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구원(03)]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면 다시 기록될 수 있는가?(히6:4~8)
이 설교는 참된 구원과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는지에 대해 영적 실체를 바탕으로 설명합니다. 설교자 정보배 목사는 오직 믿음만 강조하는 교리가 회개를 소홀히 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하며, 진정한 구원은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와 변화를 맺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은 쉽게 지워지지 않지만 교회를 대적하거나 하나님의 질서를 심각하게 파괴하는 등 현저한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이름이 흐려지거나 지워져 회복될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메시지의 목적은 성도들이 매일의 회개와 예수 보혈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생명책에 이름이 선명하게 기록된 상태로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돌이키고 깨어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오직 믿음'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무엇을 놓치게 했는가?본문 →2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참된 구원이란 무엇인가?본문 →3내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본문 →4축사 사역자와 말씀 사역자를 살펴보니 무엇이 드러났는가?본문 →5손에서 예수의 피가 나오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보혈을 구하고 사용해야 하는가?본문 →6생명책의 이름은 쉽게 지워지는가, 그리고 성령 모독죄란 무엇인가?본문 →7지워진 이름은 왜 다시 기록될 수 없으며 어떤 경우에 지워지는가?본문 →1. 들어가며
제목이 좀 무섭기는 하다. 생명책(生命冊, Book of Life)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지면 다시 기록될 수 있을까? 이런 말씀을 증언할 수 있게 된 것은 필자에게 그동안 계시의 많은 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선 시간에 우리는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와 그 시점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는 이것이다. 한 번 생명책에서 지워진 이름은 회개하면 다시 기록될 수 있는가, 아니면 영영 기록되지 않게 되는 것인가?
이 질문은 두렵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교회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라고 가르치면서 이 질문 자체를 하지 않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본 자라도 타락하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한다(히 6:4-6). 그렇다면 누가, 어떤 죄를 지었을 때 회개가 되지 않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의 이름이 지워지는가? 그리고 한 번 지워진 이름은 다시 기록될 수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명책에서 지워지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종교개혁자들이 말했던 '오직 믿음'이라는 구호가 무엇을 놓치게 했는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참된 구원이란 어떤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영적 세계에서 실제로 확인한 사역자들의 모습과 예수의 피의 의미, 그리고 히브리서를 통하여 생명책에서 지워진 이름이 다시 기록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오직 믿음'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무엇을 놓치게 했는가?
필자도 예전에는 말씀 연구에만 치중했다. 말씀을 깊이 전한다는 사람들의 가르침을 두루 살펴보고, 필자 나름대로 '이것은 이런 것이다'라는 체계를 세워나갔다. 그러던 어 날 회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아, 종교개혁(宗敎改革, Reformation)자들이 잘 했지만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인 회개를 그만 놓치고 말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한 번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경에는 종교개혁자들이 그토록 주장했던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이 성경에 없었다. 믿음으로 칭의를 얻는다는 말은 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없다. 이 말은 마르틴 루터가 만들었던 말이다. 루터는 1522년에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로마서 3장 28절에 '오직'(allein)이라는 말을 넣었다. 헬라어 신약성경에서 '믿음'과 '오직'(모논)이 함께 나오는 곳은 단 한 곳뿐인데, 그곳은 오히려 '믿음으로만은 아니다'라고 문장 뿐이다(약 2:24).
약 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개역개정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라는 말이 나오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이 아니면'(에안 메)이라는 문구이다. 물론 루터가 그렇게 번역한 것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만큼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함으로써 구원의 또 다른 요소인 회개(悔改, repentance)를 배제시키고 말았다. 그래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가 되었고, 좀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예정했으면 구원을 받는다'까지 옮겨 가 버렸다.
