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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20. (화)2026년 교회표어 「시대적인 사명완성을 위해 성전을 짓는 해」 (역대상 28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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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자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마태복음 16:24~25)

마태복음 16:24~25정보배목사2026-07-05(일)조회 1,369읽는 시간 약 26분

설교핵심

이 설교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명자들이 갖추어야 할 본질적인 태도와 그들이 걸어가야 할 고난의 길을 신학적 성찰과 개인적 경험을 담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사명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하며,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심지어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아브라함이나 이사야 같은 성경 속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사명자에게 약속된 영광은 당대의 보상이 아닌 천국의 상급으로 완성되는 것임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청중에게 영적 장자로서의 사명을 일깨우며, 지도자와 협력하여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헌신적인 삶을 살 것을 독려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강의 자료

그림 1 · 슬라이드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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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자의 길과 4가지 결단 The Path of Divine Mission설교 슬라이드 · 26장

1. 들어가며

사람은 우연히 이 땅에 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육체로는 부모의 유전자를 따라 태어나지만, 영으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존재다. 그러므로 인생에는 보냄이 있고, 부르심이 있으며, 그 부르심을 따라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 이 사실을 모르면 신앙생활은 쉽게 흔들린다. 어떤 일을 하다가도 금방 다른 길로 옮겨 가고, 사람의 말에 흔들리며, 고난이 오면 뒤로 물러서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왜 이 시대에, 왜 이 가정에, 왜 이 교회와 말씀 앞에 세우셨는지를 아는 사람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자기 인생이 하늘의 부르심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권면했다(벧후1:10~11). 여기서 ‘부르심’은 헬라어로 클레시스, ‘택하심’은 에클로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목적 있게 불러내신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굳게 한다는 것은 막연한 신앙 감정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리와 길을 확인하고 그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것을 뜻한다.

벧후1:10~11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그리하면 결코 실족하지 아니하리니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이번 말씀에서 다루려는 핵심은 사명자의 길이다. 사명자는 단지 직분을 가진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명자는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 이 땅에 보내셨고, 때가 되어 불러내셨으며, 그분의 경륜을 이루도록 맡기신 일을 감당해야 할 사람이다. 물론 모든 성도에게는 일반적인 사명이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특별한 사명이 있다. 일반 성도는 가족과 주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고, 교회 안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특별한 사명자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회개와 천국복음을 선포하며, 영적 전쟁에서 성도들을 깨우고 이끌어야 한다.

그런데 이 길은 가벼운 길이 아니다. 사명자의 길에는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는 결단이 있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있으며,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고, 필요하다면 목숨까지 내놓는 순종이 있다. 그러므로 사명자의 길은 영광의 길이지만 동시에 십자가의 길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명자가 누구이며, 그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명자는 누구이며 사명은 어떻게 나뉘는가?

사명자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여기서 사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일반 사명이고, 또 하나는 특별히 보냄받은 자에게 주어진 특별 사명이다. 일반 사명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자신이 구원받고, 자기 집과 주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며, 교회 안에서 주어진 섬김을 감당하는 것이다. 특별 사명은 하나님께서 특정한 시대와 상황 속에서 어떤 사람을 구별하여 보내시고, 그를 통해 특별한 말씀과 사역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일반 사명은 주님의 지상명령과 연결된다(행1:8).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모든 성도에게 적용되는 기본 사명이다. 신앙은 자기만 천국 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먼저 믿었다면, 그것은 나를 통해 내 집과 내 주변이 구원받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말이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구약에서 기생 라합은 여리고 성의 멸망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보고 자기 가족을 살리는 통로가 되었다. 신약에서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자기 집과 함께 구원의 길에 들어섰다(행16:31). 고넬료도 자기 집과 가까운 사람들을 모아 베드로의 말씀을 들었다. 이것이 일반 사명의 출발점이다. 믿는 자가 먼저 믿었다는 것은 먼저 책임을 맡았다는 뜻이다.

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러나 성경에는 일반 사명과는 구별되는 특별 사명도 있다. 예레미야는 모태에서 짓기 전부터 하나님께 알려졌고, 배에서 나오기 전에 성별되었으며,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워졌다(렘1:5). 바울도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입고 은혜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고백했다(갈1:15~16). 이러한 부르심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낸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계획하시고 정하신 부르심이다.

