시달린 자를 고쳐 주셨다. 가난한 자들에게 밥을 주신 사역은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마 15:34), 이 두 번이다. 그런데 그 일 때문에 사람들이 쫓아오자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다(요 6:15). 그리고 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6:26-2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나는 너희에게 밥을 주는 사역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정확히 알려 주신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을 계속 도와주면 그 사람은 일하지 않는다. 게을러진다. 공짜로 어떻게 얻어먹을 수 없나 하며 일평생을 살게 된다.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일할 수 있는 멀쩡한 사람이 그것을 이용해 먹고 사는 것은 옳지 않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사는 것이 바른 것이다. 그러므로 아모스가 정말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모르면 우리도 잘못하면 좌파 사상으로 넘어가게 된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도우셨지만, 사도행전은 그 핵심을 이렇게 요약한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이 도우신 사람들은 전부 마귀에게 눌린 자들이었다. 마귀에게 눌려서 병들고, 마귀에게 눌려서 귀신 들리고, 마귀에게 눌려서 가난하게 되고, 마귀에게 눌려서 어려움을 당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 주셨다. 진짜 핵심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만약 귀신을 쫓아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마지막 때에 용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시대가 온다(계 9:1). 그때 엄청난 황충, 곧 귀신들이 올라와서 다섯 달 동안 전 세계를 괴롭힌다(계 9:5). 그때 우리 속에 귀신이 많으면 엄청난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빨리 회개(悔改, repentance)하여 내 속에 있는 귀신을 드러내고 내보내야 한다.
4. 아모스 1장 1-2절의 지진은 무엇을 미리 보여 준 하나님의 경고였는가?
그렇다면 아모스는 언제 활동했으며, 그때 하나님은 무엇을 보여 주셨는가? 아모스 1장 1-2절을 보자.
암 1:1-2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2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시온은 남유다의 예루살렘이다. 갈멜산은 북이스라엘에 있다.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 모두 팔백오십 명과 맞붙었던 곳이다(왕상 18:19).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다 심판(審判, judgment)하시겠다는 뜻이다. 그 심판이 임하면 목자의 초장도 말라 버린다. 이 목자는 누구인가? 드고아의 목자, 곧 아모스 자신의 초장도 마르는 것이다. 갈멜산 꼭대기도 마르고 파괴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예루살렘에서부터 계속 일어날 것이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장차 심판하실 것을 무엇으로 미리 보여 주셨는가? 지진으로 보여 주셨다. 1장 1절은 그 지진이 남쪽은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북쪽은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2세의 시대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아모스가 계시의 말씀을 받은 것은 지진이 일어나기 2년 전부터였다. 말씀을 받은 뒤 2년 후에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진은 하나님이 장차 공의(公義, justice)로 심판하실 것을 보여 주신 전조였다.
그 지진을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경험했겠는가, 경험하지 않았겠는가? 당연히 경험했을 것이다. 여로보암 2세도 당연히 겪었을 것이고 웃시야 왕도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일찍 망하고 그 뒤로 남유다의 역사로 이어지는데, 이 지진 이야기는 200년이 훨씬 지난 뒤에도 잊히지 않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것이 스가랴서에 나온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감람산에 지상 재림하실 때 지진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 비유로 웃시야 때의 지진을 쓰셨다.
슥 14:4-5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5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이를지라 너희가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
스가랴는 BC 520년경에 활동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웃시야 때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9·11 사태라고 하면 2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을 들이받던 충격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과 같다. 대체 무슨 지진이었기에 그랬겠는가? 고로 이 지진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게 되면 아모스 9장 11-12절을 이해하게 된다.
5. 여로보암 2세와 웃시야 때 남북 왕국은 어떻게 가장 강성해졌는가?
