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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15. (목)2026년 교회표어 「시대적인 사명완성을 위해 성전을 짓는 해」 (역대상 28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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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강해(02)] 민수기의 전체내용과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들(민1:1~4)

민수기 1:1~4정보배목사2026-10-14조회 2읽는 시간 약 35분

설교핵심

이 설교는 구약성경 민수기의 전체적인 흐름과 핵심 교훈을 출애굽 1세대와 2세대의 대비를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한 것입니다. 1장부터 19장까지의 출애굽 1세대 이야기는 광야 생활 속에서 원망과 불평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세워야 함을 보여주며, 이들이 성막을 헌신적으로 지은 긍정적인 면도 함께 조명합니다. 반면 20장부터 마지막까지의 출애굽 2세대 이야기는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영적 전쟁에서 순종으로 승리를 거둔 세대의 모습을 그립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광야 같은 교회 생활 속에서 애굽의 더러운 노예 근성과 악한 영을 회개로 물리치고 천국을 향해 나아갈 합당한 하나님의 군사로 준비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민수기는 왜 출애굽 1세대와 2세대의 두 이야기로 기록되었는가?2모세오경의 흐름 속에서 민수기는 어떤 자리에 있는가?3광야는 왜 애굽의 노예근성과 악한 영을 빼내는 곳인가?4출애굽 1세대는 어떻게 하나님 중심의 군대로 세워져야 했는가?5광야에서 엎드러진 출애굽 1세대는 모두 지옥에 갔는가?6출애굽 1세대와 2세대가 각각 잘한 일은 무엇인가?7민수기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영적 전사가 되라고 가르치는가?
설교 본문 민수기강해(02) 민수기의 전체 내용과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들 (민 1:1-4) ·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이번 시간은 민수기 강해 두 번째 시간이다. 민수기의 전체 내용과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민수기(民數記)란 백성을 세어 본 기록이라는 뜻이다. 그것도 두 번 세었다. 출애굽 1세대를 센 것이 1장에 나오고, 출애굽 2세대를 센 것이 26장에 나온다. 그런데 2세대를 센 것은 26장이지만 출애굽 2세대의 이야기는 20장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1장부터 19장까지는 출애굽 1세대의 이야기이고, 20장부터 마지막 36장까지는 출애굽 2세대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민수기는 왜 이 두 세대의 이야기를 기록해 놓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출애굽 1세대를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이 있고, 출애굽 2세대를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먼저 민수기의 전체 흐름을 1세대와 2세대로 나누어 정리하려 한다. 앞부분에 시간을 많이 썼기 때문에 민수기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고, 그다음부터 민수기 1장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갈 것이다.

2. 민수기는 왜 출애굽 1세대와 2세대의 두 이야기로 기록되었는가?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 나온 첫 세대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서 다 죽게 하려고 데리고 나오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다. 민수기 20장은 출애굽 40년 첫째 달에 시작된다(민 20:1). 그때까지 살아 있던 출애굽 1세대의 지도자는 미리암, 아론, 모세, 여호수아, 갈렙 다섯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해에 세 사람이 차례로 죽는다. 미리암이 첫째 달에 가데스에서 죽고(민 20:1), 아론이 출애굽 40년 다섯째 달 첫째 날에 호르산에서 죽었다(민 33:38). 그리고 같은 해 신명기의 말씀을 선포한 뒤 모세도 죽었다(신 1:3; 34:5). 하나님은 그때 모세에게도 너는 출애굽 2세대와 함께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다(민 20:12). 그래서 과거를 이끌어 온 한 세대인 모세의 가족이 출애굽 40년에 모두 죽은 것이다. 성경은 시내 광야에서 계수된 사람 가운데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민 26:64-65).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백성을 세게 하셨는가? 전쟁에 나갈 용사를 헤아리게 하신 것이다. 민수기의 계수는 세금을 거두려는 인구조사가 아니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할 군사의 수를 헤아린 것이다.

