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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224)]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2)(아모스9:11~1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7BdiTtGV6r8

정보배 목사조회 13읽는 시간 약 35분

설교핵심

본 설교는 구약 성경 아모스서를 바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지도자의 자세와 성도의 올바른 태도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의 물질적 번영 이면에 숨겨진 정치적 오만과 극심한 빈부격차, 그리고 도덕적·종교적 타락을 신랄하게 폭로하고 심판을 경고한 역사적 배경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특히 정보배 목사는 세상의 권력과 부를 자신의 쾌락과 지배를 위한 도구로 오용했던 여로보암 2세나 웃시야 왕의 태도를 비판하며, 자신의 허물을 겸손히 인정하고 백성을 살리기 위해 희생했던 다윗의 중심과 삶야말로 진정한 왕의 모형이자 하나님이 회복하고자 하는 무너진 장막의 핵심임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직분이나 부유함 앞에서 교만하여 군림하려 들지 말고 겸손히 섬김의 자리를 지켜야 하며, 가난한 자 역시 요행을 바라기보다 성실하게 본분을 다함으로써 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선이 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무거운 짐을 진 아모스는 왜 그 짐을 감사함으로 질 수 있었는가?2남유다 사람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에서 어떻게 먹고 살며 예언했는가?3하나님은 왜 지진으로 여로보암 2세를 깨우려 하셨는가?4아모스서는 어떤 순서로 심판과 회개와 회복을 선포하는가?5부강했던 북이스라엘 안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는 어떻게 살았는가?6하나님은 왜 하필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는가?7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는 어떤 마음을 지닌 사람인가?
설교 본문 (암 9:11-12) ·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지위와 권세와 부를 맡기시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을 누리고 군림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고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조금만 일이 잘되고 지위가 높아지면 기고만장해진다. 자기가 어디에서 시작된 존재인지를 잊어버리고, 자기가 잘나서 그 자리에 오른 줄로 착각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런 지도자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시며, 어떤 사람을 참된 왕의 본으로 세우시는가?

아모스서는 이 물음에 답을 준다. 아모스서는 웃시야와 여로보암 2세라는 두 왕의 시대에 일어난 지진으로 시작하여(암 1:1),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일으키시겠다는 약속으로 끝난다(암 9:11). 왜 하필 다윗인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다윗 이후로 가장 잘 먹고 잘 살던 그때, 두 나라의 왕은 다윗처럼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하여 두 왕에게, 그리고 그 시대의 부자들과 지도자들에게 "다윗을 보라"고 외치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남유다 사람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에서 어떻게 예언했는지, 아모스서가 어떤 구조로 심판과 회개와 회복을 선포하는지, 그리고 부강했던 북이스라엘의 속사정이 어떠했는지를 살피고, 하나님께서 왜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으며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는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무거운 짐을 진 아모스는 왜 그 짐을 감사함으로 질 수 있었는가?

아모스라는 이름은 "짐을 지고 가는 자"라는 뜻이다. 어떤 이는 여기에 "무거운"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하는데, 뜻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짐을 지고 갈 수 있었다는 것은 아모스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영의 나이가 많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짐이 그에게는 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기를 써 주신 것이 감사했다. 그의 속에는 항상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목사 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 새벽 기도만 없으면 정말 좋을 텐데, 대한민국에서 목사가 되려면 새벽 기도를 해야 하니 너무 힘들다." 그러나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지 거기에 대하여 왈가왈부하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겠는가? 하나가 나쁘다고 해서 다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일 수 있다. 주어진 환경을 나쁘다, 나쁘다 생각하면 한없이 나빠지고, 원망과 불평이 끊임없이 나오게 되어 있다.

필자는 회개가 되어 악한 영이 떠나간 뒤로 날마다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피곤에 지쳐 쓰러질 것 같아도 이렇게 지쳐 쓰러질 정도로 주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수천 년 된 귀신이 들어와서 나가지도 않고 버티는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목소리가 상할 때가 있다. 찬양을 잘하고 싶은데 목소리가 이렇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금요일에 강력하게 전투 기도를 하고도 주일에 말씀을 증언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께서는 필자에게 귀신을 쫓는 일과 함께 말씀도 잘 증언하라고 맡기셔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감사하다. 아무에게나 두 마리 토끼를 맡기시겠는가? 나를 통하여 누군가가 주님을 더 알게 되고 주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준비된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주의 일을 하다가 가기를 원하는 것, 이 마음이 바로 다윗의 마음이다.

