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1(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한자와 창세기(10)] 창세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고조선이었으나 그들이 지녔던 한계는?(요4:20~2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ckIw-fsTgjI
1. 들어가며: 고조선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한계
우리는 지난 아홉 번의 시간을 통해 우리 조상 동이족이 남긴 '한자(漢字)' 속에,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 민족은 바벨탑 사건 전후, 타락한 문명을 떠나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동쪽으로 이동했던 욕단(단군)의 후예들이다. 그들은 창조와 타락, 홍수와 방주의 기억을 문자 속에 화석처럼 남겨놓았다.
그러나 여기에 뼈아픈 역설이 있다. 그렇게 하나님을 잘 알고 섬기려 했던 '천손(天孫) 민족'이 왜 역사 속에서는 5천 년 동안 우상을 숭배하고, 무당과 잡신을 섬기는 '무당 민족'으로 전락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 답은 명확하다. 그들은 '그림자(한자)'는 가지고 있었으나 '실체(성경,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 우리는 한자가 보여주는 놀라운 창세기의 비밀을 최종적으로 확인함과 동시에, 그 한계를 냉철하게 직시함으로써 우리가 붙들어야 할 참된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2. 우리가 '환단고기(桓檀古記)'가 아닌 '한자(漢字)'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민족, 고조선의 역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책이 있다. 그것은 바로 『환단고기(桓檀古記)』다. 이 책은 1911년 계연수가 편집하고, 1979년 이유립이 간행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여기에는 단군 조선이 47대 단군에 걸쳐 2천 년 넘게 지속되었으며, 그 이전에 환국(환인)과 배달국(환웅)의 역사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9천 년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방대한 기록이다.
물론 이 책의 내용 중 일식과 월식 등 천문학적 기록이 현대 과학으로 검증된 사례가 있어 무조건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환단고기』를 성경처럼 절대적인 텍스트로 믿고 따라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은 1979년에야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그 내용 속에 근대적 용어가 섞여 있어 위서(僞書, 가짜 책)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가필되거나 편집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믿고 의지해야 할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에 대한 기록은 무엇인가? 그것은 누군가 후대에 쓴 역사책이 아니다. 바로 '한자(漢字)', 특히 고대 '갑골문(甲骨文)' 의 기록 그 자체이다. 한자는 책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썼던 그림 문자였다. 거북이 등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새겨진 이 글자들은 조작이 불가능한 고고학적 유물인 것이다. 놀랍게도 이 갑골문은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하기(BC 1446년경)보다 약 800년이나 앞선 시기에 만들어졌고 기록되었다.
필자가 지금까지 아홉 번에 걸쳐 전한 말씀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논란 많은 역사책이 아니라, 변개될 수 없는 문자(한자) 속에 화석처럼 박혀 있는 '팩트'를 추적해 온 것이다. 한자 속에 담긴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기록, 그것이야말로 우리 민족 동이족이 노아의 후손이며, 하나님을 알고 섬겼던 천손 민족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하고 객관적인 증거인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 흔들리지 않는 증거 위에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다시 세워야 한다.
3. 태초의 지구 하늘엔 무엇이 날아다녔는가? (땅 지의 비밀)
그렇다면 한자가 들려주는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이 말해주지 않는 더 비밀한 것들을 알려준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보자. 창세기 1장 2절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기록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에 왜 어둠과 혼돈이 있었던 것일까? 성경은 이에 대해 아무런 말씀을 하고 있지 않지만, 한자 '땅 지(地)' 자는 그 이유를 충격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한자인 땅 '지(地)' 자는 '흙 토(土)'와 '어조사 야(也)'가 합쳐진 글자다. 우리는 흔히 어조사 '야(也)'를 별 뜻 없는 조사로 알고 있지만, 고대 갑골문을 보면 그것은 전혀 다르다. 갑골문에서 어조사 '야(也)' 자는 '또아리를 튼 몸통에 머리가 있고, 양옆에 날개가 달린 뱀'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지구의 땅(土)이 처음 생겼을 때 그곳에는 이미 '날개 달린 뱀(也)' 모양의 타락한 천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 하늘에서 타락하여 쫓겨난 천사들(용, 옛 뱀)이 이미 지구의 공중 권세를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자는 성경의 행간에 숨겨진 영적 세계의 실상, 즉 이 땅이 마귀의 활동 무대가 되었음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영적 실체를 알고 있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이 땅이 영적 전쟁터임을 알고 있었고, 땅의 근원을 설명하면서 굳이 뱀의 형상을 집어넣어 후손들에게 경고했던 것이다.