민 1:2-3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그러므로 민수기의 계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전쟁에 나갈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는지를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출애굽 1세대는 그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 이 계수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시내 광야에서 시작되었다(민 1:1). 그리고 바란 광야의 가데스에서 열두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중 열 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민 13:25-33). 그러자 백성이 밤새 통곡하며 원망했고, 하나님은 그 세대를 심판하셨다(민 14장).

이 이야기는 우리 생각 가운데 있는 부정적인 생각과 원망 불평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곧 천국에 들어가는 데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금도 날마다 원망 불평하며 살고 있다면 천국에 들어갈 것 같은가? 죽을 때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져 성 밖으로 갈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출애굽 1세대와 2세대의 이야기는 원망하는 자가 어떻게 되고, 순종하는 자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주려고 기록된 것이다.

3. 모세오경의 흐름 속에서 민수기는 어떤 자리에 있는가?

민수기는 어떤 책인가? 출애굽 1세대와 2세대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그런데 민수기를 기록한 이유를 알려면 모세오경의 흐름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창세기는 만물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인간이 창조되어 어떻게 타락했는지를 말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새로운 부르심을 받은 족속을 만드시는 족장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자손 대대로 그 땅을 차지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5:18). 그런데 그때는 그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족속을 먼저 애굽으로 들여보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하셨다(창 15:5; 22:17). 이것이 일차적인 완성이다.

이제는 그 민족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야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준비시키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셨다. 이것이 출애굽기다. 출애굽기 1장부터 24장까지는 시내산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이고, 25장부터 마지막 40장까지는 성막에 관한 이야기다.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지만 그들이 지켜야 할 법도가 있었다. 그 법도를 모르면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거짓말하고, 빼앗고, 힘센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최소한 이렇게 지켜야 한다고 율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그 율법을 지키지 못했을 때 어떻게 용서를 받는지를 알려 주신 것이 성막법이다. 성막은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이끄시는지 그 말씀을 들려주시는 장소였다. 레위기는 그 성막에서 진행되는 제사와 성결, 정결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민수기에 이른다.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민족이 매우 많아졌다. 그런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다. 그러면 출애굽한 이 백성은 과연 그 땅에 들어가기에 합당했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가나안 땅에 사는 일곱 족속의 죄가 관영해야 그 땅이 그들을 토해 내게 되어 있었다(신 7:1; 레 18:25).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다(창 15:16). 그 땅이 아직 죄악의 관영에 조금 덜 찬 상태였다. 모세와 여호수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땅이 죄악으로 가득 차 그들을 내버릴 때가 된 것이다.

둘째, 그 땅을 차지하려면 합당한 준비가 되어야 했다. 노예근성이 빠져야 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자식들 수준으로 디자인하셨다. 그러므로 평생 노예근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결국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지금도 원망 불평하며 "목사가 나를 친다"고 말하는 사람은 들어가기 어렵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디자인하셨는지, 무엇을 예정하셨는지를 알고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엡 1:3-6).

엡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여기의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상으로서 '우리'는 천사가 아니라 인간을 말한다. 하나님은 천사를 종으로 지으셨고, 우리 인간은 아들들로 지으시려고 창세 전부터 계획하셨다. 우리에게는 원래 아들들이 될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우리를 아들들로 계획하셨으니 너무 감사하지 않은가? 우리가 천사로 태어났다면 "하나님, 왜 저를 천사로 만드셨습니까?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시지요" 하고 항의할 수 있는가? 없을 것이다.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나를 왜 이렇게 지었느냐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롬 9:20-21). 그런데 살고 보니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귀한 존재, 하나님의 수준으로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놓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거저 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이다(엡 1:6). 천국에서 우리는 그렇게 찬송하며 예배한다.