예수님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셨는가? 공생애를 시작하시자마자 세례 요한에게 안수를 받아 죄를 넘겨받으셨다. 대속죄일에 아론이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그 머리에 두었던 아사셀 염소처럼(레 16:21),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넘겨받으신 것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이렇게 외쳤다(요 1:29).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였고(마 11:11), 제사장이자 선지자의 직분을 가진 인류의 대표였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듯이(삼상 16:13),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안수함으로 그 직분을 감당하게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가시면서도 힘들다, 피곤하다는 말씀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얼마나 피곤하셨으면 배를 타고 이동하실 때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셨겠는가(막 4:38). 그래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찾아 살리시는 데 마음을 쏟으셨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 주님의 마음을 가장 닮은 사람이 바로 다윗이다. 고로 짐을 감사로 지게 하는 힘은 주님의 마음, 곧 다윗의 마음에서 나온다.

3. 남유다 사람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에서 어떻게 먹고 살며 예언했는가?

아모스서를 공부할 때 꼭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남유다 사람이 북이스라엘에 가서 선지자 노릇을 할 때 누가 밥을 먹여 주었겠는가? 자기 집이 있었다면 집에서 밥을 먹고 와서 말씀을 전했겠지만, 그곳은 남의 나라였다. 밥 먹으러 집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남유다까지 오가려면 며칠이 걸렸겠는가? 성경에는 아내가 따라와서 밥을 해 주었다는 말도 없고, 북이스라엘에 집이 있었다는 말도 없다. 그러면 기록이 없으니 모른 채 지나가면 되는가? 그렇지 않다. 사람에게는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다. 어디에서 살았고 누가 밥을 먹여 주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을 볼 때에는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영화를 찍으려면 모든 배경을 다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자고, 어디에서 살았고,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까지 생각해 보아야 아모스 선지자가 어디에서 나와서 예언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예수님을 보라. 예수님은 원래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었지만 공생애 동안에는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다(마 4:13). 가버나움에서 머무르신 집이 있었을 것이다. 그 집에 계실 때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려왔는데, 무리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자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다(막 2:1-4). 필자는 그 집이 예수님께서 사시던 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남의 집 지붕을 함부로 뜯을 수 있겠는가? 남의 집 지붕을 뜯었다면 돈을 많이 물어 주어야 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사시는 집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허용된 것이 아니겠는가?

아모스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진이 일어나기 2년 전에 북이스라엘로 왔다(암 1:1). 그런데 그때 그가 선지자 노릇을 하기가 좋았겠는가? "너희 나라에 가서나 말하라"는 핍박이 있지 않았을까? 실제로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가 왕을 모반한다고 여로보암에게 고발하고(암 7:10-11), 아모스에게 이렇게 말했다(암 7:12-14).

암 7:12-14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13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그런데 필자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모스가 아주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원문을 보면 아모스는 목축업자였고, 뽕나무를 재배하여 대량으로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돈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가 북이스라엘에서 머물 곳을 구하고 돈을 주고 밥을 사 먹었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도 어떤 곳에 집이 없으면 한 달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찾아 돈을 주고 사 먹지 않는가? 집도 없고 밥을 줄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그 일을 감당했다면 부자였을 수밖에 없다. 고로 아모스는 가난한 자가 아니라 부자였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의 말에 힘이 실리도록 지진을 일으키셨다. B.C.758년경에 일어난 그 지진이다.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는 웃시야 왕이 분향하던 날에 지진이 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지진은 200년이 훨씬 지난 스가랴 시대에도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감람 산이 갈라지면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도망할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슥 14:5). 그만큼 큰 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에 남유다에서 올라온 아모스의 말을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다.

