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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7. 13. (월)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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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UWJR1BjwG2w
날짜 2026-07-12
본문말씀 이사야 61:1~3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6-07-12(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기독론(142)] 참된 희년의 성취자로서 이 땅에 오실 예수님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주는 교훈(이사야 6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UWJR1BjwG2w

 

 
1. 들어가며

  성경의 구속사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고, 빼앗긴 것을 되돌려 주며, 종이 된 자를 자유롭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다. 인간은 창조될 때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으며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살도록 지음받았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죄가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사망이 왕 노릇하기 시작했으며,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 아래에서 인류가 종노릇하게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자유와 기업을 잃었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것을 되찾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을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영이신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과 아기의 신분으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은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고 피 흘려 죽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와 같은 혈과 육을 취하여 우리의 친족이 되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단지 “죽기 위한 몸을 입으신 사건”으로만 볼 수 없게 한다. 주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실 속죄제물이 되셨고, 동시에 잃어버린 자유와 기업과 이름을 회복시킬 친족 구속자, 곧 고엘이 되셨다.

  이 비밀을 이해하려면 구약의 희년 제도와 기업 무름의 법을 함께 보아야 한다. 레위기의 희년은 종을 풀어 주고, 팔린 기업을 원래 가문으로 돌려주며, 땅을 쉬게 하는 하나님의 리셋이었다. 룻기의 보아스는 값을 치르고 엘리멜렉 집안의 기업과 이름을 회복한 고엘이었다. 이사야는 장차 기름부음 받은 이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바로 그 예언이 자신에게서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셨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구원자와 구속자와 고엘이 어떻게 다르며, 한 분 하나님께서 왜 사람이 되셨고, 예수께서 참된 희년의 성취자로서 자유와 기업과 영원한 안식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구원자·구속자·고엘은 어떻게 다른가?

  이사야는 여호와를 “구원자”와 “구속자”라고 함께 부른다(사 60:16). 우리말에서는 두 말이 비슷하게 들리지만 히브리어의 초점은 다르다. “구원하다”라는 동사는 ‘야샤’(יָשַׁע)이며, 여기에서 구원자 또는 구출자를 뜻하는 ‘모쉬아’(מוֹשִׁיעַ)가 나온다. 야샤는 위험과 죽음과 압제 속에 빠진 자를 건져 내는 행위를 가리킨다.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자를 끌어 올리고, 적의 손에 붙잡힌 자를 구출하며, 패망의 자리에서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야샤의 그림이다.

사 60:16 네가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 젖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반면 “구속하다”라는 동사는 ‘가알’(גָּאַל)이다. 이 동사의 분사형이자 명사형인 ‘고엘’(גֹּאֵל)은 값을 지불하여 친족의 잃어버린 소유와 자유와 이름을 되찾아 주는 사람을 뜻한다. 고엘은 아무 관계도 없는 제삼자가 아니다. 그는 가까운 친족으로서 책임과 권리를 가지고 개입한다. 친족이 가난하여 땅을 팔았을 때 그 땅을 되사고, 친족이 종이 되었을 때 속전을 지불하여 풀어 주며, 억울하게 죽임당했을 때 가문의 정의를 세우는 사람이 고엘이다. 그러므로 구원자가 “건져 내는 분”을 강조한다면, 고엘은 “값을 치르고 자기 친족의 것을 회복하는 분”을 강조한다.

  신약은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을 위한 ‘뤼트론’(λύτρον), 곧 속전으로 주셨다고 말한다(마 20:28). 뤼트론은 종이나 포로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치르는 몸값을 뜻한다. 디모데전서 2장 6절의 ‘안틸뤼트론’(ἀντίλυτρον)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상응하는 값을 내어 준다는 뜻을 더욱 분명히 한다. 예수께서 내어 주신 속전은 금이나 은이 아니라 죄 없으신 자신의 생명이었다. 그분은 죄의 삯인 사망을 대신 담당하셨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피값을 지불하셨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딤전 2:5~6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멸망에서 건져 내시는 구원자이시며, 자신의 생명을 속전으로 내어 주신 구속자이시고, 우리와 같은 혈과 육을 취하여 잃어버린 기업을 되찾아 주신 고엘이시다. 세 개념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하나의 구원 사건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여 준다. 구원은 위험에서의 건짐을 말하고, 구속은 값을 치른 해방을 말하며, 고엘은 친족이 되어 책임지고 회복시키는 언약적 사랑을 말한다.