그런데 칼빈주의는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하나님의 개인 구원 예정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인류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고, 더 나아가 상속자가 되게 하시려고 만세 전에 계획하셨다(엡 3:6). 그러므로 결국 하나님의 아들들답게 된 자만 들어간다. 처음부터 아들다운 자만 뽑으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다 부르신다. 예수를 믿게 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갈 때는 그가 들어가기에 합당한지를 보신다. 그것을 시험하는 곳이 광야이고, 오늘날에는 교회다. 하나님은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지만, 그에게 최종적으로 복을 약속하신 것은 22장의 시험을 통과한 뒤였다(창 22:16-18). 그래서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약 2:21). 고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준비되지 못한다면 결국 죽어서 성 밖으로 갈 수밖에 없다.

4. 광야는 왜 애굽의 노예근성과 악한 영을 빼내는 곳인가?

필자는 이번 새벽기도회 시간에 말씀을 전하면서 필자의 삶을 돌아보았다. 필자는 어렸을 적부터 얼마나 우울했는지 모른다. 항상 슬펐고, 쨍하고 해 뜬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힘든지도 모르면서 너무 힘들었다. 요즘에는 필자의 얼굴에 웃음이 잘 피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슬픈 남자였고, 외로운 남자였고, 우울한 남자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필자 속에 악한 영이 어마어마하게 있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확신도 있었지만, 필자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낸 적이 없었다. 그 영이 계속 있으면 우리를 침체에 빠뜨리고 어둠 가운데로 끌고 간다.

진작 누군가 회개기도문을 주고 회개를 시켜 주었더라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들인 목사들이 회개해야 하고, 회개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래야 인생에 의미가 있고 하루하루가 의미가 있다. 살아갈 이유가 생기고 미래에 대한 소망이 생긴다. 더 나은 미래가 기대되고, 오늘 해야 할 일에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한다.

그런데 필자는 우울한 감정에 싸여 있었기 때문에 항상 "주님이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 "이 한 많은 세상이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님이 오셔야 이 힘든 세상을 끝내고 주님 나라에 들어갈 텐데, 죽으면 지옥에 갈 것 같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날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날짜를 계산했다. 그래서 필자는 종말론을 어마어마하게 연구했고, 종말론자들과 엄청나게 토론했다. 환난 전 휴거인가, 환난 중간 휴거인가, 환난 후 휴거인가, 전천년인가 아닌가를 놓고 엄청나게 이야기했다. 그 수많은 논란을 필자가 다 겪었다. 다 겪고 나서 전하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이 정리가 되는 것이다. 종말론은 어디서 하루아침에 배워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엄청나게 연구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다 파서 먹일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주님이 조금 더 늦게 오셔서 하늘나라를 더 준비하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보좌 자리도 한 자리라도 더 앞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출애굽 1세대도 그랬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시기는 했지만 귀신이 하나도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틈만 나면 물이 없다, 먹을 것이 없다, 고기가 없다, 너만 지도자냐 나도 지도자 좀 해 보자며 난리를 피웠다. 그렇다고 그들이 과연 광야에서 굶어 죽었는가? 아니었다. 날마다 만나를 배급받았다. 안식일 외에는 매일 내렸다(출 16:26). 그러면 감사해야 했다. 만나가 무엇인지는 출애굽기 16장에 처음 나오고, 요리해 먹는 방법은 민수기 11장에 나온다. 쌀을 주면 밥만 짓는 것이 아니라 떡도 해 먹듯이 만나도 여러 가지로 요리해 먹을 수 있었다.

민 11:8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 만나도 함께 내렸다(민 11:9). 그 양식은 공짜였다. 다만 공짜라도 새벽에 나가서 거두어야 했다. 해가 뜨겁게 쬐면 녹아 버렸기 때문이다(출 16:21). 광야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 풀도 물도 제대로 없으니 가축도 기를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산 것이다. 그렇게 맛있게 먹고 살았으면 늘 감사해야 했다.