그러니 구원받은 사람은 자신의 구원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나의 구원이 안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말았으니, 그 사람 속에 있는 성령께서는 얼마나 탄식하시겠는가? "너희가 그러한 교리를 따르고 있으나, 너희 양심에 비추어 보아라. 너는 지금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 하실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듣기 편한 말을 원한다. 목회자 자신도 "당신은 교회에 나왔으니까 구원받습니다"라고 말을 해 주어야지, "당신처럼 신앙생활하면 천국에 못 갑니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듣기 좋은 말로서 "교회만 출석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잘못 전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며,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은 맞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에 지은 죄들로 인하여 구원을 못받는 사람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정확한 가르침을 무엇인가? 믿기만 해서 구원을 받는가? 믿음이 없이 구원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믿기만 한다고 해서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3.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참된 구원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 보자. 정말 참으로 구원받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요한계시록까지 가서 우리가 정리할 수 있는 것은 구원이란 내 영혼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야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구원이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상태적인 구원은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나, 궁극적으로 천국에 들어가야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니 우리의 구원은 장소적 구원으로 끝이 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구원받아 이 땅에서부터 성령의 통치를 받으면서 형통하게 사는 것은 상태적 천국을 맛보는 것이다. 이것은 천국을 미리 맛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구원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 집에 들어가기 전에 견본 주택에 가서 잠시 머무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생명의 나라 곧 천국에 들어가야 완전히 구원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그 생명을 아들에게 주어 그의 속에 있게 하셨다(요 5:26). 그리고 아들이 그 생명을 믿는 자들에게 분배해 주신다.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그러므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생명이 성령으로 그 사람의 영 속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그때에 비로소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다. 그리고 그가 죽을 때에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을 때에 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명은 이 땅에서부터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하였다(요일 5:12). 사실 천국은 아버지의 생명을 가진 자만 들어가는 나라이다. 그리고 이 생명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만이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된다. 다시 말해, 천국의 호적에 기록되어 천국의 시민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고로 사람의 최종적인 구원 여부는 생명책의 녹명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를 열심히 50년을 다녔어도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면, 아직 예수님의 생명이 그이 속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여태껏 교회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그가 교회에 나가서 교양 생활을 하고 종교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생활하는 자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교회 생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평생에 한 번 정도는 정말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4. 내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그러면 내 속에 생명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건 히브리서 6장 7-8절에 그 힌트가 나와 있다. 그것은 땅의 열매에 관한 히브리서 기자의 비유다.
히 6:7-8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땅은 우리 자신을 말하고, 자주 내리는 비는 성령의 은혜를 말한다. 그 은혜를 흡수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합당한 결과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을 보내시고 생명을 주어 천국에 들어가게 하셨는데, 그 밭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과를 내지 않고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면 어떻게 되는가? 가시와 엉겅퀴는 범죄의 결과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뒤에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기 때문이다(창 3:18). 범죄의 결과만 계속 나타난다면 그 밭은 버림을 당한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고 하셨다.
이것은 귀신을 쫓아낼 때와 같다. 머리가 많이 아프다고 하자. 제사를 지내도 머리가 아플 수 있고, 절에 다녀도 아플 수 있고, 축농증에 걸려도 아플 수 있다. 뇌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고, 혈관이 막힐 수도 있다. 여러 이유가 있다. 그런데 무슨 영이 그 머리를 붙잡고 있는지 모르면 쫓아내기 어렵다고 하여, 보는 은사(영안)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 영을 보고 쫓아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보지 못하는 사람은 평생 못 쫓아내는가? 예수님께서는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신 은사이기 때문에 볼 수 있다면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보지 못한다고 해서 쫓아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결과론적으로 쫓아내면 된다. "머리 아프게 하는 영들은 싹 다 나와라. 불로 태워져라." 그러면 무슨 이유로 들어왔든 그 귀신은 태워지고 박살 난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두려움의 영은 폐와 위(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심장, 이렇게 세 군데 정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간단하다. "이 몸에 두려움을 주는 영들은 싹 다 나와라", "심장에 있는 영은 나와라" 하면 된다. 복잡할 필요가 없다.
구원도 이와 같다. 영적 세계를 볼 수 있다면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다.
첫째, 생명책을 들추어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 있는 생명책을 우리가 어떻게 들추어 보겠는가? 천사가 다 보여 준다.
둘째, 수호천사가 두 명 붙어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에게는 수호천사 두 명이 붙어 있다. 수호천사가 없으면 구원받기 어렵다.
셋째, 그 사람의 손에서 예수의 피가 흘러나오는지를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피가 나오지 않는 사람은 생명이 그 속에 없거나, 생명이 있었으나 지금 타락해서 생명이 빠져나가 버린 사람이다. 그래서 손에서 예수의 피가 나오는가는 그 사람이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를 가르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예수의 피가 철철 넘치게 나오는 사역자는 신뢰하고 따라가도 된다. 그러나 손에 혈흔만 있는 사람이 있다. 피가 터지지 못하고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아직 한 번도 터져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손에서 피가 아예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생명책에 이름이 없다. 그래서 귀신 축사(逐邪, deliverance)는 잘하는데 손에서 예수의 피가 나오지 않는다면 가짜일 수 있다. 사탄이 쓰는 종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 세계에 눈이 열려야 알 수 있다. 눈이 열리지 않았다면 결과론적으로, 곧 행위의 열매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년, 30년을 교회에 다녔는데 단 한 사람도 전도해 본 적이 없고, 주님께서 감동하실 정도로 헌신해 본 적도 없고, 깨어 있기 위해 정말로 노력해 본 적도 별로 없이 세상의 가치관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걱정해야 한다.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는지를 말이다.