 

 

3. 한 분 하나님은 왜 우리의 친족이 되셨는가?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명령 한마디로 마귀를 심판하고 인간을 구출하실 수 있다. 그런데도 한 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배고픔과 피곤과 눈물과 고통을 경험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이 자신의 말씀과 공의와 율법을 폐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으므로,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죄 없는 생명의 피가 요구되었다. 영이신 하나님은 피 흘릴 수 없으시므로 아들의 신분으로 육신을 입으셨다.

  그러나 성육신에는 한 가지 목적이 더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고엘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과 실제로 연대하는 친족이 되어야 했다. 히브리서는 자녀들이 혈과 육에 속하였으므로 예수께서도 혈과 육을 함께 가지셨다고 말한다. 그분은 죽음을 통하여 사망의 세력을 가진 마귀를 무력하게 하시고, 죽기를 무서워하여 평생 종노릇하던 자들을 놓아주셨다(히 2:14~17).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사건은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자리까지 낮아지셔서 우리의 형제가 되어 주신 사건이다.

히 2:14~17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님은 서로 분리된 두 하나님이 아니다. 이사야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라고 선포한 바로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따로 보내어 자신은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친히 아들의 신분으로 오셔서 자기 백성의 죄와 죽음을 담당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구속은 타인의 희생을 요구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내어 주신 구원이다.

  고엘은 친족의 형편을 밖에서 구경하지 않는다. 그의 빚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의 종살이를 자신의 수치로 여기며, 그의 끊어진 이름을 다시 세우기 위해 값을 치른다. 예수께서도 우리의 죄를 멀리서 관찰하지 않으셨다. 죄는 없으셨지만 죄인의 자리에 서셨고, 저주받은 자의 죽음을 담당하셨으며, 사망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죄가 없었으므로 사망이 그분을 붙잡아 둘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부활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고, 자신과 연합한 자들에게 생명과 부활의 길을 여셨다.

  이것이 친족 구속자의 사랑이다. 구약이 말하는 ‘헤세드’(חֶסֶד)는 단순한 감정적 호감이 아니라 언약 관계 안에서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과 자비와 신실함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람의 친족이 되어 값을 치르고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셨다. 성육신은 헤세드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한 사건이며, 십자가는 그 언약적 사랑이 지불한 속전이다.

 

 

4. 보아스는 어떻게 예수님의 고엘을 예표하는가?

  룻기는 한 가정의 비극과 회복을 통하여 고엘의 역할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엘리멜렉은 흉년을 피하여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이 모두 죽었고,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았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 할 때 룻은 자기 백성과 신들을 버리고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룻의 선택은 편안함보다 참하나님을 택한 믿음의 결단이었다.

룻 1:16~17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은 나오미를 봉양하기 위해 이삭을 주웠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다. 보아스는 룻이 부모와 고국을 떠나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온 사실을 들었다. 그는 룻을 단지 불쌍한 이방 여인으로 보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온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친절은 감정적 동정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 안에서 책임을 지려는 헤세드였다.

룻 2:11~12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문제는 나오미가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아야 할 형편에 놓였다는 데 있었다. 율법에 따르면 가난하여 팔린 토지는 가까운 친족이 값을 치르고 무를 수 있었다.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먼저 있었지만, 그는 그 기업을 무를 경우 자기 기업에 손해가 생길 것을 염려하여 권리를 포기했다. 그때 보아스는 성문에서 장로들을 증인으로 세우고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속한 모든 것을 나오미에게서 사고, 말론의 아내 룻을 아내로 맞아 죽은 자의 이름을 그의 기업 위에 세우겠다고 선언했다(룻 4:9~10).

룻 4:9~10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보아스는 값을 지불했고, 기업을 회복했으며, 룻을 자기 집으로 받아들였고, 끊어질 가문의 이름을 다시 이어 주었다. 그에게서 태어난 오벳은 혈통과 족보상 보아스의 아들이지만, 동시에 엘리멜렉과 말론의 가문과 기업을 이어 주는 역할을 했다. 그 오벳에게서 이새가 나고, 이새에게서 다윗이 나왔으며, 다윗의 계보를 따라 예수께서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여인 룻을 메시아의 족보 안에 넣으심으로 믿음으로 여호와의 날개 아래 들어오는 자가 언약의 기업에 참여하게 됨을 보여 주셨다.