그렇다면 웃시야와 여로보암 2세는 어떤 왕이었는가? 역사 기록을 찾아보면 남유다의 웃시야 왕은 BC 792-740년에 통치했고,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는 그보다 1년 앞선 BC 793년부터 753년까지 통치했다. 남북으로 나뉜 이스라엘에서 남쪽은 20명의 왕이 이어졌고 북쪽은 19명의 왕이 이어졌다. 웃시야는 남유다의 제10대 왕인데, 52년을 다스렸다(대하 26:3). 가장 오래 다스린 왕은 55년을 다스린 므낫세이고(왕하 21:1), 웃시야는 두 번째다. 북이스라엘의 제13대 왕 여로보암 2세는 41년을 다스려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 통치한 왕이다.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 때는 통일 왕국이었다. 그러다가 르호보암 때 나라가 갈라져,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남유다가 되었고 북쪽은 나머지 열 지파가 되어 여로보암이 왕이 되었다. 그렇게 갈라진 이후로 웃시야와 여로보암 2세 때가 가장 넓은 영토에서 살았고, 어쩌면 주변의 공격 없이 가장 평화롭게 살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래서 세상의 역사책에는 이때가 가장 부강한 시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때 거의 다 타락했다. 제사장들은 은을 받고 불리한 재판을 하게 했고, 사람을 신 한 켤레에 사고팔았다(암 2:6). 빈부의 격차가 심해서 밑에 있는 사람들을 아주 괴롭혔고, 부자들은 상아 침대에 누워 고기를 먹었다(암 6:4). 이것은 나중에 살펴볼 것이다. 지도자들은 불의를 보고도 눈을 감아 주었고,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해 주었다. 제사장들도 타락하여 정치적인 세력을 유지하는 데 힘을 썼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라는 괜찮았다.
열왕기의 기록을 보자.
왕하 14:23-25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제십오년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일 년간 다스렸으며 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원래 북이스라엘 땅은 갈릴리 바다 근처까지였다. 그런데 여로보암 2세 때 다메섹을 회복하고 하맛까지 차지했다(왕하 14:28). 아람의 다메섹을 지나 엄청나게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도 아수르가 쳐들어오지 않았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필자가 지난번 호세아서를 강의하면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로보암 시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평화를 주신 데에는 뜻이 있었다. 바람이 나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북이스라엘을, 고멜을 아내로 취한 호세아를 통하여 돌이키게 하시되, 가장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하셨을 때 그렇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선지자 세 명이 겹친다. 25절에 보면 여로보암이 영토를 회복할 때 요나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었다. 학자들의 추정으로 요나는 BC 795-755년, 호세아는 BC 760-725년, 아모스는 BC 760-750년에 활동했다. 그러니 BC 760년경에는 요나는 끄트머리였고, 호세아는 시작했으며, 아모스는 한창 활동하고 있었다. 아모스가 BC 760년에 부름을 받았다면 지진은 2년 뒤인 BC 758년경에 일어난 것으로 필자는 추정한다. 2000년에 스티븐 오스틴 등의 학자들이 이 지진을 조사했는데, 그들은 이 지진을 BC 750년경에 일어난 규모 7.8에서 8.2의 지진으로 보았다. 지금도 이런 지진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엄청난 것이다. 그런데 그 진앙지가 하솔 위쪽, 곧 북쪽이었다.
그러면 이 지진에 남쪽의 웃시야 왕이 더 충격을 받았겠는가, 북쪽의 여로보암 2세가 더 충격을 받았겠는가? 당연히 북쪽의 여로보암 2세다. 하나님께서 그가 충격을 받도록 하신 것이다. 너의 땅을 이렇게 많이 넓혀 준 때가 없었는데,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고 자만하지 말라, 이렇게 잘사는 나라, 영토가 안정된 나라를 만든 것은 내가 한 것임을 잊지 말라 하시며 땅을 흔들어 깨우신 것이다. 여로보암 2세는 북쪽 최고의 왕이 되었고, 빈부의 격차가 심했지만 주변의 어느 나라도 쳐들어오지 못하는 안정된 나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나라를 주신 이유를 여로보암 2세도 몰랐고 웃시야도 몰랐다. 고로 이 지진은 하나님께서 두 왕을 깨우시려고 보내신 것이다.
6. 요나의 니느웨 선포와 일식은 북이스라엘의 평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렇다면 왜 세계 최대 강국 아수르는 북이스라엘을 치지 않았는가? 요나서를 보자. 요나는 호세아와 아모스보다 한참 앞선 세대이면서 마지막에 겹치는 사람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여,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고 하셨다.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기 때문이다(욘 1:1-2). 니느웨는 아수르의 수도였다. 요나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큰 성읍에서 하루 동안만 다니며 외쳤다.