렘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갈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같은 모양으로 부름받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성도로서 충성하면 된다. 어떤 이는 말씀을 전해야 한다. 어떤 이는 교회를 섬겨야 한다. 어떤 이는 영적 전쟁의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 부르심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부르심을 모르면 허황된 꿈을 꾸거나, 반대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두려워하여 피하게 된다. 부르심을 아는 사람은 자기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3. 하나님은 사명자를 어떻게 예정하시고 보내시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목적 없이 보내지 않으신다. 육체적으로 사람은 부모의 유전자를 따라 태어난다. 어떤 이는 가르치는 달란트를, 어떤 이는 음악의 달란트를, 어떤 이는 운동의 달란트를, 어떤 이는 섬김의 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사명은 육체의 달란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영적 사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부르심과 연결된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에, 어느 나라에, 어느 가문에, 어떤 성별로 보낼 것인지를 아시고 보내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정과 고정을 구별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어떤 사명으로 보내실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반드시 그 길을 끝까지 간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하나님께서 뜻을 두고 보내셨더라도 사람이 게으르고, 회개하지 않고, 고난을 싫어하고, 세상과 타협하면 그 사명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처음에는 약하고 부족해도 회개하고 순종하며 끝까지 주님을 붙들면 하나님께서 그를 더 귀하게 쓰실 수 있다.

특별 사명자에게는 대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은사와 달란트가 주어진다. 사무엘은 기도의 어머니 한나의 태에서 태어났다. 하나님께서 쓰실 종을 보내실 때는 기도하는 가정, 믿음의 환경, 혹은 특별한 영적 이유를 가진 가정을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반드시 좋은 환경에만 사람을 보내시는 것은 아니다. 우상숭배가 깊은 가문에도 사람을 보내실 수 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자기 가문과 조상의 죄를 회개하고, 악한 영의 속박에서 벗어나며, 많은 사람을 깨우는 특별한 통로가 될 수 있다.

예레미야와 이사야와 바울의 사례는 특별 사명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욕망으로 사명자가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때가 되어 부르셨다. 다만 그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준비되어야 한다. 말씀을 배워야 하고, 회개해야 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부르심이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부르심은 씨앗이고, 순종은 그 씨앗을 열매 맺게 하는 길이다.

이 점에서 나실인의 원리도 중요하다. 히브리어 나지르는 ‘구별된 자’라는 뜻을 갖는다. 어떤 사람은 태에서부터 나실인처럼 구별되었고, 어떤 사람은 자원하여 구별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원하여 걷는 길은 더 큰 각오가 필요하다. 예정된 사명이 없는데도 사명자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면, 그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은 먼저 자기 부르심을 분별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 부르심에 합당한 준비와 헌신을 해야 한다.

사명자의 길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자기 상상과 하나님의 부르심을 혼동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크게 쓰실 것이다”라는 말만 붙들고 준비하지 않는다. 말씀도 배우지 않고, 회개도 하지 않고, 질서도 따르지 않는다. 이것은 사명이 아니라 자기 욕망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반드시 다듬어진다. 하나님은 쓰시기 전에 낮추시고, 회개시키시고, 기다리게 하시고, 고난을 통과하게 하신다.

4. 일반 성도에게 맡겨진 사명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모든 성도에게는 일반 사명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구원받고 자기 집을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가볍게 지나칠 말씀이 아니다(행16:31). 먼저 믿은 자는 집안의 신앙적 장자가 되어야 한다. 혈통적 장자가 따로 있을 수 있지만, 영적으로 먼저 믿은 자가 그 집의 문을 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족 구원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가족 구원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먼저 믿은 사람이 정도의 길을 걸어야 한다. 주일을 가볍게 여기고,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세상과 타협하면서 가족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설득력이 없다. 가족은 먼저 믿은 자의 삶을 본다. 처음에는 반대할 수 있다.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한 사람의 믿음의 지조와 일관성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먼저 믿은 사람은 뒤로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일반 성도의 사명은 교회 안에서도 이어진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각 지체에게는 맡겨진 기능이 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찬양하고, 어떤 사람은 섬기고, 어떤 사람은 물질로 돕고, 어떤 사람은 전도하고, 어떤 사람은 성도를 돌본다. 사명은 모두 강단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지체의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도 사명이다.

특별 사명자를 돕는 것도 일반 성도가 받을 수 있는 귀한 사명이다. 주께서는 선지자를 선지자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자가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마10:40~42).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과 함께 길을 걸어가는 자에게도 상이 있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사역을 직접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을 알아보고, 기도와 섬김과 물질과 순종으로 협력하면 그 일의 열매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

마10:40~42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일반 성도는 “나는 특별 사명자가 아니니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자리에서 충성해야 한다.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세우고, 복음의 길을 돕고, 보냄받은 종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 일반 성도의 길이다. 이 길을 충성스럽게 걷는 자에게도 하늘의 상이 있다.