  보아스는 예수님의 완전한 실체가 아니라 예표다. 보아스는 자기 재산으로 한 가정의 기업을 무렀지만,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로 모든 족속 가운데서 사람들을 사셨다. 보아스는 룻을 자기 집에 받아들였지만, 예수께서는 죄인이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셨다. 보아스는 끊어질 이름을 이스라엘 족보 안에 세웠지만, 예수께서는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밖에 없던 우리에게 새 이름과 영원한 신분을 주셨다. 그러므로 룻기는 단순한 아름다운 결혼 이야기가 아니라, 장차 오실 친족 구속자의 사랑과 책임과 값을 보여 주는 구속사의 책이다.

 

 

5. 희년이 회복하는 세 가지는 무엇인가?

  희년은 레위기 25장에 규정된 이스라엘의 특별한 해다. 이스라엘은 여섯 해 동안 밭을 갈고 포도원을 가꾸었지만 일곱째 해에는 땅을 쉬게 해야 했다. 이러한 안식년을 일곱 번 계수한 뒤,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온 땅에 자유를 공포해야 했다. 희년을 뜻하는 히브리어 ‘요벨’(יוֹבֵל)은 뿔나팔과 관련된 말이다. 대속죄일에 요벨의 나팔이 울리면 새로운 자유와 회복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레 25:8~10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희년에 선포되는 자유는 히브리어로 ‘드로르’(דְּרוֹר)다. 이 말은 억눌린 자를 풀어 보내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해방을 뜻한다. 희년은 추상적인 기쁨의 해가 아니었다. 종이 된 사람이 가족에게 돌아가고, 팔린 땅이 본래의 가문으로 돌아가며, 땅이 사람의 탐욕스러운 경작에서 벗어나 안식하는 실제적인 회복의 해였다.

  첫째, 희년은 종을 해방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구속으로 애굽의 종살이에서 나온 사람들이므로, 동족을 영원한 노예로 소유할 수 없었다. 가난 때문에 몸을 팔아 종이 되었더라도 희년이 오면 가족에게 돌아가야 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사람을 다른 인간이 영구히 지배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영적으로 보면 죄와 사망과 마귀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의 영원한 주인이 될 수 없다.

  둘째, 희년은 기업을 회복했다. 이스라엘의 토지는 여호와의 것이었고, 각 지파와 가문은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땅을 기업으로 맡았다. 가난하여 토지를 팔 수는 있었지만 영구히 팔 수는 없었다. 가까운 친족이 중간에 무르거나 희년이 되면 원래 가문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므로 부자가 돈으로 땅을 끝없이 사들여 다른 가문의 기업을 영구히 삼키는 일이 허용되지 않았다(레 25:23~24).

레 25:23~24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셋째, 희년은 땅에 안식을 주었다. 희년에는 파종하지 않고 스스로 난 것을 자기 소유처럼 거두지 않아야 했다. 사람은 경작과 소유를 잠시 멈추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분임을 믿어야 했다. 이것은 땅을 혹사시키지 않는 농경 규정인 동시에, 생존과 번영이 인간의 노동만으로 이루어진다는 교만을 꺾는 믿음의 훈련이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전국적으로 희년을 충실히 시행했다는 사례를 뚜렷하게 기록하지 않는다. 그만큼 탐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공급을 신뢰하는 일은 어려웠다.

  희년의 세 회복은 모두 소유권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사람도 하나님의 것이며, 시간과 소출도 하나님의 것이다. 인간은 잠시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다. 희년은 부자의 것을 임의로 빼앗는 제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이었던 자유와 기업과 안식을 하나님의 질서대로 되돌려 놓는 제도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지키기 어려워한 이 희년의 약속을 장차 친히 성취하시기 위해 율법 속에 미리 기록해 두셨다.

 

 

6. 이사야의 희년 예언은 예수님께 어떻게 성취됐는가?

  이사야 61장은 장차 여호와의 영으로 기름부음 받은 이가 나타나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선포한다. 여기서 “은혜의 해”는 레위기의 희년을 가리키는 예언적 표현이다. 희년에 울렸던 자유의 나팔이 장차 메시아의 입술을 통하여 영적 실체로 선포될 것을 보여 준다.

