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강해(01)] 민수기, 과연 어떤 책인가?(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민1:1~4)

이 설교는 구약성경의 민수기가 지닌 역사적 의미와 핵심 주제를 알기 쉽게 해설하는 설교입니다. 이 책의 히브리어 원제목인 '광야에서'와 헬라어 번역에서 유래한 '숫자들(민수기)'의 배경을 설명하며, 이 책이이 단순한 인구 조사를 넘어 출애굽 1세대와 2세대의 실제 삶과 광야 여정을 다룬 역사서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1차 인구 조사의 대상이었던 1세대들이 불신앙과 원망으로 광야에서 소멸한 반면, 2세대들은 믿음과 순종을 통해 가나안 정복의 전사로 거듭나야 한다는 구원과 순종의 교훈을 전달합니다. 나아가 민수기 전반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예표적 사건들과 인물들을 조명하며, 성도가 영원한 천국이라는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어떤 신앙적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도전하는 목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민수기의 히브리어·70인역·한글 제목은 각각 무엇을 뜻하는가?본문 →2모세오경에서 민수기의 위치와 기록 시기는 어떻게 확인되는가?본문 →3두 차례 인구조사는 누구를 왜 계수하며 무엇을 보여 주는가?본문 →4광야 여정은 장소와 출애굽 세대에 따라 어떻게 전개되는가?본문 →5출애굽 1세대는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는가?본문 →6출애굽 2세대는 원망을 거쳐 어떻게 전사로 세워졌는가?본문 →7민수기는 우리의 구원 여정과 그리스도의 예표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본문 →1. 들어가며
이번 시간부터 민수기 강해를 시작한다. 첫 시간의 제목은 ‘민수기, 과연 어떤 책인가?’이며, 그 부제는 ‘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이다. 그동안 우리는 레위기를 공부해왔다. 제사를 어떻게 드리는지, 어떻게 정결해지고 어떻게 성결해지는지를 배웠다. 이제 그 말씀을 받은 백성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지를 볼 차례다.
민수기는 재미있는 책이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를 두 번 센 기록으로만 읽으면 핵심을 놓친다. 하나님께서는 왜 백성을 세게 하셨는가? 무엇을 세게 하셨는가? 그리고 그렇게 센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이 질문을 따라가면 민수기는 오늘 우리에게 정면으로 묻는 책이 된다. 나는 출애굽 1세대처럼 광야에서 흔적 없이 사라질 사람인가, 아니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할 전사로 준비될 것인가?
민수기를 공부하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전통적인 정보 가운데 교정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된다. 어른들이 그렇게 해 왔으니 그냥 따라가서는 안 된다. 이번 시간에는 민수기의 이름과 위치, 구조와 기록 목적을 살펴보자.
2. 민수기의 히브리어·70인역·한글 제목은 각각 무엇을 뜻하는가?
먼저 우리말 제목부터 보자. 민수기(民數記, Numbers)는 백성 민(民), 셀 수(數), 기록할 기(記) 자를 쓴다. 곧 백성을 센 기록이라는 뜻이다. 이름만 보아도 무엇인가 숫자를 헤아리는 책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맞다. 민수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를 헤아리는 일이 두 차례 나온다. 한 번은 1장에, 또 한 번은 26장에 나온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이 책의 제목이 전혀 다르다. 히브리어 성경은 이 책을 ‘베미드바르’라고 부른다. ‘베’는 ‘~에서’라는 뜻이고, ‘미드바르’는 광야다. 그러므로 히브리어 성경의 제목은 ‘광야에서’이다. 별로 탐탁지 않은 이름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이 원래의 제목이다.
왜 ‘광야에서’인가? 민수기가 광야에서 벌어진 사건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시내산 밑의 시내 광야에 얼마 동안 머물렀다. 그다음 13장과 14장에 나오는 가데스 바네아가 있는 바란 광야로 갔다. 그리고 15장을 지나면 신 광야가 나오는데, 히브리어로 보면 ‘진’ 광야다. 이처럼 시내 광야, 바란 광야, 진 광야라는 세 광야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했기 때문에 히브리어 성경은 이 책의 제목을 ‘광야에서’라고 붙였다.
