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5(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란 대체 어떤 것이며, 그 시작과 끝은 무엇인가?(로마서 1: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l-E8jzb22Ww
1. 들어가며
신앙의 길은 때론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지만, 결국 가장 영광스러운 생명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교회 안에서 '율법과 복음'에 대해 피상적으로 배우며 치명적인 오해에 빠져 있다. 율법은 구약 시대에 모세를 통해 주어진 낡고 정죄하는 법이며, 복음은 신약 시대에 예수님을 통해 주어진 은혜롭고 좋은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다. 이러한 오해는 "우리는 복음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십계명 같은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얄팍한 영적 나태함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과연 율법은 정말 폐기되어야 할 낡은 유물이고, 복음은 행함 없이 주어지는 값싼 천국행 티켓인가?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에는 여호와로, 신약에는 아들 예수로 오셨다면, 구약의 율법 역시 예수님의 말씀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복음의 시작은 단순히 예수를 믿어 죄 사함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복음의 진정한 실체와 그 시작과 끝은 대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를 원한다. 그래서 비로소 구원의 완성인 새 예루살렘 성의 문을 온전히 통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2. 현대 개신교인들이 율법과 새 계명을 소홀히 여기며 빠지게 된 '구원파적 맹신'의 치명적인 오류는 무엇인가?
구약의 십계명을 어기면 지옥에 갈 수 있는 무서운 죄가 된다는 사실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3장에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주신 '새 계명'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율법은 이미 폐지되었고, 나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으니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받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 교회를 갉아먹는 치명적인 '구원파적 맹신'이다. 예수님은 결코 행함이 없는 가짜 믿음을 구원의 보증수표로 주신 적이 없다. 우리는 이미 복음의 시대에 들어왔다면서 십계명도 버리고 주님이 주신 이웃 사랑의 새 계명도 버린 채, 오직 '믿는다'는 지적 동의 하나만으로 천국을 장담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만약 율법의 계명과 복음의 상관관계를 철저히 오해한 이 영적 나태함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결국 죽음의 순간에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져 성 밖으로 쫓겨나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
3.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정의한 '복음'의 참된 실체는 무엇이며, 왜 구약의 율법과 선지서가 곧 복음인가?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에서 복음의 능력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 1:16)
헬라어로 '복음'이란 '유안겔리온(Euangelion)', 즉 기쁘고 좋은 소식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진짜 좋은 소식의 실체는 무엇인가? 바울은 로마서 1장 2절에서 이 복음이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선포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경이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 즉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예수님 역시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이 [구약]성경[들]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구약의 율법과 선지서 자체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복음'이었다는 충격적인 진리다.
그렇다. 율법과 복음은 결코 대립하는 적이 아니었다. 율법은 예수님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님이야말로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복음의 본체였던 것이다.
4. 율법을 도덕법과 의식법으로 구분할 때, 율법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완벽한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율법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규정한 영원한 '도덕법(십계명)'이고(출 20:1-17), 다른 하나는 성막, 제사, 할례, 안식일 등을 규정한 '의식법'이다(출23장, 25-40장).
구약 시대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게 도덕법을 주시며 그것들을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치고 자신의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과 이웃을 완벽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십계명 앞에서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서 사형 선고를 받은 죄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형벌로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인간을 살리기 위해 출애굽기 25장부터 성막과 제사법(의식법)을 주셨다. "너희가 십계명을 어겨 죄를 지었거든, 흠 없는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려 죄 용서를 받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구조를 보면, "먼저 행하라. 그러나 완벽히 행하지 못해 죄를 지었다면, 장차 오실 메시아의 모형인 제사법(의식법)을 믿음으로 용서받아라"는 기가 막힌 구원의 시스템이었다. 그렇다.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는 무자비한 법이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한 다음 구원자(예수)에게로 이끄는 고마운 초등교사(몽학선생)였던 것이다(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3:24)
5.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은 복음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복음의 '끝(완성)'은 무엇인가?
신약의 복음이란 구약 율법의 모형이 실체로 나타난 것이다.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리던 구약의 의식법은, 참된 속죄 제물이자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완벽하게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에게 복음은 "먼저 예수를 믿으라"로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시고(유보적 칭의)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얻은 칭의'는 복음의 출발선이지 결코 결승선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 4절에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로마서 13장 10절에서 그 마침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10)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어 죄 사함을 받았는가? 그렇다면 이제 복음의 마지막 완성 지점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내 삶에 실천해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해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을 내가 힘입었다면, 나 역시 형제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사랑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 믿음으로 구원의 문에 들어선 우리 모두는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할 때, 비로소 복음은 우리 안에서 거룩하게 완성되는 것이다.
6. 과거 유대인들이 저질렀던 치명적인 실수를, 오늘날 복음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어떻게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가?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십계명이 요구하는 진정한 이웃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는 철저히 저버렸다. 그러면서도 껍데기에 불과한 의식법, 즉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는 형식만을 내세워 스스로를 '의인'이라 착각했다. 그러다보니 실체이신 메시아가 그들에게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의식법이라는 모형에 갇혀 결국 구원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다.