그런데 출애굽 1세대는 원래 노예 신분이었다. 노예는 늘 불평해야 주인이 무엇이라도 준다. 노예가 "주인님, 지금 환경이 너무 좋으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라고 하면 주인이 환경을 바꾸어주겠는가? 그래서 불평이 몸에 밴 것이다. 그런 노예근성이 빠지지 않은 채 갑자기 자유민이 되었다. 그들은 애굽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돌이켜 홍해 앞 비하히롯 앞에 진을 치게 하셨다(출 14:2). 바로는 선발된 병거 육백 대를 이끌고 쫓아와서 앞은 바다, 뒤는 군대로 막혔다(출 14:7, 9). 그때 하나님의 사자와 구름 기둥이 이스라엘 뒤로 옮겨 가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서서, 애굽 쪽에는 흑암이 되고 이스라엘 쪽에는 밤을 밝혔다(출 14:19-20).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다를 가르게 하여 이스라엘을 건너가게 하셨다. 뒤따르던 애굽 군대는 바다에 빠져 죽었다. 하나님이 왜 그들을 홍해 앞으로 돌려 세우셨는가? 애굽 군대를 없애 그들을 자유민으로 만들려고 하신 것이다. 그냥 넘어가면 계속 도망자다. 전쟁에서 이겨야 자유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그런데도 출애굽 1세대들은 애굽에서의 노예근성이 계속 남아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의 성도라도 노예근성이 남은 사람은 날마다 불평한다. "교회가 이래서 되느냐? 안내위원 복장이 저게 뭐냐? 교회에 식당도 없느냐?" 목사가 못생겼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별 것을 다 신경 쓴다. 사모가 비싼 옷을 입고 다녀서 시험에 들었다는 사람도 있다. 불평불만으로 입에 거품을 문다. 참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는 회개를 시켜 놓았더니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잘못한 것이지, 이 교회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를 하나님의 군대로 데리고 나오셨다. 오합지졸이었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전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처음부터 군대로 보셨다. 그러나 그 속에 악한 영이 가득했기 때문에 원망 불평이 가득했다. 그래서 민수기 1장부터 19장까지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원망 불평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다고 날마다 원망했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자 지도자를 탓했다. 민수기 12장에서 미리암과 아론은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며 모세를 비방했다(민 12:2). 민수기 16장에서는 고라 일당과 이백오십 명의 족장들이 "너희만 제사장을 하느냐"며 우리도 제사장을 할 수 있지 않느냐면서 일어났다(민 16:1-3). 하나님이 세우신 특별한 질서가 있는데 그것을 전혀 보지 못한 것이다. 애굽에 있을 때는 무조건 불평하고 지도자를 물어뜯어야 무엇이라도 나왔으니 그 습성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광야는 애굽에서 가져온 더러운 노예근성을 빼는 곳이다. 이것은 빨리 뺄수록 좋다. 그런데 교회에서 이것을 빼는 법을 잘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래서 20년, 30년을 교회에 다녀도 조금만 무슨 일이 있으면 삐친다.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나를 쳤다. 그래서 상처를 받아 교회를 안 나가겠다." 목회자가 칠 것이 없어서 그 권사님을 치겠는가? 언제까지 "아프니까 호 해 주세요" 하겠는가? 그래서 정말 전쟁을 치를 군인이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쟁을 치를 군인을 만들려고 데리고 나오셨다. 그래서 그 자격이 있는지 민수기 13-14장에서 시험해 보신 것이다. 그랬더니 "저쪽은 키가 장대하고 우리는 메뚜기 같다. 우리를 죽이려고 이 광야로 데려왔느냐?" 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울부짖었다(민 13:32-33; 14:2-3).

교회 생활은 애굽에서 찌든 때를 빼내기 위한 장소다.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듯이,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교회 생활을 하다가 천국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교회 생활에서 애굽의 잔재를 다 뽑아내야 한다. 우상을 섬기던 때가 빠지지 않으니 그들은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였다(출 32:4). 우상숭배 신앙이 빠지지 않은 것이다.