5. 축사 사역자와 말씀 사역자를 살펴보니 무엇이 드러났는가?
평신도들은 필자가 많이 조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큰 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들을 필자는 축사·치유를 하는 목회자와 하지 않는 목회자, 이렇게 둘로 나누어 영적으로 조사해 보았다. 그랬더니 차이가 있었다. 이것을 통해서도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는지, 지워진다면 다시 기록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성경 근거는 뒤에서 다 말하겠지만, 실제를 먼저 알면 성경을 훨씬 더 집중해서 볼 수 있다.
첫째, 축사·치유를 현재 행하고 있는 사역자들 가운데에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 자가 있었다. 그들은 생명책에 이름도 없고 수호천사도 없는데, 두 종류였다. 하나는 손에 혈흔이 있어서 피가 터지지 못하고 살짝 보이기만 하는 종류이고, 또 하나는 아예 피가 없는 종류였다. 이들은 과거에 하나님의 종이었다. 예수를 믿어서 생명이 있었다. 그런데 은사 사역을 하면서 타락했다. 그래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지워져 버린 것이다. 이런 사람의 생명책을 보면, 펼치면 열렸다가 이내 닫혀 버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사람의 이름은 생명책에 다시 기록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나쁜 경우도 있었다. 손에서 검은 액체가 나오는 축사·치유 사역자다. 이 사람은 거듭난(重生, regeneration) 적이 없는 사역자다. 생명이 들어간 적이 없다. 그 속에 사탄이 들어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성령인 것처럼 속인 것이다(고후 11:14).
고후 11: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래서 그는 자기를 성령의 사역자라고 말하고 성령 사역을 하고 있지만 거듭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양날 검과 불칼도 가지고 있고 방패도 들고 있다. 뒤에 천사는 없다. 생명책에 이름은 없으나 무기는 있다는 말이다. 은사가 있으니 귀신도 쫓고 사역을 할 수 있다. 검은 액체가 나오는 사람도 두 종류가 있다. 검은 액체만 나오는 사람이 있고, 검은 액체가 나올 뿐만 아니라 저승사자, 곧 사탄의 천사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후자는 사탄 쪽에서 많이 활동하는 자로서, 사탄이 전투 지휘관처럼, 정예 부대처럼 쓰는 자들이다.
그래서 우리 손에서 예수의 피가 터져 나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예수의 피가 많이 나오는 사람은 예수님의 피를 알고 회개를 많이 외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기 때문이다. 고로 축사 사역은 사실 매우 위험한 사역이다. 타락하기 쉽고, 생명책에 이름이 없어도 사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가 대한민국의 모든 목회자를 다 조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100% 정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영적 세계의 실체를 보고 결과론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둘째, 축사를 하지 않고 말씀만 증언하는 굵직굵직한 목회자들을 쭉 조사해 보니, 그들 가운데에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 사람이 없었다. 그 점에서는 축사 사역보다 좀 더 나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 가운데에도 위험한 분들이 있었다.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이 모이는 교회를 목회하는 분들이지만, 위험한 분들 가운데 14만 4천 명의 보좌 자리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셔서 그 사역을 하라고 시키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말씀 사역자 전부가 아니라 위험한 분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세상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실제로는 보좌 자리가 없었다.
위험한 분들도 두 종류였다. 손에 혈흔만 있거나, 예수의 피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회개를 전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회개를 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에 의하면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하나는 천국 집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 높은 층이었는데 지금 계속 허물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계속 이렇게 간다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또 하나는 상이 적다는 것이다. 저 정도의 종이면 어마어마한 천국의 상을 준비해 놓았겠다 싶었는데, 기껏해야 3층이고 대부분 1층이었다. 천국 집을 짓지 못한 것이다.