놀랍게도 오늘날 현대 개신교인들은 이 비극적인 실수를 정확히 답습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할례와 안식일을 자기의 의의 조건으로 삼았듯이, 오늘날의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입술의 고백' 자체를 새로운 의식법처럼 여기고 있다.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십계명을 밥 먹듯 어기고, 주님이 명령하신 이웃 사랑은 한 치도 실천하지 않는다. "나는 예수를 영접했고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며 행함과 회개를 내버린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외식하던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는 끔찍한 영적 교만이 아닐 수 없다. 믿음만 내세우고 사랑의 행함을 저버린다면, 그 믿음은 귀신들도 믿고 떠는 가짜 믿음일 뿐이다.
7. 하나님께서 구약의 성도들과 달리, 신약의 성도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내주하도록 부어주신 특별한 영적 이유는 무엇인가?
구약 시대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과 같은 믿음의 선진들은 성령의 내주하심 없이도 철저한 순종과 헌신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가족과 백성)을 지켜내어 결국 천국에 입성했다. 물론 약간의 실수도 범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고 그리고 회개했다. 그리고 합당한 제사를 주께 올려드렸다.
그렇다면 왜 신약 시대에 와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의 심령 속에 보혜사 성령을 부어주고 계시는 것일까? 그것은 신약 시대가 하늘에서 쫓겨난 마귀와 귀신들이 온 땅에 들끓는 치열한 '영적 전쟁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육체와 환경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의 집요한 공격 앞에서, 연약한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결코 죄를 이길 수 없고, 이웃사랑을 실천하여, 율법의 완성을 이루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을 믿는 이들 속에 파송하셨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이 자기 안에서 불타오를 때 비로소 우리는 자기 속의 귀신과 싸워 이길 수 있고, 십자가의 참된 사랑을 원수에게까지 베푸는 기적 같은 복음의 실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8. 마귀가 판을 치는 이 마지막 시대에, 주님이 명령하신 '이웃 사랑'을 실천하여 복음을 완성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무엇인가?
구약 시대의 이웃 사랑은 육신적으로 가난한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이었다. 그러나 악한 영들이 지배하는 신약 시대, 특히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고 위대한 이웃 사랑의 실천은 '마귀에게 눌려 고통받는 자들을 구출해 내는 사역'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그렇게 하셨고 제자들에게 또한 그렇게 부탁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심에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사도행전 10:38)
이를 위해서는 내가 먼저 철저한 '회개 기도'를 통해 내 속의 우상 숭배의 진과 혈기, 교만의 뱀들을 뽑아내어 정결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불을 받아서 질병과 가난, 정신적 고통으로 죽어가는 이웃들을 축사와 치유로 살려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진짜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을 믿은 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사랑을 실행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복음의 시작에 머물러 있을 뿐 복음의 끝에 가보지 아니한 것이다. 그런데도 성도들은 자신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아니다. 우리가 만약 사랑의 실천을 통해 열매가 없다면, 최소한 매일매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철저한 회개라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죽을 때에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지 못한 채 성밖으로 던져지거나 불못에 던져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믿은지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행위들의 열매들이 맺혀지고 있지 않다면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최소한 자기의 두루마기를 빠는 회개를 해야 한다. 이것만이 행함이 부족한 오늘날의 성도들로 하여금 천국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생명줄이 되어줄 것이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요한계시록 22:14-15)
9. 나오며
우리는 이 시간에, 복음이 율법과 단절된 새로운 것이 아니라, 모형으로서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완벽한 실체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구약의 율법이 "행하라, 못하면 의식법을 통해서라도 용서받으라"였다면, 신약의 복음은 "예수님을 먼저 믿으라, 그리고 그 믿음의 능력으로 온전히 사랑을 행하라"는 거룩한 역설이다. 복음의 시작은 믿음의 칭의이지만, 복음의 끝은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거룩한 행함의 완성인 것이다.
더 이상 "믿기만 하면 만사형통이요 천국은 따놓은 당상이다"라는 구원파적 거짓된 평안에 속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새 계명을 짓밟고도 무사히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교만을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내 영혼을 정결케 하는 피 묻은 회개, 그리고 마귀에게 포로 된 이웃들을 살려내는 십자가 사랑의 실천만이 우리를 마지막 심판에서 건져낼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은 자신의 신앙고백을 뛰어넘어, 목숨 걸고 복음의 끝인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장차 주님 다시 오실 때,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눈부신 면류관을 차지하는 복된 영광의 상속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03월 15일(주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복음과 율법의 상관관계를 조명하며, 신앙의 시작부터 완성에 이르는 과정을 심도 있게 설명합니다. 본 설교는 많은 기독교인이 율법을 폐기된 것으로 오해하여 행함이 없는 나태한 신앙에 빠져 있음을 지적하며, 복음의 실체는 결국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율법의 정신과 맞닿아 있음을 강조합니다. 구약의 율법이 제사를 통한 죄의 고백을 요구했다면, 신약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고 그 사랑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함을 역설합니다. 특히 참된 이웃 사랑은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복음으로 구출해내는 영적 해방이며, 이것이 곧 복음의 마침이자 완성임을 분명히 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단순한 믿음을 넘어 회개와 사랑의 실천을 통해 천국 시민으로서 합당한 열매를 맺는 온전한 신앙을 갖추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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