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215)]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2)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성도의 견인(堅忍)교리, 과연 성경적인가?(욜2:32, 요10:28~29)
이 설교는 칼빈주의 예정론과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성도의 견인 교리가 성경적이지 않으며 잘못된 가설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의 구원 여부가 아니라 아들 삼으심과 사역에 대한 것이며, 구원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회개하는 자의 책임임을 강조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설교의 목적은 신자들이 잘못된 교리적 안심에서 벗어나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칼빈의 이중 예정론은 왜 처음부터 잘못된 가정에서 시작되었는가?본문 →2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원래 예정하신 것은 무엇이었는가?본문 →3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성도의 견인 교리는 어떤 교리인가?본문 →4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성도의 견인 교리는 어떤 함정에 빠지게 하는가?본문 →5칼빈주의자들이 성도의 견인의 근거로 드는 성경 구절은 무엇인가?본문 →6요한복음 10장 27-30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무엇이 달라지는가?본문 →7성경은 왜 구원받은 자도 탈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가?본문 →1. 들어가며
우리는 지난 시간에 칼빈주의의 5대 교리가 과연 성경적인가를 살펴보면서, 그 가운데 무조건적 선택 교리가 근거로 삼는 요한복음 6장 37절과 39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다시 읽어보았다. 이번 시간에는 5대 교리의 마지막 기둥인 성도의 견인(聖徒의 堅忍, perseverance of the saints) 교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교리가 가장 강력한 근거로 내세우는 말씀이 있다면 그것은 요한복음 10장 28-29절이다. 여기에 보면, 아버지께서 양들을 아들에게로 보내주시는데, 그러면 그 양들에게 예수께서 영생을 줄 것이요, 그러면 양들을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양들을 예수님의 손과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고 나온다. 이는 마치 칼빈주의의 예정론을 뒷받침하는 구절처럼 보인다.
그런데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구원할 자를 예정해두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욜 2:32).
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구원으로 예정해 두신 어떤 개인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칼빈주의자들처럼 하나님께서 누구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다면, 그 구원은 영원히 안전하게 보존되어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은 채 있게 되는 것인가? 정말로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끝까지 강하게 견디어 한 사람도 탈락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구원받게 되는가? 과연 이러한 칼빈주의의 '성도의 견인'의 교리는 성경에서 나온 것인가? 과연 이 교리를 성경이 뒷받침해 주고 있는가? 그리고 이 교리에 담긴 잘못된 가정과 함정은 대체 무엇인가? 이번 시간에는 이것을 하나하나 살펴보려고 한다.
2. 칼빈의 이중 예정론은 왜 처음부터 잘못된 가정에서 시작되었는가?
'성도의 견인' 교리를 바로 보려면 먼저 그 뿌리인 칼빈의 예정론이 과연 성경적이었는지부터 다시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를 보아야 한다. 첫째는 이중 예정론이 처음 등장한 자리이고, 둘째는 칼빈이 그것을 어떻게 확장했는가이며, 셋째는 그것이 왜 잘못된 가정인가이다.
첫째, 칼빈(A.D.1509-1564)의 이중 예정론(二重豫定論, double predestination)은 처음 어디에서 등장하는가? 그것은 그가 서른 살이던 1539년에 펴낸 「기독교 강요」 제2판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는 그의 책 제8장 '예정 및 섭리'에서 "하나님은 만세 전에 어떤 사람은 영생과 구원으로, 어떤 사람은 영원한 멸망으로 예정하셨다"고 처음으로 주장했다. 그리고 "예정이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어떻게 하실지 결정하신 영원한 뜻으로서,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결코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이 「기독교 강요」에 담긴 예정 교리의 핵심이다.
둘째, 칼빈은 그러한 예정교리를 어떻게 확장했는가? 그것은 칼빈이 1559년 「기독교 강요」 최종판에서 예정과 섭리를 제3권 21장부터 24장까지로 확장했다. 제3권 21장 5절의 소제목은 '하나님의 예정과 예지: 이스라엘의 선택'이다. 거기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경건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자 하는 자는 아무도 예정, 즉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생명의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사망을 선고하시는 그 예정을 감히 부정하지 못한다. 우리는 예정을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라고 부르며, 이 작정에 의해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시는지를 스스로 결정하셨다. 이는 모든 사람이 같은 상태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떤 사람을 위해서는 영생이 예정되며 어떤 사람을 위해서는 영원한 저주가 예정되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이 중 어느 한쪽 결말에 이르도록 창조되었으므로, 우리는 그가 생명 또는 사망으로 예정되었다고 말한다."고 되어 있다.