5. 사명자는 사랑하는 것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사명자의 길에서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도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내려놓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사명자의 길은 곧 막히게 된다. 사명자는 자기 취미, 자기 꿈, 자기 직업, 자기 명예, 자기 가족까지도 주님의 손에 올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가족을 미워하라는 뜻이 아니다. 가족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에게 현세에서도 백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막10:29~30). 여기서 ‘버리다’라는 말은 헬라어 아피에미와 관련하여 ‘놓아두다, 떠나보내다, 내려놓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사명자의 내려놓음은 무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주님께 최종 소유권을 넘겨 드리는 믿음이다.

막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베드로도 가족이 있었다. 장모가 있었다. 그는 가장이었다. 그러나 주께서 부르셨을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명자의 길은 언제나 “나의 것”과 “주의 것” 사이에서 결정을 요구한다.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아무리 소중해도 주님께서 내려놓으라고 하시면 내려놓아야 한다. 사명자는 자기 생애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오늘날 사명자의 길에서도 같은 질문이 온다. 좋아하는 일, 즐기는 일, 안정된 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길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자신이 원하던 직업이나 꿈이 있어도 주님께서 다른 길로 부르시면 따를 수 있는가? 자기 자녀와 가족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사명에서 물러서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에 정직해야 한다.

그렇다고 가족을 버려야 사명자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길 때문에 가족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면 사명이 무너진다. 사명자는 가족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길을 먼저 걸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사용하여 가족까지도 구원의 길로 이끄신다. 신앙의 장자는 이렇게 서야 한다.

6. 사명자는 하나님의 때를 끝까지 기다릴 수 있는가?

사명자의 길에서 두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때가 더디 와도 기다릴 수 있는가? 사람은 빨리 열매를 보고 싶어 한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면 곧바로 길이 열리고, 사람들이 알아주고, 사역이 크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의 사명자들은 대부분 기다림의 시간을 통과했다. 하나님의 때는 사람의 조급함에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 주실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창12:1~3). 그러나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하나님은 그에게 큰 민족과 땅을 약속하셨지만, 그의 생전에는 그 약속의 완성을 다 보지 못했다.

창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히브리서는 믿음의 조상들이 약속을 받았으나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고 말한다(히11:13). 이것이 사명자의 믿음이다. 사명자는 자기 시대에 모든 결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 땅에서 다 보지 못해도 하늘에서 보게 된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즉각적인 성공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들어야 한다.

히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다윗도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뒤 곧장 왕궁에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사울에게 쫓기며 긴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은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다윗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웠고, 원수에게 보복하지 않는 법을 배웠으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사명자의 기다림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릇을 빚으시는 과정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손으로 일을 이루려 한다. 그러면 사명이 오염된다. 사울은 기다리지 못해 제사장의 영역을 침범했고, 결국 왕의 길에서 무너졌다. 그러나 다윗은 기회가 있어도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두려워했다. 이것이 기다림의 영성이다. 사명자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기다림 속에서도 회개와 준비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말씀을 배우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게 준비된 사람에게 하나님의 카이로스, 곧 정하신 때가 온다. 그때 사명자는 흔들림 없이 들어가게 된다.

7. 사명자는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가?

사명자의 길에서 세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 사명자는 사람들에게 늘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다. 참된 말씀은 사람의 죄를 드러내고, 회개를 촉구하며, 세상의 거짓과 악한 영의 속임을 폭로한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반드시 반대와 핍박을 만난다. 고난이 없는 사명은 거의 없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다가 바스훌에게 맞고 목에 고랑이 채워졌다(렘20:1~2).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환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조롱하고 때리고 가두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멈추지 않았다. 말씀은 그의 속에서 불붙는 것 같아서 참을 수 없었다. 이것이 사명자의 마음이다.

렘20:1~2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가 이 일들을 예언함을 들은지라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윗문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

바울도 마찬가지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고, 돌에 맞고, 파선하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그는 자기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고백했다(행20:24). 왜냐하면 그에게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난은 사명자를 검증한다. 평안할 때는 누구나 사명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손해가 오고, 오해가 오고, 가족의 반대가 오고, 몸의 고통이 오고, 사람들이 떠나갈 때도 그 길을 가는지는 다른 문제다. 고난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부르심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는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더 크게 본다.

여기서 영적 전쟁도 중요하다. 사명자의 길에는 악한 영들의 공격이 있다. 귀신들은 사명을 막기 위해 두려움, 낙심, 분노, 혈기, 음란, 시기, 질투, 교만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악한 영에게 틈을 주고, 사명은 흔들린다. 회개는 사명자의 방어선이다. 예수의 피로 속죄를 받고, 자백하는 회개로 정결해지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사명자는 사람을 원수로 삼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다(엡6:12).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분별해야 한다. 사람을 미워하면 사명자는 곧 무너진다. 악한 영을 대적하되 사람은 살려야 한다. 이것이 다윗을 통해 배우는 전쟁의 길이며, 예수께서 완성하신 영적 전쟁의 길이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8. 사명자는 주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가?