그렇다면 누가 이 제목을 바꾸었는가? 한글로 번역한 우리 한국 사람들이 처음 바꾼 것이 아니다. 이것을 알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마소라 본문(Masoretic Text)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B.C. 3세기에서 2세기 무렵 알렉산드리아에서 이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했다. 이것을 70인역(七十人譯, Septuagint)이라 하고 LXX로 표기한다.
이 70인역은 이 책의 제목을 ‘아리스모이’라고 기록했다. 아리스모이는 복수형으로 ‘숫자들’, 곧 넘버들이라는 뜻이다. 무슨 숫자인가? 사람을 헤아린 숫자다. 사람을 헤아린 기록을 보니 두 번 헤아렸다. 한 번은 시내 광야에서 헤아렸고(민 1장), 또 한 번은 모압 평지에서 헤아렸다(민 26장). 이처럼 백성을 두 번 헤아린 기록이라 하여 70인역이 ‘숫자들’이라 이름 붙였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번역하면서 ‘민수기’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성경이 정한 '민수기'라는 책 제목은 잘한 번역인가, 아니면 못한 번역인가? 틀린 것 같지는 않다. 민수기는 출애굽 1세대를 한 번 헤아려 기록하고, 출애굽 2세대를 한 번 헤아려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두 차례의 인구조사, 곧 싸움에 나갈 만한 장정을 조사한 일을 기준으로 붙인 ‘민수기’라는 제목은 출애굽 1세대가 되지 말고 출애굽 2세대가 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교훈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필자는 ‘광야에서’라는 제목이 더 좋다고 외치고 싶다. 다음에 누군가 새로 번역한다면 ‘광야에서’라고 붙이면 좋겠다. 너무 멋지지 않은가? 이 책은 본래 세 광야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3. 모세오경에서 민수기의 위치와 기록 시기는 어떻게 확인되는가?
민수기는 모세오경(五經, Pentateuch) 가운데 네 번째 책으로 레위기와 신명기 사이에 있다. 민수기의 위치를 알려면 앞의 책들을 복습해야 한다.
창세기는 인간의 창조와 타락의 과정을 1장부터 11장까지 기록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타락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믿음을 가진 자를 통해 하늘나라를 이루시려고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셨다. 그래서 창세기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세 족장의 이야기다. 그 야곱 때에 열두 아들을 비롯한 일흔 명이 애굽 땅에 들어가는 것으로 출애굽기가 시작된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준비시키시고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다. 12장에 유월절이 나오고, 13장부터 백성이 나오기 시작하며, 14장에서 홍해를 건넌다. 15장에서는 쓴 물을 단물로 만드는 일이 있었다. 19장에서 하나님은 백성에게 율법(律法, law)을 받을 준비를 하라고 하시고, 20장에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십계명을 주셨다. 21장부터 23장까지는 백성이 지켜야 할 법도이며, 24장에서 온 백성이 피를 두고 언약을 맺는다. 그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말씀에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용서받을 법이 있어야 하므로 성막(聖幕, tabernacle)을 지어 제사를 드리고 용서를 받으라고 하셨다. 그것이 25장부터 40장까지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출애굽기는 1장부터 24장까지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의 역사이고, 25장부터 40장까지는 중간에 조금 이야기가 들어가지만 성막을 짓는 이야기다.
이제 날짜를 보자. 이스라엘은 출애굽한 첫해 1월 10일에 유월절 양을 준비했다가 1월 14일에 잡고, 1월 15일에 애굽에서 나왔다(민 33:3). 그리고 그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웠다(출 40:17). 출애굽 2년 1월 1일이다. 출애굽한 지 만 1년이 되려면 아직 15일이 더 지나야 하는 때다.
그런데 민수기 1장 1절은 출애굽 2년 2월 1일이다. 성막을 세운 날부터 딱 한 달이 지났다. 연대로 말하면 B.C. 1445년 2월 1일이다.