셋째, 이러한 칼빈의 예정론은 이중 예정론인데 과연 이것은 성경적인가?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칼빈의 이중예정론은 처음부터 잘못된 가정에서 시작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멸하기로 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정이 잘못되면 그 위에 세운 모든 것이 잘못될 수밖에 없다. 고로 이중 예정론 위에 세워진 성도의 견인 교리도 처음부터 잘못된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칼빈주의자들은 요한복음 6장 37절과 39절 외에도, 사도행전 13장 48절을 그 증거로 대면서 칼빈주의의 이중 예정론이 성경적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했던 말씀이다.
행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기로 작정해 두신 사람이 믿게 되었다고 하니, 칼빈의 주장처럼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선택한 사람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따진다. 그러나 이 구절은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이방인들도 구원받을 자로 배치된 만큼 믿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여기서 '작정된'(테타그메노이, τεταγμένοι)은 '배치하다, 정하다'라는 뜻의 동사 타소(τάσσω)에 대한 완료 수동 분사다. 결코 이는 하나님께서 이방인 가운데 만세 전에 작정해 두신 자만 구원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예정해 놓은 바, 구원받을 이방인들의 총수가 있는데, 거기에 그날 하나님께서 배정해놓은 만큼 이방인이 구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3.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원래 예정하신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원래의 하나님의 예정이었는가? 그것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는 인간을 향한 만세 전의 예정이고, 둘째는 예정이 있다면 있는 세 가지 예정이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천사가 아니라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상속자가 되게 하겠다고 예정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엡 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 1:3~6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려고 예정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예정은 더 나아가서 이방인들까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데까지 이어진다(엡 3:6). 여기서 '함께'는 공동상속자, 공동지체, 공동 약속참여자가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칼빈은 이러한 예정을 바꾸어,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누구는 구원할 자로, 누구는 멸망할 자로 예정해 놓으셨다고 하는 엉뚱한 구원론을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것은 칼빈의 상상물에 불과한 것이다.
둘째, 만약 하나님의 예정이 있다면 그것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구원 예정에는 민족적인 구원 예정의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이 먼저이고 이방인이 나중이라는 것이다(롬 1:16; 행 1:8). 둘째로,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구원받을 총수가 정해진 채 있다는 것이다(롬 11:25-26).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에는 주로 유대인들 곧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지만 잠시 중단되고 예수님 시대부터 이방인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이방인이 구원받을 숫자가 차면 이제는 다시 남은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아,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뜻이다. 셋째로, 혹시 개인 예정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 구원 예정이 아니라 개인 사역 예정일 뿐이라는 것이다(렘 1:5; 갈 1:15-16). 예를 들어, 구약 시대에 예레미야는 모태에서부터 거룩히 구별된 자로서 열방의 선지자로 세워졌다고 말한다(렘 1:5). 사도 바울도 어머니의 태로부터 하나님께서 그를 택정하시고 불러내셔서 이방인의 사도가 되게 하셨다고 전한다(갈 1:15-16). 그런데 이런 것들 다 개인의 사역을 위한 예정인 것이지,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멸망시키기로 정하신 그러한 예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은 인류 공동체를 향한 예정이며, 개인에게는 사역을 위한 예정만 있을 뿐이다.
4.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성도의 견인 교리는 어떤 교리인가?
성도의 견인 교리를 정확히 알려면 두 가지를 보아야 한다. 첫째는 이 교리가 5대 교리 가운데 어떤 자리에 있는가이고, 둘째는 이 교리의 내용인가 하는 것이다.
첫째, 성도의 견인 교리는 어떤 자리에서 나온 것인가? 성도의 견인교리는 칼빈주의의 5대 교리 가운데 5번째 교리이다. 이는 칼빈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르는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 5대 교리가 생겨났다. 칼빈이 죽은 뒤 1618-1619년의 도르트 회의에서 정리된 이 교리는 전적 타락(全的墮落, 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無條件的選擇, unconditional election), 제한 속죄(制限贖罪, 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총(不可抗力的恩寵, 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이 바로 그것이다. 이 다섯 가지 교리 가운데 칼빈의 이중 예정론을 이어받은 것은 두 번째인 '무조건적 선택' 교리와 다섯 번째인 '성도의 견인' 교리다.