왜 그런가? 이 땅에서 자기가 영광을 다 받아 버렸기 때문이다. 필자가 전에 말했듯이 천국 집의 재료는 이 땅에서 올라갈 때 계산되어 올라간다. 그런데 자기 자랑, 자기 영광을 받으면 재료가 올라가지 않아 결국 집이 지어지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는 자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마 6:2).
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그래서 필자는 천국 집의 층수가 낮은 사람도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6. 손에서 예수의 피가 나오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보혈을 구하고 사용해야 하는가?
이처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과 예수 보혈(寶血, precious blood)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보혈을 많이 외치고 예수의 피를 많이 뿌려야 한다. 손에서 보혈이 나오는 사역자는 그 보혈로 사역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혈이 나오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달라고 하면 된다. 손을 이렇게 펴고 "주님, 보혈 주세요. 가득히 주세요. 철철 넘치게 주세요" 하고 구하면 된다.
그렇게 받은 보혈은 어디에 쓰는가? 저승사자가 오면 저승사자에게 예수의 피를 뿌리면 된다. 환자에게도 뿌리면 되고, 우리가 위험할 때 그 상황에 뿌리면 된다. 그리고 내 몸에 발라서 "주님, 나를 보호해 주세요" 하면 된다. 이를테면 장례식장에 갈 때 "주님, 오늘 장례식장에 가는데 나를 보호해 주세요" 하고 보혈을 바르는 것이다. 십자가를 세우는 것도 좋고 보혈을 바르는 것도 좋다. 이렇게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처음에는 "보혈을 주세요" 하고 구하기만 하다가, 나중에는 보혈이 점차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팔에서, 온 손에서, 손가락에서도 보혈이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듯 나간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들어 낼 확률, 곧 천국의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사람을 만들어 낼 확률이 매우 높다. 정말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분들은 이런 종이 되기를 추구하면 좋겠다.
7. 생명책의 이름은 쉽게 지워지는가, 그리고 성령 모독죄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생명책의 이름은 언제 지워지는가? 답은 이것이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필자도 목회자들을 보면서 '저분에게 과연 생명이 있을까?', '아, 저렇게 살면 안 될 텐데, 바른 삶이 아닌데'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지워지지 않았다. 왜 그런가? 그 사람이 처음부터 타락한 것이 아니라 진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생명이 있어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생명책의 이름을 쉽게 지우지 않으신다. 이것이 결론이다.
그러나 지워질 수는 있다. 손에 혈흔이 맺힌 종이었으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 사람이 몇 분 있었는데, 그들은 은사 쪽이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가 그 속에서 나와 사람들의 속죄를 돕고, 회개하게 하고, 귀신을 쫓아 주지 못한다면, 남들에게는 구원받을 수 있도록 말해 주었을지라도 본인은 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천국을 보장받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은 필자가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론적으로 나온 것을 힌트로 드리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생명책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말씀한다. 그러나 실제로 필자가 보았을 때 하나님은 쉽게 지우시지는 않는 것 같다.
꽤 오래전에 한 성도가 필자에게 상담을 해 왔다. "목사님, 저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졌겠지요? 저는 구원 못 받겠지요?"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분은 남편의 외도로 큰 충격을 받고 나이가 꽤 든 뒤에 음행의 죄를 짓고 살았다. 몇 년 전에 그 죄를 다 끊었다. 그런데 '이렇게 살면 안 되지' 하는 양심의 가책과 성령의 음성이 있었는데도 그것을 외면하고 죄를 지었으니, 자기는 버림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필자는 "회개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라고 답해 드렸다. 그래도 그분은 쉽게 믿지 못했다. 그분이 가장 걱정한 것은 마태복음 12장 31-32절 말씀이었다.
마 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이 말씀의 배경은 이렇다. 예수께서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셨는데(마 12:22), 바리새인들이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마 12:24)고 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귀신의 왕, 곧 사탄의 힘을 빌려서 한다고 매도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 죄를 두고 이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은사·치유·축사를 하면 귀신이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교회에서 방언하지 말라고 막는 일이 많다. 그것은 상당히 좋지 않은 일이다.