오늘날에도 무당신을 섬기다가 교회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무당 섬기듯 섬기는 사람이 있다. 천지신명께 빌던 사람이 교회에 와서 천지신명을 하나님으로 바꾼 것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정화수 떠 놓고 빌던 것과 비슷하게 빈다. 무당, 천지신명, 북두칠성, 칠성신, 뱀신을 섬기다가 섬기는 대상만 하나님으로 바꾸고 그대로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목사가 되니 교회가 무당이 된다. 귀신이 가르쳐 주는 것을 성령이 가르쳐 주신다고 말한다. 성령도 귀신도 보이지 않으니 비슷해 보이는 것이다.

어떤 분은 광야 생활을 음식을 바꾸는 생활이라고 한다. 애굽에서 먹던 음식을 버리고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애굽에서 먹던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날마다 그리워했다(민 11:5). 맛이 센 음식이다. 만나는 양념을 넣거나 마늘처럼 톡 쏘는 음식이 아니라 부드러운 음식이었다. 이처럼 세상 음식은 조미료를 많이 넣어 맵고 짜다. 그래서 교회 음식은 맛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음식이 맛있고, 그 음식이 나의 영적 건강을 만들고 나를 영적인 천사처럼 만든다는 믿음이 올 때가 있다. 그것이 교회 생활이다. 세상 지식만 먹고 살다가 교회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먹을 때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영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 8:3). 그러므로 양식을 바꾸는 것이 교회 생활이다.

"성경 말씀이 맛이 없다. 설교가 듣기 싫다. 목사님은 왜 설교를 그렇게 길게 합니까?" 하며 날마다 시계만 보는 사람은 지금 말씀의 맛을 모르는 자이다. 필자의 설교를 듣고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간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말씀을 맛있게 전하지 못할 바에는 설교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들이 설교 듣기를 너무 힘들어하지 않는가? 설교를 잘할 수 있도록 배워야 한다. "광야에서 불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끝." 이렇게 해서 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맛있게 요리해야 한다.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면 기적을 창조하는 능력의 말씀이 되기 때문이다.

5. 출애굽 1세대는 어떻게 하나님 중심의 군대로 세워져야 했는가?

민수기 1장 1절부터 10장 10절까지는 시내 광야에서 전쟁을 수행할 민족의 청년이 얼마나 되는지를 헤아리고, 그들이 어떻게 진을 치고 행진할지를 준비시키는 이야기다. 고로 마지막 시대에는 귀신과 싸워 이기는 전쟁을 하는 사람으로 준비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이것을 생각해야 한다. 10장에 가면 나팔을 어떻게 불 때 어느 진이 나가는지 순서가 나온다(민 10:1-10). 여호와의 언약궤가 앞서 행하고(민 10:33), 동쪽에 진 친 유다 자손의 진영이 먼저 행진했다(민 10:14). 전쟁할 때와 이동할 때 나팔을 어떻게 부는지가 10장에 나온다.

진을 친 모습을 보면 그 한가운데에 성막이 있다. 성막을 중심으로 제사장과 레위 지파가 사방에 진을 치고, 그 바깥에 열두 지파가 진을 쳤다(민 2-3장).

민 2:17 그 다음에 회막이 레위인의 진영과 함께 모든 진영의 중앙에 있어 행진하되 그들의 진 친 순서대로 각 사람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들의 기를 따라 앞으로 행진할지니라

이것이 출애굽 1세대가 받은 첫째 교훈이다. 하나님의 군사가 되려면 하나님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좇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 생활은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하나님 말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바뀐다. 겉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교회 생활을 통해 성분이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에게 "나를 중심으로 내 율법을 지키고, 내가 원하는 대로 행하라. 이동하는 것조차 너희 마음대로 하지 말고 내가 가라고 할 때 가라"고 가르치셨다. 처음에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인도하심이다.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 아침까지 이르렀다(민 9:15-16).