민 1: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그렇다면 그 한 달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가? 레위기가 있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그 한 달 사이에 주어졌다. 성막을 지었으니 이렇게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 1장부터 7장까지다. 그러나 제사를 드리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나님께 계속 쓰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정결례(淨潔禮)가 11장부터 17장까지, 성결례(聖潔禮)가 18장부터 27장까지 나온다. 성결례 가운데 18장부터 22장까지는 개인적인 성결례이고, 23장부터는 절기를 통한 공동체적인 성결례다. 이것이 한 달 만에 끝났다.
여기서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레위기는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율법 규정 이야기다. 그러나 민수기는 규정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 이야기다. 그들에게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너는 이렇게 해야 한다. 제사는 이렇게 드려야 한다. 절기는 이렇게 지켜야 한다.’ 이런 책이 아니다. 실제 삶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규정은 지킬 수도 있고 안 지킬 수도 있다. 민수기는 그 규정을 들은 백성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써 놓았다. 그래서 민수기에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나온다.
민수기의 끝은 어디인가? 출애굽 40년 5월 1일에 아론이 죽는다. 아론이 죽은 뒤에도 조금 더 기록이 이어지지만 모세는 아직 죽지 않는다. 모세가 죽는 이야기는 신명기 끝에 나온다.
신명기의 시작은 출애굽 40년 11월 1일이다.
신 1:3 마흔째 해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니
신명기(申命記, Deuteronomy)는 되풀이한다는 뜻의 신(申) 자와 명령이라는 뜻의 명(命) 자를 쓴다. 율법을 되풀이해서 말하는 기록이다. 모세가 출애굽 2세대를 모아 놓고 하나님께 받은 율법이 이것이라고 다시 교육한 것이 신명기다. 그래서 신명기는 규정이 중심이지만 그 규정을 사건이 일어난 역사적 순서에 따라 다시 설명해 준다. 아론이 죽은 그해 열한째 달에 이 말씀을 다 알린 뒤, 모세는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장사되었다. 죽을 때 나이는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신 34:5-7).
그러므로 민수기는 출애굽 2년부터 40년까지 약 38년 9개월 16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난 실제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우리가 흔히 민수기를 ‘38년간의 광야 생활의 기록’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규정이 아니라 삶을 기록하게 하셨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4. 두 차례 인구조사는 누구를 왜 계수하며 무엇을 보여 주는가?
먼저 누구를 세었는지 보자. 그냥 백성의 숫자를 센 것이 아니다.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세라는 규정이 있었다(민 1:3). 남자로서 스무 살 이상이고 싸움에 나갈 만한 자다. 출애굽 2년 2월 1일에 계수했으므로 이 사람들은 모두 출애굽 1세대다. 애굽에서 나온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 숫자가 몇 명이었는가?
민 1:45-4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 조상의 가문을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자손이 다 계수되었으니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
스무 살 이상의 남자만 60만 3,550명이었다. 그렇다면 전체는 몇 명이었겠는가? 흔히 200만 명이라고 말한다. 여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보통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산다. 또 스무 살 아래의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남자가 60만 명이면 여자가 같은 숫자만 되어도 120만 명이다. 여자가 좀 더 많아 150만 명쯤 되었다고 치고, 여기에 스무 살 아래의 아이들을 더하면 200만 명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므로 민수기는 200만 명의 역사 이야기다.
생각해 보라. 200만 명이 광야에서 농사를 지었는가? 우리 집에 시어머니 한 분만 오셔도 한 달 동안 밥을 해 드리기가 쉽지 않다. “어머니, 밭에 고추가 풀에 묻혔을 텐데 집 생각나지 않으세요?”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한 사람만 집에 와도 밥 먹이기가 그렇게 힘들다. 그런데 200만 명이 먹을 양식이 광야 어디에 있었겠는가? 여기에 엄청난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셨고, 민수기에는 고기를 먹고 싶다고 탐한 백성에게 메추라기가 내려진 사건이 나온다(민 11장).
두 번째 계수는 26장에 나온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나온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신 대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은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이십 세 이상 된 자를 계수하라고 전했다(민 26:3-4). 모압 평지는 요단강 건너편, 여리고 앞에 있는 평지다. 첫 번째 계수는 모세와 아론이 했고, 두 번째 계수는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했다. 첫 번째는 시내 광야에서 했고, 두 번째는 모압 평지에서 했다. 첫 번째는 출애굽 1세대였고, 두 번째는 출애굽 2세대였다.