필자가 조사해 보니 기록 선지자 가운데 남유다 사람으로서 북이스라엘에 가서 말씀을 전한 사람은 아모스밖에 없었다. 이름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유다에서 벧엘로 간 일은 있었지만(왕상 13:1), 기록 선지자로는 아모스뿐이다. 호세아는 같은 시대의 사람이지만(호 1:1) 북이스라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남유다 사람을 보내어 북이스라엘에서 예언하게 하셨으며, 그 예언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 답이 지진에 있다.

4. 하나님은 왜 지진으로 여로보암 2세를 깨우려 하셨는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B.C.763년에 요나 선지자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쳤다(욘 3:4). 사흘 동안 걸어야 할 큰 성읍에서 하루만 외쳤는데도 그들은 회개했다. 그때 마침 개기일식이 겹쳤다. 그래서 니느웨 사람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했으며(욘 3:5), 그 뒤로 함부로 하나님의 나라를 쳐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5년 뒤인 B.C.758년경에 지진이 일어났다. 아모스서 첫 절이 그것을 말한다(암 1:1).

암 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그 지진의 진앙지는 북쪽 하솔 지역의 위쪽이었다. 북쪽에서 땅이 흔들렸다는 것은 북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 2세가 깨닫고 돌아왔어야 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땅을 흔드셨다면 깨달아야 한다. 오늘날 지진이 잦은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땅이 흔들릴 때 깨달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진 지대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깨우시고자 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필자는 어렸을 때 태풍과 홍수 때문에 얼마나 많이 피난을 다녔는지 모른다. 지석천 둑 바로 옆에 살았기 때문이다. 강 옆에 있는 엄청나게 큰 둑이었는데, 그 둑이 터질 때가 있었다. 집에 물이 들어오니까 피난을 가는 것이다. 물이 둑의 끝까지를 10분으로 볼 때 8분 높이까지 차오르면 사람들을 모두 피난시켰다. 그렇게 위험한 지경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필자는 그때마다 지금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연의 신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한계시록에서 나팔 재앙을 내리실 때 먼저 자연을 치신다. 첫째 나팔은 땅을, 둘째 나팔은 바다를, 셋째 나팔은 강들과 물샘을, 넷째 나팔은 해와 달과 별을 친다(계 8:7-12). 그리고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나팔에 가서야 사람을 친다(계 9:4). 자연을 먼저 치실 때 빨리 알아들으면 사람이 다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내 육체의 문제로 치실 때 빨리 깨달으면 영혼이 다치지 않는다. 할렐루야! 이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여로보암 2세는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랫동안, 41년을 통치했다(왕하 14:23). 그리고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가장 넓은 영토를 회복했다(왕하 14:25). 하나님께서 그렇게 엄청난 영토를 주셨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이것을 하셨다는 것을 알고 송아지 우상과 바알 신앙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만 섬기자고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왕하 14:24).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것처럼 착각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진으로 그를 흔들어 깨우려 하신 것이다. 고로 지진은 깨달으면 살고 깨닫지 못하면 망하는,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였다.

5. 아모스서는 어떤 순서로 심판과 회개와 회복을 선포하는가?

그러면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에 무엇을 전했는가? 아모스서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1장부터 4장까지는 죄를 폭로하고 심판(審判, judgment)을 선고하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5장과 6장은 회개를 촉구하고 다시 멸망을 경고한다. 그리고 7장과 8장은 환상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미래를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9장에서 회복을 약속한다. 이것은 요엘서나 호세아서와 거의 비슷한 패턴이다. 심판을 선고하고, 회개를 촉구하고, 회복과 구원을 약속하는 것이다.

1장과 2장은 주변의 나라들과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간단하게 선고한다. 모두 똑같은 말로 시작한다. "아무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그리고 똑같이 "불을 보내리니"로 이어진다. 첫째는 아람의 수도 다메섹이다(암 1:3-4). 둘째는 블레셋의 도시 가사다(암 1:6-7). 셋째는 페니키아의 도시 두로다(암 1:9). 그다음이 에서의 후손인 에돔(암 1:11; 창 36:1), 롯의 후손인 암몬(암 1:13; 창 19:38)과 모압(암 2:1; 창 19:37)이다. 그리고 유다다(암 2:4-5). 유다까지 일곱 나라에 대하여 심판을 선고하고, 마지막으로 2장 6절에서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를 말한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은 유다까지도 모두 불을 보내신다고 하는데, 이스라엘에 대해서만은 불을 보내신다는 말이 없다. 필자는 이스라엘에게는 지진을 내리신 것으로 본다.