욘 3:4-6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사십 일이 지나면 무너진다는 선포를 듣고 왕은 사람과 짐승까지 다 금식하게 했다(욘 3:7). 예수님은 이 일을 이렇게 인용하셨다.
마 12: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요나의 이야기는 지어낸 우화나 전래 동화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의 니느웨 왕은 누구였는가? 학자들은 역사 기록을 추적하여 그 왕을 BC 772-755년에 재위했던 아슈르단 3세로 추정한다. 그때가 언제였는지도 나온다. 그의 재위 때 개기일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나가 외치기만 해서는 바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개기일식을 보내셨다. 그날이 BC 763년 6월 15일이다. 해와 달과 별은 창조 이후로 똑같이 돌기 때문에 거꾸로 계산하면 그 날짜를 알 수 있다.
그 전에 아수르를 중심으로 여러 도시에서 반란이 일어나 엄청난 소요 사태가 있었고 전염병이 쏟아졌는데, 6월 15일에 일식까지 일어나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다. 옛날에는 해와 달과 별로 점을 쳤으니 온 나라가 캄캄해지자 난리가 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금식하며 여호와를 믿고 회개했다. 필자가 천국에 가 보니 그때의 아슈르단 3세와 그때 니느웨에 살았던 사람들이 천국에 있었다. 아수르 사람들 가운데 그때 사람들만 천국에 가 있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필자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여로보암 2세가 무슨 실력이 있고 군사력이 좋아서 넓은 영토를 차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진이 있기 약 5년 전인 BC 763년에 요나가 가서 이 나라가 망한다고 외쳐 아수르 전체가 회개했다. 하나님께서 세계 최대 강국 아수르를 회개시켜 놓으셨기 때문에 아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침범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계속 치고 올라가 하맛까지 올라갔다. 하나님이 다 작업하신 것이다. 만세 전부터 해와 달과 별들의 움직임을 정해 놓으시고, 그때에 요나를 딱 보내셔서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하셨다. 아수르 제국은 벌벌 떨며 절대 북이스라엘을 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여로보암 2세는 그것을 모르고 자기의 치적이라고 자랑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진을 통하여 깨우신 것이다.
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에 남유다 드고아의 목자였던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에 올라가 벧엘에서 외쳐도, 지진의 충격파가 있었으므로 아무도 남유다에서 올라온 선지자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보내신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었으니 조금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고로 북이스라엘의 평화는 여로보암의 실력이 아니라, 요나를 통해 아수르를 회개하게 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7. 웃시야가 나병에 걸린 날의 대지진은 두 왕에게 무엇을 깨우쳤는가?
그렇다면 남유다의 웃시야는 어떻게 되었는가? 웃시야도 자기가 나라를 잘 다스려서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겁을 상실하여 자기가 제사장 노릇까지 하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왕이 권력을 남용하여 제사장의 직분까지 다 쥐어 보려고 한 것이다. 정치 지도자가 종교까지 다 쥐어 보려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하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지도자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 보라.
대하 26:16-19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17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18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감히 왕에게 덤빈다고 화를 내는 그때 이마에 나병이 생겼다. 나병은 최고의 저주의 형벌이다.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그를 성전에서 급히 쫓아냈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갔다. 웃시야 왕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고,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다(대하 26:20-21).
그렇다면 그 깨우는 지진은 언제 일어났는가? 바로 웃시야에게 나병이 생긴 그날 지진이 일어났다. 그것이 어디에 나오는가? AD 37-100년경에 살았던 유대 학자 요세푸스가 고대 유대 역사를 상세히 기록한 「유대 고대사」 9권 10장 4절에 나온다. 그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웃시야는 자신의 성공으로 교만해져 제사장에게만 허락된 분향을 직접 행하려 했다. 제사장 아사랴와 제사장 80명이 저지했다. 제사장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왕이 분노하고 있을 때 큰 지진이 일어나 땅이 흔들렸다. 지진으로 성전에 균열이 생겼고, 그 틈으로 햇빛이 들어와 왕의 얼굴을 비추자 왕의 얼굴에 나병이 생겼다. 그 지진으로 예루살렘 서쪽 산의 절반이 떨어져 나와 약 4스타디온, 곧 약 740m를 굴러가 멈추었고, 그 토사로 길과 왕의 정원까지 다 묻혀 버렸다.