두 번째 숫자는 60만 1,730명이었다(민 26:51). 60만 3,550명에서 60만 1,730명을 빼면 1,820명의 차이가 난다. 거의 똑같다. 그런데 숫자는 거의 같지만 사람은 전적으로 다르다. 민수기는 바로 이것을 드러내려 한다. 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와 출애굽 2세대를 구분해 보여 주시면서 “너희가 이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없느냐?”라고 물으신다. 이것을 찾지 못하면 민수기를 헛되이 읽은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숫자를 세게 하셨는가? 왜 스무 살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남자만 세게 하셨는가? 단지 인구조사를 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 핵심은 ‘싸움에 나갈 만한 자’다. 앞으로 전쟁을 앞두고 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전쟁을 해서 그 땅을 정복해야 한다. 그래서 싸움에 나갈 전사들의 숫자를 계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면 왜 전사가 필요했는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기업(基業, inheritance)으로 주려고 하셨다. 그런데 그 땅은 거저 가져갈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이 살고 있었고, 그들의 죄가 찼는데도 그 땅을 내놓지 않으려 했다. 그들을 쫓아내려면 군사가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사를 세셨다.
5. 광야 여정은 장소와 출애굽 세대에 따라 어떻게 전개되는가?
민수기는 장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장부터 10장 10절까지는 시내 광야의 이야기다. 시내 광야에서 인구조사를 시키고 진영을 배치한다. 나팔을 불면 어느 지파가 먼저 나가는지, 진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다 이야기한다. 유다 지파가 맨 앞에 서고, 전쟁할 때 어떻게 나갈 것인지를 모두 연습한다. 그리고 10장 11절에 드디어 출발한다. 언제 출발했는지가 정확히 나온다.
민 10:11-12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바란 광야에는 가데스 바네아가 있다. 성경은 이곳을 신 광야라고도 하는데, 히브리어로는 진 광야다. 이 진 광야와 바란 광야 사이에 가데스 바네아가 있다. 다음 시간에 지도를 보여 주며 설명하겠지만,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광야 지도는 많이 틀렸다. 민수기에도 교정할 것이 엄청 많다.
시내산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는 열하룻길이었다(신 1:2). 그 열하룻길 만에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여 정탐꾼을 보냈다. 이것이 13장과 14장이다. 민수기는 이 가데스 바네아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결정타가 났다. 정탐꾼들이 부정적인 보고를 하는 바람에 백성은 광야를 빙빙 돌게 되었고, 그 이야기가 15장부터 19장까지다.
20장에서는 불신앙(不信仰, unbelief)의 세대가 소멸되는 마지막 장면이 나온다. 미리암과 아론이 죽는다. 왜 그들이 이때 죽는가? 민수기 12장에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 너만 지도자냐? 우리도 지도자다” 하며 반항하고 불평한 불신앙의 이야기가 나온다(민 12:1-2).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가 끝날 때 그들도 함께 죽게 하셨다.
그다음 21장부터 25장까지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이야기이고, 26장부터 36장까지는 모압 평지에서 두 번째 인구조사를 한 뒤의 이야기다. 장별로 보면 1장부터 9장까지 시내 광야, 9장부터 12장까지 가데스 바네아까지의 행군, 13장의 정탐과 보고, 14장의 원망과 심판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세대로 나누면 더 분명하다. 출애굽 1세대의 이야기는 민수기 1장부터 19장까지이고, 출애굽 2세대의 이야기는 20장부터 36장까지다. 그런데 20장 1절을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바뀐다.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머물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민 20:1). 이 첫째 달은 출애굽 40년 1월이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미리암이 죽은 그해에 아론도 죽기 때문이다. 아론은 호르 산에 올라가 그의 옷을 벗어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힌 뒤 산꼭대기에서 죽었고, 온 회중은 삼십 일 동안 애곡했다(민 20:25-29). 그때가 언제인지는 33장에 나온다.