그 가운데 '무조건적 선택 교리'는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무조건적으로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멸하기로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가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따라올 수 있도록 당신의 종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 민족적으로는 이스라엘을 먼저 구원으로 초청하셨고, 나중에는 이방인들을 초청하셨다. 지금은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차고 있는 때다. 그러다가 구원받을 총수로서 이방인들의 수가 차면 남은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고, 그러면 주님이 오실 것이다.
둘째, 성도의 견인 교리란 무엇인가? 이는 하나님께서 한 번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끝까지 받아 자신의 믿음도 굳게 지킬 것이므로, 그가 받은 구원은 영원히 보존된다고 하는 교리다. 한마디로 한 번 구원받으면 어찌하든지 그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선택한 자는 전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타락할 수 없고, 끝까지 확실하고 견고하게 인내하여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주의자들은 진실로 구원받은 자에게는 완전히 타락하거나 멸망받는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5.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성도의 견인 교리는 어떤 함정에 빠지게 하는가?
그렇다면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는 대부분의 칼빈주의자들에게는 대체 어떤 함정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말씀을 바로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함정은 다음과 같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한 번 구원받았으면 그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하나님께서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멸하기로 예정하셨다는 말씀이 성경에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잘 모른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된 사람이 받는 것이므로 한 번 구원받았으면 절대 취소되는 일이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그분의 작정은 변경될 수 없고 그분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으며 그분이 목적하시고 부르신 것은 절대 취소될 수 없으니, 한 번 받은 구원도 절대 취소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하나님의 예정은 천사들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예정으로서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들이자 상속자로 삼으시겠다는 것이었음을 잘 모른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하여 자녀 삼고 상속자 삼으려는 것이었음을 깨닫지 못한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예정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고 하면서 그만 하나님을 폭군으로 만들어, 구원과 멸망을 당신 마음대로 행하시는 분으로 보이게 한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도,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도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자신의 구원은 지켜지고 변함없이 보존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게 된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잘못된 가정을 한 것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사람들에게 주입하려고 성경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까지 만들어 사람을 설득하려 한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만세 전 구원 예정만 믿다가 믿음을 지키지 못하여 구원에서 떨어지는 자도 생기게 된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만세 전 구원 예정만 믿다가 죽을 때에 새 예루살렘 성 밖으로 던져지는 자신을 보고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
그러므로 이 함정은 단지 교리 하나를 잘못 아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말씀을 제대로 모르는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게 하고, 자기가 받은 구원을 안일하게 여기게 하며, 마침내 새 예루살렘 성에서 버려져서 성 밖에서 슬피 울게 만들 것이다. 고로 우리는 교리를 붙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붙들어야 한다.
6. 칼빈주의자들이 성도의 견인의 근거로 드는 성경 구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성도의 견인 교리를 뒷받침해 줄 만한 성경 구절이 무엇인가? 칼빈주의자들은 그러한 성경 구절이 많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이 이 교리의 근거로 드는 구절을 다 찾아보면 그나마 그래도 좀 비슷하다고 보이는 구절은 다섯 구절 정도 된다. 요한복음 10장 27-29절, 로마서 8장 38-39절, 빌립보서 1장 6절, 베드로전서 1장 5절, 요한일서 2장 19절이 그것이다.
첫째, 칼빈주의자들이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는 구절은 바로 요한복음 10장 28절에서 29절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수전절에 예루살렘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서 하신 말씀이다(요 10:22-23).
요 10:27-29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칼빈주의자들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그들을 아버지의 손과 아들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으니,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이 구절의 참뜻은 다음 장에서 헬라어 원문을 통해서 살펴보겠다. 그 내용인즉 칼빈주의자들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왜곡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로마서 8장 38-39절과 빌립보서 1장 6절이다.
롬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그런데 이 두 구절은 모두 바울이 확신한다는 고백의 선언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피조물로도 끊어지지 않으며,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 일을 끝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한다고 말한 것이다. 고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어떤 개인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으니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구원을 잃지 않는다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셋째, 베드로전서 1장 5절이다.
벧전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에 나오는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다(벧전 1:1-2). 그런데 이 말씀에 따르면 보호하심을 받는 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곧 믿음을 통하여 보호하심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믿음을 지키지 않아도 보호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넷째, 요한일서 2장 19절이다.