4. 우리 조상은 어떤 제물을 하나님께 바쳤는가? (희생 희의 비밀)
그리고 이번에는 한자가 알려주는 정보가 성경과 일치하고 더 많은 정보를 알려주는 것도 있지만 보다 정밀한 정보를 알려주지 못해 우리 민족이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붙들 수 없었다는 측면도 살펴보기를 원한다.
예를 들어보자. 범죄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직 하나, 동물의 희생제사였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어떤 제물을 드려야 하나님이 받으시는지, 그 까다로운 조건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이 '희생 희(犧)' 자에 담겨 있다.
이 글자는 뜯어볼수록 참으로 기가 막히다. '소 우(牛)' 변에 '양 양(羊)', '빼어날 수(秀)', 그리고 '창 과(戈)'가 결합되어 있다. 이는 장차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제사를 드리려면 어떤 제물을 써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첫째, 제물은 소나 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돼지나 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는 레위기 법과 똑같다. 둘째, 그중에서도 '빼어난(秀)' 것이어야 한다. 흠 없고 가장 완벽한 것을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헌금할 때 돈을 다리미로 다려서 드렸던 그 정성이 바로 이 '수(秀)'의 정신이다. 셋째, '창(戈)'으로 찔러 피를 흘리고 그 피와 고기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희생 생(牲)' 자를 보면, '소 우(牛)' 옆에 '날 생(生)' 자가 붙어 있다. 이는 하나님께 드릴 제물은 반드시 '살아 있는 것'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죽은 시체는 부정하다. 그래서 강대상에는 조화(造花)를 올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생명을 원하신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흠 없고 살아 있는 최상의 제물'을 드려야 함을 알았다. 그러므로 희생제물은 장차 오실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완벽하게 예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을 예표한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기에, 안타깝게도 후대로 갈수록 이 정신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제사로 변질되고 말았던 것이다.
5. 왜 한국은 뽕나무를, 이스라엘은 무화과를 붙들었는가?
인간이 타락한 후 겪은 가장 큰 슬픔은 무엇이엇을까? 바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생명나무'를 잃어버린 것이었을 것이다. 한자 '잃을 상(喪)' 자는 바로 그 슬픔을 우리에게 알려한다. 잃을 '상(喪)' 자의 고대 글자를 보면 '입 구(口)'들이 모여서 통곡하고 있는데, 그 대상이 바로 '뽕나무(桑, 상)' 때문이었다.
그럼, 왜 우리 조상들은 뽕나무를 잃어버린 것을 슬퍼한 것인가? 왜 하필 뽕나무인가? 그런데 허신이 쓴 설문해자를 보면 이 비밀이 풀린다. 왜냐하면 우리 민족에게 뽕나무의 잎은 생명나무의 잎을 가장 빼닮은 잎이었기 때문이다. 뽕나무는 크게 둥그런 잎의 뽕나무와 갈라진 잎의 뽕나무로 나뉜다. 그중에 뽕나무는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 뽕나무가 있다. 필자가 천국에 가서 확인해 보니, 생명나무 잎사귀도 세 갈래로 갈라진 단풍나무 잎과 매우 흡사했다. 그러므로 우리 조상 동이족은 에덴에서 보았던 그 생명나무를 잊지 않으려고, 그와 가장 닮은 뽕나무를 찾았고 그것을 귀하게 여겼던 것이다.