3장과 4장은 북이스라엘만을 향하여 구체적으로 심판을 선고한다. 3장 1절은 "이스라엘 자손들아"라고 부르며 시작하고, 4장 1절은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라고 부른다. 바산은 요단 동편의 기름진 목초지여서 그곳의 암소들은 살이 잘 쪘다. 이것은 부유층에 사는 이스라엘의 여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들은 힘없는 자를 학대하고 가난한 자를 압제하면서 남편에게 술을 가져오게 하여 마셨다(암 4:1).

필자는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처음에 주변 나라들을 다 치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좋아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다가 3장에서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고하니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7장에 가면 아모스에게 유다 땅으로 도망하라고 하며 쫓아내 버린다(암 7:12-13).

그리고 5장 4절부터 분위기가 바뀐다. 회개(悔改, repentance)하라는 것이다(암 5:4-6).

암 5:4-6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5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나를 찾으라"는 말씀이 곧 회개하라는 말씀이다. 여기에 비로소 불이 나온다. 요셉의 집은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지파, 곧 북이스라엘을 가리킨다. 그들의 행위가 더러웠기 때문에 하나님은 선을 구하라고 하셨다(암 5:14-15).

암 5:14-15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그러면서 18절에서 여호와의 날이 올 것을 경고하신다. 그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고 하신다(암 5:18). 여호와의 날이 심판의 날이 되지 않고 구원의 날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6장에 들어가면 시온과 사마리아의 교만한 지도자들에게 화를 선포하며(암 6:1) 이스라엘의 멸망을 다시 말하고, 7장과 8장은 환상을 통하여 장차 이스라엘을 어떻게 하실 것인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9장에서 회복을 말한다. 그 회복의 말씀이 9장 11절부터 15절까지다.

암 9: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왜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틈을 막고, 허물어진 것을 세우겠다고 하셨겠는가? 1장 1절의 지진 때문이다. 지진으로 다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예언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참 잘 와닿는 말씀이었다. 고로 아모스서는 지진으로 무너진 것을 다윗의 장막으로 다시 세우시겠다는 약속을 향하여 달려가는 책이다.

6. 부강했던 북이스라엘 안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는 어떻게 살았는가?

그렇다면 북이스라엘이 지진으로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북이스라엘의 죄악상은 세 가지다.

첫째로, 정치적으로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남유다의 웃시야 왕은 자기가 잘나서 나라가 잘 먹고 잘 사는 줄로 착각했다.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를 통하여 주변 나라들을 다 눌러 주셨는데도 그것을 몰랐다. 하나님께서 북쪽의 앗수르와 남쪽의 애굽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하신 것은 남북의 두 나라가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하시려는 배려였다. 그런데 그들은 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정치 지도자의 착각이다. 실제로 그때는 다윗의 통일 왕국 시대를 제외하면 남북 역사에서 가장 잘 먹고 잘 살던 때였다. 주변 나라들이 쳐들어오지 못하니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로, 경제적으로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잘 살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빈부 격차가 엄청나게 심했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잘 먹고 잘 살았다.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지리라"고 하신다(암 3:15). 부자들은 여름 별장과 겨울 별장을 따로 가지고 있었고, 값비싼 상아로 장식한 집을 지었다.

필자가 서울 강남의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길 때 처음 알았다. 청년들이 모여서 다음 임원 모임을 어디에서 할지 이야기하는데 "우리 아빠 별장으로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 청년들은 거의 다 명문대에 다니는 부잣집 자녀들이었다. 임원 회의를 마치면 부장님이 사 주는 랍스터를 먹으러 가고, 큰 스테이크가 나오는 식당에 다녔다. "여기는 진짜 부자 동네구나."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보리밥만 먹고 자란 필자는 그때 처음 부자 동네를 경험했다. 그런데 아모스 시대의 부자들이 바로 그렇게 별장에서 살았던 것이다. 6장에서는 그 지도자들의 생활을 더 자세히 묘사한다(암 6:4-6).