요일 2: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칼빈주의자들은 이 본문을 가지고, 요한공동체 중에 '그들'이 떠나간 이유는 그들이 처음부터 요한공동체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인데 이는 처음부터 그들이 구원으로 예정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떨어져 나간 그들은 처음부터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은 2장 18절에 보면 '적그리스도들'을 가리키고, 26절에서는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을 가리킨다(요일 2:22). 고로 이 구절은 구원받은 성도가 결코 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지하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들이 교회에 속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7. 요한복음 10장 27-30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렇다면 칼빈주의자들이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요한복음 10장 28-29절의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 원문으로 보면 세 가지가 달라진다. 첫째는 지켜 주시는 대상이 누구이고, 둘째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것이 무엇이며, 셋째는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다.
먼저 필자가 이 말씀을 헬라어 원문에 입각하여, 요한복음 10절 27절부터 30절까지 직역하면 이렇다. "27 나에게 속한 것들인 양들은 내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나도 역시 그것들(양들)을 압니다. 그리고 그것들(양들)은 나를 따릅니다. 28 그리고 나도 역시 그것들(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영생)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시대까지(영원히) 그것들은 스스로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들을 내 손에서부터 [장차] 낚아챌 수 없을 것입니다. 29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채 있는 이런 그것은 모든 것들보다 더 큰 것으로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아버지 손에서부터 낚아채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30 나 자신과 그리고 아버지 곧 우리는 하나입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과연 누구에게 영생을 주시며 끝까지 지켜주시는가? 여기서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시고 지켜 주시는 대상은 바로 주님의 양이 된 자들로서, 그분의 음성을 계속해서 듣고 있고 그분을 계속해서 따라가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요 10:27). 여기서 듣고, 따른다는 동사가 현재인 것을 보면, 이 일은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결코 아니다. 주님의 양은 지금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고 지금도 주님을 따라가고 있는 자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에게 주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그들은 그 시대까지, 곧 영원히 스스로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지켜주는 이유가 그를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정해 둔 사람이라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는 것은 무엇인가? 29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것은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우리말 성경이나 영어 성경 중에는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라고 번역하여 아버지께서 사람들을 아들에게 주신 것처럼 읽히게 번역해 놓았다. 그러나 원문은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채 있는 이런 그것은 모든 것들보다 더 큰 것으로 있다'라고 말한다. 이는 지난 시간에 우리가 보았듯이, 요한복음 6장 37절과 39절에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는 '모든 것'이 결코 사람이 아니었던 것과 똑같은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라오는 양들을 아들이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예수님께 주신 채 계셨던 것이다.
셋째, 누구도 예수님과 아버지의 손에서 양을 빼앗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채 있는 이런 그것은 모든 것들보다 더 큰 것으로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그 양들을 아버지의 손에서 낚아챌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시므로(요 10:30), 아들의 손에서도 아버지의 손에서도 그 양들을 결코 낚아채 갈 수 없는 것이다.
고로 요한복음 10:28-29의 말씀도 역시 만세 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을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내 주시고 그 사람만 끝까지 지켜 주신다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끝까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오는 양들을 아들이 철저히 지키실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것보다 더 큰 것을 주신 채 있다는 뜻이다.
8. 성경은 왜 구원받은 자도 탈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가?
누군가 성경 교리를 만들고 싶은데, 자신이 만들려고 하는 교리에 정반대되는 성경 구절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러면 그것은 자기의 주장일 뿐이라고 알리고, 그것을 교리로 세상에 내놓아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이와 반대되는 논리도 성립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칼빈주의자들을 보라. 그들은 이러한 영적 진리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영적 진리를 이단시한다. 그러나 자기들이 사상누각에 교리를 올려놓았으면 겸손해져야지, 그것을 믿고 따라오지 않는다고 정죄하는 어리석음이 있게 해야 되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에는 이러한 성도의 견인 교리에 정반대되는 말씀도 많이 나온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을 고르라면, 마태복음 24장 13절, 로마서 11장 20-22절, 히브리서 6장 4-8절, 히브리서 10장 26-29절이 바로 그것이다.