민 9:17-18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않았다(민 9:19).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교회 생활이다.

그런데 말씀을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 엉망이 된다.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모르니 교회에 와서 교양 생활을 하려 한다. 어떤 사람은 공연을 즐기듯 문화생활을 하려 하고, 교양 있게 보이려 한다. 어떤 사람은 말씀은 듣지 않고 기도만 한다. 자기가 소원하는 것만 얻으면 되기 때문이다. 옛날에 무당에게 빌듯이 헌금을 내며 "잘 봐 주세요, 내 기도 좀 들어 주세요" 한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한다. 헌금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헌신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우상숭배하던 생활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라 자기가 중심이다.

그래서 복을 주지 않으시면 "하나님 살아 계십니까?" 하고 따진다. 자기 속에 악한 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응답을 주시려 해도 악한 영이 중간에서 가리고 차단하여 응답을 받을 수 없는 상태다.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회개를 통해 그 진노를 없애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고 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느냐고 한다. 모르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중심이 아닌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이 원망 불평이다. 물이 없다, 고기가 없다, 무엇이 없다고 날마다 원망한다.

그러므로 출애굽 1세대에게서 기억할 것은 두 가지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할 사람,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되려면 애굽의 습관, 애굽의 음식, 애굽의 문화, 애굽의 신관을 다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적극적인 교훈이다. 소극적인 교훈은 원망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의 질서 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이다.

6. 광야에서 엎드러진 출애굽 1세대는 모두 지옥에 갔는가?

그런데 출애굽 1세대는 그것을 하지 못했다. 시내 광야를 떠나 바란 광야로 이동했고(민 10:11-12), 그곳 가데스에서 정탐꾼을 보냈다(민 13:3, 26). 하나님이 그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들은 환경만 바라보고 "우리를 죽이려고 여기로 데려왔느냐"며 원망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민 14:28-29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그리고 15장부터 19장까지 1세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런데 민수기 19장이 끝나고 20장이 시작되는 그 빈 공간에 38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38년 동안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다 죽게 하셨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되려면 애굽의 잔재를 싹 뽑아야 한다. 그 애굽의 잔재가 귀신이고 뱀들이다. 이것을 뽑아내야 원망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도 광야에 엎드러져 죽을 것이다. 1차적 구원은 받았으나 최종적 구원에서 탈락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도 이것을 경고했다.

히 3:17-19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성령은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같이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하신다(히 3:7-8).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는 것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들이 들어가지 못한 안식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다(히 3:11). 그러므로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하고, 매일 피차 권면하여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작할 때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된다(히 3:12-14).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 생활을 할 때도 완고해져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면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히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목사님, 광야로 나온 출애굽 1세대 가운데 믿음으로 들어간 미리암과 아론과 모세, 그리고 실제 육신으로 가나안에 들어간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고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은 다 지옥에 갔습니까?" 히브리서를 보면 광야에 엎드러진 자들은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며 시험하고 거역하다가 죽었으니 지옥에 간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아무도 이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천국의 실상을 모르니 대답하지 못한다. 그런데 필자가 천국에 가서 확인해 보니 출애굽 1세대 가운데 천국에 들어간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우리가 착각한 것이 있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우리는 메뚜기 같아서 다 죽을 것이라며 불평불만을 한 사람이 출애굽 1세대 전부였는가? 그렇지 않다. 그 일을 주도한 것은 열 명의 정탐꾼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자 동조하는 사람들이 참여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참여했지만 모든 백성이 다 불평한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결정한 산헤드린 공회를 보라. 유대 전승에 따르면 대산헤드린은 일흔한 명이다. 그중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사람이었다(눅 23:50-51). 니고데모도 공회 앞에서 예수님을 변호한 사람이었다(요 7:50-51). 필자는 그 두 사람이 그때 반대했고, 천국에 갔다고 본다. 그러나 공회는 다수의 결정으로 예수님을 죽이기로 했다. 출애굽 1세대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처음에 38년 동안 광야를 돌며 다 죽었으니 모두 지옥에 간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천국에서 확인해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불평불만으로 지도자를 거역하는 나쁜 무리를 이끈 자들이 있었고, 그 무리에 동참한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동참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동참하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갔고, 그때 살았던 사람 중에 보좌 자리를 차지한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광야에 나온 출애굽 1세대 가운데 14만 4천 명에 든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정죄할 것이 아니다.