민 33:38-39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십 년째 오월 초하루에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호르 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으니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던 때의 나이는 백이십삼 세였더라
그러므로 1장부터 19장까지는 출애굽 2년째의 이야기이고, 20장은 출애굽 40년 첫째 달로 곧장 넘어간다. 그 사이 38년의 역사가 없다. 19장에서 뛰어넘어 버렸다. 민수기는 출애굽 2년 2월 1일부터 40년까지의 삶을 기록하지만, 그 가운데 38년의 공백이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다음 질문에서 보아야 한다.
6. 출애굽 1세대는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는가?
하나님께서 출애굽 1세대를 광야로 데려오신 목적은 분명했다.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려고 하셨다. 그래서 전쟁할 사람을 뽑으려고 숫자를 헤아리셨고, 나팔을 불 때 어떻게 나가는지를 다 연습시키셨다. 그런데 막상 가나안 땅을 정탐시켰더니 “우리를 죽이려고 데려왔느냐?” 하는 식이 되어 버렸다.
13장에서 하나님은 열두 정탐꾼을 준비시키셨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와 보고할 때 열 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 그 땅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은 메뚜기 같아서 밟히면 다 죽는다고 했다(민 13:31-33). 그러자 백성들이 난리가 나서 모세를 원망했다.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나섰다.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이니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했다(민 14:9). 그런데 그들이 불신앙의 보고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자, 하나님은 그들이 광야에서 다 죽을 때까지 광야를 돌게 하겠다고 하셨다. 그것이 14장의 이야기다.
민 14:29-31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부모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었다(민 14:32-33).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 그런데 그 약속을 믿지 못하겠다며 “우리를 죽이려고 이런 일을 시켰느냐?”라고 하면, 하나님은 그 말대로 하신다. 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에게 가나안 땅을 주려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거부했다.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들어가기 싫다고 하니 “그래, 그렇다면” 하신 것이다. 열하룻길이면 이를 수 있었던 길을 38년 동안 방황하게 하셨다.
그렇다면 그 38년은 왜 기록되지 않았는가? 의미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 죽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헛된 삶을 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에 쓰레기처럼 취급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했던 이야기는 행위책에 아름답게, 더 많은 이야기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은 죄를 지어 그 죗값을 받기 때문이다. 사람은 무엇이든 자기를 남기려고 한다. 일기장에도 역사책에도 자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남기려 한다. 그런데 죄를 짓고 그 죄 때문에 계속 저주를 받는 삶은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채 38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리는 의미 없는 삶이다. 그러므로 빨리 회개(悔改, repentance)하여 악한 영을 내보내고, 의미 있는 삶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이야기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죽이려고 이스라엘을 데려오셨겠는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회개로 부르신 것도 회개하다가 죽어 버리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다. 어떤 위기와 어려움이 와도 회개를 끝까지 해야 한다. 그런데 조금 회개하다가 무서우면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
필자도 6년 전에는 영적인 세계가 깜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반응했다. 그렇게 믿음으로 나아가니 귀신이 나가고 깨끗해졌고, 그러자 은사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몸에 달라붙었다. 그렇게 은사가 달라붙어 지금의 사역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민수기 깊은 곳에는 믿음과 순종이라는 주제가 흐르고 있다. 믿음과 순종이 있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이것이 없으면 차지할 수 없다.
7. 출애굽 2세대는 원망을 거쳐 어떻게 전사로 세워졌는가?
그렇다면 출애굽 2세대는 감사하며 살았는가? 아니다. 20장에서 물이 없자 회중이 또 모세와 아론에게 모여들었다. 그들은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 자기들도 죽었더라면 좋았겠다고 다투며,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자기들과 짐승이 다 죽게 하느냐고 했다. 또 어찌하여 자기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했느냐고, 이곳에는 파종할 곳도 없고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마실 물도 없다고 했다(민 20:2-5). 2세대도 아버지 세대와 똑같았다. 그래서 누구를 따르느냐가 중요하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지도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나쁜 곳’이라니, 40년 동안 농사도 짓지 않고 밥을 먹고 살았으면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농사를 지었는가? 하늘에서 거저 떨어진 만나를 먹고 살았다. 필자 같으면 쓸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모세의 중보기도가 필요했다. 모세는 엎드려 주께 또 살려 달라고 구했다.