마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 11:20-22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히 6:4-8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히 10:26-29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이 말씀들은 사람이 구원을 지켜내려면 한 번 믿었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끝까지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 번 빛을 받고 성령에 참여한 자라도 여전히 타락할 수 있으며,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뒤에도 짐짓 죄를 범한다면 그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고 맹렬한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도의 견인 교리가 성경적이라고 말하기가 곤란하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이 교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을 구원하기로, 어떤 개인을 멸망에 처하도록 예정하셨다는 말씀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성경말씀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다. 이것은 칼빈이 없던 것을 가정하여 만들어 낸 것일 뿐이다.
그럼, 하나님은 누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시고 인내하게 하시는가? 그것은 딱 두 부류다.
첫째,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다. 어떤 환난과 핍박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다(마 24:13; 딤후 4:7-8). 사도 요한이 기록한 주님의 말씀은 이렇다(계 2:10-11; 3:5).
계 2:10-11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는 죽도록 충성하여 이기는 자가 되어야 생명의 관도 받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기는 자가 되어야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는가? 그것은 믿다가도 믿음에서 파선한 자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그러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에베소 성도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는데, 이들이 양심을 버렸고 믿음에 있어서는 파선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딤전 1:19-20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를 수도 있다(딤전 4:1). 그리고 바로의 술객이었던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처럼 마음이 부패하여 믿음에 관하여 버림받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딤후 3:8; 출 7:11). 고로 한 번 믿었다고 해서 그 믿음이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둘째,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는 자다. 예수님께서 처음 천국 복음을 전파하실 때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다(마 4:17).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렇게 말한다(계 22:14).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여기서 '빠는(세탁하는)'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문을 보면, 현재분사로서 '빨고 있는'이라는 뜻이다. 이는 날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빨고 있는 자, 곧 계속해서 회개(悔改, repentance)하는 자가 생명나무에 나아가고 12 진주문들을 통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성도의 견인' 교리, 곧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된 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을 잃지 않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누구를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이 또 영원히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좀 더 양보하더라도, 성도의 견인 교리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바람이며, 성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왜곡에서 비롯된 착각일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경을 왜곡하여 번역한 말씀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곡된 성경 말씀을 왜 믿고 그대로 따라가는가? 그 이유는 바로 세 가지다.
첫째, 예수께서 영생을 주시고 끝까지 지켜 주실 사람은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있으며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는 자이기 때문이다(요 10:27).
둘째, 예수님을 끝까지 믿으며 끝까지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따라오는 자를 구원하실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이미 모든 것을 주신 채 계시고, 그것은 모든 것들보다 더 크기 때문에 아무도 예수님과 아버지의 손에서 낚아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만세 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고 그 사람만 끝까지 지켜 주신다고 말씀을 왜곡해 놓았다. 이는 번역을 잘못한 것이다.
셋째, 지금 믿고 있던 사람이라도 주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면서 주님을 부인하거나, 계속해서 회개하게 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면 하나님께서도 그를 강제로 구원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태복음에서, 히브리서에서, 디모데전후서에서, 요한계시록에서 구원받은 자라도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음을 계속해서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어 이미 구원을 받은 상태에 있더라도, 천국에 들어가기까지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이렇게 말했다.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는 구원받은 성도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구원을 끝까지 이루어 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고로 믿음이란 두려움과 떨림으로 끝까지 인내하여 믿음을 지키고, 지은 죄들을 회개하여 구원을 완성해 가는 것이다.
9. 나오며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해 말씀해 주신 구원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된 자를 구원하신다는 말씀이 아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先行的 恩寵, prevenient grace)에 반응하여 주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주님을 따라오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누구든지 때가 되면 구원의 은총으로 그들을 불러 주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그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주님을 믿고 마음속에 영접하는 것이다.
둘째, 그렇게 구원받아 성령을 받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수호천사를 받았다면, 어떤 어려움과 핍박이 와도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지켜야 한다. 한 번 믿었으면 끝까지 믿음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셋째, 특히 이미 지었던 과거의 죄들을 낱낱이 회개해야 한다. 날마다 옷을 빨아야 한다. 그래야 정결한 처녀가 되어 새 예루살렘에서 진행되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구원받으려면 최종적으로는 우리의 인내와 회개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주님께서도 바로 그런 자를 끝까지 지켜 주시고 결코 내쫓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 자신의 구원의 가장 확실한 근거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 번 믿었으면 끝까지 믿음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죄들은 날마다 회개하여 꼭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10월 18일(일) ·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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