반면, 서쪽으로 간 이스라엘 민족은 무엇을 붙들었는가? 그들은 '무화과나무'를 붙들었다. 무화과나무 잎도 세 갈래, 다섯 갈래로 갈라져 생명나무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이스라엘은 무화과를 국화(國花)처럼 여기고, 우리는 뽕나무를 귀하게 여겼다. 두 민족 모두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기억하려 했던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서해(황해)를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부를 때가 있었다. 이 고사성어는 "뽕나무 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뜻이다. 과거에 육지였던 그곳에 뽕나무가 가득했던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서해에는 뽕나무가 가득했다. 얼마나 뽕나무가 가득했는지 우리나라 전역에서 뽕나무가 발견될 정도다. 지금도 서울에는 잠실이라는 곳이 있다. 세종대왕이 뽕나무를 장려하여 그곳에 뽕나무 밭을 조성하게 하여 만들어서 생긴 이름이 바로 잠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 우리 조상들은 뽕나무를 왜 심어야하는지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뽕나무 잎으로 누에를 쳤고 '비단(Silk)'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신라에서부터 시작된 실크로드는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라,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기억하려 했던 동이족의 영적 몸부림이 만든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슬픈 것은, 나중에는 그 영적 의미를 잊어버리고 그저 비단 옷 해 입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이다.
6. 왜 우리는 '씨(種)'를 기다리며 벼농사를 지었는가?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왜 우리 조상들이 쌀농사를 중요하게 여겼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하와에게 "여자의 후손(씨)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창 3:15). 그러므로 우리 조상들은 이 약속된 '씨(Seed)'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지금의 한자는 '여자의 씨'를 '여인의 후예(後裔)'라고 번역해놓았다. 그러나 원래 히브리어 씨(히, '제라', seed)는 '뒤 후(後)' 자에, '후손 예(裔)' 자라고 쓰지 말고 '씨 종(種)' 자를 써야 했다. 그런데 지금의 한자는 씨 종 대신에 후예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는 씨 종 자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은 이러한 씨를 붙들었다. 그런데 씨 종 자를 보면, '벼 화(禾)' 변에 '무거울 중(重)' 자가 결합되어 있다. 곡식 중에서 물에 뜨는 쭉정이는 버리고, 물에 가라앉는 가장 '무거운(重)' 것만이 진짜 씨앗(種)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인의 씨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우리 민족은 유독 벼농사(쌀)에 집착했던 것이다. 쌀(Rice)은 씨앗의 소중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물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우리 조상들은 볍씨를 고를 때 소금물에 띄워 가라앉는 무거운 놈만 골라내어 종자로 썼다. 이것은 단순히 농사법이 아니었다. 언젠가 오실 인류의 구원자, 그 묵직하고 참된 '생명의 씨(여자의 후손)'를 기다리는 신앙적 행위였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민족에게는 그 '씨'가 진짜 누구인지 알려주는 성경(계시)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 쌀이 최고구나. 밥심으로 사는구나." 하면서, 영적인 메시아를 기다리는 신앙이 육신의 배를 불리는 '농사 문화'로 변질되고 말았다. '여인의 후손'이라는 영적 실체를 놓치고, 쌀농사 짓고 밥 먹는 현실에 안주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놓쳐버리고, 육신의 배를 불리는 농사 문화만을 붙들고 말았던 것이다.
7. 사마리아와 고조선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알지 못하는 예배)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이 누군지를 알아본 예수님에게 그동안 담고 있었던 영적인 의문을 질문으로 던진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그리심산)에서 예배하였는데, 유대인은 예루살렘에서 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디가 맞는 것입니까?" 그때 예수께서는 냉정하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있었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기 때문이라" (요 4:22). 사마리아인들도 나름대로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예배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 아니라 섞여있는 혼합된 하나님이었던 것이다. 오직 하나님 신앙은 유대인들이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구원자를 보내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 민족 고조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단군과 우리 조상들은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그리고 곳곳에 고인돌을 세우고 하늘(상제)께 제사를 드려왔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표현대로라면 '알지 못하는 예배'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계시인 '성경' 말씀이 없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의 족보(유대인)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내용을 모르고 드리는 열심은 결국 미신이 되고 우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알지 못하는 예배는 필연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8. 천손(天孫) 민족은 왜 무당 민족이 되었는가?