사 61:1~3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께서는 공생애 초기에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이 말씀을 읽으셨다. 그리고 두루마리를 말아 맡은 자에게 주신 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선언하셨다(눅 4:18~21). 예수님은 희년을 설명한 율법학자가 아니라 희년을 이루기 위해 오신 성취자다. 그분이 오심으로 구약의 요벨 나팔이 가리키던 실체가 역사 안에 들어왔다.

눅 4:18~21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누가복음에서 자유와 놓임을 뜻하는 단어는 ‘아페시스’(ἄφεσις)다. 아페시스는 포로의 석방과 빚의 면제뿐 아니라 죄의 용서를 뜻한다. 이것은 희년의 해방과 복음의 죄 사함이 하나의 뿌리에서 만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예수께서는 로마의 감옥 문만 여는 정치적 해방자로 오신 것이 아니다. 죄 때문에 마귀에게 틈을 내주고 사망의 권세 아래 갇힌 사람을 죄 사함으로 풀어 주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의 희년 사역은 세 방향으로 나타난다. 첫째, 말씀과 복음으로 영적 눈을 열어 자신이 누구에게 속했는지 깨닫게 하신다. 둘째, 십자가의 피로 죄값을 담당하여 정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놓아주신다. 셋째,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천국의 기업을 준비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참된 희년은 단지 빚을 없애고 경제 구조를 다시 짜는 사회 제도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 존재 전체가 죄와 사망의 통치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통치로 옮겨지는 구원의 사건이다.

  이사야는 희년의 성취자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했다. 여기서 가난은 물질적 궁핍만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깨달은 심령의 가난, 죄와 저주와 억압 아래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실존적 가난까지 포함한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자에게 “너의 포로 상태가 끝날 수 있고, 잃어버린 기업이 회복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가족에게 돌아갈 길이 열렸다”는 좋은 소식을 전하신다.

  또한 이사야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함께 말한다. 희년의 복음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영원히 무조건 연장되지는 않는다. 예수님의 초림은 은혜의 문을 열었고, 다시 오심은 회개하지 않은 죄와 마귀의 세력을 심판한다. 종말론적으로 희년은 재림과 최후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된다. 지금은 고엘이 값을 지불하고 자유를 선포하는 은혜의 때이므로, 사람은 그 부르심을 듣고 믿음과 회개로 응답해야 한다.

 

 

7. 대속죄일과 희년은 왜 회개·정결과 연결되는가?

  희년의 나팔은 민간 달력의 첫날이나 추수 축제 때 울리지 않았다. 일곱째 달 열흘인 대속죄일에 울렸다. 이것은 자유와 기업의 회복이 속죄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죄가 해결되지 않은 채 주어지는 자유는 오래가지 못한다. 죄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악한 영은 다시 틈을 얻고, 사람은 다시 정죄와 속박과 파괴의 자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자신과 백성과 성소를 위하여 속죄 의식을 행했다. 그날에는 제물의 피가 지성소까지 들어갔고, 이스라엘의 모든 죄와 부정이 처리되었다. 레위기 16장은 속죄와 정결을 함께 말한다. 속죄는 하나님 앞에서 죄값이 처리되는 측면이고, 정결은 죄로 말미암아 사람과 공동체와 성소에 묻은 더러움이 제거되는 측면이다(레 16:30).

레 16:30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예수께서는 단번에 자신을 드려 영원한 속죄의 근거를 마련하셨다. 그분의 피는 다시 흘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피의 효력을 실제 삶에 적용받기 위해 성도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구체적으로 자백해야 한다. 요한일서는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예수의 피가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며, 죄를 자백할 때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한다(요일 1:7~9).

요일 1:7~9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하는 회개는 막연히 “나는 죄인이다”라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이 지은 죄와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우상숭배의 죄를 성경의 빛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자백하며,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의 통로를 닫는 회개다. 죄는 악한 영에게 합법적 틈을 제공하지만, 회개는 그 권리를 무효화한다. 회개가 진행될수록 더러운 영의 영향이 제거되고 성령께서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더 온전히 다스리게 된다.