740m나 산이 쫙 갈라져 옮겨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BC 758년경의 일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지진을 보내셔서 두 왕에게, 이 두 나라를 지금 가장 융성한 나라로 만들어 준 것은 나다, 너희가 잘나서 한 것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북쪽의 여로보암 2세도 회개하지 않았고 남쪽의 웃시야도 회개하지 않았다. 웃시야는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분향까지 하다가 나병에 걸려 죽을 때까지 그 병을 안고 살다가 죽어 갔다. 북이스라엘은 끝까지 깨닫지 못하다가 40년이 채 못 되어 BC 722년에 멸망했다.
이 지진이 일어나자, 2년 전부터 북쪽에 와서 선포하던 아모스의 말을 북쪽 사람들은 꼼짝 못하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 지진을 일으키신 것처럼 너희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너희의 잘못을 다 드러내어 심판하실 것이다, 나는 공의로운 하나님이다. 이것이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는 말씀이다. 나는 반드시 너희가 행한 대로 갚아 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제단이 무너진다는 것이 아모스가 보았던 다섯 번째 환상, 곧 제단 곁에 서신 주님의 환상이다(암 9:1). 지진 2년 전부터 받은 말씀이었으니 이 환상이 미리 그것을 보여 준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모스서는 회개의 길을 열어 둔다. 심판을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회개를 말하고, 그다음에 회복을 말하는 요엘서와 똑같다.
암 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 지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라. 5년 전에 개기일식이 있었고 지진까지 일어나니 아슈르단 3세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래서 여로보암이 통치하는 동안 손도 대지 못했다. 고로 대지진은 두 왕에게 너희의 부강함은 너희의 치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으니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찾으라고 깨우친 사건이었다.
8.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신다는 약속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렇다면 아모스서의 마지막 말씀은 무엇을 말하는가? 다시 9장 11-12절로 돌아가 보자.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지진으로 무너진 틈을 막고, 쓰러진 장막과 성전을 다시 세우며, 허물어진 것을 다시 일으키는 비유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를 회복시키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너희가 내가 다 도와주어서 잘 먹고 잘살고 평안하게 된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압제하며 불의를 계속 행한다면 내가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징계를 받아 완전히 망한 나라에도 주님은 긍휼을 베푸신다. 언젠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세우시고, 지진으로 생긴 그 틈을 메우셔서 다시 잘살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 그것을 보여 준다.
암 9:14-15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15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일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런데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고 지금도 믿지 않는 저 이스라엘 나라가 다시 회복된다고 주장하는 세대주의가 지금도 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다(마 28:19). 이것은 다음 시간에 더 이야기할 것이다.
그래서 아모스서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의 아홉 가지 예표(豫表, type)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바로 이 9장 11-12절에 있다. 다윗의 장막을 다시 일으키시는 그리스도, 그리고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다. 고로 아모스서는 첫 절의 지진으로 시작하여, 그 지진의 상처를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물게 하실 하나님을 노래하며 끝난다.
9. 나오며
필자는 지난밤 이것을 준비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하나님이 다 주관하고 계셨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자기가 잘나서 이룬 업적과 치적을 자랑하다가, 사울처럼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나 세우며 다니다가(삼상 15:12) 결국 비참하게 버려지는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누리는 많은 행복이 내게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믿어야 한다.
물론 실제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정치를 잘해서, 내가 기도를 많이 해서, 내가 회개기도문을 잘해서만이 아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내가 여기 있기까지 보이지 않게 나를 도와주셨다. 이것을 기억해야만 우리가 타락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붙잡고 갈 수 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했다.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우리의 일생에 행복한 일, 좋은 일이 많아진다면 주님의 은혜로 된 것을 믿고 그 은혜에 보답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혹시 우리의 삶에 어려움이 닥쳤다면 주님을 찾으라는 경고로 들어야 한다. 그리고 빨리 하나님을 찾아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계속 누릴 수 있다. 내 인생이 망가졌어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 우리 인생의 쓰디쓴 물이 빠져나가고 새 인생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믿고, 그분이 바라시는 회개를 통하여 악한 영을 내보내어 주님께 온전히 치유를 받자. 그리하여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다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며, 아모스서의 이 교훈을 평생 잊지 않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10월 28일(수) ·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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