여기서 "이 세상"은 지금의 세대(아이온), 곧 이생이고, "오는 세상"은 죽은 후의 세대, 곧 내생이다. 세대는 이 둘밖에 없다. 그런데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이생에서도 내생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령훼방죄(聖靈毁謗罪, blasphemy against the Holy Spirit)를 짓는 자는 죽어서 그 죄값을 받는다. 그것은 최소 성 밖이며, 바깥 어두운 데나 불못에도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정확한 문맥과 단어를 보아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을 '거역'해야 한다. 성령을 외면한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모독하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음행의 죄를 지은 것은 성령을 모독한 것이 아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죄를 지은 것은 적극적인 모독이 아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다. 음행의 죄를 지었다고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다. 끊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회개하면 용서받는다. 물론 그 죄를 계속 짓고 있다면 당연히 지옥에 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되도록이면 천국에 보내시려고 생명책의 이름을 쉽게 지우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지워진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을 때 지워지는가? 아주 현저하게 죄를 지어야 한다. 그러면 현저하게 죄를 짓는다는 것은 어떻게 죄를 짓는 것인가? 이번 본문 히브리서 6장 4-5절을 보자.
히 6:4-5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한 번 빛을 받았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다. 성령에 참여한 바 되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이 무엇인지 맛보았다. 장차 올 시대, 곧 내세의 능력까지 맛보았다. 얼마나 조건이 많은가! 이렇게까지 하고도 타락한 자들이다. 그러니 타락에 이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아무래도 은사 사역을 하는 사람이 더 빨리 그곳에 다다를 수 있다. 왜냐하면 은사로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추구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말씀밖에 모릅니다' 하는 사람은 자기를 높이는 데 조금 덜할 것이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이 타락하여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 적극적인 죄, 현저한 죄가 무엇인지를 히브리서 10장 29절이 이렇게 표현한다.
히 10: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우리는 죄는 지어도 성령을 모욕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지는 않는다.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 곧 예수의 피를 두고 '쓸데없다, 짐승의 피나 예수의 피나 똑같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 한 생명책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천국 집이 허물어지고 있는 주의 종들, 층수가 1층밖에 없는 주의 종들을 보면 생명책의 이름이 흐려지고 있다. 천국의 이름은 기록하는 천사가 잉크로 쓴다. 그런데 이름이 지워질 수 있는 자들의 경우 그 잉크가 번지는 모습으로 점점 희미하게 흐려지고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지금 계속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이단 교주는 처음에는 예수를 잘 믿는 장로였는데, 은사가 나타난 뒤 나중에는 예수를 욕하며 짓밟는 모독의 말을 했다. 그 이름이 점차 흐려지다가 싹 지워진 것이다. 필자가 확인해 보니 그는 지옥의 넓은 곳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를 책망하실 때 빨리 돌이켜야 한다. 모욕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령께서 계속 책망하시는데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점점 흐려지게 된다.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는 히브리서 6장 6절이 말해 준다.
8. 지워진 이름은 왜 다시 기록될 수 없으며 어떤 경우에 지워지는가?
그렇다면 생명책에 기록되었으나 지워진 자는 어떻게 되는가? 다시 기록되는가? 히브리서 6장 6절이 이 문제에 답한다.
히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회개가 안 된다는 것이다. 현저하게 죄를 지어 버리면 회개하게 할 수 없다. 필자는 그런 여러 사례를 들어 보았는데, 그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경우는 세 가지다. 이것은 필자의 경험으로 말하는 것이다.
첫째,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심히 고의로 방해하고 어지럽힐 때다. 쉽게 말하면 교회에 오물을 뿌리듯 모욕하며 그런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아무리 교회가 밉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그런 자는 하나님께서 오래 두지 않으시고 데려가신다. 회개의 기회조차 주지 않으신다. 필자는 그렇게 데려가시는 것을 보았다. 바울도 이렇게 경고했다(고전 3:17).
고전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둘째, 주의 종을 대적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때다. 목사가 잘못했다고 멱살을 잡고 끌어내고, 목사를 무릎 꿇려 놓고 책망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저하게 죄를 짓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얼마 후에 교통사고나 다른 사고로 데려가시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은 그냥 두지 않으신다. 회개하게 하지 않으신다. 모세와 아론의 질서를 대적한 고라의 무리를 땅이 삼킨 것과 같다(민 16:32-33).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질서를 파괴한 자는 마귀처럼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한 것이기 때문이다(사 14:14). "내가 너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누가 판단하는가? 네가 심판자가 되겠다는 것인가? 절대 심판자가 되지 말라. 주님만 심판하실 수 있다. 목사의 잘못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다. 기도하고, 정 안 되면 본인이 그 교회를 떠나면 된다. 심판하지 말라. 그래서 필자는 이런 사례를 말하는 것이다.