하나님은 물이 없다니 물을 주라고 하셨다. 지난번에는 반석을 치라고 하셨지만(출 17:6) 이번에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다(민 20:8). 그런데 모세는 얼마나 화가 났던지 반석을 두 번 쳐 버렸다(민 20:11). 물은 많이 솟아 나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민 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지도자는 성질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백성이 원망하니 그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 놓고는 “이것들아!” 하며 반석을 쳐 버린 것이다. 지도자는 한 번의 실수로 끝난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엄하게 심판하신다.
그러면 이것으로 끝났는가? 그렇지 않다. 21장에서 백성은 또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 어찌하여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먹을 것도 물도 없고 이 하찮은 음식이 싫다고 했다(민 21:5).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불뱀들을 보내셨고, 그 독뱀에 물려 많은 사람이 죽어 갔다. 그러자 백성은 모세에게 와서 잘못했다며 살려 달라고 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장대 위에 놋뱀을 달아 그것을 쳐다보면 살게 하셨다(민 21:6-9).
그런데 출애굽 2세대에게는 놀라운 점이 있다. 그들도 처음에는 아버지들처럼 똑같이 반응했지만 결국 정신을 차렸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전쟁을 예행연습시키셨다. 요단강 동편의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정복하라고 시험해 보신 것이다(민 21:21-35). 그곳에도 거인 족속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는 못 간다고 반항하지 않았다. 모세를 따라 나가 단숨에 무찔러 버렸다. 그렇게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결국 출애굽 2세대는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기업을 차지하는 자가 되었다.
우리 가운데 온전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회개를 많이 해야 한다. 왜 그런가? 회개하지 않으면 원망과 불평의 영이 입과 턱 밑에 가득 들어차 있다. 그 영들이 있으니 내가 원하지 않아도 원망과 불평의 영에 의해 불평을 해 버린다. 말을 하다가 끝에 가서 꼬아 버리고, “너도 좀 아파 봐라” 하는 식으로 싹 꼬집는다. 그것은 입에 붙은 혈기와 분노, 미움과 다툼, 시기와 질투다. 뱃속에 그런 것이 다 들어 있으니 그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하자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았다가는 출애굽 1세대처럼 징계를 받아 광야에 엎드러져 죽는다. 혹시 우리의 삶이 출애굽 2세대의 초기처럼 불평과 불만으로 입이 튀어나온 삶이었다 해도, 빨리 회개하여 그것을 없애 버리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세대는 처음에는 아버지들을 그대로 답습했으나 중간에 정신을 차렸다.
8. 민수기는 우리의 구원 여정과 그리스도의 예표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
민수기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구원론과 연결된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1세대를 출애굽으로 일차적으로 구원(救援, salvation)하여 광야로 데려오셨다. 그러나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합당하지 않았기에 광야에서 다 죽게 하셨다. 우리도 일차적 구원을 받아 주 예수를 믿는다. 그러나 합당한 삶을 살지 않아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은 나중에 열매로 심판하신다고 하셨는데, 열매가 없다면 결국 구원에서 탈락된다. 이것이 히브리서가 말하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일차적 구원을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그 구원을 완성할 수 있는가? 어떻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가? 이 이야기를 모세가 쓰고 싶었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쓰게 하셨다. 그러므로 민수기는 일차적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곧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지를 가르쳐 주는 책이다. 너희는 출애굽 1세대처럼 살지 말고 적어도 2세대는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다.