7. 출애굽 1세대와 2세대가 각각 잘한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다. 출애굽 1세대가 주님께 칭찬받을 만큼 잘한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민수기 13-14장만 생각해서, 그들이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고 날마다 물이 없다, 무엇이 없다고 한 것만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잘한 일이 있다. 주님을 매우 기쁘시게 해 드렸다. 무엇인가? 성막을 지은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금은 패물을 다 바쳤다.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를 너도나도 빼서 가져왔다(출 35:22). 얼마나 많이 가져왔는지 모세가 이제 그만 가져오라고 명령해야 할 정도였다(출 36:5-7). 오늘날로 말하면 수십억 원에 이를 성막, 곧 교회를 지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헌신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날마다 나쁜 것만 이야기하니 노이로제가 걸려서 "그 나쁜 것들은 광야에 엎드러져 죽어 싸다, 다 지옥에 가라" 한다. 그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불평에 동참한 것도 아니었고, 헌신한 사람도 많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모두 지옥에 갔다고 말하지 말라.

그렇다면 출애굽 2세대는 어떠한가? 출애굽 2세대도 똑같이 원망 불평했다.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었다. 20장에 들어서자마자 물이 없다고 므리바에서 다투었고(민 20:2-13), 길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렸다(민 21:4-6). 그런데도 출애굽 2세대가 잘한 일이 있다. 전쟁을 수행한 것이다.

민수기 20장부터 마지막 장까지를 보면 그들은 크게 두 번 전쟁에 성공한다. 첫째는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친 것이다(민 21:21-35). 둘째는 미디안의 다섯 왕을 다 죽인 것이다(민 31:7-8). 하나님은 21장과 31장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셨고, 2세대는 합격했다.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은 엄청나게 센 족속이었다. 옥은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로, 그의 철 침상은 길이가 아홉 규빗, 너비가 네 규빗이었다(신 3:11). 미디안의 다섯 왕도 강한 족속이었다. 그런데 2세대는 그들을 싹 물리쳤다.

이스라엘이 그때까지 전쟁을 해 본 것은 출애굽기 17장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운 것이 거의 전부였다(출 17:8-13). 1세대는 가데스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올라갔다가 호르마까지 패했고(민 14:44-45), 2세대는 아랏 왕과 싸워 이겼다(민 21:1-3). 그리고 민수기 21장에서 본격적인 정복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승리가 얼마나 엄청났는지는 가나안의 첫 성인 여리고성의 라합이 들은 소식으로 알 수 있다. 라합은 여호와께서 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줄 안다고 하며,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는다고 했다(수 2:9).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수 2:10-11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전멸시킨 일'은 히브리어로 헤렘, 곧 진멸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물리친 일이 가나안 족속들을 벌벌 떨게 한 것이다. 그 일을 출애굽 2세대가 했다. 그러니 가나안 땅에 들어갈 만하지 않은가? 불평할 때 불평하더라도 전쟁하라 하시면 "할렐루야, 아멘" 하고 나간 것이다.

2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다가 다 죽어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해야 하고, 거기서 불평했다가는 끝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니 갑시다. 아모리 왕 시혼, 쳐 봅시다. 바산 왕 옥, 거인이 산다는데 상관없다. 다 치자" 하고 나갔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 안에 있는 거인 족속을 물리칠 수 있는지 바산 왕 옥을 통해 시험해 보셨고, 2세대는 그것을 통과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됐다. 여호수아야, 그 백성을 데리고 들어가라" 하신 것이다. 출애굽 1세대는 성막을 지어 잘했고, 출애굽 2세대는 전쟁을 수행하여 잘했다. 교회에 나와서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8. 민수기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영적 전사가 되라고 가르치는가?