암 6:4-6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5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집만 상아로 지은 것이 아니라 침상까지 상아로 만들었다. 그 위에 누워 기지개를 켜며 양과 송아지를 잡아먹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악기를 만들었지만, 그들은 다윗처럼 악기를 만들되 자기 흥을 즐기기 위해서 만들었다. 유흥의 영이 가득했던 것이다. 필자가 축사를 해 보면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 가운데 유흥의 영이 가득한 사람이 많다. 손만 대도 몸 여러 곳에서 유흥의 영이 드러난다. 그리고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고 비싼 향유를 바르면서도 요셉의 환난, 곧 무너져 가는 나라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때 약한 자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2장 6-7절이 그것을 보여 준다(암 2:6-7).

암 2:6-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7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은을 받고 의인을 판다는 것은 재판관들이 뇌물을 받고 의인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은 신 한 켤레 값에 팔려 갈 만큼 가난하게 살았다. 권세 있는 자들은 힘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았다. 올바로 가려는 연약한 자에게는 "그따위로 살아서 밥 먹고 살겠느냐, 잘못된 것을 옳다고 해라" 하며 그 길을 굽게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드나들 정도로 도덕적, 성적으로 타락했다.

5장 11-12절은 그들이 어떻게 재물을 모았는지 말한다(암 5:11-12).

암 5:11-12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12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옛날에는 재판관들이 성문에서 재판했다. 그런데 그들이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의 송사를 들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율법은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신 24:17), 그들은 그 반대로 했다. 그리고 8장 4-6절은 그들의 장사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암 8:4-6).

암 8:4-6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5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6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월삭과 안식일에는 장사를 할 수 없으니 그날이 언제 지나서 빨리 장사하여 돈을 벌까 하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곡식을 되는 그릇인 에바는 작게 하고, 값을 치르는 무게인 세겔은 크게 하여 눈속임으로 돈을 벌었다. 사기를 친 것이다. 이렇게 불리한 경제 활동으로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졌다.

셋째로, 종교적으로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2장 8절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율법은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돌려보내라고 했다.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유일한 옷이기 때문이다(출 22:26-27). 그런데 그들은 돌려주지 않고 제단 옆에서 그 옷 위에 누웠다. 필자는 이것이 제사장들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제사장들은 정치와 결탁하여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그래서 무엇을 빌려주고 받은 담보를 돌려주어야 하는데도 돌려주지 않았고, 신전에서 벌금으로 거둔 것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취하여 살았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벧엘과 길갈에 가서 제사를 드리면서 죄를 더했다(암 4:4-5).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구조는 바뀔 필요가 있다. 그래서 부자들은 기부를 많이 해야 한다. 자기가 수고해서 얻은 것이라도 기부를 많이 해야 한다. 객과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라는 것이 성경이 원하는 바다. 그러나 반대로 가난한 자가 하는 일은 모두 선하고 다 옳다고 보는 것도 잘못이다. 가난한 자가 일하기 싫어하는 것까지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오직 하나님만 선하시다(막 10:18). 할렐루야! 고로 부자든 가난한 자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어야 한다. 그래야 부자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가난한 자는 열심히 일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사람은 악해져서 더 누리려 하고 더 빼앗으려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7. 하나님은 왜 하필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는가?

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하셨는가? 다윗은 자기가 왕이 되었지만 한 번도 자기가 잘나서 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기가 원래 천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필자는 다윗의 어머니가 정식 아내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래서 다윗은 온전한 대접을 받지 못했고 형제들에게서도 천대를 받았다(삼상 17:28). 그러나 그는 항상 "나는 원래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여로보암 2세는 상아 궁에서 고기가 상에 미어터지게 먹으며 엄청나게 누리고 살았다. 사울 왕도 그랬다. 그러나 다윗은 항상 이렇게 사는 것이 과분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백성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다윗은 자기를 내놓았다. 인구 조사를 한 죄로 백성이 전염병으로 죽어 가자 다윗은 이렇게 아뢰었다(삼하 24:17).