많은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 들어가지 못한다. 가나안 땅, 곧 천국을 가르쳐도 그곳이 싫다고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래, 너는 안 된다” 하신다. 우리는 천국을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영원한 처소, 안식의 처소는 천국의 새 예루살렘 성이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새 예루살렘 성이 어떤 도시이고 거기서 어떤 법칙이 적용되며 거기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거기서 자신이 어떤 신분을 유지하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상을 받고 살 것인지에도 관심이 없다. 그런 사람을 천국에 데려가시겠는가? 그래서 첫 번째로 계수된 그들은 광야에서 다 쓸려 나가 탈락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전사를 뽑으신다. 믿음이 있는 전사, 순종할 수 있는 전사를 뽑으신다. 이것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갔을 때 기업을 차지하는 자가 된다. 그때는 가나안 일곱 족속이었지만, 오늘 우리는 가나안 일곱 족속과 같은 악한 영들과 싸워야 한다. 그런데 교회에서 이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귀신은 없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천국에 가도 변두리에 살거나 쫓겨난다. 여러분은 모두 들어가야 한다. 이 말씀을 듣게 하신 것도 들어가게 하시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신 첫 말씀이 무엇인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이다. 우리는 지금 이 회개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눈이 번쩍 뜨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가을 단풍을 어디로 구경 갈지, 새로 생긴 좋은 커피집이 어디인지에 마음을 쓴다. “내가 커피 살 테니 그리로 와라” 하여 찾아가 보고 “이런 데가 다 있네” 하며 그것을 자랑하다가 일평생이 지나간다. 그나마 커피집은 괜찮은 편이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등산을 다니다 바람이 나서 가정이 파탄 나는 일도 있다. 이 시대 가운데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 이 말씀을 듣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한 시대는 작은 것부터 시작된다. 물 한 방울이 모여 도랑을 이루고, 도랑이 시내를 이루고, 시내가 강물을 이룬다. 우리의 작은 몸부림이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민수기에는 그리스도의 예표(豫表, type)도 많이 나온다. 직접적인 예표와 간접적인 예표가 있다. 직접적인 예표로는 19장의 붉은 암송아지, 20장의 반석, 21장의 놋뱀이 있다. 반석이 곧 그리스도라는 말씀이 고린도전서 10장에 나온다(고전 10:4). 또 민수기 전체로 보면 광야의 만나와 물도 그리스도의 예표다. 19장의 붉은 암송아지부터 그리스도의 예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간접적인 예표는 22장부터 24장까지의 발람 선지자 이야기에 나온다. 이스라엘이 모압 땅의 경계를 지나가자 모압 왕은 발람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게 했다. 그러나 발람은 하나님이 축복하신 자를 어찌 저주할 수 있겠느냐 하면서 네 차례에 걸쳐 예언했다. 그 가운데 야곱에게서 한 별이 나올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
민 24: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이 한 별은 왕으로 오실 메시아다. 그래서 이 예언은 마태복음 2장에 나오는 동방 박사 이야기의 예표가 된다. 또 35장의 도피성(逃避城, city of refuge)이 있다. 사람을 죽게 한 자가 살려면 도피성으로 도망쳐서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 있어야 했다(민 35:25). 이처럼 우리의 대제사장(大祭司長, high priest)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자유와 해방을 얻는다.
인물로 보면 세 사람을 살펴볼 수 있다. 중보자(仲保者, mediator)로서의 모세, 대제사장으로서의 아론,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기업을 차지하게 해 주는 인도자로서의 여호수아다.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계속 살펴보겠다.
9. 나오며
‘광야에서’든 ‘숫자들’이든, 민수기가 묻는 질문은 하나다. 누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 살아 있는 역사를 남기게 하시고 “너희는 잘 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지금 가데스 바네아에 서 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바로 그 땅에 있다. 여기서 불신앙으로 불평하는 열 명의 정탐꾼처럼 된다면 우리도 38년의 의미 없는 삶으로 쓰러져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출애굽 1세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전사가 되었다. 그들처럼 믿음의 보고를 하고 순종하면 우리도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자, 그리고 전쟁할 때 두려워하지 않고 적진에 뛰어들어 귀신과 싸울 수 있는 자가 결국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한다. 이것이 민수기가 말하는 것이다. 이제 민수기를 통해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과연 전사로 합당한가? 나에게 전사가 되지 못할 요소는 무엇인가? 원망과 불평, 거역과 반역과 불순종이 있으면 결국 탈락한다.
이제 민수기의 사건을 하나하나 살펴볼 것이다. 그 사건들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빠졌으며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출애굽 1세대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는 사람이 아니라, 회개하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는 하나님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
2026년 10월 07일(수) · 정보배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