민수기는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뽑는 책이다. 싸움을 못 하면 뽑을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와서 귀신을 쫓아내는 영적 전쟁을 하지 않으려면 교회에 올 필요가 없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귀신을 쫓고 악한 영을 내보내야 성도들이 온전해지고 저주에서 끊어져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 수많은 사람이 미끄러진다. 죽을 때까지 징징 짜기만 한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서 귀신들을 아작 낼까?" 이렇게 나가야 하는데, "귀신은 무서워, 오지 마, 꿈속에라도 나타나지 마" 한다. 언제까지 그렇게 갈 것인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여호와의 군대, 예수님의 군대로 들어가야 한다. 나팔절은 소집하는 날인데 "올라가자" 하시면 "할렐루야, 아멘" 하고 나서야 한다. "우리 같은 사람은 빼 주세요" 하면 되겠는가? 하나님은 담대한 사람을 쓰신다.

우리 교회는 보통 교회에서 하지 않는 이야기를 자꾸 해서 특이한 교회라는 말을 듣는다. 특이한 교회는 특이해야 한다. 포스터를 붙여도 사람이 오게끔 붙여야지 밋밋하면 누가 보고 오겠는가? 그래서 말씀으로 미끼를 던진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 문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알고 천국을 알게 된다. 병들고 신음하고 귀신 들린 사람들이 "저 교회는 다르다. 다른 데서는 가르쳐 주지도 않고 오라 오라 해서 돈만 드는데, 여기는 돈도 필요 없고 회개만 하고 오라고 한다" 하며 찾아온다. 어떤 원인에 의해, 어떤 절차를 거쳐 지금 이런 삶을 살고 있는지 다 가르쳐 주니 맞춰 보면 다 맞는다. 그렇게 와서 보면 목사가 날마다 예수님 이야기와 천국 이야기만 한다. 예수님도 병든 자를 고쳐 주시니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 필자는 예수님처럼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런 말씀을 배우니 복된 자다. 그러므로 남편에게도 감사해야 한다. 남편이 돈을 벌어다 주니 여기 와서 말씀을 들을 시간이 있는 것이다. 남편에게 바가지 긁지 말라. 남편을 위해 남편의 이름으로 헌금도 올리고, 남편을 위해 기도해 주고, 남편의 이름을 넣어 회개도 해 주어야 한다. 남편이 그래도 열심히 살아 주어서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민수기의 전체 여정은 출애굽 1세대와 2세대의 이야기다. 1세대를 통해서는 하나님 말씀 중심,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광야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소극적으로는 원망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고 그것을 함부로 뒤집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2세대를 통해서는 전쟁을 수행하라 하실 때 "아멘" 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러므로 불평할 때 불평하더라도 전쟁하라 하시면 순종하라. 원망 불평은 점점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 엄청난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펼쳐질 때 우리는 어마어마한 감동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9. 나오며

다음 시간에는 민수기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를 살펴보고, 그다음부터 민수기 1장부터 펼쳐지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 가겠다. 서론하다가 시간이 다 갔지만, 우리가 잘못하면 출애굽했다가 광야에서 그냥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정신 차려야 한다는 것만 깨달아도 엄청나게 깨달은 것이다.

우리는 민수기를 원망 불평만 한 이야기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다만 원망 불평의 영, 시기 질투의 영은 다 악한 영에서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광야 같은 교회 생활을 하면서 회개를 통해 그 영들을 싹 몰아내야 한다. 그리하여 악한 영과 싸우는 마지막 시대의 영적 전사들로 준비되어야 한다.

2026년 10월 14일(수) · 정보배 목사