셋째, 앞에서 말했듯이 예수님을 부인할 때다. 이렇게 되어 버리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지워지면 다시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차라리 교회에 다니면서 아직 생명이 들어오지 않아 교양 생활을 하는 사람이 더 은혜다. 그 사람은 언제라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남편이나 아내가 억지로, 가정의 화평을 위해서 교회에 나와 주고 있다면 감사해야 한다. '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자가 여기 있구나' 하고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기록된 자가 현저하게 타락해 버리면 다시 회복시킬 수가 없다. 히브리서 12장 16-17절이 그 사례를 하나 더 보여 준다.
히 12:16-17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필자는 여기서 "음행하는 자"가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한 르우벤을 가리킨다고 본다(창 35:22). 그리고 에서는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팔았다. 육체의 욕심을 위해 자기의 신앙을 팔아 버린 자들은 결국 이름이 지워지고,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를 주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지금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면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죄를 짓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 회개의 기회를 주실 때 빨리 회개해야 한다.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기 전에 회개해야 한다. 지워져 버리면 끝이다. 더 이상 안 된다. 하나님은 다시는 생명책에 기록하지 않으신다. 반면에 회개하지 못하는 사람은 양심의 가책이 없다. 주의 종을 무릎 꿇리고 멱살을 잡아도 한 번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성령을 모독한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이미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절대 심판자가 되지 말라. 피켓을 들고 "목사를 몰아냅시다" 하는 일을 절대 하지 말라. 그 일로 자식까지 힘들어진다. 오히려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주의 종이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셔서 정말 진실한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해 주세요." 정 안 되면 본인이 나오면 된다. 대항하지 말라.
정리하자면 이렇다. 생명책에 한 번 기록된 이름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끝까지 죄만 짓고 산다면 생명책에서 지워져 성 밖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현저하게 죄를 지어 이 땅에서부터 지워지면 그는 100% 지옥이다. 다시 말해 끝까지 죄만 짓는 자는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려지다가 회개하지 못하고 죽으면 성 밖에 남겨지고, 현저한 죄로 지워진 자는 불못에 떨어진다.
9. 나오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찬송 한 절을 불러도 눈물이 난다. 우리 교회의 한 집사님이 "찬송 한 절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는데, 그 마음이 필자에게 그대로 느껴졌다. 찬송 한 절을 불러도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사람, 그 사람이 생명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은사가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난다고 교만해지면 위험하다. 천국 집이 허물어지고, 1층이 되고, 생명책의 이름이 흐려지고 있는데 자기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나빠지기 전에, 성령의 음성이 들리면 빨리 회개해야 한다.
그래서 회개 기도문으로 회개하는 것만큼 축복된 삶이 없다. 왜 그런가? 생명의 길로 가겠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왜 버리시겠는가? 다른 것은 다 못 해도 "나는 회개를 기본으로 일평생에 천 번은 회개하고 가리라" 작정하고 가면 된다. 해 보라. 죄를 안 짓게 되고 혈기와 분노가 사라진다. 귀신이 나가니까 자동으로 건강도 회복되고 물질도 회복되고 다 회복되게 되어 있다. 신비한 일이다. 귀신이 그것을 못 하게 막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것이다.
회개는 보혈이 꼭 필요한 일이다. 회개하면 보혈이 부어져서 죄가 용서되는 속죄(贖罪, atonement)가 있고, 회개하면 보혈로 말미암아 귀신이 녹아서 정결하게 된다. 그러므로 회개야말로 하루에 한 번씩 꼭 해야 할 일이다. "죽을 때까지 나는 하루에 한 번씩은 회개하리라" 하고 회개한다면, 우리의 삶은 버려지는 데까지 가지 않을 것이고 주님께서 치워 버리시는 데까지 가지 않을 것이다.
과연 누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가? 그것이 내가 되지 않기를 원한다. 성령께서 책망하실 때 말씀대로 회개하고 돌이키자. 돌아온 탕자처럼 과거를 묻지 않으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알고, 현저한 죄가 아니라면 빨리 회개하여 돌이키자. 그리하여 생명책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고 다시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도록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가자. 오직 믿음만 추구하지 말고 종교개혁 때 잃어버린 회개를 제대로 하여,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날 천사가 와서 우리를 데려갈 수 있도록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 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11월 02일(화) · 정보배 목사
![이번 주 말씀 [바른 구원(03)]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면 다시 기록될 수 있는가?(히6:4~8)](https://i.ytimg.com/vi/si5s_QUIUcE/mqdefault.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