삼하 24: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범죄한 자는 나인데 왜 백성을 치십니까? 나와 내 집을 쳐서 없애 버리시고 이 백성은 살려 주십시오." 다윗은 이런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다. 다윗의 일생에 큰 죄는 두 번이었다. 하나는 밧세바와 간음한 것이고, 또 하나는 인구 조사를 한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음을 통하여 하나님께 회개하는 법을 배웠다. 나단 선지자가 책망하자 그는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했고(삼하 12:13), 시편 51편에서 눈물로 회개했다.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라고 고백할 만큼 울며 회개했다. 왕일지라도 기꺼이 자기를 버렸다. 그래서 회개해야 천국에 간다는 것을 다윗이 알려 준 것이다. 그는 자기가 누리고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살라고 왕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백성을 살리라고 왕으로 세워졌다는 것을 항상 생각했다.

그래서 다윗은 평생 자기를 대적한 수많은 장군이 있었으나, 그 장군들이 자기에게 올 때 한 번도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다 품었다. 그러나 다윗 밑에 있던 장군들이 시기하여 죽여 버렸다. 사울의 군장 아브넬을 요압이 죽였고(삼하 3:27), 압살롬의 군장이었던 아마사도 요압이 죽였다(삼하 20:10). 다윗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기꺼이 받아 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윗의 가장 위대한 점은 하나님의 집을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다윗은 선지자 나단에게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삼하 7:2)라고 말했다. 내 집은 향기 나는 백향목 집인데 하나님의 집을 초라한 천막에 둘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집을 내 집보다 더 아름답게 지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이다. 오늘날 자기 집은 좋은 집에 살면서 하나님의 집은 초라해도 아무런 걱정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으나 누구에게도 백향목 집을 지어 달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하셨다(삼하 7:6-7). 그런데 다윗이 스스로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너무 감동하셔서 이렇게 약속하셨다(삼하 7:14-15).

삼하 7:14-15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혹시 후손이 죄를 지으면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시겠지만 왕위는 빼앗지 않으시겠다는 언약(言約, covenant)이다. 그렇게 다윗의 왕위가 세워졌다. 그렇다면 그 왕위에 앉아 남유다의 제10대 왕이 된 웃시야는 다윗과 같은 마음을 품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 나중에는 왕권과 제사장의 권한을 구별해야 하는데도 종교의 권한까지 자기가 가지려고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려고 달려들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졌던 것이다(대하 26:16).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기게 하셨고(대하 26:19), 그때 지진을 내리셨다. 그러면 얼마나 깨달았어야 하겠는가? 그러나 웃시야가 눈물로 통회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는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로 별궁에 살았다(대하 26:21). 다윗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윗을 보라, 다윗을 보라, 다윗을 보라. 왕들아, 여로보암 2세야, 웃시야 왕아, 다윗을 보라. 다윗은 너희처럼 살지 않았다." 고로 하나님께서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시겠다고 하신 것은, 자기를 낮추고 회개하며 백성을 살리려 했던 다윗의 마음이 왕다운 왕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8.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는 어떤 마음을 지닌 사람인가?

왜 우리는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배우는가? 하나님의 경륜은 야곱에게서부터 시작된 이기는 자를 세우시는 것이다. 야곱은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창 32:28). 그리고 이기는 자의 최고봉은 왕이다. 요셉과 유다의 이야기도 그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의 허리에서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창 35:11-12).

창 35:11-12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이기는 자의 꽃은 왕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천국에 하나님의 자녀로 들어가고 상속자로 들어간다. 이기는 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으로 받는다(계 21:7). 그리고 그 가운데 최고는 왕 노릇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나라를 누구에게 맡기시는가? 그 땅을 누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가? 왕들에게 맡기신다. 이것이 왕 노릇 하는 자를 탄생시키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경륜의 끝이다.