사명자의 길에서 네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주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가? 이것은 가장 마지막 질문이자 가장 깊은 질문이다. 사명자의 길은 말로만 가는 길이 아니다. 마지막에는 생명을 요구받을 수 있다. 주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다(마16:24~25). 여기서 자기 부인은 자기 욕망의 포기가 아니라 자기 주권의 포기다. “내가 주인이다”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이 주인이시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마16: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질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했다. 그는 법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것을 지켰다. 이사야는 전승에 따르면 톱으로 켜 죽임을 당한 선지자로 알려져 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로 죽임을 당한 이들이 있었다고 말한다(히11:37). 사명자의 길에는 이런 각오가 요구된다.

히11: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물론 모든 사명자가 실제로 순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사명자는 순교자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없으면 작은 손해 앞에서도 무너진다. 사람의 비난 앞에서 물러서고, 물질의 손해 앞에서 타협하며, 가족의 반대 앞에서 믿음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미리 마음을 정해야 한다. 주님이 원하시면 어떤 손해도 감당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결단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아야 가능하다.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로 오셨고, 자기 피를 흘려 우리를 사셨다. 주님은 먼저 자기 목숨을 내놓으셨다. 그러므로 사명자가 자기 목숨을 주께 드리는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먼저 받은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나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을 수 있는 것이다.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은 오늘의 삶에서도 실천된다. 자기 편안함을 내려놓고, 말씀을 붙들고, 회개를 계속하고, 맡겨진 영혼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작은 순교의 삶이다. 매일 자기 뜻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이 사명자의 길이다. 그 길을 걸을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많은 사람을 살리신다.

또한 목숨을 내놓는 사명은 반드시 천국의 상과 연결된다. 주께서는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겠다고 하셨다(계22:12).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위가 구원의 공로라는 뜻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주님께서 보신다는 뜻이다. 믿음이 참되면 순종으로 나타나고, 사명이 참되면 충성으로 증명된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자기 행위를 자랑하지 않아야 하지만, 자기 행위를 가볍게 여기지도 않아야 한다.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이 사명자의 길은 혼자 걷는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이다.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로 오셨고, 아들로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으며, 부활 승천 후에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돕고 이끄신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자기 힘만 바라보면 쓰러지지만, 주님의 이름과 성령의 도우심을 붙들면 끝까지 갈 수 있다. 예수의 이름은 단지 종교적 구호가 아니다.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이름이며, 영적 전쟁에서 악한 영을 물리치는 전능자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마지막까지 충성해야 한다. 바울은 주 안에서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알라고 했다(고전15:58). 사명자는 당장 보이는 열매가 적어도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이 땅에서 박수를 받지 못해도 하늘은 기록하고 있으며,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주님은 알고 계신다. 사명자의 길에서 가장 큰 위로는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주님께서 기억하신다는 사실이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9. 나오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명자가 누구이며, 그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사명에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일반 사명과 하나님께서 특정한 시대와 목적을 위해 주신 특별 사명이 있다. 일반 성도는 자신과 자기 집을 구원으로 이끌고, 교회를 섬기며, 보냄받은 종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도와야 한다. 특별 사명자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말씀과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며, 영적 전쟁에서 성도들을 깨우고 이끌어야 한다.

사명자는 사랑하는 것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가족과 전토와 자기 꿈까지 주님의 손에 올려놓아야 한다. 사명자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약속이 당장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잡아야 한다. 사명자는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반대와 조롱과 핍박이 와도 부르심을 굳게 해야 한다. 또한 사명자는 주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를 가져야 한다. 주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셨기 때문이다.

성도는 자기 부르심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특별 사명자가 아니어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자기 집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에서 맡겨진 일을 섬기며, 하나님의 종과 함께 복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 길에도 상이 있다. 선지자를 선지자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또한 사명자는 회개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회개가 없으면 사명이 오염되고, 악한 영의 공격에 흔들리며, 자기 뜻과 하나님의 뜻을 혼동하게 된다. 회개하는 자는 깨끗해지고, 깨끗해진 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는 자기 부르심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명자의 길은 말씀과 회개와 순종으로 걸어가야 한다.

이제 우리는 허황된 영광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영광의 길에는 십자가가 있고, 왕권의 길에는 영적 전쟁이 있으며, 천국의 상에는 이 땅에서의 충성이 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부르심을 굳게 해야 한다. 일반 사명자는 일반 사명에 충성해야 하고, 특별 사명자는 특별 사명에 합당한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하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여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7월 05일(일)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