  여기서 순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사람이 회개를 완벽히 마친 뒤에야 예수께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죄인을 부르고, 사람은 예수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의 여정에 들어선다. 그 후에는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돌이키며 실제적인 정결을 이루어 가야 한다. 칭의를 구원의 완성으로 오해하여 회개를 중단해서도 안 되고, 자기 회개 행위를 구원의 값을 치르는 공로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속전은 오직 예수께서 지불하셨고, 회개는 그 속전의 효력을 받아 누리는 믿음의 응답이다.

  희년의 나팔이 대속죄일에 울렸다는 사실은 “회개 없는 번영”과 “정결 없는 자유”가 성경적 희년이 아님을 가르친다. 물질을 많이 소유하고 병이 잠시 나았더라도 죄와 악한 영의 지배가 계속된다면 참된 자유라고 할 수 없다. 반대로 외적 형편이 아직 완전히 바뀌지 않았더라도, 죄를 자백하고 성령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와 마귀의 권리를 끊어 가고 있다면 희년의 능력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참된 희년은 먼저 영과 혼을 자유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육체와 관계와 물질의 영역까지 회복을 확장한다.

  성도는 회개를 일회적 행사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육체를 입고 세상에 사는 동안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죄를 지을 수 있고, 분노와 음란과 탐욕과 교만과 미움이 다시 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고, 죄를 자백하며, 예수의 피로 깨끗함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회개가 희년을 사는 사람의 호흡이며, 고엘이신 예수께서 주신 자유를 지키는 길이다.

 

 

8. 참된 희년은 성도의 현재와 영원에 무엇을 주는가?

  예수께서 성취하신 희년은 성도의 현재 삶과 영원한 미래를 함께 바꾼다. 그 첫 번째 열매는 신분의 변화다. 죄 아래 있던 사람은 종의 영을 받은 존재였지만, 그리스도의 속전으로 구속받은 사람은 양자의 영을 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 종은 주인의 집에서 영원히 거할 권리가 없지만 아들은 상속자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단지 감옥에서 꺼내 놓고 떠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상속에 참여하게 하셨다(롬 8:15~17).

롬 8:15~17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두 번째 열매는 소유관의 변화다. 희년은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선포한다. 성도는 집과 토지와 돈과 재능을 “영원한 내 것”으로 움켜쥐지 않고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많이 가진 사람은 교만과 탐욕을 경계하고, 적게 가진 사람은 가난이 자신의 영원한 신분이라고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므로 부와 가난은 절대적 운명이 아니며, 그분은 필요에 따라 공급하시고 옮기시고 회복하실 수 있다.

  세 번째 열매는 저주의 영속성에 대한 거절이다. 가난과 질병과 실패와 우상숭배의 되물림이 오랫동안 한 가문을 붙들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고엘이신 예수보다 강한 영원한 주인은 될 수 없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고, 회개하는 자에게 악한 영의 권세를 끊을 길을 여셨다. 성도는 현재의 형편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죄의 통로를 찾아 회개하며,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노동과 섬김으로 삶을 새롭게 세워 가야 한다.

  이 말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 즉시 물질적 부자가 되고 모든 질병이 곧바로 사라진다는 기계적 공식을 뜻하지 않는다. 성경의 희년은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선포하며, 회복의 방식과 시기 역시 하나님께 속해 있다. 어떤 사람은 이 땅에서 건강과 물질과 관계의 놀라운 회복을 경험하고, 어떤 사람은 고난 가운데서도 죄와 두려움의 지배에서 먼저 자유롭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가난과 질병과 죽음이 성도의 영원한 결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희년은 부활과 천국에서 완전해진다.

  네 번째 열매는 사명의 회복이다. 기업은 단지 땅이나 재산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부르심과 천국의 지위와 상급도 영적 기업이다. 마귀는 죄와 낙심과 미혹을 통하여 성도가 자기 사명을 포기하게 만들지만, 고엘이신 예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다시 일으켜 본래의 부르심으로 돌아가게 하신다. 그러므로 희년을 믿는 사람은 과거의 실패만 바라보지 않고, 남은 시간에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다섯 번째 열매는 영원한 안식에 대한 소망이다. 이 땅의 안식년과 희년은 잠시 동안만 지속되었지만, 예수께서 주시는 안식은 천국에서 영원히 계속된다. 새 예루살렘에는 사망도 애통도 곡하는 것도 아픈 것도 다시 있지 않으며, 마귀와 귀신의 침입도 없다. 성도는 그곳에서 종의 두려움이 아니라 자녀의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집과 기업을 누린다(계 21:3~4).