그런데 우리 민족이 결정적으로 타락하여 무당민족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은 '중보자(메시야)의 부재'에 있었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고 못 박고 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반드시 죄 없는 중보자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한 영들을 자신의 몸에 품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될 수 있는 존재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이셔야 했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분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분이 바로 2천년전에 여인의 씨와 처녀의 씨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는 바로 이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는가? 그것은 족장인 47명의 '단군(檀君)'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천제(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며 제사장을 자처했다. 이를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 단군은 죄인에 불과하다. 죄인이 죄인의 제사를 집례하려고 하니, 하나님이 받으실 리 없다. 하나님과 소통이 안 되니 그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서 백성을 속였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샤마니즘' 곧 무당 귀신의 힘을 빌리게 된다. 그래서 단군은 점차 정치적 지도자에서 '무당(Shaman)'의 역할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고인돌을 쌓고 하늘에 제사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귀신을 부르는 굿판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찾아서 동쪽 끝까지 왔던 욕단의 후예들이, 5천 년 역사 동안 지독한 무당 민족, 불교 민족으로 전락하게 된 슬픈 이유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요 메시야라는 것을 몰랐기에, 그들은 영적 미아가 되어 귀신의 포로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9. 나오며: 그림자(한자)를 넘어 실체(예수)를 붙잡으라
사실 한자는 우리 조상들인 욕단민족이 남겨놓은 위대한 신앙유산이다. 그것은 창세기의 역사가 사실임을 증명하는 강력한 '그림자' 문자였다. 그러나 그림자는 실체가 아니다. 마치 뽕나무가 생명나무가 아니라 생명나무의 모형일 뿐이었듯이 말이다. 고로 한자는 성경의 희미한 기억이었던 것이다. 진짜는 벨렉자손의 후손인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알려주신 성경말씀에 들어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림자가 아닌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시려고 선교사를 보내주셨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140년 전, 선교사들을 통해 '성경(소리 글자)'과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게 되었다. 우리가 그토록 찾았던 생명나무는 뽕나무가 아니라 '예수님'이시며,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여인의 씨는 벼가 아니라 '메시아 예수'인 것을 알게 해 준 것이다. 더욱이 우리가 드려야 할 희생제사의 제물은 소나 양이 아니라 '십자가의 어린양 예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이 한자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단군이라는 거짓 중보자와 무속의 껍데기를 벗어버려야 한다. 이제는 참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민족의 탁월한 영성(제사, 새벽 기도, 헌신)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모르면 우리도 역시 환단고기와 같은 자료를 공부하다가, '대종교'인이나 '증산도'의 교인이 되고 말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하늘제사는 다 미신을 섬길 뿐이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우리가 회개를 통해 이러한 무당의 세력을 우리 안에서 뽑아낼 때 이 대한민국은 마지막 시대를 감당할 제사장 나라로 쓰임받게 될 것이다. 이제 이 모든 말씀이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적인 유희가 아니라, 예수를 더욱 깊이 만나고 우리 민족의 사명을 깨닫는 생명의 양식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아니한다.
2026년 01월 11일(주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고대 한자 속에 담긴 창세기의 흔적을 추적하며, 우리 민족의 뿌리가 바벨탑 사건 이후 동쪽으로 이동한 욕단의 후손이라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고조선의 건국 과정과 한자의 갑골 문자에 기록된 창조, 타락, 노아 홍수의 기록을 통해 한민족이 본래 하나님을 경외하던 민족이었음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림 문자인 한자가 지닌 계시의 한계로 인해 우리 민족이 메시아 사상을 잃어버리고 무속 신앙으로 변질되었음을 지적합니다. 결국 이 글은 역사적 자부심을 넘어, 성경의 소리 글자로 명확히 계시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붙들어야만 진정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신앙적 권고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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