그렇다면 야곱은 왜 이기는 자로 불렸는가? 아브라함과 이삭 때에는 장자 한 사람만 기업을 잇고 나머지는 멀어져 갔다. 필자가 보기에 야곱은 내 자식 모두가 다 기업을 받는 자가 되게 하겠다고 기꺼이 헌신했다.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잘되게 하려 한 것이다. 그래서 얍복 강가에서 허벅지 관절이 어긋날 정도로 강력하게 기도하면서(창 32:25), "하나님, 열두 아들을 다 상속자로 만들고 싶습니다" 하고 구했던 것이다.

다윗도 마찬가지다. 왕이 되었으나 그 자리에서 군림하고 누리고 압제하라고 세워진 것이 아니라 백성을 살리라고 세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다윗이 너무 마음에 드셨다. 왕 노릇 할 자는 이런 모습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왕위를 내려놓고 겸손히 고백할 수 있으며,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 나를 죽여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자다. 모세도 그랬다.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지 않으시려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 달라고 구했다(출 32:32). 하나님께서 다윗의 삶을 얼마나 기뻐하셨으면 이사야를 통하여 다윗의 왕좌에 앉으실 메시아를 이렇게 약속하셨겠는가(사 9:6-7).

사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그리고 신약에 와서도 계속 다윗을 언급하셨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라고 전했다(눅 1:32). 이것은 그 보좌에 앉는 자,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자는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 알려 주시는 것이다. 온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기꺼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진짜 왕 같은 자, 그런 자가 천국에서 왕 노릇을 한다. 이 땅에서 큰 교회를 한다고 누리기만 한다면 천국에서 왕 노릇 한다는 것은 턱도 없는 이야기다.

필자가 확인해 보니 천국에서는 평소에 모두 흰옷을 입고 다니는데, 단 두 사람만 왕복을 입고 다닌다. 다윗과 솔로몬이다. 그런데 다윗의 왕복은 빛이 가득하지만, 솔로몬의 왕복은 빛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솔로몬은 다윗 왕이 돌아다니면 그 옆에서 졸졸 따라다닌다. 솔로몬은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말년에 마음이 돌아서서 우상을 숭배했다(왕상 11:4). 그래서 간신히 천국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왕으로 세워진 이유를 알았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권세를 얻으면 군림하려 하는가? 귀신 때문이다. 사탄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며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으로 타락했다(사 14:14). 그래서 귀신은 계속 올라가려 하고, 군림하려 하며, 밑에 있는 사람들을 지배하려 한다. 그 귀신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귀신이 나가는 길은 오직 회개밖에 없다. 고로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는 회개로 그 마음을 비우고, 끝까지 겸손히 섬기는 사람이다.

9. 나오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지위와 직분을 주실 때 그것으로 군림하고, 밑에 있는 사람들을 부려 먹고, 떵떵거려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없는 권한을 누리면서도 뻔뻔스럽게 괜찮다고 할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파렴치한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이 힘들어진다.

필자는 항상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다." 필자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종손 집안에서, 무당의 후손으로 태어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평생 주의 일을 하면서 단 한 번이라도 군림하려 한다면 나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항상 생각한다. 지위도 은사도 군림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지도자가 될수록 그 마음을 가져야 한다. 주님께서도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20:26).

하나님께서 왜 권력을 주셨는지, 왜 부자로 살게 하셨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게 된다. 또한 가난한 자로 태어났다면 열심히 일해서 그 가난을 벗어나려고 해야 한다. 요행이나 법을 이용해서 일하지 않고도 누리려고 하는 얄팍하고 거짓된 악한 마음이 결국 나라를 망치게 된다. 부자들은 섬기려 하고, 가난한 자들은 열심히 일하려고 해야 나라가 잘된다.

그러므로 남북으로 나뉘었던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교훈하시는 바를 마음에 새기자. 회개를 통하여 군림하려는 악한 영을 내보내고, 주님께서 맡겨 주신 직분을 끝까지 겸손히 섬기는 복된 자가 되자.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되, 큰 자는 낮은 자로 섬기고 낮은 자는 더 열심히 일하여 충성된 종이라 인정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음 시간에는 이어서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 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를 계속 살펴보겠다.

2026년 10월 29일(목)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