계 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러므로 성도는 현재의 회복만을 희년의 전부로 삼지 말아야 한다. 건강과 물질의 축복을 구하되 그것을 천국보다 앞세우지 않아야 하며,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하게 되더라도 자기만을 위해 쌓아 두지 말고 복음과 구제와 교회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 희년의 부요는 소유를 우상으로 만드는 부요가 아니라, 주신 분께 기쁘게 돌려드릴 수 있는 자유로운 부요다. 참된 희년을 누리는 사람은 “땅도, 물질도, 건강도, 사명도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며 청지기로 살아간다.

  마지막으로 희년은 한 분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주인이심을 선포한다. 마귀는 불법적으로 사람을 속여 종으로 만들었지만, 예수께서는 합법적인 속전과 승리의 부활로 그 권세를 깨뜨리셨다. 이제 성도는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예수의 피로 값 주고 산 자는 세상과 죄와 귀신에게 자신을 다시 내어주지 않고, 말씀과 회개와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고엘이신 예수만 따라가야 한다. 그 길의 끝에는 잃어버린 에덴을 넘어서는 새 예루살렘의 영원한 기업이 기다리고 있다.

 

 

9. 나오며

  지금까지 구원자와 구속자와 고엘의 차이,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우리의 친족이 되신 이유, 보아스가 보여 준 기업 무름의 모형, 희년이 회복하는 자유와 기업과 안식,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된 과정, 대속죄일과 회개와 정결의 관계, 그리고 참된 희년이 성도의 현재와 영원에 주는 복을 살펴보았다.

  성도는 예수님을 단지 위기에서 한 번 건져 주는 분으로만 알아서는 안 되고, 자신의 생명을 속전으로 지불하여 우리를 사신 구속자요 우리의 잃어버린 기업과 이름을 되찾아 주는 고엘로 알아야 한다. 또한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기에 친히 혈과 육을 취하고 형제의 자리까지 낮아지셨는지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성도는 모든 땅과 물질과 재능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청지기로 살아야 한다. 많이 가졌을 때에는 탐욕과 교만을 경계해야 하고, 부족할 때에는 가난과 실패를 영원한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고엘이신 예수께서 자유와 회복의 길을 여셨으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공급을 바라보며 맡겨진 책임을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

  성도는 희년의 나팔이 대속죄일에 울렸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평생 회개와 정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칭의를 구원의 끝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하고, 날마다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여 악한 영이 붙잡을 통로를 닫아야 한다. 예수의 피를 의지한 회개를 통하여 성령의 다스림을 더 온전히 받아야 하며, 받은 자유를 다시 죄에게 내어주지 않아야 한다.

  성도는 이 땅에서 주어지는 건강과 물질과 관계의 회복을 감사히 구해야 하지만, 그것을 희년의 최종 목적과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참된 희년의 완성은 사망과 질병과 가난과 마귀가 영원히 제거된 천국에 있으므로, 현재의 축복을 천국의 기업과 연결하여 사용해야 한다. 부유하게 되었을 때에는 복음과 교회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더 넉넉히 섬겨야 하며,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도 자녀와 상속자의 신분을 붙들어야 한다.

  성도는 은혜의 해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 온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열려 있는 구원의 초청에 믿음과 회개로 응답해야 하고, 가족과 이웃에게도 참된 희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리하여 고엘이신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높이며, 회개로 정결함을 받아 자유와 기업과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7월 12일(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이사야 61장에 예언된 참된 희년의 성취자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경적 의미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깊이 있게 다룹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구약의 고엘(기업 무를 자) 제도를 성취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의 친족 구속자가 되셨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희년의 핵심 원리인 죄의 종노릇에서의 해방, 잃어버린 기업의 회복, 그리고 땅의 안식이 오늘날 믿는 자들에게 가난과 질병의 저주를 끊어내는 실제적인 능력이 됨을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대속죄일의 영적 의미를 따라 회개를 통해 자신을 정결하게 함으로써, 주님이 선포하신 희년의 축복을 누리고 영원한 천국 기업을 소유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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